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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5년 6월 3일에 치러질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대권주자를 다룬 문서.현재 확정되지 않은 인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출마를 최종 선언하지 않은 후보들은 목록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조국혁신당과 사회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대선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론내면서 대권주자가 없는 상태다.
동일 정당의 후보는 가나다순으로 기재한다.
2. 원내정당 (기호순)
2.1.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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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후보#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후보#|]][[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후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김경수 #====
<colbgcolor=#152484> | 김경수 (金慶洙) |
| |
출생 | 1967년 12월 1일, 경상남도 고성군 |
현직 |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방문교수 |
상황 | 경선 중 (누적 3위) - 예비후보 등록 |
다시, 함께!
민주로 앞으로
전직 경남지사로, 한때 '친문의 적장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다.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연루로 징역을 선고받아서 복역했으나, 2022년 윤석열에 의해서 사면되고, 2024년 복권되면서 다시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다.민주로 앞으로
4월 13일, 출마를 선언했다. #
====# 김동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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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2484> | 김동연 (金東兗) |
| |
출생 | 1957년 1월 28일, 충청북도 음성군 |
현직 | 제36대 경기도지사 |
상황 | 경선 중 (누적 2위) |
20대 대선 | 사퇴 (새로운물결)[1] |
모두의 나라
내 삶의 선진국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흙수저 출신으로 기획재정부장관 및 경기도지사까지 도달한 인물.내 삶의 선진국
20대 대선에서 새로운물결 후보로 출마했으나, 유권자들에게 잘알려지지 않은 탓에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다가 선거 막판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했지만, 그럼에도 경제 전문가로서의 역량이나 신인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움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2022년 3월 3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시장이 아닌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행보를 보인 3월 말 당시에는 편한 길만을 고집한다는 당내외의 비판을 받았지만, 4월 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신의 한수에 준하는 탁월한 선택으로 읽혀진다. 8회 지선의 전국적인 승패와 상관없이 어떠한 경우에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강력한 대권주자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8회 지선에서 승리하면 그 자체로 민주당의 기반이 강화되는 것이기에 본인에게 나쁠 것이 없거니와, 설사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고전한다고 해도 경기도지사직을 사수한다면 본인의 정치적 위상은 그에 반비례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정치적 공백기를 극복해내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를 상대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심판이 주된 여론이 되면서 민주당이 참패를 면치 못한 8회 지선에서 거의 유일하게 혼자 우뚝 선[2] 모양새가 되어 향후 당내 입지와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지사 당선으로 인해 야권에서 이재명을 제외하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평가받기 시작했으며, 김동연 본인의 세력 형성, 관료 출신으로서의 한계 극복이 키포인트일 것이다.
경제 전문가+민주당 내에서 중도적인 축에 속한다는 세간의 인식,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밑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다 경기도지사 출신+충청도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인 상대라 평가하기도 한다.
리얼미터에서 매 달마다 조사하는 전국 광역단체장 평가에선 취임 이후 꾸준히 5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특히 2023년 2월 조사에서는 58.4%로 수도권, 충청권, 강원/제주 광역단체장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
다만 인사 관련 여러 논란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말 임용된 검사 출신의 김동연 지사 비서실 A비서관(별정5급)은 대검찰청 재직 당시(2015년) 음주 상태에서 주차된 차량 3대를 연달아 들이받은 음주 사고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동연 자신이 임명한 1호 인사인 경제부지사가 공식 취임 하루 전 술잔투척 논란으로 사퇴, 결국 고개를 숙이며 인사문제도 일어났으며, 민주당 출신 전직 도의원과 지사 모교인 덕수상고 출신 인사들이 대거 경기도 산하기관에 입성하면서 보은·측근 인사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자신만의 세력 구축정도가 이재명에 비해서 턱없이 약하다. 또한, 무리하게 경기도 분도를 추진하면서 당내외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김동연 경기도지사 본인이 아직까지는 차기 21대 대선 출마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여준 적은 없고 대선출마 선언을 한 적도 없고 반대로 경기도지사 재선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었다. 그래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경기도지사 재선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재보궐을 통해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2025년 4월 9일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김동연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대권후보가 될 수 있다는 유력한 가능성보다는 차기 경기도지사 재선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 이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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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2484> | 이재명 (李在明) |
<nopad> | |
출생 | 1964년 12월 22일[3], 경상북도 안동군[4]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 을) |
상황 | 경선 중 (누적 1위) - 예비후보 등록 |
19대 대선 | 더불어민주당 경선 3위 |
20대 대선 | 본선 2위 (47.83%, 더불어민주당) |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
제20대 대선에서 0.73%p의 매우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고,[5] 낙선은 했지만 현재 나이가 60대 초반으로 보통 한국에서 출마하는 대선주자치고는 젊은 나이이며, 이재명 본인이 "아직 정치에서 은퇴하기는 이르다"라고 언급한만큼 2025년 21대 대선에 재도전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낙선 이후(3월 10일부터 13일까지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이 그 전보다 무려 10만명 정도가 더 늘었는데 대부분이 2030 여성으로 대선 낙선 이후로 2030 여성 코어 지지층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에 그 지지층이 이탈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지금은 이재명
제20대 대선에서 패한 바로 다음날 송영길 전 대표의 요청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상임고문직을 맡게 되면서 다음 대선을 위해 당 측에서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키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또 2022년 8월에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한 이후 대권에 도전한다는 설이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재도전이나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는 얘기가 도는 등 벌써부터 추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으며 당내 이재명계가 적극적으로 이재명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이 고문 본인의 입장에선 개인적 논란들만 극복이 된다면[6][7]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계 중심으로 재정비되어 대선 행보에 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송영길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공석이 된 인천 계양구 을 지역구 출마를 노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후 실제로 당으로부터 계양 을 출마 요청에 더해, 지방선거 총괄선대위원장을 요청받으면서 전면에 복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선거 이후 친낙 성향 의원들은 대선 두 달 만에 이재명 상임고문과 송영길 전 대표가 나란히 등판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주장하며 소위 '명길 책임론'을 집중 부각하는 등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친낙 vs 친명 헤게모니전이 시작된 분위기이다.###
그러나 당내 이재명계의 위세가 여전하고 이재명 의원 본인은 차기 당대표 관련 여론조사에서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점유하고 있어 사실상 당대표 당선이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낙연계를 비롯하여 반기를 드는 이들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당내 입지 또한 앞으로 순탄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7월 알앤써치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후보들 중에 지지율 1위를 기록하였다.# 이때문에 여당인 국민의힘에게는 반드시 눌러야만 할 가장 껄끄러운 강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같은 상승세를 반영하듯 당대표 경선에서 모든 지역에 걸쳐 70% 이상을 득표하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어 8월 29일, 새 당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과 동시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고 이재명 본인의 여러 논란들에 대해 검경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2022년 11월 현재, 본인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대표비서실 정무조정실장에 대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검찰의 수사는 이재명 본인을 향하고 있다.
검경이 당대표가 된 이재명 의원의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자 이재명을 강하게 비판했던 설훈 의원은 "이런 식의 검찰의 이재명 당대표 소환은 야당 파괴공작"이라며 강한 워딩으로 비판하고 있고,# 비명의 대표주자격인 전해철마저도 이재명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등 친문과의 갈등이 생각보다 빨리 봉합되는 듯한 기조가 보이고 있으나, # 10월 중순을 기점으로 검찰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법적 조사가 본격화되자 바로 당내에서 이낙연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권주자 선호도가 24.7%로 2위 후보인 한동훈과 더블스코어 이상 차이가 났다. # 여권 후보들이 여러 후보들이 골고루 분산된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탄탄한 지지도를 가진점은 긍정적인 요소이다.
2023년 2월 27일, 체포동의안이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가까스로 부결되었다. 검찰이 차후에도 후속 체포동의안을 준비하고 있는 한 이재명 의원이 촉박한 시간동안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해 당의 내홍을 아우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23년 4월 28일, 박홍근 원내대표의 후임을 뽑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박광온 의원이 확정되면서 이재명계의 당 장악에도 난항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형성되었다. 박광온은 소위 친낙계로 분류되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국회의원들만 참가 가능한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는 점에서, 이재명의 원내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시선이 존재하였으나, 박광온은 예상과 달리 대놓고 이재명과 척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이낙연과 척을 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되었다. 비명계 내에서 지난 1차 체포동의안때는 무효표나 기권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 일부가 찬성표를 던지면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생명에 큰 타격을 줌과 동시에 곧 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정치적 타격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생명이 아예 끊길 수 있어 이재명의 정치 일생에 있어 큰 위기상황에 봉착하였다. 결국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당내 비명계가 세 결집을 시도하고 있고, 일부는 탈당 및 신당 창당을 할 뜻을 시사하고 있어 당내 통합을 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그러나 총선 공천 과정에서 거의 노골적인 비명계 배척 행보를 보여 이에 반발한 비명계 지지층이 조국혁신당 등으로 이탈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그나마 이낙연 주도로 창당한 새로운미래가 민주당 지지층을 뺏어가지 못할 정도로 세가 약한 것은 다행이라 할 부분.
2024년 1월 2일 부산에서 피습 사건이 일어났다. 목 부위에 1.5㎝ 정도 찢어지는 상처와 함께 경정맥에 손상을 입어서 목숨의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살아났다.
2024년 2월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의 의대증원 이슈선점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홍 등으로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3월 중순 민주당의 공천 내홍이 수습되고 안정기에 접어든 반면, 채 상병 사망 사건으로 공수처에서 수사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되었던 사건이나 대통령실 수석의 막말이 논란이 되면서 정권심판론 기조가 크게 번지게 되었다. 게다가 뒤늦게 여당 내부에서 공천 갈등 문제까지 터지게 되면서 민주당은 큰 반사이익을 얻게 되었다.
결국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달성하고, 범민주진보야권이 190석에 가까운 의석수를 창출하는 대승을 거두면서 이 대표의 대권 재도전에 청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또한 본인과 친명계 최고위원들이 모두 재선에 성공하고 친명 후보들이 대거 원내로 입성하면서 이재명의 당내 지지기반은 한층 더 탄탄해졌다.#
거기에 윤석열 정부의 잦은 실책으로 인해서 유일한 윤석열의 대항마 이미지까지 붙고, 본인이 진두지휘한 22대 총선도 민주당 58.3%, 조국혁신당을 포함하면 범 야권 기준 62.3%로 확실하게 압승하며 이재명의 정치 체급은 몰라보게 커졌다. 결국, 이제는 이재명을 선거에서 비등하게 겨룰 수 있거나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당내든 당외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찾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2024년 6월 10일,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대표가 사퇴할 경우 사퇴 시한에 예외를 둘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확정했다.[8] 그리고 보름 뒤인 24일,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에 도전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임했다. 김두관이 반명 기조를 드러내며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으나 "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그리고 본선에서 85%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며 2년 전 전당대회에서보다 득표율 약 8%를 끌어올리며 연임에 성공했다.
