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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2010 · 2010-11 · 2011-12 · 2012-13 |
| 바이어 04 레버쿠젠 |
2013-14 · 2014-15 · 2015-16 |
| 토트넘 홋스퍼 FC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 로스앤젤레스 FC |
2025 |
국가대표 | | 대한민국 A (2010- ) |
2011 (AC11) · 2012 · 2013 · 2014 (WC14) · 2015 (AC15) · 2016 · 2017 · 2018 (WC18) · 2019 (AC19) · 2020 · 2021 · 2022 (WC22) · 2023 · 2024 (AC23) · 2025 |
| 대한민국 U-23 (2016-2018) |
O16 · AG18 |
| 대한민국 U-17 (2008-2009) |
AC08 · WC09 |
평가 | <colcolor=#000,#fff>플레이 스타일 · 관련 언사 |
기록 | 대회 기록 · 개인 수상 · 통산 기록 · 개인 기록 (아시아 · 토트넘) |
미디어 | 활동 내역 ·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 손세이셔널 - 그를 만든 시간 · 사진 |
기타 | 별명 · 악성 팬덤 · 악성 안티 · 논란 및 사건 사고 · 여담 · 손케 듀오 · DESK · NOS7 · 손김이황 · 손차박 |
| |||||||
<colbgcolor=#000,#000><colcolor=#c39e6d,#c39e6d> 로스앤젤레스 FC No. 7 | |||||||
손흥민 孫興慜|Son Heung-min[1] | |||||||
출생 | 1992년 7월 8일 ([age(1992-07-08)]세) | ||||||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 (現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후평동) | |||||||
국적 |
| ||||||
본관 | 밀양 손씨 (密陽 孫氏) | ||||||
신체 | 키 183cm / 체중 78kg / 255-260mm[2] | ||||||
포지션 | 윙어, 스트라이커 | ||||||
주발 | 오른발 (양발)[3] | ||||||
등번호 | 대한민국 대표팀 | 7 | |||||
로스앤젤레스 FC | |||||||
소속 | <colbgcolor=#000,#000><colcolor=#c39e6d,#c39e6d> 유스 | FC 서울 (2008) 함부르크 SV (2008~2010) | |||||
선수 | 함부르크 SV (2010~2013)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3~2015) 토트넘 홋스퍼 FC (2015~2025) 로스앤젤레스 FC (2025~ ) | ||||||
국가대표 | 135경기 52골[4] (대한민국 / 2010~ ) | ||||||
통산 득점 | 275골[5]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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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버지 손웅정 어머니 길은자 | ||||||
<colbgcolor=#fff,#1c1d1f>형 손흥윤 | |||||||
이모 길성미[11] | |||||||
학력 | 가산초등학교 (전학) 부안초등학교 (졸업) 후평중학교 (전학) 육민관중학교 (전학)[12] 동북중학교 (졸업)[13] 동북고등학교 (중퇴)[14] | ||||||
응원가 | 《Nice One Sonny, Nice One Son》[15] 이전 응원가
| ||||||
종교 | 무종교[17] | ||||||
병역 | 예술체육요원[18]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축구 부문) | ||||||
MBTI | ESFJ[19] | ||||||
후원사 | 아디다스(F50 TAEGEUK7)[20] | ||||||
에이전트 | Creative Artists Agency | ||||||
손앤풋볼리미티드[21] | |||||||
개인 브랜드 | NOS7, INFEELD[22] | ||||||
서명 |
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로스앤젤레스 FC 소속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윙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와 UCL에서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 득점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토트넘 홋스퍼 FC 역사상 최다 도움자이다. 발롱도르 후보[23]와 FIFPro 월드 XI 후보[24]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득점왕[25]에 올랐고, FA컵에서도 득점왕[26]을 차지하였다. 또한, 아시아 선수 최초로 PFA 올해의 팀[27]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 리그 통산 100호 골과 개인 통산 200호 골을 달성하였고, 한국인 최초로 푸스카스상을 수상했다. 또한, PL에서 최다 콤비네이션 득점[28]을 기록했고, UEFA 주관 클럽 대항전에서 주장으로서 UEL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 일생
2009년 U-17 국가대표팀을 거친 후, 2010년 함부르크 SV와 4년 계약과 함께 역대 최고 수준의 초특급 유망주라는 수식어와 함께 해외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10월 30일, 18세에 치른 데뷔전에서 데뷔골[29]을 장식하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후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고의 데뷔, FIFA 선정 세계 최고 10대 유망주 23인 등에 뽑히고, 분데스리가 명문 구단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30]하면서 이적하는 등,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차세대 태극전사의 에이스로서 전 세계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그리고 2015년 8월 28일, 이적료 3,000만 유로 / 2,200만 파운드(한화 약 408억 원)를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와 5년 계약을 확정하면서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 중에서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31] 또한 트랜스퍼마크트 기준으로 아시아 역대 축구 선수 선수 가치 1위를 기록했고, 9000만 유로까지 선수 가치가 높은 선수였다.[32]
이처럼 엄청난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뽑혀 18세에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으며[33], 이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3골을 넣는 등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우승까지 이끌었고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또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멕시코전과 독일전에 연속 골[34]을 넣으며 두 대회 만에 한국인 월드컵 공동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35]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이 활약으로 A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넣은 골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부흥기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고 KFA 올해의 선수 6회 수상으로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2022년 6월 대한민국 역대 14번째 선수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축구 역대 3번째이자 원정 2번째로 16강이라는 대기록을 이끌었다.
개인 기록으로 봐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36] 발롱도르 후보[37], FIFPro 월드 XI 55인 후보[38], PFA 올해의 팀 선정[39],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4회 수상[40], 아시아인 최초 유럽 빅리그 100골 돌파,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국적 선수 최다 골 및 최다 어시스트 등을 달성했다.
또한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41], 프리미어 리그에서 1경기 4골을 포함한 해트트릭 4회, 5경기 연속 득점, 70M 드리블 골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골과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하는 등 전례가 없는 업적과 장면들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22-23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면서 유럽 빅리그[42]에서 10시즌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토트넘 통산 100골을 돌파한 최초의 비영국인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21-2022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페널티킥을 제외하고 23골을 넣으면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 축구 역사에서 최초, 최고, 최다의 기록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43]
이러한 손흥민이 보여주는 득점력의 비결은 순도가 높은 골 결정력인데, 실제로 2016/17 시즌부터 2021년 8월 16일까지 집계한 통계에서, '5대 리그에서 골 결정력이 가장 좋은 선수'라는 결과가 나왔다.[44]
그로 인해, 세계적인 축구게임 FIFA 22에서 '아시아 역대 피파 오버롤 1위'를 달성했다. 손흥민은 FIFA 21에서 이미 87이라는 오버롤을 받으며, 아시아 역대 피파 오버롤 1위를 달성한 적이 있다. 2021년 9월 14일에 공개된 FIFA 22 오버롤에서 작년에 받은 87에서 더 상승한 '89'라는 압도적인 오버롤을 받았으며, 결국 손흥민은 'FIFA 22 오버롤 TOP22'에 선정되었다.[45] 따라서, 피파 오버롤로 봤을 때 호날두를 원톱 자원으로 분류한다면, 네이마르 주니오르에 이어 왼쪽 윙에서 2번째로 높은 오버롤을 기록했다.
2010년대 중반~2020년대 한국 축구를 책임지고 있으며 세계 축구의 열기에 힘입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셀럽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 하였다.[46]
2.1. 프로 데뷔 이전
강원도 춘천시에서 태어났다.[47] 손흥민이 어린 나이부터 현재까지 이러한 엄청난 위업을 보여줄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핵심은 그의 아버지 손웅정의 경험과 그에 따른 학습 훈련에 있다. 현재 Son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웅정은 젊어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나[48] 1990년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게 되었고 그 후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을 돌아다니면서 각국의 유소년 축구를 접했다.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손웅정은 춘천 FC를 창설했고, 승리에 목숨을 거는 축구가 아닌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자기 자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히, 차남 손흥민은 축구 선수 지망생들이 다니는 축구 교실을 안 가고 아버지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개인기와 탄탄한 기본기를 차근차근 익혔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혹독한 훈련도 마다치 않았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패스나 여타 다른 기술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였지만 선수 한 명 재낄 발기술이나 개인기가 전혀 없었다. 나 자신에게 굉장히 부끄럽고 후회가 됐다. 그렇기에 흥민이에게는 기본적으로 공을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본기만 가르쳤다."
