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오리사올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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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
스페인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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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 이름 | 엔리케 오리사올라 Enrique Orizaola | |
본명 | 엔리케 오리사올라 벨라스케스 Enrique Orizaola Velázquez | |
출생 | 1922년 3월 26일 스페인 왕국 칸타브리아지방 산탄데르 | |
사망 | 2013년 6월 11일 (향년 91세) 스페인 칸타브리아지방 산탄데르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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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불명 | |
직업 | 축구 선수 축구 감독 | |
소속 | 선수 | 라싱 산탄데르 (1941~1949) 히므나스티카 데 토렐라베가 (1949~1951) |
감독 | 히므나스티카 데 토렐라베가 (불명) 라싱 산탄데르 (1956~1958) 레알 하엔 (1958~1959) 레알 무르시아 CF (1959~1960) FC 바르셀로나 (1961) 스페인 U-18 (1962) CA 오사수나 (1962~1963) 레알 오비에도 (1963~1964) 레반테 UD (1964~1965)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65~1967) 레알 바야돌리드 CF (1967~1969) UD 살라망카 (1969~1970) 라요 바예카노 (1971~1972) CE 사바델 FC (1972~197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74) |
1. 개요
스페인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선수 시절에는 고향팀인 라싱 산탄데르에서 공격수로 주로 활약했다.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에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현역 감독으로 활동했다. 20개 가까운 클럽 팀과 스페인 유스 대표팀을 지휘했다.특히 1961년 FC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유러피언컵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스위스 베른의 슈타디온 방크도르프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의 벤피카와 맞붙었고, 바르사가 경기 내내 벤피카를 압도하고도 골대를 여러 차례 강타하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기 결과는 2-3 석패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바르셀로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사에서도 나름 업적을 세운바가 있는데, 축구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골대 형태를 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UEFA를 설득해 골대 규정을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상법 교수 직업을 가지고있었고, 이 덕분에 레알 사라고사가 스포츠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도왔다. 아들 엔리케 오리사올라 파스(1950-2007)는 변호사였고 2003년 1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코르도바 CF의 회장을 지냈다.
2. 경력
2.1. 선수 경력
오리사올라는 1941년 고향팀 라싱 산탄데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7시즌 동안 공격수로 활약하며 126경기 15골을 기록했다. 특히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1948년 같은 칸타브리아 주 연고지인 히므나스티카로 이적했다. 3시즌 동안 세군다 디비시온과 테르세라 디비시온을 오가며 활약했다. 1950년엔 1부 리그 승격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3.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인 1956년 모교 라싱 산탄데르 감독직을 맡으며 지도자로 변신했다. 이후 레알 하엔, 레알 무르시아를 차례로 거쳤다.1961년 류비샤 브로치치의 후임으로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으며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같은 해 유러피언컵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비록 벤피카에 패해 우승컵을 놓쳤지만 스페인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성과였다. 당시 산도르 코츠시스, 수아레스, 라슬로 쿠발라, 에바리스투로 이어지는 막강 스쿼드를 보유한 바르사였다.
1962년엔 스페인 U-18 대표팀을 이끌고 UEFA U-19 챔피언십에 참가했지만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오사수나, 레알 오비에도, 레반테, 데포르티보 등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클럽들을 두루 거쳤다. 1969년 지휘한 살라망카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강등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주로 세군다 디비시온, 세군다 B, 테르세라 디비시온 등 하부리그 팀들을 맡았다. 1974년, 1982년에는 두 차례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컴백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1년까지 3시즌 가까이 칼보 소텔로를 지휘하며 안정기를 누리기도 했다. 1982년 바다호스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인 1980-90년대에는 바르셀로나의 기술고문을 맡아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테리 베너블스, 요한 크루이프 감독을 보좌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레알 사라고사, 1993년부터 1994년까지는 알바세테에선 단장직을 수행했다.
2013년 6월 11일 고향 산탄데르에서 91세로 타계했다. 스페인 축구계의 큰 별이 졌다는 애도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