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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fd3e3><colcolor=#000> 하야시바라 메구미 [ruby(林, ruby=はやし)][ruby(原, ruby=ばら)]めぐみ[1] | Megumi Hayashibara | |
<nopad> | |
출생 | 1967년 3월 30일 ([age(1967-03-30)]세) |
도쿄도 키타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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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성우, 가수, 라디오DJ, 내레이터 |
신체 | 155cm|O형 |
가족 | 부모, 오빠(1958년생) 배우자(1970년생, 1998년 결혼) 딸(2004년생) |
학력 | 세이가쿠인 소학교 (졸업) 죠시세이가쿠인 중학교 (졸업) 죠시세이가쿠인 고등학교 (졸업) 간호 전문학교 (졸업) |
양성소 | 일본 나레이션 연기연구소(제1기) |
소속사 | 아트비전(1986~1999) 우드파크 오피스(1999~현재) |
활동 시기 | 성우 | 1986년 ~ 현재 가수 | 1989년 ~ 현재 |
별명 | 메구상(めぐさん), 각하(閣下) |
링크 |
1. 개요
일본의 성우, 가수.
1980년대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해 뛰어난 연기력과 넓은 목소리 폭으로 데뷔 30년이 된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제3차 성우붐의 주축이 되었고 "최초의 성우 아티스트"로 90년대 이후 활동한 모든 아티스트 성우들이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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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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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별명과 성격
가장 유명한 별명은 각하. 인터넷에 하야시바라 관련 글이 올라오면 90% 이상의 확률로 '각... 각하!' 등의 댓글이 달린다. 히라마츠 아키코가 술자리에서 장난으로 각하라고 부른 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동료 성우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각하라고 부르게 되었고, 라디오를 통해 팬들에게 알려진 후 하야시바라를 대표하는 별명이 되었다. 포켓몬스터 현장에서는 (식료품)대신(大臣)[5]으로 통하는데, 먹을 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의 냉장고에 자기 간식/저녁거리를 넣어놓고서는 잊어버리기 일쑤라서 식료품 부문의 대신(장관)이란 뜻으로 붙여줬다고 한다.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고 대식가로 유명해서 후배인 호리에 유이가 '(하야시바라가) 먹을 걸로 전설을 만들었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선배 히다카 노리코가 어떤 여자 신인 성우에게 '넌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닮았네.'라고 말해서 그 성우가 기뻐했는데 이유가 회식에서 먹기 전에 벨트를 풀러서인 걸 알고 실망했다는 일화도 있다. 안노 히데아키의 증언에 의하면 에반게리온의 녹음을 하던 시기에는 회식에서 '고기~ 고기~'하고 노래를 불렀고, 《슬레이어즈》 성우들과 스텝들과 10명 정도가 고기집에 가서 가게의 모든 고기와 술을 동냈다는 전설을 만들기도 했다.
건망증이 매우 심해 항상 무언가를 놓고다니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햄을 세탁기 위에 놓고 잊어버렸다가 남편이 발견했다는 일화나, 지갑을 하도 자주 잊어버려서 체인이 달린 지갑을 사서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데 그 가방도 잊어버렸다는 일화, 녹음 스튜디오에 말고기 육회를 놓고 가서 성우들과 스텝들이 폭소했다는 일화 등 하야시바라의 건망증에 대한 일화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을 잊어버리고 스튜디오의 실내용 슬리퍼채로 집에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로켓단 로이역의 미키 신이치로는 항상 하야시바라가 집에 가기 전에 "메구짱 열쇠는? 지갑은?"라고 물어보면서 챙겨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매번 무언가를 놓고 간다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도 유명하다. 신인시절 란마 1/2와 시끌별 녀석들 합동 이벤트에서 시끌별 녀석들 팬들이 란마 성우들에게 야유를 보내자[6] 불같이 화를 내고 직접 찾아가서 따진 적도 있다. 거의 싸우기 직전까지 갔지만 친언니처럼 따르는 히다카 노리코가 겨우겨우 뜯어 말려서 진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많이 부드러워져서 "(악플을 보면) 그런 사람들조차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라면 화가 나서 따지려고 했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 그런 생각도 안 든다."[7]고 말하기도. 2002년의 「니시카와 타카노리의 올 나잇 닛폰 SUPER! ~가을의 애니메이션 축제~」 편에 초대 받아 이케다 슈이치, 이시다 아키라와 함께 두시간 동안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낯을 가리는 니시카와에게 "내 눈을 쳐다봐!!!" 라고 말하면서 니시카와를 매우 당황하게 했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게스트 라인업.
완벽주의자 성향이 짙어서, 일할 때에는 엄격하면서도 심혈을 기울인다. 스텝들도 하야시바라가 NG를 안 낼 줄 알고 놓치고 넘어간 부분을, 이쪽이 스스로 지적하고 다시 녹음할 때도 많다고. 녹음 현장에서 군기반장으로 후배들이 무서워하는 선배로 꼽힌다. 상습적인 지각으로 악명이 높았던 타카기 와타루는 건방진 천사 스튜디오에서 된통 당한 계기로 지각 습관을 고쳤다. 당시 신인 성우들이 많았던 샤먼킹 (2001) 현장에서는 후배들이 NG를 내면 음향감독보다 먼저 그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 적도 있다. 쉽게 말해서 허투루 일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똥군기라고 절대 볼 수는 없는 것이 그녀는 후배들이 노력하고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면 자신에게 장난치거나 놀려도 잘 받아주고 사적으로는 별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격이다.
일할 때 한정해서 엄격하고 무서워질 뿐 평소에는 유들유들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서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다. 하야시바라는 80년대 기준으로 어릴 때(18-19세) 데뷔해서 연상인 후배가 매우 많은데,[8] 이들과 호칭도 편하게 하고 서로 반말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후배에게 간식과 밥도 잘 사주는 선배다. 이를 몰랐던 어떤 신인 성우는 음료수를 사주려고 자신을 불렀는데도, '연기를 못하는 자신을 혼내려고 부르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스스로도 스튜디오에 들어선 순간 인격이 바뀐다고 얘기할 만큼, 공사구분이 확고한 사람이다.
팬 서비스 역시 일본 성우 중에서는 최상위에 있는 성우라 팬들을 만나면 언제나 호의를 베풀고 화기애애한 소통을 나눌 정도다. 성우로서의 위상이 엄청난 것은 본인의 역량이 타고난 것도 있지만 이러한 매너와 마음가짐도 훌륭한 것도 있다.
4. 대인관계
동기[9]인 히라마츠 아키코, 사사키 노조무, 와타나베 쿠미코와 친한데, 특히 히라마츠 아키코와 절친한 사이로 신인시절 서로의 집에 자러가거나 하야시바라가 출산으로 일을 쉬었을 때 히라마츠가 대타로 포켓몬스터에 출연해주기도 했다. 사사키 노조무와는 자신의 남자친구라 불릴 정도로 친했고 옛날부터 그가 같이 나오면 기뻐할 정도. 커리어로는 후배 성우들이지만 본인과 67년생 동갑내기 성우들인 야지마 아키코와 미츠이시 코토노와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10]오랫동안 출연해온 《란마 1/2》, 《명탐정 코난》, 《포켓몬스터》 성우들과 돈독한 관계로 동년배인 야마구치 캇페이, 사쿠마 레이, 오오타니 이쿠에, 미키 신이치로, 이누야마 이누코, 카나이 미카, 아이카와 리카코와는 사적으로도 친하고 미도리카와 히카루, 유사 코지, 칸나 노부토시, 쿠사오 타케시, 치바 스스무와도 깊은 인연이 있을 정도로 친하다. 특히 아이카와 리카코와는 가족끼리 교류하는 사이로 아이카와의 남편 이와타 미츠오의 고향(나가노)에 매년 딸을 데리고 자주 놀러가서 모내기와 추수를 돕고, 아이들을 데리고 후지큐 하이랜드에 놀러간다고 한다.
