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7 10:46:59

홍준표/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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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선호도에 포함되어 있는 대권주자에 한하여 서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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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장점
2.1. 능력
2.1.1. 뛰어난 행정능력2.1.2. 합리적인 사법개혁 주장2.1.3. 발언들의 재평가2.1.4. 정당 정치의 경력에서 나오는 융통성
2.2. 지지도
2.2.1. 당내 후보들 중 높은 인지도2.2.2. 활발한 소통, 본인 홍보2.2.3. 탄탄한 선거경쟁력2.2.4. 자수성가2.2.5. 무난한 종교성향
2.3. 기타
2.3.1. 친박과 거리두기2.3.2. 당내 가장 돋보이는 경력
3. 복합적
3.1. 매우 짙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항마 이미지3.2. 토론 실력
3.2.1. 해명
3.3.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3.4. 나이 부분
4. 단점
4.1. 과격한 이미지4.2.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의 실패4.3. 빈약한 당 내 기반4.4. 우익 대중주의적 행보 4.5. TK를 벗어나지 못하는 행보로 인한 한계4.6. 강성 보수층 및 당원 표심에서의 비토

1. 개요

서울시 4선 국회의원, 재선 경남지사, 초선 대구광역시장, 원내대표 1회, 당대표 2회를 거쳐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이력이 있고, 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하는 것도 성공한 경험이 있는 홍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장점과 단점을 나누어 분석한 문서.

2. 장점

2.1. 능력

2.1.1. 뛰어난 행정능력

본직이 검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정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동대문구 을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청량리 588 철거와 적극적인 재개발을 추진하여 주상복합단지를 건설시켰고, 국적법을 발의하여 제2의 스티브 유 사태를 방지시키도록 하였다. 이 국적법 발의가 홍준표를 일개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닌 전국구급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디딤돌이 된 것은 물론이고 노무현 탄핵 사태 이후 답보 상태에 있던 한나라당의 혁신위원장[1]을 맡아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려 2006년~2008년에 있었던 지방선거, 대선,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3연속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또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사채업 이자율을 30%대로 제한시키고 대학등록금 차등 지급 방안을 발의하였다. 경상남도지사 시절에는 경남 채무 0원, 청렴도 1위, 무상급식 감사로 비리 개선, 남명학사 설립,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년 연속으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로 선정되었고, 사천[2]진주에 항공우주 산업단지를, 밀양나노 산업단지를, 거제도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여 이 3개의 국가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적극적인 일자리 유치를 하여 경상남도를 반석 위로 올려놓았다. 또한 적자가 누적된 진주의료원을 과감히 정리했다.[3] 대구광역시장이 되고 나서도 막대하게 시정에 쌓인 빚 부터 갚아 나갔고, 하늘길부터 열겠다며 지체되고 있던 TK신공항 사업부터 속전속결로 추진했다.

2.1.2. 합리적인 사법개혁 주장

홍준표는 검사 출신이지만 현직 검사 시절 옳은 수사를 하다가 좌천도 여러번 당하고 결국 검사 옷을 벗기까지 한 만큼 당적을 고려하면 검찰, 사법부 개혁에 있어서 의외로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

특히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노무현, 문재인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개혁 자체를 찬성하는 편인데,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이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홍준표의 이런 입장이 지지율 확보에 도움이 된다. 특히 같은 당의 타 후보들은 검찰개혁을 반대하거나 침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대편 지지자들의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4]

2.1.3. 발언들의 재평가

홍준표는 지지자들에게 홍준표 + 노스트라다무스의 합성어인 홍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며 국정운영의 혜안과 통찰력을 갖춘 지도자로 평가 받았다. 그의 정치적 선견지명에 기반한 발언들이 선거철에는 막말로 비판을 받다가 선거가 끝난 다음에 의도를 천천히 돌이켜보면 홍준표의 발언이 언행이 거칠고 막말 어조로 말해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라며 재평가될 때가 꽤 많았다.

예를 들면,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과 김정은이 만났을 때 유일하게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이다'라고 지적했다가 전국민적으로 비판을 받았는데, 이후 북한이 저지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때 재평가를 받았고, 보수진영에서는 19대 대선 TV토론 당시 어떻게 저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갖다 얼마나 억압할까라는 발언도 홍준표가 문재인에 대한 혜안이 엄청나다고 재평가를 하기도 했다.

또한 소위 50억 퇴직금 논란이 일었던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경선 토론회에서 의원직 사퇴를 굳이 압박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퇴할 거라는 발언을 했는데 나중에 곽상도 의원이 진짜로 의원직을 사퇴하여 재평가받았다.

그리고 정말 많은 비난을 받았던 발언인 '창원에 빨갱이가 많다' 속칭 '창빨많' 조차도 이후 창원에서 실제로 간첩단이 검거되면서 역시 '홍준표가 옳았다'의 사례가 되었다.#

