{{{#!wiki style="margin: -15px -10px -21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5%;"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d9241d><tablebgcolor=#d9241d>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55%;"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9176e><tablebgcolor=#29176e>조선/대한제국군 인사명령 | }}}}}} | ||||||
1894년 | 1895년 | |||||||||
1896년 | 1897년 | 1898년 | 1899년 | 1900년 | ||||||
1901년 | 1902년 | 1903년 | 1904년 | 1905년 | ||||||
1906년 | 1907년 | 1908년 | 1909년 | 1910년 | ||||||
인물별 기록 | 장교 | 사병 |
1. 개요2. 1월 3일3. 1월 5일4. 1월 12일5. 1월 21일6. 1월 29일7. 2월 3일8. 2월 7일9. 3월 2일10. 3월 10일11. 3월 12일12. 3월 14일13. 3월 19일14. 3월 25일15. 3월 30일16. 4월 13일17. 4월 18일18. 5월 16일19. 5월 20일20. 5월 21일21. 5월 23일22. 6월 6일23. 6월 24일24. 6월 29일25. 7월 3일26. 9월 8일27. 9월 12일28. 9월 14일29. 9월 18일30. 9월 23일31. 10월 6일32. 10월 9일33. 10월 23일34. 10월 26일35. 10월 27일36. 10월 30일37. 11월 1일38. 11월 8일39. 11월 30일40. 12월 5일41. 12월 9일42. 12월 14일43. 12월 29일44. 12월 31일
1. 개요
대한제국군/인사명령의 1905년 내용을 정리한 항목이다. 대한제국군의 병력은 대폭 감축되어 1만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이 해에 을사조약이 이뤄지면서 통감부가 설치되어 사실상 반식민지가 된다.날짜 | 소위 | 중위 | 대위 | 소령 | 중령 | 대령 | 소장 | 중장 | 원수 | 합계 |
9/8 | 1 | |||||||||
합계 | 1 |
2. 1월 3일
○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근택(李根澤)을 임시서리시종무관부무관장사무(臨時署理侍從武官府武官長事務)에 임명하고, 육군 참장(陸軍參將) 양성환(梁性煥)을 임시서리배종무관부무관장사무(臨時署理陪從武官府武官長事務)에 임명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1A_28A_00210_2006_201_XML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1A_28A_00210_2006_201_XML
3. 1월 5일
○ 군부 대신(軍部大臣)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윤용(李允用)이 삼가 아뢰기를,
“안주(安州)에 주둔한 부대의 소대장(小隊長) 유면수(柳冕洙)를 이미 붙잡아다 조사하였는데, 방금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 육군 참장(陸軍參將) 신태휴(申泰休)의 보고서를 보니, 해대(該隊)의 지휘관(指揮官)인 이용관(李容觀)이 해당 안건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를 나치(拿致)하여 조사한 다음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지휘관이 비록 영관(領官)이기는 하지만, 현재 평안북도 관찰사의 직임을 맡고 있기에 붙잡아 들이는 이유를 먼저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1A_30A_00200_2006_201_XML
안주진위대의 소대장 처벌 관련하여 업무 보고하는 내용이다.“안주(安州)에 주둔한 부대의 소대장(小隊長) 유면수(柳冕洙)를 이미 붙잡아다 조사하였는데, 방금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 육군 참장(陸軍參將) 신태휴(申泰休)의 보고서를 보니, 해대(該隊)의 지휘관(指揮官)인 이용관(李容觀)이 해당 안건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를 나치(拿致)하여 조사한 다음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지휘관이 비록 영관(領官)이기는 하지만, 현재 평안북도 관찰사의 직임을 맡고 있기에 붙잡아 들이는 이유를 먼저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1A_30A_00200_2006_201_XML
4. 1월 12일
○ 비원장(祕苑長) 김가진(金嘉鎭),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용태(李容泰)를 관제이정소 의정관(官制釐正所議定官)에서 해임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07A_00130_2006_202_XML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07A_00130_2006_202_XML
5. 1월 21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기(閔泳綺)를 탁지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16A_00030_2006_202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기(閔泳綺)를 탁지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16A_00030_2006_202_XML
6. 1월 29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병석(閔丙奭)을 표훈원 총재(表勳院摠裁)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24A_00050_2006_202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병석(閔丙奭)을 표훈원 총재(表勳院摠裁)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24A_00050_2006_202_XML
7. 2월 3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종건(李鍾健)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29A_00100_2006_202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종건(李鍾健)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1_12A_29A_00100_2006_202_XML
8. 2월 7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지용(李址鎔)을 종정원 경(宗正院卿)으로, 종2품 조동완(趙東完)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민영돈(閔泳敦)을 장례원 소경으로,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김태제(金台濟)를 경효전 제조로, 궁내부 특진관 남규희(南奎煕)를 봉상사 제조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1A_04A_00060_2006_202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지용(李址鎔)을 종정원 경(宗正院卿)으로, 종2품 조동완(趙東完)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민영돈(閔泳敦)을 장례원 소경으로,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김태제(金台濟)를 경효전 제조로, 궁내부 특진관 남규희(南奎煕)를 봉상사 제조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1A_04A_00060_2006_202_XML