《란마 1/2》 텐도 아카네 역으로 만난 히다카 노리코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논코상에게는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다.'고 말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이다. 히다카는 20대 초반 다혈질이던 하야시바라를 보고 '재능은 빛나지만 너무 직설적이어서 미움 받기 쉬운 아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모로 다독여주고 가르쳐주었고, 하야시바라는 히다카의 보살핌을 받으며 많은 것을 깨달으며 히다카 노리코를 친언니처럼 따르게 됐다. 결혼-임신-출산 등 인생의 중대사를 앞두고 모두 히다카 노리코에게 상담했다고 하며, 출산 후 처음 병원에 문병을 간 사람이 히다카 노리코고, 히다카가 하야시바라의 출산 휴가 동안 라디오 대타 진행을 4주간 해주고, 하야시바라의 생일날 깜짝 게스트로 출연해서 하야시바라의 인생 상담을 해줄 정도로 친한 사이. 히다카 노리코가 홍보할 작품, 이벤트가 있으면 무조건 하야시바라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청해 홍보해주고 히다카 노리코의 라디오 공개방송에 항상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타카야마 미나미와는 부부로 불리는데 《샤먼킹》 출연 당시 신인 성우였던 박로미와 사토 유우코가 대선배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타카야마 미나미에게 연기조언을 받으며 존경의 의미를 담아 두 사람을 각각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했다. 두 사람은 신인시절 란마에서 여자 란마와 텐도 나비키로 공동출연하며 친해졌고 《가라! 우주전함 야마모토 요코》, 《명탐정 코난》 등 많은 작품들에서 30년 가까이 같이 일하면서 사적으로도 가까워진 관계이다. 서로를 표현하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존재라고.
타나카 마유미, 이쿠라 카즈에 등 《마신영웅전 와타루》 성우진 선배들이 막내였던 하야시바라를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간호대 졸업식과 와타루 1화 녹음일이 겹친 하야시바라를 위해 선배 성우들과 스텝들이 작게 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간호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하야시바라에게 밥을 사주고, 교통비를 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등 많이 도와줬다고. 특히 다나카 마유미는 매주 밥을 사주고, 집에도 초대하고, 술자리에서도 챙겨줬는데 하야시바라의 어머니는 야구선수 마유미 아키노부처럼 성이 마유미인 남자 성우인줄 알고 매우 걱정했다고 한다.
오가타 켄이치와 30년 가까이 부녀(같은) 관계로 연기하는 배역이 매우 많아, 실제로 아버지처럼 따르며 성우계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첫 레귤러였던 《마신영웅전 와타루》에서 시노비베 히미코-시노비베 겐류사이, 출세작 《란마 1/2》의 여자 란마-사오토메 겐마, 《요술공주 밍키(1991년 애니메이션)》에서 밍키모모-임금님(밍키모모의 아빠), 《명탐정 코난》의 하이바라 아이-아가사 히로시 등 신인 시절부터 베테랑이 된 지금까지 매년 부녀(같은) 관계를 연기해오고 있다. 오가타 켄이치는 1942년생이기 때문에, 1967년생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는 아버지뻘인 선배다.
일본에서 제일 존경받는 남성 성우 1위 야마데라 코이치와도 사이좋은데 야마데라와는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작품이 많다. 마신영웅전 와타루나 마동왕 그랑조트, 란마 1/2, 카우보이 비밥,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 등등. 이런 에피소드도 있는데 TBN 505회(2001년 12월 방송) 때 말하길 예~옛날 4월 1일에 마신영웅전 와타루 녹음 현장에서 하야시바라는(와타루 당시엔 신인이었다) 만우절이고 와타루의 녹음 현장은 좋은 분위기니까 해도 모를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들어주세요 복권 1천만엔 당첨됐어요!" 라고 거짓말 했다고 한다. 주위에선 그걸 진짜로 믿고는 놀라면서 대단하다고 막 그러는데 그 당시엔 하야시바라처럼 신인이었고 같이 구석 쪽에 앉던 야마데라가 자기 팔을 꽉 잡더니 어디로 데려가선[11] 그런 건 너무 큰소리로 안 말하는 게 좋다는 말과 이것저것 어드바이스를 해줬다고...[12] 그리고 거짓말이라고 밝혔을 때 당연히 다들 화내긴 했지만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 했다는 모양. 다만 야마데라는 진짜 화냈다고 한다.
모리카와 토시유키와 히야마 노부유키는 옛날에 하야시바라의 라디오 Heartful Station과 Tokyo Boogie Night에 게스트로 자주 왔었는데 따로따로 온 적도 있지만 둘이 같이 왔을 때가 많은 데다 HS의 코너 징글 중에 둘의 미니 콩트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셋이 즐겁게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친하다는 게 잘 느껴진다. 그리고 모리카와랑 히야마가 하는 토크 이벤트의 제10탄(1999년 개최) 때부터 현재까지 쭉 장내 아나운스도(아나운스만) 해주고 있다.
모리카와 토시유키와는 데뷔 초기 시절부터 같은 아트비전 소속에 나이도 또래인데다가 테카맨 블레이드에서도 주연 역할을 맡으면서 인연이 누구보다 깊다. 하야시바라 본인이 아트비전을 퇴사하고 모리카와 역시 아트비전을 퇴사하고 엑셀원을 창립하여 대표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여전히 둘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츠모토 야스노리와도 친분이 깊은데 천공전기 슈라토를 시작으로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슬레이어즈 등 많은 작품에 함께 출연하였다. 마츠모토가 방송 관계로 배에 탑승했을 때 코를 다쳤는데 하야시바라도 이때 같이 배에 탑승했던 사람이라 마츠모토의 부상당한 코를 직접 치료해줬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아트비전에 입사한 요코야마 치사도 본인처럼 괄괄한 성격이지만 이쪽은 너무 불같은 성미라 대인관계까지 좋지 않고 제작진과도 불화설이 있었을 정도지만 요코야마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혼다 치에코와 하야시바라는 1988년 《燃える!お兄さん》에서 처음 만났는데, 작은 체구와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던 혼다에게 엄청난 질책과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성우로서 성공했지만 데뷔 연차가 10년, 20년이 넘었음에도 혼다 치에코만 만나면 쩔쩔매며 무서워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선배로서 혼다 치에코를 존경했으며 사적으로도 친한 편이어서 라디오 《하야시바라의 Tokyo Boogie Night》 타이틀은 혼다 치에코와 듀엣 곡의 제목에서 따왔고, 오키나와 여행도 같이 간 적 있으며, 라디오에도 여러 번 게스트로 초대했다. 2013년 혼다 치에코가 사망하자 라디오에서 애도를 표하며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당시 방송
혼다 치에코 외에도 미즈타니 유코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나이는 미즈타니가 3살 위지만 데뷔 시기는 비슷하다. 실제로도 그와 같이 출연한 작품이 꽤 많았고 미즈타니 유코 역시 혼다 치에코에 이어 2016년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노우에 요우와의 인연도 유명한데, 하야시바라가 이노우에 요우가 사망한 뒤 올린 추모글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츠모토 리카[13]와 함께 신인이던 시절인 1988년 《오소마츠 군》에서 마츠노 오소마츠와 마츠노 토도마츠 역으로 처음 만났다. 지금의 《오소마츠 상》과는 달리 당시 여섯 쌍둥이들은 목소리로 구별을 해야 해서 담당 성우들이 많이 헷갈려 했을 때, 당시 여섯 쌍둥이 역 중 제일 선배이자 오소마츠 역이었던 이노우에 요우가 "자기 차례가 오면 눈치 보지 말고 마이크 앞으로 나오세요. 다른 사람 밀쳐도 좋으니까."라며 당시 하야시바라를 포함한 신인들을 독려해줬다고 한다.
스자키 아야와는 라디오를 통해 사연을 보내고 진로를 상담했던 열혈 팬이 꿈을 이뤄 성우가 돼서 자신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는 만화에 나올법한 인연로 유명하다. 라디오 게스트 출연 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스자키 아야의 항목을 참조.