또, 의원회관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를 갈아엎지 않는다면 이대로 가다가 2025년 초에 식물 정부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는데, 2025년 1월에 정말로 체포가 되면서 성지가 되었다. # #
구분 예측 실제
창원시 창원에 빨갱이 많아 창원 간첩단 적발[5]
보수 통합 바른정당 세력까지 모두 품고 보수 대연합을 이루어야 한다.[6] 바른정당 탈당 사태, 미래통합당 합당
김진태 결국 목표는 내년 강원도지사가 아닌가[7] 1년 후는 아니지만 5년 후 지방선거에 강원도지사 출마, 당선[8]
문재인 저런분이 대통령 되면
얼마나 국민을 억압을 할까
문재인 대국민 모욕죄 고소 사건
남북정상회담 위장평화쇼 9.19 선언 파기 및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
심상정 대통령이 될 일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런 꿈은 안 꿔도 된다[9] 제19대 대통령 선거 낙선 이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인이 당대표로 있던 녹색정의당에서 본인 포함 단 1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하지 못하고 출마한 후보들이 전원 낙선했다는 이유로 정계 은퇴.
곽상도 제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사퇴할 것이다 토론회 직후 사퇴[10]
윤희숙 숭어가 날뛰니 망둥어도 날뛴다 부친의 부동산 불법 거래 및 투기 논란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사퇴
김웅 철부지가 날뛴다
선배 말 안 듣고 성공한 사람 없다
윤석열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란에 연루되어 입건
김경수 김경수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유죄판결
경남도지사직 박탈
미투 운동 미투 운동으로 좌파들 많이 걸러냈으면 한다 안희정 성폭력, 오거돈 성추행 혐의로 인한 구속 및 박원순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
경선 골든크로스 추석전후로 골든크로스 예상 9월 3일 골든크로스[11]
윤석열 尹, 대장동 첩보 받지 않았나 대검 중수부, 부산저축은행 수사 초 '대장동 대출' 조사하고도 불기소[12]
문재인 정부가 의도적으로 추윤갈등을 일으켜 윤석열을 야권 진영의 주자로 세운 후 정권을 재창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윤석열의 경선 승리 후 김한길, 신지예 등 좌파 인사 대거 영입, 새시대준비위원회로 당선 후 신당 창당 준비 계획, 윤석열의 '원래 민주당에 가려 했는데 못가고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으로 왔다' 발언, 그리고 대통령 당선.
최재형 2022년 3월 재보궐선거 종로구 최재형 전 감사원장 전략공천 요구 최종후보 최재형 확정[13]
김재원 윤석열에 대한 김재원의 옹호를 두고 대구시장이 목표일것이라 예측 김재원 대구시장 출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되면 당이 또 다시 이전처럼 분열하고 윤석열 정부도 큰 위기 맞을 것. 보수 궤멸시키는 주범이 될 것이다. 한동훈이 국민의힘 대표가 된 후 한동훈계가 형성되고 그 계파에 속한 인물들이 윤석열 정부를 연일 맹비난[14]

2.1.4. 정당 정치의 경력에서 나오는 융통성

정당 정치의 경력만 보자면 홍준표만큼 골고루 경험을 해본 정당 정치의 베테랑도 찾기 힘들다. 워낙 과격한 이미지가 유명해서 본인이 좌파라고 몰아가는 다른 당과의 관계가 무조건 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다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막상 너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토론회 같은 곳에서는 다른 당 정치인들과 농담도 던지며 융통성 있는 모습도 보이고는 한다. 진보 계열로 분류되는 시사 평론가들 또한 이러한 홍준표의 융통성을 장점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2022년 6월 들어와서는 정당 정치의 베테랑답게 “여당이 됐으면 전부 힘을 합쳐서 야당을 설득해 밤낮으로 국회 개원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배짱을 부리면 안 된다”며 “양보할 거 있으면 양보하고. 근데 국회는 내팽개치고 자기들끼리. 애들 장난도 아니고”며 날카롭게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며, 여당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2.2. 지지도

2.2.1. 당내 후보들 중 높은 인지도

19대 대선에서 2위를 했다는 사실과 대통령 탄핵 이후의 대선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대권 후보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국민들도 홍준표를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관심이 곧 표가 되는 선거 때 높은 인지도는 경선과 본선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어드밴티지로 그것을 증명하듯 2021년 8월부터 윤석열의 실책으로 인해 이탈한 지지층을 급속도로 받아먹으면서 본격적인 20대 대통령 당 내 경선이 시작하기도 전에 범야권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윤석열을 급속도로 추격하였다.

21대 대선에서도, 야당에서 일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능가하는 인지도를 지닌 후보는 홍준표 시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외의 유력 대권주자 자체가 없고, 국민의힘 내에서는 안철수, 오세훈, 한동훈 정도가 그나마 그에 준하는 인지도를 가졌다고는 하나 역시 홍준표의 인지도가 단연 높다. 정치권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기초로 한 분석에 따르면 홍준표는 "대중 인지도" 면에서 강점을 보여 각각 강성 보수층, 신세대 지지층을 흡수하는 김문수,한동훈 등과 더불어 안정적으로 보수 후보의 빅3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

2.2.2. 활발한 소통, 본인 홍보

홍준표는 예전부터 연령, 출신, 계파와 정치성향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는 좌파논객과도 많이 소통해 왔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나꼼수에 출연했으며 진중권이나 유시민과 토론을 자주 하였고, 홍카콜라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에는 주진우 라이브나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에도 출연하며 확장성을 많이 늘렸다. 요즘은 중도층은 물론 친민주당 내지 좌파 진영에서도 홍준표가 괜찮다는 여론이 돌 정도이다.

빈번하게 청년들과 즉문즉답 대화를 열고 TV홍카콜라 개국과 홍준표의 희망편지 등의 캠페인을 통해 좋은 여론을 조금씩 확보하였고, 지지자들 내지 청년들을 위한 청년의꿈 커뮤니티를 만들어 올린 여러가지 질문에 직접 답변을 달아주는 등 소통면에서는 홍준표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2.3. 탄탄한 선거경쟁력

홍준표는 선거에서 제법 불리한 조건에서 상당한 선방을 여러 번 거둔 정치인이다.

17대 총선 당시에는 노무현 탄핵의 영향으로 열린우리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던 상황에서도 서울 동북권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유일한 한나라당 후보였으며, 19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는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당시 새누리당에서 출마하면 무조건 낙선하고 3위 안에 들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준표는 출마하여 그 문재인을 상대로 전혀 굴하지 않는 선거운동을 보여주고, 안철수한테는 "난 아바타 정치 따윈 안 한다" 등으로 간단하게 관광 보내버린다. 결국 24.03%의 득표율로 2위를 해 낙선했지만 안철수를 누르고 자유한국당을 회생시켜 놓았다.

또한 지난 총선에서 역시 황교안의 견제로 인해 미래통합당의 인사배치로 공천에서 배제당했는데, 홍준표는 탈당 후 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해서, 비록 친정인 미래통합당에서 출마한 이인선을 누르는 팀킬을 저질렀지만 오직 홍준표 이름 석 자만 들고 나와서 당선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심지어 홍준표가 출마를 희망했다 컷오프당한 양산시 을에서 미래통합당더불어민주당에 패배하여 홍준표의 승리가 더욱 대비됐다. 이렇게 현재로서는 국민의힘 후보들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다.[15]

또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는 당원 투표에서 밀려서 낙마했을 뿐 여론조사에서는 되려 홍준표가 윤석열보다 우위를 점했다.