9. 3월 2일
○ 조령을 내리기를,
“인산할 때의 별배종(別陪從)인 궁내부 대신임시서리 이재극(李載克)에게 숙마 1필을 면급(面給)하라. 참서관 김용제(金鎔濟), 주사 안상열(安商說)ㆍ김성연(金聲演)은 모두 1등을 올리라. 김명제(金明濟)는 승서하라. 영여 배위(靈轝陪衛)인 원임 별군직(原任別軍職) 이한영(李漢英)ㆍ신경균(申慶均)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賜給)하라. 분시어(分侍御) 채명석(蔡命錫)ㆍ유정희(柳正羲)는 모두 승륙(陞六)하라. 신련 배위(神輦陪衛)인 원임 별군직 유기선(柳冀先)에게 가자(加資)하라. 원임 좌시어 상윤식(尙允植)ㆍ이헌용(李憲鎔), 좌시어 박정래(朴正來)는 모두 승륙하라. 분시어 홍건(洪𤧣)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유석관(柳錫觀), 백남승(白南昇)에게 모두 가자하라. 구삼회(具三會)는 승륙하라. 배위인 시종원 시종 박용숙(朴容淑)은 1등을 올리라. 서병두(徐丙斗)에게 가자하라. 절목거행(節目擧行)인 주사 전흥윤(全興潤)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변종선(卞鍾善)은 승서하라. 의절 차지인 분주사(分主事) 천긍식(千兢植), 노제소 금훤(路祭所禁喧)인 분주사 송극래(宋克來), 전어 차지(傳語次知)인 분주사 주관홍(周寬弘)은 모두 승륙하라. 예식원 외무과장(禮式院外務課長) 고희경(高羲敬)은 1등을 올리라. 참리관(參理官) 고희성(高羲誠)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남정규(南廷奎)는 1등을 올리라. 진학신(秦學新), 번역관 박기준(朴基駿)ㆍ신태건(申泰建), 주사 민긍호(閔肯鎬)ㆍ이영규(李瑛奎)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번역관보(繙繹官補) 조재승(趙在升)은 승륙하라. 별배종(別陪從)인 의정부 찬정 민병석(閔丙奭), 궁내부 특진관 이유인(李裕寅), 육군 참장 이용익(李容翊), 궁내부 특진관 조종필(趙鍾弼)ㆍ민형식(閔炯植)에게 각각 숙마 1필을 사급하라. 종2품 민형식(閔衡植)ㆍ이인철(李寅轍)에게 각각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제용사 장(濟用司長) 엄준원(嚴俊源)에게 가자하라. 봉상사 제조 이호석(李鎬奭)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농상공부 협판 이근상(李根湘)에게 가자하라. 육군 참장 홍순찬(洪淳瓚)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의정부 참찬 허위(許蔿)에게 가자하라. 총무국장(摠務局長) 박의병(朴義秉)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정3품 장태수(張泰秀)에게 가자하라. 윤필(尹泌)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중추원 의관 이건용(李建容), 법부 참서관 이종성(李種聖), 철도원 문서과장(鐵道院文書課長) 김남집(金南輯)에게 모두 가자하라. 군부 경리국 1과장(軍部經理局一課長) 안준옥(安駿玉)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6품 박영대(朴永大), 중추원 의관 이응직(李膺稙), 학부 참서관 민건식(閔健植), 통신원 참서관 변영진(邊永鎭), 평리원 검사(平理院檢事) 현동건(玄東健)에게 모두 가자하라. 시종원 시종 이필화(李苾和)는 1등을 올리라. 오한영(吳翰泳), 예식원 번역관 진학신에게 모두 가자하라. 내부 주사 서상희(徐相熺)는 승륙하라. 6품 박성덕(朴性德)ㆍ유태준(兪台濬)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영여 별배위(靈轝別陪衛)인 군부 대신(軍部大臣)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윤용(李允用)에게 숙마 1필을 사급하라. 비서관(祕書官) 육군 보병 참령(陸軍步兵參領) 이기홍(李起泓)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전령사관(傳令士官) 보병 참령 조성근(趙性根)에게 가자하라. 이등군사(二等軍司) 이우승(李羽承)에게 가자하라. 기병 참위(騎兵參尉) 박영철(朴永喆)은 승륙하라. 별배종인 기병 대대장권섭(騎兵大隊長權攝) 부령 이태래(李泰來)는 승서하라. 부관(副官) 기병 부위(騎兵副尉) 이봉서(李鳳緖)에게 가자하라. 원소파주(園所派駐)인 참위(參尉) 홍순정(洪淳正)은 승서하라. 신련영여 배위(神輦靈轝陪衛)인 시종무관부 무관(侍從武官府武官) 보병 참령(步兵參領) 구연하(具然河)ㆍ정위(正尉) 조중만(趙重萬), 배종인 무관부 무관 참령 이해원(李海元)에게 모두 가자하라. 정위 양재훈(梁在薰)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신련 배위인 참모부 국원(參謀部局員) 포병 참령(砲兵參領) 어담(魚潭), 영여 배위인 보병 정위 유완(柳玩)에게 모두 가자하라. 신련 배위인 육군 정위 박용준(朴容浚), 부위 장윤규(張潤圭), 참위 이호진(李浩鎭)과 영여 배위인 육군 정위 황태수(黃台秀), 부위 박승준(朴勝俊), 참위 이인두(李仁斗)와 원소호위(園所扈衛)인 육군 정위 이용재(李容宰), 부위 남기석(南基奭), 참위 정달진(丁達鎭)ㆍ조동겸(趙東謙), 부위 오의선(吳儀善), 정위 송학수(宋學洙), 부위 정관수(鄭觀秀), 참위 최홍기(崔鴻基), 정위 이수봉(李守鳳), 참위 이의풍(李宜豐), 정위 김인성(金仁成), 부위 강봉익(康鳳翼), 참위 유석풍(柳錫豐)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참위 장규형(張圭炯)은 승륙하라. 선사대(先射隊)인 육군 정위 심윤택(沈允澤), 부위 장행원(張行遠)ㆍ이의영(李宜榮), 참위 최대영(崔大永)ㆍ윤치병(尹致昞)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후사대(後射隊)인 육군 정위 박정환(朴晶煥)에게 가자하라. 부위 원은상(元殷常)ㆍ김홍식(金弘植), 참위 오주영(吳胄泳)ㆍ박태기(朴泰琦)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도령(都領)인 육군 참령 이범칠(李範七)에게 가자하라. 부관 부위 조원하(趙元夏), 참위 신보균(申普均)ㆍ이규병(李圭丙)ㆍ이희종(李喜鍾), 부위 김교희(金敎憙), 이등군의(二等軍醫) 이기원(李基元), 군악대 일등군악장(軍樂隊一等軍樂長) 김학수(金學秀)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이등군악장(二等軍樂長) 백우용(白禹鏞)은 승륙하라. 원소배립(園所排立)인 육군 부위 이장진(李章珍)ㆍ참위 홍순정(洪淳正), 협영여장(挾靈轝長)인 참위 홍귀표(洪龜杓)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민병운(閔丙雲)은 승륙하라. 대여시위(大轝侍衛)인 경위원 경무관(警衛院警務官) 황신태(黃信泰)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총순(摠巡) 이응진(李應鎭), 신련시위인 경위원 총순 김문식(金文植)은 모두 1등을 올리라. 