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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피츠제럴드(제7대 킬데어 백작)

<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제7대 킬데어 백작
토머스 피츠제럴드
Thomas FitzGerald, 7th Earl of Kildare
성명 토머스 피츠제럴드
Thomas FitzGerald
출생 1421년
아일랜드 영지 킬데어주
사망 1477년 3월 25일
아일랜드 영지 킬데어주
아버지 제6대 킬데어 백작 존 피츠제럴드
어머니 마거릿 드 라 게르네
배우자 도로시 오모어, 조앤 피츠제럴드
자녀 존, 제럴드, 토머스, 제임스, 엘레노어, 앤
지위 제7대 킬데어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잉글랜드 왕국 아일랜드 영지의 백작, 군인. 장미 전쟁 시기 요크 왕조를 추종했다.

2. 생애

법률상 제6대 킬데어 백작이었던 존 피츠제럴드와 마거릿 드 라 게르네의 아들이다. 존 피츠제럴드는 형인 제5대 킬데어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의 작위와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었지만, 제5대 킬데어 백작의 처남이자 아일랜드의 거문인 제4대 오몽드 백작 제임스 버틀러의 반대로 상속이 무산되었다. 1434년 아버지로부터 킬데어 백작 상속권을 물려받은 그는 제4대 오몽드 백작 제임스 버틀러와 수 년간 투쟁한 끝에 가문의 영지와 작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1454년, 토머스는 아일랜드 법무관에 선임되었고, 1461년부터 1470년까지 같은 직책을 다시 지냈다. 1463년, 에드워드 4세의 법령에 따라, 그는 왕의 총애의 표시로 평생 아일랜드의 법무관이라는 직함을 유지했고, 이에 상응하는 봉급을 받았으며, 죽을 때까지 법무관의 일부 기능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1455년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의 아일랜드 부총독으로 선임되었다. 토머스는 부총독으로서 아일랜드 의회를 4번 소집했고, 잉글랜드 왕의 꼭두각시가 아닌 실질적인 입법 기관으로 만들었다. 또한 사촌인 제7대 데스먼드 백작 토머스 피츠제럴드와 함께 잉글랜드 국회의 아일랜드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법률 수용을 거부하고 아일랜드에 완저한 자치권을 얻도록 노력했다.

그러던 1468년 초, 데스먼드 백작과 킬데어 백작은 에드워드 4세로부터 아일랜드 부총독에 선임된 존 팁토프트에게 드로이다에서 긴급 체포되었고, 두 사람의 작위와 영지는 몰수되었다. 데스먼드 백작은 반역죄를 저지른 혐의로 1468년 2월 14일 드로이다에서 참수되었고, 킬데어 백작은 잉글랜드로 망명한 뒤 에드워드 4세에게 호소하려 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몰락하자, 아일랜드인들이 분노해 봉기를 일으켰고, 잉글랜드 왕이 다스리는 아일랜드 영지는 더블린 주변 지역으로 축소되었으며, 나머지 영토는 아일랜드 씨족이나 앵글로- 노르만 남작과 백작의 후손이 통제했다.

에드워드 4세는 아일랜드의 혼란이 심각해진 걸 보고, 킬데어 백작만이 아일랜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 대한 비난은 뒤집혔고, 그는 작위와 영지를 회복했다. 토머스는 1470년부터 죽을 때까지 아일랜드 총독인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의 대리인을 맡아 아일랜드를 통치했다. 1474년, 그는 페일의 방어에 참여한 군사 길드인 성 조지 형제당을 창립하고 이 형제단의 초대 대장이 되었다. 1477년 3월 25일에 사망했다.

3. 가족

  • 도로시 오모어: 레이크스 씨족의 수장 오니 오모어의 딸. 아일랜드의 거물인 그가 잉글랜드 여인과 결혼하길 원한 잉글랜드 당국의 압력으로 결혼 무효 처리되었다.
    • 존 피츠제럴드: 세인 피츠제럴드 오스버스톤으로 알려졌다. 세 아들 제럴드, 레이먼드, 리처드를 두었고, 아일랜드 여러 귀족의 조상이 되었다.
  • 조앤 피츠제럴드: 제6대 데스몬드 백작 제임스 피츠제럴드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