2.2.4. 자수성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비슷한 장점으로 가난했던 과거 스토리가 유명하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창녕군합천군, 대구시 등지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국민학교 시절에 6군데나 전학을 다닐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사귈 수 없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항상 1등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영양 부실로 인해 국민학교 졸업 당시 키가 겨우 124cm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도시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합천군을 벗어나 대구시 영남중학교에 진학했다. 숙식은 대구 직물공장에 취직한 누나 방에 얹혀 살며 해결하기로 했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부친과 8km를 걸어 대구행 버스를 탔는데, 무거운 지게를 진 부친 뒤에서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절대 가난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대구 대명동 사글세방에서 누나들이 싸주는 꽁보리밥 도시락을 먹고 공부했다. 그나마 도시락도 없이 혼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홍판표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결국 대구로 이사왔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셋방 단칸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스토리로 대한민국 대선 후보를 볼 때 가정환경을 보는 특성상 좋게 작용할 확률이 높다.

요약하자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훗날 성공하겠다는 집념으로 열심히 살아온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들기에, 호감을 불러일으키기 좋다.

2.2.5. 무난한 종교성향

과거 이명박이나 황교안이 불교계에 상당한 반감을 샀던 것과는 다르게 홍준표는 개신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영남 지역이 불교가 강세인 것을 의식한 듯 불교계와 관계가 매우 원만한 편이다.[16][17] 또한 이슬람 관련해서도 노골적인 편애나 적대 대신에 온건한 입장을 보여준 바 있고[18], 이 때문에 오세라비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9]

기불릭 문화가 강한 오늘날 대한민국 상황에서 타 종교계와 마찰 없이 지내는 부분은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20] 그렇다고 과거 박근혜처럼 사이비 종교 논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진보진영에서 노골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진영논리만 가지고 편애하는 상황 혹은 윤석열이 성경을 옆구리에 끼지 않았다고 기독교인들에게 비판받은 케이스 등과도 거리가 멀다.

2.3. 기타

2.3.1. 친박과 거리두기

홍준표는 특유의 추진력과 급진 우파성향 때문에 성향이 거칠 뿐이지, 사실 박근혜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많이 받은 비박계 인사이다. 오죽하면 친박 성향 싱크 탱크가로세로연구소가 홍준표를 비방하고 다닐 정도다.[21] 박정희의 의료보험제도는 훌륭한 좌파식 정책이라 칭찬하며,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좌파 정책도 펼칠 것이라 말하였다. 특히 김영삼 키즈로 정계를 입문한 만큼 5.18 민주화운동이 민주화 운동임과 전두환이 독재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 번은 "5.18, 4.19, 3.15 전부 다 똑같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두환의 친형인 전기환을 교도소로 보내버린 장본인 또한 검사 시절의 홍준표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상도동계 인사[22]라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지만 극우 유튜버들 대다수가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고 왜곡하기 때문에 이 점은 장점으로 봐야 한다. 애초에 비박계인 데다가 특권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고[23],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나치 독일제노사이드에 버금가는 반인륜적인 범죄로 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물론이고 식민지 근대화론반대하며 극우친일세력들과는 엄연히 선을 그었다.[24] 21대 총선에서는 친박 성향의 인사들이 주장하는 21대 총선의 부정선거 음모론에도 완전히 선을 긋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친박 세력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비판, 참여정부가 민주화의 완성이고, 참여정부를 계승해야 한다고 본다[25] 등 이러한 점은 여권의 대항마 이미지와 더불어 친박에 반대하는 반문, 반민주당 계층들에게서 재평가를 받고 지지를 끌어모으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견해 덕인지 호남에서는 윤석열보다도 더 높은 지지율을 받기도 했다.[26]

2.3.2. 당내 가장 돋보이는 경력

전술했듯 홍준표는 주요 대선주자들 중 정치 커리어가 압도적으로 높은 정치인이다.

검사로 시작해서 5선 국회의원, 국회 상임위원장, 여당(한나라당) 원내대표, 여당(한나라당) 대표, 재선 경상남도지사, 대통령 선거 후보, 제1야당(자유한국당) 대표 등 굵직굵직한 경력을 다수 쌓았다. 그리고 8회 지선에서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돼서 헌정사상 최초의 민선 복수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추가되었다.

홍준표는 추미애와 동일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로 데뷔한 동기다. 하지만 그 이후 행보는 달랐다. 추미애는 광진구 을에서 5선, 경기 하남시 갑에서 1선을 하고 법무부장관과 민주당 대표를 한 게 정치이력의 전부인지라 경력의 폭이 다소 좁은 반면 홍준표는 송파구 갑에서 초선을 지내고 동대문구 을에서 3선, 한나라당 대표, 재선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 당대표, 수성구 을 무소속 국회의원을 거쳐 대구광역시장까지 당선되는 등 국회의원 3곳 5선(송파갑1, 동대문을3, 수성을1)에 지방자치단체장 3선(경남지사2, 대구시장1)을 해 추미애와는 비교도 안 되게 경력이 많다. 특히 경합지인 동대문구 을에서의 국회의원 이력은 진보 성향의 유권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동대문구 을 3선 동안 청량리 588을 철거하고 재개발을 주도하여 이 지역을 많이 발전시켰다는 치적도 있기 때문이다.

3. 복합적

3.1. 매우 짙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항마 이미지

홍준표 특유의 거칠고 직설적인 성향과 대선에서 24%의 득표율로 2위를 했다는 점 때문에 문재인의 라이벌, 대항마로서의 이미지가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하여 3위를 한 안철수나 4위를 한 유승민에 비해 강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토가 임기 초중반부터 드러나게 되면서 홍준표의 막말프레임을 많이 씻어내고 문재인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맞섰던 홍준표가 재평가가 되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다면 가장 인지도가 높은 홍준표가 대선 기간 동안 여권 비토층들에게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짙은 여권 대항마 이미지는 양날의 검으로 강성 우파 이미지가 강해지는 효과도 나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3.2. 토론 실력

이전부터 어조가 거칠어 막말 논란에 종종 휩싸이기도 하지만 한 말빨 하는 정치인이다 보니 토론에 엄청나게 강하다고 평가받았다. 동네 아저씨스럽게 말하다가 핵심만 콕 찝어서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라서 지지층들을 굳히는데에 유리하며,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에도 잘 뽑힌다.

