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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독교 우파에 대한 문서.2. 역사
대한민국의 기독교 우파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며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넘어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었으며,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와 미국과의 연계를 통해 국가 운영과 사회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된 1960~80년대에는 대형 교회들이 등장하면서 신자 수 증가가 더욱 가속화되었다.2.1. 이승만 정권(1948~1960)
이승만 정부는 기독교를 국가 발전의 핵심 가치로 설정하고, 반공주의를 강조하며 기독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기독교입국론을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기독교적 가치 위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만은 미국을 모델로 삼아 대한민국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미국 기독교 세력과의 강한 연대로 이어졌으며, 기독교 단체들은 반공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정부와 협력했다.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6.25 전쟁 당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이 빠르게 남하하자, 1950년 6월 28일 새벽 국군은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여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수많은 민간인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 상황에서 폭파가 강행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 관저에서 참모들과 함께 나라의 존속을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이후 피난길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이 함락된 후 대한민국 정부는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이동했다. 부산은 당시 임시 수도 역할을 하며 전쟁을 피해온 피난민들로 가득 찼고, 정부 관계자들도 극심한 혼란 속에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에서도 매일같이 기도하며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에 의해 무너지지 않도록 간구했다고 한다. 특히,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기도를 했고,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및 UN의 도움을 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강화했다.
전세가 불리하던 상황에서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이 작전은 대한민국을 구한 결정적인 전투로 평가되며, 이승만은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고 감격에 찬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개입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전쟁 중에도 수차례 기도회를 열어 국가의 안위를 기원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고 전국이 황폐화되면서 국민들의 고통이 극심해지자, 이승만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피난민들이 부산과 거제도 등에 몰려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기도로 나라를 세웠지만, 기도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지혜롭게 국민을 섬겨야 했는데, 내 힘이 미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
1953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UN과 공산군 사이에서 휴전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휴전에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전쟁 이후에도 기독교를 국가의 중요한 정신적 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은 국민들의 강한 반대 속에서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특히 경찰의 시위대 발포 사건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고,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하와이로 망명하기 전 청와대에서 회개 기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시 하나님, 저는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제 부족함으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 받았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대한민국을 지켜주소서”라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또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에게도 “내가 너무 오래 권력을 잡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라며 후회하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하와이로 망명한 후, 이승만은 1965년 7월 19일,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말년에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박정희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죽기 직전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나의 삶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소. 하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요. 이제 하나님께 맡겨야 할 때요.”라고 유언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으로 봉환되어 서울 국립묘지(현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집권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에 반하는 기독교는 서방과 연계된 종교로 간주되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해방 직후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기독교 세력이 강했으나,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기독교는 철저히 탄압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숙청되었고, 교회는 폐쇄되었으며,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형되거나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북한 주민들의 종교 활동이 금지되었고, 공산주의 사상 교육이 강화되면서 교회는 많이 사라졌다. 이러한 탄압을 피해 북한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남한으로 탈출하였으며, 이들은 남한에서 기독교 우파 세력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한경직 목사(영락교회 설립) 등은 북한에서 피난 온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대형 교회를 세우며 기독교 우파 세력을 형성했다.
이런 개신교 극우화의 끝판왕이 바로 제주에서 4.3 사건을 일으킨 주체 중 한 집단인 서북청년단이다.[1] 초창기 개신교 신자들과 월남 지주들의 자손등으로 이뤄진 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뭉쳤고 이는 목사 한경직도 인정한 바 있다.
이승만의 기독교입국론과 김일성의 극심한 기독교 탄압은 대한민국에서 기독교 우파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기독교는 더욱 확대되었고, 반공주의 및 국가 발전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2.2. 군사정권(1961~1987)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기독교 전체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박정희 정부는 군대 내 기독교 확산 정책인 "전군신자화 사업"을 통해 군 장병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장려하고, 군부대에 교회를 설립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반공주의 이념을 강화하고 군을 기독교화하는 전략이었으며, 군 교회 건축과 군목 제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박정희 정부는 새마을운동과 교회를 연계하고, 기독교 병원 및 사회복지시설 지원을 통해 교회를 국가 복지 정책을 보완하는 기관으로 활용했다. 1970년대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 영락교회(한경직 목사), 충현교회(김창인 목사),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등의 대형 교회들이 등장하며 기독교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신자 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 최대 교회 중 하나로 성장했다. 