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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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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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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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1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Димитър Бербатов / Dimitar Berbatov | |
본명 | 디미터르 이바노프 베르바토프 Димитър Иванов Бербатов[1] | |
출생 | 1981년 1월 30일 ([age(1981-01-30)]세) | |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블라고에브그라드 | ||
국적 |
| |
신체 | 키 189cm / 체중 78kg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color=#000000,#e5e5e5> 선수 | 피린 블라고에브그라드 (1990~1992 / 유스) CSKA 소피아 (1992~1998 / 유스) CSKA 소피아 (1998~2001)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1~2006)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2012) 풀럼 FC (2012~2014) → AS 모나코 FC (2014 / 임대) AS 모나코 FC (2014~2015) PAOK FC (2015~2016) 케랄라 블래스터스 FC (2017~2018) |
국가대표 | 78경기 48골[2] (불가리아 / 1999~2010) | |
SNS |
1. 개요
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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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선보였으나 불가리아가 워낙 못해서 커리어 기간 동안 한번도 월드컵이나 유로에 나가지 못했다. 같은 불가리아 영웅이라고 불리는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하고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3. 플레이 스타일
중앙 공격수가 주 포지션이지만 실제 플레이 스타일만 보면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라 2선 공미가 오히려 더 어울릴법한 선수였다.베르바토프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은 바로 절정에 달한 볼 키핑과 퍼스트 터치다. 유튜브에 가면 퍼스트 터치만 모아놓은 동영상도 심심치않게 존재하고, 축구 커뮤니티 등지에서 퍼스트 터치에 관해 논할 때 베르바토프는 일단 제외하는 경우도 많다.[3] 퍼스트 터치하는 모습이 마치 백작과 같은 우아함이 있다고 하여 '백작'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공을 부드럽게 받은 후 90도 턴을 하는 베르바토프 특유의 움직임에 '베르바토프 턴'이라는 기술명이 붙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레버쿠젠과 토트넘 시절에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토트넘 시절에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최전방을 거닐다가 볼이 오면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로 볼을 키핑하고, 2선에서 침투하는 로비 킨이나 아론 레넌, 저메인 제나스 등에게 찔러주며 공격포인트를 쌓는 등 꽤 좋은 활약을 했다.
그러나 맨유에 입성한 이후로는 그의 단점들이 더 많이 부각되었다. 베르바토프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을 싫어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데다가 주력도 그렇게 빠르지 않으며, 활동량도 몹시 적다. 그런데 당시 맨유의 팀 컬러는 활동량이 매우 많은 플레이를 중시했고, 베르바토프 같이 골만 노리는 공격수는 치차리토 같이 출전시간 대비 미친 득점력을 선보이지 않는 한 중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가대표 경기에선 90분 내내 총 2km를 뛰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4]
물론 그렇다고 베르바토프가 아예 안 뛰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맨유에서 같이 공격하는 테베스나 루니, 박지성, 긱스 등과 비교하면 맨유의 팀 컬러와는 간극이 컸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호날두까지 포함해서 기존 공격진들이 이상적인 역습 전개가 가능했던 건 오프 더 볼, 패스, 온 더 볼과 득점 모두 가능한 자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박지성이 공간을 많이 잡아주고 호날두가 득점을 많이 했다는 특징이 있으나, 그들 사이의 역할 수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비교하면 베르바토프는 주력이 느리기 때문에 템포가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온 더 볼을 하거나 오프 더 볼을 해서 수비진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본인이 공을 받아서 뭐라도 해야 한다. 