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명 | 앤서니 우드빌 Anthony Woodville | |
출생 | 1440년경 | |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셔 그래프턴 레지스 | ||
사망 | 1483년 6월 25일 (향년 42~43세) | |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요크셔 폰트프랙트 성 | ||
아버지 | 리처드 우드빌 | |
어머니 | 룩셈부르크의 자퀘타 | |
형제 | 엘리자베스, 루이스, 앤, 메리, 존, 자퀘타, 라이어널, 마사, 엘레노어, 리처드, 마거릿, 캐서린, 에드워드 | |
배우자 | 엘리자베스 스케일스, 메리 피츠루이스 | |
직위 | 제2대 리버스 백작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에드워드 4세의 측근으로서 장미 전쟁에서 활약했으나, 에드워드 4세 사후 최고 권력을 놓고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와 정쟁을 벌이다가 리처드의 쿠데타로 체포된 직후 처형당했다.2. 생애
초대 리버스 백작 리처드 우드빌과 폴 백작 피에르 1세 드 뤽상부르생폴의 딸이며 베드퍼드 공작 랭커스터의 존의 미망인인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의 장남이다. 그는 처음에는 부친처럼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를 지지했으며, 기사 신분으로 1455년 제1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와 1461년 토우턴 전투에 참전했다. 하지만 1463년 아버지가 에드워드 4세의 고문이 된 뒤 에드워드 4세와 두터운 사이가 되었고, 1464년 누이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에드워드 4세와 비밀 결혼한 뒤 우드빌 가문이 여러 요직을 차지하면서 에드워드 4세의 최측근이 되었다.1469년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이끄는 기존의 잉글랜드 봉건 귀족들이 랭커스터파와 연합하여 봉기를 일으키자, 그는 에드워드 4세와 함께 부르고뉴국으로 망명했다. 이때 그의 아버지와 형제 존 우드빌은 에지코트 전투에서 패배한 뒤 사로잡힌 후 처형당했다. 그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리버스 백작을 칭한 그는 1471년 에드워드 4세와 함께 용담공 샤를의 지원을 받아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과 몬터규 후작 존 네빌 형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1471년 4월, 에드워드 4세가 앙주의 마르그리트 왕비와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왕자가 이끄는 랭커스터 잔당군을 추격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할 때, 앤서니는 런던 수비를 맡았다. 그 해 5월 12일~15일, '포콘버그의 서자' 토머스 네빌이 3,000 병력을 이끌고 런던 탑에 갇힌 헨리 6세를 구출하기 위해 런던 탑 공방전을 단행했다. 그는 에식스 백작 헨리 부르시에와 함께 민병대 수천 명을 이끌고 항전해 적군을 물리쳤다. 그 후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왕자를 죽이고 마르그리트 왕비를 생포하여 런던에 귀환한 에드워드 4세는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하여 앤서니를 가터 기사단의 일원으로 발탁했다. 1473년, 앤서니는 젊은 에드워드 왕자의 고문으로 발탁되었다.
1483년 4월 9일, 에드워드 4세가 급사하고 아직 어린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올랐다. 에드워드 4세는 죽기 전에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를 아들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 호국경으로 지명했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빌 왕비의 친족인 우드빌가와 그레이 가는 리처드를 통치에서 배제하려 했다. 그들은 러들로에서 에드워드 5세를 호위하던 앤서니 우드빌에게 속히 런던으로 데려와서 대관식을 거행하라고 촉구했다. 헤이스팅스 남작 윌리엄 헤이스팅스는 의회에서 리처드 왕자가 호국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이에 헤이스팅스 남작은 리처드 왕자에게 전갈을 보내 의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렸다. 여기에 제2대 버킹엄 공작 헨리 스튜어트는 사병대를 이끌고 가서 노샘프턴에서 리처드 왕자와 합류했다. 그 후 리처드 왕자는 스토니 스트랫퍼드에서 에드워드 5세를 태운 호송대를 가로채고 리버스 백작 앤서니 우드빌과 에드워드 5세의 이부형제인 리처드 그레이를 체포했으며, 런던으로 진군해 단시일에 장악한뒤 5월 4일 호국경으로 확정되었다. 리버스 백작은 리처드 그레이와 함께 반역죄로 고발되어 6월 25일 폰트프랙트 성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영지와 지위는 몰수되었지만, 1485년 헨리 7세가 리처드 3세를 꺾고 잉글랜드 왕이 된 뒤 앤서니의 동생인 리처드 우드빌에게 반환되었다.
앤서니 우드빌은 작가로도 알려졌다. 그는 여러 프랑스어 작품을 번역했으며, 1477년에는 중세 아랍 학자 알무바쉬르 이븐 파티크(al-Mubashshir ibn Fatik)가 아랍어로 쓴 지혜 문학 요약집 <무크타르 알히캄 와마하신 알칼림>(Mukhtār al-ḥikam wa-maḥāsin al-kalim)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영어로 번역한 뒤, 잉글랜드 최초의 인쇄업자로 알려진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에게 의뢰하여 인쇄하도록 했다. 그 후 이 책을 에드워드 4세에게 선물했다.
3. 아내
- 엘리자베스 스케일스(1446 ~ 1473): 제7대 스케일스 남작 토머스 스케일스의 딸, 스케일스 여남작.
- 메리 피츠루이스: 헨리 피츠루이스와 엘리자베스 보퍼트의 딸. 앤서니 우드빌이 처형된 뒤 조지 네빌 경과 재혼했다.
4. 대중매체에서
- 영화 리처드 3세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했다.
- 만화 장미왕의 장례 행렬에서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리처드 왕자를 죽이려 하지만 버킹엄 공작의 술수로 리처드 그레이와 함께 체포당하고 독살당하는 모습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