제22대 총선 이후 사법리스크 문제에 대처하는 게 과제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만약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된다면 의원직을 잃게되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다음 대선에 출마하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 # 2024년 11월 15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2022년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 관련 1심 공판에서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이 형량이 확정된다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서 출마 자체가 위험할 수 있었으나 2025년 3월 26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게되었다. # 이보다 앞선 2024년 11월 25일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기 대선 전에 주요 재판이 무죄 선고를 받음에 따라, 더 이상 제21대 대선에서 사법리스크가 출마 여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다. [9]
2024년 12월 3일에 윤석열 정부의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실시되고, 부정선거를 명목으로 국회와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담긴 내란을 저지른 혐의로 인해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됨과 동시에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된 점 때문에 지금까지 윤석열의 유일한 대항마 이미지가 확고히 잡힌 이재명 대표의 대권가도도 원래보다도 훨씬 빠른 순풍을 타게 되었다.
더군다나 계엄이 터지던 그날 밤 이재명 본인이 당대표의 자격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당장 국회로 달려올 것을 명령하는 동시에 직접 유튜브 라이브를 켜서[10] 국민들에게 국회로 모여줄 것을 호소했다. 또한 절대 적지않은 나이와 불편한 몸으로[11]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서 국회 담장을 순식간에 넘어가는 모습이 해당 라이브에 그대로 등장했는데 이 모습이 국내외에서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기민한 대처들은 이재명 본인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계엄 반대 진영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5년 4월 10일 제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2.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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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김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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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 | 김문수 (金文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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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1년 9월 27일, 경상북도 영천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2위 |
상황 | 2차 경선 진출 - 예비후보 등록 |
새롭게 앞으로! 위대한 대한민국!
전직[12] 3선 국회의원이자 재선 경기도지사로 한때 강력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혔으나 2011년 도지삽니다 사건으로 이미지에 아주 큰 타격을 입었다.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 갑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고, 7회 지선이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박원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며 2024년 기준 그의 마지막 선거이다.
탄핵 정국 이후 자유통일당을 창당하고, 친박 집회에 계속 참여하며 꾸준히 강성적인 발언을 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였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9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고, 2024년 7월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어 8월 29일 정식 임명되었다.
각각 경사노위 위원장과 고용노동부장관 청문회에서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박근혜의 탄핵은 잘못됐다" 등 서슴없이 발언하며 전통적인 친박, 강성보수 지지층에게 큰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갤럽 2024년 9월 1주차 여론조사에 차기 대선주자에서 오세훈과 동일한 2% 지지율로 시작하며 차기 대선후보에 8년만에 언급되었다. # 특히 한동훈을 지지하던 강성 윤석열 지지층이 윤석열과 한동훈과의 갈등으로 인해 김문수 지지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있다.
21대 대선 시기에 나이가 70대 중반[13]으로 접어들며 고령의 나이에 출마 여부가 아직 미지수이다.
도지삽니다 사건 이전까지 유력한 대권잠룡으로 언급된 인물이고, 198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전설이자,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수도권 통합 요금제 도입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최초 기획 등 굵직한 큰 성과를 남겼다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활약이다.
2025년, 한길리서치 조사 범보수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15.6%로 범보수 첫 1위를 차지하였다. 탄핵정국에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등으로 인해 친윤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통령을 지키자는 여론이 모여 보수층이 뭉쳐지는 여론이 반응된 듯하다. 보수층 단독으로는 29.3%로 한동훈과 2배 이상 격차를 벌렸다.#
다만 본인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우리같은 사람은 잊어달라"며 출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 범보수 1위를 기록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자 출마를 검토중인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
일단 2월 4일 조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검토하거나 생각한 것이 전혀 없다, 윤 대통령 탄핵 기각이 먼저라고 밝힌 상황이나, 애초에 탄핵 기각을 원하는 지지층에게 어필하려면 대선을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수라는 점을 보면[14] 사실상 지지층에게 어필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 이후 오세훈의 뒤를 이어 노동개혁 토론회를 열고 오세훈의 50여명을 넘는 의원 60여명이 모이며 강력한 대권주자로써의 모습을 보였다.
4월 8일, 조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문수 측과 고용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회의 이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오후 3시 장관 퇴임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국민의힘에 조만간 복당할 것으로 보인다. #
====# 안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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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 | 안철수 (安哲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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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
상황 | 2차 경선 진출 |
18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무소속)[15] |
19대 대선 | 본선 3위 (21.41%, 국민의당) |
20대 대선 | 사퇴 (국민의당)[16] |
정직한 국민의 시대! 국민통합 시대교체
20대 대선에서는 단일화로 인해 사퇴했고, 제3지대 정당이었던만큼 당선권에 올라서기 어려웠으나, 21대 대선에서는 그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과의 합당과 대통령 인수위원장을 통해 윤석열 정부 하에서 꽤 많은 정치적, 행정적 커리어를 쌓은 상태일 것이기에, 대선 경선에서만 이긴다면 보수 유권자와 중도 유권자 모두를 흡수해 본선에서도 상당히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장점은 탈(脫)이념지향적인데다가 의사 출신의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서 그 돋보이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도층으로부터 많은 득표를 올릴 수 있다는 점, 호남권에서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어 뿌리깊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녹색돌풍이 대표 사례이고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이전의 보수 후보들과 달리 10% 넘는 표를 득표했으므로 안철수 또한 유리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022년 현재 보수로 확실히 전향하였으므로 윤석열과 달리 비토 정서가 강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받고 있으나, 앞으로 기성세대로 자리잡을 20대의 경우 호남권도 이전의 세대와는 달라지는 부분이 보여졌고, 안철수는 중도주의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5년 후의 대선에서는 젊은 층에게서 표를 더 얻을 수 있다. 당장 20대 대선만 하더라도 호남에서 15%를 넘긴 지역이 여러 군데 있었기 때문에, 5년 후에 젊은 층의 비율이 더 늘어나면 안철수에게 더 표가 몰릴 수 있다.
다만, 호남의 경우는 안철수가 마냥 유리하지는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안철수 개인의 인물론을 떠나서 당 소속이 오히려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남권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일반적으로 반~혐 보수(우파) 성향[17]을 보이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킨 배경은 더불어민주당은 별로인데 그렇다고 새누리당을 찍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 차라리 두 거대 정당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민주당계 정당과 연결 고리가 있는 제3의 정당을 찍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게 가장 컸다. 정의당, 진보당과 같은 비 민주당계 정당이 유독 전라도 쪽에서 지지율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게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보수 정당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퍼져 있기 때문. (실제로 8회 지방선거 때 정의당이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폭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진보당은 기초의회 의원을 여럿 배출시키는 등 생각 외로 선전을 했다. 오히려 민주당을 제치고 당당하게 당선된 후보도 있을 정도다.) 전라도 지역의 혐 보수 성향이 현재진행형임을 감안할 때, 안철수가 국민의힘 소속이 되는 게 확장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대선처럼 민주당으로 쏠리면 쏠렸지, 절대 국민의힘 쪽으로 표를 주지 않는다. 다르게 말한다면, 2016년 당시 안철수는 '비 민주당, 반 새누리당' 정체성의 후보로써 지지받았지만 그 지지가 '반 민주당, 국민의힘 소속'으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최근 안철수의 호남권에서의 이미지는 극우 정치인과 동급 혹은 배신자 수준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호남권으로의 확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일말의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또한 착각이라 볼 수 있는 이유 또한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처럼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저인 37.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는데, 광주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중도 좌파~극좌 정당)을 선호함을 고려할 때 국민의힘 주기환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포기로 야기된 '반사이익'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전라북도지사의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대결로 펼쳐졌기 때문에 표 분산 문제가 사실상 없었으며, 조배숙 후보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정치인으로 보수 정당의 주요 가치관과 다소 거리가 먼 인물이다. 사실상 전현직 민주당계 정치인 간의 대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가치관이 전라북도에도 통했다고 해석하기 애매한 편이다. 마지막으로 전라남도지사는 이정현의 개인 영향력에 묻혀서 잘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과거 지역구였던 순천시/곡성군, 그리고 광양제철소가 자리를 잡은 공업도시 광양시와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여수시를 제외한 나머지 다른 지역들에서는 득표율이 10~19% 수준에 머무르는 등 아주 처참한 결과를 기록했다. 명색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두 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던 것은, 현 도지사의 높은 도정 지지율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호남 지역에서 보수정당은 성별 및 세대를 불문하고 비호감 그 자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곽승용 현수막 훼손 사건이 벌어진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호남과는 별개로 현재 국민의힘 후보 중 가장 중도확장성이 크다는 것은 사실이고, 홍준표와 더불어 2030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점 역시 안철수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1월에 중앙일보에서 양자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 본인도 이를 알고 있는 듯하다. # 심지어 분당 갑 선거구의 경우 22대 총선 당시에는 무려 77.1%라는 엄청난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출구조사를 뒤집고 안철수가 승리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로 남았다.
반대로 단점이라면, 국민의힘 내에서 그리 지지층이 탄탄하지 않아 본선의 승리 여부를 떠나서 경선 통과 여부마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즉, 현재로서는 국힘 내의 타 후보에 비해 대선주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내 지지층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또한, 특유의 말투 관련해서도 언급이 있다.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다수의 대선주자들이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안철수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긍정적인 평이 많음에도, 말투는 다소 힘이 없고 정제된 느낌이 부족하여 초등학생 같다는 부정적인 평도 쏟아졌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와의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에 못 올라선 채 애매한 포지션에 그칠 때는 이게 눈에 띄는 흠이 되는지라,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고쳐야 하는 단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이 2022년 지선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안철수도 지선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고, 김은혜 의원이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석이 된 분당 갑 보궐 선거 출마가 거론되었다. 결국 인수위 종료 후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했고 본인의 분당 갑 유세는 물론 경기도 일대 출마자들의 지원 유세도 함께 했다.
결과적으로 본인은 큰 격차를 내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고, 본인이 지원했던 경기도 일대 출마자들의 경우도 경기도지사는 내줬으나 기초자치단체장들은 대거 석권하는데 성공했기에 이들이 향후 안철수의 지지기반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후 당대표 출마와 관련하여 대통령실이 대놓고 안철수를 향한 반감을 드러내는 와중에도 유력 경쟁자인 김기현 의원과의 양자 구도 여론 조사를 큰 격차로 앞서는 등 여전히 그 이름값 자체는 유효함을 입증해보였다.
2024년 4월 10일에 열린 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전국적으로 참패하는 와중, 이광재를 상대로[18] 수도권인 자신의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하였다. 유력한 당권 주자로 떠올랐으나 당권에 관심없다는 의사를 드러내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차기 대권을 생각한듯 보이는 행보를 펼치기 시작했다.
2025년 2월 19일, 안철수는 플랜 B를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며 사실상 조기 대선 출마를 시사하였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인용되자, 4월 8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예고하였다.
