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0000>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감독 | 25 아라이 타카히로 |
1군 | 77 후지이 아키히토(1군 수석코치) · 83 아사야마 토요(타격코치) · 89 코쿠보 테츠야(타격코치) 80 아카마츠 마사토(외야수비·주루코치) · 90 미요시 타쿠미(내야수비·주루코치) 74 나가카와 카츠히로(투수코치) · 86 키쿠치하라 츠요시(투수코치) · 81 이시하라 요시유키(배터리코치) | |
2군 | 71 코 신지(2군감독) · 85 후쿠치 카즈키(수석 겸 타격·주루코치) · 84 아라이 료타(타격코치) 72 히가시데 아키히로(내야수비·주루코치) · 75 히로세 쥰(외야수비·주루코치) 82 요코야마 류지(투수코치) · 87 타카하시 켄(투수코치) · 76 쿠라 요시카즈(배터리코치) | |
3군 | 78 우네 타츠미(총괄 겸 기숙사장) · 91 무카에 유이치로(야수종합코치 겸 전력분석담당) 73 코바야시 칸에이(투수육성강화코치) · 92 노무라 유스케(투수코치 겸 전력분석담당)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틀: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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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아라이 타카히로의 직책 /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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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 반지}}} | ||||||||||||||||||||||||||||||||||||||||||||||||||||||||||||||||||||||||||||||||||||||||
2006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F8F2D> | 센트럴 리그 역대 최우수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코즈루 마코토 쇼치쿠 / 외야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 오토모 타쿠미 요미우리 / 투수 | 스기시타 시게루 주니치 / 투수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외야수 |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 투수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아키야마 노보루 타이요 / 투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 투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 투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외야수 | 에나츠 유타카 히로시마 / 투수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 에나츠 유타카 요미우리 / 투수 | 나카오 타카요시 주니치 / 포수 | 하라 타츠노리 요미우리 / 내야수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내야수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내야수 | 키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 투수 | 야마쿠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 포수 | 카쿠 켄지 주니치 / 투수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외야수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투수 |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 투수 | 잭 하월 야쿠르트 / 내야수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포수 | 쿠와타 마스미 요미우리 / 투수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 내야수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포수 | 사사키 카즈히로 요코하마 / 투수 | 노구치 시게키 주니치 / 투수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외야수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이가와 케이 한신 / 투수 | 카와카미 켄신 주니치 / 투수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카네모토 토모아키 한신 / 외야수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외야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 내야수 | 알렉스 라미레즈 요미우리 / 외야수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와다 카즈히로 주니치 / 외야수 | 아사오 타쿠야 주니치 / 투수 |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 포수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외야수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내야수 | 아라이 타카히로 히로시마 / 내야수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 외야수 | 사카모토 하야토 요미우리 / 내야수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내야수 | 무라카미 쇼키 한신 / 투수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홈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2개 야마시타 미노루 한큐군 / 2개 후루야 쿠라노스케 나고야킨코군 / 2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4개 마츠키 켄지로 오사카 / 4개 | 타카하시 요시오 고라쿠엔 / 6개 | 버키 해리스 고라쿠엔 / 6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10개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츠루오카 카즈토 난카이군 / 10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9개 | 핫토리 츠구히로 나고야군 / 8개 | 후루카와 세이조 나고야군 / 8개 | 후루카와 세이조 이와모토 아키라 카토 쇼지 나고야군 / 4개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카나야마 지로 산교군 / 3개 | 오시타 히로시 세네터스 / 20개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17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25개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46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코즈루 마코토 쇼치쿠 / 51개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32개 | 스기야마 사토시 나고야 / 27개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27개 | 아오타 노보루 요쇼 / 31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마치다 유키히코 코쿠테츠 / 31개 | 아오타 노보루 타이요 / 25개 | 아오타 노보루 타이요 / 22개 사토 타카오 코쿠테츠 / 22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29개 | 쿠와타 타케시 타이요 / 31개 모리 토오루 주니치 / 31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후지모토 카츠미 오사카 / 22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2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0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55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2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7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9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4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7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9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51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9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타부치 코이치 한신 / 43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49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50개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44개 | 카케후 마사유키 한신 / 48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44개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43개 | 카케후 마사유키 한신 / 35개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36개 오오시마 야스노리 주니치 / 36개 | 카케후 마사유키 한신 / 37개 우노 마사루 주니치 / 37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54개 | 랜디 바스 한신 / 47개 | 릭 란셀로티 히로시마 / 39개 | 카를로스 폰세 타이요 / 33개 | 래리 패리시 야쿠르트 / 42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34개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37개 | 잭 하웰 야쿠르트 / 38개 |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 34개 |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 38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 39개 | 야마사키 타케시 주니치 / 39개 | 드웨인 호지 야쿠르트 / 38개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34개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44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42개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39개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50개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40개 타이론 우즈 요코하마 / 40개 | 터피 로즈 요미우리 / 45개 타이론 우즈 요코하마 / 45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라이 타카히로 히로시마 / 43개 | 타이론 우즈 주니치 / 47개 | 무라타 슈이치 요코하마 / 36개 | 무라타 슈이치 요코하마 / 46개 | 토니 블랑코 주니치 / 39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49개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31개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31개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60개 | 브래드 엘드레드 히로시마 / 37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38개 | 츠츠고 요시토모 DeNA / 44개 | 알렉스 게레로 주니치 / 49개 | 네프탈리 소토 DeNA / 41개 | 네프탈리 소토 DeNA / 43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31개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39개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39개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56개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41개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33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43개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26개 | 후카미 야스히로 니시테츠 → 토큐 / 25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6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1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5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29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0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23개 | 야마우치 카즈히로 다이마이 / 25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다이마이 / 32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29개 나카타 요시히로 한큐 / 29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44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52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41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42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4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5개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8개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41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44개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41개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41개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43개 | 클라렌스 존스 킨테츠 / 38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도이 마사히로 타이헤이요클럽 / 34개 | 클라렌스 존스 킨테츠 / 36개 | 레론 리 롯데 / 34개 | 바비 미첼 닛폰햄 / 36개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37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48개 | 토니 솔레이타 닛폰햄 / 44개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44개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2개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40개 | 부머 웰즈 한큐 / 37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52개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50개 | 아키야마 코지 세이부 / 43개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44개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49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세이부 / 42개 |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세이부 / 39개 |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세이부 / 41개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42개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35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코쿠보 히로키 다이에 / 28개 | 트로이 닐 오릭스 / 32개 | 나이젤 윌슨 닛폰햄 / 37개 | 나이젤 윌슨 닛폰햄 / 33개 | 터피 로즈 킨테츠 / 40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나카무라 노리히로 킨테츠 / 39개 | 터피 로즈 킨테츠 / 55개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55개 | 터피 로즈 킨테츠 / 51개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44개 페르난도 세기놀 닛폰햄 / 44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마츠나카 노부히코 소프트뱅크 / 46개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32개 | 야마사키 타케시 라쿠텐 / 43개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46개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48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T-오카다 오릭스 / 33개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48개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27개 | 미첼 아브레우 닛폰햄 / 31개 | 나카무라 타케야 에르네스토 메히아 세이부 / 34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37개 | 브랜든 레어드 닛폰햄 / 39개 |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소프트뱅크 / 35개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47개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43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 32개 | 스기모토 유타로 오릭스 / 32개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41개 |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 26개 그레고리 폴랑코 롯데 / 26개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26개 | 야마카와 호타카 소프트뱅크 / 34개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타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후루야 쿠라노스케 나고야킨코군 / 23점 | 카게우라 마사루 오사카 / 47점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7점 | 카게우라 마사루 오사카 / 31점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8점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75점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67점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57점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60점 | 아오타 노보루 도쿄쿄진군 / 42점 노구치 아키라 세이테츠군 / 42점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25점 | 츠루오카 카즈토 그레이트링 / 95점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71점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08점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42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코즈루 마코토 쇼치쿠 / 161점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105점 | 니시자와 마치오 나고야 / 98점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98점 | 스기야마 사토시 주니치 / 91점 와타나베 히로유키 오사카 / 91점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79점 | 미야모토 토시오 요미우리 / 69점 | 미야모토 토시오 요미우리 / 78점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92점 | 모리 토오루 주니치 / 87점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후지모토 카츠미 오사카 / 76점 | 쿠와타 타케시 타이요 / 94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85점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12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19점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04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16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07점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25점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15점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05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01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20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14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07점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96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23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24점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18점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113점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112점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103점 | 카케후 마사유키 한신 / 95점 | 하라 타츠노리 요미우리 / 103점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102점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134점 | 랜디 바스 한신 / 109점 | 카를로스 폰세 타이요 / 98점 | 카를로스 폰세 타이요 / 102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116점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102점 |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 99점 | 래리 시츠 타이요 / 100점 |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 94점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94점 |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 107점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 106점 | 루이스 로페스 히로시마 / 109점 | 루이스 로페스 히로시마 / 112점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100점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153점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108점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127점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107점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124점 | 카네모토 토모아키 한신 / 113점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 147점 | 타이론 우즈 주니치 / 144점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122점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125점 | 토니 블랑코 주니치 / 110점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129점 | 아라이 타카히로 한신 / 93점 |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 104점 | 토니 블랑코 DeNA / 136점 | 마우로 고메스 한신 / 109점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야쿠르트 / 105점 | 츠츠고 요시토모 DeNA / 110점 | 호세 로페스 DeNA / 105점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131점 | 네프탈리 소토 DeNA / 108점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97점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113점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134점 | 마키 슈고 DeNA / 103점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86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105점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87점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86점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86점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97점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99점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95점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100점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85점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95점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다이마이 / 103점 | 야마우치 카즈히로 다이마이 / 112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04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35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15점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10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97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00점 | 조지 알트만 도쿄 오리온즈 / 100점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101점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129점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120점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01점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101점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109점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96점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카토 히데지 한큐 / 97점 | 카토 히데지 한큐 / 82점 | 레론 리 롯데 / 109점 | 바비 마르카노 한큐 / 94점 | 카토 히데지 한큐 / 104점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129점 | 토니 솔레이타 닛폰햄 / 108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99점 | 미즈타니 지츠오 한큐 / 114점 | 부머 웰즈 한큐 / 130점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146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116점 | 부머 웰즈 한큐 / 119점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125점 | 부머 웰즈 한큐 / 124점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세이부 / 106점 이시미네 카즈히코 오릭스 / 106점 |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세이부 / 92점 짐 트라버 킨테츠 / 92점 | 부머 웰즈 다이에 / 97점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107점 | 이시이 히로오 킨테츠 / 111점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80점 타나카 유키오 닛폰햄 / 80점 하츠시바 키요시 롯데 / 80점 | 트로이 닐 오릭스 / 111점 | 코쿠보 히로키 다이에 / 114점 | 나이젤 윌슨 닛폰햄 / 124점 | 터피 로즈 킨테츠 / 101점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나카무라 노리히로 킨테츠 / 110점 | 나카무라 노리히로 킨테츠 / 132점 | 터피 로즈 킨테츠 / 117점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123점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120점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마츠나카 노부히코 소프트뱅크 / 121점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100점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100점 | 야마사키 타케시 라쿠텐 / 108점 | 터피 로즈 오릭스 / 118점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122점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코야노 에이이치 닛폰햄 / 109점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116점 | 이대호 오릭스 / 91점 | 아사무라 히데토 세이부 / 110점 | 나카타 쇼 닛폰햄 / 100점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124점 | 나카타 쇼 닛폰햄 / 110점 |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소프트뱅크 / 103점 | 아사무라 히데토 세이부 / 127점 |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 123점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나카타 쇼 닛폰햄 / 108점 | 시마우치 히로아키 라쿠텐 / 96점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90점 |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87점 | 야마카와 호타카 소프트뱅크 / 99점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1루수 베스트나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40년, 1947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40 | 1947 | 1948 | 194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니시자와 미치오 주니치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니시자와 미치오 나고야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니시자와 미치오 주니치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후지모토 카츠미 오사카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콘도 카즈히코 타이요 | 후지모토 카츠미 오사카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래리 패리쉬 야쿠르트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 짐 파쵸렉 한신 |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 루이스 로페스 히로시마 | 코마다 노리히로 요코하마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조지 아리아스 한신 | 타이론 우즈 요코하마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라이 타카히로 히로시마 | 타이론 우즈 주니치 |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 토니 블랑코 주니치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크레이그 브라젤 한신 | 쿠리하라 켄타 히로시마 | 토니 블랑코 주니치 | 토니 블랑코 DeNA | 마우로 고메즈 한신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야쿠르트 | 아라이 타카히로 히로시마 | 호세 로페즈 DeNA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제프리 마르테 한신 | 호세 오수나 야쿠르트 | 오오야마 유스케 한신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2025 | 2026 | 2027 | 2028 | 2029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카와이 코조 한큐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스기야마 코헤이 난카이 | 에노모토 키하치 마이니치 | 오카모토 켄이치로 한큐 | 스탠리 하시모토 토에이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에노모토 키하치 오리온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타카키 타카시 킨테츠 | 에노모토 키하치 오리온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에노모토 키하치 오리온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카토 히데지 한큐 | 클라렌스 존스 킨테츠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카토 히데지 한큐 | 사카기바라 준이치 닛폰햄 | 카토 히데지 한큐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레온 리 롯데 | 사카기바라 준이치 닛폰햄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부머 웰즈 한큐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리처드 데이비스 킨테츠 | 부머 웰즈 한큐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부머 웰즈 오릭스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짐 트레버 킨테츠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이시이 히로오 킨테츠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훌리오 프랑코 롯데 | 카타오카 아츠시 닛폰햄 | 필 클라크 킨테츠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훌리오 줄레타 소프트뱅크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알렉스 카브레라 오릭스 | 타카하시 신지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알렉스 카브레라 오릭스 | 코쿠보 히로키 소프트뱅크 | 이대호 오릭스 | 아사무라 히데토 세이부 | 에르네스토 메히아 세이부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나카타 쇼 닛폰햄 | 긴지 라쿠텐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나카타 쇼 닛폰햄 | 브랜든 레어드 롯데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톤구 유마 오릭스 | 야마카와 호타카 소프트뱅크 | |
<rowcolor=#ffffff> 2025 | 2026 | 2027 | 2028 | 2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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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1루수 골든글러브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 ||||
<rowcolor=#ffffff> 1972 | 1973 | 1974 | 1975 | 1976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77 | 1978 | 1979 | 1980 | 1981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
<rowcolor=#fff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나카하타 키요시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나카하타 키요시 요미우리 | 코마다 노리히로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짐 피치오렉 한신 | 코마다 노리히로 요미우리 | 코마다 노리히로 요코하마 | ||||
<rowcolor=#fff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코마다 노리히로 요코하마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
<rowcolor=#fff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조지 아리아스 한신 | 와타나베 히로유키 주니치 | 앤디 시츠 한신 | |||
<rowcolor=#fff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앤디 시츠 한신 | 아라이 타카히로 한신 쿠리하라 켄타 히로시마 | 쿠리하라 켄타 히로시마 | 수상자 없음 | 쿠리하라 켄타 히로시마 | ||
<rowcolor=#fff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야쿠르트 | 호세 로페스 요미우리 | 모리노 마사히코 주니치 |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야쿠르트 | 호세 로페스 DeNA | ||
<rowcolor=#fff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호세 로페스 DeNA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
<rowcolor=#ffffff> 2022 | 2023 | 2024 | 2025 | 2026 | ||
나카타 쇼 주니치 | 오오야마 유스케 한신 | 오카모토 카즈마 요미우리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rowcolor=#ffffff> 1972 | 1973 | 1974 | 1975 | 1976 |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클라렌스 존스 난카이 | 웨슬리 파커 난카이 | 카토 히데지 한큐 | ||
<rowcolor=#ffffff> 1977 | 1978 | 1979 | 1980 | 1981 | |
카토 히데지 한큐 | 카시와바라 쥰이치 닛폰햄 | 오가와 토오루 킨테츠 | 카시와바라 쥰이치 닛폰햄 | ||
<rowcolor=#fff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카시와바라 쥰이치 닛폰햄 | 카타히라 신사쿠 세이부 | 야마모토 코지 롯데 | 부머 웰즈 한큐 | ||
<rowcolor=#fff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부머 웰즈 한큐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아이코 타케시 롯데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짐 트레버 킨테츠 | |
<rowcolor=#fff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키요하라 카즈히로 세이부 | 훌리오 프랑코 롯데 | 카타오카 아츠시 닛폰햄 | |||
<rowcolor=#fff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타카기 타이세이 세이부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후쿠우라 카즈야 롯데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후쿠우라 카즈야 롯데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후쿠우라 카즈야 롯데 | 알렉스 카브레라 오릭스 | 타카하시 신지 닛폰햄 | 코쿠보 히로키 소프트뱅크 | ||
<rowcolor=#fff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이나바 아츠노리 닛폰햄 | 아사무라 히데토 세이부 | T-오카다 오릭스 | 나카타 쇼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긴지 라쿠텐 | 나카타 쇼 닛폰햄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나카무라 아키라 소프트뱅크 나카타 쇼 닛폰햄 | 나카무라 아키라 소프트뱅크 | |
<rowcolor=#ffffff> 2022 | 2023 | 2024 | 2025 | 2026 | |
나카무라 아키라 소프트뱅크 | 야마카와 호타카 소프트뱅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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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이 타카히로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25번}}} | ||||
타카야마 켄이치 (1996-1998) | → | 아라이 타카히로 (1999~2007) | → | 스캇 시볼 (2008) | |
{{{#000000 [[한신 타이거스|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25번}}} | |||||
와타나베 료 (2006-2007) | → | 아라이 타카히로 (2008-2014) | → | 에고시 타이가 (2015~2022) | |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28번}}} | |||||
이와미 유키 (2011-2014) | → | 아라이 타카히로 (2015) | → | 토코다 히로키 (2017~2024) | |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25번}}} | |||||
타카하시 히로키 (2013-2015) | → | 아라이 타카히로 (2016-2018, 2023~) | → | 감독 |
}}} ||
| |
<colcolor=#fff><colbgcolor=#ff0000>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25 ★ | |
아라이 타카히로 新井貴浩 | Takahiro Arai | |
출생 | 1977년 1월 30일 ([age(1977-01-30)]세) |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사에키구 | |
국적 |
|
학력 | 히로시마공업고등학교 - 코마자와대학 |
신체 | 189cm | 102kg |
포지션 | 1루수,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드래프트 6순위 (히로시마)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9~2007) 한신 타이거스 (2008~2014)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5~2018) |
지도자 |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2023~) |
응원가 | 카프 시절(1번째, 1999년 한정)[1] 카프 시절(2번째)[2] 한신 시절[3] |
가족 | 동생 아라이 료타 |
SNS |
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및 야구 해설자. 現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현역시절 등번호는 25번(히로시마 1기 ~ 한신 시절) → 28번(2015) → 25번(2016~2018). 포지션은 전성기 땐 3루수였으나 팀 사정상 1루수나 우익수로 뛴 적도 있었고 말년에는 주로 1루수로 출장했다.
재일 한국-조선인 출신으로 1994년 봉황대기 대회에 재일동포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도 했다.[4]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했고,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몇 차례 선발되었다. 한국명은 박귀홍(朴貴弘)으로 알려져 있다.[5]
데뷔 초반부터 카프의 4번 타자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고 출중한 장타력을 과시했지만 반대로 수비가 불안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물론 팬들한테까지 좋은 소리를 못 들었으나 점차 강도 높은 훈련으로 기량이 성장해 마침내 카프의 중심타자로 각성하며 2005 년에 홈런왕과 베스트나인을 차지했고 2007년 시즌 종료 후에는 처음으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그러나 2007년 시즌 종료 후 FA로 한신 타이거스에 이적하는 과정에서 말실수 논란 등으로 여러 곡절을 겪었고, FA 이적한 한신에선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먹튀 취급을 받으며 평가가 다소 하락했으나 2014 시즌 종료 후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연봉을 대폭 깎고 복귀한 친정팀에서 다시 부활에 성공하며 팬들의 지지를 되찾고 팀의 암흑기 청산과 함께 3년 연속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하여 리그 MVP도 차지하는 등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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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은퇴 이후
은퇴 후 TBS 테레비, 데일리 스포츠 등에서 야구해설자 및 평론가를 맡았다.4. 지도자 경력
4.1.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카프 사상 최악의 감독.4.1.1. 2023 시즌
2023년 시즌부터 사사오카 신지의 후임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에 취임하게 되었다. #
다만 지도자 경력 없이 감독에 취임한 것 때문에 일각에선 선배인 카네모토 토모아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중. 아라이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인지, 동생인 아라이 료타를 2군 타격코치로 영입하며 9년만에 형제가 한 팀에서 같이 뛰게 되었다.
오픈전 10경기 연속 무승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개막 시리즈부터 별 희한한 방법으로 패배하는 등 타격 부진으로 피스윕당하며 시작했다. 트위터와 なんj, 5ch 등 각종 커뮤니티 및 SNS에는 실시간으로 「新井が悪い。」(아라이가 잘못했네)가 도배되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개막 4연패 이후 한신전에서 5이닝 강우콜드 승으로 다소 뻘쭘한 감독 데뷔 첫 승을 거둔 이후 쿄진전 스윕 및 주니치까지 제압하며 5연승을 달렸다.
