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04 21:39:04

성 베네딕도회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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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
Congregatio Sublacensis Casinensis
Ordinis Sancti Benedicti
파일:Subiaco Cassinese Congregation logo.svg
<colbgcolor=#4d7a8c,#4d7a8c><colcolor=#fff,#fff> 표어 <colbgcolor=#4d7a8c,#4d7a8c><colcolor=#fff,#fff> 라틴어 {{{#4d7a8c,#fff 'Ora et Labora'}}}
영어 Pray and Work
한국어 기도하고 일하라
설립 시기 카시노 연합회 1408년 수도원 개혁 ([age(1408-12-01)]주년)
수비아코 연합회 1872년 9월 5일 ([age(1872-09-05)]주년)
통합 연합회 출범 2013년 2월 7일 ([age(2013-02-07)]주년)
설립자 루도비코 바르보(카시노 연합회)
피에트로 카사레토(수비아코 연합회)
통합 허가 교황 베네딕토 16세
총재아빠스 초대 피에트로 카사레토 O.S.B.
현재 이그나시 마리아 포사스 이 콜레트 O.S.B.
규모 1,256명 (사제 479명)
종교 가톨릭
소속 베네딕도회, 베네딕도회 총연합
본부 이탈리아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수도원
(1 Via Ostiense, 186, 00146 Roma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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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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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d7a8c,#4d7a8c> 라틴어 <colbgcolor=#fff,#1f2023>Congregatio Sublacensis Casinensis Ordinis Sancti Benedicti
이탈리아어 Congregazione Sublacense Cassinese dell’Ordine di San Benedetto
프랑스어 Congrégation de Subiaco–Mont Cassin
스페인어 Congregación Sublacense-Cassinese
독일어 Kongregation von Subiaco und Montecassino
영어 Subiaco Cassinese Benedictine Congregation
베트남어 Liên hiệp Dòng Biển Đức Subiaco Cass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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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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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유스티나 대수도원 개혁과 카시노 연합회의 탄생2.2. 카시노 연합회의 전성기와 위기2.3. 피에트로 카사레토와 수비아코 개혁2.4. 수비아코 연합회의 독립과 성장2.5.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개혁과 쇄신2.6. 두 연합회의 통합2.7. 오늘날
3. 역대 총재아빠스4. 소속 수도원
파일:수비아코 수사들.jpg
이그나시 마리아 포사스 이 콜레트(Ignasi M. Fossas i Colet) 총재아빠스와 원로들

1. 개요

성 베네딕도회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는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승인과 양측 총회의 합의에 따라 수비아코 연합회와 카시노 연합회의 통합으로 설립되었으며, 베네딕도회 총연합에 소속되어있다. 카시노 연합회는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의 개혁으로 형성된 가장 오래된 연합회 중 하나이며, 수비아코 연합회는 19세기 피에트로 카사레토의 주도 아래 전통 규율을 복원하고 보다 체계적인 중앙 조직을 갖춘 개혁 연합회였다. 통합 이후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는 이 두 전통을 아우르며, 로마성 밖의 성 바오로 대수도원에 본부를 두고 전례, 교육, 영성,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는 수비아코 수도원, 몬테카시노 대수도원, 산티시마트리니타 델라 카바 수도원(카바의 가장 거룩하신 삼위일체 수도원), 몬테베르지네 수도원 등 네 곳의 자치수도원구[1]를 보유하고 있다. 네 곳 모두 이탈리아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2.1. 유스티나 대수도원 개혁과 카시노 연합회의 탄생

서방교회 대분열과 더불어 확산된 '콤멘다(commenda)' 제도는 외부 성직자나 평신도에게 수도원의 운영권을 맡기는 방식으로, 베네딕도회 고유의 수도 생활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런 배경 안에서 1408년 12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는 날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되는 가브리엘레 콘둘메르(Gabriele Condulmer) 추기경의 제안에 따라 파도바의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Abbazia di Santa Giustina) 재건을 위해 베네치아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참사회원이었던 루도비코 바르보(Ludovico Barbo)를 아빠스로 임명하였다.