2025년 4월 8일, 광화문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
====# 한동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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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 | 한동훈(韓東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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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3년 4월 9일, 서울특별시[19]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상황 | 2차 경선 진출 - 예비후보 등록 |
시대를 바꾸는 대통령
우리가 이깁니다!
2022년 4월 13일,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었고 5월 9일~10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5월 17일 법무부장관 임기를 시작했다.우리가 이깁니다!
이를 기점으로 보수우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20]와 국민의힘 국회의원, 보수 성향의 정치평론가 사이에서 대권주자 하마평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수 우파 진영 내부의 지지세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만 자타가 공인하는 친윤 인사이기에 임기 중반에 정동영, 유승민, 그리고 본인의 상관 윤석열 대통령처럼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을 들이받지 않는 이상 대권주자로 나서게 될 경우 5년 후 윤석열에 대한 평가에 따라 본인의 지지도 역시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전임자인 문재인처럼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 상황이라면 대세 주자가 될 수도 있는 반면[21], 대다수의 전직 대통령들처럼 임기 말 레임덕이 오고 영향력이 급감하는 상황이라면 정권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면서 함께 하락할 수도 있다. 다만 친윤이나 윤석열 정부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한동훈 개인으로서의 경쟁력과 인기,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성공한다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꾸준히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될 수 있다.
2022년 6월 한국갤럽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렸다. 4%로 오세훈, 안철수, 홍준표에 이어 여권 내 4위, 그리고 전체에서는 5위를 차지했다. 이는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보다 높은 수치이며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 조사에서는 안철수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와 9%의 동일한 응답을 받으며 대권 여론조사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
2022년 6월 15일, 알앤써치가 뉴스핌 의뢰로 조사한 차기지도자 적합도 순위에서는 15.1%를 차지하여 여권 내 2위, 전체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22년 7월 3일, 리서치뷰가 조사한 결과 범보수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오세훈과 한동훈은 각각 15%를 얻어 공동 1위에 올랐다. 보수층 응답자 조사로는 23%로 여권 내 1위에 올랐다.# #
검수완박을 강행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의 대립이 지속될 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때의 시기와 유사하게 유력한 대권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처럼 법무부장관으로 재직 중 윤석열 정부의 개각 진행으로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되어 청문회를 통과한 후 국무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정치 경력을 쌓기 위해 22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 입성을 노리거나, 차기 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의 대선 도전으로 무주공산이 될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가능성도 지지층 사이에서 점쳐지고 있다.
여야가 바뀌면서 민주당 측에 역으로 명분을 줄 가능성도 있어 명암이 명확하다는 평이 있다. 다만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4월 처리에 65%의 국민들이 반대했으며# 추윤갈등 시기와 유사하게 진중권 등 여러 평론가들이 한동훈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검수완박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과의 대립 상황에서 민주당이 오히려 한동훈을 대권주자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 검찰·교정·출입국·마약·민사법제·형사법제 등의 분야에 걸쳐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교정직 공무원 처우 개선, 시행령을 통한 검수완박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보완, 출입국·이민청 설립 추진, 국가배상 제도 개선, 범죄피해자 보호정책, 현대사 문제 해결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동훈/정책 문서 참조.
초, 재선 의원들이 주축인 관계로 구심점이 되어줄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한동훈 장관의 총선 차출론을 거론되고 있어 조기에 정계 데뷔를 하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본인 역시 정계 입문의 의지가 있는 듯 법무부와는 관계가 없는 대외 일정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부인 진은정 미국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서는 등의 행보가 관측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23년 연말을 기점으로 국힘의 비대위원장이 되어 정계 데뷔를 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가 나오고 있다.
2023년 12월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되었다. 비대위원장 지명 직후에 바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하였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즉시 수리하여 법무부 장관직에서 면직되었다. 2023년 12월 26일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비대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였다.
22대 총선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12년만에 단독과반 혹은 그 이상으로 성공하거나, 설사 안 되더라도 8년만에 원내 1당을 탈환한다면 그 성과로 19대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누르고 새누리당에 152석 단독 과반 승리를 이끌어낸 박근혜처럼 대권까지 가는 길이 한결 탄탄해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홍준표, 오세훈, 유승민 등 다른 당내 대권주자들의 공세가 한결 거세질 것이며, 장관을 사직하고 국회의원 불출마까지 선언하면서까지 총선에 올인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2024년 2월까지만 해도 의대 증원 이슈선점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홍으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며 반등하기도 했으나, 3월 중순 들어 민주당에서 벌어진 공천 내홍과 의대증원 이슈가 점차 시들해지고, 의대증원 이슈로 국민이 염증을 느끼고,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논란과 대통령실 수석의 막말논란 등 대통령실 발 악재들과 공천 문제[22],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순번 갈등 등 국민의힘 내부의 악재가 쌓이면서, 정당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한 위원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
결과적으로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를 하면서 한동훈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총선 직후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 반면 여당 내에서 한동훈 책임론에 대한 반론 또한 제기되었다. #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24년 6월 2주 한국갤럽 기준 여권주자 1위를 달리고 있다. # 정치 생명에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한동훈의 책임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고, # 국민의힘 지지층 중심으로 여권의 대권주자로 한동훈을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기에 이후 정치적 행보에 따라 다시 이재명, 홍준표, 안철수의 사례처럼 다시 부활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김무성, 황교안, 이낙연의 사례처럼 그대로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으므로 총선 이후의 행보가 중요해졌다.
6월 말, 국민의힘 4차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7월 23일, 국민의힘 4차 전당대회에서 62.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대표 재임 기간 친윤계의 계속된 견제를 받던 중,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정국에서 탄핵안 2차 표결 가결 이후 선출직 최고위원의 전원 사퇴로 한동훈 체제가 붕괴했으며, 이틀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정치적 행보가 불투명했으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이 막바지로 접어든 2025년 2월 16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 행보 재개를 암시하면서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홍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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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 | 홍준표 (洪準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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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4년 12월 5일[23], 경상남도 창녕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상황 | 2차 경선 진출 |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4위 |
19대 대선 | 본선 2위 (24.03%, 자유한국당) |
20대 대선 | 국민의힘 경선 2위 |
제7공화국 선진대국시대를 열겠습니다!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 당시 2030 젊은 세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큰 지지를 받았었고 실제로 경선에서 국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지만 당원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에게 밀리는 바람에 최종 2위로 낙마하였다. 경선에서 이기기만 했다면 젊은 유권자들[24]에게 큰 표를 기대해볼 만 했으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을 상대로 승리했음에도 최종 득표율 2위로 낙선했다. 이에 홍준표는 발표 후 얼마 안 되어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지만",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하며 승복 선언을 했다. # #
21대 대선 시기에는 나이가 70대 초중반이기에 출마하기에는 어려움이 다소 있지만 김대중이 70대 중반에 대통령이 된 것을 고려하면 불가능[25][26]은 아니다. 게다가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 패배한 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밝혀 21대 선거에 재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
장점은 TV홍카콜라, 청년의꿈으로 대표되는 지지자들과의 소통 능력과 이슈 선점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잘 쓰는 것이 홍준표의 장점인만큼 20대 대선 당시 청년층의 지지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송파 갑 초선 + 동대문 을 3선[27] + 수성 을 초선의 도합 5선 국회의원, 재선 경남지사, 초선 대구시장으로서 국회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 도합 8선과, 당대표 2번[28], 원내대표 한번에 이르는 화려한 정치 경력을 지녔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불거졌던 논란들과 이로 인한 지방선거 패배 및 대선 경선 이후에 불거진 내부총질 논란 등이 있다. 당내 입지를 일부 내준 것은 분명 패착이며 향후 5년 간 극복해야 할 최대의 과제이다. 언론, 특히 조선일보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도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그리고 당원 및 전통적인 국힘 지지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29]
2022년 대구시장 경선에서 49.46%[30]의 득표율로 친박, 친윤의 김재원 전 최고위원(26.43%)과 친박의 유영하 변호사(18.62%)를 상대로 큰 격차로 승리하며 최종후보가 되었다. 페널티 미적용 시 득표율은 54.95%로 과반을 넘겼다. 이후 본선에서 80%에 가까운 78.75%를 득표하며 역대 대구시장 중 최고 득표율, 최다 득표수로 당선되었다.
김재원과 유영하의 체급이 홍준표에 비해 많이 낮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원이 많은 대구에서 친박과 친윤 후보들을 상대로 개인기만으로 민심과 당심을 모두 잡고 역대 최고 득표율, 최다 득표수로 승리를 거둔 점은 향후 대권 행보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구시장 취임 후 티웨이항공 본사 유치, 금호강 르네상스, 부채 삭감 등 성과를 보여주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구 시정을 보는 동안 광역단체장 전체 평균 수치보다 높은 긍정 평가가 자주 나올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
제기된 논란들은 연합뉴스에서 보도한 의전 논란[31] 등이 있으며 지역 시민단체에서 관사 비용을 공개하라는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MBC에서 대구광역시청 유튜브에서 시장의 성과만 홍보하고 개인채널처럼 본인 정치 홍보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고, 지나치게 중앙 정치에 대해 개입하는 것, 본인에게 비판적인 교수에 대한 비난 및 힐난한 것은 단점으로 뽑히고 있다. 그리고 시정 문제에서는 미분양 문제 해결 미비, 군위군 대구 편입 논란 및 공항 이전 문제 등이 최대 난제로 뽑히고 있다. # # # 게다가 명태균 게이트에 연루된 것도 마이너스 요소.
2025년 1월 12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권 도전에 나설 경우 이게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2025년 4월 4일, 조기 대선을 위해 대구시장을 다음주에 사퇴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홍준표 시장 측은 사실 무근이라 밝혔다. #
2025년 4월 5일, 드디어 출마선언을 공식화했다. #
2025년 4월 14일에 대구시장을 사퇴하고 대선캠프를 차릴 것이라고 했다. #
현재로써는 국민의힘에서 김문수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이다.
2.3. 개혁신당
2.3.1.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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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7210> | 이준석 (李俊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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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5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경기도 화성시 을) |
상황 | 개혁신당 대선 후보 - 예비후보 등록 |
압도적 새로움
2023년 12월 27일,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제3지대행을 선언. 2024년 1월 개혁신당을 창당, 1월 20일의 창당대회에서 개혁신당의 초대 당대표로 추대되었다. 창당과 함께 빠른 속도로 5만여 명의 당원을 끌어모으며 최고 10%대 중후반 ~ 20%대 초반의 지지율을 기록, 제3지대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설 연휴 직전 이낙연이 이끄는 새로운미래와의 합당을 선택하면서 이준석의 주력 지지층이었던 2030 남성의 거센 반감 여론이라는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그래도 설 연휴 이후 발발한 이낙연 대표와의 세력싸움에서 신승을 거두며 당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 새로운미래와는 다시 결별했다.