4월 14일~16일 야쿠르트전을 극적으로 스윕하면서 센트럴 리그 단독 1위에 올랐다. 성적뿐만 아니라, 15일 경기 9회말 투아웃에서 극적인 끝내기 역전 투런포를 기록한 아키야마 쇼고가 홈에 들어올 때 선수들과 같이 뛰쳐나가서 안아주는 등 기뻐하는 모습이나, 16일 경기에서 우천 중단 이후 한 때는 현역 동료로 같이 활약한 타나카 코스케가 극적인 동점 만루홈런을 기록하자 찰진 리액션을 선보이는 등, 무게 잡기보다는 선수단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리더십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나란히 5,6위를 달리고 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츠나미 카즈요시 감독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타츠노리의 모습과는 대비된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쿠리바야시 료지가 허리 디스크로 WBC 대표팀에서 하차하는 등 여전히 불편한 몸과 눈에 띄게 나쁜 컨디션이 명확히 보임에도 전임 사사오카 신지보다도 더욱 심한 혹사를 시킨 것. 결국 4월 23일까지 19경기 중 4연투 포함 10경기를 등판시키는 혹사로 쿠리바야시 성적 부진은 물론 23일 경기에서도 동점 상황에서 실점을 허용해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쿠리바야시에게는) 처음으로 넘지 못하면 안될 벽이 지금 다가와 있다. 앞으로도 동일한 상황에서도.(初めてのりこえなければいけない壁が今来ている。今後もおなじばめんで。)"라는 쿠리바야시의 부상을 입스 취급하는 것인지,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것인지 모를 유체이탈 발언까지 나오며 부정적인 반응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
4월 29일 요미우리 전에서 기어코 쿠리바야시가 시즌 4패를 기록하자 트위터나 난j등 SNS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아라이에 대한 성토가 폭발했다. 그 와중에 인터뷰에서는 "직구건 포크볼이건 (오늘이) 최근 중에 가장 좋았다"라는 허리디스크를 가볍게 보는 듯한 인터뷰로 또 다시 욕받이를 자초한 건 덤. 직후 다음 날인 30일 경기를 앞두고 쿠리바야시의 엔트리 말소가 공시되었는데, 이에 팬들은 '아라이가 갑자기 자기 주장을 꺾을 일은 없을테니, 구단 상부에서 여론을 의식하여 조치를 취했다'고 추측까지 나올 정도로 아라이의 선수 관리를 불신하고 있다.
5월 들어서도 평가가 좋아지기는 커녕 여전히 미숙한 선수 기용과 학습 능력 있는지가 의심되는 형편없는 작전, 쿠리바야시가 내려가니 부상에서 복귀한 야사키 타쿠야가 대신 혹사당하는 등 달라지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다.
6월 10일 롯데전에선 미우라 다이스케보다도 심각한 엔트리 구성과 선수 기용, 똑같은 초임 감독 요시이 마사토와 비교되는 저질스러운 작전 능력으로 기어코 쿠리바야시에게 시즌 6패를 안겨다주면서 팀이 끝내기 패배 6회로 리그 1위로 올리는 것도 모자라 카프가 단독으로 교류전 1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의 손으로 뭉개버리고 말았다. 끝나고 나서 쿠리바야시를 올렸다가 또 패배한 것에 대해선 "이 구장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투수가 힘들다"[6]라는 인터뷰로 또 까였다. 가만히 있어도 여유롭게 순항할 것을 괜히 개입해서 계속 망친다는 반응.
이후에도 무난한 모습과 한심한 모습을 오가다가 7월에는 부상자가 많은 와중에 3번 키쿠치 료스케-4번 우에모토 타카시-5번 코조노 카이토의 똑딱이 클린업 트리오라는 상상초월의 선발 기용을 보여주면서도 당해 첫 10연승을 달성한 팀이 되는 등 약간의 재평가 여지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역시나 밑천이 금세 드러난 건지 8월 들어서 부진에 빠지면서 4~5월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본인의 삽질 와중에도 어찌저찌 순항한 덕분에 9월 24일 요미우리가 지면서 5년 만의 A클래스를 확정짓고 정규 시즌 2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갑자기 정규시즌의 한숨을 부르던 지휘랑은 정반대로 허를 찌르는 작전과 빠른 투수 교체로 2연승을 거두며 2015년 이후 무려 8년간이나 센트럴 리그 2위를 괴롭혀오던 징크스를 끊고 파이널 스테이지로 진출했다. 그러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는지 고집스럽게 도바야시 쇼타의 4번 타자 고정 등 타선 문제를 수정하지 않고 투수 교체도 또다시 우유부단하게 하면서 끝내 스윕패로 탈락해 버렸다.
4.1.2. 2024 시즌
2024시즌 4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여론은 최악에 가깝다. 지난해의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여전히 쓸놈쓸 기용과 필승조 혹사, 우완만 보면 의미없는 좌타자 도배, 형편없는 작전 지시와 마운드 운용으로 연일 비판받고 있다.그런데도 5월에 2번의 시리즈 스윕에 성공, 6월 교류전에서 6개 팀 중 5개 팀에게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면서 센트럴 리그 1위로 다시 올라갔고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8월이 끝날 시점까지 1위에 있었으나, 9월이 되자 5승 20패라는 처참한 성적과 함께 우승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4위까지 추락했다. 그 와중에 4위로 떨어진 것에 대한 질문에 "그건 한 경기 한 경기로 바뀌는 것 아니냐"라는 현실부정 멘트로 욕받이를 자초한 건 덤.
결국 10월 1일 요코하마와의 마지막 맞대결에서 지면서 A클래스 재진입은 히로시마 전승/요코하마 3패 2무 or 4패 1무 or 전패[7]라는 사실상 산술적인 가능성을 달성해야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날 야쿠르트에게 패배하면서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지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9월 1위팀이 B클래스로 추락하는 비참한 기록을 세운 채 4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이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는 아라이 감독 체제를 최소 5년간 유지하려고 생각 중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내년 시즌에도 속투시킬 것을 선언하며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다 오프시즌에서도 좋지 못한 행보가 이어졌는데, 드래프트에서 "10년 동안 유격수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한 메이지대학 출신의 로컬 보이[8] 무네야마 루이의 5구단 경합에서 패배한 데 이어 또 다른 로컬 보이인 와타나베 세이야도 본인이 사전에 카프에 입단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명을 걸러 결국 세이부가 2순위에서 와타나베를 가져가는 결과를 불러왔다. 우선 1순위로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3루수 사사키 타이를 지명했는데, 지명 자체는 몇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핫코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지만 외야 유망주가 더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와타나베를 지명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이유도 없던 데다 사사키는 1학년 때 춘계리그에서 괴물같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3학년 춘계리그를 제외한 3년 동안 부진하다 마지막 시즌인 4학년 추계리그 때에야 부활한지라 굳이 사사키를 지명해야 했냐는 여론이 더 많았다. 특히 입단 후 7년 동안 공수 양면에서 도움이 되긴 커녕 2번이나 사생활 논란을 일으켜 팬들의 속을 썩인 나카무라 쇼세이는 잘도 연봉을 인상시켰으면서 본인이 카프에 오고 싶다던 와타나베는 지명을 거른지라 비판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는 상황.[9] 드래프트는 프런트와 스카우트의 의사가 보통 강한 편이지만 카프는 아라이가 직접 드래프트에 참여하며 본인의 의견도 반영되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뒤이어 현역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가 수비도 평범한 오릭스의 30대의 백업 내야수 야마아시 타츠야인 반면 필승조 야사키 타쿠야를 야쿠르트가 지명하는 바람에 백업 내야수 얻겠다고 필승조를 버리는 호구짓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야사키의 빈 자리를 메꾸려고 현역 드래프트 처음으로 언더핸드 스즈키 켄야를 2순위로 지명했다.