진보진영에서 달변가로 유명한 유시민과의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는 토론실력을 보여주며, 실전에서도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의 질의응답, 19대 대선 경선토론 당시에는 김진태5.18 북한개입설에 대해 하나 하나 반박해 철저하게 관광을 보냈고,[27] 본선 토론에서는 홍준표와 같이 토론에 강한 유승민에게도 밀리지 않았으며, 문재인, 안철수에게는 그야말로 탈탈 털어버리는 실력을 보여줬다.[28][29] 게다가 토론 도중에도 쉴새없이 쏟아내는 유머로 관중들의 웃음을 유발해내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서[30] 홍준표가 참여한 토론은 진영을 떠나 분위기가 매우 밝은 편이다.

본인의 주장을 말하고, 논거를 통해서 주장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토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담담한 그의 어조가 강점으로 꼽힌다. 매우 차분하면서도 토론 상황에서 긴장할 법 하면서도 긴장하지 않는 여유, 담담한 어조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그의 말 솜씨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한 수 접어 인정할 정도로 매우 뛰어난 편. 특히 19대 대통령 선거 TV 토론 당시 옆에 있던 안철수가 갑철수 드립으로 자폭했기 때문에 오히려 홍준표를 포함한 나머지 후보들이 각광받는 반사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과정에서 당초 토론으로 윤석열 후보를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 달리 당내 토론에서 프레임이 잡힐만한 네거티브성 질문에는 질문이 악의적으로 들린다라거나, 다음에 답변드리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여주고 수소 발언, 소위 조국수홍 논란이 일어나는 등 이전과 달리 혹평을 받았다.

진땀 흘린 홍준표…원희룡 "수소 뭘로 만드나" 질문에 "H2O 아닌가"
홍준표 “조국 수사 과했다” 발언에…‘조국수홍’ 패러디 나와

홍준표 후보와 토론을 했던 원희룡 후보는 썰전 라이브에서 "윤석열, 홍준표 후보와는 솔직히 정책 토론이 되질 않는다.", "여기서 나쁘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지난 4년 전에 비해서 뭐라고 할까, 총기가 많이 떨어지신 것 같고 준비를 좀 안 하시는 것 같다. 그 쪽 캠프 이야기를 들어봐도 토론 준비를 거의 안 하시고 나온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준비를 안 해도 임팩트 있고, 독기를 좀 자제하시는 것은 좋다."고 좋은 평가도 있었으나, 다시 "죄송한 얘기지만, 같은 후보나 반대하는 사람,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예전보다 그릇이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고 혹평했다. 그는 토론에서의 일을 이야기 하면서 홍 후보의 인간성과 함량을 안 좋게 평가했다. "대장동 의혹을 파헤칠 동안 무엇을 하셨냐"는 원 후보의 물음에 홍 후보가 "(대장동을 잘 알면) 내 밑에 들어가서 TF 팀장이나 해라"라고 받아친 것, 본인에게 '역겹다'고 하고 사과 한 점 없던 것을 언급했다. 공약을 지적하자 쪼잔한 사람으로 몬 것을 이야기하며 "만약 자신이 고민해서 나온 공약이라면 그걸 모를 수가 없다."고 그의 공약에 대해서도 전문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

또, 원희룡 후보는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서는 "홍준표 후보는 대통령 되려고 진지하게 문제를 시름하고, 사람을 중시해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자기 품을 넓히는 데는 별 관심이 없으시구나’(싶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공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공약에 대해 질문했다고 같은 당 후보에게 '야비하다'며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한다.",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31]

3.2.1. 해명

윤석열, 토론회 준비 주력...홍준표, 경기 당원 인사
홍준표 "이준석 바람이 조직 깼다, 지금 내가 그렇다"
'2030 열광'에 질주했지만…조직표 장벽에 고배 든 '무야홍'

홍준표는 자신을 따르는 조직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직접 전국에 있는 당원협의회를 돌면서 당원인사를 하며 당심을 챙겨야 했고 다른 후보들이 총선 불출마를 하거나 사퇴를 했던 것과 다르게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라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홍준표는 토론을 준비하고 공약의 디테일을 챙길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는 본인이 본선에 나가게 된다면 당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언급을 하기도 했다. #

3.3.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여 만에 해제한 사건에 대해 페이스북 게시글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계엄을 "해프닝"으로 언급하며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으나, 연이은 입장 발표에서 "해당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 직권남용이고, '탄핵이 아닌 질서 있는 퇴진'으로 수습해야 한다"라고 하며 탄핵반대론이면서 어느 정도는 온건한 의견을 제시했다.[32]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반대했으며 '질서 있는 퇴진'을 실행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던 것으로 보아 계엄에 대해서는 비판적 의견을 고수하고 있으며, 퇴진 자체는 찬성하지만 탄핵은 향후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민주당을 향해서도 '입법독재'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날선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다, 여론조사에서 70%가량의 국민이 계엄 사태를 내란으로 보는 것은 물론 대통령 탄핵에도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걸 감안하면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계엄 사태에 대한 법적 검토와 유무죄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 정서와의 시각차가 큰 주장을 지속하는 것은 향후 대권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온건 탄핵반대론이 현재 보수세력의 주요 콘크리트 지지층에게도 어필하기 쉬운 것도 아닌데, 어쨌든 윤석열의 직권남용은 인정하는 등 강경 탄핵반대론에 비해 유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3.4. 나이 부분

홍준표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 중 다섯 번째로 나이가 많다.[33] 이번 21대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70세에 대통령이 되어 74세에 퇴임하게 되는데, 고령의 나이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의 경우, 일국의 통치자라는 특성으로 인해 온갖 국내외 현안과 관련된 업무가 날마다 몰려드는지라 어지간한 최고의 정치인들이나 거대 기업의 수장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며, 이를 버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소속 정당과 나라까지 위험해진다. 따라서 대통령 업무에 치이다 보면 사람 한 명의 건강을 망치거나 아예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실제로 대통령을 포함한 일국의 국가원수들의 임기 극후반 시점의 외형이 임기 초보다 나쁜 쪽으로 변했다면 절대 다수의 원인이 바로 과중한 업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70대의 노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당선 전에는 건강했다고 하더라도 임기 도중 노인성 질환을 얻거나 아예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34]

또한 고령의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반적으로 좋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만 78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은 임기 내내 고령의 나이가 주된 약점으로 꼽혔다. 심지어 2024년 대선에선 상대측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와 비호감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바이든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고령의 나이로 인한 우려가 잇따르며 지지율이 떨어지자 결국 카멀라 해리스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넘겨주고 사퇴해야 했다.