허나 이런 점은 기존 맨유의 컬러와는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루니, 박지성, 테베스 3명은 모두 뛰어난 활동량으로 상대편을 압박하고 팀의 빈 공간을 잘 메꾸는 능력이 있었지만, 베르바토프에겐 이런 플레이를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히려 지금은 사장된 간단한 몇 번의 터치와 키핑으로 기회를 창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그에게 어울린다 볼 수 있을 정도였고, 그나마 맨유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힘을 이용한 타겟맨 롤은 본인이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행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미드필더 전원이 그를 위해 좋은 곳에 패스를 배달해줘야 하는 플레이가 그에게 맞았지만, 당시의 맨유는 그 정도로 그에게 득점을 매달려야 하는 팀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기복이 심했던 것 역시 단점으로 꼽힌다. 맨유 시절 팀 컬러와 맞지 않았다는 점과 별개로, 본인에게 공이 집중되어야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기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때는 10km 정도의 뛰어난 활동량을 보여주다가 어떤 날에는 또 산책을 하는 등, 전체적인 지구력과 멘탈의 일관성이 떨어졌다. 이적 첫 시즌에도 기존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등이 주축이 된 역습 전술에서 베르바토프가 합류한 뒤 베르바토프에게 공이 가면 공격템포가 죽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두 번째 시즌에 호날두와 테베즈가 떠나자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보통 강팀을 상대할 땐 미드필더 진영을 튼튼히 하는 4-3-3 전술[5]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베르바토프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점유율 축구는 상대하기 쉬운 팀과의 경기에서만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루니가 부상으로 빠질 때는 베르바토프가 원톱으로 나섰는데,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베르바토프가 가진 많은 장점도 결국 공이 자신에게 오지 않고서는 발휘되지 않으며, 온 더 볼 같은 옵션도 없다. 그러기에 본인의 장점이 엄청나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맨유가 4-4-2로 회귀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맨유에서 같이 뛴 리오 퍼디난드는 인터뷰를 통해 "베르바토프는 절대 게으른 선수가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그가 언제나 우리 팀에서 제일 많이 뛴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며 베르바토프를 노력파 선수라 평가했다.
여담으로 박지성에게 패스를 하지 않아서 박빠들의 조롱을 받던 선수라 저평가되었다며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 준수했다고 하는데, 당대에 700억 가까이 주고 사온 선수가 4시즌 142경기 56골 24도움에 그친 건 결코 만족할 성적이 아니었다. 중미는 제대로 된 자원을 데려오는 게 아니라 긱스와 스콜스를 활용하고, 윙어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던 퍼거슨이었지만 스트라이커 하나만큼은 무리하더라도 컴플리트 포워드 스타일의 최고급 자원을 선호하던 퍼거슨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6] 2경기당 1개의 공격 포인트면 분명히 나쁘지 않고 오히려 준수할 성적이긴 하나, 말 그대로 총합 스탯으로 봤을 때나 그렇고 기복이 심해 득점왕 시즌조차 리버풀전 해트트릭, 블랙번전 한경기 5골 등의 몰아치기 스탯이 상당했다. 이 때문에 후반기에는 막 이적해온 치차리토에게도 밀렸다. 득점왕을 차지한 시즌조차 전술에 안맞아서 후반기에 배제되고 약팀 위주 경기에만 나왔는데 이러한 4시즌간의 활약을 준수했다고 평가하기엔 무리다. 본인이 패스 플레이를 하면 잘하긴 했지만, 정작 잘 안한것 역시 사실이다. 맨유팬들이 베르바토프를 굳이 싫어하진 않지만 박지성을 들먹이며 저평가 운운하기엔 그가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4. 평가
맨유에 있을 당시에도 스탯 자체는 준수했고, 2010-11 시즌은 공동 득점왕을 수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 어정거린다는 것과 약팀한테만 골을 몰아박는 특성 때문에 인정받지도 중요하게 쓰이지도 못했다. 더욱이 당시로선 높은 이적료를 퍼부은 선수치고 스텟이 준수한 정도에서 머문 것 역시 아쉬웠던 부분. 득점왕을 한 시즌에도 후반기에는 사실상 선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벤치를 달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맨유에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은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는 단계였다는 것과 스타일 문제가 크다. 안드리 셰브첸코와 페르난도 토레스의 경우와도 비슷한데 이 두 선수와 베르바토프의 공통점이 매우 많다. 부진의 원인은
1. 높은 이적료
2. 기량 저하(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전 소속팀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뒤 이적 후 몰락했다.)
3. 환경의 변화(특급 에이스라도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 새 팀에서의 역할변경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겹쳐지면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4. 위의 모든 것이 합쳐진 비판(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가 위의 이유로 비판받게 되고 나름 스탯을 찍어준다고 해도 이적료가 발목을 잡는다. 언론과 팬들에게 이렇게 씹히고 극복을 못하게 된다면 결국 토레스와 셰브첸코의 사례가 되는 것이다.)