그런데 이 스즈키의 지명도 얼마 안 가 더 나쁜 결과를 불러 버렸는데, 바로 해외 FA로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던 쿠리 아렌이 돌연 해외 진출을 철회하고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해서 그 대신 인적보상 혹은 금전보상 중 하나를 오릭스에게서 받게 된 것. 문제는 전력에 하등 도움 안되는 노장 선수들과 노망주들을 그대로 잔류시켜 지배하선수 한도(70명)가 부족한 상황에서 현역 드래프트를 2명이나 지명하는 바람에 남은 자리가 고작 1개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거의 다 차버린 지배하 한도 탓에 아베 쇼타나 혼다 히토미 등 괜찮은 보상선수 자원을 데려오지 못한 채 금전 보상을 선택해야 했다. 돈 많은 오릭스 입장에선 사실상 이닝이터 자원을 거저 가져간 셈.
4.1.3. 2025 시즌
지난 해에 역대급 추락을 겪었음에도 반성은 커녕 전혀 달라진 모습 없어서 그나마 지지하던 소수의 팬들마저 돌아서고 있다. 주요 언론에서는 따뜻한 열혈 감독으로 포장되었지만, 반복되는 무능한 행태에 기관지 역할의 츄고쿠신문 기자에게도 공개적으로 비판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라디오 해설을 하던 시모야나기에게도 "아라이가 나댈 수록 팀이 나빠진다"며 대놓고 디스당하는 등 날이 갈 수록 평가는 떨어지고 있다.출루율이 2할을 간신히 유지하는 후타마타 쇼이치를 꾸역꾸역 1번으로 출장시키는 등의 선수 편애나 OPS가 5할 5푼도 안 되는 야노 마사야를 득점 생산능력이 가장 뛰어난 2번에 박아놓아 흐름을 전부 끊어먹는 등의 한심한 선발 기용을 보여주며 팬들의 한숨만 사고 있다. 패전 후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상대가 잘했다", "아직 초반이다", "안타는 나오고 있다"[10] 같은 책임회피+현실도피적 언행을 보여주며 비판을 자초하는 건 덤. 그나마 산드로 파비안, 스에카네 쇼타 등 나름대로 제 몫을 해주는 선수들의 분전 덕분에 나름대로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지휘력 덕분에 잔루만 마구 적립하거나 투수만 마구 소비한 채 지는 경기들도 적잖아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4월 20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코시엔 원정경기에선 한신의 주전포수 사카모토 세이시로가 신예 오카모토 슌에게 헤드샷을 맞는 사고가 터지자 사과를 하러 나오던 도중 후지카와 큐지 한신 감독이 뛰쳐나와 카프 선수단을 향해 저격하다시피 항의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는데, 오카모토와 포수 이시하라 토모키가 곧바로 사과하고 사카모토도 바로 받아들이면서 잘 마무리되려던 찰나에 후지카와가 갑자기 뛰쳐나와서 일을 키운 것에[11] 화가 나서[12] 다음 시리즈였던 5월 16~18일 코시엔 3연전에서 16일(1차전)에 선수 명단을 교환할 때 후지카와의 악수 요청을 무시한 채 돌아가고, 다음 날인 17일(2차전)엔 후지카와가 먼저 무시하고 돌아가는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나마 마지막 날인 18일부턴 양 측 모두 다시 인사를 나누면서 어느 정도 화해한 모습으로 갈등을 마무리지었다.[13]
그럭저럭 5할 승률을 유지하고 맞이한 교류전에서도 호조와 불호조가 이어졌는데, 2번째 시리즈였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홈에서 스윕을 거뒀으나 라쿠텐을 제외한 나머지 4팀 상대로 전원 루징을 기록한 데다 닛폰햄 3연전의 마지막 경기인 6월 15일 경기에선 6회까지 7:1이란 대량 리드를 잡았음에도 선발 투수였던 모리 쇼헤이가 투구수 100개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펜을 전혀 준비시키지 않는 등 방심하는 모습을 보이다 8회부터 난타당해 기어코 동점을 허용한 끝[14]에 연장 10회 말에 쿠리바야시 료지가 등판하자마자 타미야 유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배하는 대참사로 팬들의 공분을 샀다. 그나마 다행히도 마지막 시리즈였던 라쿠텐과의 3연전은 위닝 시리즈로 장식하며 이번 교류전에서 센트럴리그 팀들이 모조리 박살난 가운데[15] 유일하게 5할 승률(9승 9패)을 기록한 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만족하는 팬들은 당연히 없으며, 교류전에서 세리그 유일의 5할을 기록했다한들 아라이의 평가가 반전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7월 들어서도 팀의 경기력과 본인의 지휘력은 전혀 개선될 여지 없이 7월 13일까지 15경기 연속 3득점 이하 및 리그 26경기 연속 3득점 이하를 이어나갔다. 그런 와중에 7월 11일 경기에서는 직전 타석에 적시타를 친 코조노 카이토에게 8회에 번트를 지시했을 때 살벌한 표정을 지은 코조노의 짤방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음에도 경기 직후 리스크를 각오한다는 표리부동의 인터뷰로 쓴소리를 들었다. 12일 경기 직후에는 '지금은 참을 때'라는 지난 8월에 이미 비판을 받았던 발언을 또 한번 하면서 빈축을 샀고, 13일에는 저열한 득점력 속에서 어렵게 키쿠치 료스케가 동점 적시타를 기록한 이후 추가 득점의 찬스에서 아이자와 츠바사에 대타를 내지 않은 것과 쿠리바야시 료지를 5회에 등판시키는 등 이해하기 힘든 지휘로 결국 14안타 3볼넷 2득점으로 잔루만 14개라는 처참한 경기력으로 연장전에서 패배하며 6연패 수렁에 빠졌다. 이날 역시 인터뷰로는 구체적인 방법론 대신 "연패 중에도 모두의 무엇이라고 할 기분이 전해졌다", 쿠리바야시의 5회 등판 역시 "일요일이기도 하고 오늘은 끈질기게 버틸 수 있으면 좋겠어서" 와 같은 의미없는 발언이 전부였다.