3월 초, 장고 끝에 22대 총선 화성시 을 지역에 출마했다. 민주당 강세 지역임에도 20%대의 높은 지지율 추이를 보였으나 정권심판론이 극으로 치닫는 총선 판세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으로 평가받았는데, 개인기를 총동원한 총력전을 펼친 끝에 3주 만에 30%p대 지지율 격차를 뒤집고 당선되며 3전 4기 끝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여기에 군소정당 중에선 조국혁신당과 더불어 단둘이서 비례 득표율이 3%를 넘기며 비례대표 의석 2석을 확보,[32] 나름 성공적으로 총선을 치러내게 되며 국힘 당대표 시절 이후로 다시금 대권주자로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성과에 힘입어 새미래와의 무모한 합당 사태로 3~4%를 웃돌며 답보 상태던 당 지지율도 미약하나마 상승세로 돌아섰고, 이준석 본인도 이재명 - 한동훈 - 조국에 이어 대권주자 선호도 4위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지표가 이어지고 있다.[33]
하지만 개혁신당은 결국 3석의 소수정당인 관계로 원활한 의정활동과 지역구 활동을 위해선 다른 원내정당들과의 협상이 상당히 중요하게 되었거니와 총선 기간동안 당 내부적으로도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던 관계로 지지층을 다지기 위해서 당을 빠르게 안정시켜야 한다는 과제도 떠안게 되었다.
본인을 국민의힘 당대표에서 물러나게 했던 성상납 의혹 관련해서는 모두 무혐의 결정을 받으면서 사법 리스크는 해소된 상황이다.
2024년 12월 엄청나게 큰 변수가 하나 생겼는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국면에 돌입하면서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준석 본인은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AI와 인간 사이의 문제 등을 다룰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정면으로 등장해야 되기 때문에 제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정말 힘들지만 꼭 한 번 여기서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발언하며 대선 출마를 시사하였다.#
변수는 탄핵 인용 여부와 시기였는데,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제4항에 따르면 대선 후보로 출마하려면 대통령 선거일 기준 40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5년 1월 30일까지 하야나 파면으로 인한 대통령직 궐위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대통령 피선거권을 얻게 되었다.[34] 다만 허은아 등 개혁신당의 당내 내홍 문제로 탄핵정국에도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등 미비한 지지율 등이 산적해 있는 과제로 뽑히고 있다.
2025년 2월 11~13일에 진행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 중 이준석 의원의 비호감층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이 부분에 대해서 개혁신당은 원래 양당 소속이 아닌 후보는 양당 지지자들 모두에게 비토를 받기 때문에 비호감도가 높게 나타나며, 과거 안철수 의원도 20대 대선 당시 똑같은 이유로 비호감도 1위를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
2025년 2월 14~15일에 JTBC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 주자들과 3자대결 시 7~8%의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35]
피선거권을 얻게 되자 2025년 2월 2일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을 하였고# 3월 18일에는 함익병 개혁신당 선거관리위원장이 당원 찬반 투표를 통해 92.8%의 찬성 득표율로 이준석 의원이 제21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
이준석이 40세가 된 이후인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되면서 조기대선에서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3월에 이미 대선 후보로 선출된 덕에 다른 후보들이 전당대회를 하기도 전인 4월 중순부터 전국을 돌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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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진보당
2.4.1. 김재연
<colbgcolor=#d6001c> | 김재연 (金在姸) |
| |
출생 | 1980년 11월 27일, 경상북도 대구시 |
현직 | 진보당 상임대표 |
상황 | 진보당 대선 후보 |
20대 대선 | 본선 5위 (0.11%, 진보당) |
내란청산, 빛의 연대로
새로운 평등공화국
윤희숙 이전의 진보당 상임대표를 역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대 대선에서도 출마해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지만 2025년의 상황 변화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평등공화국
강점으로는 이준석 바로 다음으로 가장 젊은 나이와 진보당의 현장성에서 기반한 노동 의제에서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과, 진보당이 제8회 지방선거에서 보여주었듯이 농민 조직의 기반과 지역구 밀착 전략을 바탕으로 한 국소적인 지지층 결집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호남과 울산(특히 김종훈 구청장이 당선된 울산 동구와 윤종오 현 의원이 당선된 울산 북구), 창원(특히 중공업 지역이 많은 성산구나 정혜경 현직 의원의 기반인 의창구) 등에서 많은 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약점으로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 연루 의혹이 꼽힌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일화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기사
2.5. 기본소득당
====# 금민 #========# 오준호 #====
<colbgcolor=#00D2C3> | 오준호 (吳準鎬) |
| |
출생 | 1975년 6월 20일, 경상북도 대구시 |
현직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소장 |
상황 | 출마 시사 |
20대 대선 | 본선 7위 (0.05%, 기본소득당) |
두 차례의 자격심사를 실시하여 오는 5월 6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지만, 2022년과 달리 현재는 더불어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후보를 선출해도 단일화할 가능성이 높다. 신지혜가 당대표인 2022년 대선 당시만 해도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2022년 가을부터 민주당 이재명, 기본소득당 용혜인 당대표 구도로 이어가면서 더욱 긴밀해졌기 때문이다.
3. 원외정당
3.1. 새미래민주당
====# 이낙연 #====#!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DEPRECATED] top1 파라미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문서명1 파라미터를 사용해 주세요.
#!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이낙연/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if 문서명2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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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1BDC5> | 이낙연 (李洛淵) |
| |
출생 | 1952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 |
현직 |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
상황 | 출마 시사 |
20대 대선 | 더불어민주당 경선 2위 |
또한 21대 총선은 이낙연에게 큰 선물과 같은 선거였는데, 이낙연계 인물들이 많이 당선된데다 미래통합당의 대선 후보급들이 이번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한데 반해 이낙연 본인은 5선 고지를 밟는데 성공했고, 총선 이후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는 듯했다.
당대표 취임 이후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엄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극히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지지율은 다소 내려앉았고, 2020년 말에는 대법원 무죄로 기사회생한 이재명과 지지율에서 보합세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과 당의 지지세력을 확장하고 당시 어려웠던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2021년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을 발의하겠다는 발언을 내놨지만, 이에 대해 정작 중도층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되려 기존 지지층이 등을 돌리게 되었다.[38] 이를 계기로 지지율이 점점 더 급락하게 되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두 광역 단체장인 박원순, 오거돈의 성추행으로 치러진 2021년 재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수성에 눈이 멀어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후보를 내려해 민주당의 '내로남불' 이미지를 심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LH 사태로 인한 후폭풍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엄청난 격차로 참패하게 된다.[39] 해당 선거를 사실상 지휘했던 이낙연은 이에 큰 타격을 받았고, 이때를 계기로 이재명과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벌어지게 된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은 본인이 문재인의 적통임을 강조하며 이재명과의 차별화를 위해 자신이 '흠 없는 후보', '불안하지 않는 후보'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재명 대세론 구도에 별다른 균열이 일지 않는 상황에서 배수진으로 종로구 국회의원직까지 사퇴하였지만 판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되려 책임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40] 이러한 오판의 연속으로 인해 이재명에게 밀려 대선후보가 되는데 실패하였고, 경선 결과 불복을 넘어 부정선거까지 주장하면서 화룡점정을 찍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대표 시기의 행보로 인해 민주당 내 핵심 지지층 상당수가 등을 돌리게 된 점은 큰 숙제로 남은 상황이다.
특히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점이라면 민주당의 서울, 부산 연속 성비위 사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대응에 실패하고 4연승을 끊고 더불어민주당 사상 최초로 선거에서 참패함과 동시에 청와대와 민주당을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미궁으로 빠트렸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이낙연을 열렬히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총선 압승과 친문계 후계자로 평가받던 이낙연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던 이들이 대부분 떨어져 나가면서 이들에게 증오에 가까운 비토를 받고 있다. 특히나 이재명에 비해 대선주자 선호도가 적으면 몇 배, 심하면 10배 이상 격차로 밀리는 조사까지 있어서 이를 해결하는 게 숙제로 남아있다. 설령 이재명 지도부가 22대 총선에서 아쉽게 패배하거나 참패하여 입지가 좁아진다고 하더라도 이낙연 역시 같은 전적이 있으므로 반사 이익을 얻긴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지선 이후 전당대회에서 친낙계가 지도부 입성에 실패하면서 이낙연의 입지는 더욱 더 위축되는 모양새가 되었고, 이낙연 본인 역시 여론조사에 꾸준히 부진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친낙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입성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다만 박광온도 원내대표가 된 이후 이낙연계와 다소 거리를 두고 이재명 대표와 발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박광온도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후 친명계의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 못 이겨 불명예스럽게 퇴진하였고, 원내 지도부도 대부분이 친명계로 재구성되면서 당내 입지가 더욱더 위축됐다.
결국 2023년 말에 탈당하여 신당을 창당했다. 신당 창당 관련 기자회견에서 총선 출마는 없다는 뜻을 밝힌 만큼 곧바로 대권으로 직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4년 설 연휴,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통합을 결정했으나 연휴 직후 벌어진 세력 다툼에서 이준석에게 밀려 주도권을 잃는 사태가 터졌다.
3월 10일, 창당 당시 총선 출마는 없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광주 광산구 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현역 의원인 민형배에게 62.25%p라는 압도적 격차로 낙선[41]한데다가 새로운미래 또한 비례 득표율이 1.7%로서 후보를 내기는커녕, 선거보조금조차 받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 내 유일한 당선자인 김종민[42]은 벌써 이낙연을 버리고 민주당으로 복당을 노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어 이를 어찌 수습할지가 새미래의 운명과 이낙연 본인의 향후 정치 행보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43] 여기에 더해 국개론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낙선 인터뷰로 인해 반감을 더 키워 사실상 회복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결국 4월 19일에 갤럽에서 발표한 장래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에선 처음으로 대권주자 하마평에 올랐던 2019년 9월 이후 4년 만에 0%를 기록하며 이때 이후로는 2025년 현재까지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아예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2024년 9월 1일, 새로운미래의 유일한 김종민 의원이 탈당하며, 원외정당으로써의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추가되었다.[44]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직선제 하에서 국무총리 출신으로는 대통령에 오르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는 첫 사례가 될 것이며, 낙선하게 된다면 국무총리 출신 대권주자의 낙선 징크스를 이어가게 된다. 사실 현재 이 문서에 언급된 인물들 중 한덕수, 김문수 다음으로 연장자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의 낙선이 사실상 정계 은퇴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2. 소나무당
====# 송갑종 #====<colbgcolor=#1A246B> | 송갑종 (宋甲鍾) |
| |
출생 | 1954년 5월 20일 |
현직 | 목회자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2025년 4월 17일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3.3.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3.3.1. 정의당
=====# 권영국 #=====<colbgcolor=#ffed00> | 권영국 (權英國) |
| |
출생 | 1963년 8월 15일, (61세), 삼척군 장성읍[45] |
현직 | 정의당 대표 |
상황 | 정의당-연대회의 경선 후보 |
정권교체를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로!
노동 전문 변호사 및 엔지니어 출신 정치인, 정의당의 제8대 당대표.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로!
