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39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주제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2. 첫번째 유퀴저 : 임택
- 당나귀 호택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한 한국판 돈키호테 임택 자기님은 흥미진진한 여행기를 소개한다.
- 호태와 친하게 된 계기와 같이 걷게 된 배경, 호택이 만의 개인기(일명, 개당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호택와의 이별했을 때는 임택 자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는데, 정작 호택은 뒤도 안돌아보고 주인과 함께 길을 갔다고 한다. 순례자 이후 호택이는 마을에서 영웅 대접 받으면서 잘 지낸다고 한다.
- 산티아고 데 칠레에서 길 잘못 들었을 때 현지인들이 알려준다고 한다. 또한 산티아고 길을 걸어갔을 때 사람마다 느끼는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어떤 청년의 일화를 소개했다.
- 여행 작가 이전 대기업에 취업하다가 사업했다고 한다.[1] 이후 50세 때 여행 작가가 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고 열심히 일하다가 여행작가로 전업했다.
- 가족들의 반응은 처음엔 말렸으나, 워낙 대박나서 아내도 흔쾌히 허락했고 딸도 대기업에 취업 성공했다고 한다.
- 거의 폐차 직전의 마을 버스를 수리한 후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또한 중간에 딸의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잠시 들렸고 다시 떠났다고 한다.
- 편한 나라는 남미로 친절했다고 하며, 어려웠던 나라는 스위스로 꼽았는데, 스위스에서 불법 운전으로 재판당할 썰을 이야기했다.[2]
- 기억에 남는 장소는 안데스 산맥에 있는 융가스 로드에 꼽았다.
3. 두번째 유퀴저 : 황선우
- 한국 수영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20살의 수영 괴물" 황선우 자기는 아시아 선수로는 65년 만에 첫 올림픽 100m 결승 진출, 2021 쇼트 코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200m 금메달 획득 등 나가는 대회마다 한국 수영 신기록을 갈아치웠다.[3] 이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하게 이야기를 했다.
- 유퀴즈가 자기의 예능 첫 출연이라서 상당히 긴장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예능 출연 안 한 이유가 메달이 없어 예능에 출연 안 했다.
- 박태환 선수 이후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게 되었는데, 그 소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 첫 올림픽에 대한 소감과 떨린 적이 있는지 대해 이야기했다.
- 수영하게 된 계기와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 3때 자신만에 터득한 영법을 익혔고 황선우 자기는 오른쪽에 힘을 더 주는 엇박 영법을 한다고 한다.
- 선수촌 훈련에 힘들었다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했다.
- 나갈때마다 신기록을 세운다고 하며, 이에 대한 이야기했다.
- 20살이 되었지만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3cm만 더 커서 190cm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 대학 대신 실업팀에 입단한 계기와 앞으로의 목표와 올해 스무살이 된 자기의 버킷 리스트를 이야기했다.
4. 세번째 유퀴저 : 이말년
- 2022년 새해 현상금 천만 원 금연 레이스에 뛰어든 2세대 웹툰 작가 이말년 자기님와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말년 자기는 이말년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 과거에 비해 지금은 예능을 잘 안한 이유와 유퀴즈에 출연한 이유에 이야기했다.
- 금연 선언을 하게 된 계기와 현상금을 무려 천만원을 걸게 된 이유, 1월 1일이 아닌 1월 6일부터 금연을 시작한 이유[4]에 대해 공개했다. 참고로 최대 금연했던 시기가 11개월이었고 지금은 2주나 되었다고 한다. 11개월 만에 실패했음에도 금연 도전이 쉽다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 딸이 전 웹툰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이렇게 불리게 된 이유와 다시 작가로서 복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 유튜브 침착맨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주 컨텐츠, 유튜버로서 하루 일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중 깻잎 사이에 둔 한 치의 물러섬 없었던 ‘침퀴토론’에 대해 이야기했고, 즉석해서 토론을 했다.
- 이말년 자기가 지인의 결혼식 때 감동적인 축사를 읆었다고 하며, 방송에서 영상도 공개했다. 이후 집에서 아내와 벌어진 후일담을 공개했다.
5. 마지막 유퀴저 : 두봉
- 26살에 한국에 와 70년을 낮은 이들의 아버지로 헌신한 두봉[5] 자기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 경상남도 의성군 봉양면에서 두봉 성당을 열였다.[6] 두봉 자기는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고 밝혀[7] 큰 자기와 작은 자기를 쑥쓰럽게 했다. 거기에 방송 내내 유쾌한 모습을 보여 출연진들을 당황하게 하기까지 했다.
- 26살 때 한국에 온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6.25 전쟁 당시 본국에서 군 생활을 했던 그는 절친이 한국에서 전사를 한 사실을 듣게 되었고[8], 휴전 직전에 발령을 받았고 6.25 전쟁 직후 당시 한국의 도움을 절실했던 상황을 기쁜 마음으로 방문했다고 한다. 이후 2달 반 동안 화물선을 타고,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고 한다.
- 당시 한국에 대한 상황과 사람들의 인상과 한국의 식습관과 언어를 이야기했다. 또한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 안동에 상지전문대학(現 가톨릭상지대학교), 상주 함창에 상지여자중학교, 상지여자고등학교와 영주 다미안의원 등을 설립했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 농민을 돕다가 한국 추방 위기에 처한 뒷이야기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자세한 내역은 두봉 자기 문서 참조.
- 19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나폴레옹 훈장을 수훈받았다고 한다.
- 사제가 된 이유는 가족들을 따라서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타국으로 떠나보낸 아들에게 30년간 매주 편지를 쓴 아버지의 편지 중 하나를 가져와 읽어줬다.[9]
[1] 당시 소금등과 보석비누를 팔았다고 한다. 보석비누를 팔 때 망했는데, 소금등으로 많이 벌었다.[2] 이후 한국에서 5일 만에 대형버스를 땄다고 한다.[3] "황선우를 이기는 건 황선우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4] 남아있는 담배를 다 피우기 위해서라고...[5] 杜峰,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를 뜻한다.[6] 영상 초반에 소개할 때 '의성에서 70년째 사셨다.'라는 식으로 나가긴 했지만, 실제로는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천주교 안동교구장을 지냈으며, 이후 고양시 행주에서 14년동안 피정활동을 하다가 2004년 다시 돌아와 의성 문화마을(봉양면 도원리)에서 생활하고 계신다.[7] 출연 당시 나이가 94세로 지금까지 나온 자기 중에서 최고령에 속한다.[8] 6.25 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바병하기 위해 지원자를 모집할 때, 본인도 가고 싶었지만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지원을 안 했다고 한다.[9] 두봉 자기가 촬영 현장에 가져온 편지는 아버지가 1986년 9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인 같은 해 5월 9일에 보낸 마지막 편지라고 한다. 한편, 방송 말미에 두봉 자기의 못다한 이야기를 보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