4.1. 오카자키 리츠코와의 관계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에 대한 마음이 매우 각별하다 못해 넘어서는 수준이다.그녀가 여주인공 다테 미즈키 역으로 목소리 연기를 한 OVA <1월에는 크리스마스>에서 오카자키 리츠코가 본명으로 데뷔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녀가 부른 겨울이 없는 캘린더 에서의 애절한 음악과 보이스에 한 귀에 반한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그 길로 킹레코드의 음악 프로듀서인 오오츠키 토시미치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노래가 있어! 당장 이 아티스트랑 계약해! 라고 강권하고 우리는 이런 사람이랑 일하지 않으면 안돼! 들어! 라고 강압적으로 노래를 계속 들려주며 채용을 요청한 끝에 결국 다음 작품인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꿈을 껴안고 에서 재회를 성사시켰을 정도로 오카자키 리츠코와의 만남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14][15]
당시 최고의 성우로 떠오르고 있던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당시 검증되지 않았던 무명 싱어송라이터의 열성팬이 되었다는 의미. 하야시바라 메구미 자신도 당시 그녀와의 조우를 위해 왜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고 이는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이후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오카자키 리츠코는 가수와 작사 · 작곡자로서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이는 2004년 5월 5일 오카자키 리츠코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나게 된다. 하야시바라는 업계내에서 오카자키의 사망 당시 가족 외의 인물 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었던 인물 중의 하나이다.[16] 어느 정도 였냐면 오카자키가 사망한 직후 그 소식을 알게된 하야시바라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기 두려웠던 나머지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었다. 장례식에 참석해 그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것을 확인해 버리는 꼴이 되므로 이를 두려워 한 것.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할 기회를 놓친[17] 하야시바라는 외적으로는 자신의 라디오에서 그녀의 추모방송을 진행하는 등 오카자키의 죽음을 인정한 듯이 행동했었지만 내적으로는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오카자키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고 단지 그녀는 죽지 않았으며 단지 프랑스와 같은 먼 나라로 떠나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뿐이라고 현실부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를 치유하기 위해 했던 활동이 오카자키의 곡을 자신이 부르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서 그녀에 대한 현실부정적인 마음을 정리하고 추모의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
이와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2007년 방영됐던 애니메이션 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의 주인공 아마미야 마나미 역으로 캐스팅 됐었으나 캐스팅 당시 그녀는 당시 아직 딸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해당 작품을 고사했었다. 그래서 해당 주인공역은 호리에 유이에게 돌아갔는데 이와 함께 OP곡과 ED곡도 호리에 유이가 부르는 걸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도 해당 애니메이션의 음악 프로듀서가 작품에 쓰려고 했던 곡이 오카자키 리츠코의 곡을 리메이크한 노래였고 이를 알게된 하야시바라는 다른 건 몰라도 주제가 만큼은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에 응한 음악감독이 정식으로 그녀에게 요청을 했고 이로인해 해당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들은 주인공역을 맡은 호리에 유이가 아닌 해당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성우가 아닌 가수 자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출연도 하야시바라가 해당 작품의 주제곡을 부르게 되자 제작팀이 이에 대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단역으로 캐스팅한 경우였다.
그녀가 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의 주제곡들을 강력하게 부르고자 했던 것은 오카자키 리츠코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실부정적인 마음을 정리하고 추모의 의미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호리에 유이 또한 대선배의 마음을 알고 흔쾌히 OP와 ED 주제가를 양보했다.[18] 그런 마음으로 하야시바라는 OP 'A Happy life'와 ED 'Lucky & Happy'를 노래한다.
그리고 함께 교제하는 동안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던 하야시바라는 이후, 그녀에 대한 추모곡을 직접 작사·작곡 해서 발표했고[19]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오카자키 리츠코 의 노래를 리메이크 해서 부르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그녀의 음악들을 간간이 선곡하며 틈이 날 때마다 언급하면서 그녀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계속 각인시키고자 하고 있다. 심지어 2017년 5월에는 오카자키 리츠코의 노래를 베이스로 하여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노래를 부른 헌정앨범 "with you"를 발표했고 같은 해 가수 데뷔 후 대망의 첫 라이브 콘서트를 오카자키 리츠코 특집으로 열 정도로 그녀에 대해 열성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20] 오카자키 리츠코가 2004년 사망 전까지 속했던 유닛 멜로큐어의 다른 멤버 히나타 메구미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그녀가 잊혀지지 않도록 알리는데 가장 열성을 기울이는 사람 중의 한 명이며 현재 그녀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앞으로도 잊지않고 오카자키 리츠코의 노래를 불러서, 그녀를 잊혀지게 하지 않게하는 것 이다.[21]
하야시바라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감정을 알고 싶다면 여기 참조. 그녀가 2006년 2월 26일 뉴타입 잡지의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바라 생활' 코너에 기고한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글인데 말미에 매듭을 짓지 못한 내 마음은 실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하늘에서 올 리도 없는 데모 테이프를 마음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내 멋대로 결론 짓곤 한다.라는 내용을 적었었다. 그런데 그 이후 그녀에게 12년에 걸쳐 그 하늘에서 올 리도 없는 오카자키 리츠코 작사/작곡의 미발표곡 데모 테이프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그녀의 손에 오게 된다. (첫 번째는 2010년 13집 CHOICE에 수록된 雨の小犬. 두 번째는 2018년 14집 Fifty~Fifty에 수록된 mint) 그야말로 이미 고인이 된 오카자키 리츠코가 사망 이후에도 그녀의 노래를 갈망하는 하야시바라의 소원을 들어준 셈.[22][23]
2022년 1월, 2021년 12월 29일 오카자키 리츠코의 62번째 생일을 맞아 개시한 그녀의 전 앨범 디지털 음반 15초 광고 나레이션을 담당하며 오카자키에 대한 마음과 존경에 대한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고하여 역시 오카자키 리츠코 바라기는 어디 안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리고 2023년 5월, 오카자키 리츠코가 세상을 떠난 달에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담아 올해도 어김없이 그녀에 대한 사랑과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2024년 5월 TBN 방송에서는 오카자키 리츠코 20주기를 맞아 후반부를 그녀의 추모방송으로 꾸몄고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노래를 하고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카자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5. 기타
- 한국에서는 리나 인버스, 여자 란마 등 배역이 겹치는 최덕희와 비슷하다는 평이 많기 때문에 활동시기와 음색도 상당히 비슷한 편이어서 둘 다 시대를 휩쓴 최고의 레전드 성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미숙과 우정신[24]도 주로 겹치는 역할을 많이 맡고 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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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교과서 사진 |
- 1992년부터 작사를 시작해 자신의 노래 대부분을 작사하고, 호리에 유이나 호시 소이치로 등 후배 성우들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사가로서 'MEGUMI'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1996년 원래 가사가 없던 《BLUE SEED》의 삽입곡에 직접 가사를 붙이고 부른 노래를 앨범 『bertemu』에 수록했는데, 이 노래가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받아 2000년부터 현재까지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제목: まつりうた. 작곡: 카와이 켄지/작사: 하야시바라 메구미. 음악출판(教育出版)의 『音楽のおくりもの4』에 수록. 원곡 Youtube)
- 1997년 성우 최초로 고액 납세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은 2005년까지 고액 납세자들의 납세액을 공개했는데 납세액을 역산하면 연간 추정 소득을 구할 수 있었다. 97년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납세액은 3295.1만 엔, 추정소득은 7796.2만 엔이었다. 2ch, 마토메나 SHIROBAKO에서 초인기 성우 연수입 7000만 엔의 출처는 다 여기서 나온 것. 당시 하야시바라의 출연료가 이미 업계 최고였고 TV에 안 나오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출연했지만 소득의 대부분은 저작권료로 추측한다. 97년 오리콘 기준 싱글 약 35만장/앨범 약 30만장을 팔았는데 작사를 하야시바라가 직접 했고, 96년 발매한 자서전이 20만부가 팔려 들어올 저작권료가 어마어마했다. [26]
- 1994년에 코에이에서 개발한 영어학습용 교육 프로그램인 EMIT 에서 주인공인 다나카 유리역을 맡았었는데, 이게 1996년에 국내에도 정발된 적이 있다. 원래 일본에서 영어학습용으로 만든 물건이지만 국내에 들어올 때는 자막만 한글로 바꾸고 음성은 그대로 놔둬서 일본어 교재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인 시기였음에도 합법적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본성우 중 한명이었다.
- 90년대 당시 본인을 비롯해서 미츠이시 코토노, 히사카와 아야, 야지마 아키코와 더불어 주연 전문이자 실력파 여자 성우인 20대 나이의 여자 성우들로 손꼽혔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쪽이 여기 있는 성우들 중에서는 가장 정점에 있는 위상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시라토리 유리, 아마노 유리, 요코야마 치사, 오카모토 마야 등도 저 라인에 들어갈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기 있는 성우들은 언급한 성우들에 비해 인지도가 좀 밀린다.
- 간호사를 했던 경험으로 지방 이벤트에서 한밤중에 병에 걸린 소녀 팬을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간호한 적도 있다고 한다. 마츠모토 야스노리가 유람선에서 다치자 치료해준 적도 있다. 《포켓몬스터》의 무사시(로사)가 포켓몬 간호학교를 다녔다는 설정은 담당성우인 하야시바라가 간호사 출신인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명탐정 코난에서 하이바라가 약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도 꽤 도움이 된다고.
