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막시무스 메살리누스 라틴어: Marcus Aurelius Cotta Maximus Messalinus | |
생몰년도 | 미상 ~ 35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제국 미상 |
사망지 | 로마 제국 미상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아버지) 아우렐리아 코타(어머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양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이복 형제)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20년 |
전임 |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
동기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 |
후임 | 티베리우스 소 드루수스 |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는 기원전 61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는 기원전 3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어머니 아우렐리아 코타는 기원전 75년 집정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손녀로 추정된다. 이복형제로 기원전 3넨 집정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가 있었다. 이후 외삼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에게 입양되었고, 자기 이름에 '아울레리우스 코타'를 추가했다.12년 재무관을 맡았고, 16년 마르쿠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드루수스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암살하려다가 발각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자살한 사건과 관련하여 원로원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 자기를 제외한 모든 집정관 계급의 6인과 함께 연설했다. 이는 그가 내년도 법무관 임명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20년 사촌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와 함께 집정관에 올랐다.
그의 집정관 임기에, 게르마니쿠스를 죽음으로 몰아간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재판 도중에 자살한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의 처벌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그는 집정관 자격으로 피소의 이름을 모든 행정관 목록에서 삭제하고, 그의 토지 일부를 몰수하며, 그의 장남 그나이우스에게 프라이노멘을 변경할 경우에만 재산 일부를 남겨주며, 피소의 또다른 아들 마르쿠스를 원로원 의원에서 축출하고 10년간 추방하며, 리비아 드루실라의 중재에 따라 피소의 아내 플란키나에게 면책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따. 그러나 이러한 제안 대부분은 티베리우스에 의해 완화되었다.
24년, 그는 총독의 아내가 저지른 범죄를 심판하는 재판의 판사를 맡았다. 이때 그는 남편이 아내의 범죄를 몰랐더라도, 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판결했다. 29년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의 아내 대 아그리피나와 장남 네로 카이사르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원로원에서 티베리우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32년 세야누스가 몰락한 직후, 많은 원로원 의원들은 그가 게르마니쿠스의 혈통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추진했고, 아우구스타와 다른 귀족 동료들을 불쾌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그는 티베리우스에게 호소했고,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에 편지를 보내 오랜 친구인 그를 변호해서 처벌받지 않게 해줬다. 35년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했다고 전해지며,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