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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구 마르크스주의(Western Marxism)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는 상이한 경향을 보이는 서유럽 지역의 마르크스주의를 묶어 부르는 범주이다. 제2인터내셔널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 대부분이 혁명의 주체로서 노동자가 기능할 것이라는 것을 자명한 전제로 받아들였다면,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 등의 상부구조가 가하는 반작용이 어떻게 노동자의 각성을 방해하는지를 좀 더 거시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나아가 일부는 칸트 이전의 형이상학으로 회귀하려는 동유럽 마르크스주의에 반발하여 철학적 유물론을 좀 더 철저하게 정초하려고 시도[1]하였다.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는 흔히 루카치 죄르지, 카를 코르쉬, 안토니오 그람시가 꼽힌다. 다만 이들 중 루카치는 가장 유명한 동시에 다소 과도기적인 위치에 가깝다. 물화로부터 노동자가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의 문제와 노동자가 해방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등등으로도 불린다. 루카치나 코르쉬, 사르트르, 일부 비판 이론가[2] 이러한 '헤겔적' 경향의 반대편에는 알튀세르 등의 구조적 마르크스주의 학파가 있다.
2. 역사
2.1. 독일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배신으로 인한 독일 11월 혁명의 실패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데올로기화는 이후 수정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레닌주의도 아니었던 마르크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제3의 길을 찾게끔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적인, 철학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철학적 논쟁은 주로 헤겔 사후에 나타난 실증주의와 신칸트주의에 대한 입장을 두고 이루어졌는데, 좌파공산주의자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실증주의와 신칸트주의를 "윤리적 사회주의"란 이름 하에 받아들인 베른슈타인등의 사회민주주의와 다소 기계론적인 형태를 취한 레닌주의 양자에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기계론적 유물론을 거부했지만, 신칸트주의자들이나 후설식의 현상학, 하이데거식의 신비주의와는 다르게 그 대안으로 관념론을 택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레닌주의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형태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이에 더하여, 독일의 경제적 위기가 가져온 나치의 준동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지식인들 중 일부는 경제적 위기가 찾아오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봉기하여 자본주의를 철폐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대중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을 선택하였는데, 이런 상황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이유가 상부구조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비단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의식이 된다.
이러한 배경들 하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상부구조에 대해 유물론적인 동시에 반-기계론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는 상부구조의 역할을 간과하였지만, 그렇다고 실증주의나 신칸트주의식의 관념론으로 빠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일한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상부구조를 토대로 완전히 환원시키는 것이었지만, 관념론도 토대를 상부구조로 완전히 환원시키기는 마찬가지[3]였다. 즉 기계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상부구조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명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이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경향이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시작점이라고 할 만한 인물과 저서로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1922), 카를 코르쉬의 『마르크스주의와 철학』(1923),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가 있다.
루카치는 "물화"라는 개념을 구체화함으로서 비판 이론과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코르쉬는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를 급진화시켜 변증법 자체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니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심지어 폐기되어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루카치와 코르쉬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 성격을 강조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 성격은 이미 레닌의 『철학 노트』에 의해 지적[4]되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인 성격을 알리고 좀 더 심도있게 연구한 이들은 루카치와 코르쉬이다. 『논리의 학』에 대한 레닌의 해석은 변증법이 자연과 자연의 변형인 인간의 사고의 운동법칙에 대한 과학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루카치와 코르쉬는 변증법을 자연에 적용하는 것은 기계론적 유물론이라고 주장하면서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의 자기비판이었다.[5] 이후 코르쉬는 역사적 조건이 바뀌었으니 마르크스 또한 다른 사회주의 이론가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에 도달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전통이론과 비판이론」(1937)을 대표적인 기점으로 하여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의 소위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발흥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1947년에 『계몽의 변증법』을 내놓는다. 다만 프랑크푸르트 학파 전체가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소위 "1세대"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뒤인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경우는 애초에 사회주의가 아니다.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주의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서 상부구조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했는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관하여 논쟁이 있기도 하였다.
2.2. 프랑스
한편 프랑스에서는 알렉상드르 코제브를 통해 새로이 해석된 헤겔이 현상학과 함께 실존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장폴 사르트르와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의 실존주의는 일종의 마르크스주의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정확히는 실존주의에 고유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없었기에 마르크스주의로 그것을 대신한 것에 가깝다. 앙드레 브르통과 같은 초현실주의 또한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려 했으며, 초현실주의자 본인들은 나아가 자신들의 이론 자체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에서는 쩐득타오 등과 같이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합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도 했다.사르트르는 이후 일종의 전회와 함께 『방법의 탐구』,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내면서 현상학에서 마르크스주의로 초점을 이동시킨 실존주의를 전개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보조장치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가 독단화되지 않도록 궤도를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후기 사르트르의 마르크스주의는 실존주의의 유명세에 묻혀 거의 주목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밖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주제로 하여 일종의 마르크스주의적 지리학을 선보였으며,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과 같이 좌익공산주의와의 연관이 밀접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프랑스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는, 모리스 블랑쇼가 작성한 이른바 "121인의 선언"에 참여하기도 했다.