당시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은 한때의 명성과는 달리 거의 폐허에 가까운 상태였다. 바르보는 처음엔 임명을 고사했지만, 수도원장의 선출 과정에서 베네딕도회의 전통을 존중할 것을 조건으로 수락하였다. 1409년 2월 3일, 바르보 아빠스는 새롭게 수도 서원을 하고, 같은 달 16일에 두 명의 까말돌리(Camaldolese) 수도자와 성 조르조 인 알가(San Giorgio in Alga) 소속 정규 참사회원 두 명과 함께 수도원 운영을 시작하였다.

바르보 아빠스는 즉시 수도원의 규율을 복원하고, 수세기 동안 누적된 각종 폐단을 제거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특히 파도바 대학교(Università di Padova)의 젊은 학생들 가운데서 수도자를 선발하는 데 힘썼다. 그 결실로, 1410년 3월 23일 첫 수련자인 파올로 데 스트라타(Paolo de Strata)가 수도복을 입었다.

그 뒤 10년 동안, 수도원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성소자들이 꾸준히 유입되었고, 1419년 무렵에는 수도자 수가 1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바르보 아빠스는 이 개혁의 성과를 다른 수도원들에도 확산시키고자,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에서 양성된 수도자들을 바사노(Bassano), 베로나(Verona), 파비아(Pavia), 제노바(Genova), 피렌체(Firenze), 베네치아(Venezia), 아미아나(Ammiana) 등지로 파견하였다. 이 가운데에는 새로운 수도원이 창설된 경우도 있었고, 기존의 쇠퇴한 수도원을 개혁한 경우도 있었다. 수도원 진출의 반대에 부딪힌 지역에서는, 파견된 수도자들이 자체 규칙과 독립된 지도 체제를 갖추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419년 1월 10일, 바르보 아빠스의 주도 아래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식적으로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을 중심으로 하는 베네딕도 수도회 연합체를 창설하였다. 이 연합체는 '일치 연합회(Congregazione de Unitate)' 또는 '성녀 유스티나 엄률 연합회(Congregazione dell'Osservanza di Santa Giustina)'로 불렸으며, 각 수도원이 자체적으로 아빠스를 선출할 권한을 보장받는 동시에, 전체 연합체는 매년 총회를 열어 네 명의 순시관을 선출하고 이들에게 집행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를 갖추었다. 모든 직책은 일정한 임기를 두었는데, 이는 당시 일반화되어 있던 평생직과 콤멘다 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거의 민주적인' 운영 방식은 초기에 일부 공동체의 반발을 샀지만, 전체적인 확산세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1432년에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연합회의 구조를 공식 승인하였고, 총회가 매년 아빠스를 선출하며, 아빠스의 봉건적 특권들, 예를 들면 수도원장 임명권이나 일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폐지하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초기 이상에 따라, 각 수도자가 독립된 방에서 생활하며 금욕과 관상에 집중하는 수도 생활을 지향하도록 하였다.

이 시기 바르보 아빠스의 명망이 교회 안팎으로 더욱 확대되어, 아빠스 자신이 바젤 공의회(Concilio di Basilea)에 교황 특사로 파견되거나 다양한 정치적 중재 활동에도 참여하였으나 그의 활동의 중심은 언제나 수도 개혁이었다.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의 개혁 모델은 다른 수도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폴리로네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San Benedetto di Polirone, 1417),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수도원(San Paolo fuori le mura, 1426), 나폴리의 성 세베리노와 소시오 수도원(Santi Severino e Sossio di Napoli, 1434), 프랄리아의 성모 수도원(Santa Maria di Praglia, 1448), 파르마의 성 요한 복음사가 수도원(San Giovanni Evangelista di Parma, 1477) 등이 차례로 합류하였으며, 마침내 1504년에는 베네딕도회 수도 전통의 발상지인 몬테카시노 수도원(Abbazia di Montecassino)까지 연합회에 가입하였다. 이에 따라 교황 율리오 2세는 연합회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카시노 연합회(Congregazione Cassinese)'로 변경하게 하였다.