맨유에서 꽤 잘한 선수였지만, 이적료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7]
2. 기량 저하(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전 소속팀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뒤 이적 후 몰락했다.)
3. 환경의 변화(특급 에이스라도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 새 팀에서의 역할변경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겹쳐지면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4. 위의 모든 것이 합쳐진 비판(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가 위의 이유로 비판받게 되고 나름 스탯을 찍어준다고 해도 이적료가 발목을 잡는다. 언론과 팬들에게 이렇게 씹히고 극복을 못하게 된다면 결국 토레스와 셰브첸코의 사례가 되는 것이다.)
맨유에서 꽤 잘한 선수였지만, 이적료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7]
여러모로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이름을 남겼고, 또 나름의 활약도 했지만 빅클럽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CSKA 소피아 (1998~2001)
- 불가리아컵: 1998-99
-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8)
- 풋볼 리그컵: 2007-0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2012)
- 프리미어 리그: 2008-09, 2010-11
- 풋볼 리그컵: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10, 2011
- FIFA 클럽 월드컵: 2008
5.2. 개인 수상
-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010-11
- UEFA컵 득점왕: 2000-01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7년 4월, 2011년 1월
- PFA 올해의 팀: 2006-07, 2010-11
- 키커 올해의 팀: 2003-04, 2004-05
- 리그 1 이달의 선수: 2014년 4월
- DFB-포칼 득점왕: 2001-02
- 토트넘 홋스퍼 올해의 선수: 2006-07
- 풀럼 올해의 선수: 2012-13
- 모나코 올해의 선수: 2013-14
- 불가리아 올해의 축구 선수: 2002, 2004, 2005, 2007, 2008, 2009, 2010
- 불가리아 올해의 인물: 2009
5.3. 출전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8]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98-99 | PFC CSKA 소피아 | 파르바리가 | 11 | 3 | 0 | 5 | 3 | 0 | 0 | 0 | 0 | - | 16 | 6 | 0 | ||
99-00 | 27 | 14 | 0 | 4 | 2 | 0 | 2 | 0 | 0 | - | 33 | 16 | 0 | ||||
00-01 | 11 | 9 | 0 | 0 | 0 | 0 | 4 | 7 | 0 | - | 15 | 16 | 0 | ||||
합계 | 49 | 26 | 0 | 9 | 5 | 0 | 6 | 7 | 0 | - | 64 | 38 | 0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99-00 | 바이어 04 레버쿠젠 II | 레기오날리가 | 7 | 6 | 0 | 0 | 0 | 0 | 0 | 0 | 0 | - | 7 | 6 | 0 | ||
00-01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6 | 0 | 2 | 0 | 0 | 0 | 0 | 0 | 0 | - | 6 | 0 | 2 | ||
01-02 | 24 | 8 | 1 | 6 | 6 | 0 | 11 | 2 | 0 | - | 41 | 16 | 1 | ||||
02-03 | 24 | 4 | 6 | 3 | 0 | 0 | 7 | 2 | 0 | - | 34 | 6 | 6 | ||||
03-04 | 33 | 16 | 9 | 3 | 3 | 1 | 0 | 0 | 0 | - | 36 | 19 | 10 | ||||
04-05 | 33 | 20 | 5 | 3 | 1 | 0 | 10 | 5 | 1 | - | 46 | 26 | 6 | ||||
05-06 | 34 | 21 | 9 | 3 | 3 | 0 | 2 | 0 | 0 | - | 39 | 24 | 9 | ||||
합계 | 154 | 69 | 32 | 18 | 13 | 1 | 30 | 9 | 1 | - | 202 | 91 | 34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6-07 | 토트넘 홋스퍼 FC | 프리미어 리그 | 33 | 12 | 9 | 8 | 4 | 3 | 8 | 7 | 3 | - | 49 | 23 | 15 | ||
07-08 | 36 | 15 | 9 | 8 | 3 | 1 | 8 | 5 | 2 | - | 52 | 23 | 12 | ||||