도가(導駕)인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민경식(閔景植)에게 숙마 1필을 사급하라. 소윤(少尹) 박승조(朴承祖), 주사 강준영(姜準永)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이명환(李明煥)은 승륙하라. 검거(檢擧)인 주사 김우현(金宇鉉)은 1등을 올리라. 선사대인 경무청 경무관 배석태(裵錫泰)ㆍ황영주(黃榮柱)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대여 후위(大轝後衛)인 경무관 강종우(康鍾祐)ㆍ강태식(康台植)은 모두 1등을 올리라. 총순 박희욱(朴喜旭)은 승륙하라. 고제윤(高濟允)ㆍ이석영(李錫永), 난후(攔後)인 총순 오영묵(吳英默)ㆍ김준영(金俊永)ㆍ김성연(金聖淵)ㆍ강태형(姜泰馨)ㆍ김정진(金貞鎭)은 모두 본청(本廳)에 조용(調用)하라. 배종인 주사 홍종익(洪鍾翊)ㆍ김선영(金善泳)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소여 배위(小轝陪衛)인 총순 정석조(鄭奭朝)ㆍ고명환(高明煥)ㆍ최창식(崔昌植), 신련 배위인 총순 한준영(韓俊榮)은 모두 본청에 조용하라. 봉여 후위(鳳轝後衛)인 경무관 이덕응(李悳應)ㆍ이민호(李旼鎬)에게 모두 가자하라. 신백련 후위(神帛輦後衛)인 경무관 이시영(李時榮)ㆍ이유승(李裕承)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총순 홍병태(洪秉台), 청도(淸道)인 경무관서리 총순(警務官署理摠巡) 황건영(黃健永)은 모두 본청에 조용하라. 그 나머지 사알(司謁), 사약(司鑰), 군관(軍官), 하사(下士), 병정(兵丁) 등에게는 모두 판하한 대로 시상하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1A_27A_00240_2006_202_XML
인산(왕가의 장례)을 마치고 포상한 내용이다.“인산할 때의 별배종(別陪從)인 궁내부 대신임시서리 이재극(李載克)에게 숙마 1필을 면급(面給)하라. 참서관 김용제(金鎔濟), 주사 안상열(安商說)ㆍ김성연(金聲演)은 모두 1등을 올리라. 김명제(金明濟)는 승서하라. 영여 배위(靈轝陪衛)인 원임 별군직(原任別軍職) 이한영(李漢英)ㆍ신경균(申慶均)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賜給)하라. 분시어(分侍御) 채명석(蔡命錫)ㆍ유정희(柳正羲)는 모두 승륙(陞六)하라. 신련 배위(神輦陪衛)인 원임 별군직 유기선(柳冀先)에게 가자(加資)하라. 원임 좌시어 상윤식(尙允植)ㆍ이헌용(李憲鎔), 좌시어 박정래(朴正來)는 모두 승륙하라. 분시어 홍건(洪𤧣)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유석관(柳錫觀), 백남승(白南昇)에게 모두 가자하라. 구삼회(具三會)는 승륙하라. 배위인 시종원 시종 박용숙(朴容淑)은 1등을 올리라. 서병두(徐丙斗)에게 가자하라. 절목거행(節目擧行)인 주사 전흥윤(全興潤)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변종선(卞鍾善)은 승서하라. 의절 차지인 분주사(分主事) 천긍식(千兢植), 노제소 금훤(路祭所禁喧)인 분주사 송극래(宋克來), 전어 차지(傳語次知)인 분주사 주관홍(周寬弘)은 모두 승륙하라. 예식원 외무과장(禮式院外務課長) 고희경(高羲敬)은 1등을 올리라. 참리관(參理官) 고희성(高羲誠)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남정규(南廷奎)는 1등을 올리라. 진학신(秦學新), 번역관 박기준(朴基駿)ㆍ신태건(申泰建), 주사 민긍호(閔肯鎬)ㆍ이영규(李瑛奎)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번역관보(繙繹官補) 조재승(趙在升)은 승륙하라. 별배종(別陪從)인 의정부 찬정 민병석(閔丙奭), 궁내부 특진관 이유인(李裕寅), 육군 참장 이용익(李容翊), 궁내부 특진관 조종필(趙鍾弼)ㆍ민형식(閔炯植)에게 각각 숙마 1필을 사급하라. 종2품 민형식(閔衡植)ㆍ이인철(李寅轍)에게 각각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제용사 장(濟用司長) 엄준원(嚴俊源)에게 가자하라. 봉상사 제조 이호석(李鎬奭)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농상공부 협판 이근상(李根湘)에게 가자하라. 육군 참장 홍순찬(洪淳瓚)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의정부 참찬 허위(許蔿)에게 가자하라. 총무국장(摠務局長) 박의병(朴義秉)에게 반숙마 1필을 사급하라. 정3품 장태수(張泰秀)에게 가자하라. 윤필(尹泌)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중추원 의관 이건용(李建容), 법부 참서관 이종성(李種聖), 철도원 문서과장(鐵道院文書課長) 김남집(金南輯)에게 모두 가자하라. 군부 경리국 1과장(軍部經理局一課長) 안준옥(安駿玉)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6품 박영대(朴永大), 중추원 의관 이응직(李膺稙), 학부 참서관 민건식(閔健植), 통신원 참서관 변영진(邊永鎭), 평리원 검사(平理院檢事) 현동건(玄東健)에게 모두 가자하라. 시종원 시종 이필화(李苾和)는 1등을 올리라. 오한영(吳翰泳), 예식원 번역관 진학신에게 모두 가자하라. 내부 주사 서상희(徐相熺)는 승륙하라. 6품 박성덕(朴性德)ㆍ유태준(兪台濬)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영여 별배위(靈轝別陪衛)인 군부 대신(軍部大臣)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윤용(李允用)에게 숙마 1필을 사급하라. 비서관(祕書官) 육군 보병 참령(陸軍步兵參領) 이기홍(李起泓)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전령사관(傳令士官) 보병 참령 조성근(趙性根)에게 가자하라. 이등군사(二等軍司) 이우승(李羽承)에게 가자하라. 기병 참위(騎兵參尉) 박영철(朴永喆)은 승륙하라. 별배종인 기병 대대장권섭(騎兵大隊長權攝) 부령 이태래(李泰來)는 승서하라. 부관(副官) 기병 부위(騎兵副尉) 이봉서(李鳳緖)에게 가자하라. 원소파주(園所派駐)인 참위(參尉) 홍순정(洪淳正)은 승서하라. 신련영여 배위(神輦靈轝陪衛)인 시종무관부 무관(侍從武官府武官) 보병 참령(步兵參領) 구연하(具然河)ㆍ정위(正尉) 조중만(趙重萬), 배종인 무관부 무관 참령 이해원(李海元)에게 모두 가자하라. 정위 양재훈(梁在薰)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신련 배위인 참모부 국원(參謀部局員) 포병 참령(砲兵參領) 어담(魚潭), 영여 배위인 보병 정위 유완(柳玩)에게 모두 가자하라. 신련 배위인 육군 정위 박용준(朴容浚), 부위 장윤규(張潤圭), 참위 이호진(李浩鎭)과 영여 배위인 육군 정위 황태수(黃台秀), 부위 박승준(朴勝俊), 참위 이인두(李仁斗)와 원소호위(園所扈衛)인 육군 정위 이용재(李容宰), 부위 남기석(南基奭), 참위 정달진(丁達鎭)ㆍ조동겸(趙東謙), 부위 오의선(吳儀善), 정위 송학수(宋學洙), 부위 정관수(鄭觀秀), 참위 최홍기(崔鴻基), 정위 이수봉(李守鳳), 참위 이의풍(李宜豐), 정위 김인성(金仁成), 부위 강봉익(康鳳翼), 참위 유석풍(柳錫豐)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참위 장규형(張圭炯)은 승륙하라. 선사대(先射隊)인 육군 정위 심윤택(沈允澤), 부위 장행원(張行遠)ㆍ이의영(李宜榮), 참위 최대영(崔大永)ㆍ윤치병(尹致昞)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후사대(後射隊)인 육군 정위 박정환(朴晶煥)에게 가자하라. 