손웅정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미국과 같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이어지게 되는 진학 시스템이다. 이로 인해, 이 시스템에서 좋은 커리어를 지니려고 한다면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 같은 우승 타이틀을 손에 넣는 수밖에 없다.[49] 하지만, 손흥민의 경우는 이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50]손웅정
다만, 열린 교육에 대한 불필요한 환상은 금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손웅정은 축구 강국들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충분히 벤치마킹하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널리 보급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이런 즐기는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51]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아버지 손웅정의 엄청난 희생과 열정이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손흥민을 키워낸 열린 교육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버지 손웅정은 모든 힘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축구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스포츠맨으로서 보여주는 올바른 자세와 인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참된 교육을 아끼지 않았다.[52]
이러한 열린 교육 끝에, 결국 손흥민은 원주 육민관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곧이어 재능이 점차 만개하기 시작했다. 축구로 유명한 동북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약 3개월 남짓만 뛰고 중퇴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 SV 유스팀에 1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와 2007~2009년 이광종호의 일원으로 U-17 월드컵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동북고 학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한축구협회의 청소년 대표팀 명단을 보면 소속란에 한동안은 함부르크로 기재되다가 U-17 월드컵 당시에는 동북고등학교로 기재가 되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에 고등부 선수 등록은 안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K리그 데이터 포탈에 손흥민이 서울 유스로서 등록되었던 점, 2008 SBS U-18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 서울 소속으로 등번호 26번을 달며 7경기에 나와 도움 1개를 기록한 것이 확인되는 점, 그리고 손흥민의 이적 시 동북고등학교가 연대 기여금을 수령하는 점으로 보아 동북고등학교 축구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팩트이다. 손흥민 모교도 함박웃음, 연대 기여금 받는다
덧붙여 동북고 축구부와 FC 서울간의 유스 협약을 맺은 첫해였고 동북고는 FC 서울과 유스 협약을 맺기 전부터 축구 명문고였기 때문에 손흥민이 FC 서울 유스 때문에 진학한 게 아니라 원래 축구 명문인 동북고를 보고 진학한 것이라고 독심술을 사용하여 손흥민의 생각을 추정해가면서, FC 서울과 손흥민의 관계를 애써 부정하려고 하는 여론도 있지만 손흥민 본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C 서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기면서 종결되었다. 손흥민 10대1 인터뷰①"하트브레이커 춤? 내가 워낙 몸치라"
17세 대표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가 독일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다. 흥민아. 네가 만약 K리그 클래식에서 뛰게 된다면 혹시 어떤 팀에서 뛰고 싶니. 이유도 알고 싶다. (윤일록·21·서울)
▶어려운 질문이네.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서울일 것 같아. 동북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기도 해. 중학교 때까지는 혼자 하는 축구였는데 고등학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어. 좋은 친구들도 많았어. FC 서울은 내게 큰 팀이었다. FC 서울에서 뛰었다면 너와 함께 볼 차는 기회도 있었을 텐데.
손흥민이 FC 서울의 유스였다는 또 다른 증거는 이 인터뷰에 담겨 있다. #▶어려운 질문이네.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서울일 것 같아. 동북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기도 해. 중학교 때까지는 혼자 하는 축구였는데 고등학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어. 좋은 친구들도 많았어. FC 서울은 내게 큰 팀이었다. FC 서울에서 뛰었다면 너와 함께 볼 차는 기회도 있었을 텐데.
이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FC 서울의 홈경기에서 볼보이로 활동하며 이청용의 활약상을 봤다고 말했다.[53] 당시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FC 서울의 볼보이는 FC 서울의 유스 선수들만이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손흥민이 FC 서울의 유스로 활동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나의 팀 동료 손흥민, 18살에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 그를 주목해야 된다."
뤼트 판니스텔로이
함부르크에 입단한 뒤, 프로 무대 데뷔 초기의 프리시즌 데뷔 이전부터 소속팀 감독과 스태프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는데, 전설적인 축구선수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손흥민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줘서 눈길을 끌었다. 1군의 쟁쟁한 선수들을 보고 긴장하여 얼어있던 손흥민을 계속 케어해주며 손흥민이 1군 무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에 나를 지도해 줄 선배들이 없어서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도움을 손흥민에게 전해주고 싶다."라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는 듯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2024-25 시즌, 손흥민이 프리미어 리그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주장으로까지 성장했을 때 레스터 시티 FC 감독으로 부임한 판니스텔로이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뤼트 판니스텔로이
3.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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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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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5.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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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6. 평가
프로 데뷔 후 15년 동안 발롱도르 후보 2회[54], 함부르크 올타임 베스트 라인업,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1회, 프리미어 리그 리그 베스트 1회, 토트넘 홋스퍼 FC 올해의 선수상 3회,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 4회, 토트넘 홋스퍼 FC 역대 득점 5위, 도움 1위 등의 기록을 세운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물론 손흥민의 커리어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위와 같은 개인 커리어를 이루어낸 시즌이 존재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본인의 기량을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유지할 정도로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 또한 그를 포함한 많은 부분에서 후배 선수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는 선수라는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린 캡틴의 반열에 합류한 토트넘의 공인 레전드[55] |
Sonny joins an elite group of Spurs captains who have lifted a European trophy 🏆 A certified Tottenham legend 🌟 (소니는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린 토트넘 주장들의 엘리트 대열에 합류합니다. 🏆 토트넘 공식 SNS # |
이는 클럽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쳐 간 모든 클럽[56]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줌에 따라 자연스럽게 팀 내 입지를 크게 다져갔으며, 특히 토트넘 홋스퍼 FC에서는 팀 전력의 핵심 선수이자 팀 내 중추적인 활약을 10년 동안 해낸 끝에 주장으로까지 임명되며 팀 내 입지의 정점을 찍었고, 동시에 구단 차원에서도 손흥민에게 큰 신뢰를 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손흥민이 10시즌간 토트넘의 일원으로서 만들어낸 공격포인트 기록은 다음과 같다.이외에도 2010년대 중후반 토트넘의 부흥기를 상징하는 공격라인인 DESK 라인의 일원으로, 팀 역사상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최고 순위를 기록하는데 팀의 핵심으로서 기여하며 활약했고, 특히 해리 케인과는 영혼의 콤비를 형성하여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다 합작골이라는 기록을 세운 듀오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3-24 시즌부터 토트넘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또한 국가대표에선 벤투호 출범 이후 기성용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다.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은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표팀에서 15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핵심 전력으로 기용됐으며 동시에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134경기 51골로 활약 중인데, 이는 대표팀 역대 통산 출전 2위, 통산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개인 활약상에 비해 커리어에 2018 아시안 게임 우승만 있었고, 메이저 대회 트로피가 없었다는 아쉬움도 존재했지만 2024-25 시즌 마침내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여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그 아쉬움을 털어내게 되었다.
7. 기록
7.1. 대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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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토트넘 홋스퍼 FC (2015~2025)
- UEFA 유로파 리그: 2024-25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8
7.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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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7.3. 수훈
7.4. 통산 기록
7.4.1. 클럽
- 2024년 9월 1일 기준.