포항제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엔지니어로 살아오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직 당했고, 해직 이후 복직 투쟁을 하다 실패했으며 이때문에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당직도 맡고 선거 출마도 해온 엄연한 정치인이지만 정치인으로의 행적보다는 SPC 참사,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쿠팡 블랙리스트, 구의역 참사,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 현대사에 굵직한 산업재해 사건마다 담당 변호사로 있어오며 거리의 변호사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즉, 인권변호사로서의 행적이 법조-시민사회계에서 더 유명하다보니 정치인으로는 더 덜 알려진 인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의 비례대표 4번으로 나섰으며 녹색정의당이 원외로 가게 되며 낙선했다. 다만 정의당의 몰락 과정에서 이유로 꼽혀온 계파[46]들에 속하지 않은 '무계파' 지향 인물이었고, 실제로도 현재 정의당 지도부로 선출되며 정의당 지도부 역시 나순자, 엄정애, 문정은 등 '무계파' 혹은 '탈계파' 지향 인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강점은 경주시를 기반으로 하던 노동 변호사로써의 행보, 그리고 '무계파'이기에 정의당의 몰락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란 점이다.
약점은 선출 경력이 없다는 점[47]이다.
3.3.2. 무소속
=====# 한상균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한상균 (韓相均) |
| |
출생 | 1962년, 전라남도 나주시 |
현직 | 새로운노동자정치운동추진모임 상임대표 |
상황 | 정의당-연대회의 경선 후보 |
노동자의 손으로! 노동자 대통령을!
노동자의 힘으로! 진보정치 다시 강하게!
제11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노동자의 힘으로! 진보정치 다시 강하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009년 1월 쌍용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그해 4월 노동자 2,646명을 무단으로 정리해고한다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한상균 쌍용자동차 노조지부장은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면서 5월 21일부터 77일간 평택 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했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정비지회장 문기주, 쌍용차 비정규직회 수석지부장 복기성과 함께 평택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171일간 고공에서 농성하였다.
2014년 1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상 최초로 직선제로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현장파의 노동전선에게 지지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구속된 이후 UN 산하 강제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 민주노총 등 여러 곳에서 석방을 요구했으나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가 가석방되었으며 이후에는 노동운동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경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철회한 바 있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노동당-녹색당-전국결집-체제전환운동-민주노총의 연합 경선이 확정되자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출마가 확정된다면 정의당에 입당 후 경선을 통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4. 무소속
===# 김광종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김광종 (金光宗) |
| |
출생 | 1962년 7월 25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
현직 | 아리랑당 창당추진위원회 대표 |
상황 | 출마 선언 |
대한민국을 빈무부국, 빈무제국으로 만들겠습니다
2025년 4월 2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박정일 #===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박정일 (朴正一) |
| |
출생 | 1962년 2월 10일 |
현직 | IT일자리창출 연구회장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AI 시대, 새 인물
미래를 여는 대통령
대한민국의 전 교수. 한양대학교에서 공학석사로 졸업한 이후 삼성SDS 도쿄사무소장을 맡았으며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컴퓨터S/W학부에서 겸임교수를 맡았다. 이 시기에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하며 중소기업 활성화, 과학기술 인력 양성 등을 주장했다. # #미래를 여는 대통령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20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AI 등 분야별 대선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2025년 4월 14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선언하며 공약으로 △사교육 걱정 없는 교육 혁신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주거 안정 △AI 기반의 행정 개혁 △생애 전 주기를 아우르는 돌봄 복지 △청년 인생 리셋 정책 △플랫폼 노동자 보호 를 내걸었다.
===# 유승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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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 | 유승민 (劉承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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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48]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상황 | 무소속 또는 제3지대 출마 검토중# |
19대 대선 | 본선 4위 (6.76%, 바른정당) |
20대 대선 | 국민의힘 경선 3위 |
단점이라면 소통 능력과 홍보 능력이 약하다는 것과 트렌드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2030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은 사실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젊은 세대들이 쓰는 SNS를 적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60대 이상 노년층 포함 상당수 당원들에게는 탄핵에 동조한 배신자 프레임이 박혀있다는 것과 리더로써의 이미지보다 참모, 2인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은 불리한 점이다. 당내 세력은 어느 정도 구축해 두었으나 19대 대선 득표율 6.8%, 20대 경선 득표율 7.5%로 대선에서 지지율이 낮은 점도 약점으로 작용한다.
다른 대권주자들과 달리 광역자치단체장이나 당 대표 경력이 없다는 점도 타 주자들에 비해 차별화할 이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래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경기도지사라도 도전해서 인지도도 높이고 차별화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한다. 당 내에서도 유승민 경기도지사 차출론이 나오고 있었고 2022년 3월 31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선에서 초선의 김은혜에게 패배했다.경기도지사에 당선될 경우 강력한 대권주자가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무산된 만큼 정계은퇴의 확률이 높아졌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60.3%를 얻었으며 김은혜를 이겼지만 당원 투표에서 28.8%로 패배했다. 즉 당심을 얻지 못했다.# #
이에 대해 유승민이 받을 정치적 치명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대선 경선 때는 거물들과의 경쟁이었지만 이번에는 큰 치명타를 받았다."고 평가했었다. 그래서 당장 정계에서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생겼었다.# #
8회 지선의 본선에는 출마하지는 못했지만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가 패배했고 이에 대한 국민의힘 경기도당의 논란 및 전략 실패가 제대로 드러나면서 오히려 유승민의 행보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즉 유승민이 민심에서는 선택을 받은 것이 증명되면서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기지사 경선 패배 후 정계 은퇴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으나 <야수의 본능으로 부딪쳐라> 발간 후 간담회에서 용산 대통령실에 쓴소리를 하거나 이준석 대표에 대한 윤리위의 징계에 대해서도 소신껏 발언하는 등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경선에서 당원 100%라는 룰 개정으로 인해 당내 지지율보다 중도 및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유승민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유승민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물론 과거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최근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전체 지지율은 국민의힘 소속 인물 중 1위이지만, 당원 지지율을 살펴보면 기관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나경원보다는 낮게 나오는 결과가 나경원보다 낮고 3~4위에 있다. 그리고 기존 유승민 비토층이라는 대경권과 60대 이상에서 어느 정도 지지세를 확보했고 보수층이라고 답한 사람들에서도 지지세가 나쁘지는 않았다.# # #
전당대회 전후로 과거와 달리 대경권, 보수층 및 60대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중도층에서 나경원 등 타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대경권, 보수층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층과 당원 지지율에서는 나경원과 오차 범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비대위 측에서 대놓고 당대표 투표를 당원 100%로 바꾸는 등 유승민을 향한 견제구를 던진 것을 의식한 모양인지 결국 당대표 출마를 포기하고 원외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의사를 드러낸지라 향후의 행보에 따라 정치 생명이 결정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전당대회 불출마로 어느 정도 제한이 생겼다.
윤 정부와 국힘의 실정에 대해 가열차게 비판을 이어가며 반윤 포지션을 굳혀나가던 중 2023년 가을을 기점으로 이준석과 더불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준석 - 유승민의 신당 창당 시 지지 여부를 묻는 여러 설문 조사에서 10% ~ 20%대의 좋은 지지율 추이를 보인지라 가능성 있는 전개로 받아들여졌으나 결국 국민의힘 잔류와 함께 공천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단, 불출마 선언은 아니기에 경기권에 전략공천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는 예측이 많았으며, 결국 공천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간 윤 정부의 실정을 가열차게 비판해온 덕분인지 친윤 마케팅을 포기한 지역구 후보들[50]이 유승민에게 지원유세를 요청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총선 이후 전면에 나설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보여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유승민이 대경권, 보수층의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20대, 30대, 중도층의 지지율을 유지한다면 유승민에게 유리하지만 홍보 미비, 트렌드에 대한 둔감성, 당심 저조를 극복하지 못 하면 불리하다.
22대 총선 후 5월 초, 모 방송에서 자신의 마지막 도전이 2027년 대선이 될 것이라며 대권 출사의 뜻을 접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그와 더불어 차기 당대표 선거에도 도전할 뜻을 내비쳤으나 그간 보여준 미적지근한 행보 때문에 기대치는 그렇게 썩 높지 않다. 그리고 결국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택하며 대선 직행을 생각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51]
이후, 2025년 1월 15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한다고 선언했다. #
이재명이 다른 국민의힘 대권주자들과의 양자대결에선 모두 과반 이상의 우위를 점한 가운데, 유일하게 유승민과의 양자대결에서만 과반을 점하지 못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52]
만약 당선된다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경제학 전공 경제학자 출신 대통령이 된다.
4월 13일, "당이 반성과 변화의 길을 거부한다"며 경선불참여 선언을 하였다.#
4월 14일, "유 전 의원 측에 따르면, 유 전 의원은 전날 밤 측근 인사들과 향후 대응 방향 등을 논의한 뒤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한국일보에서 단독보도를 하였다.#
===# 차기원 #===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차기원 (車基元) |
| |
출생 | 1964년 6월 23일 |
현직 | 무직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2025년 4월 9일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 한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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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한덕수 (韓悳洙) |
출생 | 1949년 6월 18일, 전라북도 전주부 |
현직 |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
상황 | 여론조사 포함 |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윤석열 정부 정권에 상관없이 경제관료 요직을 지내왔다. 기획재정부장관, 통상교섭본부장 그리고 2번의 대한민국 국무총리까지 수행한 올드보이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이 기각된 이후 한총리가 대행으로 복귀하자, 국민의힘 일각에서 한덕수 총리를 대권에 출마시켜야 한다는 한덕수 대망론이 일고 있다. #
대체로 중도에 가까운 성향이라 탄핵 찬반 양쪽을 다 어우를 수 있고, 전주시 출신이라 보수 호남 대망론 주자로써 호남 표를 가져 올 수 있다는 분석과, 무려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하여 중도층 표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행정부의 수장으로, 국정의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고, 과거 황교안처럼 대선 출마 여부에 오르고 출마를 안할 수도 있다.
최근 4월 8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윤상현 의원이 정부서울청사에 한 대행을 찾아갔지만 "대선의 ㄷ 자도 꺼내지 말라며" 출마설을 일축했다. # 그러나, 같은 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 임명과 동시에 이완규 법제처장, 함상훈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통령의 지명 몫을 권한대행이 지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걷고 있다고 논란이 일었다.