물론 홍준표는 70세인지라 바이든보다 훨씬 젊으며, 바이든은 공식 석상에서 넘어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지속적으로 포착되거나 허공에 악수를 청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는 등 소위 '노망'끼를 보였기 때문에 논란이 일었던 것이지, 단순히 고령이란 이유만으로 문제가 됐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후 재임한 도널드 트럼프 역시 70대 후반의 나이에 임기를 다시 시작했으나 바이든과 달리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바이든만큼 나이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진 않다. 홍준표도 트럼프처럼 말도 잘하고 건강이슈도 전혀 없으며, 광폭적인 대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고령의 나이가 무리가 되진 않는다. 또한 국내에서도 이승만, 김대중 등 70대 초중반의 나이에 대통령이 된 정치인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기에 홍준표의 대선 출마도 크게 무리라고 볼 순 없다.

홍준표 역시 나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지 2025년 제21대 대선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하고 있다.#YTN과의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꼰대다 식으로 자칭했는데 앵커가 "그런데도 2030 남성층에서 홍 후보님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냐"며 질문을 하기도 했다. #

4. 단점

4.1. 과격한 이미지

홍준표는 대선 기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시절부터 과격한 발언으로 자기 스스로 논란을 만들기로 유명하며 이런 막말 프레임은 그의 발목을 종종 잡곤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 전에 복당 시도를 하였으나 홍준표와 개인적 악연이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복당을 저지하며 이를 명분으로 삼은 것이 대표적이며 이후에도 6월 24일 이전까지 홍준표의 복당을 반대하는 여론이 적잖게 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정도. 2021년 10월 30일 국민의힘 의원이자 국민캠프 소속 권성동 국회의원이 지선 당시 대표였던 홍준표에게 막말 관련 보고서를 올렸다가 퇴짜맞은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해보겠다"라는 일명 '노자검' 발언을 보면[35]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을 노 전 대통령이 받은 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빗댄 것인데 과격한 어휘 선택으로 인해 목적이 가려졌고, 평소에도 이런 경향을 자주 나타낸다.

불편한 진실을 시원시원하게 내지른다며 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 반면 반대 진영으로부터는 좋지 않은 평을 듣기도 한다. 온건파인 원희룡 같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36]

홍준표는 "거짓말하는 것보다 심한 말을 사용해서라도 진실을 전파하는 게 낫다"라는 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내세우고 다니지만 과거 전력을 보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말을 뒤바꾸는 행태로 볼 때 이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도 인정한 꼰대 이미지도 알려져 있다.[37] 여성 비하 발언이나[38] 권위적인 태도로 인해 그 동안 꼰대 이미지가 있었는데 20대 대선을 준비하면서 탈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39]

4.2.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의 실패

대선 이후 홍준표는 대선에 출마해 탄핵으로 박살난 당을 살린 공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의 당대표에 선출되었지만, 대표로 선출된 후 보인 홍준표의 행보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 치러진 7대 지선에서의 모습이 대표적으로, 여기에서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보다는 높은 지지와 승리를 얻었지만, 헌정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참패를 당했다[40]. 그것도 그냥 패배도 아닌 경합 우세였던 부울경과 서울의 강남구, 송파구, 용산구도 모자라, 경상북도 구미시까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나오는 등, 지방권력을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에게 뺏기는 역사상 최악의 대참패였다.[41]

심지어 또다른 대표 텃밭인 대경권에서도 많은 표들을 민주당에게 허용했다.[42] 이는 2년 뒤 치러지는 21대 총선에서 적지 않은 악영향을 줬고, 보수층에게도 제대로 비호감 이미지를 가지게 된 원인이 됐다.

물론 비박계인 홍준표가 당대표였다지만, 여전히 당의 주류는 홍준표와 정반대 성향인 친박 의원들이라 홍준표가 당 세력을 장악하는데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고[43] 하필이면 선거 두 달 전 남북평화무드로 인해 국민들간의 민심이 남북문제에 대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며 기대하는 분위기가 상당해 야당에게 매우 불리한 형국이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었다.[44]

다만 해당 발언들이 추후에 재평가 된 건 둘째 치더라도 남북/북미정상회담은 국가의 문제이고, 중앙정치판 이슈라서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쟁점이 될 수 없는데도 홍준표가 남북 평화무드를 쟁점으로 삼은 탓에 위장평화쇼 발언들이 뉴스 헤드라인에 실렸고, 결과적으로 당시 민주당의 호재인 남북평화무드를 홍준표 본인이 손수 나서서 홍보해주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비호감 이미지도 당시 친박과 박근혜 프레임에 묶인 탓에 친박들과 마찬가지로 최악으로 치달았던 데다가,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만 주력하기 위해 친박들을 손절하며 반성과 쇄신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한 점에서 불리함을 가져왔고,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도 홍준표 본인의 잦은 막말 때문에 표가 오히려 달아난다는 이유로 홍준표의 선거 유세를 거절한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준표 본인에게도 문제가 크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대표 시절 영입한 인물들을 보면 주옥순@, 류석춘&, 강연재* 등으로 이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욕과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짓을 해 국가를 위험에 빠뜨려 우파의 이미지를 바닥을 뚫고 내핵까지 가게 만든 원흉으로 한 동안 좌파가 앞으로 집권을 수십년 동안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홍준표가 이들을 당원으로 불러오고 키웠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전에 탈당을 해 사실상 '난 나가니깐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라' 듯이 나왔다. 다행이도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와 박원순 성폭력 사건 등으로 이미지가 매우 심각하게 실추되어 겨우 회생할 수 있었다. 이런 일 등으로 홍준표가 복당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

4.3. 빈약한 당 내 기반

홍준표는 검사 시절도 그렇고 정치인 시절에도 좋게 말해서 독고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언제나 특정 계파에 전혀 속하지 않고 대부분 당 내 비주류에 있어서[45] 16 ~ 18대 총선 때 험지에만[46] 공천을 받았으며, 비주류였기에 자신만의 기반(일명 친홍)을 제대로 일궈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유한국당 당대표에 선출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친홍이라는 기반을 만들었지만, 친홍은 어디까지나 굴러들어온 돌에 불과했고, 여전히 당의 주류는 박힌 돌인 친박이었다. 무엇보다 홍준표 본인도 자기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내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 후 당대표직을 내려놓으며 당 내 기반이 박살났다. #