2.2. 카시노 연합회의 전성기와 위기

15세기를 거치며 제도적 안정을 이룬 카시노 연합회는 초기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베네딕도회 개혁 모델로 자리매김하였다. 16세기 동안 연례 총회와 직책의 임기제, 그리고 각 수도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연합회 체제는 공동체 간의 응집력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기능하였다. 새로운 수도원들이 계속해서 연합회에 합류하였고, 각 수도원은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따라 공동체 삶을 회복하는 한편, 학문과 전례, 영적 유산의 보존에 주력하면서 문화적 중심지로도 부상하였다.

카시노 연합회는 제도적 성숙기를 맞아 트리엔트 공의회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젊은 수도자 양성과 공동체 규율, 수도 생활의 질적 향상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 연합회의 규칙인 『카시노 헌장』은 이탈리아를 넘어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폴란드, 몰타 등지의 베네딕도회 연합체들에도 채택되거나 영향을 주었으며, 루도비코 바르보가 고안한 중앙집권적이되 위계화되지 않은 운영 체계는 근세에 이르러서도 권위와 공동성, 규율과 자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모범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정치·사회 환경이 급변하면서 연합회도 점차 타격을 입기 시작하였다. 수도 성소의 감소, 세속 권력의 간섭 확대, 외부 권력에 의해 임명된 콤멘다 아빠스의 재등장, 수도 생활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하락 등으로 인해 수도 공동체의 활력이 점차 쇠퇴하였다. 여기에 더해 계몽주의적 국가 개혁의 일환으로, 종교 법인에 대한 통제와 수도원 해산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도원은 재정 몰수와 인원 축소, 영적 기능의 상실에 시달리게 되었다. 비록 연합회의 제도는 외형적으로는 존속하였으나, 그 내면의 활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결정타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정권 하에서의 수도원 해산령이었다. 이탈리아 전역에 걸친 이 탄압으로 대부분의 수도원이 폐쇄되었고, 수도자들은 흩어지거나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3세기 가까이 이탈리아의 베네딕도회 영성과 문화를 이끌어온 카시노 연합회는 근대 국가 체제의 격변 속에서 강제적인 침묵의 시기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후의 재건과 개혁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다시 모색될 수 있었다.

2.3. 피에트로 카사레토와 수비아코 개혁

19세기 전반기 유럽 가톨릭 세계에 나타난 수도 생활의 부흥 흐름 속에서, 이탈리아 베네딕도회 개혁의 핵심 인물은 카시노 연합회 소속 수도자였던 피에트로 프란체스코 카사레토(Pietro Francesco Casaretto)였다. 그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이 지닌 초기 이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개혁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훗날 수비아코 연합회(Congregazione sublacense)로 발전하게 될 수도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첫걸음은 1842년 제노바 인근 펠리(Pegli)에 수도원을 창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곳에서 카사레토는 보다 엄격한 규율, 정성스럽게 집전되는 전례, 단순화된 공동체 구조를 토대로, 정주와 문자 그대로의 수도규칙 준수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수도 생활을 실험하였다.

그가 제안한 개혁안은 '초기 규칙 엄률(primitiva osservanza)'의 원칙에 따라 18개 조항으로 정리되었으며, 이는 카시노 연합회에 제출되어 그 취지가 승인되었다. 이어서 1846년에는 교황청의 '주교와 수도회성성(Congregatio Episcoporum et Regularium)'으로부터도 공식 인가를 받았다. 이 승인으로 개혁 운동은 보다 넓은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특히 교황 비오 9세는 나폴레옹 시대의 해산 조치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수도 제도를 복원하려는 뜻에서 이 개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1851년, 교황 비오 9세는 카시노 연합회 내부에 '수비아코 관구(Provincia Sublacense)'를 신설하고, 카사레토가 제시한 개혁 이념에 동의하는 수도원들을 이 관구로 편입시켰다. 관구장에는 카사레토가 임명되었으며, 그는 교황청 직속의 교황 사절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지도 아래 이 관구는 창설 직후부터 강한 선교적 성격을 띠었고, 국제적 확산을 목표로 하였다. 1852년부터 1858년 사이, 이탈리아와 유럽 각지의 여러 수도원이 관구에 가입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수도원이 설립된 지역은 파르마, 베네치아, 프랄리아, 로마의 산 암브로조(Sant’Ambrogio) 등을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뉴 노르시아), 벨기에(테르몬데), 프랑스(라 피에르키비르), 스페인(몬세라트), 영국(램스게이트와 딜) 등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속한 발전은 기존 수도원들과의 긴장도 불러일으켰다. 카사레토의 개혁은 보다 엄격하고 중앙집권적인 성향을 띠었으며, 이는 전통적인 카시노 연합회 소속 수도원들 사이에서 우려를 낳았다. 특히 수도자 양성 방식, 성소자 선발 원칙, 수도원 자치권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아코 개혁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으며, 보다 금욕적이고 선교적이며 일체적인 수도 이상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이로써 카시노 연합회로부터의 분리와 새로운 독립 연합회의 수립은 필연적인 결말이 되었다.