부위 원은상(元殷常)ㆍ김홍식(金弘植), 참위 오주영(吳胄泳)ㆍ박태기(朴泰琦)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도령(都領)인 육군 참령 이범칠(李範七)에게 가자하라. 부관 부위 조원하(趙元夏), 참위 신보균(申普均)ㆍ이규병(李圭丙)ㆍ이희종(李喜鍾), 부위 김교희(金敎憙), 이등군의(二等軍醫) 이기원(李基元), 군악대 일등군악장(軍樂隊一等軍樂長) 김학수(金學秀)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이등군악장(二等軍樂長) 백우용(白禹鏞)은 승륙하라. 원소배립(園所排立)인 육군 부위 이장진(李章珍)ㆍ참위 홍순정(洪淳正), 협영여장(挾靈轝長)인 참위 홍귀표(洪龜杓)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민병운(閔丙雲)은 승륙하라. 대여시위(大轝侍衛)인 경위원 경무관(警衛院警務官) 황신태(黃信泰)에게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총순(摠巡) 이응진(李應鎭), 신련시위인 경위원 총순 김문식(金文植)은 모두 1등을 올리라. 도가(導駕)인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민경식(閔景植)에게 숙마 1필을 사급하라. 소윤(少尹) 박승조(朴承祖), 주사 강준영(姜準永)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이명환(李明煥)은 승륙하라. 검거(檢擧)인 주사 김우현(金宇鉉)은 1등을 올리라. 선사대인 경무청 경무관 배석태(裵錫泰)ㆍ황영주(黃榮柱)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대여 후위(大轝後衛)인 경무관 강종우(康鍾祐)ㆍ강태식(康台植)은 모두 1등을 올리라. 총순 박희욱(朴喜旭)은 승륙하라. 고제윤(高濟允)ㆍ이석영(李錫永), 난후(攔後)인 총순 오영묵(吳英默)ㆍ김준영(金俊永)ㆍ김성연(金聖淵)ㆍ강태형(姜泰馨)ㆍ김정진(金貞鎭)은 모두 본청(本廳)에 조용(調用)하라. 배종인 주사 홍종익(洪鍾翊)ㆍ김선영(金善泳)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소여 배위(小轝陪衛)인 총순 정석조(鄭奭朝)ㆍ고명환(高明煥)ㆍ최창식(崔昌植), 신련 배위인 총순 한준영(韓俊榮)은 모두 본청에 조용하라. 봉여 후위(鳳轝後衛)인 경무관 이덕응(李悳應)ㆍ이민호(李旼鎬)에게 모두 가자하라. 신백련 후위(神帛輦後衛)인 경무관 이시영(李時榮)ㆍ이유승(李裕承)에게 각각 아마 1필을 사급하라. 총순 홍병태(洪秉台), 청도(淸道)인 경무관서리 총순(警務官署理摠巡) 황건영(黃健永)은 모두 본청에 조용하라. 그 나머지 사알(司謁), 사약(司鑰), 군관(軍官), 하사(下士), 병정(兵丁) 등에게는 모두 판하한 대로 시상하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1A_27A_00240_2006_202_XML
10. 3월 10일
○ 조령을 내리기를,
“홍문관 학사 이순익(李淳翼)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종1품 민영규(閔泳奎)를 판돈녕사사(判敦寧司事)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홍문관 학사로, 육군 부장 이근택(李根澤)을 주전원 경(主殿院卿)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05A_00060_2006_203_XML
“홍문관 학사 이순익(李淳翼)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종1품 민영규(閔泳奎)를 판돈녕사사(判敦寧司事)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홍문관 학사로, 육군 부장 이근택(李根澤)을 주전원 경(主殿院卿)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05A_00060_2006_203_XML
11. 3월 12일
○ 조령을 내리기를,
“판돈녕사사 민영규(閔泳奎), 종1품 서정순(徐正淳), 장례원 경 조병필(趙秉弼), 규장각 학사 홍순형(洪淳馨),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종건(李鍾健), 전권 공사(全權公使) 김가진(金嘉鎭), 홍문관 학사 민영철(閔泳喆), 육군 부장 이윤용(李允用)ㆍ이도재(李道宰), 내장사 장 이재곤(李載崑)을 중추원 찬의(中樞院贊議)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07A_00080_2006_203_XML
“판돈녕사사 민영규(閔泳奎), 종1품 서정순(徐正淳), 장례원 경 조병필(趙秉弼), 규장각 학사 홍순형(洪淳馨),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종건(李鍾健), 전권 공사(全權公使) 김가진(金嘉鎭), 홍문관 학사 민영철(閔泳喆), 육군 부장 이윤용(李允用)ㆍ이도재(李道宰), 내장사 장 이재곤(李載崑)을 중추원 찬의(中樞院贊議)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07A_00080_2006_203_XML
12. 3월 14일
○ 군부 대신 권중현(權重顯)이 삼가 아뢰기를,
“궁성(宮城)을 호위하는 일은 중대함이 각별한데, 친위 제1연대 제3대대 견습 육군 참위 임필호(林弼鎬)와 박내양(朴來陽)이 자리를 맘대로 이탈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있으니, 법의(法意)로 따져 보고 군율을 참작해 볼 때 모두 처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면직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궁성(宮城)을 호위하는 일은 중대함이 각별한데, 친위 제1연대 제3대대 견습 육군 참위 임필호(林弼鎬)와 박내양(朴來陽)이 자리를 맘대로 이탈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있으니, 법의(法意)로 따져 보고 군율을 참작해 볼 때 모두 처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면직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13. 3월 19일
○ 육군 부장(陸軍副將) 심상훈(沈相薰), 중추원 찬의 민영철(閔泳喆), 궁내부 협판 박용화(朴鏞和), 법부 협판 이근상(李根湘), 육군 정위 유완(柳玩), 육군 부위 김응선(金應善)ㆍ유동열(柳東說), 육군 참위 윤치성(尹致晟)을 일본특파대사 수원(日本特派大使隨員)에 임명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14A_00070_2006_203_XML
일본특파대사 수행원으로 군인들을 포함했다. 훗날 미군정 시절에 통위부장(국방장관)이 되는 유동열이 포함되어 있다. 김응선은 일본군 소속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기도 했고, 일본군 장성의 사생아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유동열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기병장교로 참전했다. 이때문인지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2A_14A_00070_2006_203_XML
14. 3월 25일
○ 임필호(林弼鎬), 박내양(朴來陽)을 보병 참위(步兵參尉)에 임용하였다.
이 둘은 1902년 7월에 임관했다가 견습참위로 재직 중 궁성 호위 업무 중에 무단 이탈했다가 3월 14일에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에 사면되었다.