- 2003년 일본 테레비 아사히의 방송 「전국 일제 테스트」에서 '결정! 이것이 일본의 성우 베스트 100'에서 11위에 랭크되었다.# 상위를 차지한 성우들은 오오야마 노부요를 비롯하여 노자와 마사코, 카미야 아키라 등 정말로 전설적인 성우들. 동시대 성우들 중에선 히다카 노리코, 야마데라 코이치, 타카야마 미나미, 이시다 아키라, 야마구치 캇페이, 야지마 아키코 등.
- 2011년 8월 테레비 아사히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성우 100명이 뽑은 대단한 성우 25명 순위에서 8위를 했다. 윗 순위들은 노자와 마사코, 다나카 마유미, 나가이 이치로 등 선배들로 동시대 성우들 중에서는 1위 야마데라 코이치 다음으로 최고 순위. 하야시바라 본인도 투표에 참여했는데 존경하는 선배 3명에 쿄다 히사코, 치바 시게루, 카토 세이조을 꼽았다.
- 타카다 유조의 영상화된 대부분의 작품(《3X3 EYES》, 《BLUE SEED》, 《만능문화묘랑》)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건담 0080》을 인상 깊게 본 타카다가 《3X3 EYES》 주인공에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츠지타니 코지를 캐스팅할 것을 애니메이션 제작진에 요구했고, 하야시바라의 파이 연기에 만족한 타카다는 이후 자신의 작품 여주인공에 하야시바라를 계속 지목했다.
- 포켓몬스터에서 로사 외에도 다양한 포켓몬을 연기했는데 그중에서도 풀타입 스타팅 포켓몬을 자주 담당했다. 이상해씨, 주리비얀, 나몰빼미, 마스카나 등이 있고 하야시바라 메구미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 출산 휴가 당시 라디오 《Heartful Station》는 어시스턴트 호시 소이치로를 메인DJ로 하고 일일 게스트를 초청해서 진행되었는데, 휴가 첫 번째 방송(663화)에서 킹레코드 담당자와 라디오의 코너를 맡고 있는 세가 직원을 시작으로 타카하시 나오즈미, 호리에 유이, 코야마 키미코, 시미즈 아이, 나카하라 마이, 이시다 아키라, 히다카 노리코가 대신 진행을 해주었다. 《Tokyo Boogie Night》는 처음 4주는 역대 방송 하이라이트로, 나머지 4주는 히다카 노리코가 대신 진행해주었다.
- 《슬레이어즈》녹음 현장에서 포키가 옥수수맛이 난다고 감동해서 주변 성우들에게 나눠줬는데 편식이 심한 이시다 아키라는 한번 먹고 “됐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하야시바라는 이시다에게 아침인사를 안하는 등 가볍게 복수를 했다고. 출산 휴가 당시 《Heartful Station》에 게스트로 온 이시다에게 하야시바라가 이 에피소드를 메시지를 보내거나, 《슬레이어즈》 인터뷰에서 자주 거론되는 등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일화인 듯. 이시다 본인은 당황하며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부정하면서 말하길 "심기를 건드렸다."
- 요리를 잘해서 녹음이 끝나고 자신의 집으로 동료 성우들을 초대하는 일이 꽤 많다. 1995년 8월 16일 《저녁밥만세》[27]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돼지고기 말이 튀김으로 출연해 출연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출연 전 후지TV 상품연구부의 감수를 받기 때문에 일단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는 요리 실력을 입증 받았다는 이야기.
- 2007~2009년까지 뉴타입에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빠라 생활>을 연재했다. 번역본은 여기서 확인 가능.
-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뜬금없이 한 케이코가 "6월이야, 올해 6월은 12년에 한번 오는 행운의 시기야. 6월, 6월."이라는 자동응답기 메시지만 덜렁 남겨놓았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뭘까 고민을 하다가 '그럼 6월에 결혼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식 날짜를 6월로 잡았다고 한다. 나중에 한 케이코에게 결과 보고를 하자 한 케이코는 한참을 폭소를 했다고.[28]
- 90년대를 명실공히 휩쓸어버린 성우인데도 슈퍼로봇대전에서 쉽게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히로인 키사라기 아키를 맡은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는 음성이 없는 슈로대 작품에만 나왔고 기동전사 건담 0080의 크리스티나 맥켄지마저 참전작이 줄어들자 아야나미 레이 딱 1명만 남았다. 슈퍼로봇대전 X에서는 마신영웅전 와타루가 참가함에 따라서 오랜만에 시노비베 히미코를 연기했는데 작품 상영으로부터 20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히미코 목소리를 연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슈퍼로봇대전 T에서는 위에 언급된 작품들이 아닌 카우보이 비밥의 페이 발렌타인을 연기. 본인도 '0080 의 크리스역을 하라고 부른게 아니냐' 라며 놀라기도 했다. #블로그 #번역
- 감독인 츠지타니 코지에게 미요키치 답지 않다는 디렉션을 받았을 때 풀이 죽었는데, 작중의 스케로쿠와 키쿠히코랑 똑같이 야마데라 코이치는 농담을 해주며 기분을 풀어줬지만 이시다 아키라는 두 사람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캐릭터랑 판박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수록 때는 항상 구석 자리에 앉는 이시다를 시선으로 제압해 양쪽 팔짱에 야마데라와 이시다를 끼고 녹음했다고 한다.
- 미즈타니 유코와도 천공전기 슈라토,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폭렬헌터 등 수많은 작품에서 같이 출연했지만 안타깝게도 미즈타니 유코가 2016년 5월 17일에 유방암으로 별세하면서 소중했던 선배를 잃고 말았다.
- 성우로서 한창 전성기였던 1995년에 크레용 신짱과 황금용자 골드런같은 작품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당연히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에 대한 자서전도 쓴바 있다. #
- 2020년 5월 11일자 블로그에서 한국 음식 먹방을 보고 짜장라볶이 를 사서 먹고 맛있다고 한국음식을 극찬하였다.# 그리고 2020년 6월 8일자 블로그에서도 닭 소보로를 요리하는 내용을 적었는데 반찬 재료로 한국 김을 언급하며 그 맛을 칭찬하였다.#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극우 음모론 지지 사건
- [ 전문 ](수정전 버전)
- ||<tablebordercolor=#000000>興味がない、わからない、知らない||관심 없고, 이해가 안 되고, 모르겠다||
で
いいんだろうか
本当に心配になって来ました。
以前から
幸せなネタや海外旅行や美味しいご飯や
あれこれYouTubeを見ていました
デボちゃん
キバルン
ジェホ君を見つけました。
楽しい旅行もさせてもらった
おとなり韓国での事です。
日本の『テレビ』も伝えない現場の声
をずっと命をかけて伝えていました。
韓国のテレビと
日本のテレビも放送しない内容もありました。
今、日本でも起きている
怖い事に繋がる
まさかの報道規制
米が無い????
日本に???
一部の海外留学生に無償で補助
日本の学生は奨学金(返さないといけないから
平たく言うと借金ね)
に繋がる曲がった真実
お隣の国で
必死に配信している子達
いつもは面白い、韓国トレンドを、キャーキャー
教えてくれているきばるん
スマートでわかりやすい解説のジェホ君
だれ?何?なんのこっちゃ?
だよね。実際『陰謀論』とも言われているし
気になる人は探って見て下さい
『自分の目』で判断してください。
結果はどうあれ自分の信念で
発信していた
人任せじゃなく
ちゃんと選挙に行かなくちゃいけない
『どうせ』とか『変わらない』は
使ってる場合じゃないとこに
来てしまっていると思う
このままだと
日本の日本らしさが
マナーも、態度も、技術も食糧も消えてしまう
もしかしたら
アニメも(>人<;)
もちろん在日の人の中には本当に日本を愛して
くれている人も沢山、沢山います。
友達もいます!帰化した人もいます!