<rowcolor=#0054a6,#0054a6> 시즌 | 구단 | 리그 | DFB 포칼 | - | 대륙 대항전 | 총합 | ||||||||||
<rowcolor=#fff,#fff>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0-11 | 함부르크 | 13 | 3 | 0 | 1 | 0 | 0 | - | - | - | - | - | - | 14 | 3 | 0 |
11-12 | 27 | 5 | 1 | 3 | 0 | 0 | - | - | - | - | - | - | 30 | 5 | 1 | |
12-13 | 33 | 12 | 2 | 1 | 0 | 0 | - | - | - | - | - | - | 34 | 12 | 2 | |
3시즌 | 합계 | 73 | 20 | 3 | 5 | 0 | 0 | - | - | - | - | - | - | 78 | 20 | 3 |
<rowcolor=#fff,#fff> 시즌 | 구단 | 리그 | DFB 포칼 | - | 대륙 대항전 | 총합 | ||||||||||
<rowcolor=#fff,#fff>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3-14[61] | 레버쿠젠 | 31 | 10 | 4 | 4 | 2 | 1 | - | - | - | 8 | 0 | 2 | 43 | 12 | 7 |
14-15 | 30 | 11 | 2 | 2 | 1 | 0 | - | - | - | 10[62] | 5[63] | 1[64] | 42 | 17 | 3 | |
15-16 | 1 | 0 | 0 | - | - | - | - | - | - | 1[65] | 0 | 0 | 2 | 0 | 0 | |
3시즌 | 합계 | 62 | 21 | 6 | 6 | 3 | 1 | - | - | - | 19 | 5 | 3 | 87 | 29 | 10 |
<rowcolor=#0b1c56,#0b1c56> 시즌 | 구단 | 리그 | FA컵 | EFL컵 | 대륙 대항전 | 총합 | ||||||||||
<rowcolor=#fff,#fff>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5-16[66] | 토트넘 | 28 | 4 | 1 | 4 | 1 | 1 | 1 | 0 | 0 | 7[67] | 3 | 4 | 40 | 8 | 6 |
16-17 | 34 | 14 | 6 | 5 | 6[68] | 1 | - | - | - | 8[69] | 1[70] | 0 | 47 | 21 | 7 | |
17-18 | 37 | 12 | 6 | 7 | 2 | 3 | 2 | 0 | 2 | 7[71] | 4 | 0 | 53 | 18 | 11 | |
18-19 | 31 | 12 | 6 | 1 | 1 | 2 | 4 | 3 | 0 | 12[72] | 4 | 1 | 48 | 20 | 9 | |
19-20 | 30 | 11 | 10 | 4 | 2 | 0 | 1 | 0 | 0 | 6[73] | 5 | 2 | 41 | 18 | 12 | |
20-21 | 37 | 17 | 11 | 2 | 0 | 4 | 3 | 1 | 0 | 9[74] | 4[75] | 3[76] | 51 | 22 | 18 | |
21-22 | 35 | 23[77] | 9 | 2 | 0 | 0 | 4 | 0 | 0 | 4[78] | 1[79] | 1[80] | 45 | 24 | 10 | |
22-23 | 36 | 10 | 6 | 3 | 2 | 0 | - | - | - | 8[81] | 2 | 0 | 47 | 14 | 6 | |
23-24 | 35 | 17 | 10 | - | - | - | 1 | 0 | 0 | - | - | - | 36 | 17 | 10 | |
24-25 | 30 | 7 | 9 | 2 | 0 | 1 | 4 | 1 | 0 | 10 | 3 | 2 | 46 | 11 | 12 | |
10시즌 | 합계 | 333 | 127 | 71 | 30 | 14 | 12 | 20 | 5 | 2 | 71 | 27 | 13 | 454 | 173 | 101 |
<rowcolor=#c39e6d,#c39e6d> 시즌 | 구단 | 리그 | US 오픈컵 | - | 대륙 대항전 | 총합 | ||||||||||
<rowcolor=#000,#000>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2025 | 로스앤젤레스 | 4 | 1 | 1 | - | - | - | - | - | - | - | - | - | 4 | 1 | 1 |
통산 | 472 | 169 | 81 | 41 | 17 | 13 | 20 | 5 | 2 | 89 | 32 | 16 | 623 | 223[82] | 112 |
7.4.2. 국가대표
- 2025년 9월 7일 기준
연도
||<nopad> 경기
||<nopad> 득점
||대한민국 | ||
2010 | 1 | 0 |
2011 | 7 | 1 |
2012 | 3 | 0 |
2013 | 11 | 4 |
2014 | 12 | 2 |
2015 | 12 | 9 |
2016 | 6 | 1 |
2017 | 9 | 3 |
2018 | 13 | 3 |
2019 | 13 | 3 |
2020 | 2 | 0 |
2021 | 7 | 4 |
2022 | 12 | 5 |
2023 | 8 | 6 |
2024 | 15 | 10 |
2025 | 4 | 1 |
통산 | 135 | 52 |
7.5. 개인 기록(아시아)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최초 득점왕[84]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PFA 올해의 팀 수상[85]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리그 최다 득점: 23골[86]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리그 최다 득점: 127골[87]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리그 최다 도움: 71개[88]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리그 최다 공격포인트: 198개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리그 최다 출장: 333경기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4골[89]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리그 최다 도움: 10개[90]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리그 최다 공격포인트: 30P[91]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5경기 연속득점[92]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 달성[93]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8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94]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한 시즌 리그 10-10(득점-도움)[95]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두 시즌 연속 리그 10-10(득점-도움)[96]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최다 시즌 리그 10-10(득점-도움)[97]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통산 100 골 달성[98]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통산 50 도움 달성[99]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통산 공격포인트(100P)[100]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200경기 달성: 2021-22 시즌, 왓포드전[101]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최초, 최다 이달의 선수상 수상[102]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최초 올해의 골 수상
-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MOM
- 프리미어 리그, 분데스리가 아시아 최초 복수의 리그에서 모두 해트트릭 달성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최초 득점왕[103]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득점: 6골 [104]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득점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도움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 2016-17 시즌 8강, 밀월전 3골
- FA컵(잉글랜드) 아시아 선수 한 경기 최다 도움: 2020-21 시즌 16강, 에버튼전 3도움
- EFL컵 아시아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 2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한 경기 최다 공격포인트: 2골 1도움[105]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경기 출장: 55경기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득점: 19골[106]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 24P#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조별리그 최다 득점: 14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토너먼트 최다 득점: 5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16강전 최다 득점: 2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8강전 최다 득점: 3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득점: 5골[107]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 7P[108]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MOM[109]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이주의 팀[110]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이주의 선수 수상[111]
-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두 번째 결승전 출전[112]
- 분데스리가 아시아 선수 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3골
- 분데스리가 아시아 선수 리그 최연소 데뷔골: 18세
- 유럽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득점: 222골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도움: 111개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통산 공격포인트 300P 기록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득점: 24골[113]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도움: 17개[114]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 39P[115]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연속 시즌 10개 이상 공격포인트[116]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연속 시즌 20개 이상 공격포인트 [117]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11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118]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8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 [119]
-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한 시즌에 20골 이상 득점
- 유럽대항전에서 주장으로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최초의 아시아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 양쪽 결승전을 경험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
- 발롱도르 아시아 역대 최고 순위: 11위[120]
- 발롱도르 아시아 역대 최다 득표[121]
- 아시아 최초 FIFPro 월드 XI 후보: 2019 (FW 14위), 2020 (FW 15위)
- AFC 올해의 아시안 국제선수 최다 수상: 4회
- 베스트 풋볼러 인 아시아 최다 수상: 9회
- 아시아 선수 최초 모든 UEFA 대회[122] 출전
- 아시아 선수 최다 UEFA 대회 통산 본선 공격포인트[123]
- FIFA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초 단일 대회 2경기 연속 득점[124]