08-09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1 | 0 | 0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8-09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프리미어 리그 | 31 | 9 | 9 | 3 | 1 | 0 | 9 | 4 | 0 | - | 43 | 14 | 9 | ||
09-10 | 33 | 12 | 5 | 3 | 0 | 1 | 6 | 0 | 1 | 1 | 0 | 0 | 43 | 12 | 7 | ||
10-11 | 32 | 20 | 4 | 2 | 0 | 1 | 7 | 0 | 1 | 1 | 1 | 0 | 42 | 21 | 6 | ||
11-12 | 12 | 7 | 0 | 4 | 1 | 1 | 4 | 1 | 1 | 1 | 0 | 0 | 21 | 9 | 2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2-13 | 풀럼 FC | 프리미어 리그 | 33 | 15 | 3 | 2 | 0 | 0 | 0 | 0 | 0 | - | 35 | 15 | 3 | ||
13-14 | 18 | 4 | 1 | 1 | 1 | 0 | 0 | 0 | 0 | - | 19 | 5 | 1 | ||||
합계 | 229 | 94 | 40 | 31 | 10 | 7 | 42 | 17 | 8 | 3 | 1 | 0 | 305 | 122 | 55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3-14 | AS 모나코 FC | 리그 1 | 12 | 6 | 5 | 3 | 3 | 1 | 0 | 0 | 0 | - | 15 | 9 | 6 | ||
14-15 | 26 | 7 | 1 | 3 | 1 | 0 | 9 | 1 | 1 | - | 38 | 9 | 2 | ||||
합계 | 38 | 13 | 6 | 6 | 4 | 1 | 9 | 1 | 1 | - | 53 | 18 | 8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5-16 | PAOK FC | 수페르리가 엘라다 | 14 | 4 | 0 | 3 | 1 | 0 | 5 | 0 | 0 | 3 | 0 | 0 | 25 | 5 | 0 |
통산 | 491 | 212 | 78 | 67 | 33 | 9 | 92 | 34 | 10 | 6 | 1 | 0 | 656 | 280 | 97 |
6. 여담
-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할때까지 영어를 못했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입성 당시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영화 대부 시리즈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훈훈한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불가리아 어린이들을 돕는 것. 현재 5가정의 아이들을 서포트 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아주 오래된 여자친구 엘레나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을 낳았다고.
- 토트넘 시절부터 탈모끼가 보였는데, 맨유 시절을 거치면서 점점 탈모가 심해지면서 과거의 헤어밴드 착용을 버리게되었고 짧게 헤어컷을 유지중이다. 그러나 이마가 계속 넓어지면서 모나코 시절에는 반삭으로 다니다가 드디어 2016년에 모발 이식을 받았다.
묘하게 앤디 가르시아 느낌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 욕도 많이 먹고 이래저래 막판에는 주전 경쟁도 밀리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명단 제외 등 굴욕도 겪었고, 퍼거슨 감독과는 이래저래 좋지 않은 식으로 헤어졌음에도[9] 본인의 드림 클럽이었던 맨유에 대해 악감정은 별로 없고, 오히려 애정이 많은 듯하다. 가끔씩 인터뷰 등으로 현 맨유 팀원들에게 충고를 하기도 하고 맨유의 부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준다.
- 토트넘 시절 동료인 이영표의 말에 따르면 토트넘 시절 자신의 롤모델이 차범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2024년, 슛 포 러브가 넥슨 아이콘 매치에 베르바토프 섭외를 위해 촬영을 갔을 때 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사실이라며 레버쿠젠에 입단했을 때 팀의 역사를 공부하던 도중에 차범근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부터 멋진 선수이며 또한 독일에서 뛴 외국인 선수이고 실력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으로 이적한 그는 이영표와 만나게 되었고, 이영표에게 차범근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한다. #
- 커리어를 보다시피 이영표, 박지성과 클럽에서 같이 뛴 적이 있으며[10] 차범근, 손흥민이[11] 뛰었던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뛰었다보니 은근 한국 축구 선수들과도 인연이 있다. 그래서 자신과 차박손의 공통점은 레버쿠젠이라고 말하려다 박지성이 레버쿠젠에서 뛴 적이 없었던 걸 아쉬워하기도 했다.