そんな中
一部のマナーの無い民泊の人や
『譲る』を知らない海外観光客や
京都の竹削ってしまったりする人もいる
規制を持たないと、作らないとやばい
日本ザリガニが
あっという間に外来種に喰われちゃったみたいに
なってしまう。
並んで買う!ルールが損しちゃう事になる
どこか特定の国を否定している訳じゃない
日本の税金は『まずは』
税金を納めた
日本の[被災地]に
日本の学生に使って欲しいと
思うのは排外主義と言われるのかしら
中が疲弊したら[おもてなし]もできなくなる
裏金の方が酷いし問題だけど라는 걸로
괜찮은 걸까
정말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행복한 이야기나 해외여행, 맛있는 식사 이야기나
이것저것 유튜브를 보곤 했습니다
데보쨩
키바룬
제호군을 알게 되었어요.
즐겁게 여행도 다녀와봤던
이웃나라 한국에서의 일이에요.
일본의 ‘텔레비전’도 전하지 않는 현장의 목소리
계속 목숨을 걸고 전하고 있었어요.
한국의 텔레비전과
일본의 텔레비전도 방송하지 않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일들과 이어지는
설마 했던 보도 통제
쌀이 없어????
일본에????
일부 해외 유학생에게는 무상으로 지원
일본 학생은 장학금(갚아야 하니까
쉽게 말해 ‘빚’이죠)
그에 연결된 왜곡된 진실
이웃나라에서
필사적으로 발신하고 있는 아이들
항상 재미있게, 한국 트렌드를 ‘꺄’ 하며
알려주는 키바룬
스마트하고 알기 쉬운 해설의 제호군
누구? 뭔데? 무슨 소리야?
그렇지. 실제로 ‘음모론’이라고도 불리니까
관심 있는 사람은 직접 찾아보세요
‘자신의 눈’으로 판단해 주세요.
결과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신념으로
발신하고 있었어요
남에게 맡기지 말고
제대로 선거에 나가야 해요
‘어차피’나 ‘변하지 않아’는
지금은 쓰면 안 되는 때에
와버렸다고 생각해요
이대로라면
일본의 일본다움이
예절도, 태도도, 기술도, 식량도 사라져버릴 거예요
혹시 모르죠
애니메이션도요 (>人<;)
물론 재일 중에는 정말 일본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아주 많이 있어요
친구도 있고요! 귀화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 가운데
예절 없는 일부 민박 손님이나
‘양보’를 모르는 해외 관광객이나
교토의 대나무를 깎아버리는 사람도 있어요[29]
규제를 갖추지 않으면, 만들지 않으면 위험해요
일본 가재가
순식간에 외래종에게 먹혀버린 것처럼[30]
되어버릴 수 있어요
줄 서서 사는! 규칙을 지키는 쪽이 손해 보는 세상이 될 거예요
어느 특정 나라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일본의 세금은 ‘우선’
세금을 낸
일본의 "피해 지역"에
일본 학생에게 써줬으면 한다고[31]
생각하는 게 ‘배타주의’로 불리는 걸까
안이 피폐해지면 [오모테나시]도 못 하게 돼요
뒷돈 문제가 더 심각하고 문제지만요
2025년 6월 8일, 본인의 Ameblo 블로그를 통해 정치 무관심층이 많은 일본인들에게 정치에 관심[32][33]을 가져야 나라가 외세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음모론'이라고도 불리니까 관심 있는 사람은 직접 찾아보라"며 한국의 각종 논란과 보수 계열 음모론들을 일본어로 다루는 재호, 데보쨩, 키바룬(きばるん) 등을 언급하고 “‘자신의 눈’으로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문제는 해당 유튜버들은 일본어로 활동하는 한국 극우 유튜버들로, 비상 계엄 옹호, 탄핵 반대, 부정선거 음모론 등 무분별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채널들이라는 것이다.#(ⓐ)
해당 포스트의 내용이 일본 내 외국인들과 재일들을 향한 비난을 포함한 글이며 일부 일본인들도 위험한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치 일본이 지금 외세에 침략당하는 것처럼 음모론을 선동하면서 교묘하게 "착한 재일외국인" 방패를 내세우고, 전형적인 "내 친구 중에도 외국인이 있는데"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논지이다. 애초에 하야시바라가 제시한 근거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형적인 넷우익의 레파토리인데, 이는 자신의 눈으로 판단해달라고 호소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극우 유튜버와 넷우익의 선동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외에도 일본 가재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된 비유이며 외래종 문제와 배타주의를 한데 묶어선 안된다는 생물학 전문가의 비판이 있다.
- [ 추가 수정 내용 ]
- ||<tablebordercolor=#000000>私が韓国YouTuberさんを取り上げたら
韓国の友人から連絡がありました。
今、韓国は国内で右派、左派で対立があり貴方が右派を支持するみたいにとれる発言は左派が悲しむ。また逆に左派を支持するような発言をしたら右派が悲しむ。『いらぬ争いに火をつける事になる』と怒られました。『部外者』である私が安易に取り上げてしまう事で悲しむ人がいるとゆー事実
今更だし、さらに火を注ぐ事に
なるかもだけれど傷ついた人が
いたならごめんなさい。
その部分を割愛しました。
既に傷ついてしまった人に
手は伸ばせないけれど
これ以上傷つく人が増えないように。
こんな狭い文章では伝わらないと思う
けれど、声を上げる事すら冷ややかに
日本が日本に[無関心]な事が
とにかく悲しいと伝えたかった
(원래 글 내용 이후)
とにかく、選挙権がある人は(18歳からね)
今一度、その権利を考えて欲しいと言いたかった
やはり政治的な発言は、難しい제가 한국 유튜버들을 언급하니
한국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한국은 국내에서 우파, 좌파로 대립이 있고 당신이 우파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발언은 좌파가 슬퍼할 수 있다. 또 반대로 좌파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우파가 슬퍼한다. 쓸데없는 싸움에 불을 지르게 된다'며 혼났습니다. 『외국인』인 내가 안이하게 다루어 버려서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는 사실.
새삼스럽고 더 불을 뿜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상처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미안합니다.
그 부분을 고려했습니다.
이미 상처받은 사람에게
손은 뻗을 수 없지만
더 이상 상처받는 사람이 늘지 않기를.
이런 좁은 문장으로는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여서라도 차갑게
일본이 일본에 [무관심]한것이
아무튼 슬프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원래 글 내용 이후)
어쨌든, 선거권이 있는 사람은(18세부터)
다시한번 그 권리를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역시 정치적인 발언은 어렵다.
결국 한국 친구가 한국은 좌파와 우파가 분열 중이니 위험하다고 말려서 외국인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주변에서 조언을 들었다며, 상처를 받은 분이 있다면 이미 늦었지만 죄송하고 순수히 일본의 정치적 무관심이 답답해서 남긴 글이라는 추가 문장을 올렸다. 하지만 본래 글은 조금만 수정하여 여전히 게시하고 있다. 블로그 글[34]
키바룬,[35] 그리고 데보쨩과 재호는 한국 국적의 남성 유튜버들로[36], 일본에서 한국 보수 진영의 논리를 설파하는 유튜브 채널로 수익을 얻고 있는 극우 유튜버들이다. 일본 내수용으로만 영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자국인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한류 관련 정보를 전하는 컨텐츠 및 한국 현지 여행이나 문화를 전하는 걸로 여고생을 중심으로 상당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키바룬은 아예 이런 인기에 편승해 TBS의 한·일 합작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 출연하기까지 했다.[37] 이들은 채널 초기에는 먹방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상 콘텐츠 등을 만드는 등 한국 트렌드를 소개하는 평범한 유튜브였으나, 과거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과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비난하면서 시사 관련 영상을 드문드문 업로드하기 시작하더니[38] 이후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을 기점으로 완전히 극우 유튜버로 폭주하고 있다. 한국의 계엄 및 탄핵 관련 정보가 일본에서는 보도가 너무도 늦고 부족했던 관계로, 기존 시청자 층에게 한국의 상황을 전달 한다며 극우 진영의 주장과 논조를 전파함은 물론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넷 우익 세력이 유입되어 현재는 극우 성향의 시사 평론으로 주요 콘텐츠를 바꾸었다.# 대한민국의 정치 좌우 진영의 외교 기조로 인해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고 ‘매스컴에서 다루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포지션으로 자리잡아 한류나 케이팝을 즐기는 젊은층에서도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39]
오가타 메구미[40], 사다모토 요시유키에 이어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간판급 인물 중 상당수가 극우, 제노포비아 관련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에바팬들은 또다시 침통한 분위기에 빠지고 말았고 [41], 코난의 경우 아무로 토오루의 성우였던 후루야 토오루가 불륜 및 폭행을 저지른 것이 들통나 성우 은퇴 및 교체가 벌어진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그것도 주연급 캐릭터의 성우가 정치적 발언을 해 오타쿠들 사이에서 충격이 큰 상황이다. 또,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간판 악동인 로켓단 로사의 원본 성우[42]도 이 사람이 맡았으며 주인공이 교체된 현재도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중인지라 포켓몬 팬덤까지도 단체로 멘붕에 빠지는 등 국내 팬덤에서도 사건의 여파를 제대로 맞고 있다.