김대중 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 이명박 정부 때 주미대사 등을 지낸 한 대행의 전문성과 전북 전주 출신으로 과거 보수·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중용됐다는 범용성 등에 주목한다. 최근 미국발 관세 위기에서 잘 대응할 것이라는 국힘 의원들에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개헌 논의와 맞물리면서 대통령 임기 단축이 이뤄진다면 한 대행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원씨앤아이 여론조사 결과, 범보수 후보적합도 한덕수가 29.6%로 1위를 차지했다. 김문수보다 8.1%, 한동훈보다 15.5%를 앞서며 선두를 달렸다. 국민의힘 지지층대상에서는 31.9%를 기록했다. 이재명, 이준석과의 3자대결에서도 보수 진영 주자 중 가장 적은 격차를 보이기는 했으나 이재명 52.3%, 한덕수 26.2%, 이준석 5.4%로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큰 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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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은아 #===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허은아 (許垠娥) |
출생 | 1972년 5월 26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
현직 |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 이사 |
상황 | 출마 선언 - 예비후보 등록 |
회복의 봄
다시 설계
전 제21대 국회의원, 전 개혁신당 당대표.다시 설계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출신으로 퇴사 후 이미지 브랜딩 전략가가 되어 기업인 및 교수로 활동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민의힘에서 의정 활동을 하다 천아용인이라 불리우며 개혁신당에 합류하기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영등포 을 지역구에 도전하였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개혁신당 전당대회를 통해 2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대표로서의 행보에 대한 당내의 불만 제기 및 갈등으로 인해 개혁신당 허은아 지도부 내홍 사태가 발발하였으며, 이후 당원소환제를 통해 당대표직에서 해임되었다. 이 당원소환제의 절차와 내용에 불복하여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이후 당원소환제 및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독자적인 임시최고위원회를 주최하다가, '다시설계'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4월 18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이기는 리더가 아니라 회복의 리더"라며 "오랫동안 제3지대를 끌고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움직여 왔고, 지금도 같은 생각인 만큼 출마를 놓고 깊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4월 23일 개혁신당을 탈당했고, 4월 24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자수성가한 브랜드 전략가라는 개인 서사는 충분히 장점으로 작용 가능하다. 반면 개혁신당 허은아 지도부 내홍 사태의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리더십 및 조직 운영 능력의 부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던 모습은 약점으로 꼽힐 가능성이 높다.
===# 황교안 #===
<colbgcolor=#808080>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황교안 (黃敎安) |
| |
출생 | 1957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
현직 | 변호사 황교안 법률사무소 변호사 |
상황 | 출마 선언 - 예비후보 등록 |
20대 대선 | 국민의힘 경선 2차 컷오프 |
행동하는 정의
전 국무총리, 전 대통령 권한대행, 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대표. 황교안의 강점은 법무부장관 시절 통진당을 해산시키고 민노총 해체를 주장하는 등 극우 ~ 보수층과 재계에게 강력한 어필 요소가 있고,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이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도맡아 국정을 수행해온 바 있어서 탄핵 국면에서 보수 지지자들의 희망후보로 물망되었다.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고 무려 5개월이나 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며 국정을 운영해보았다는 경험이 장점이다.
다만 중도층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라는 이미지가 있어[53] 비토층도 존재한다. 또한 선거로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라 오로지 관료로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대중성이나 정치력 등은 부족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권한대행 시절 의전 관련으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또한 2020년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의 주모자 전광훈과 막역한 사이라는 점에서 反개신교, 非개신교 및 개신교 내 온건 세력으로부터 비토층이 형성되어 있다.
2019년 1월 15일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입당 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했다. 당대표 선거 구도는 비박의 오세훈, 친박의 황교안, 그리고 태극기 부대를 뒤에 입은 강원 춘천 출신의 김진태의 삼파전이다. 최종적으로 50%의 득표를 얻어서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3월 첫째주 기준으로 자유한국당이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30%대에 들어가고 황교안이 제일 지지율이 높은 대권주자로 꼽히는 등 정치 입문 후 상황이 황교안에게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2019년 보궐선거 기간 동안에 방을 빌려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본인이 처음 이끈 선거에서 1:1의 결과를 얻었다. 정의당에 내준 1석도 민주당이 정의당과 단일화한 끝에 내준 간발의 차여서,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봤다. 그런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구에서 이낙연과 매치를 치렀는데, 사실상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 주자, 두 전직 국무총리들이라는 거물들이 격돌한 21대 총선 최고의 빅매치였다. 결과는 2위로 낙선하였고, 이와 동시에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황교안에 대한 평가는 관료 출신이 친박의 지지 아래 갑작스레 거대 정당의 당대표가 되면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지 근본은 친박이라 극우 지지자를 챙겨야 하는데 막상 그렇게 하니 중도층을 잡지 못하게 되어 패배가 뻔히 보이게 되는 상황이라는 점이 그렇다. 본인도 그 한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바른정당 탈당파들을 다시 끌어와 미래통합당으로 합쳐보기도 하고 김종인 전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까지 하며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으나,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54]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대표로써 인물 배치를 너무 못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이라는 거의 일당제에서나 나올 법한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본인도 종로에 출마했다가 이낙연을 상대로 삼청동과 가회동을 내주고 사직동과 평창동에서 겨우 승리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또한 공천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잘못된 공천으로는 이혜훈 전 바른정당 대표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시킨 것[55]·이언주 전 미래를향한전진4.0 대표를 부산광역시 남구 을에 전략공천한 것[56]·인천광역시 부평구 갑에 정유섭 의원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에 옛 국민의당 출신 문병호 전 의원을 출마시킨 것[57]·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경상남도 양산시 을에서 컷오프한 것[58]·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를 경기도 여주시·양평군에서 컷오프한 것[59] 등이 꼽힌다.[60][61]
이렇게 우파 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21대 총선 대패로 인해 현재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여론이 아주 약해진 상태이다. 총선 이후 잠행 중이던 행보에서 최근 복귀하려는 듯한 행보를 걷고 있다. 몇 개월 간 잠적하는 중인데도 여론조사에 따라 원희룡, 주호영, 김종인 등보단 높게 나오는 걸로 보아 콘크리트 지지층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다. #
황교안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통합진보당을 직접 해산시킨 바 있고, 또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으로 보수 지지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 이전에만 해도 이낙연과 투톱을 이루는 강력한 대권후보였던 것인데, 당대표를 하며 기대와는 달리 강성보수 성향 목소리를 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총선 참패와 함께 당대표에서 사퇴했으며 본인 또한 종로에서 이낙연에게 밀렸다.
또한 2021년 재보궐선거와 제20대 대통령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친박세력 없이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친박의 대표주자이자 기독교 우파의 대표주자 황교안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떠나고 황교안이 다시 몸풀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당 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매우 강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
이후 황교안에게는 정치인보다는 공무원에 더 어울리는 인간형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안검사 출신으로, 주어진 틀 내에서 일하는 데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스스로 판단하고 판을 짜는 대표직을 수행하기에 어려웠을 거라는 의견.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장관, 차관 등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직책에는 좀 무리가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2022년 12월, 민주노총 해체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노동계와 진보좌파 세력의 거센 비토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2021년 이후 대선 경선에서는 컷오프 경선에서 탈락하고 당대표 선거에서는 당원들에게조차 안철수, 천하람에게 밀리며 체급이 많이 떨어졌다.
5. 사퇴 후보
아래의 인물들은 최종 후보로 등록했으나 단일화 또는 여러 이유로 대선을 포기하고 사퇴한 경우다.6. 출마 불가
아래 인물들은 출마 선언을 하였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등 여러 이유로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인물들이다.6.1. 자유통일당
====# 전광훈 #====<colbgcolor=#0958A7> | 전광훈 (全光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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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4년 4월 30일, 경상북도 의성군 |
현직 | 사랑제일교회 고문 자유통일당 상임고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의장 |
상황 | 출마 선언 - 2028년까지 피선거권 박탈 |
그러나 사람들의 전광훈에 대한 인식 자체가 일부 지지층을 제외하면 불호가 다수라서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고, 비슷한 포지션인 황교안또한 대선에 출마했으며 대선에 출마하는 행보가 실질적으로 보수 표 몰집에 방해가 되기에, 전광훈 본인이 그렇게 싫어하는 이재명에게 유리한 행동이라는 우려가 많다.[63] 그런데 본인도 "차라리 이재명을 당선시킬지언정 국민의힘을 낙선시키겠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에 대해서는 자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광훈의 출마 의사가 무색하게 전광훈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2018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전광훈에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7년 대선 당시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를 지지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전 목사는 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사랑제일교회 교인 등을 상대로 1038회에 걸쳐 397만 527건에 달하는 장성민 지지 문자를 전송했다. 전광훈은 앞서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부산·전주 등지에서 기독교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사전 선거운동을 해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때는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기소돼 2024년 10월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항소심 진행 중으로, 오는 5월 선고가 예정돼 있다.#
게다가 전광훈은 2024년 총선에서도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재판을 받고 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통일당 비례대표에게 '공천 헌금'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24년 비상계엄 및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주도한 혐의(내란선동) 등으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판례들로 실형을 선고받아 2028년까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이때문에 정치후원금 및 헌금을 모집하기 위하거나 국민의힘을 자극하기 위해 거짓으로 출마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7. 경선 참여자
아래 인물들은 한 정당의 경선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국민의힘 #===
====# 강성현 #====
<colbgcolor=#E61E2B> | 강성현 (姜聲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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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5년 5월 12일 (59세), 전라남도 무안군 압해읍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17대 대선 | 예비후보 (대통합민주신당) |
20대 대선 | 후보 등록 반려 (국민의힘) 후보 등록 반려 (국민의당) |
약력 | 농수산물직거래 강성현 장터 대표 민주당 영세상인보호특별위원장 영등포구 대림동 도깨비 우리시장 상인회 대표 |
서류탈락
====# 김민숙 #====
<colbgcolor=#E61E2B> | 김민숙 (金民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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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0년 5월 5일 (74세)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약력 | 서영대학교 초빙교수 20대 대선 국민의힘 서울선거대책위원회 강남갑 조직특보 |
서류탈락
====# 나경원 #====
<colbgcolor=#E61E2B> | 나경원 (羅景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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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12월 6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
상황 | 1차 경선 탈락 |
국민 first! 국익 first!
끝까지 대한민국!
서울 서울 중구와 동작구에서 5선을 지내고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여성 중진 정치인이다. 민주당에 추미애가 있다면, 보수당에는 나경원이 있다 할 정도로 박근혜를 이을 보수 여성 정치인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며, 정치력과 경력으로는 여성 정치인 중 박근혜 다음가는 수준이다.[64]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엄청나게 강경한 태도로 당심을 얻었다. 하지만 그 부분이 국민들로부터의 비호감 이미지와 수구적인 이미지 그리고 중도 확장성에서 매우 큰 타격을 받은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서울시장 경선 낙선 후에는 매파적인 이미지는 많이버린 편이다.끝까지 대한민국!
21대 총선 낙선,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경선 탈락,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낙선, 그리고 윤석열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한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 해임으로 인한 당대표 불출마의 잇따른 악재가 있었던 점에서 예전보다 존재감이 줄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여당이 전국적으로 참패하는 와중, 지역구에서의 개인기를 발판삼아 22대 총선에서 동작구 을에서 5선에 성공하며 국민의힘의 잠재적인 대권주자 반열에 드는 등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층에서 이미지 개선이 관건.