그의 당대표 시절을 직접 겪은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은 홍준표 후보의 캠프로 좀처럼 모여들지 않는다. 홍준표 캠프에 합류한 현역 의원이라곤 단 두 명 정도다. ## 현역 의원이 쏠려가는 윤석열 캠프와 비교되어 그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다. ###
독고다이 기질은 21대 총선에서도 다시 나타났는데, 당시 친박의 좌장 황교안이 이끄는 미래통합당은 홍준표에게 뜬금없이 험지이자 연고도 없는 구로구 을에 출마시켜 정치 생명을 끊어버리려 하자[47] 불복을 선언하며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 나와 당선되었다. 이로 인해 8년만에 중앙정치로 부활하긴 했으나, 자기 혼자 살겠다고 당을 배신했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편 다시 복당을 노리며 태극기 세력도 보수이니 품어야 한다며 주장을 해 왔으나, 참패 후 낙선황교안친황들이 몰락하고, 검사 시절 악연이 있는 비대위원장 김종인이 당권을 쥐게 되면서 홍준표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당권은 고사하고 눈앞에 있는 복당 문제조차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홍준표를 달갑지 않아 하는 하태경, 김웅 등의 친유계 의원들의 반대로 막히다가 국민의힘 지지층의 높은 복당 여론에 # 힘입어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후보 5명의 전원 찬성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게 된다. # 이후 이준석 체제가 출범되면서 6월 24일 최고위원회의 전원 찬성으로 마침내 복당하였다. # 복당 이후에도 홍준표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작은정부론과 정치인 밥그릇 줄이기, 공천자격시험 강력지지 등 정치 개혁을 주장하여 여전히 당 내 정치인들의 비토가 강하다. 이런 이유로 대권후보로 떠오른 윤석열이나[48] 최재형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어서 그들에 비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기반이 많이 부족한 홍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둘째치고 당 내 경선에서 밀리게 되었다.

본인도 다시 당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선 당시 윤석열을 공격하던 태도를 완전히 뒤집고 현시점 당을 장악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옹호하며 유승민, 이준석, 나경원 등 비윤 및 반윤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비윤계와 일부 청년 지지층의 지지를 잃고 있는 점은 뼈아픈 부분.[49]

4.4. 우익 대중주의적 행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그의 공약은 경쟁자들로부터 포퓰리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유승민 경선 후보는 그와의 토론에서 공약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했다. # 공매도 폐지 공약에 대해 "굉장히 위험한 발상.", 모병제 공약에 대해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평했다. 여기에 더해 "좋게 말하면 화끈하고 나쁘게 말하면 극우적인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평가했다. # 또한 여성 징병제에 반대 입장이다. # # 정시 100% 확대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거면) 왜 고등학교를 다니겠냐. 공교육을 완전히 없애자는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홍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논의하겠다."며 답을 회피했으나 유 후보는 "대통령이 되려고 공약을 하는 건데 대통령 되고 나서 살펴보겠다는 거냐"고 다시 따졌다. # 홍 후보에 대해 "반짝 중도일 뿐 나보다 훨씬 극우"이라고 평가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극우적이라고 본다. 때려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건 아니다.", "홍 의원이 이재명 후보와 정책으로 하나하나 붙으면 중도층을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국방 공약 마저 포퓰리즘으로 칠갑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

윤석열 캠프 전략비서실장은 "홍준표는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했다. "경륜이 아니라 정치 생활에서 나쁘게 익힌 구태"라며, 이재명 지사와 이란성 쌍생아"라고 혹평했다. #

4.5. TK를 벗어나지 못하는 행보로 인한 한계


당내 지지율 때문에 경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인지 중도층을 포섭하려 노력했던 20대 대선 경선 때와는 대조적으로 대구광역시장이 되고 나서는 대구 중심적 사고를 갖고 우편향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박정희 기념사업에 누구보다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고 광장 이름을 박정희 광장으로 개칭하자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시민단체는 박정희 우상화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상황이다.[50]

이러한 홍준표의 행보는 보수층 결집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대권주자로서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정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호남 표심[51]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든 어느 정치인이든 어느 정도 중립성은 지켜가면서 대권에 도전해야 지지를 이끌어내기 좋은데 이렇게 과도할 정도로 박정희를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행위는 호남의 반감을 크게 살 수 있다.[52]

물론 홍준표의 나이를 생각하면 박정희 기념사업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보수층과 산업화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의도로 벌이는 행보로 해석할 수도 있다.

4.6. 강성 보수층 및 당원 표심에서의 비토

20대 대선 경선 당시에도 일반 국민 상대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10% 내외의 격차로 따돌렸지만 당원투표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큰 차이로 밀려 낙선한 만큼 당심에서의 열세가 확인되었었는데, 22대 총선 이후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한동훈을 연일 공격하는 행보로 인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의 비토가 윤석열 정부 이전보다도 더 심해졌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상 현재 홍준표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당심에서의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여론조사에서 이를 상쇄할 만큼의 큰 격차로 이기지 않는 이상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20대 대선 경선 당시에도 민심에서는 윤석열을 앞섰으나 당심에서 크게 밀리면서 낙선하기도 했다.

다만, 한동훈의 대표직 사퇴 및 일부 핵심인사의 친한 이탈과 더불어 배신자 이미지까지 더해져 친한계가 상당히 축소되었으며, 당내 주요 대권주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53] 윤석열 탄핵에 반대의사를 꾸준히 보냈던 홍준표이기에 이번 기회에 탄핵 반대 유권자들의 표를 독식함으로써 반등할 기회가 생겼다. 홍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못한 비박계였음에도 소속 정당이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져서는 절대로 안된다며 끝까지 탄핵을 반대하였고, 이번 윤석열 탄핵 정국 때도 윤석열과 개인적인 사이는 여전히 좋진 않으나[54] 대통령 탄핵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 번 강경 보수층에 어필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과 맞붙게된다면 상술된 장점들을 통해 강경 보수층에서 충분히 장점을 어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었으므로 이 행보가 중도층의 표를 얻는 데는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탄핵 정국에서 기존 국민의힘 대권주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탄핵 반대 의사를 표했음에도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지 못했고,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이 신흥 대권주자로서 등장해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즉, 강경보수 입장에서 김문수라는 대체재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에 홍준표를 크게 눈여겨볼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대선이 조기에 치러지든, 2027년에 정상적으로 치러지든 만약 홍준표가 이 단점을 상쇄하고 대선 본선에 오르려면 그 동안 당의 주류였던 친박, 친윤계 정치인들과 사소했던 악연을 청산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본인이 윤석열 정부의 과업을 누구보다도 잘 이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정통 보수층의 민심도, 당심도 조금이나마 더 가져오면서 본선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 시선을 본인도 알고 있는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해 친윤계인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절대로 임명해서는 안된다며 단식 투쟁을 벌이자 국회에 따뜻하게 격려를 하러 가주기도 했다.