-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선수 최다 득점[125]
- FIFA 푸스카스상[126]
- AFC 아시안컵 역대 최연소 득점[127]
7.6. 개인 기록(토트넘 홋스퍼)
- 구단 역대 통산 도움 1위[128]
- 구단 역대 통산 득점 5위
- 구단 역대 프리미어 리그 도움 1위[129]
- 구단 역대 프리미어 리그 득점 2위[130]
- 구단 역사상 100골을 돌파한 최초의 비영국인 선수
- 구단 역사상 유럽 대항전 20골 이상을 득점한 역대 4번째 선수[131]
- 구단 역사상 8시즌 연속 프리미어 리그 두자릿수 득점을 한 역대 2번째 선수[132]
- 구단 역사상 원정 1경기에서 4골 이상을 기록한 역대 3번째 선수[133]
- 구단 역사상 원정 경기에서 2연속 1골 1도움을 기록한 역대 2번째 선수[134]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1군 경기 첫 득점자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프리미어 리그 첫 득점자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UEFA 챔피언스 리그 첫 득점자
-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토트넘 홋스퍼 FC 역사상 첫 8강 득점자
- 주제 무리뉴 감독 토트넘 홋스퍼 FC 데뷔전 첫 득점자
- 누누 산투 감독 토트넘 홋스퍼 FC 데뷔전 첫 득점자
- 안토니오 콘테 감독 토트넘 홋스퍼 FC 데뷔전 첫 득점자
- 토트넘 홋스퍼 FC 시즌권 구매자와 공식 서포터즈가 선정하는 올해의 시상식 모든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선수[135]
- 토트넘 홋스퍼 FC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한 2번째 선수[136]
- 토트넘 홋스퍼 FC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 수상한 2번째 선수[137]
- 프리미어 리그와 구단 역사상 4개의 다른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원정 경기에서 득점한 최초의 선수[138]
- 구단 역사상 홈 5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한 역대 2번째 선수[139]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공격포인트 100개를 돌파한 역대 7번째 선수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100골을 돌파한 역대 2번째 선수[140]
- 구단 역사상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개장 이후 홈 경기에서 50골을 넣은 2번째 선수[141]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원정 경기 50골을 돌파한 역대 2번째 선수[142]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도움 50개를 돌파한 역대 3번째 선수[143]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100-50(득점-도움)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144]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두 시즌 연속 리그 10-10(득점-도움)[145]과 세 시즌 리그 10-10[146]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50-50-50(홈 득점-원정 득점-도움)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147]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네 시즌 연속 해트트릭을 달성한 두번째 선수[148]
-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에 PK 없이 리그 20골을 넣은 두 번째 선수[149]
- 구단 역사상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역대 13번째 선수[150]
-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3번째 선수[151]
- 구단 역사상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최초의 비영국인 선수[152]
-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회 선정된 역대 2번째 선수[153]
- 구단 역사상 최초로 교체 투입 후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154]
-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155]
- 구단 역사상 주장으로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린 12번째 선수
- 구단 역사상 최초 비유럽인 엘리트 그룹 입성 #
7.7. 개인 기록(로스앤젤레스 FC)
8. 결장 이력
8.1. 부상 이력
<rowcolor=#ffffff,#ffffff> 부상 이력 | |||||
<rowcolor=#ffffff,#ffffff> 시즌 | 부상 종류 | 부상일(발표일 기준) | 복귀일 | 기간 | 결장 경기 |
2010-11 | 발가락 골절 | 2010년 8월 2일 | 2010년 10월 18일 | 77일 | 12경기 |
2011-12 | 고열 | 2011년 8월 4일 | 2011년 8월 8일 | 4일 | 1경기 |
발목 인대 파열 | 2011년 8월 29일 | 2011년 9월 12일 | 14일 | 3경기 | |
2012-13 | 우측 허벅지 염좌 | 2012년 11월 26일 | 2012년 11월 28일 | 2일 | 1경기[156] |
2015-16 | 족저근막염 | 2015년 9월 28일 | 2015년 11월 5일 | 38일 | 9경기 |
2017-18 | 우완 전완골부 요골 골절 | 2017년 6월 15일 | 2017년 8월 14일 | 60일 | 4경기 |
2018-19 | 근육 경련 | 2019년 1월 31일 | 2019년 2월 4일 | 4일 | 1경기 |
2019-20 | 우완 골절 | 2020년 2월 17일 | 2020년 4월 30일 | 73일 | 6경기 |
2020-21 | 햄스트링 파열 | 2020년 9월 28일 | 2020년 10월 5일 | 7일 | 3경기 |
2021년 3월 15일 | 2021년 4월 5일 | 21일 | 4경기 | ||
2021-22 | 우측 종아리 염좌 | 2021년 9월 6일 | 2021년 9월 20일 | 14일 | 4경기 |
햄스트링 파열 | 2022년 1월 6일 | 2022년 2월 3일 | 28일 | 8경기 | |
2022-23 | 안와 골절 | 2022년 11월 2일 | 2022년 11월 20일 | 18일 | 4경기 |
탈장 수술 | 2023년 5월 29일 | 2023년 6월 18일 | 20일 | 1경기 | |
2024-25 | 햄스트링 파열 | 2024년 9월 26일 | 2024년 10월 19일 | 23일 | 5경기 |
햄스트링 부상 | 2024년 10월 20일 | 2024년 11월 2일 | 13일 | 3경기 |
위 기록들 처럼 한시즌에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10경기도 안될 만큼 철강왕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3-24시즌은 시즌 중반 아시안컵 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부상 조차 없었다.
8.2. 징계 이력
<rowcolor=#ffffff,#ffffff> 징계 이력 | |||||
<rowcolor=#ffffff,#ffffff> 징계 시즌 | 징계 대회 | 징계 종류 | 징계일 | 복귀일 | 결장 경기 |
2014-15 | DFB 포칼 | 퇴장 | 2014년 10월 30일 | 1경기 | |
2018-19 | UEFA 챔피언스 리그 | 경고 누적 | 2019년 4월 18일 | 2019년 5월 1일 | 1경기 |
프리미어 리그 | 퇴장 징계 | 2019년 5월 5일 | 2019년 8월 18일 | 3경기 | |
2019-20 | 프리미어 리그 | 퇴장 징계 | 2019년 12월 23일 | 2020년 1월 2일 | 3경기 |
9. 병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사상 첫 동메달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2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2번이나 병역 특례의 기회가 있었지만, 각각 감독의 외면 및 소속팀의 차출 거부로 무산되었다. 운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출전하지 못했던 것이 아버지 손웅정의 차출 거부 때문이라는 루머가 많이 퍼져 있으나, 손흥민의 차출 논란이 있었던 것은 '국가대표팀' 조광래호였다. # 홍명보호 '올림픽 대표팀' 당시에는 손흥민의 폼이 시즌 후반이 되어서야 올라와 선발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또한, 당시 홍명보호는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올림픽을 위해서 손발을 맞춰온 팀이었으며, 홍명보 감독 본인이 이러한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157] 손흥민은 홍명보호에 한 번도 선발된 적이 없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선발된 적이 없어 팀에 녹아들기 어렵다는 고려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때는 손흥민의 엔트리 제외가 충분히 예상되었기 때문에 올림픽 멤버 발표 후에도 손흥민의 탈락이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손흥민의 2012 런던 올림픽 차출과 관련하여 당시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독일의 축구 전문매체인 Kicker에서 손흥민이 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하는 인터뷰를 실은 것이다. 손흥민 올림픽 불참 선언…"소속팀에 집중하겠다" 그러나 곧이어 손흥민 측에서 인터뷰나 입장 발표를 통해 그 매체와 어떠한 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을 했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손흥민 "올림픽대표 차출 거부는 사실무근" [핫이슈] 손흥민 격정토로 "대표팀 차출거부? 獨 언론 인터뷰조차 안 했다"
인터뷰 중에 나오는 "지난해 성인대표팀" 차출과 관련해 아버지의 발언이 오해를 낳아 한바탕 소란을 겪었는데, 내가 또다시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라는 표현을 볼 때에도 아버지의 차출 거부 때문에 런던 올림픽을 가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올림픽 직전에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2011년 발생한 차출 거부 논란에 대해 해명을 한 바 있다. # 현실적으로 볼 때 군 문제가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 입장에서 메달 획득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해서 병역 특례의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낮다.[158]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의 경우 손흥민 본인의 의지도 강했고 대한축구협회 및 이광종 감독도 손흥민 차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반대를 꺾지 못했다. 축구협회는 손흥민이 팀 내 핵심 선수임을 고려하여 대회 도중 한국으로 넘어와 토너먼트 4경기만 뛰게 하겠으며 다음 A매치 데이에는 차출하지 않겠다는 절충안까지 제시했으나 레버쿠젠은 요지부동. 축협의 절충안에 따라 손흥민이 토너먼트만 출전한다고 가정하면 결장하게 될 소속팀 일정은 분데스리가 2경기, UEFA 챔피언스 리그 1경기에 불과했음에도 무산된 것을 보면 그냥 레버쿠젠에서 차출해 줄 생각이 전혀 없던 것이다.[159]
반면 같은 분데스리거인 김진수와 박주호는 소속팀과 계약할 때부터 아시안 게임 차출 시 거부할 수 없다는 부대 조항을 적은 덕분에 최종명단에 뽑혀 병역 특례를 받았고, 축구팬들은 손흥민의 에이전트가 김진수, 박주호의 에이전트보다 능력이 부족함을 한탄했다. 추가로 기사에 따르면, 이광종 감독이 말하기로는 공격진 보강을 위해 손흥민 측에 몇 차례나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고, 겨우 통화가 됐으나 출전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마침내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고 독일 상대로 골을 넣는 등 활약했으나 8강전에서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1:0으로 패함으로 이번에도 병역 특례는 무산되었다. 거기다가 경기 내용 면에서 많은 1:1 기회를 날려먹고 실점 또한 손흥민의 패스 미스에서 시작된 거라 각지에서 까이고 있다.