만약 당선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되며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 1960년대생 대통령이 된다.[65]
4월 11일 국회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였다.#
국민의힘 경선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나경원이 뒤에 업었던 윤심의 실체가 생각보다 부실했거나, 나경원 본인의 졸전으로 인한 탈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양향자 #====
<colbgcolor=#E61E2B> | 양향자 (安哲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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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7년 4월 4일 ([age(1967-04-04)]세), 전라남도 화순군 |
현직 | 양향자 반도체 아카데미 대표 |
상황 | 1차 경선 탈락 |
경선돌풍 • 본선태풍
첨단산업대통령 양향자
대한민국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첨단산업대통령 양향자
삼성전자에 고졸[66] 여직원으로 입사해서 상무까지 올라, 삼성그룹 역사상 첫 여상 출신 임원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탈당하고 한국의희망이라는 신당을 창당했다가 제3지대 통합으로 개혁신당에 소속되었으나 국민의힘 경선에 참가하기 위해 개혁신당에서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였다.
1차 컷오프.
====# 유정복 #====
<colbgcolor=#E61E2B> | 유정복 (劉正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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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7년 6월 16일,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 |
현직 | 제16대 인천광역시장 |
상황 | 1차 경선 탈락 |
일하는 대통령
유정복 인천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직후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최종후보가 될 때 1호 공약으로는 개헌을 통해 2026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총선),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을 내세웠으며 "과감하게 1년 동안 대한민국을 혁신시켜 놓고 물러난다는 각오로, 미련 없이 권력에 안주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
1차 컷오프.
====# 이철우 #====
<colbgcolor=#E61E2B> | 이철우 (李喆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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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년 8월 15일, 경상북도 금릉군 감문면 |
현직 | 제33대 경상북도지사 |
상황 | 1차 경선 탈락 |
새로운 박정희
10만불 시대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다음날인 4월 5일에 "무너지는 나라를 보고만 있겠나"라며, "초일류 대한민국은 자유우파 지도자라야 가능하다, 모두 일어나서 자유우파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라는 글을 올리며 사실상 조기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10만불 시대로!
이철우 지사는 동시에 TV 예능 프로그램 미스트롯을 모방한 방식으로 당내 경선을 치르자고도 주장했다. 미스트롯은 TV조선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수의 지원자가 참가해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우승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지사는 "부산역, 동대구역, 대전역, 광화문 광장 등 전국을 순회하면서 자유 우파 승리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며, "자유 우파 후보들이 우후죽순 출마하면 그 후보를 따르는 유권자들이 힘을 받아 일어서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출마 확정 시 4월 9일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
국민의힘 경선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 정일권 #====
<colbgcolor=#E61E2B> | 정일권 (丁一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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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2월 12일 (55세)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약력 | 민족통일촉진본부 홍보실장 학원 원장 |
서류탈락. 컷오프 이후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인지도부터 자질까지 후보 등록 당시 기준이 있었다면 후보 등록을 했겠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
7.1. 진보당
====# 강성희 #====<colbgcolor=#d6001c> | 강성희 (姜聖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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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2년 9월 7일, 서울특별시 |
현직 | 진보당 전주시 지역위원장 |
끌려 갈 것인가? 끌고 갈 것인가?
강해야 진보한다!
2025년 3월 7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강해야 진보한다!
8.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아래의 인물들은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최종 후보 등록 기간에 등록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속한 인물들은 무소속이거나 군소정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후 경선 탈락자들은 경선 참여자 목록에 기재하면 된다. 예비후보자 목록은 선거정보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8.1. 국민의힘
====# 김공옥 #====<colbgcolor=#E61E2B> | 김공옥 (金公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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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5년 12월 5일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9. 불출마자
아래의 인물들은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철회하고 경선 참여를 최종적으로 하지 않은 후보들을 기재하는 곳이다. 본인이 처음부터 대선 출마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선언한 인물은 기재가 불가능하다. 단 출마 선언후 예비후보 등록전에 불출마를 선언했으면 기재가 가능하다.9.1. 국민의힘
====# 이정현 #====<colbgcolor=#E61E2B> | 이정현 (李貞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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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10월 13일,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
현직 | 초대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 |
상황 | 출마 선언 후 불출마 선언 |
2025년 4월 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5년 4월 1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9.2. 더불어민주당
====# 김두관 #====<colbgcolor=#152484> | 김두관 (金斗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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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9년 4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 |
현직 | 더불어민주당 양산시 을 지역위원장 |
상황 | 출마 선언 후 경선 불참 선언 |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컷오프 |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3위 |
20대 대선 | 더불어민주당 경선중 사퇴 |
불안한 시대, 든든한 김두관
남해군수, 행정자치부 장관을 거쳐 2010년 6.2 지방선거때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해서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 민주당의 대권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67]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저지른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지나치게 문 후보를 공격한 그의 행보가 두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그러나 더문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친문과 화해를 기도하고,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또한, 21대 총선에선 김포에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당 지도부 및 친문 그룹의 요청에 따라 험지인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여 강력한 후보인 전직 양산시장 미래통합당 나동연 후보[68]를 꺾고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는 그가 민주당 당적을 달고서는 경남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양산시는 낙동강 벨트에 속하는 곳으로 부산 인접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등 민주당의 연고성이 있고 지지세가 비교적 강한 곳이기도 했지만, 21대 총선이 PK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일보 후퇴하는 가운데에서 사수해낸 승리로 1석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이를 계기로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당선 후 인터뷰에서 김두관은 대권에 도전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내에서 비주류임에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양산을 후보로 재차 출마하였으나 이 지역에 전략공천된 김태호에 패배하며 더불어민주당의 PK 잔혹사[69]가 이어졌고 낙선함에 따라 향후 정치 행보에 적신호가 켜졌다.
친문 지지층에서 김두관의 과거 행보에 대한 비토(Veto)가 여전히 존재하는데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명 지지층과도 적대관계가 되었다.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로 두 번째로 광역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이 되며, 최초로 경상남도지사 출신 대통령이 될 것이다.
2025년 4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오는 7일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실시할 예정이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직후에는 페이스북에 "낡은 87년체제를 끝내고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개헌을 지지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
그러나 자신이 주장했던 완전개방형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거부되자, 2025년 4월 14일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 불출마가 아닌 '경선 불참'을 선언한 것이기에, 무소속 또는 제3지대 출마 가능성은 열려있다.
2025년 4월 18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 김영록 #====
<colbgcolor=#152484> | 김영록 (金瑛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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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년 2월 17일, 전라남도 완도군 |
현직 | 제39대 전라남도지사 |
상황 | 대선 출마 선언 후 불출마 선언 |
2025년 2월 3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였다. #
장점으로는 2018년 초선 당선 이후 현재까지 1~3위를 다투는 높은 직무수행능력 및 지지도가 있으며 단점으로는 전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낮은 인지도가 꼽힌다.
당선된다면, 최초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출신, 전라남도지사 출신, 건국대학교 출신 대통령이 된다.
4월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남 도약과 호남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조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2] 호남의 광역자치단체 3곳은 본시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며, 제주도의 경우도 최근 민주당의 우세지역이 되어서 민주당이 여론조사 기간 내내 일방적인 우세를 보여왔던 반면, 경기도는 여조 기간 내내 김동연의 우세를 예측하는 조사와 김은혜의 우세를 예측하는 조사의 비가 거의 1:1에 가까울 정도로 혼전 양상을 보였고, 실제로도 출구조사는 아예 김은혜 후보의 초접전 우세를 예측했을 정도로 승부가 박빙이었다. 게다가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국내 인구 1위 광역자치단체인만큼 그 상징성과 중요성이 남다른데 그곳에서 이긴 것. 순식간에 체급을 확불린 모양새가 되었다.[3] 형제들이 빨리 죽었기에 늦게 출생신고를 하려는 과정에서 그만 이재명의 생일을 헷갈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서 정한 생일이다. 정확히는 22일인지 23일인지가 헷갈려서 점쟁이에게 물어봤다고. 이 때문에 실제 생년은 1963년이며, 위에 열거된 생일은 주민등록 상의 생일이다.[4] 現 경상북도 안동시[5] 개표 초반에는 20~30%p 차이로 앞서갔으나 개표가 진행될수록 윤석열과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었고, 이후 개표 50.9% 때 역전당하여 결국 재역전하지 못하고 낙선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 지역이 먼저 개표를 많이 시작해서 초반에 앞서는 듯 보이는 것도 있고 실제로 두 후보 표차가 매우 근소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기도 했다.[6] 대장동 논란의 경우 이재명 고문 본인을 둘러싼 많은 의혹만큼이나 적지 않은 수의 여야 의원들과 대법관들까지 엮여있는 이슈라 건드리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의 엘시티 사건처럼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꽤있다. 실제 엘시티의 경우 이거 잘못 손대면 정치권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살벌한 소문이 파다했고 결국 몸통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꼬리자르기로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치권에 엄청난 대격변이라도 일어나야 엘시티 사건을 파헤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즉 모두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7] 더군다나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도 대장동 논란에 영향을 끼쳤다는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이 있어서 얼마든지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이라 잘못 건드리면 임기 내내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현재 검찰수사권 법안이 통과된 상태라 새롭게 신설될 수사기관에서 의심점을 포착한다면 기관에 명운을 걸고 탈탈 털 가능성이 높고, 설령 검찰이 수사권을 계속 가지고 있어도 이미 검찰은 정권 실세를 수사해서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던만큼 역시 의혹이 발견되면 물불 안가리고 수사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 반대로 일이 너무 커지겠다 싶으면 엘시티 사건처럼 꼬리자르기로 마무리 될 가능성도 있다. 