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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우드빌(초대 리버스 백작)

파일:Garter-stall-plate-of-sir-richard-wydeville.jpg
성명 리처드 우드빌
Richard Woodville
출생 1405년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메이드스톤
사망 1469년 8월 12일 (향년 63~64세)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케닐워스
아버지 리처드 우드빌
어머니 조앤 비틀스게이트
누이 조앤 우드빌
배우자 룩셈부르크의 자퀘타
자녀 엘리자베스, 루이스, 앤, 앤서니, 메리, , 자퀘타, 라이어널, 마사, 엘레노어, 리처드, 마거릿, 에드워드, 캐서린
직위 초대 리버스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본래 젠트리 신분으로, 장미 전쟁 시기 랭커스터 왕조의 편에 섰다가 에드워드 4세에게 포섭된 후 딸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에드워드 4세와 결혼하면서 가문의 부흥을 이뤘다. 그러나 오래된 대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에지코트 전투에서 패전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2. 생애

아버지 리처드 우드빌(또는 리처드 와이드빌)은 본래 그래프턴 레지스 등 노샘프턴셔 등지와 마이드스톤의 모트 영지 등 상당한 영지를 소유한 젠트리 집안의 일원이었다. 백년전쟁 시기 베드퍼드 공작 랭커스터의 존의 지휘를 받아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고, 1433년 켄트주 의원에 선출되어 그 주의 보안관을 역임했으며, 칼레의 수비대장과 로체스터 성의 순경, 노샘프턴셔의 보안관을 역임하는 등 출세가도를 이어갔다. 그의 아내는 데번의 오터리 세인트 메리 교구에 있는 나이트스톤의 지주 토머스(또는 존) 비틀스게이트의 딸 조앤 비틀스게이트였다. 어린 리처드에게는 조앤 우드빌이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켄트 의원 윌리엄 오트의 부인이었으며, 헨리 8세 국왕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왕비인 캐서린 파의 증조모였다.

어린 리처드도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었고, 베드퍼드 공작 휘하에서 활약한 아버지 덕분에 1426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429년 대위로 복무했고, 1435년에는 베드퍼드 공작의 수행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같은 해에 제르베로이 전투에 참전했다가 생포된 후 몇 달간 옥고를 치르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그 후 1436년까지 초대 서퍽 공작 윌리엄 드 라 폴 밑에서 복무했다. 그러던 1437년 3월, 1435년에 사망한 베드퍼드 공작의 젊은 미망인인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와 비밀 결혼했다. 자퀘타는 생폴 백작 피에르 1세 드 뤽상부르생폴의 딸로, 유럽 굴지의 명문가인 룩셈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다.

일개 젠트리였던 리처드 우드빌이 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손꼽히던 룩셈부르크 가문의 여식과 비밀 결혼한 것은 자퀘타의 친척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또한 국왕 헨리 6세의 허라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리처드는 심한 비난에 시달렸다. 헨리 6세는 그에게 1,000 파운드의 벌금을 선고했지만, 나중에 그와 자퀘타의 결혼을 승인했다. 그는 결혼을 통해 랭커스터 가문과 룩셈부르크-리니 가문, 생폴 백작, 그리고 미래의 잉글랜드 왕비인 앙주의 마르그리트와 친척 관계를 맺었으며, 지참금을 통해 평생 연소득 2,000 마르크를 받았다.

1439년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 휘하에서 복무했고, 1441년부터 1442년까지는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 밑에서 복무했다. 1440년 스미스필드에서 열린 기사 토너먼트에서 스페인 기사 페드로 데 바스케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후 알랑송의 수비대장이 되었고, 1444년 깃발 기사로 발탁되어 잉글랜드 왕비가 될 앙주의 마르그리트를 잉글랜드로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448년 5월 9일 리버스 남작에 선임되었고, 1450년에는 가터 기사단에 선임되었다. 1450년 잭 케이드의 난 진압에 참여헀으며, 이후엔 가스코뉴 총독이 되었지만, 프랑스의 침략으로 가스코뉴를 잃으면서 그곳을 다스릴 수 없었다. 1454년부터 1455년까지 칼레 부관을 맡았다. 아버지가 1441년에 사망한 후 노샘프턴셔의 그래프턴 레지스와 켄트주의 메이드스톤 근처 모트 영지를 물려받았다.