실존주의가 구조주의에 의해 침몰한 뒤, 구조주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개념에 영향을 받은 루이 알튀세르는 헤겔주의적인 청년 마르크스와 과학적인 장년 마르크스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주체는 구조의 효과라는 구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했다. 알튀세르주의는 프랑스 정치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자리를 차지하여 이후 프랑스 좌익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튀세르의 주장 중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가 출판되면서 전개된 마르크스 해석 상의 논쟁과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논쟁에서 쟁점이 된 것은 헤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는 초기의 마르크스와 경제학에 초점을 둔, "과학적"인 후기의 마르크스 사이의 연속성이 존재하느냐, 그리고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둘 중 어느 마르크스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수용하여 변증법과 과학을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한, 그러니까 "과학적 사회주의"가 변증법적인 사회주의라고 해석한 소련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성립 자체가 어려운 문제였지만[6],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이 엥겔스와 마르크스를 분리하고 — 나아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분리하고 — 변증법은 사회에만 적용된다는 견해를 취했기에 이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최근에는 존 벨라미 포스터를 비롯한 생태 마르크스주의가 대두되면서 이에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알튀세르의 주장은 헤겔 철학과 단절하여 "과학적"인 후기 마르크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알튀세르와 반대되는 입장을 보인 이들도 있었는데, 아니 사실 이러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로 사르트르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에 주목하여 인간 주체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헤겔적 마르크스주의 혹은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2.3. 68운동 이후
이후 독일과 프랑스에서 68운동이 일어나면서 아도르노는 학생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반면 마르쿠제는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는데, 이후 마르쿠제의 사상은 신좌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마르크스주의적인 색채는 거의 빠진 형태의 영향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유행도 서유럽의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약화시키는 데에 한 몫했다. 이에 더하여 마르크스와 거리를 두려 한 미셸 푸코에 의해 서구권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거의 퇴조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발흥하면서 잠시 묻혔다가 소위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등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이걸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또한 구조주의에 의해 사장된 사르트르가 68운동에 지지를 보냄으로서 잠시동안 부활하기도 했으며[7], 마오주의가 형식적으로 수입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반수정주의적인 구호적인 차원에서의 수용에 그쳤으며, 실질적으로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68운동 세대 철학자들 중 마오주의자였다고 하는 철학자들에게서 마오주의의 개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애초에 마오주의는 제3세계 같은 환경에서만 유효한 이론이기에...3. 관련 인물
- 게오르크 루카치 (중기)
- 안토니오 그람시
- 카를 코르쉬
- 초기 프랑크푸르트 학파
- 빌헬름 라이히
- 장폴 사르트르
- 모리스 메를로-퐁티
- 쩐 득 타오
- 루이 알튀세르
- 프란츠 파농
- 상황주의
- 앙리 르페브르
- 에른스트 블로흐
- 뤼시엥 골드만
- 세바스티아노 팀파나로
- 갈바니 델라 볼페
- 루치오 콜레티
4. 관련 항목
5. 둘러보기
[1]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전에는 소위 평의회 공산주의에 의해 이러한 시도가 작게나마 있었다.[2] 마르쿠제나 프롬 등등. '일부'인 이유는 아도르노와 같이 청년 맑스에 중점을 두는 인간주의적 해석을 거부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3] 실증주의를 비판한 아도르노가 똑같이 실증주의를 비판한 후설-하이데거식의 현상학에도 비판을 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4] "헤겔의 논리학 전체에 대한 연구와 이해 없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하는 것은 완벽히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지난 반 세기동안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5] 이 지점에서 포퍼의 비판은 그것이 제기되기도 이전에 이미 공허한 것으로 된다.[6] 이쪽은 아예 양자역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헤겔 논리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질의 존재 양식은 모순이기에 전자의 위치가 확률 함수로 서술되는 것은 전자의 운동이 필연성과 우연성의 대립을 내포하는 것이고 광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은 대립하는 두 요소라는 식이다.[7] 아이러니하게도 68운동에 반대한 아도르노와 유사하게 사르트르 또한 68운동이 일어난 뒤에는 엄청나게 긴 플로베르 연구서겸 평전을 쓰는 등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