즉 대장동 의혹의 경우 어디로 불똥이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8] ‘당 대표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경우 대선 1년 전 대표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현행 당헌에 예외 조항을 추가했다.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 대표·최고위원의 사퇴 시한을 상당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9] 대법원에서 허위사실공표 혐의가 뒤집힐 경우의 수도 있으나, 이는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수준의 엄청난 정치적 파장이 벌어질 것이 예상되기에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 22년간 대법원이 2심 무죄를 직접 상고심 유죄선고로 바꾼 파기자판 판결은 0건이었으며, 사법연감에 따르면 10년간 대법원이 처리한 1612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중 파기자판 된 사례는 2014년 1건에 그쳤고, 이마저도 유죄가 아니라 공소기각 판결이 났다. # 경선이 종료된 뒤에 유죄선고가 나와서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대선후보가 없는 상태로 선거를 치를 수 밖에 없고, 정권교체도 어려워진다. 게다가 경선종료 후에 대선후보를 날려버리는 행위는 정치적으로 너무 속보이는 행동이라서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10] 본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잡혀갈 것을 예감하고 잡혀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라이브를 켰다고 했다.[11] 소년공 시절 산업재해로 인해서 골절상을 입었는데 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왼쪽 팔이 굽었다. 그래서 왼손으로 폰을 들고 오른팔 한쪽만을 이용해서 담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12] 경기 부천시 소사구[13] 2025년 기준 74세, 2027년 기준 76세.[14] 실제로 한동훈은 책을 출판하는 등 빠르고 확실하게 대선 준비 행보를 나섰는데 이 때문에 배신자라며 집단으로 공격 당하는 상황이다.[15]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16]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17] 반은 반대의 반, 혐은 혐오의 혐이다.[18] 이광재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끝내 안철수를 꺾어내지는 못했다.[19] 출처 #[20] 디시인사이드(주류 갤러리 위주), 엠엘비파크 등[21] 실제로 문재인 정부하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이 문재인 정부의 높은 국정지지율에 힘입어 2020년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었다. 하지만 쟁점법안 처리 부실, 홍남기 등 기재부 관료들과 공모하여 재난지원금 88% 선별지급 결정, 이명박근혜 사면 건의 등 지지층과 동떨어진 행보를 연발한 바람에 대선주자 적합도가 수직하락했고 이재명 지사에게 유력 대권주자 자리를 넘겨줬다. 그리고 대선 경선국면에서 과도한 네거티브를 하는 바람에 대권주자 랭킹에서는 아주 멀어졌다.[22] 사상구, 창원시 성산구가 대표적인 예시다. 그나마 사상구는 송숙희 후보가 불출마를 하면서 어느 정도 차단이 된 상황이다.[23]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며, 실제 생년월일은 1953년 11월 20일이다.[24] 경선 중에 이재명과의 양자대결 기준으로 20대 남성 지지율이 70%를 훌쩍 넘는 여론조사들이 부지기수로 나온 바가 있으며 한국일보에서 국민의힘 경선 결과에 기뻐한 60대와 좌절한 20대 영상도 있었다. # 또한 학생층 지지율도 매우 높았다.[25] 차기 대선 기준으로 73세이다.[26] 일각에선 홍준표가 나이 문제 등으로 대권 도전 의지가 없어보인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현재 대구시장으로서의 행보 등을 보면 여전히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게 맞다.[27] 다른 곳 4선이 아니라 서울시의 경합지 4선이라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심지어 이 4선 중에는 2004년 탄핵 정국의 후폭풍 속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도 있었다! 이 시기 열린우리당이 서울 동북부를 정복할 때 동북에서 유일하게 홍준표의 지역구만 뺏어오지 못해서 홍준표는 동북 유일의 한나라당 당선인이었다. 비슷한 선수의 박병석, 송영길, 주호영, 조경태, 이낙연, 정진석, 서병수, 정우택, 김진표, 조정식, 변재일 등은 지역구가 텃밭이거나 그 지역의 터줏대감이었지만 서울시 지역구 의원은 다른 곳에 비해 확장성이 높다. 4선 서울시장 오세훈이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민주당계의 강세지역인 은평과 강북 그리고 금관구 라인, 보수정당계의 강세지역인 서남송 라인 같은 텃밭은 예외.[28] 한나라당과 자유한국당 대표, 즉 여당과 야당 대표를 각각 해본 경력을 가진다.[29] 20대, 30대 남성과 중도층의 지지는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후 재평가 여론이 불붙으면서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민주당에 비난을 넘기거나, 계엄을 내란이 아닌 소란에 불과하다며 옹호하는 듯한 언행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다시 오리무중해졌다.[30] 페널티 적용[31] 이에 홍 시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구내식당 구석진 자리에 가림막 하나 설치했다고 별궁이라 하고 시청 청사 내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은 부당하니 밖에서 하라고 지시한 걸 과잉 단속이라고 한다”며 “시정에 불만이 있으면 정면으로 비판해야지 되지도 않은 가십성 기사로 흠집이나 내보려는 참 못된 심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었다.[32] 이준석 지역구인 화성시 을에서의 개혁신당 비례대표 득표율은 무려 15% 정도였다. 화성시 전체 득표율은 9.2% 정도였다.[33] 물론 이준석 본인은 차기 대선에서 직접 주자로 나서는 대신 킹메이커로서 활약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34] '사실상'인 이유는 공직선거법상 궐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실시하도록 되어있기에, 만약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 31일 이전에 대선 실시를 결정하더라도 위법이 아니고 이 경우 이준석은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직선거의 중요성, 그 중에서도 대선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법정 기간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으로 인해 조기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사레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될 시 60일 후에 조기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35] 이후 4월 5일~6일에 진행된 조사에서는 7~9%의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36] 당내의 인기 정치인인 용혜인 대표는 나이 제한으로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37]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후술할 행보들로 인해 "배신자",'프락치"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게 밖혀 있다.[38] 대표적으로 문을 여니 조국이 보인다라는 짤까지 만들었던 클리앙조차 사면 건의 발언 이후로 완전히 이낙연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고, 그 외에 수많은 친민주당 커뮤니티들이 친이재명으로 돌아선 계기가 됐다.[39] 이 패배가 민주당, 특히 이낙연 입장에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냐 하면, 민주당 지지층마저 대부분 투표를 포기하거나, 군소정당 및 원외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심지어는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이었다.[40] 결국 종로구를 이듬해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가져가면서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41] 득표율이 13.84%로 선거비 전액을 보전받지 못한 채 낙선하였다.[42] 사실 여기는 해당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가 논란으로 인해 취소되면서 해당 지역 내 민주당 지지층을 김종민이 어렵게 끌어오면서 겨우 당선된 것이다.[43] 만약 김종민이 탈당하게 된다면 새로운미래는 아예 원외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44] 현재 원외정당이기에 진보당이 출마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최소 기호 6번이고, 만약 여론조사에서 이낙연의 평균 지지율이 5%를 넘지 못한다면 초청대상에도 속하지 못해 군소후보들과 함께 단 한번의 토론회만을 참여하게 된다.[45] 현 태백시. 부친은 광부였다. 다만, 유년시기를 제외하고 실질적으로는 포항시-경주시에 적을 두고 있다.[46] 이쪽인 경우는 정의당 등을 지지하던 골수 좌파나 페미니스트, 민주당을 지지하며 정의당을 대안으로 지지하던 지지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참여계-새로운진보로 대표되는 당내 우파를 정의당 몰락 요인으로 꼽지만, 후자는 평등사회네트워크 - 전환으로 대표되는 당내 좌파를 주 몰락 요인으로 꼽는다.[47] 특히 역시 선출경력이 없는 윤석열이 실책을 거듭하다 비상계엄을 일으키면서 더욱 더 마이너스가 되었다. 그래도 윤석열과는 다르게 선거 출마 경험은 여럿 있고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어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이외 정당 후보로는 당선이 어려운것을 감안해야한다.[48] 現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49] 물론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바른정당 창당 이후 지역 내 비토 의견이 강해졌고, 결국 21대 총선에서 해당 지역구에 불출마했다.[50] 당장 친박 - 초기 친윤이라는 인천 동구·미추홀구 을의 윤상현도 유승민을 호출했다.[51] 당내 구태들이 정치적 사망을 한 뒤 당권을 장악하려는 김웅의 계획이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추측된다.[52] 이재명이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후보들과의 양자대결과는 달리 50%를 넘지 못했을 뿐이다.[53]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54]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삭발과 단식, 총선을 앞두고 각종 실언과 공천 파동 등 안 좋은 이미지가 누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55] 이혜훈은 서초구 갑에서 3선을 지냈고, 동대문구 을에는 연고가 없었다. 심지어 서울에서 보수세가 강한 서초구 갑과 진보세가 강한 동대문구 을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정 반대이다.[56] 이언주는 경기도 광명시 을에서 재선을 한 인물로, 부산에선 태어나 자라기만 했을 뿐 그 쪽에는 정치적 기반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언주는 부산 전체가 자신의 고향이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결과는...[57] 원래 정유섭과 문병호 모두 부평구 갑 출마를 희망했는데, 지역구민들에게 민심을 잃은 상태였던 정유섭을 선택하고 정작 경쟁력 있던 문병호는 연고도 없는 영등포로 보내버린 것.[58]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이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다 쓰러져가던 당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2위를 달성한 홍준표를 공천 배제하고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나동연 양산시장을 공천하였다. 참고로 홍준표는 원래 자신의 고향 창녕군이 속한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선거구에 출마할 생각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양산시 을에 출마한 경남지사 출신 김두관을 잡겠다며 출마 희망 지역을 바꾼 것이었다.[59] 정병국은 여주·양평에서 5선을 지낸 잠재적 대선주자 급의 중진 의원으로, 의정생활 동안 석불역 개통, 경강선 KTX 개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성공시킨 바 있어 지역구에서 인망이 높았다. 그런 사람을 컷오프하고 친박·친황계의 김선교 전 양평군수를 공천했는데, 김선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 실패 및 여러 가지 논란들 탓에 이미 군수 시절부터 군민들한테 평판이 매우 나쁜 인물이었다.[60] 특히 홍준표, 정병국 등을 컷오프한 것은 미래에 대권을 두고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잠재적 대권 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그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61] 결국 이혜훈, 이언주, 정유섭, 문병호, 나동연 후보는 모두 낙선했으며, 그나마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도 어렵게 당선되었고, 전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하였다. 그리고 김선교는 당선되었지만, 국민의힘의 우세 지역인 여주시·양평군에서 50%를 겨우 받는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 김선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여러 구설수에 계속 오르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23년 의원직을 박탈당하였다. 당선 여부에 관계없이 김선교도 명백한 공천참사이다.[62] 자유통일당 직전 총선 득표율 기준[63]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의 표를 다 합치면 문재인의 표보다 많았다. 그러나 안철수의 득표율을 순수 보수표로 보기는 어렵다. 안철수는 보수 후보임을 자칭했으나, 그가 속한 정당은 호남권 민주당계 정당인 국민의당인데다, 안철수가 호남권에서 얻은 28% 가량의 표가 보수 우파 유권자들의 표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전광훈은 2020년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를 강행하여 코로나19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전력이 있는데, 그의 이 악행이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을 반등시켜 주었다.[64] 국민의힘 내에서 선수로는 2022년 6월 보궐선거로 국회에 복귀한 김영선이 5선으로 앞서며 2000년대까지는 김영선이 박근혜, 김무성, 홍준표와 같은 4선 의원이자 여성 유력 정치인으로 위상이 높았으나 19대 총선 낙선 후 정계 중심에서 밀려났다가 10년 만에 복귀하였기에 현 시점에선 나경원의 위상이 더 높다.[65] 박근혜도 5선 여성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66] 물론 이후 대학원 석사까지 하였다.[67] 김두관이 당선된 시절의 경상남도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계에 매우 가까운 인물로서 당선된 건 당시 기준으로는 이변이었다.[68] 결국 미래통합당 내부의 이견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한때는 홍준표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양산을 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려고도 했기 때문에, 전직 경남도지사 출신 대권주자 간의 빅매치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69] 김해시와 창원 성산, 울산 동구를 제외하면 모두 고배를 마셨다. 기대를 걸었던 부산 역시 개인기가 출중한 전재수가 아니었으면 전원 낙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