실점의 빌미가 된 패스 미스 이외에도 '겉멋 패스', 무리한 드리블 후 뺏김 등등 안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 물론 한 경기에서의 부진만으로 지탄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하긴 하나 손흥민은 사실상 골을 넣으라고 존재하는 선수이고 올림픽 무대에서는 위상으로도 나이로도 책임을 질 만한 위치에 있다. 평소보다 무리한 플레이가 유독 많았는데 병역 특례가 걸려있는 경기라 의욕이 너무 넘쳤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손흥민의 최종학력은 고교 중퇴이기 때문에 2015년 6월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보충역 입대 대상이며, 군 복무를 만 35세까지 연기할 수 있다고 한다.[160] 기존 1급에서 3급 판정을 받아 현역 입영대상자로 분류되었던 인원들 중 중고등학교 중퇴 및 중졸에 해당하는 인원을 4급 보충역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고교 중퇴의 학력인 손흥민은 상주 상무나 아산 무궁화로 입대할 수 있는 현역대상이 아니다.[161]
9.1. 2018 아시안 게임 참가
그가 병역 특례를 받기 위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고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해야 한다. 동메달만 획득해도 병역 특례를 받게 되는 올림픽과 달리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만 특례가 부여된다. 현재 구단들의 비협조 + 부상으로 인해 U-23 챔피언십에는 실제로 아시안 게임 대표에 선발될 것으로 보이는 선수들이 다수 빠졌으며, 김학범 감독이 취임 직후 선발한 28인 명단에는 U-23 챔피언십에 나섰던 선수 중 9명만 남았다.[162] 다행히 토트넘 홋스퍼 FC에서는 차출을 허가했고[163], 무사히 김학범호에 승선했다. 이제 병역 특례의 유무는 본인이 활약하기에 달려 있다.한편 손흥민이 37세까지 병역을 미룰 수 있다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164] 손흥민이 해외에서 부모님과 체류함에 따라 병역법에서 혜택을 적용받아 37세까지 미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6년 전 박주영이 이런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터라 손흥민이 이를 섣불리 실행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이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병역 문제 해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A 대표팀에선 항상 대한민국에 고통을 안겨주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본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사실상 미리 보는 결승전 상대였던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이 만든 언더독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만난 마지막 상대는 공교롭게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이 대회에 참가한 손흥민은 골을 노리는 역할보다는 경기 조율과 수비 가담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세한 활약상은 김학범호 문서 참조. 이미 대한민국은 똑같이 병역이 걸렸던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격침한 바 있다. 병역 혜택을 받았던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차출되지 못했고, 처음 얻었던 기회는 손흥민 본인이 살리지 못했는데 마지막 기회가 되는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그동안의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대회 2연패와 병역이 걸려 있는데 하필 상대가 일본이니 동기부여는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승한다면 손흥민 개인으로서도 클럽과 대표팀 통틀어 프로 통산 첫 우승이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일본을 2: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병역특례까지 받았다. 손흥민은 후반전에는 일본의 집중 견제에 가로막혀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연장전이 시작되자마자 살아나서 위협적인 슈팅을 하기도 했으며, 이승우의 선제골과 황희찬의 추가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면서 결국에는 제 몫을 해냈다. 이렇게 손흥민은 6경기 1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결국 그렇게나 손흥민의 마음을 속 썩이던 병역 특례 문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완전히 해결됐다. 물론 예술체육요원으로서 4주 동안 기초군사훈련은 받아야 하기에 향후 훈련소에 입소해야 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군인이 된 미래의 손흥민이 사라졌다는 등의 평행세계 드립이 나오기도 했고 흥민이의 눈물이 모여서 병역 특례를 만들었다는 말도 돌았다. 실제로 경기 중 이승우가 선제골을 터트리자 트위터에는 이승우가 육군훈련소의 문을 닫았다는 내용의 해시태그가 대한민국 트렌드 1위를 차지했었다. 2위는 손흥민 군대였다.
또한 손흥민이 지난 8월[165] 육군에 무려 1억 원의 기부금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 손흥민은 "육군 장병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기부한 지 2달이나 지나서야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기부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해병대를 간다고 했을 때 뜬금없단 반응이 조금 있던 편.
9.2. 2018 아시안 게임 우승 이후
2019년 여름 휴식기에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었으나, 토트넘이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시즌 마무리가 늦어졌고, 6월 A매치 평가전에도 소집되면서 입소가 어려워졌다. 이에 손흥민은 SBS 풋볼매거진골과의 인터뷰에서 훈련소 입소를 내년 즉 2020년으로 미뤘다고 밝혔다. # 다만, 예술체육요원으로써의 복무는 2019년 7월부터 시작되었다. 예술체육요원은 특정 자격을 갖춘 이후에도 법으로 정해진 등록 절차에 따라 편입을 해야지만 복무를 시작할 수 있으며,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등록일로부터 1년 안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계속 복무할 수 있는 규정이 있기 때문.2019년 말에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3월 13일부터 프리미어 리그가 중단됐고 언제 리그가 재개될지 모를 때 일단 손흥민은 한국으로 귀국하여 4월 20일 제주특별자치도에 주둔 중인 해병대 제9여단 91대대로 입영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됐다. #[166]
해병대를 고른 이유는 보충역, 기능 요원 등 대체 복무 형태로 복무하는 자원들을 교육하는 훈련소 중에서 가장 짧은 훈련 기간인 3주 과정으로 훈련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 해병 9여단 훈련소는 제주도에 주민등록이 된 보충역, 산업기능요원 등의 대체 복무 자원들만 입영할 수 있으며, 손흥민 측은 보다 짧은 기초군사훈련 소집을 위해 미리 춘천에서 제주도로 전입을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손흥민이 기초군사훈련을 3주간 받은 것을 계기로 훈련소 별 기초군사훈련 기간이 다른 점이 재조명되었으며, 그 결과 기초군사훈련 대상자 간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 모든 훈련소의 기초군사훈련 기간이 3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5월 8일, 3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했다.[167] 엘리트 운동선수로서 일반인과 격이 다른 신체적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각개전투와 행군 등에서 지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하며 사격에서도 10발을 모두 맞혀서[168] 157명의 훈련병들 중에 1등으로 수료하며 필승상[169]을 받았다고 한다. 기초군사훈련을 끝마쳤고, 544시간의 봉사활동도 2022년 4월 6일부로 이수함에 따라 2022년 5월 초에 복무만료 처분을 받고 병역 문제는 완벽히 해결되었다.[170]
10. 미디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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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1.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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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2. 악성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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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3. 악성 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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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4. 응원가
Nice One Sonny, Nice One Son 원곡: Nice One Cyril, Nice One Son (시릴 놀스 응원가) | |
Nice one Sonny, Nice one Son Nice one Sonny, Let's have another one! | 잘했어 쏘니, 잘했어 손 잘했어 쏘니, 한 번 더 가보자! |
|
15. 손흥민에 대한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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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6.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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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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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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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GK | 위고 요리스 | Hugo Lloris | 1986년 12월 26일 | 188cm, 82kg | |||||||||