다음 생애엔 레버쿠젠에서 뛰겠지
- 2018년에는 영화를 찍기도 했다. 선수 시절부터 굉장히 잘생기고 말끔한 외모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양복이 매우 잘 어울린다.
- 2020년 9월 토트넘 소속 해리 케인의 혹사 논란이 일어나자 지금 백업 스트라이커가 필요하긴 하지만 케인이 워낙 확고한 주전 선수이기 때문에 그의 백업으로 시작할 선수를 구하기는 힘들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재영입하는 것은 어떠냐고 농담했는데 팬들은 진지하게 그가 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2022년 인터뷰에서 맨유로 이적할 당시 맨시티에서도 제의가 왔었다고 밝혔다.그때 어떻게할 거냐고 물었던 에이전트에게 '꺼지라 그래.우린 맨유로 간다'고 했다고 밝혔다.당시는 맨유가 드림 클럽이었고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 생각하고 맨유만 생각했다고 했다.#
- 국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메이저대회 본선은 단 1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불가리아의 전력이 악화되면서 유일한 국제대회 출전이 UEFA 유로 2004 본선이었다. 그마저도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어 3전 전패로 탈락했고 본인도 별다른 활약없이 무득점에 그쳤다. 이후엔 불가리아가 계속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 예선에서 모두 하위권에 머물며 베르바토프를 더 이상 국제대회 무대에선 볼 수 없었다.
- 상술했듯이 불가리아 레전드지만 국적의 한계로 국제 대회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래서 같은 국적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와 비교해 저평가 당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가 말하길, 베르바토프는 연습을 할 때 주로 수비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에 베르바토프도 "여기선 내가 바레시고 베켄바워."라고 농담하며 이를 인정했다.
- 국가대표 시절 2km만 뛰었다는 루머가 있다. 정확히는 감독의 과도한 비유가 사실로 여겨지는 경우이다. 10월드컵 예선전에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2008년 11월 3일에 한 인터뷰에서 주장단을 포함한 선수들이 더 잘해야한다고 비판한 말이 직역되어서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경기를 보더라도 베르바토프를 비롯한 선수들이 못해도 반코트 정도를 50번은 왔다갔다 하는 걸 볼 수 있다. 105×66m인 올림피코 스타디온인걸 감안하면 정말 안 뛰어도 3km는 걸을 수밖에 없다.
[1] Dimitar Ivanov Berbatov[2]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박지성도 "유난히 퍼스트 터치가 좋았던 선수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 베르바토프라고 대답.[4] 일반인이 90분간 길을 걸으면 대체로 6km 정도를 간다. 골키퍼조차도 5km는 활동량을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2km를 뛰었다는 말 자체는 루머다.[5] 원톱에는 주로 웨인 루니가 기용되었다.[6] 당장 베르바토프 전 맨유의 스트라이커는 테베스였는데, 그는 활동량, 슈팅, 주력, 몸싸움 등 만능에 가까웠고 공미를 설 수 있을 정도로 시야도 훌륭했다. 이런 선수를 왜 안사셨나요 영감님[7] 물론 베르바토프에게 저 두 선수랑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굴욕이다. 아무리 베기옥이다 까여도 저 둘의 활약상은 말 그대로 먹튀 그 자체였다.[8] 각 리그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9] 주전에서 밀렸을 때마다 자신이 맨유에 필요한 선수냐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매번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퍼거슨 감독은 "너는 중요한 선수니까 떠나지 말아라"라고 했지만, 끝끝내 자신을 출전시켜 주지 않았으며,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앙금이 풀린 건지 은퇴 후 마이클 캐릭이 개최한 자선 경기에 흔쾌히 출전해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경기를 뛰었다.[10] 이영표와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두 시즌을 같이 뛰었고 박지성과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 시즌을 같이 뛰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를 제외하면 이를 충족하는 선수는 의외로 별로 없는데 그나마 베르바토프와 마찬가지로 토트넘에서 맨유로 이적한 마이클 캐릭이 여기에 해당된다.[11] 여기에 손흥민은 베르바토프처럼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