2.4. 수비아코 연합회의 독립과 성장

1872년 9월 5일 반포된 교황 칙서를 계기로, 수비아코 관구는 카시노 연합회(Congregazione Cassinese)의 산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제도적 구조를 수립하며, 초기 규칙 엄률의 수비아코 연합회(Congregazione della Primitiva Osservanza di Subiaco,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로 독립하였으며, 자체적인 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후원 체계 없이 새로이 출범한 이 신생 연합회는, 명확한 법적·영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출신 지역과 언어, 문화가 서로 다른 수도원 간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창립자인 피에트로 프란체스코 카사레토의 카리스마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안정적 치리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부터 '초기 규칙 엄률'의 구체적 적용 방식에 대한 해석 차이가 드러났고, 각기 다른 교회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관된 양성 체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카사레토 아빠스는 1876년 연합회 총재아빠스직에서 물러났으며, 이는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가 창립자의 개인적 권위에서 벗어나 공동의 합의와 제도적 운영에 기초한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연합회는 이전 소속체였던 카시노 연합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당시 카시노 연합회는 19세기 수도원 해산 조치로 위축된 상황에서도, 다양한 공동체 전통을 포용하며 역사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베네딕도 규칙을 실천하는 유서 깊은 수도 전통을 대표하고 있었다. 반면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는 보다 단일한 구조와 선교적 지향을 강조하였으며, 엄격한 엄률과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통해 조직의 응집력을 높이려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두 연합회가 상호 충돌 없이 각기 다른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한편, 새 연합회가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자율성 초기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교황 레오 13세는 직접 제도 정비 과정에 개입하였다. 1878년, 레오 13세는 귀디(Guidi), 프란키(Franchi), 메르텔(Mertel) 추기경으로 구성된 추기경 위원회를 임명하여, 시범적으로 채택된 규정안들을 재검토하고 재정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위원회는 카사레토의 영적 비전을 유지하면서도,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 및 기타 선교 지역의 다양한 문화권에 위치한 수도원들로 이루어진 국제 조직의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의 작업은 규율과 유연성, 제도적 일관성과 지역 상황에 대한 존중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가 제도적으로 안정되면서도 경직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1880년 열린 총회에서 나타났다. 1880년 총회는 연합회의 제도적 성숙과 내부 신뢰가 새롭게 다져진 분위기 속에서 개최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의 공식 회칙(Costituzioni)이 승인되었다. 해당 회칙은 이후 1959년까지 소폭의 개정을 거치며 유지되었으며, 총회와 총재아빠스, 그리고 정기 순시관을 중심으로 한 연합회 치리 구조를 명문화하였다. 창립자 카사레토의 정신은 국제 수도원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고 지속 가능한 체계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는 성 베네딕도 규칙에 대한 충실성과 현대 교회의 현실적 요구를 균형 있게 아우르는, 견고하고 통일된 규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제도적 안정성을 갖춘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는,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세계 각지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베네딕도 전통 안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갔다.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영국 등 서유럽에 자리잡고 있던 수도원들을 기반으로, 연합회는 유럽 외 지역에도 선교적 관점에서의 새로운 수도원 설립을 적극 추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남미 여러 국가들에서 새 수도원이 세워졌고, 유럽 내의 수도원끼리는 협력을 강화하여, 수련자 양성과 새로 선출된 장상의 재교육을 위한 공동의 교육 및 영성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는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각 수도원이 직면한 지역적·교회적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영적 긴장감과 실천적 융통성은 연합회가 시대의 요청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특히 전례와 영성 양성에 대한 헌신은 20세기 초 베네딕도 수도전통 내에서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를 가장 역동적인 조직 가운데 하나로 부상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제도적 차원에서도 연합회는 더욱 공고한 구조를 갖추어 나갔다. 총회는 정기적으로 소집되었고, 순시관 제도는 수도원 간의 영적 일치와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각 관구는 중간 조정기구로서 자율성과 통합을 아우르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치리 체계는 교황청과의 관계 속에서도 안정성을 발휘하였다. 실제로 교황청은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를 베네딕도 개혁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하였으며, 엄격한 규율, 선교적 개방성, 전통에 대한 충실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모델로 높이 평가하였다.

