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DEPRECATED] top1 파라미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문서명1 파라미터를 사용해 주세요.
#!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유 퀴즈 온 더 블럭|유 퀴즈 온 더 블럭]]
1. 개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역대 에피소드 | ||||
282회 '신이 내게 주신 것' 특집 | → | 283회 '꿈은 이루어진다' 특집 | → | 284회 '상상이 현실로' 특집 |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283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2. 첫번째 유퀴저: 로스 킹
- 45년 전 운명처럼 한국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더니 미국에 세계 유일 한국어 마을까지 세운 캐나다 교수님
- 로스킹 자기님은 22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1]로 미국에 세계 유일 한국어 마을을 세운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다. 자기님은 45년 전 운명처럼 한국어를 접했고 32년째 캐나다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유퀴즈에선 한국어를 만나게 된 스토리, 세계 유일 한국인 마을 ‘숲속의 호수’에 대한 에피소드는 물론 대학교에서 운명처럼 만난 한국인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 한국에 방문하게 된 이유[2], 45년 전 운명처럼 한국어를 만나 사랑에 빠진 스토리[3],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한 스토리[4], 하버드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의 운명적 러브 스토리와 아내에게 반한 의외의 설렘 포인트 등 이야기했다.
- UBC 한국어과 학생들은 연간 250~300명이고 지금까지 배출한 한국학 박사들은 총 6명이다.[5] 유퀴즈엔 1호 제자인 다프나 주르(한국 이름 주다희)와 함께 나왔다. 자기님은 한국 이름 유래, 주다희 자기님의 러브 스토리 등을 이야기 했다.
- 세계 유일 한국인 마을 ‘숲속의 호수’에 대한 이야기[6], 자기님이 생각하는 한국어의 매력[7], 언어를 빠르게 배우는 비법, 자기님에게 있어서 한국어란? 등 이야기했다.
3. 두번째 유퀴저: 주혜연&이미지
- '수학, 결국엔 된다!' 되게 만드는 수학 일타 강사& '여러분과 합격의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영어 일타 강사
- 누적 수강생 수 279만 명에 빛나는 '수학 최초 여자 일타 강사'이자 1년 차 일타강사인 이미지 자기님과 10년째 EBS 부동의 1위를 자랑하는 영어 일타 강사인 주혜연 자기님이 유퀴즈에 방문했다. 두 자기님은 강사된 이유, 1등급이 되는 공부 비법, 찍기 비법 등 일타 강사가 들려주는 다양한 꿀팁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 두 자기님은 EBS에서 활동 시절 부터 지금꺄지 서로 지켜봤다고 하며 촬영을 잘하고 싶어서 전날에 시뮬레이션 연습을 했다고 한다.
- 이미지 자기님이 일타 강사가 된 소감, 대학 진학[8]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 주혜연 자기님이 EBS 강의를 놓지 못한 이유 등 이야기했다.
- 일상 속 영어와 수학의 꿀팁[9], 잘 찍기 비법, 학생을 집중시키는 비법, 이미지 자기님이 독설을 날린 이유, 두 자기님의 하루 일과, 새 마음을 다지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알파벳도 모르던 학생을 1등급으로 만든 공부법 등 이야기했다.
4. 세번째 유퀴저: 김종일&원덕희
- 아이들이 가자고 조르는 유일한 병원! 장난감 병원의 제페토 할아버지!
- 장난감 병원 이사장 김종일 자기님과 9년차 장난감 박사 원덕희 자기님은 유퀴즈에 방문했다. 김종일 자기님은 인생 3모작을 위해 장난감 병원 운영을 했으며, 도합 360년을 자랑하는 박사 12명과 함께 15년간 무보수로 무려 10만 개의 장난감 치료를 도맡았다고 한다. 유퀴즈에선 아이들에게 동심을 선물하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제페토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현장에는 다양한 장난감이 진열되었고 두 자기님은 추억에 빠졌다. 또한, 두 자기님이 실제로 근무하는 장난감 병원의 하루 일과를 VCR을 통해 담아냈다.
- 장난감 병원을 설립하게 된 계기, 두 자기님이 은퇴하기 전의 직업[10], 도합 360년을 자랑하는 박사 12명의 심상치 않은 이력[11],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이름의 뜻[12], 장난감 박사 학위 수여의 조건[13], 입사 조건[14] 등 이야기했다.
- 장난감 병원의 진료 과목[15], 장난감 병원의 입원 절차[16], 만 72세인데 9년 차 막내인 원덕희 박사의 솔직한 속내, 1년에 고친 장난감 갯수[17], 고치면서 힘든 점, 모빌을 우선적으로 수리하는 이유 등 이야기했다.
- 원덕희 자기님이 방광암 수술을 받은 후 바로 병원에 간 사연, 어느덧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병원의 일상[18], 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연, 30년 넘게 일하다가 은퇴했을 때 심경, 장난감이 우리들의 인생 같다고 생각한 이유 등 이야기했다.
