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6 21:33:57

박두영(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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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평가

1. 개요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의 등장인물로 2부 후반의 메인 빌런 중 하나.

원 역사의 박두영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이다.

2. 작중 행적

국가헌병대 부총관이자 차기 총관으로 내정된 강종의 측근. 극동 전쟁 당시에는 포병장교였다. 이갑과 동기지만 앙숙 관계로 원수부를 욕하다 중징계를 받게 되었고, 이 때문에 사표를 던지고 국가헌병대에 투신하게 된다. 각종 월권행위를 해 헌병대 총관인 이용익, 박제순과도 갈등을 가지며, 경무청에 권한을 뺏으려다 남만리와도 갈등을 벌인다.

영친왕의 친왕비를 일본에서 뽑자고 제안하며 만주에서 아미앵 독감으로 추정되는 역병이 퍼진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감기 걸린 것이 티푸스나 폐렴 번진 것이라고 취급한다. 땔감난에 독감이 한성까지 휩쓸어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진 가운데 종전 협상에서 관동주를 영토화하는데 실패해 민중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여차하면 장갑차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라는 막무가내를 견지한다.

김시혁의 가족을 비롯한 군부 관계자들의 가족을 인질삼아 협박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고종에게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각하된다. 이후 황실이 일본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내용이 대한매일신보에 실려 분노한 군중들이 광화문에 집결하자 격노하며 부하들을 폭행하던 도중 고종의 부름을 받게 되고, 광화문에 모인 군중들을 장갑차로 밀어버리자고 주장하다 꾸중을 듣는다. 곧 자신도 고종에게 얼마든지 토사구팽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팽당하지 않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고종이 김시혁과 독대한 이후 더 불안이 심해져 이승만의 청년단을 이용해 그들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이를 눈치챈 기록국이 손을 써 청년단 지도부 대다수가 죽거나 다치자 계획을 바꿔 한성부 동부 봉쇄를 풀어달라는 가두시위를 이용하기 위해 시위대가 올라오는 열차를 막지 않고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와도 무시하며 이 때문에 시위 규모가 커지자 고종은 임오군란갑신정변의 트라우마가 도저 계엄령을 선포하고 발포 허가까지 하며 이를 반대한 김시혁을 가택연금시킨다.[1]

계엄령 이후 선무사 겸 한양 토포사에 임명되며 시위대가 계엄령에 저항하자 바로 발포하여 경복궁 앞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진압작전을 무리하게 서두른 탓에 비축된 탄약이 충분하지 못했고 좁은 전면에 5개 여단을 한꺼번에 밀어넣으면서 부대들이 엉키고 만다. 여기에 순검대 상당수가 진압을 거부하고 인민들 편으로 돌아서 교전을 벌이면서 경희궁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이에 정훈이 고종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억류하려 했었던 김시혁이 시민군에 의해 구출받으며 원수부에 합류하고 서소문 일대가 시민군에게 넘어가자 위축된다. 이후 김시혁이 역습해오자 이근상과 함께 이를 보고하며 북한산성으로 이어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이호석의 작전대로 주력군이 떠난 용산 원수부에 헌병분견대를 보내 함락하려 하지만 해군에서 해군육전대 2개 중대를 원수부 지원군으로 보내 실패하며 한산급 구축함 함흥이 경복궁과 헌병대 주력에 위협 포격을 하고 용산역까지 점거당했다는 소식과 김시혁이 육조거리까지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퇴각한다. 이때 신무문에 있는 헌병 대대 1개와 창덕궁에 있는 잔여 병력까지 데리고 북한산성으로 가는 바람에 고종이 북한산성으로 이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2] 또한 1기병사단이 한성부로 오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헌병대 2여단장인 민형식이 철수하여 북한산성으로 오라는 명령을 거절하자 2여단 참모장을 시켜 민형식을 살해한다.

그러나 인민의 황제로 즉위한 의친왕이 그들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토벌을 명령한데다 신우균과 김상설이 원수부에 항복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북한산성 내부에서 봉기를 일으키자 이를 진압했지만 신우균, 김상설이 도주하면서 창고를 불태워 버려 순식간에 북한산성의 수많은 물자를 망실해 버린다. 게다가 헌병대를 토벌하러 온 제1강습보병여단이 항복하지 않으면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위협하자 북한산성 내부에서 혼란이 발생해 완전히 무력화된다. 결국 다른 헌병대 수뇌부와 함께 체포되고 끌려가면서 그 어떤 변명도 자신을 살릴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한다.

학살 책임자들을 단죄하는 특별군사재판 재판정에 끌려나와서는 어떻게든 죄를 떠넘기고, 살려달라 애걸하는 이근상, 이재곤과 달리 자포자기했는지 죄를 부정하고 막말을 퍼붓기 시작한다. 새 황제 이강이 친히 증인 출석까지 한 지엄한 자리임에도 헌병대에 총을 들이댄 폭도들인데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 라는 망언을 지껄이며 고종에게 반역한 반역자들이 벌이는 이따위 재판은 무효라고 난동을 부리지만 결국 판결에 따라 이등졸로 강등되고 밤섬 사형장까지 조리돌림을 당한 후 총살형에 처해진다.[3] 총살형을 받을 때도 제1기병사단 1개 대대병력 전원이 총살형에 참여하겠다고 아우성을 칠 정도였고, 같이 사형당한 이재곤과 이근상은 즉사했지만 박두영은 집행관들이 일부러 고통스럽게 죽으라고 폐를 쏴서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집행대장 차도선 정령이 그나마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머리를 쏴 겨우 숨이 끊어진다.

3. 평가

인민이 흘린 피의 무게가 바로 이런 거요.
- 차도선[4]
국민을 지킨다는 개념도 없고, 원수부를 증오하고 잦은 월권행위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와 결국 계엄령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행위로 인해 현재 그의 평가는 단언 최악이다.[5]

심지어 고종의 사병처럼 움직였지만 본인 권력을 위해 고종도 억류할 계획을 세웠으며 종국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지휘부에서 이탈하여 잔여 병력을 이끌고 북한산성으로 도망가 고종의 퇴로를 막아버리는 등 충성심 또한 없다.

결국 체포되고 총살당하기 직전까지 뻔뻔하게 나오며 반성 조차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즉사한 이재곤, 이근상과 달리 즉사하지 않아 고통 속에 죽게 되면서 악행에 걸맞는 최후를 맞이했다.


[1] 원래 박두영도 고종이 이렇게까지 강경 진압을 할 것이라는 것과 김시혁이 진압을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고종, 김시혁 등을 모두 억류하려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고종이 막나가는 것과 김시혁이 강경진압을 반대한 것에 대해 당황해 했다.[2] 모든 지휘를 포기하고 도망간 것이라서 누가 오든 열어주지 않고 농성할 생각이라고.[3] 조리돌림 당할 때 '나는 인민을 도살한 대역죄인입니다.' '나는 인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건채 밤성 사형장으로 걸어갔다.[4] 박두영을 확인사살 하기 전 그에게 한 말. 즉 박두영의 죽음은 인과응보이라는 의미.[5] 다른 대체역사소설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도 1930년대에 예비역 육군 부장으로 육군 극우파의 쿠데타 주동자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