한편, 카시노 연합회 역시 20세기 초부터 제도적 개혁을 거쳐 현대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1914년 7월 11일 교황 비오 10세는 카시노 연합회의 운영 규칙을 개정하였으며, 이 조치는 1924년 4월 6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사실상 재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각 수도원은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받아 장기 임기 제한 없이 자율적으로 아빠스나 수도원장을 선출할 수 있었고, 연합회 총회는 6년 임기의 총회 선출직 아빠스 총재와 두 명의 순시관을 통해 전체를 조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카시노 연합회와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 모두에게 세계적 위기의 여파가 밀려왔다. 제1차 세계대전과 특히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럽 내 여러 수도원은 국가의 징발, 강제 이주, 정치적 박해 등을 겪으며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전쟁은 수도원의 경제적 기반과 공동체 일치를 위협하였고, 수련 과정의 중단이나 수도원 공동체의 일시적 해산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연합회는 각각의 연합회 내부의 일치를 유지하고, 전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쇄신과 갱신을 준비하였다.

2.5.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개혁과 쇄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비아코 엄률 연합회는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전환기의 흐름을 예견하며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손실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합회는 제도적 체계를 유지했고, 양성과 공동체 결속에서도 안정성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연합회는 자율 초기의 회칙인 1880년판 회칙이 당시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1946년부터 본격적인 개정 논의를 시작하였다. 개정 논의의 핵심은 규율의 유연성 확보, 수도원 간 문화적·전례적 다양성 인정, 그리고 중앙 정부 구조의 역동성 확대에 있었다. 개혁의 첫 결실로 1952년, 연합회는 그 명칭에서 '초기 규칙 엄률'(della Primitiva Osservanza)를 제거하고 단순히 '수비아코 연합회'(Congregazione Sublacense)라는 이름을 공식화하였다.

베네딕도회 수도전통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자, 수비아코 연합회는 회칙을 『교회 헌장』(Lumen gentium), 『수도생활 쇄신에 관한 교령』(Perfectae caritatis), 그리고 공동 식별과 카리스마의 현지화에 중점을 둔 새로운 교회론에 비추어 근본적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66년부터 1988년까지 수비아코 연합회는 여러 차례의 총회를 열고, 대륙별로 파견된 장상과 수사 대표, 자문단의 참여 속에 점진적이고 신중한 개정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수립된 새로운 회칙은 두 가지 핵심 원칙 위에 구축되었다. 하나는 개별 수도원과 관구 차원에서 전례와 규율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총회, 총재아빠스, 지역 공동체의 권한을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수도원들은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으며, 연합회 전체는 하나의 영적 가족으로서의 일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천년기를 앞둔 시점에서 수비아코 연합회는 베네딕도 연합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력이 넘치는 조직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에 대한 충실성과 시대의 징표에 대한 민감한 응답을 동시에 실현한 덕분에, 수비아코 연합회는 다른 베네딕도 연합회는 물론, 남녀 수도회, 교회 제도와의 대화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졌다.

수비아코 연합회가 여러 개혁을 단행하고 있던 시기에, 몬테카시노의 카시노 연합회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도 개편을 단행하였다. 카시노 연합회는 각 수도원에서 선출된 대표 수사들이 장상과 함께 총회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총재아빠스는 재선이 가능한 직책으로 조정되었다. 또한 총재아빠스를 보좌하는 순시관을 네 명으로 확대하였는데, 이 중 두 명은 사제품을 받지 않은 평수사로 구성되었다. 이 조치는 수도공동체 내에서 성직수사가 평수사보다 더 우월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평수사 성소 또한 교회의 한 축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소임을 상기시켰다.