의도는 좋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본은 정치적인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가 심한데다가 젊은 세대일수록 투표율도 낮은 등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으니 “18세 이상 유권자는 제대로 눈을 뜨고 뉴스를 봐 자국을 지키자”,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 이민자와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니 "외국인보다 자국인을 먼저 챙기자"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현하려다 하필 윤석열의 계엄을 지지하는 극우 유튜버들을 추천하며 지뢰를 밟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단순히 의도는 선했지만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보기에는 평소 발언 성향이 우익 같았다는 팬들의 증언 또한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소강 상태가 됐던 반면 해당 내용이 뜬금없이 서구권에서까지 퍼지면서 큰 논란으로 번지게 되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던 팬들은 실망했다는 반응인 반면 대안 우파들은 깨어있는 성우라며 적극지지하면서 혼파망이 되어가는 중. # 스톤토스도 관련 만화를 올렸다. #
일본 현지에서도 논란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건지, 일본 현지에서는 며칠이 지나도 트위터 트렌드를 차지하는 등 화제가 이어졌다. 이후 과거 비슷한 의혹이 있었던 오가타 메구미가 자신의 옛날 일침 트윗들을 RT한 뒤, "그리고 중요한 것을 계속. 저는 하야시바라 메구미씨를 매우 좋아합니다...물론 아야나미도?(웃음) 이상!"#라는 글을 올렸는데, 해당 이슈를 의식하여 하야시바라 메구미 지지 답글들과 21만이 넘는 좋아요가 찍혔으며 인용에는 "성우들의 차별 발언이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증오 기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제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자랑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가는 것인가."#, "확실히 말로 하지 않고 옛날의 투고의 인용으로 말을 흐리고 책임으로부터 도망쳐, 마지막은 '좋아'라고 감성글과 '에바'라고 하는 저명한 컨텐츠로 오타쿠의 비호를 계속 받아 안전권으로 돌아간다."#, "너무 좋으면 잘못된 일을 하면 제대로 지적해 줘. 이상이 아니야. 모두가 이런 식이라면 이 업계는 진짜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잖냐"# "심각한 차별 선동을 뒤로하고, 매우 멋진 동료 의식이네요.♪"#와 같은 강한 비판도 이어졌다.
7. 출연작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하야시바라 메구미/출연작#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하야시바라 메구미/출연작#|]]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디스코그래피
하야시바라 메구미 단독 명의로 발매된 음반만 표기되었습니다. 성우 유닛, 캐릭터 송이나 듀엣 음반 등은 아래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8.1. 싱글
<rowcolor=#fff>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 | 1989.05.25 | 約束だよ | 51위 | 13,800장 | 폴리그램 발매[43] |
1 | 1991.03.05 | 虹色のSneaker | 43위 | 11,000장 | |
2 | 1992.06.24 | 夢を抱きしめて | 90위 | 2,550장 | [44] |
3 | 1992.08.05 | 春猫不思議月夜 -おしえてHappiness- | 49위 | 8,740장 | |
4 | 1993.03.24 | OUR GOOD DAY... 僕らのGOOD DAY | 54위 | 7,940장 | |
5 | 1993.11.26 | 夢 Hurry Up | 58위 | 6,980장 | |
6 | 1994.05.25 | Until Strawberry Sherbet | 42위 | 15,320장 | |
7 | 1994.11.03 | Touch and Go!! | 37위 | 16,450장 | |
8 | 1995.07.21 | MIDNIGHT BLUE | 27위 | 71,550장 | |
9 | 1995.12.06 | Going History | 25위 | 62,560장 | |
10 | 1996.04.24 | Give a reason | 9위 | 232,85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10 |
11 | 1996.05.22 | 限りない欲望の中に | 20위 | 69,510장 | |
12 | 1996.07.05 | Just be conscious | 11위 | 175,110장 | |
13 | 1996.10.23 | Successful Mission | 7위 | 139,120장 | |
14 | 1997.04.23 | don’t be discouraged | 4위 | 211,340장 | 역대 성우 초동 1위 (10.6만장) |
15 | 1997.07.02 | Reflection | 7위 | 136,170장 | 역대 성우 초동 2위 (8.0만장) |
16 | 1998.02.24 | Fine colorday | 9위 | 91,720장 | |
17 | 1998.04.24 | ~infinity~∞ | 8위 | 141,510장 | |
18 | 1998.07.03 | raging waves | 8위 | 111,970장 | |
19 | 1998.09.04 | A HOUSE CAT | 6위 | 87,220장 | |
20 | 1998.10.23 | Proof of Myself | 9위 | 91,750장 | |
21 | 1999.05.28 | question at me | 13위 | 72,570장 | [45] |
22 | 1999.12.03 | ブースカ!ブースカ!! | 50위 | 8,400장 | |
23 | 2000.05.24 | サクラサク | 7위 | 104,500장 | |
24 | 2000.10.25 | unsteady | 14위 | 40,880장 | |
25 | 2001.08.29 | Over Soul | 7위 | 110,570장 | 다운로드 10만 인증 |
26 | 2001.12.05 | feel well | 11위 | 38,720장 | |
27 | 2001.12.29 | brave heart | 11위 | 63,800장 | |
28 | 2002.03.27 | Northern lights | 3위 | 93,080장 | 단독명의 최초 오리콘 TOP 3[46] 다운로드 10만 인증 |
29 | 2002.04.24 | Treat or Goblins | 19위 | 30,970장 | |
30 | 2002.09.25 | KOIBUMI | 7위 | 63,300장 | |
31 | 2003.09.26 | 負けないで、負けないで... | 8위 | 25,041장 | |
32 | 2006.07.26 | Meet again | 12위 | 24,393장 | |
33 | 2007.02.07 | A Happy Life | 12위 | 20,108장 | |
34 | 2008.07.23 | Plenty of grit | 6위 | 25,931장 | |
35 | 2009.02.18 | Front breaking | 15위 | 13,782장 | |
36 | 2009.04.22 | 集結の園へ | 7위 | 43,588장 | 성우 최초 50만 다운로드 |
37 | 2010.07.21 | 集結の運命 | 5위 | 21,633장 | 다운로드 10만 인증 |
38 | 2012.09.29 | つばさ | 36위 | 3,940장 | |
39 | 2015.10.21 | サンハーラ ~聖なる力~ | 17위 | 6,088장 | |
40 | 2016.02.03 | 薄ら氷心中 | 13위 | 8,659장 | 시이나 링고 프로듀스 |
41 | 2017.02.22 | 今際の死神 | 31위 | 4,646장 |
8.2. 앨범
8.2.1. 정규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1991.03.21 | Half and, Half | 43위 | 20,180장 | |
2 | 1992.03.05 | WHATEVER | 18위 | 22,180장 | |
3 | 1992.08.05 | Perfume | 13위 | 27,090장 | |
4 | 1993.08.21 | SHAMROCK | 12위 | 42,510장 | |
5 | 1994.07.02 | SPHERE | 8위 | 70,81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10 |
6 | 1995.03.03 | Enfleurage | 6위 | 97,260장 | |
7 | 1996.11.01 | bertemu | 3위 | 222,86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3 역대 성우 초동 2위 (10.1만장) |
8 | 1997.08.06 | Iravati | 5위 | 277,060장 | 역대 성우 아티스트 최다 판매 앨범 역대 성우 초동 1위 (16.3만장) |
9 | 1999.10.27 | ふわり | 5위 | 117,820장 | |
10 | 2002.06.26 | feel well | 7위 | 101,410장 | |
11 | 2004.01.07 | center color | 10위 | 50,025장 | |
12 | 2007.04.21 | Plain | 18위 | 19,694장 | |
13 | 2010.07.21 | CHOICE | 6위 | 18,926장 | |
14 | 2018.03.30 | Fifty~Fifty | 18위 | -장 |
8.2.2. 베스트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2000.04.26 | VINTAGE S | 6위 | 141,390장 | |
2 | 2000.06.21 | VINTAGE A | 4위 | 101,910장 | |
3 | 2008.06.25 | スレイヤーズMEGUMIX | 14위 | 35,744장 | 슬레이어즈 OST 모음집 |