15. 3월 30일
○ 육군 기병 정위(陸軍騎兵正尉) 신우영(申宇永)을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부위 이창균(李昌均)을 육군 이등군사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노순근(盧順根)을 육군 삼등군사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장세교(張世喬)를 시종무관에 임용하였다.
16. 4월 13일
○ 육군 보병 부령(陸軍步兵副領) 이병무(李秉武)ㆍ이희두(李煕斗)를 육군 보병 정령(陸軍步兵正領)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陸軍步兵正尉) 윤영렬(尹英烈)ㆍ노백린(盧伯麟)을 육군 보병 참령(陸軍步兵參領)에 임용하고, 육군 일등군사(陸軍一等軍司) 안종익(安鍾益)ㆍ안규승(安奎承)ㆍ최진태(崔鎭泰)ㆍ장석조(張錫祚)를 육군 삼등사계(陸軍三等司計)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신양균(申亮均)을 육군 포병 부위(陸軍砲兵副尉)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김동련(金東鍊)ㆍ박관병(朴觀秉)ㆍ김상응(金相應)ㆍ박태기(朴泰琦)ㆍ심상팔(沈相八)ㆍ황학수(黃學秀)ㆍ이정호(李晶鎬)ㆍ최원섭(崔元燮)ㆍ임재덕(林在德)을 육군 보병 부위(陸軍步兵副尉)에 임용하고, 유태로(劉泰魯), 이해범(李海範), 최진하(崔鎭夏), 윤원성(尹元成)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였다.
○ 또 아뢰기를,
“전 참위 유태로(劉泰魯)ㆍ이해범(李海範)ㆍ최진하(崔鎭夏)ㆍ윤원성(尹元成) 등은 무관학교 제2회 학도(學徒)인데, 소란이 일어났을 때의 사안 때문에 면직하는 것으로 징계하였습니다. 나중에 실정을 따져 보니 용서할 만한 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징계를 사면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전 참위 유태로(劉泰魯)ㆍ이해범(李海範)ㆍ최진하(崔鎭夏)ㆍ윤원성(尹元成) 등은 무관학교 제2회 학도(學徒)인데, 소란이 일어났을 때의 사안 때문에 면직하는 것으로 징계하였습니다. 나중에 실정을 따져 보니 용서할 만한 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징계를 사면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소위 4명은 육군무관학교 2회 이탈 등으로 징계되었다가 사면되었다.
17. 4월 18일
○ 군부 대신 권중현(權重顯)이 삼가 아뢰기를,
“육군 보병 참위 신양균(申亮均)은 포병대부(砲兵隊附)에 보임된 지 이미 여러 해 되었고 사무에 매우 익숙하니, 포병과(砲兵科)의 위관(尉官)에 옮겨 임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 또 아뢰기를,
“포병 부위(砲兵副尉) 유기성(柳冀聖), 헌병 참위(憲兵參尉) 권중섭(權重燮)ㆍ김사석(金思錫) 등은 본래 보병 학도 출신자들입니다. 모두 보병과의 위관에 도로 임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육군 보병 참위 신양균(申亮均)은 포병대부(砲兵隊附)에 보임된 지 이미 여러 해 되었고 사무에 매우 익숙하니, 포병과(砲兵科)의 위관(尉官)에 옮겨 임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 또 아뢰기를,
“포병 부위(砲兵副尉) 유기성(柳冀聖), 헌병 참위(憲兵參尉) 권중섭(權重燮)ㆍ김사석(金思錫) 등은 본래 보병 학도 출신자들입니다. 모두 보병과의 위관에 도로 임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장교의 병과를 이동하였다.
18. 5월 16일
○ 육군 부장(陸軍副將) 윤웅렬(尹雄烈)을 서리군부대신사무(署理軍部大臣事務)에 임명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3A_00060_2006_203_XML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3A_00060_2006_203_XML
19. 5월 20일
○ 조령을 내리기를,
“참장(參將) 이용익(李容翊)을 육군 부장(陸軍副將)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7A_00050_2006_203_XML
고종의 측근인 이용익이 참장에서 부장으로 진급했다.“참장(參將) 이용익(李容翊)을 육군 부장(陸軍副將)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7A_00050_2006_203_XML
20. 5월 21일
○ 조령을 내리기를,
“정2품 부장(副將) 민영기(閔泳綺)를 탁지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8A_00060_2006_203_XML
“정2품 부장(副將) 민영기(閔泳綺)를 탁지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8A_00060_2006_203_XML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권중현(權重顯)에 대해 특별히 징계를 사면하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8A_00070_2006_203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권중현(權重顯)에 대해 특별히 징계를 사면하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18A_00070_2006_203_XML
21. 5월 23일
○ 조령을 내리기를,
“경상북도 관찰사 정주영(鄭周永)을 경기 관찰사로, 부장(副將) 이도재(李道宰)를 경상북도 관찰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20A_00040_2006_203_XML
“경상북도 관찰사 정주영(鄭周永)을 경기 관찰사로, 부장(副將) 이도재(李道宰)를 경상북도 관찰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4A_20A_00040_2006_203_XML
22. 6월 6일
○ 조령을 내리기를,
“부장(副將) 권중현(權重顯)을 충청남도 관찰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04A_00100_2006_203_XML
“부장(副將) 권중현(權重顯)을 충청남도 관찰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04A_00100_2006_203_XML
23. 6월 24일
○ 조령을 내리기를,
“농상공부 대신 박제순(朴齊純)을 법부 대신으로,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이근택(李根澤)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환(閔泳煥)을 시종무관장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22A_00030_2006_203_XML
민영환이 시종무관부의 시종무관장으로 보임되었다.“농상공부 대신 박제순(朴齊純)을 법부 대신으로,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이근택(李根澤)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환(閔泳煥)을 시종무관장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22A_00030_2006_203_XML
24. 6월 29일
○ 조령을 내리기를,
“법부 대신 박제순(朴齊純)을 학부 대신으로, 부장(副將) 민영기(閔泳綺)를 법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27A_00050_2006_203_XML
“법부 대신 박제순(朴齊純)을 학부 대신으로, 부장(副將) 민영기(閔泳綺)를 법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5A_27A_00050_2006_203_XML
25. 7월 3일
○ 군부 대신(軍部大臣)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용익(李容翊)이 삼가 아뢰기를,
“전 진위 제5연대 제2대대장(鎭衛第五聯隊第二大隊長) 육군 보병 참령(陸軍步兵參領) 심횡택(沈宖澤)과 전 진위 제5연대 제3대대장 육군 보병 참령 김명환(金命煥)이 군물(軍物)을 분실한 일과 관련하여 상주하여 본관을 면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적(情迹)을 추구(追究)해 보니 참작하여 용서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 징계를 사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6A_01A_00130_2006_204_XML
북청진위대와 종성진위대의 대대장들에게 내려진 징계를 사면하였다.“전 진위 제5연대 제2대대장(鎭衛第五聯隊第二大隊長) 육군 보병 참령(陸軍步兵參領) 심횡택(沈宖澤)과 전 진위 제5연대 제3대대장 육군 보병 참령 김명환(金命煥)이 군물(軍物)을 분실한 일과 관련하여 상주하여 본관을 면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적(情迹)을 추구(追究)해 보니 참작하여 용서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 징계를 사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6A_01A_00130_2006_204_XML
○ 한진창(韓鎭昌)을 육군 보병 정령(陸軍步兵正領)에 임용하고, 신좌균(申佐均)을 육군 보병 부령에 임용하고, 김명환(金命煥), 심횡택(沈宖澤)을 육군 보병 참령에 임용하고, 강용희(姜容煕)를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였다.