이미 유튜브와 트위터,난J 등 프로야구 관련 커뮤니티 및 SNS에서 아라이 정권에 대한 비토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며, 주중 홈경기 관객이 2만 초반대까지 폭락한 것이 現 아라이 정권에 대한 팬들의 불신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스타전을 앞둔 마지막 시리즈인 7월 19~21일 최하위 야쿠르트 원정 1차전부터 빈타로 패배한 동시에 주니치가 7연승을 거두면서 5위로 전락했다. 이튿날 20일은 금년도 부진하고 있는 타마무라 쇼고를 계속 내보내 2이닝 6실점으로 조기강판, 사카쿠라 쇼고는 "(3회의 포수 파울플라이 때)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파울플라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으며, 혹시나 바람이라도 불어서 안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와 같은 이유로 조기 교체하는 바람에 득점권에서 이시하라 토모키가 걸리는 참사를 유발했다. 게다가 또다시 코조노 카이토에게 번트를 지시하고 30타석 연속 무안타의 산드로 파비안에게 맡기는 촌극은 덤. 결국 1회초 3점의 선취점과 하야시 코타와 후타마타 쇼이치의 추격의 홈런에도 불구하고 8:7로 패배하면서 경기 직후 팬덤의 비판이 또 한번 거세졌다. 게다가 정작 현역 때 본인도 포수 파울플라이에 미리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발굴되었다(...)
이튿날 바다의 날(海の日)에 치러지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시하라 토모키가 선발 마스크를 썼으며 하야시 코타가 이틀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면서 5:1의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4타수 무안타의 이시하라 대신 사카쿠라를 대타로도 투입하지 않는 어깃장을 부리다가 끝내 테일러 헌을 마무리로 고집하면서 9회말 2사 1,3루에서 비디오 판독 끝에 아카하네에게 사요나라 홈런을 허용, 야쿠르트의 시즌 첫 4연승을 헌납하면서 전반기를 마쳤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모리시타 마사토가 물집으로 인해 갑자기 강판되면서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온 나카자키 쇼타와 모리우라 다이스케가 역전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이튿날 경기 전에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표정이) 어둡네 모두. 어두운 데엔 어두운 데라도 갔다 와라. 주방 구석에서 바퀴벌레라도 본거겠지"같은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모두에게 '그 원인이 너잖아'라고 원망을 샀다. 이런 농담과는 달리 선발 사토 류노스케가 부진하면서도 타선이 1점차까지 따라붙었지만, 지고 있는 상황에 쿠리바야시, 시마우치, 헌, 모리우라 등 필승조를 모두 투입하는 발악 끝에 뒤집지 못하고 5:6으로 패배했다.
7월 29일 고시엔 원정에서는 또다시 오타케 코타로에게 죽을 쑤는 바람에 토코다 히로키는 1실점 패전을 떠안아야만 했는데, 6회초 2사만루에서의 무득점도 문제였지만 7회초 무사만루에서 대타로 하야시 코타가 아닌 노마 타카요시를 투입하여 1-2-3 홈병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무득점에 그쳤다.[16] 게다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또 "어쩔 수 없다"와 같은 무책임한 발언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은 덤. 이로써 최근 15경기 1승 1무 13패라는 최악의 여름을 보내며 15경기 이상 차이나던 최하위 야쿠르트와의 승차도 4.5경기까지 좁혀졌다.
이튿날 30일 역시 1사 만루의 기회에서 런 앤드 히트 작전을 걸다가 라인드라이브 병살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 결국 이틀 연속으로 득점권을 모두 말아먹고 셧아웃 패배하며 한신의 매직넘버 점등에 조력했다.
시즌 개막 전에 전경기 티켓 예매가 열리는 카프의 특성상 지금은 주말 경기는 만석을 기록 중이지만, 9월 추가 편성 경기의 경우에는 주말 경기조차 응원석 등 인기있는 좌석을 제외하면 널널한 지경.
8월에도 반등한다고 자신감있게 말했지만 여전히 B클래스를 전전하며 시마우치를 제외한 투수진도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9월 5일부터 매직넘버 5를 남겨두고 있는 한신 상대로 스파이 아니랄까봐 6일 12안타 1득점, 7일에는 고의적으로 누가봐도 이상한 라인업을 낸 것으로도 모자라 경기 시작하기 전에 후지카와 감독에게 "미리 말해둘게 우승 축하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여 팬들에게 또다시 원성을 들었다. 결국 무기력하게 피스윕을 대주면서 팬들에게 24년 쿄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남의 팀 우승 헹가레만 보여주는 최악의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5. 여담
- 일본야구 마이너 갤러리에서 개인으로서는 압도적인 언급량을 자랑하며 2024시즌 이후 현재 사실상의 갤주이다. 재일 한국-조선인라는 점도 어느정도 작용하지만, 카프팬들에게는 매일 욕을 얻어먹고 다른 팬들은 억빠하는 상황이 자주 펼쳐지기 때문이다.
-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한 직후 히로시마와의 첫 경기 때 아라이가 출루하고 한국어로 대화한 적이 있었다. 아마 봉황대기 대회에 이승엽도 출전한 적 있어서 그런 듯하다. 둘은 사실상 동갑내기인데 아라이가 빠른 77년생이다. 이승엽도 1년뒤 등번호 25번을 달면서 2007 시즌때 4번 타자로 맞대결을 2년 연속으로 하게 된다. 아라이는 한신에서도 카프 시절의 등번호 25번을 그대로 달았는데 이승엽의 팀의 직속후배인 오승환의 동료가 되었다.
-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프로야구 선수회 7대 회장을 지냈다.
- 아내는 전직 아이돌로 "혹시 아들이 태어난다면 야구를 시키겠다"고 할 정도의 야구광이라고 한다.
- 3루수였을 때에는 실책왕의 기록도 있는 등 전체적으로 '수비가 조잡하다(粗い:아라이)'는 평을 들어서 '아라이'라는 성과 엮여서 곧잘 놀림을 받았다. 아예 감독한테 "아라이는 수비가 성하고 똑같이 '아라이'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 1루로 옮긴 지금은 무난한 평을 받고 있다.
- 여러모로 한국의 홍성흔과 닮은 점이 많다. 둘다 76년생 용띠로 1994년 봉황대기에도 같이 출전했고 대졸신인으로 1999년에 프로에 입단했으며, 2006년 WBC에서도 각각 한국, 일본대표로 같이 출전했고, FA선언으로 친정팀을 떠나보기도 했고 다시 돌아온 거랑, 둘 다 리그 내에서 수준급으로 알려진 배트 플립 실력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유쾌한 개그 캐릭터 스러운 이미지에 경솔한 말실수로 팬들에게 까인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말년에 기량저하가 눈에 확 띄었고, 부전드 발언 등의 말실수로 팬들에게 까인 것도 모자라 두산 복귀후 팀 분위기를 망치고 있던 장본인이었다는 게 드러나[17] 팬들에게 이제까지의 호감을 잃고 온갖 욕을 처먹으며 영 좋지 않은 모양새로 은퇴하게 된 홍성흔과 달리, 이 쪽은 비록 말실수를 하고 한신 시절 기대에 썩 미치지 못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후에 한신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고 한신 시절보다 극히 적은 연봉으로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고, 복귀 후 부활에 성공해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리그 MVP를 탈 정도의 좋은 말년을 보내며 히로시마 팬들에게도 지금까지의 앙금을 털고 다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무지막지한 병살타 갯수. 아라이가 242개, 홍성흔이 230개로 갯수도 비슷하다.