이렇듯 갈수록 승승장구하는 그였지만, 네빌 가문을 비롯한 오래된 귀족 가문들은 그를 벼락 부자 취급하고 경멸했다. 1456년 칼레 수비대장으로 부임한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그를 자기 부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해임했다. 이후 리처드는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의 편에 서서 요크 공작 리처드와 맞섰고, 1457년에는 로체스터 보안관을 맡았다. 1459년 러드퍼드 다리 전투 이후 요크 공작의 주요 지지자였던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과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부자가 칼레로 도주한 후, 로체스터 보안관 리처드는 요크파가 칼레에서 켄트의 샌드위치 항을 사수해 적이 건너는 걸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1460년 1월 15일 샌드위치 해전에서 다인햄 남작 존 다인햄이 이끄는 800 장병의 급습을 받아 아내 자퀘타, 장남 앤서니와 함께 체포되었다. 자퀘타는 베드퍼드 공작의 미망인이자 왕족이라는 신분 덕분에 재빨리 풀려났다. 그와 아들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지만, 워릭 백작과 마치 백작은 리버스 남작이 그의 아내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점을 대놓고 비웃었다고 전해진다. 석방 후에도 랭커스터 왕조를 위해 계속 싸웠지만, 토우턴 전투에서 랭커스터파가 궤멸하자 에드워드 4세에게 복종했다.

1463년부터 에드워드 4세의 신임을 얻고 자문으로 발탁되었으며, 1464년 5월 장녀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에드워드 4세와 비밀 결혼하면서 사회적 신분이 급상승했다. 에드워드 4세는 장인과 처형, 처남에게 요직을 하사했다. 리처드 우드빌은 1466년 3월 4일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466년 5월 25일 리버스 백작으로 승격했다. 1467년 8월 24일 초대 우스터 백작 존 팀토프트시 왕립군 사령관 직위를 사임하자 즉시 그 직위를 사들였다. 리처드 우드빌의 아들 라이어널은 솔즈베리 주교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자기 자식들을 여러 유력 귀족 가문 여식과 맺어줌으로써, 우드빌 가문의 번영을 꾀했다. 에드워드 4세는 우드빌 가문의 모든 결혼 비용을 지원했고, 때로는 지참금으로 땅을 제공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4세의 과도한 총애와 그의 급속한 권력 상승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의 시기와 불만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469년, 워릭 백작, 그의 형제인 요크 대주교 조지 네빌,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이 단체로 왕을 몰아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리처드와 그의 아들 은 1469년 7월 27일 에지코트 전투에서 생포된 뒤, 아들 존 우드빌과 함께 케닐워스 성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그 후 리처드 우드빌의 미망인인 자퀘타는 마법을 행했다는 비방을 받았지만,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뒤 그 혐의는 기각되었다. 1484년 리처드 3세는 티툴루스 레기우스(Titulus Regius)로 알려진 법령에서 자퀘타와 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마법을 통해 에드워드 4세를 현혹해 왕이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결심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하며, 카퀘타에 대한 비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가져오지 못했고, 재판은 끝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고 해산했다.

3. 가족

  • 룩셈부르크의 자퀘타(1415/1416 ~ 1472): 생폴 백작 피에르 1세 드 뤽상부르생폴의 딸. 베드퍼드 공작 랭커스터의 존의 미망인.
    • 엘리자베스 우드빌(1437 ~ 1492): 제6대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 존 그레이의 아들이자 제인 그레이의 증조부인 존 그레이와 초혼,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4세와 재혼.
    • 루이스 우드빌(1438): 요절.
    • 앤 우드빌(1438/1439 ~ 1489): 보처 자작 윌리엄 보처와 초혼, 제2대 켄트 백작 조지 그레이와 재혼.
    • 앤서니 우드빌(1440 ~ 1483): 제2대 리버스 남작.
    • 존 우드빌(1444 ~ 1469): 조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 조앤 보퍼트[1]의 딸 캐서린 네빌의 남편.
    • 자퀘타 우드빌(1445 ~ 1509): 제8대 노킨의 스트레인지 남작 존 르 스트레인지의 부인.
    • 라이어널 우드빌(1446 ~ 1484): 솔즈베리 주교.
    • 엘레노어 우드빌(? ~ 1512): 초대 켄트 백작 에드먼드 그레이의 아들 앤서니 그레이의 부인.
    • 마거릿 우드빌(1450 ~ 1490): 제10대 아룬델 백작 토머스 피츠앨런의 부인.
    • 마사 우드빌(? ~ 1500): 배딩턴의 존 브롬리 경과 결혼.
    • 리처드 우드빌(1453 ~ 1491): 제3대 리버스 백작.
    • 에드워드 우드빌(1454/1458 ~ 1488): 스케일스 경.
    • 메리 우드빌(1456 ~ 1481): 제2대 펨브로크 백작 윌리엄 허버트의 부인.
    • 캐서린 우드빌(1458 ~ 1497): 제2대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태퍼드와 초혼, 제2대 베드퍼드 공작 재스퍼 튜더와 재혼, 리처드 윙필드 경과 삼혼.

[1] 1377년 ~ 1440년.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딸. 랄프 네빌과 결혼하기 전에 웜의 기사 로버트 페러스와 결혼했고, 1396년 11월에 랄프 네빌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