카시노 연합회는 최소 연 1회 총재아빠스, 순시관, 각 장상들이 모이는 '치리 회의'를 열어 연합회 운영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각 수도원 방문 결과를 정기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러한 구조 개혁은 각 수도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중앙 정부의 기능을 일정 수준까지 강화하려는 균형 잡힌 제도 운영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2.6. 두 연합회의 통합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칙서와 양 연합회 총회의 승인에 따라, 카시노 연합회와 수비아코 연합회가 통합되었다. 이 통합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1872년 분리 이후 각자의 길을 걸어온 두 연합회가 공동의 영성과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기반하여 제도적으로 재결합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통합은 수년간의 협의와 조율을 거쳐 이루어졌다. 양측은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차례 교류를 통해 조직 운영, 전례 양식, 수도 규율 등의 차이를 검토하였다. 당시 카시노 연합회는 개별 수도원의 자율성과 다양한 수도 생활 형태를 존중하는 오랜 전통을 지녔고, 수비아코 연합회는 중앙집권적 구조와 국제적 선교 네트워크를 갖춘 조직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러한 상이한 제도와 관습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조화시키는 것이 통합 과정의 핵심 과제였다.

새 연합회의 명칭은 두 연합회의 이름을 병렬한 '성 베네딕도회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Congregazione Sublacense Cassinese dell’Ordine di San Benedetto)'로 정해졌다. '수비아코'는 새 연합회의 법적·조직적 기반이 되는 수비아코 연합회의 제도 구조를 나타내며, '카시노'는 성녀 유스티나 대수도원과 몬테카시노의 유산, 그리고 베네딕도 수도 전통의 고전적 정통성을 가진 카시노 연합회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연합회는 양측의 역사적 정체성을 모두 존중하는 방향으로 명칭과 제도를 구성하였다.

조직 체계는 수비아코 연합회의 회칙에 따라 구성되었으며, 총회, 총재아빠스, 순시관, 관구 체제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카시노 연합회에 속했던 수도원들은 각자의 전례 양식과 관습을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통합되었고, 연합회의 공동 규범 안에서 자율성을 보장받았다. 각 수도원은 자신들의 문서, 기록, 문화적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연합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이 통합은 수비아코 연합회와 카시노 연합회 간의 제도적 분리를 종식시키고, 베네딕도회 내에서 다양한 수도 전통과 문화적 다양성을 아우르는 통합 모델로 평가되었다. 새롭게 구성된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는 수도원 수와 지리적 분포 면에서 베네딕도회 총연합 내 최대 규모의 연합회가 되었다.

2.7. 오늘날

현재 수비아코-카시노 연합회는 수련자 양성 및 수도자 재교육을 위한 연합회 내 공동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으며, 각 수도원 간 교류 및 국제적 회합을 통해 일관된 규범과 교육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의 신규 수도원 설립 및 기존 공동체의 안정화가 주요 과제 중 하나였으며, 몇몇 수도원은 관상 생활뿐 아니라 교육, 출판, 목회 협력 등 지역 교회와의 연계를 강화해 왔다.

연합회는 정기 총회를 통해 규정의 수정, 수도원 방문 보고, 공동 과제 논의, 장상 선출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수도원의 자율성과 전례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원칙 아래 중앙 구조와 지역 간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수도 성소 감소, 고령화, 재정 문제 등의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수도원 간 협력과 역할 분담이 강조되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수도원의 통합이나 역할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연합회는 수도 전통의 연구와 보존, 기록물 정리, 수도문화유산 전시 및 출판 활동 등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수도원은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수도 생활의 역사와 규칙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회 내 타 수도회 및 교구와의 협력, 교회 일치 운동 참여 등에도 제한적이나마 관여하고 있다.

3. 역대 총재아빠스

4. 소속 수도원


[1] 수도원장이 교구장과 같은 사목권한을 가지고 수도원에 속한 본당들을 통치하는 면속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