- 친동생인 아라이 료타(한국명 : 박양태)도 야구 선수로, 2011시즌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한신으로 이적하게 되어 형제가 같은 팀에서 뛰는 드문 케이스[18]가 되었다. 2012년에는 동생쪽이 포텐폭발(이라기 보단 주전중 거포들이 다 시망이라 밀려 올라간 감이 있지만)하는 바람에 동생에게 4번타자 자리를 내주는 훈훈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동생의 주전 기회는 한 해 반짝으로 끝났고, 대타와 2군을 전전하던 끝에 결국 료타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형보다 먼저 은퇴했고 지금은 한신의 코칭스태프로 자리잡았다. 2023시즌, 아라이의 감독 취임으로 구단이 동생까지 2군 타격코치로 영입하면서 9년만에 같은 팀에서 재회하였다.
- 한신 시절 료타의 등록명은 新井良(좋을 량)였는데, 위의 "아라이가 잘못했네"와 엮여서 타카히로의 등록명은 新井悪(나쁠 악)이 되어야하는 것 아니냐는 드립이 있었다. 당연히 당시 등록명은 新井貴.
- 인터넷 상에서는 개그 캐릭터 내지는 밈 취급을 받는 중. 예를 들면 이런 밈
- 본인도 개그 욕심이 있는지 입담이 좋다. 2018년 리그 우승 축승회에서 "2차는 쿠로다네 집에서 합시다, 물어보니까 300명 정도 들어와도 된답니다"[19]라며 농담했는데, 다음 날 시합 전 인터뷰에서는 "270명 정도 모였네요. 구로다도 기뻐해줬습니다."[20]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구로다는 "기다렸는데 안 왔다"며 받아쳤다.
- 케모노 프렌즈가 유명해지자 이 선수와 관련해서 카프의 위기인것이다!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파크의 위기' 드립을 치는 캐릭터인 아라이상과 아라이 타카히로가 이름이 똑같기도 하고, 아라이상 캐릭터가 조연임에도 인기 캐릭터이며 히로시마 카프도 성적이 좋아지며 인기가 늘자 관련 네타가 늘어났다. FA로 한신에 이적하며 한 '츠라이' 드립도 아라이상 관련 밈으로 수입될 정도.
- 정신수련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매년 새해마다 가고시마현의 사이후쿠지(最福寺)라는 밀교 사찰에 가서 호마(護摩)라는 의식을 치른다.[21] 2004년의 부진을 안타까워한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권유한 것이라고 한다
- 2018년 12월 TBS 테레비와 전속 해설위원 계약을 맺고 2019년부터 해설자로 데뷔했으나 2023년 친정 카프의 감독직 요청을 수락하며 현장에 복귀했다.
[1] 新井ダイアモンドに輝くその闘志 赤い心を見せ広島を燃やせ 아라이 다이아몬드에 빛나는 그 투지 붉은 마음을 보여줘 히로시마를 태워라[2] 赤い心見せ 広島を燃やせ 空を打ち抜く 大アーチ 붉은 마음을 보여줘 히로시마를 태워라 하늘을 뚫는 대형 아치
은퇴 후 감독으로 취임한 2023년부터 멀티 테마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3] 一振りにかける 男新井 熱きその思い スタンドへ 스윙 한번에 거는 사나이 아라이 뜨거운 그 마음을 스탠드로[4] EBS 다큐 '불멸의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 출처. 94년 봉황대기 출전자들 중 프로에서 출중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당시 한국 선수들 중에선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 박정진, 박진만이 있었고 같은 재일교포로는 킨죠 타츠히코가 있었다. 이들 중 박정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후 WBC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아라이와 상대팀으로 만났고, 이승엽과 박진만은 아라이와 같은 해에 각각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 취임했다.[5] 박동희가 재일교포 학생 야구단 감독을 역임했던 한재우를 취재했을 때 언급됐다. 이 기사가 게재되기 전까지는 일본명을 그대로 따온 박귀호(朴貴浩)로 알려졌는데, 여담으로 '貴弘'도 보통은 훈독으로 '타카히로'로 읽는다. 다만 데뷔 당시 재일교포 학생회에서 발행한 기관지에는 한국명이 박귀호로 표기되어 있고 본인이 자신의 한국명을 직접 밝힌 적도 없어서 정확한 귀화 전 한국명은 불명이다.[6] 물론, ZOZO 마린 스타디움이 실제로 바람이 많이 부는 구장이긴 하지만 쿠리바야시만 바람을 맞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 구장을 홈으로 쓰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오랜 세월의 숙제인 장타자 육성에 골머리를 앓는 걸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일.[7] 히로시마 전승/요코하마 1승 4패만 해도 승률은 똑같지만 승수에서 밀리기 때문에 동률 시 다승제 우선을 원칙으로 삼는 센트럴리그 규정상 히로시마는 4위가 확정된다.[8] 단순히 히로시마현 출신이기만 한 로컬 보이가 아니라 카프 주니어 출신에 진학한 고등학교도 히로시마 최고의 야구 명문 학교로 손꼽히는 코료 고등학교다. 참고로 후술할 와타나베 세이야도 같은 코료 고등학교 출신.[9] 결국 1년차인 2025년에 사사키는 시범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상반기 결장이 불가피해진 반면 와타나베는 높은 타율로 팀 타선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무네야마와 함께 유력한 퍼시픽리그 신인왕 후보에 올라와 있다.[10] 감독의 발언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겠지만, 득점력 부족에 관해 질문받은 것에 대한 답변이다.[11] 정작 후지카와 본인은 벤치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웃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래서 이 상황을 지켜본 팬들은 당시 한신이 연패 중이던 상황이라 후지카와가 선수 보호 겸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부러 뛰쳐나와서 항의한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12] 실제로 5월 18일 인터뷰에서 "사죄를 했음에도 (후지카와가) 그런 식(항의)으로 나온 것에 대해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연장자로서 참을 수가 없었다"라는 심정을 밝혔다.[13] 막상 아라이 본인도 지난 해 9월 연장자였던 미우라 다이스케 감독이 이끄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홈경기에서 아키야마 쇼고가 데드볼을 맞자 벤치 클리어링을 벌인 전적이 있어서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엔 직전에 카프 측에서 주전포수 야마모토 유다이를 맞춰서 교대시킨 일(야마모토는 직후 골절상으로 판명되어 시즌아웃당했다.)이 있었던 탓에 보복사구로 볼 여지도 충분해서 분위기가 고조되던 도중 DeNA의 불펜 투수였던 로완 윅이 카프 벤치를 향해 도발을 걸자 참지 못해 달려든 것이라 미우라를 직접적으로 저격했다고 보긴 힘들었다.[14] 8회 도중 모리 쇼헤이가 무사 만루 위기를 초래한 뒤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주자 부랴부랴 나카자키 쇼타와 모리우라 다이스케를 차례대로 등판시켰지만 어깨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온 탓에 제 컨디션대로 던지기 힘들었고 결국 승계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인 건 물론 견제 실수로 추가점까지 내주는 바람에 점수차가 2점차까지 좁혀졌다. 9회엔 본래 마무리 투수를 맡던 쿠리바야시 료지가 아닌 테일러 헌을 내보냈는데, 2아웃까진 나름대로 잘 잡았으나 승리를 눈 앞에 둔 채 볼넷-안타-도루로 2사 2, 3루 위기를 초래했고 결국 프란밀 레예스에게 동점 2점 적시타를 얻어맞고 말았다.[15] 교류전 1~6위를 퍼시픽리그 팀들이 모조리 독차지하며 사실상 일방적으로 센트럴리그를 압살한 시리즈가 되었다.[16] 하야시는 며칠전 본인이 직접 타격지도도 봐주면서 이틀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이 좋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컨택 원툴도 못하고 있는 베테랑을 기용하니 팬들 입장에서는 야오쵸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17] 대학 시절 오재원을 구타한 걸 미담이라고 인터뷰했으며, 억지로 주장 자리에 앉힌 것, 유희관의 점퍼를 훔쳐 친한 기자에게 줘 버린 것과, 결정적으로 위의 부전드 발언 등.[18] 2012년 기준으로 주니치의 도노우에 타케히로-나오미치 형제, 롯데의 오오미네 유타-쇼타 형제, 야쿠르트의 사토 요시노리-타카노리(육성선수). 히로시마의 나가카와 카츠히로-미츠히로(육성선수)가 형제 선수로 같은 팀에서 뛰고 있었다. 현재는 모두 해체.[19] 二次会は黒田博樹さんの家でやりますので。聞いたら300人以上入れて大丈夫らしいし。[20] (集まったのは)270人くらいですかね。黒田さんも喜んでくれました。[21] 원래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당 가운데에 불을 지펴놓고 불경을 외우는 의식이다.