징계 사면된 자들이다.
26. 9월 8일
○ 육군 보병 부령 신좌균(申佐均)을 육군 이등사계(陸軍二等司計)에 임용하고, 육군연성학교부 육군 보병 참위 홍순정(洪淳正), 시위 보병 제1연대 제1대대부 육군 보병 참위 최대영(崔大永)을 육군 보병 부위에 임용하고, 의학교 교관 김상건(金相健)을 육군 삼등군의에 임용하였다. 육군 사계(陸軍司計) 신좌균(申佐均)을 군부 경리국 과장(軍部經理局課長)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정인환(鄭寅煥)을 군부 참모국 과원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신우영(申宇永)을 군부 교육국 과원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김정현(金定鉉)ㆍ전영록(全英祿)을 육군연성학교부에 보하고, 군의 김상건(金相健)을 진위대 의관에 보하고, 군의 김성집(金性集)을 진위 보병대대 의관에 보하였다.
군의관으로 장교를 신규 획득했다.
- 소위-중위 진급: 2명
- 소위: 1명[1]
○ 전영록(全英祿)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였다.
전영록의 징계가 사면되어 복직했다. 전영록은 1904년에 정교에서 참위로 임용된 특별임관자이다.
27. 9월 12일
○ 육군 참위 손은영(孫殷永)ㆍ이만섭(李萬燮)을 육군 보병 부위에 임용하였다.
- 소위-중위 진급: 2명
28. 9월 14일
○ 또 삼가 아뢰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용익(李容翊)이 군임(軍任)을 맡은 몸으로 제멋대로 지경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율(紀律)로 볼 때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우선 본관을 면직하는 것으로 징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8A_16A_00120_2006_204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용익(李容翊)이 군임(軍任)을 맡은 몸으로 제멋대로 지경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율(紀律)로 볼 때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우선 본관을 면직하는 것으로 징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8A_16A_00120_2006_204_XML
29. 9월 18일
○ 조령을 내리기를,
“평안남도 관찰사(平安南道觀察使) 박제순(朴齊純)을 외부 대신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지용(李址鎔)을 내부 대신으로, 정2품 이완용(李完用)을 학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8A_20A_00100_2006_204_XML
“평안남도 관찰사(平安南道觀察使) 박제순(朴齊純)을 외부 대신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지용(李址鎔)을 내부 대신으로, 정2품 이완용(李完用)을 학부 대신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8A_20A_00100_2006_204_XML
30. 9월 23일
○ 박선빈(朴善斌)을 육군 참령에 임용하고, 육군 참위 이은상(李殷相)을 육군 부위에 임용하였다. 육군 참령 박선빈(朴善斌), 유완(柳玩)을 육군연성학교부에 보하였다.
31. 10월 6일
○ 전 육군 포병 참위 김교선(金敎先), 전 육군 기병 참위 김희선(金羲善), 전 육군 보병 참위 김형섭(金亨爕)ㆍ방영주(方泳柱)ㆍ조태희(趙兌煕)ㆍ오상묵(吳相默)에 대해 징계를 사면하였다.
○ 김교선(金敎先)을 육군 포병 참위에 임용하고, 김희선(金羲善)을 육군 기병 참위에 임용하고, 김형섭(金亨爕), 방영주(方泳柱), 조태희(趙兌煕), 오상묵(吳相默)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였다.
○ 김교선(金敎先)을 육군 포병 참위에 임용하고, 김희선(金羲善)을 육군 기병 참위에 임용하고, 김형섭(金亨爕), 방영주(方泳柱), 조태희(趙兌煕), 오상묵(吳相默)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였다.
신규 획득이 아닌 징계 사면으로 계급을 돌려 받았다.
32. 10월 9일
○ 조령을 내리기를,
“규장각 학사 이순익(李淳翼)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규장각 학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9A_11A_00050_2006_204_XML
“규장각 학사 이순익(李淳翼)을 궁내부 특진관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규장각 학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9A_11A_00050_2006_204_XML
33. 10월 23일
○ 육군 부위 임재덕(林在德)ㆍ나호(羅鎬)를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하고, 육군 참위 이돈의(李墩儀)를 육군 보병 부위에 임용하였다.
- 중위-대위 진급: 2명
- 소위-중위 진급: 1명
34. 10월 26일
○ 종1품 민병석(閔丙奭)을 육군 부장(陸軍副將)에 임용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9A_28A_00140_2006_204_XML
민병석이 사면되어 육군 부장으로 임용되었다.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09A_28A_00140_2006_204_XML
○ 표훈원 총재(表勳院摠裁) 박정양(朴定陽)이 삼가 아뢰기를,
“전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병석(閔丙奭)에 대해 이미 징계를 사면하도록 조령을 내리셨습니다. 해당 관원에게서 몰수했던 훈기(勳記), 훈장(勳章)과 외국훈장 패용 승인장을 모두 돌려주어 이전처럼 패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아룁니다.”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민병석의 훈장 패용 권한을 돌려주었다.
35. 10월 27일
○ 육군 기병 부위 이봉서(李鳳緖), 육군 이등군사 김두석(金斗錫)을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이기옥(李基鈺)ㆍ김관현(金寬鉉)ㆍ김홍남(金鴻南)ㆍ장인근(張寅根)을 육군 보병 부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부위 박영조(朴永祚)를 육군 이등군사에 임용하였다. 육군 보병 부령 최낙주(崔洛周), 육군 보병 정위 김두석(金斗錫)ㆍ김중현(金重鉉)을 육군연성학교부(陸軍硏成學校附)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이봉서(李鳳緖)를 육군무관학교 교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부위 이기옥(李基鈺)을 육군연성학교교관 겸 교성대부(陸軍硏成學校敎官兼敎成隊附)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방영주(方泳柱)를 육군연성학교교관보 겸 교성대부에 보하고, 육군 포병 참위 김교선(金敎先)을 육군연성학교 교관보에 보하고, 육군 이등군사 박영조(朴永祚)를 진위 보병대대 향관에 보하고, 육군 이등군사 강문경(康文璟)을 진위 보병대대 향관에 보하였다.
