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라틴어: Lucius Vitellius | |
| 생몰년도 | 10년 ~ 69년 |
| 출생지 | 로마 제국 로마 |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 지위 | 노빌레스 |
| 국가 | 로마 제국 |
| 가족 | 푸블리우스 비텔리우스(조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아버지) 섹스틸리아(어머니) 아울루스 비텔리우스(형) 유니아 칼비나(첫 번째 아내) 트리아리아(두 번째 아내) |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 로마 제국 집정관 | |
| 임기 | 48년 |
| 전임 |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포플리콜라 |
| 동기 | 메살라 빕스타누스 갈루스 |
| 후임 | 퀸투스 베라니우스 가이우스 폼페이우스 롱구스 갈루스 |
1. 개요
로마 제국의 집정관. 비텔리우스 황제의 동생이다.2. 생애
조부는 아우구스투스의 집 관리인 푸블리우스 비텔리우스이며, 아버지는 34년, 43년, 47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아시아 총독으로서도 활약하며 로마 정계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이고, 어머니는 화폐 주조관 마르쿠스 섹스틸리우스와 원로원 의원 푸블리우스 파비우스의 딸 파비아의 딸인 섹스틸리아다. 형으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가 있었다.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루키우스는 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공직과 중요한 사제직"을 차지했는데, 이 공직에는 공공사업 관리자가 포함되었다. 수에토니우스는 그가 2년간 아프리카의 총독을 지내면서 예외적으로 정직하게 행동했다고 기술했다. 그를 총애했던 황제는 아버지를 신임한 클라우디우스 1세, 형을 총신으로 둔 네로, 그리고 형 비텔리우스일 가능성이 높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46년 또는 47년에 19년 집정관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와 아이밀리아 레피다[1]의 딸인 유니아 칼비나와 결혼했다. 그러나 49년 루키우스의 아버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가 유니아 칼비나가 남동생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 고발한 뒤 이혼했고, 칼비나는 이혼당한 직후 자살했으며, 실라누스도 네로와 옥타비아가 결혼한 날에 자살했다. 아버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클라우디아 옥타비아를 자기 아들 네로와 결혼시키려던 소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아 옥타비아의 약혼자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를 제거하려 하는 것에 부응하고자 이런 일을 저질렀다. 이에 사람들은 아버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가 권력에 아첨해 차마 못할 짓을 서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 후 루키우스는 트리아리아라는 여인과 재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69년 형 아울루스 비텔리우스가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를 물리치고 황제로서 로마에 입성했을 때, 고급 생선 2,000마리와 사냥용 새 7,000마리가 포함된 거대한 잔치를 열어 형의 승리를 축하했다고 한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는 형에게 유니우스 블라이수스가 군대와 민중을 상대로 자신을 지지하라고 권고하고 금품을 살포하고 있으니 속히 죽여야 한다고 권고했고, 비텔리수으는 이에 따라 블라이수스를 연회에 초대한 뒤 독살했다고 한다.
69년 12월 베스파시아누스를 지지하는 군대가 로마로 진군했을 때, 루키우스는 캄파니아에서 6개 대대와 기병대 500명을 이끌고 베스파시아누스를 지지하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있었다. 그는 페로니아를 점령했으며, 타라치나를 기습 공격해 함락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의 아내 트리아리아는 타라치나 마을을 점령한 후 군인의 칼을 찬 뒤 여러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고 몇 명을 손수 칼로 죽이는 등 잔인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프리무스의 도나우 군단이 치열한 시가전 끝에 로마를 점수하자, 그는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보밀라이에서 항복한 뒤 자신과 부하들의 안전을 위해 프리무스와 몸값을 협상했다. 그러나 얼마 후 비텔리우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리무스는 루키우스를 처단했다.
[1] 1년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아우구스투스의 외손녀 소 율리아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