4 | 2011.06.11 | VINTAGE White | 8위 | 25,785장 | |
5 | 2015.06.17 | タイムカプセル | 10위 | 11,468장 | 초기 캐릭터송 모음집 |
6 | 2016.02.03 | DUO | 12위 | 6,874장 | 콜라보레이션 베스트 |
7 | 2017.05.03 | with you | 11위 | 8,885장 | 오카자키 리츠코 트리뷰트 앨범 |
8.2.3. 그 외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1990.02.28 | PULSE | 84위 | 7,670장 | 토시바 EMI 발매 / 미니앨범[47] |
2 | 2007.04.21 | 林原めぐみ たのしいどうよう | 70위 | 3,281장 | 동요 앨범[48] |
3 | 2009.10.04 | 萌えふぁいやー | 한정 판매 / 미니 앨범[49] |
9. 관련 문서
[1] 중화권에서는 林原惠(린웬훼이)로 나온다.[2] 2023년 3월 30일부터 시작했다. 구 블로그는 2017년 5월 18일 글을 마지막으로 삭제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LINE Blog 서비스 콘텐츠가 2023년 3월 30일을 끝으로 종료되어 갱신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폐쇄되었다.[3] Ameba 블로그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설했으며 주로 블로그 포스트 알림 용도로 사용한다.[4] 일본에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출세작이자 대표 캐릭터는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의 시노비베 히미코다. 마동왕 그랑조트는 와타루의 성공으로 나온 후속작 개념인데 한국에서는 와타루보다는 그랑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국내 한정으로 히미코보다 구리구리가 인지도가 높다. 그랑조트에서 구리구리와 정반대의 섹시 누님 캐릭터인 에느마도 같이 맡았었다.[5] 한국식으로는 (식료품)장관이라는 뜻. 일본에서 장관은 차관급 청장을 뜻하고, 우리가 장관이라 부르는 국무위원에 대해서는 '(국무)대신'이라 부른다. 단, 내각관방장관은 장관 표기를 썼지만 국무대신이다.[6] 90년대 《시끌별 녀석들》 팬덤과 《란마 1/2》 팬덤은 사이가 나빴다. 자세한 사항은 각 작품들이나 타카하시 루미코 항목을 참조.[7]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Heartful Station 1226회(최종회). 인터넷의 악플들이나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말함.[8] 타카야마 미나미, 이노우에 키쿠코, 카나이 미카, 타카기 와타루, 오가타 메구미, 야마구치 유리코, 야스이 쿠니히코처럼 연배가 비슷하거나 높은 성우 대부분이 그녀보다 늦게 데뷔했음으로 엄연히 후배다. 80-90년대에는 20대 초중반에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데뷔연령이 급격히 낮아졌다.[9] 정확히 말하면 와타나베 쿠미코는 85년 양성소 동기지만 데뷔는 와타나베가 85년, 하야시바라가 86년이다. 사사키 노조무는 86년 데뷔 동기지만 양성소는 햐야시바라는 1기생(85년)이고, 사사키 노조무는 2기생(86년)이다. 히라마츠와는 다른 양성소 출신이지만 《메종일각》에서 같이 데뷔한 동기.[10] 다만 미츠이시 코토노는 술에 취할 경우 간혹 본인에게 튀는 행동을 하였다. 야지마 아키코는 이렇다할 논란이 없이 무난한 사이.[11] 이때 속으로 한 생각이 '뭐지 고백인가!'. 물론 농담이지만.[12] 하야시바라는 해주는 말들을 듣고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당첨되면 말 안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13] 당시 여섯 쌍둥이 중 셋째인 마츠노 쵸로마츠 역을 맡았다.[14] 그래서 해당 노래 겨울이 없는 캘린더는 현재의 하야시바라는 물론이고 생전의 오카자키 리츠코 또한 자신이 작사 및 작곡을 한 음악이 아니었음에도 남다른 마음이었다.[15] 그러나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그렇게나 노력해서 오카자키 리츠코를 영입했으나 바로 그녀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밍키모모의 음악감독이었던 하세가와 토모키는 난데없이 밍키모모의 음악에 참가하게 된 오카자키를 탐탁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쿨에는 하야시바라와는 달리 제한적으로만 참가를 시키는데 오카자키는 그 상황에서 1기 OP 꿈을 찾아서 (작사 : 森野 律 - 모리노 리츠 명의)와 ED 다바다바 Falling Love (작곡 : 오카자키 리츠코 명의)를 히트시키게 된다. 그리고 작업을 하며 그녀의 능력과 인성을 파악하게 된 음악감독과 1쿨 OP와 ED를 부른 여가수는 큰 감화를 받게되고 이후에 오카자키 리츠코의 중요한 관계의 조력자 및 절친이 된다. 참고로 해당 작품을 통해 만나 이후 음악적, 개인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절친이 된 해당 여가수의 이름은 바로 코모리 마나미였다. 그리고 2쿨에서는 오히려 1쿨에서 오카자키에게 냉담했던 음악감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인해 2쿨 OP 꿈을 껴안고와 ED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밍키 스마일!을 부르며 드디어 오카자키 리츠코와 함께 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처음에 오카자키를 잠시 냉담하게 대했던 음악감독 하세가와 토모키는 이후 오카자키 리츠코 최고의 음악적 동지로서 맹활약을 하게된다. 그야말로 오카자키 리츠코의 언급대로 그녀의 러블리한 마스코트.[16] 하야시바라와 함께 성우 아티스트 중에서 오카자키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었던 호리에 유이 또한 그녀가 사망한 이후 큰 충격을 받았었다. 호리에 또한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오카자키 리츠코의 사망에 대한 언론의 취재에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이로 인해 안팎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17] 실제로 이렇게 제때 애도반응을 하지 못하면 후유증이 크게 온다. 소년이 온다를 인용하자면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여 이후 내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리는' 것. 심하면 우울증, PTSD로까지 진행될 수 있다. 이 법칙은 하야시바라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는 몇 년이 지나도록 오카자키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18] 어떻게 보면 이것도 대단한 일인데 호리에 또한 오카자키 리츠코가 만들어 준 노래를 부르며 그녀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극에 달해있던 상황에서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의 곡을 부를 기회를 대선배에게 양보한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최종화에서 그녀도 메인 출연진들과 함께 OP A Happy life를 부르긴 했다.[19] 해당곡은 하야시바라 메구미 12집 Plain에 수록된 10번 트랙 旋律이다. 이 곡이 수록됐을 당시 오랜만에 그녀가 직접 작사·작곡한 음악이라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되었으나 당시에는 해당 노래에 대해 코멘트를 피하고 한참이 지난 후 사실 해당 곡은 오카자키 리츠코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노래의 면면을 조금만 봐도 그녀를 추모하는 곡임을 알 수 있는데 일단 가사 내용 일부는 그녀가 2006년 기고했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旋律의 편곡자는 하야시바라의 음악에는 거의 참여가 없었으나 오카자키의 음악에는 대부분의 곡들을 편곡했던 일생의 음악적 동지이자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꿈을 껴안고 등의 음악감독이었던 하세가와 토모키였으며, 코러스는 meg rock. 즉, 오카자키 리츠코가 리더였던 유닛 멜로큐어의 멤버 히나타 메구미였다. 그야말로 바로 밝히지만 않았었지 해당 곡이 오카자키와 관련된 곡이라는 티를 팍팍낸 셈.[20] 하야시바라가 진행하는 라디오인 TBN에서도 틈만나면 오카자키의 노래를 선곡해서 방송한다. 2019년 5월 5일 TBN 에서는 후반부를 아예 오카자키 리츠코 기일 15주년 추모방송으로 진행했다. 게다가 2023년 5월 초 TBN에서는 오카자키 리츠코 트리뷰트 앨범 with you에서 자신이 부른 靑空을 선곡하며 오카자키를 추모했고 블로그에도 이에 대한 소감을 남길 정도로 그녀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심을 보이고 있다.#[21] 이는 멜로큐어의 멤버 히나타 메구미의 공통된 목표이기도 하다. 다만 이 두 명이 가지고 있는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공동 목표의 차이점은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경우,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했을 때의 오카자키의 음악이나 히나타 메구미의 경우, 멜로큐어 멤버로서 활동했을 때의 음악이다.[22] 오카자키 리츠코의 mint가 하야시바라의 손에 들어온 계기는 더 극적인데 원래 그 데모 테이프는 일본의 인기 듀오였던 angela KATSU의 음악적 스승 중 하나인 하스누마 겐스케가 가지고 있었다. 