은퇴 후 감독으로 취임한 2023년부터 멀티 테마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3] 一振りにかける 男新井 熱きその思い スタンドへ 스윙 한번에 거는 사나이 아라이 뜨거운 그 마음을 스탠드로[4] EBS 다큐 '불멸의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 출처. 94년 봉황대기 출전자들 중 프로에서 출중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당시 한국 선수들 중에선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 박정진, 박진만이 있었고 같은 재일교포로는 킨죠 타츠히코가 있었다. 이들 중 박정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후 WBC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아라이와 상대팀으로 만났고, 이승엽과 박진만은 아라이와 같은 해에 각각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 취임했다.[5] 박동희가 재일교포 학생 야구단 감독을 역임했던 한재우를 취재했을 때 언급됐다. 이 기사가 게재되기 전까지는 일본명을 그대로 따온 박귀호(朴貴浩)로 알려졌는데, 여담으로 '貴弘'도 보통은 훈독으로 '타카히로'로 읽는다. 다만 데뷔 당시 재일교포 학생회에서 발행한 기관지에는 한국명이 박귀호로 표기되어 있고 본인이 자신의 한국명을 직접 밝힌 적도 없어서 정확한 귀화 전 한국명은 불명이다.[6] 물론, ZOZO 마린 스타디움이 실제로 바람이 많이 부는 구장이긴 하지만 쿠리바야시만 바람을 맞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 구장을 홈으로 쓰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오랜 세월의 숙제인 장타자 육성에 골머리를 앓는 걸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일.[7] 히로시마 전승/요코하마 1승 4패만 해도 승률은 똑같지만 승수에서 밀리기 때문에 동률 시 다승제 우선을 원칙으로 삼는 센트럴리그 규정상 히로시마는 4위가 확정된다.[8] 단순히 히로시마현 출신이기만 한 로컬 보이가 아니라 카프 주니어 출신에 진학한 고등학교도 히로시마 최고의 야구 명문 학교로 손꼽히는 코료 고등학교다. 참고로 후술할 와타나베 세이야도 같은 코료 고등학교 출신.[9] 결국 1년차인 2025년에 사사키는 시범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상반기 결장이 불가피해진 반면 와타나베는 높은 타율로 팀 타선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무네야마와 함께 유력한 퍼시픽리그 신인왕 후보에 올라와 있다.[10] 감독의 발언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겠지만, 득점력 부족에 관해 질문받은 것에 대한 답변이다.[11] 정작 후지카와 본인은 벤치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웃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래서 이 상황을 지켜본 팬들은 당시 한신이 연패 중이던 상황이라 후지카와가 선수 보호 겸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부러 뛰쳐나와서 항의한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12] 실제로 5월 18일 인터뷰에서 "사죄를 했음에도 (후지카와가) 그런 식(항의)으로 나온 것에 대해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연장자로서 참을 수가 없었다"라는 심정을 밝혔다.[13] 막상 아라이 본인도 지난 해 9월 연장자였던 미우라 다이스케 감독이 이끄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홈경기에서 아키야마 쇼고가 데드볼을 맞자 벤치 클리어링을 벌인 전적이 있어서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엔 직전에 카프 측에서 주전포수 야마모토 유다이를 맞춰서 교대시킨 일(야마모토는 직후 골절상으로 판명되어 시즌아웃당했다.)이 있었던 탓에 보복사구로 볼 여지도 충분해서 분위기가 고조되던 도중 DeNA의 불펜 투수였던 로완 윅이 카프 벤치를 향해 도발을 걸자 참지 못해 달려든 것이라 미우라를 직접적으로 저격했다고 보긴 힘들었다.[14] 8회 도중 모리 쇼헤이가 무사 만루 위기를 초래한 뒤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주자 부랴부랴 나카자키 쇼타와 모리우라 다이스케를 차례대로 등판시켰지만 어깨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온 탓에 제 컨디션대로 던지기 힘들었고 결국 승계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인 건 물론 견제 실수로 추가점까지 내주는 바람에 점수차가 2점차까지 좁혀졌다. 9회엔 본래 마무리 투수를 맡던 쿠리바야시 료지가 아닌 테일러 헌을 내보냈는데, 2아웃까진 나름대로 잘 잡았으나 승리를 눈 앞에 둔 채 볼넷-안타-도루로 2사 2, 3루 위기를 초래했고 결국 프란밀 레예스에게 동점 2점 적시타를 얻어맞고 말았다.[15] 교류전 1~6위를 퍼시픽리그 팀들이 모조리 독차지하며 사실상 일방적으로 센트럴리그를 압살한 시리즈가 되었다.[16] 하야시는 며칠전 본인이 직접 타격지도도 봐주면서 이틀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이 좋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컨택 원툴도 못하고 있는 베테랑을 기용하니 팬들 입장에서는 야오쵸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17] 대학 시절 오재원을 구타한 걸 미담이라고 인터뷰했으며, 억지로 주장 자리에 앉힌 것, 유희관의 점퍼를 훔쳐 친한 기자에게 줘 버린 것과, 결정적으로 위의 부전드 발언 등.[18] 2012년 기준으로 주니치의 도노우에 타케히로-나오미치 형제, 롯데의 오오미네 유타-쇼타 형제, 야쿠르트의 사토 요시노리-타카노리(육성선수). 히로시마의 나가카와 카츠히로-미츠히로(육성선수)가 형제 선수로 같은 팀에서 뛰고 있었다. 현재는 모두 해체.[19] 二次会は黒田博樹さんの家でやりますので。聞いたら300人以上入れて大丈夫らしいし。[20] (集まったのは)270人くらいですかね。黒田さんも喜んでくれました。[21] 원래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당 가운데에 불을 지펴놓고 불경을 외우는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