[1] 이 당시 당대표가 박근혜였다. 박근혜 대표가 자신과 거리가 먼 비박 친이인 홍준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여 개혁의 칼을 쥐여주었고, 홍준표 위원장이 제시한 개혁안도 모두 수용해주었다. 비록 박근혜는 개혁안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해질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대선 경선은 이명박이 승리해 당선됐지만 다음 대선에서 부활에 성공했다. 게다가 현 국민의힘의 각종 당규도 이때 홍준표가 제안하고 박근혜가 수용한 개혁안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큰 틀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즉 현 국민의힘의 각종 기반도 모두 홍준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2] 사천은 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등 원래부터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된 지역이다.[3] 다만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논란이 있으며, 이 문제를 의식했는지 도지사 교체 이후 서부경남의료원 재개원이 추진되고 있다.[4] 다만 홍준표의 검찰 개혁 방안과 민주당의 검찰 개혁 방안은 완전히 다르다. 홍준표는 검찰의 수사권은 그대로 존치하고, 일부 권력을 제외한 검찰의 권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도 민주당식 검수완박에는 명백한 반대를 표하였다. #[5] "창원에 빨갱이가 많다"라는 발언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무렵에 했었는데, 대략 5년 뒤인 2023년 1월에 진짜로 2016년부터 간첩 활동을 이어온 간첩단이 검거되어 예언이 적중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6]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 경선 당시 탄핵 찬성 세력을 밟고 가야 한다는 김진태, 이인제에게 한 말이다. 함께 후보로 나온 김관용 경북지사는 홍준표의 의견에 동의했다.[7]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 경선 당시[8] 당시 홍준표가 제기한 강원도지사 출마설에 대해 김진태는 "생각해본 적 없다."라고 답했다. 생각을 안 해본 건지 부인한 건지는 김진태 본인만이 알겠지만, 5년 뒤 단식투쟁까지 해가면서 공천장을 따내고 강원도청에 입성한 걸 보면 부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9] 19대 대선토론 당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가 나서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한 심상정에게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이다.#[10] 당시 홍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제명을 해야 한다고 답했을 때 유일하게 홍준표만 이렇게 답했다.[11] #[12] (당시 주임검사 윤석열, 변호사 박영수)#[13] 1월 당시에는 비판을 받고 거절당했다.[14] 단,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인해 탄핵이 인용된 현 시점에서는 한동훈과 친한파가 보수궤멸의 주범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15] 홍준표가 탈당해있던 당시, 가세연은 홍준표를 씹으면서도 '저건 선거귀신이다. 미래통합당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복당하면 바로 당권 먹어버릴 것' 이라며 우려반 인정반의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16] 물론 "절대는 중의 담뱃대"라는 농담을 했다가 불교계로부터 "흡연이 엄격히 금지되는 승려와 불교를 우스갯소리로 희화화했다"라는 비판을 받는 등 트러블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그냥 홍준표 특유의 유머로 넘어가졌고, 평소에 불교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왔고 어릴 적부터 불교와도 연관이 있어 왔기에 논란이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다.[17] 황교안이 초극우 정치목사 전광훈과 친분 및 신천지 싸고돌기 관련한 논란이 거셌을 당시, 홍준표 역시 전광훈과 같이 사진 찍은 적은 있지만 최소한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와는 거리를 두고 다른 종교랑 두루두루 좋게 지낸다는 인식이 있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오히려 지금은 전광훈이 홍준표에게 자주 막말과 욕설을 하여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다.[18] 사실 이슬람 관련해서도 당시 윤석열 정부의 중동 원전 유치 사업 등으로 인해 외교적인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립서비스에 가까웠고 그 이후로는 이슬람에 딱히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립서비스가 과했던 나머지 지지자들에게도 비판받은 건 흠이라면 흠.[19] 오세라비가 비판을 한 것과 다르게 홍준표는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자 한 적도 없고, 홍준표의 해당 의견은 미라클 작전 관련하여 나온 발언이었다. 심지어 김재원 전 최고위원도 미라클 작전 관련자들을 받아들이자고 하였다.[20]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허용/인정되었을 당시에도 페이스북 상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을 비판하는 포스트를 올리되 여호와의 증인 교리 혹은 해당 종교 신자들에 대한 비판은 자제한 바 있다.[21] 사실 정광용TV, 펜앤마이크 등 소수의 친홍 성향 유튜브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보수 유튜버들은 친윤 성향이며 홍준표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세연은 원래 같은 보수 인사도 자신들과 노선이 맞지 않으면 좌파라고 비난하는 곳이다.[22] 국민의힘에도 운동권 출신들이 꽤 있으며 당장 YS계 인사 중 가장 성공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6.3 항쟁을 주도한 학생운동가였다.[23] 자유한국당 대선 수락 연설 때 정유라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며 비판했다.[24] 19대 대선에서도 독도에 해병대 주둔과 기반시설 예산 확충 등을 공약으로 내걸으며 대일저자세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으며, 친일 서적인 반일 종족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여 윤서인, 지식의 칼 등 친일 극우 성향의 유튜브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홍준표의 아버지부터가 강제징용 피해자 출신이다.[25] 2007년 1월 3일 홍준표 본인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일 때 쓴 글이다. 실제로 홍준표와 노무현은 정적 관계였긴 하지만 홍준표가 노무현을 대놓고 적대하거나 그의 정책들을 싸잡아 부정하지는 않았다.[26] 윤석열도 5.18과 12.12에 대해서는 국가폭력, 반란이자 학살이라고 확실히 비판하는 쪽이지만, 전두환 옹호 발언 때문에 호남 지지율을 많이 깎아먹었다. 그런데도 윤석열이 호남에서 10%를 넘겼다는 것은(호남에서 10%를 넘긴 것은 물론이고, 역대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들 중 호남 득표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광주광역시에서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당선인과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해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이 나오지 않는다.) 