원래 이 곡은 오카자키 리츠코의 앨범에 실으려 데모 버전까지 만들었다 싣지 못하게 된 음악인데 이를 아까워했던 하스누마 겐스케는 이 데모 테이프를 한 번 활용해 보라는 의미로 KATSU에게 전달하고 그는 이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후 그는 하야시바라의 초대로 하야시바라 메구미 생애 첫 1st 콘서트 - 당신을 만나러와서 를 관람하게 되고 그 공연을 보며 하야시바라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마음을 파악한 KATSU는 이후 오카자키 리츠코의 미발표곡 mint가 수록되어 있는 데모테이프를 하야시바라에게 전해주게 됨으로써 돌고 돌아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곡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참고로 하야시바라에게 KATSU 가 이 테이프를 건네주며 한 말이 걸작인데 이 음악은 애초에 내가 아닌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가야하는 노래였다.[23] 참고로 해당 글의 내용 중 일부가 이후 2007년에 발표한 12집 Plain의 하야시바라 메구미 작사·작곡인 노래 旋律에 그대로 차용된다. 번역가사는 여기서 확인 가능.[24] 우정신과 겹치는 배역으로는 캐널 볼피드, 무사시(로사), 하이바라 아이(홍장미), 아야나미 레이가 있다.[25] 음색은 최덕희가 제일 비슷하지만, 겹치는 배역이 가장 많은 건 5개가 겹치는 정미숙이다. 경력상으로 1~2년 앞선 정미숙은 리나 인버스를 연기할 때 옵티컬을 들으면서 하야시바라를 연기가 대단한 성우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26] 98년 결혼으로 성이 바뀌어서 98년 이후 납세액은 오직 추정일 뿐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성우의 수입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997년 하야시바라가 유일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각종 숫자들은 모두 근거 없는 자료들이다.[27] 夕食ばんざい. 1985년 4월 1일부터 2000년 3월 31일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매일 아침 11시에 방송했던 요리방송으로 저녁식사에 올릴 만한 게스트의 자작메뉴를 선보이는 컨셉이었다.[28] 《뉴타입》에서 연재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빠라 생활> 2007년 4월자 칼럼에서. 혼인신고는 1998년 3월 30일 본인 생일에 했고 결혼식은 6월에 했다. 한 케이코는 베테랑 성우인 동시에 점성술사로도 유명하다.[29] 후시미이나리 대사의 대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낙서를 말함. #[30] 해당 언급의 시초가 된 뉴스 #[31] 본 내용은 관광객이 아닌 일본 내 외국인 유학생에게 지급되는 장학금 제도에 관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간단한 시험을 통해 자격을 증명하면, 월 약 14만 엔을 무상으로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반면,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인 학생들에게 일본 정부가 지원한 학자금은 다음과 같습니다.・국공립 대학 자택 통학자 기준: 평균 월 1.6만 엔, ・사립 대학 자택 외 통학자 기준: 평균 월 4.2만 엔 #. 이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지급되는 지원금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32] 사실 이 부분도 성우 본인이 자국의 상황에 대해 인지 못하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떠나서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국민들이 직접 정치적 활동에 관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구조가 갖춰져 있는 한국에 반해 패전 이후의 일본은 1940년대 말~1970년대에 활발하던 학생운동이 고문과 폭력, 테러행위로 변질되고 후대에 고스란히 부정적으로 인식되면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걸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생겨 근래까지 시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한 일이 드문 편이다. 본인이 맡은 하이바라 아이도 베이커가의 망령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33] 그나마 최근에는 다마키 유이치로, 이시마루 신지, 야마모토 타로, 다카이치 사나에 등 좌우익을 떠나 집안에 구애받지 않고 자수성가한 유력 정치인에 대한 관심도와 지지세가 높아져 기존의 중세식 세습 정계 구도에 대한 개편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거기다 세습하는 정치인들도 고이즈미 신지로처럼 가문의 후광보다 본인 스스로의 이미지와 능력 등등을 어필하여 정치를 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기는 하다. 사실 지방 정계에서는 카와무라 타카시, 스즈키 나오미치 등 비세습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정당의 추천을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잦았던 데다가 귀화 외국인 출신의 도도부현의회 의원도 2000년대 이후 몇 차례 당선된 적이 있고, 고바야시 마사오, 다카키 요시아키 등 가난한 근로자 출신인 사람들이 국정 선거에서 당선되어 오랜 기간 활동한 적도 많았기에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완전히 후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34] 아카이브[35] 20년 넘게 일본에서 거주한 이민 1.5세대 출신이다. 한국 국적자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아온 것 때문에 언어를 사용할 때도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36] 데보쨩은 1992년 부산 출생, 키바룬은 1996년생이다. 한국 국적자라는 증거로 데보쨩은 육군 병장 만기 전역자이기에 군대 썰을 푸는 컨텐츠도 꽤 있다.[37] #[38] 사실 이건 혐한 극우 인플루언서나 유튜버들의 전형적인 행보다. 이들보다 앞선 1세대 혐한 극우 유투버라 할수 있는 WWUK도 채널 초기에는 평범하게 한류 컨텐츠를 다뤘으나, 2018년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을 다루면서 한국을 비난하고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완전히 극우 성향의 시사 유튜버로 전향했다.[39] 실제로 이시바의 당 내 정적이나 다름없는 강경 보수파 다카이치 사나에의 주요 지지자들은 20대의 정치 고관여층이 많다.[40] 공개적으로 지지함을 밝혔다. 사정을 아는 한국인들은 성향을 이미 알고 있어서 큰 감흥도 없다는 반응이 많다.[41] 이후 얼마 안 있어 에반게리온 시리즈에 참여했던 애니메이터 스시오(애니메이터)까지 비슷한 논란이 터지자 가이낙스와 에반게리온 스태프는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퍼졌다.[42] AG 시절에 출산휴가로 휴식기를 가지며 잠시 히라마츠 아키코가 맡은 적이 있긴 했으나 복귀 이후에는 쭉 도맡아왔다.[43] NHK 아동용 애니메이션 《あひるのクワック》의 주제곡으로 하야시바라 메구미 명의로 발매된 최초의 음반이지만 캐릭터송과 같은 일회성 싱글로 디스코그라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89년 발매당시는 순위권 밖으로 판매량이 집계되지 않았으나 97년 재발매되어 차트에 진입했다. (2002년 이전 오리콘차트는 100위 이내만 집계했다.)[44] 요술공주 밍키(1991)의 두번째 오프닝, 엔딩 테마로 사용되었다.[45] 츠부라야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테레비 아사히에서 방영한 특촬 드라마인 천년왕국 삼총사 바니 나이츠의 주제곡.[46] 성우 아티스트 최초는 1998년 TWO-MIX (보컬 : 타카야마 미나미)의 「TRUTH?? A Great Detective of Love??」가 최초. 「Northern lights」는 단독명의로 최초이자 역대 2번째 TOP 3 진입.[47] 당시 킹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데뷔 싱글을 준비 중이었는데, 작곡가 카라시마 미도리와 친해져서 같이 음반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EMI에서 음반을 냈다. 이를 알게 된 킹 레코드는 노발대발했고 결국 킹 레코드에서 데뷔는 1년 미뤄지고 PULSE는 하야시바라 공식 디스코그래피에서 제외된다. 처음 EMI에서 발매되었을 때 최고 순위 92위, 판매량 2000여장을 기록했지만, 1994년 킹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어 최고 순위 82위, 판매량 5000여장을 기록했다.[48] 3장으로 구성. 1번 디스크에는 놀이 동요가, 2번 디스크에는 잘 때 듣는 동요가, 3번 디스크에는 기념일 및 절기에 관한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앨범 표지는 오랜 기간 키티 성우를 맡아온 하야시바라를 위해 산리오가 키티와 다니엘 캐릭터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었다. 자켓 사진[49] 라디오 《Tokyo Boogie Night》 900회 기념으로 제작된 미니 앨범. 라디오 공개 녹음 현장과 인터넷 주문으로만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