36. 10월 30일
○ 조령을 내리기를,
“판돈녕사사(判敦寧司事) 조병식(趙秉式)을 규장각 학사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판돈녕사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03A_00040_2006_205_XML
“판돈녕사사(判敦寧司事) 조병식(趙秉式)을 규장각 학사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을 판돈녕사사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03A_00040_2006_205_XML
37. 11월 1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심상훈(沈相薰)을 경리원 경(經理院卿)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05A_00050_2006_205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심상훈(沈相薰)을 경리원 경(經理院卿)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05A_00050_2006_205_XML
38. 11월 8일
○ 조령을 내리기를,
“의정부 참정대신(議政府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을 육군 부장(陸軍副將)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12A_00030_2006_205_XML
“의정부 참정대신(議政府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을 육군 부장(陸軍副將)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0A_12A_00030_2006_205_XML
39. 11월 30일
○ 조령을 내리기를,
“이 중신(重臣)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중후하며 의지와 기개가 단정하고 반듯하였다. 왕실의 인척으로서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보필한 것이 실로 많았고 쌓은 공적도 컸다. 짐이 일찍부터 곁에 두고 의지하며 도움 받던 사람인데, 이 어려운 때에 너무 괴로운 마음에 분연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강개한 의분이 격렬해진 나머지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끊었으니, 충성스럽고 의로운 정신은 하늘을 감동시킬 만하다. 그러니 짐의 비통한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졸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환(閔泳煥)의 상사(喪事)에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궁내부로 하여금 1등급의 예장(禮葬)을 내주어 겸장례를 보내 호상(護喪)하도록 할 것이며 장례 물품을 만드는 일은 영선사(營繕司)가 거행하라. 의정대신(議政大臣)의 직임을 추증하고, 예식원으로 하여금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내리는 특전을 시행하되,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정문을 세우기 전에 시호를 의정(議定)하도록 하라. 성복일(成服日)에는 정경(正卿)을 보내 치제(致祭)하도록 하되, 제문은 친히 지어 내릴 것이다. 백관은 나아가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1A_04A_00030_2006_205_XML
을사조약에 자결한 민영환의 장례 관련한 지시이다. “이 중신(重臣)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중후하며 의지와 기개가 단정하고 반듯하였다. 왕실의 인척으로서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보필한 것이 실로 많았고 쌓은 공적도 컸다. 짐이 일찍부터 곁에 두고 의지하며 도움 받던 사람인데, 이 어려운 때에 너무 괴로운 마음에 분연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강개한 의분이 격렬해진 나머지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끊었으니, 충성스럽고 의로운 정신은 하늘을 감동시킬 만하다. 그러니 짐의 비통한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졸한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환(閔泳煥)의 상사(喪事)에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궁내부로 하여금 1등급의 예장(禮葬)을 내주어 겸장례를 보내 호상(護喪)하도록 할 것이며 장례 물품을 만드는 일은 영선사(營繕司)가 거행하라. 의정대신(議政大臣)의 직임을 추증하고, 예식원으로 하여금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내리는 특전을 시행하되,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정문을 세우기 전에 시호를 의정(議定)하도록 하라. 성복일(成服日)에는 정경(正卿)을 보내 치제(致祭)하도록 하되, 제문은 친히 지어 내릴 것이다. 백관은 나아가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1A_04A_00030_2006_205_XML
40. 12월 5일
○ 육군 보병 참령 윤영렬(尹英烈)ㆍ노백린(盧伯麟)을 육군 보병 부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윤영성(尹泳成)ㆍ성창기(成暢基)를 육군 보병 참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안교영(安敎榮)을 육군 포병 정위에 임용하였다. 육군 보병 정위 이갑(李甲)을 군부 부관에 보(補)하고, 육군 기병 참령 박문병(朴文秉)을 군부 군무국 기병과장에 보하고, 육군 기병 정위 유동열(柳東說)을 군부 군무국 기병과원에 보하고, 육군 기병 참령 성창기(成暢基)를 육군무관학교 교관에 보하고, 육군 포병 정위 안교영(安敎榮)을 군기창 부관에 보하고, 육군 포병 참위 권승록(權承祿)을 육군무관학교 학도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강용희(姜容煕)를 육군유년학교 학도대부에 보하고, 육군 기병 정위 윤치성(尹致晠)을 육군 기병 중대장에 보하였다.
41. 12월 9일
○ 조령을 내리기를,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윤용(李允用)을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1A_13A_00080_2006_205_XML
“육군 부장(陸軍副將) 이윤용(李允用)을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으로 삼으라.”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1A_13A_00080_2006_205_XML
42. 12월 14일
○ 육군 보병 참령 장기렴(張基濂), 육군 보병 참령 김학안(金學顔), 육군 기병 참령 왕유식(王瑜植)을 육군 보병 부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홍우형(洪祐馨)을 육군 기병 참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구의조(具懿祖), 육군 보병 정위 이승희(李勝煕), 육군 헌병 정위 한정호(韓正鎬), 육군 보병 정위 전영헌(全永憲)을 육군 보병 참령에 임용하고, 육군 일등군사(陸軍一等軍司) 권중락(權重樂)을 육군 삼등사계(陸軍三等司計)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부위 유인균(柳麟均), 육군 보병 부위 김기원(金基元), 육군 보병 부위 김현준(金顯駿), 육군 보병 부위 남기창(南基昌), 육군 보병 부위 김문식(金文植)을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윤치병(尹致昞), 육군 보병 참위 이만길(李萬吉)을 육군 보병 부위에 임용하고, 육군 헌병 부령 조철희(趙轍煕)를 육군 보병 부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령 윤원구(尹元求)를 육군 헌병 참령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이인팔(李寅八)을 육군 일등군사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이재항(李載恒)을 육군 헌병 정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부위 이완의(李完儀)를 육군 헌병 부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참위 황철주(黃轍周)를 육군 삼등군사에 임용하고, 육군 헌병 참위 민병철(閔丙喆)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용하고, 육군 보병 정위 이우승(李羽承), 육군 보병 정위 이기원(李起元)을 배종무관(陪從武官)에 임용하였다. 