5. 네번째 유퀴저: 차준환
- 짜릿한 대역전극으로 은반을 금빛으로 물들인 대한민국 남자 피겨 최초 금메달리스트!
- 대한민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 최초 금메달리스트[19]가 된 차준환 자기님은 금메달을 걸고 144회에 출연 이후 3년 만에 ‘유 퀴즈’에 금의환향했다. 자기님은 선수 생활 15년, 대표팀 생활 11년으로 막내와 10살 차이가 난다고 한다. “빙상계 얼굴 천재”라는 큰 자기님의 극찬 속 차준환 자기님은 지난 3년 동안 모든 걸 쏟아낸 동계 아시안 게임 경기 비하인드에 대해 들려줬다.
- 다시 만난 자기님은 꽃 화환을 받았으며, 남자 피겨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얻은 소감과 유퀴즈에 다시한 번 출연한 소감을 건냈다.
- 지난 3년 동안의 신체 변화[20], 발목 부상을 극복한 투혼 스토리[21], 쇼트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 점프에서의 실수 때문에 2위를 한 스토리, 카기야마 유마 선수와 접전을 겨룬 프리 경기 비하인드 등 이야기했다.
- 자기님의 하루 일과, 선수들이 평소 시간을 보내는 법, 피겨 천재라고 불린 것에 대한 자기님의 생각[22], 지금 자기님이 휴식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23] 향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대한 목표, 자기님을 응원한 팬들에 대한 영상 메세지 등을 이야기했다.
6. 기타
- '꿈은 이루어진다' 특집.
[1] 그 중 능통하게 하는 언어는 8개국 수준이다.[2] 놀러 나왔지만 핑계을 대자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고서들을 연람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3] 80년대 당시엔 한국어 황무지라서 독학했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중국어를 배웠는데 옆의 아가씨가 쓰는 글자가 예뻐서 봤는데 그게 한국어였다.[4] 1980년대 초반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당시엔 지하철 2호선 공사로 인해 서울 시내 교통이 너무 복잡했지만 거기서 1년간 지내며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한국어가 늘게 된 이유가 아주머니들의 수다였다고 한다.[5] 이중 1호 제자는 스탠버드 교수, 2호 제자들은 하버드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6] 1990년 초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세운 이례 26년 동안 운영되고 있다. 2~4주간 합숙하며 청소년들에게 한국어, 한국 문화를 가리키며 한국말만 써야 한다고 한다. 한국어 마을 참가자의 60% 이상이 비한국계라고 한다. 또한 2014년 부터 주다희 자기님이 2대 촌장이라고 한다.[7] 독자적인 문자, 풍부한 의성어, 의태어라고 꼽는다.[8] 이미지 자기님은 카이스트 조기 졸업했으며, 주혜연 자기님이 이대 사범대 졸업했다고 한다.[9] 이미지 자기님은 두 자릿수 곱셈, 사다리타기 필승법을 가르쳐줬고 주혜연 자기님은 해외 여행 시 메뉴 주문 발음 법에 대해 가르쳐줬다.[10] 김종일 자기님은 35년 간 인하공대 금속공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원덕희 자기님은 실업계 고등학교 전기과 선생님으로 36년 간 학생을 가르쳤다고 한다.[11] 조선공학과 교수, TV 제조업, 전자업체 연구원 등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12] Kid(어린이) and Silver(노인)의 합성어로 장난감으로 아이들과 노인이 어우러진다는 뜻을 가졌다.[13] 6개월 이상 트레이닝을 거쳐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14] 따로 없으며 마음만 먹으면 노하우를 무한으로 제공한다고 한다.[15] 파손&접합은 외과, 물에 빠트려 내부 회로가 손상된 바람에 수리가 필요하면 내과로 구성된다.[16] 진료비는 무료지만 택배비는 본인이 부담한다고 한다. 또한 택배를 보낼때 입원 치료 의뢰서를 보낸다고 한다.[17] 택배 방문까지 합쳐서 1년에 5천개를 받는데, 1박스 당 보통 장난감 2개라 1년에 만개 정도 수리한다고 한다.[18] 김종일 자기님은 그런 아이들을 위해 사탕, 초콜릿 선물을 준다고 한다.[19] 1986년 동계 아시안 게임이 개최된 후 39년 만에 처음이다.[20] 과거에는 에너지바를 조금씩 먹었지만 지금은 식단 관리를 하기 위해 밥도 먹고 있으며, 다른 선수에 비해 큰 키의 문제점을 보강하기 위해 근육이나 체중 감량을 했다고 한다.[21] 2024-25 시즌 그랑프리 5차 대회 직전엔 센 진통제를 먹었음에도 아파서 기권했다고 한다. 이후 2주 동안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으며 그 기간 동안 몸을 만들었는데, 스케이트를 오랫동안 타지 않은 것은 처음 시작한 이후로 15년 만이다. 부상에서 재정비한 이후에는 2번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우승했다.[22] 자기님은 천재는 모르겠고 꾸준히 열심히 한다고 한다.[23] 3년 전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