4 | | DF | 에디 세구라 | Eddie Segura | 1997년 2월 2일 | 178cm, 70kg | |||||||||
5 | | DF | 마를롱 산투스 | Marlon Santos | 1995년 9월 7일 | 182cm, kg | |||||||||
6 | | MF | 이고르 제주스 | Igor Jesus | 2003년 3월 7일 | 179cm, kg | |||||||||
7 | | FW | 손흥민 | Son Heung-min | 1992년 7월 8일 | 183cm, 78kg | |||||||||
8 | | MF | 마르코 델가도 | Marco Delgado | 1995년 5월 16일 | 175cm, kg | |||||||||
11 | | MF | 티모시 틸만 | Timothy Tillman | 1999년 1월 4일 | 183cm, 74kg | |||||||||
12 | | GK | 토마스 하살 | Thomas Hasal | 1999년 7월 9일 | 191cm, 86kg | |||||||||
14 | | DF | 세르지 팔렌시아 | Sergi Palencia | 1996년 3월 23일 | 168cm, kg | |||||||||
15 | | DF | 로렌초 델라발레 | Lorenzo Dellavalle | 2004년 4월 4일 | 190cm, kg | |||||||||
17 | | FW | 제레미 에보비세 | Jeremy Ebobisse | 1997년 2월 14일 | 184cm, kg | |||||||||
18 | | DF | 다비드 오초아 | David Ochoa | 2001년 1월 16일 | 188cm, kg | |||||||||
20 | | MF | 야우 예보아 | Yaw Yeboah | 1997년 3월 28일 | 169cm, kg | |||||||||
24 | | DF | 라이언 홀링스헤드 | Ryan Hollingshead | 1991년 4월 16일 | 185cm, 84kg | |||||||||
25 | | DF | 막심 샤노 | Maxime Chanot | 1989년 11월 21일 | 186cm, | |||||||||
27 | | FW | 나탄 오르다스 | Nathan Ordaz | 2004년 1월 12일 | 180cm, kg | |||||||||
29 | | DF | 아르템 스몰랴코우 | Artem Smolyakov | 2003년 5월 29일 | 180cm, kg | |||||||||
30 | | FW | 다비드 마르티네스 | David Martinez | 2006년 2월 7일 | 178cm, kg | |||||||||
33 | | DF | 애런 롱 | Aaron Long | 1992년 10월 12일 | 188cm, 79kg | |||||||||
43 | | MF | 애덤 살다나 | Adam Saldana | 2002년 2월 7일 | 168cm, 66kg | |||||||||
56 | | MF | 주드 테리 | Jude Terry | 2008년 10월 8일 | 175cm, kg | |||||||||
77 | | FW | 에이드리언 위보오 | Adrian Wibowo | 2006년 1월 17일 | 182cm, 70kg | |||||||||
80 | | MF | 오딘 티아고 홀름 | Odin Thiago Holm | 2003년 1월 18일 | 180cm, 70kg | [1] | ||||||||
91 | | DF | 은코시 타파리 | Nkosi Tafari | 1997년 3월 23일 | 193cm, kg | |||||||||
99 | | FW | 드니 부앙가 | Denis Bouanga | 1994년 11월 11일 | 180cm, 71kg | |||||||||
# | | MF | 앤드류 모런 | Andrew Moran | 2003년 10월 15일 | 177cm, 75kg | |||||||||
# | | MF | 자이우송 | Jailson | 1995년 9월 7일 | 178cm, 73kg | |||||||||
구단 정보 | |||||||||||||||
회장: 피터 거버 / 감독: 스티브 체룬돌로 / 홈구장: BMO 스타디움 | |||||||||||||||
출처: 로스앤젤레스 FC 웹사이트 | |||||||||||||||
※ 주의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간략 틀을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간략 틀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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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00DCFF 2%, #0B090C 2%, #0B090C 4%, #e6002d 4%, #e6002d 96%, #0B090C 96%, #0B090C 98%, #00DCFF 98%)" {{{#!wiki style="margin:0 -10px -2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000,#000> 포지션 | 등번호 | 이름 | 생년월일 | 출장 | 득점 | 소속 구단 |
<colbgcolor=#0b090c> GK | 1 | 김승규 (Kim Seung-gyu) | 1990년 9월 30일 ([age(1990-09-30)]세) | 81 | 0 | [[일본| | |
12 | 송범근 (Song Bum-keun) | 1997년 10월 15일 ([age(1997-10-15)]세) | 1 | 0 | [[대한민국| | ||
21 | 조현우 (Jo Hyeon-woo) | 1991년 9월 25일 ([age(1991-09-25)]세) | 45 | 0 | [[대한민국| | ||
DF | 2 | 이명재 (Lee Myung-jae) | 1993년 11월 4일 ([age(1993-11-04)]세) | 7 | 0 | [[대한민국| | |
3 | 이한범 (Lee Han-bum) | 2002년 6월 17일 ([age(2002-06-17)]세) | 2 | 0 | [[덴마크| | ||
4 | 김민재 (Kim Min-jae) | 1996년 11월 15일 ([age(1996-11-15)]세) | 70 | 4 | [[독일| | ||
13 | 이태석 (Lee Tae-seok) | 2002년 7월 28일 ([age(2002-07-28)]세) | 8 | 0 | [[오스트리아| | ||
14 | 김주성 (Kim Ju-sung) | 2000년 12월 12일 ([age(2000-12-12)]세) | 6 | 1 | [[일본| | ||
15 | 김문환 (Kim Moon-hwan) | 1995년 8월 1일 ([age(1995-08-01)]세) | 30 | 0 | [[대한민국| | ||
20 | 변준수 (Byeon Jun-soo) | 2001년 11월 30일 ([age(2001-11-30)]세) | 1 | 0 | [[대한민국| | ||
22 | 설영우 (Seol Young-woo) | 1998년 12월 5일 ([age(1998-12-05)]세) | 27 | 0 | [[세르비아| | ||
26 | 김태현 (Kim Tae-hyeon) | 2000년 9월 17일 ([age(2000-09-17)]세) | 2 | 0 | [[일본| | ||
MF | 5 | 박용우 (Park Yong-woo) | 1993년 9월 10일 ([age(1993-09-10)]세) | 23 | 0 | [[아랍에미리트| | |
6 | 서민우 (Seo Min-woo) | 1998년 3월 12일 ([age(1998-03-12)]세) | 3 | 0 | [[대한민국| | ||
8 | 백승호 (Paik Seung-Ho) | 1997년 3월 17일 ([age(1997-03-17)]세) | 22 | 3 | [[잉글랜드| | ||
10 | 이재성 (Lee Jae-sung) | 1992년 8월 10일 ([age(1992-08-10)]세) | 99 | 15 | [[독일| | ||
11 | 이동경 (Lee Dong-gyeong) | 1997년 9월 20일 ([age(1997-09-20)]세) | 13 | 3 | [[대한민국| | ||
14 | 김진규 (Kim Jin-gyu) | 1997년 2월 24일 ([age(1997-02-24)]세) | 11 | 3 | [[대한민국| | ||
16 | 박진섭 (Park Jin-seop) | 1995년 10월 23일 ([age(1995-10-23)]세) | 8 | 1 | [[대한민국| | ||
17 | 배준호 (Bae Jun-ho) | 2003년 8월 21일 ([age(2003-08-21)]세) | 9 | 2 | [[잉글랜드| | ||
18 | 이강인 (Lee Kang-in) | 2001년 2월 19일 ([age(2001-02-09)]세) | 39 | 11 | [[프랑스| | ||
23 | 옌스 카스트로프 (Castrop Jens) | 2003년 7월 29일 ([age(2003-07-29)]세) | 1 | 0 | [[독일| | ||
25 | 정상빈 (Jeong Sang-bin) | 2002년 4월 1일 ([age(2002-04-01)]세) | 2 | 1 | [[미국| | ||
FW | 7 | 손흥민 (Son Heung-min) | 1992년 7월 8일 ([age(1992-07-08)]세) | 135 | 52 | [[미국| | |
9 | 오세훈 (Oh Se-hun) | 1999년 1월 15일 ([age(1999-01-15)]세) | 10 | 2 | [[일본| | ||
19 | 오현규 (Oh Hyeon-gyu) | 2001년 4월 12일 ([age(2001-04-12)]세) | 20 | 4 | [[벨기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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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식 로마자 표기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eu를 'ㅠ' 내지는 'ㅣㅡ' 발음으로 인식하고 "히융민 손" 혹은 "흉민 손" 등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반에 영미권에서는 종종 후자로 발음하고 독일어권에서는 "호응민 존"이라고 발음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손 흥민"으로 성과 이름의 순서까지 맞춰 정확하게 발음하고 있다.[2] 참고 기사[3] 선천적인 주발은 오른발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부터 왼발 감아차기 훈련 비중도 오른발 훈련과 동일하게 가져감으로서 현재의 양발잡이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손흥민의 왼발은 인스텝 슈팅 보다는 인프론트 감아차기 비중이 높다. 세트피스 상황일 땐 무조건 오른발을 활용한다.[4] 2025년 9월 7일 기준. 대표팀 역대 출장 2위, 득점 2위 (출장 1위는 홍명보, 득점 1위는 차범근).[5] 2025년 9월 7일 기준(분데스리가 41골, EPL 127골, MLS 1골, 국가대표 52골 포함) / FIFA 공식 기록 대한민국 선수 역대 득점 2위 (1위는 통산 315골을 기록한 이동국)[6] 2022년 12월 6일로 대한민국 운동선수 최초로 1,000만 이상 팔로워를 달성했다.[7]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8]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이외에도 국대에서 7번으로 고정되기 전까지 중간에 8번, 10번, 14번을 달기도 했으며 2009년 나이지리아 FIFA U-17 월드컵 때는 17번을 달기도 했다.[9] 2010-11 시즌, 2012-13 시즌[10] 2011-12 시즌[11] 손흥민이 출시한 브랜드 NOS7의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12] 축구부 입단을 위해 3학년에 올라가면서 육민관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13] 육민관중학교를 졸업해서는 학적상 FC 서울과 유스 협약을 맺은 동북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 뒤늦게 동북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14] 1학년 1학기 5월에 독일로 떠나기 위해 중퇴했다. 함부르크 SV 유스팀 신입 시절에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1년 후 연수 기간이 끝나 유소년 계약을 해야 했는데 이때 학생 비자가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은 정식 교육 기관이 아닐 뿐더러 당시 다니고 있던 학교가 없어 정말 어렵게 학생 비자를 발급받았다는 일화로 보아, 독일에서 다닌 고등학교는 잠시 다니다가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15] 본래는 토트넘의 전설적인 수비수 시릴 놀스의 응원가였다. # 원래 가사는 'Nice one Cyril, Nice one son. Nice one Cyril, Let's have another one (잘했어 시릴, 잘했어 우리 아들. 