영남에서 김대중이 10%를 넘긴 것보다 더욱 대단한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윤석열이 전두환 옹호 망언을 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선거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27] 오죽하면 당시 댓글 중 하나가 "욕 빼고 다 했다."며 완벽한 김진태의 패배라는 말이 있었다.[28] 단 경제 분야에서는 유승민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19대 대선에서도 유승민에게는 유독 밀리는 모양새였다.[29] 홍준표와 유승민의 화법엔 차이가 있는데 홍준표는 동네 아저씨스럽게 말하는 스타일이라면 유승민은 교수처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논리력을 기반으로 하는 화법을 구사한다.[30] 1972년에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웃으면 복이와요로 유명한 김경태 PD에게 개그맨 시험 응시를 제안받기도 했었을 정도라고 한다. 본인은 당시에 코미디언 시험에 붙었으면 검사고 뭐고 안 하려고 했다고.[31]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 서로 사과했다. #[32] 이 점으로 보아 해프닝이란 워딩 또한 계엄의 정당화보다는 짧은 계엄 지속시간에 포커싱을 둔 것으로 보인다.[33] 첫 번째는 박지원(본인이 직접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다고 해서 기재), 두 번째는 한덕수, 세 번째는 김문수, 네 번째는 이낙연.[34] 게다가 선출직 특성상 임기 도중에 당사자가 유고 혹은 하야로 인해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여러 방면에서 불필요한 손실이 발생하는지라 그와 그의 소속 정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임기 도중에 죽거나 나빠진 건강을 이유로 물러난다면 상대 정당과 후보가 "홍준표가 자신의 욕심을 참고 다른 정치인들처럼 70대 초가 가기 전에 은퇴했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고령의 홍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가 이런 사달을 낸 너희 당은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라는 식의 책임론이 홍준표에 대한 동정론을 압도하게 된다면 홍준표의 소속 정당은 매우 불리해지게 된다. 특히 홍준표는 고령의 나이에도 대권을 잡으려던 행보를 계속 보여줬던 만큼 해당 상황이 발생한다면 동정보다는 조롱/냉소와 같은 부정적인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지기 쉽다.[35] 유튜브 링크[36] 기사 링크[37] 기사 링크[38] #[39] 기사 링크[40] 물론 탄핵 정국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다[41] 알다시피 이 지역들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텃밭 내지는 우세 지역으로 유명한 동네들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선에서는 서울의 저 세 지역들은 물론이고 부울경 지역들 대다수도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당선되었다.[42] 대표적으로 경상북도 구미시는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되는 이변까지 일어났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강성 보수 지지층이 많이 분포해 있는 동네다. 다만 여기는 또 공업도시라서 젊은층도 많은 곳이라 경상북도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는 지역주의 성향이 낮고 캐스팅보트를 쥐는 청년층이 다른 기초자치단체들에 비해 수가 많다는 뜻도 된다.[43] 실제로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을 자유한국당으로 대거 복당시키기 위해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요구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조치를 들어준 후 강성 친박들에게 맹비난을 받아야 했다.[44] 이에 홍준표는 위장평화쇼라는 발언으로 견제했지만, 오히려 평화반대론자로 몰리며 역풍만 크게 받았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후로는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불과 2년 후, 북한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인해 위의 발언은 이후 상당수 재평가 되었다.[45] 이명박 정부 때 홍준표가 잠시 친이계로 분류되긴 하였지만, 넓은 의미에서 범친이계로 하나로 묶었을 뿐 그나마 주류에 가까웠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홍준표는 한나라당 내에서 아싸를 자처했다.[46] 다만 당시에 홍준표가 계파 싸움에 밀려 험지에 출마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홍준표가 동대문 을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2001년 사면으로 복권되자마자 재보궐 선거에 공천을 받아 출마한 것이고, 연고가 없던 강릉을 제외하면 구로 을 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였다. 애초에 13대 총선부터 18대 총선까지 국회의원은 계속 보수 정당이 차지했던 곳이었고, 대선과 지선의 경우 서울특별시 전체의 득표율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험지라고 보기도 어렵다.[47] 홍준표가 처음에 출마하고자 했던 지역은 그의 고향 창녕군이 있는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이었고, 이것이 반려되자 양산시 을에서 김두관과 맞대결을 하겠다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황교안 지도부가 이 두 가지를 모두 반려하고 한강 벨트라는 명목으로 수도권 출마만 요구했다는 점.[48] 심지어 친홍에 속했던 장제원은 윤석열이 입당하기 전 자신이 따랐던 홍준표를 버리고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대세로 보이는 윤석열 캠프인 국민캠프에 들어가버리는 일이 일어났었다. 대신 본인보다 훨씬 더한 독고다이인 사하 다이묘라는 별칭이 있는 조경태가 합류하긴 했다.[49] 다만 이건 윤석열 탄핵 또는 데드덕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이는 대통령이 탄핵당한 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점과 당장 본인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정당의 대선주자였기 때문으로 보인다.[50] 일단 동상은 세워지긴 했으나, 애초에 모든 걸 다 떠나서 동상의 생김새부터가 전혀 박정희와 닮지 않았다는 반응도 있다. #[51] 호남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전두환만큼은 아니지만, 박정희가 7대 대선을 기점으로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 발전에서도 호남을 소외시켰다는 인식이 강해 박정희에 대한 호남 여론은 좋지 않다.[52] 호남 기반의 김대중의 경우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을 상대로 이기고 당선되었는데, 대구광역시에서 15%의 득표율을 달성했다. 자신의 성향과 정반대인 지역구에서 표를 1표라도 뽑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친다.[53] 한동훈, 안철수, 오세훈, 유승민 모두 탄핵에 찬성했고, 홍준표 본인만 탄핵에 반대했다. 원희룡은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전당대회 패배 이후 존재감 없이 지내고 있다.[54] 그래서 친윤비윤도 아닌 중립 계파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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