육군 보병 부령 신재영(申載永)을 군부 대신관방장보(軍部大臣官房長補)에 보(補)하고, 육군 보병 정위 왕유식(王瑜植)을 군부 군무국 보병과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임재덕(林在德)을 군부 군무국 보병과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홍우형(洪祐馨)을 군부 군무국 기병과원에 보하고, 육군 보병 부령 조철희(趙轍煕)를 군부 참모국 제1과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한정호(韓正鎬)를 군부 참모국 제2과원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전영헌(全永憲)을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구의조(具懿祖)ㆍ이승희(李勝煕)를 군부 교육국 편수과원(軍部敎育局編修課員)에 보하고, 육군 삼등사계 권중락(權重樂)을 군부 경리국 제2과원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령 정인환(鄭寅煥)을 육군무관학교 교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김기원(金基元)을 육군무관학교 학도대 중대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이경식(李景植), 육군 보병 참위 신창휴(申昌休), 육군 보병 참위 이기종(李起鍾)을 육군무관학교 학도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부령 김학안(金學顔), 육군 보병 참령 김명환(金命煥), 육군 보병 정위 김장렬(金章烈)ㆍ조관현(趙觀顯)ㆍ박제범(朴齊範)ㆍ이민숙(李敏琡)ㆍ김홍권(金鴻權)ㆍ이한창(李漢昌), 육군 보병 부위 조능현(趙能顯)ㆍ이희덕(李煕悳)ㆍ채장묵(蔡章默)ㆍ김상열(金相說)ㆍ유성원(劉聖元), 육군 보병 참위 민병철(閔丙喆)을 육군연성학교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유인균(柳麟均)을 육군연성학교 부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남기창(南基昌)을 육군연성학교 교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부위 유기성(柳冀聖)을 육군연성학교교관 겸 교성대부관에 보하고, 육군 일등군사 이인팔(李寅八)을 육군연성학교 향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조인순(趙藺淳)을 육군연성학교교관보 겸 교성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김현택(金顯澤)을 육군유년학교 부관에 보하고, 육군 기병 참위 김희선(金羲善)을 육군유년학교 교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권중직(權重直)을 육군유년학교 학도대 중대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김상설(金相卨)을 육군유년학교 학도대부에 보하고, 육군 헌병 참령 윤원구(尹元求)를 육군 헌병사령부 부관에 보하고, 육군연성학교교관 겸 교성대장 육군 보병 부령 노백린(盧伯麟)을 육군 헌병대장에 겸보(兼補)하고, 육군 헌병 정위 이재항(李載恒)을 헌병대 구대장에 보하고, 육군 헌병 부위 이완의(李完儀)를 육군 헌병대부에 보하고, 육군 일등군사 이희복(李煕復)을 육군 헌병대 향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이범승(李範承)을 시위 보병 제1연대 제3대대부에 보하고, 육군 기병 참위 이병훈(李丙薰)을 육군 기병 중대부에 보하고, 육군 삼등군사 황철주(黃轍周)를 육군 기병 중대 향관에 보하고, 육군 포병 참위 권승록(權承祿)을 육군 포병 중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이재탁(李在鐸), 육군 보병 참위 윤현구(尹玄求)를 진위 보병 제1대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이병은(李秉殷)을 진위 보병 제2대대 중대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참위 장태진(張泰鎭)을 진위 보병 제2대대부에 보하고, 육군 보병 정위 한성교(韓性敎), 육군 보병 정위 김문식(金文植)을 진위 보병 제4대대 중대장에 보하고, 육군 보병 부위 김희근(金煕根)을 진위 보병 제4대대부에 보하였다.
43. 12월 29일
○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의 본관을 면직하고, 비서감 승 심주택(沈周澤), 성균관 교수 박제원(朴齊元)을 의원면직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2A_04A_00040_2006_206_XML
관서사령부의 사령관 등을 지냈던 민영철이 면직되었다. 아래의 상소에서도 나타나듯이 민영철은 고위 관료로 해외에 망명하였다.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2A_04A_00040_2006_206_XML
44. 12월 31일
○ 봉상사 전사(奉常司典事) 김병도(金秉燾)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은 본래 변변찮은 몸으로 견문이 얕고 식견이 비루하여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니, 어떻게 감히 인품(人品)을 논평하고 물의(物議)를 살펴 아는 자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코 있을 수 없는 구구한 어리석은 충정이 있습니다. 밝은 조정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에는 오로지 재덕(才德)을 요구하고 출처(出處)를 중시할 뿐이니, 이는 세상 사람을 격려하고 노둔한 사람을 분발시키는 것으로 세도(世道)의 성쇠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행하고 소인은 이를 바라는데, 어찌 전연 염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과 같은 자가 있단 말입니까. 저 사람으로 말하면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사람으로 두터이 성상의 은혜를 받아 두루 내외(內外)의 벼슬을 지냈으므로 세상에서 중신(重臣)으로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 외침(外侵)을 막아 황실을 지키고 국사의 고락을 함께하는 의리는 생각지 않고, 한갓 편리함을 취하고 제 살길만 도모하는 계책을 일삼아 몰래 국경 밖을 넘어가 살림을 차리고 집을 꾸렸습니다. 고관(高官)의 신분으로 망명(亡命)한 듯한 점이 있으니, 법의(法義)로 헤아려 볼 때 마땅히 어떤 죄를 받아야겠습니까. 이에 감히 대략이나마 짧은 소장(疏章)을 진달하여 외람되이 숭엄하신 성상을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시어 해당 육군 부장 민영철에 대해 우선 본관을 면직한 다음, 속히 처분을 내려 엄중한 형전을 시행하심으로써 분수와 의리를 바르게 하고 어긋난 행동을 징계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너무도 다행이겠습니다. ……”
하였는데, 비지에,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만약 말한 바와 같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2A_06A_00100_2006_206_XML
“삼가 아룁니다. 신은 본래 변변찮은 몸으로 견문이 얕고 식견이 비루하여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니, 어떻게 감히 인품(人品)을 논평하고 물의(物議)를 살펴 아는 자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코 있을 수 없는 구구한 어리석은 충정이 있습니다. 밝은 조정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에는 오로지 재덕(才德)을 요구하고 출처(出處)를 중시할 뿐이니, 이는 세상 사람을 격려하고 노둔한 사람을 분발시키는 것으로 세도(世道)의 성쇠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행하고 소인은 이를 바라는데, 어찌 전연 염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육군 부장(陸軍副將) 민영철(閔泳喆)과 같은 자가 있단 말입니까. 저 사람으로 말하면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사람으로 두터이 성상의 은혜를 받아 두루 내외(內外)의 벼슬을 지냈으므로 세상에서 중신(重臣)으로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 외침(外侵)을 막아 황실을 지키고 국사의 고락을 함께하는 의리는 생각지 않고, 한갓 편리함을 취하고 제 살길만 도모하는 계책을 일삼아 몰래 국경 밖을 넘어가 살림을 차리고 집을 꾸렸습니다. 고관(高官)의 신분으로 망명(亡命)한 듯한 점이 있으니, 법의(法義)로 헤아려 볼 때 마땅히 어떤 죄를 받아야겠습니까. 이에 감히 대략이나마 짧은 소장(疏章)을 진달하여 외람되이 숭엄하신 성상을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시어 해당 육군 부장 민영철에 대해 우선 본관을 면직한 다음, 속히 처분을 내려 엄중한 형전을 시행하심으로써 분수와 의리를 바르게 하고 어긋난 행동을 징계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너무도 다행이겠습니다. ……”
하였는데, 비지에,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만약 말한 바와 같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였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42_12A_06A_00100_2006_206_XML
[1] 군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