잘했어 시릴, 한 번 더 가보자)'. 이 가사 속 son과 손흥민(Heung-min Son)을 언어 유희로 활용하며 이적 직후부터 장난스레 말이 나오다가 2017-18 시즌부터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다.[16] Our Heung min Son~ Heung min Son~ Nice guy Nice goalman in our house~ Oh Heung min Son Go! Goal! 토트넘 이적 후 초반에 불리던 응원가였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17] 기자의 질문에 무교라고 답한 적이 있다. 참고로 부친 손웅정과 형 손흥윤은 구세군 교회를 다니는 개신교 신자다.[18] 공식 병적 기록: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 / 제주특별자치도 해병대 9여단 기초군사훈련 수료. 해병대 9여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했더라도 예술체육요원 법령에 따라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 만료[19] 2021년 11월 22일, 네이버 나우 질레트 x 손흥민 우리형 라디오에서 언급했다.[20]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후원한다.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한국 성인 선수 중 직접 후원 계약을 체결한 건 손흥민이 최초로, 이후 본사가 후원한 한국인 선수로는 이강인, 황의조가 있다.[21] 대표이사 손웅정. 손흥민의 국내외 에이전트,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한다.[2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위치한 '손흥민체육공원' 내 카페 상호명이다. 공식 인스타그램[23] 2019년: 22위, 2022년: 11위[24] 총 2회[25]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수상.[26] 2016-17 시즌 FA컵 6골로 애덤 모건과 공동 1위지만, FA컵은 따로 득점왕 시상을 하지 않음[27] 2020-21 시즌[28] 손케 듀오 참고[29] 구단 역대 최연소 득점[30]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양 구단의 이적료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31] 2023년 7월에는 1위는 김민재, 2위는 나카지마 쇼야로 손흥민이 3위로 밀려났다.[32] 출처 9000만 유로는 2021년 8월 20일 기준 환율로 한화 1200억 원이 넘어가는 금액이다.[33]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인도전.[34]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중 2경기 연속으로 득점한 선수는 유상철, 손흥민 단 2명밖에 없다.[35] 3골로 박지성, 안정환과 타이 기록.[36] 아시아 최초.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득점왕.[37] 2019년 최종 22위로 역대 아시아 최고 순위이자 최다 득표, 2022년 최종 11위로 본인의 기록 경신.[38] 2019년, 2020년. 아시아 최초이자 2회로 최다.[39] 2020-21 시즌, 아시아 최초.[40] 아시아 최초, 최다.[41] 한국에서는 박지성 이후 두번째이며, 횟수로는 세번째, 소속팀과 함께 결승에 오른 것은 4번째이다. 이는 박지성과 맨유가 결승에 세번을 올랐기 때문.[42] 프리미어 리그, 분데스리가[43] 동아시아권에서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 유럽 5대 리그 득점왕이 나온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림이었다. 예전에도 동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들이라 불리우던 몇몇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에 도전했지만 득점 순위권은커녕 한골 넣기도 버거워한 것이 수준차이자 현실이었다. 범위를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중동 등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로 넓히면 이란의 알리 다에이까지 예시에 포함된다.[44] 출처[45] 출처[46] 실제로 한국갤럽이 선정하는 올해를 빛낸 스포츠 선수에서 2015년 1위, 2016년 2위, 2017년부터는 6년째 1위를 독주 중인데 무엇보다도 2018년에 60%를 넘어선데 이어 2019년부터는 70%를 넘어가는 압도적 지지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86.2%로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201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데 이는 2010년대에 들어 한국이 예전에 비해 스포츠 스타 외 유명인에 대한 우상화, 언론과 대중적인 관심이 매우 많이 줄어든 편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이다. 게다가 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전 세대 고루 인기가 있으며, 특히 스포츠에 관심이 낮은 10~20대 여성계층,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의 인기도 높다.[47] 그래서 강원도민일보는 손흥민의 기사마다 춘천시 출신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48] U-23 국가대표 출신.[49] 다만 요즘은 대학 축구 등 학원 축구의 파워가 약해져가고, 프로팀이나 지역 유스 클럽팀과 같은 클럽유스가 강세를 띄며 고등학교 미만 단계에서는 왕중왕전을 치르지 않는 등 유소년 선수에게 성적에 대한 부담을 덜게 하기 위한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는 중이다.[50] 대표팀 에이스로 함께 거론되는 김민재, 이강인과 성장 과정이 상이한 게 재밌는데, 아버지의 개인 교습으로 중학교 시절까지 기본기를 연마한 손흥민과 달리 김민재는 본문처럼 학원 축구의 전형적인 진학 시스템을 밟으며 성장한 사례, 이강인은 10대 초반부터 해외 구단의 유스로 성장한 사례이다.[51] 흔히들 운동부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배트로 맞아가며 뛴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데, 적어도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요즘은 손찌검 한 번 잘못했다가는 학부모들이 뒤집어지고, 가해 지도자는 자격을 박탈당하고 감방으로 가기 딱 좋다.[52] 일례로 벤투 감독 부임 당시 손흥민은 일정상 한국에 있었는데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노한 손웅정은 아들을 불러 "국가대표팀 주장이라는 놈이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인사는 못 드릴망정 친구들하고 맥주나 마시고 있냐!"라며 심하게 질타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53] 그 후 이청용과 함께 국가대표 경기를 뛰게 된다.[54] 최고 11위[55] 앞서 UEFA컵 우승을 들어올린 주장은 1971-72 시즌 앨런 멀러리, 1983-84 시즌 스티브 페리맨.[56]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 토트넘 홋스퍼 FC[57] 2025년 5월 26일 기준. 구단 역대 통산 득점 5위, 도움 1위.[58] 역대 16위[59] 역대 17위. 프리미어 리그 70-70 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11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60] 축구인 중에선 거스 히딩크와 유이한 최고 등급 수훈자이며 선수로서는 최초다. 2002 월드컵 선수단 전원은 맹호장을 받았고 차범근 감독은 기린장과 백마장을 받은 바 있다.[61] 여름 이적시장에서 1000만 유로에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62] 본선 8경기, 예선 2경기[63] 본선 3득점, 예선 2득점[64] 본선 1도움[65] 예선 1경기[66] 여름 이적시장에서 3,000만 유로(당시 한화 약 381억 원)에 토트넘 홋스퍼 FC으로 이적. 15-16 프리미어 리그 여름 이적시장 이적료 9위이며 역대 아시아인 최고 이적료를 경신했다. 링크 종전 기록은 2001년 당시 나카타 히데토시(AS 로마 → 파르마 칼초 1913)의 2,600만 유로.[67] UEL 7경기[68] 커즌 애시턴 FC의 애덤 모건과 공동 1위[69] UCL 6경기, UEL 2경기[70] UCL 1득점[71] UCL 7경기[72] UCL 12경기[73] UCL 6경기[74] UEL 본선 7경기, 예선 2경기[75] 본선 3득점, 예선 1득점[76] 본선 1도움, 예선 2도움[77] 리버풀 FC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1위[78] UECL 본선 3경기, 예선 1경기[79] 본선 1득점[80] 본선 1도움[81] UCL 8경기[82] 222득점으로 역대 한국인 선수 대륙 무대 최다 득점이다. 2위는 차범근의 121득점.[A] [84] 2021-22 시즌. 리버풀 FC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득점왕. 유럽 5대 리그에서는 득점왕을 가릴 때 득점수만 따지고 다른 요소(페널티킥 득점, 경기 수, 출전 시간 등)를 일절 배제하기 때문에 공동 득점왕이 나올 수 있다. 예시로 14-15, 17-18 시즌 세리에 A, 22-23 시즌 분데스리가, 11-12 시즌 리그 1 등이 있다. 하지만 PK골이 있는 살라와는 달리 순수하게 필드골로만 23골을 넣은 손흥민의 기록을 더 높게 쳐주는 편이다. 영국 현지의 한 해설가는 손흥민이 득점왕을 확정 짓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아예 대놓고 "우리는 페널티킥 골이 진정한 골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라며 손흥민을 치켜세우는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최초 득점왕.[85] 2020-21 시즌. PFA 올해의 팀이 개설된 지 48년 만에 손흥민이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로 받았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리그 베스트를 수상한 아시아 선수들 중 차범근, 카가와 신지, 하세베 마코토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리그 베스트 수상[86] 2021-22 시즌[87] 프리미어 리그 역대 득점 17위[88] 프리미어 리그 역대 도움 18위[89] 2020-21 시즌, 사우스햄튼전. 리그 최초 한 선수가 특정선수의 도움만으로 4득점.[90] 2019-20 시즌, 2020-21 시즌, 2023-24 시즌[91] 2021-22 시즌[92] 2019-20 시즌[93] 2016-17 시즌[94] 2016-17 시즌 ~ 2023-24 시즌[95] 2019-20 시즌[96] 2019-20 시즌, 2020-21 시즌[97] 2019-20 시즌, 2020-21 시즌, 2023-24 시즌[98] 2022-23시즌, 브라이튼전[99] 2022,23시즌, 사우스햄튼전[100] 2020-21 시즌에 돌파[101]
[102] 총 4회[103] 2016-17 시즌. 커즌 애시턴 FC의 애덤 모건과 공동 1위.[104] 2016-17 시즌[105] 2019-20 시즌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황희찬, 메흐디 타레미, 미나미노 타쿠미와 공동 최다 기록.[106] 플레이오프 2골까지 포함하면 21골.[107] 2019-20 시즌. 타레미와 공동 최다 기록.[108] 2019-20 시즌. 타레미와 공동 최다 기록.[109] 통산 9회. 2014-15시즌 조별리그 2 · 4라운드, 2016-17시즌 조별리그 2라운드, 2017-18시즌 조별리그 4라운드, 2018-19시즌 8강 1 · 2차전, 2019-20시즌 조별리그 3 · 4라운드, 2022-23시즌 조별리그 4라운드[110] 통산 8회. 2014-15시즌 조별리그 2 · 4라운드, 2017-18시즌 16강 2차전, 2018-19시즌 8강 1 · 2차전, 2019-20시즌 조별리그 3 · 4라운드, 2022-23시즌 조별리그 4라운드[111] 2022-23 시즌 조별리그 4차전, 메흐디 타레미와 더불어 둘뿐인 수상[112] 2018-19시즌. 첫 번째는 박지성.[113] 2021-22 시즌. 현재 손흥민의 한 시즌 개인 최다 골[114] 2020-21 시즌[115] 2020-21 시즌[116] 2012-13 시즌 ~ 진행중[117] 2016-17 시즌 ~ 2024-25 시즌[118] 2012-13 시즌 ~ 2023-24 시즌 (2015-16시즌 제외)[119] 2016-17 시즌 ~ 2023-24 시즌[120] 본인이 세웠던 기록인 22위를 경신했다.[121] 유효표를 받은 것은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히 몇 표를 받은 것인지는 나오지 않았다.[122] UEFA 챔피언스 리그[172], UEFA 유로파 리그[173],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174][123] 챔피언스리그 19골 5도움, 유로파리그 9골 4도움, 컨퍼런스리그 1골 1도움[124]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멕시코-독일전 각각 1득점[125] 3골로 안정환, 박지성과 타이 기록[126] 2020년 수상. 2019-20 프리미어 리그 16R (19.12.07.) vs 번리 FC[127] 18세 194일.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인도전 데뷔골[128] 컵대회 포함. 2위는 크리스티안 에릭센[129] 71회. 2위는 대런 앤더튼 68회.[130] 1위 해리 케인 213골.[131] 해리 케인, 로비 킨, 마틴 치버스, 손흥민[132]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7번째 기록이다. 웨인 루니, 프랭크 램파드, 세르히오 아구에로, 해리 케인, 티에리 앙리, 사디오 마네, 손흥민[133] 위르겐 클린스만, 해리 케인, 손흥민.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11번째 기록이다.[134]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손흥민[135] 올해의 골 포함 총 4개 부문 2년 연속 동시 수상. 올해의 선수상 3개 부문 동시 수상은 총 3회.[136] 로비 킨, 손흥민[137] 솔 캠벨, 손흥민[138] 레스터 시티 FC, 첼시 FC, 리버풀 FC, 맨체스터 시티 FC[139] 저메인 데포, 손흥민[140] 해리 케인, 손흥민[141] 첫번째는 해리케인 62골.[142] 해리 케인, 손흥민[143] 대런 앤더튼, 크리스티안 에릭센, 손흥민[144] PL 역사상으로는 19번째이다.[145]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8번째 기록이다. 선수 명단은 에릭 칸토나, 브라이언 딘, 티에리 앙리, 램파드, 웨인 루니, 드록바, 리로이 자네, 손흥민[146]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6번째 기록이다.[147]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7번째 기록이다.[148]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으로는 5번째 기록. 앨런 시어러, 로비 파울러, 티에리 앙리, 해리 케인, 손흥민[149] 가레스 베일, 손흥민[150] 지미 그리브스, 바비 스미스, 스티브 아치벌드, 클라이브 알렌, 게리 리네커, 테디 셰링엄, 해리 케인, 손흥민[151] 테디 셰링엄, 해리 케인, 손흥민[152]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3골로 리버풀 FC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수상[153] 해리 케인, 손흥민[154] 2022-23 시즌 8R 레스터 시티 FC 전. PL 역사상으로는 7번째 기록이다. 선수 명단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 (1999),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2004), 로버트 언쇼(2005),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2008), 로멜루 루카쿠 (2013), 스티븐 네이스미스 (2015), 손흥민 (2022)[155] 프리미어 리그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은 박지성[156] #[157] 이러한 점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에도 23세 이하 선수 풀을 모두 활용하지 않고 21세 이하, 즉 2009 U-20 청소년 대표팀 연령대를 중심으로 선발하여 논란이 많았고, 이후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도 이 멤버들을 중용하여 인맥 축구 논란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는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김학범호에 의해 재평가되기도 했다. 오세훈, 조규성, 조영욱, 이지솔 등 2018년부터 2021년 초까지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을 걸러버리고 송민규, 설영우 등 올림픽 연기 기간 동안 새로이 프로에 데뷔한 신성들을 조직력과 상관없이 무리하게 끌고 갔고 최종 명단을 너무 늦게 선정하는 바람에 직전 준비 기간 동안 선수들이 손발을 맞추긴커녕 서로 경쟁만 하느라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단 분위기가 경직되는 사태를 낳았다. 컨디션 조절을 방해하는 체력훈련은 덤. 루마니아, 온두라스 등 쉬운 조 편성 때문에 가려져 있던 조직력의 부재가 8강 상대인 멕시코를 만나 수면 위로 드러났고, 김학범호는 6-3이라는 스코어로 대차게 깨져버렸다.[158] 더구나 런던 올림픽 대표팀은 당시 국가대표에 가까운 호화 스쿼드였고, 조 편성 상대국이 스위스, 멕시코, 가봉으로 손흥민이 출전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조 편성(멕시코, 독일, 피지)에 비해서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리우 올림픽에 비해 메달 획득 가능성이 더 낮았다고 보기도 어렵다.[159] 레버쿠젠이 챔피언스 리그 일정 때문에 차출을 거부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상술했듯이 차출시 손흥민이 못 뛰는 챔스 경기는 1경기에 불과했다.(조별예선 SL 벤피카전) 아무리 손흥민이 중요 선수라지만 이 한 경기에 손흥민 한 명 못 뛴다고 탈락을 걱정할 팀이라면 그냥 조별예선을 통과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160] 다만, 현재 손흥민 선수가 신체검사를 받았는지의 유무가 중요한데, 신체검사를 개정 이전에 받았다면 이는 적용 대상이 아니게 된다. 손흥민이 장기간 국외 체류로 인해 신체검사를 계속해서 미뤄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확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손흥민이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현행 제도상 5년이 경과하면 어차피 기존 병역판정이 무효이고 다시 징병검사를 받아야 한다.(일명 김종국법) 따라서 손흥민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현역 혹은 보충역으로 병역을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161] 상무는 신장과 체중 때문에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경우에만 지원이 가능하며 의무경찰은 보충역의 지원이 불가능하다.[162] 공격수로 분류된 선수가 2명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일부 구성은 대략적으로 끝내놓고 마지막 옥석 가르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163] 토트넘과 2023년까지 계약을 한 상황에서 단 한 달 정도 차출을 허가하는 것으로 공익근무 2년의 기간을 손해 보지 않는 쪽이 당연히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훨씬 좋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특히나 손흥민은 백업이나 로테이션 선수도 아니고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였으니.[164] 이 말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딸 경우 병역 특례로 사라지게 된다.[165]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 면제를 받기 전[166] 해병 1257기와 같이 입대하지만, 손흥민은 예술체육요원으로 기초군사훈련만 마치고 퇴소하기에 기수를 부여받지는 않는다.[167] 디시인사이드, 인스타그램등 각종 사이트에서 손흥민과 같이 훈련을 받았다는 인증글이 속출하는 중이다.[168] 이에 해외에서는 "손흥민의 슈팅이 정확한 줄은 알았는데 저 정도였을 줄이야"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169] 훈련 성적 상위 5명에게 주는 상이다.[170] 물론 엄밀히 따지면 예비군훈련과 민방위가 있지만, 손흥민이 해외에 계속 체류한다는 전제하에 예비군훈련과 민방위는 자동으로 면제된다.[171] 2024년 8월 12일, AFC 기술 연구 그룹에서 별도로 선정#
분류
- 손흥민
- 1992년 출생
- 춘천시 출신 인물
- 밀양 손씨
- 축구 선수 자녀
- 동북중학교 출신
- 해병대 출신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
- 레프트윙
- 스트라이커
- 세컨드 스트라이커
- 남자 축구 세컨드 스트라이커
- 2010년 데뷔
- 함부르크 SV/은퇴, 이적
- 바이어 04 레버쿠젠/은퇴, 이적
- 토트넘 홋스퍼 FC/은퇴, 이적
- 토트넘 홋스퍼 FC/역대 주장
- 로스앤젤레스 FC/현역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골 수상자
- FIFA 푸스카스상 수상자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
-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득점자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참가 선수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참가 선수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참가 선수
-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
-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U-17 월드컵 참가 선수
- 2009 FIFA U-17 월드컵 나이지리아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올림픽 축구 와일드카드
- 병역특례자/축구
- 인터넷 밈/축구 선수/대한민국
- 체육훈장 청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