정부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정기적으로 열며 기독교 우파 세력과 협력했고, 교회는 이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부와 대립하는 개신교·천주교 지도자들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교회 내부에서도 정치적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신군부가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면서 신자 수 증가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 이후 정권의 정당성이 약화되자, 전두환 정부는 반공에 적극적인 보수 개신교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공식 개신교 행사가 더욱 확대되었으며, 전두환 본인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종교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1987년 민주화가 일어난 기준 개신교 신자 수는 약 1,250만 명에 달하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2.3. 민주화 이후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기독교 우파는 보수정당과의 연계를 강화하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들은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수호,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전통적 가족 가치 수호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기독교적 가치가 사회에 반영되도록 노력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후 기독교 우파는 보수 정치 세력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1992년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며 정치적 활동을 본격화했다. 김영삼 정부는 개신교 배경을 가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우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보수적 기독교 단체들은 정책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2000년대 이후 기독교 우파는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며 보수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 할수있는 일은 2003년 조용기, 신현균, 김홍도(목사), 김국도 등 한기총 쪽 대형목사 등이 주도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 였고 이것을 더 큰 국민대회로 만들어야된다는 의견에 따라 각종 정치집단들이 결집한 열린 반핵반김(反核反金)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가 계기가 됐다고 할수 있다. 다음해 ‘개신교 뉴라이트’는 2004년 ‘한국기독당’을 결성하였고 ‘한기총’ 단독 주최로 열린 구국기도회에 7만명을 동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진홍(목사) 주도하에 뉴라이트(대한민국)의 전신격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설하였고 뉴라이트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기독교계가 보수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로 출신으로, 개신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보수적 가치관을 강조했고, 이 시기 기독교 우파는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 동성애 반대, 종교교육 강화 요구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보수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분명히 기독교 단체는 지나친 정치 개입이 논란이 되었고, 교회 내에서도 이에 대한 반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우파시위가 태극기 부대 형태로 나타나자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은 보수적 입장을 넘어 그들 중심에서 극우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전광훈 목사는 2019년부터 강한 정치적 발언을 하며 극우 기독교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태극기 부대와 연대하며 문재인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교회의 정치 개입을 더욱 노골화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정부의 방역 조치를 거부하며 정치적 저항을 지속하였고, 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졌다. 또한,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이 강화되면서 기독교 우파와 인권 단체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시기 기독교 우파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하나는 기존 보수 정당과 협력하며 사회 보수주의를 강조하는 전통적 보수 기독교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활동을 강화하고 중장년 신도들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과 과거 권위주의 정부를 찬양하는 극우 성향의 기독교 운동이었다.
2.4. 분화
최근 기독교 우파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분열이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보수적 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반공 이념 강화, 동성애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어떤 단체들은 아예 중장년층이 상당수인 아스팔트 보수를 기반으로 노골적으로 이승만, 유신 찬양과 같은 복고주의, 그리고 특정 우파 정치인 지지 등 극우 정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 우파 내에서도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 개입으로 인한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호감도 증가 우려와 정치적 입장차에 대한 반발도 있으며, 아예 정치개입을 반대하는 나머지 교회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때문에 기독교계 내부에서 정치적 입장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손현보 목사와 그 신도였던 전한길의 경우 무조건적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으며[2] 오정현 목사는 교회의 정치적 중립을 대외적으로 호소하고 있고 이영훈 목사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와 무속의 연관성에 대해 비판하였다.(무속을 멀리하라는 조언이 잊혀진 것을 비판)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 교회에 출석중인 조갑제는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윤석열 탄핵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이처럼 같은 보수 기독교라 하더라도 정치에 대한 견해가 매우 극렬히 갈리고 있다.
또한 전광훈-손현보 갈등으로 대두됐듯이 기독교 우파 내에서도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광훈파는 5.18에 대해 폭동이라고 규정했지만 손현보파는 5.18은 위대한 민주화운동이고 광화문에 김대중-김영삼 동상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등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야외 집회에 있어서 전광훈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손현보 쪽으로 옮겨가자 전광훈은 손현보와 전한길을 공개 디스하며 갈등이 표면적으로 대두됐다. #
3. 영향력
3.1. 정치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 근본주의와 큰 연관이 있고 개신교 신자들이 대한민국의 정관계에 포진되어 있어 대한민국도 기독교 우파의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보기는 힘들다.대한민국의 유일한 인접국인 북한은 기독교 핍박이 세계에서 제일 심한 편이고 옆나라인 중국도 기독교 핍박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 두 국가 모두 공산주의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친중,친북 세력에 경계심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다. 다만 과거 제정 러시아처럼 러시아 정교회라는 종교가 정치와 유착되어 있는 우익 국가 러시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는 편.
대한민국의 활동적인 기독교 우파 세력은 대부분 개신교와 연관이 되어 있으며 보수성향의 일간지에 이슬람 수쿠크 반대, 반동성애 광고를 내놓는 활동을 하고, 구국기도회를 열며 개신교를 믿는 국회의원들이 친목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선거철에 대형교회를 방문하여 강연 혹은 간증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한때는 국가조찬기도회라고 개신교 목사나 가톨릭 사제들을 불러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뉴라이트의 전신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시한 김진홍 목사를 비롯해 그 산하단체인 기독교 뉴라이트에 속한 목사[3], 신학대 교수, 한기총이나 장로회 각 교단의 여러 목사들이 보수 우익세력과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자유통일당(2020년)이나 전광훈이 주도하는 집회에 이들 목사, 정치인, 심지어 이단판정 받은 교회 출신 신도들까지 어떤식이던 서로 엮여있다는 것만 봐도 이단 판정을 받았던 아니던 어떻게든 정치적 커넥션이 있음을 알수 있다. 즉, 일부 이단식 꼬리자르기 정도로는 해명이 안되는 기독교 우파 자체에 깊은 정치적 커넥션, 공감대가 있는셈이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국부로 숭앙 및 기독교입국론을 바탕으로 개신교 사상의 국가로 건설하는 작업에도 연관되어 있고 국정교과서 찬성, 대북강경책 지지 등 각종 보수정권의 정책 발표 때마다 찬성 의사를 공공연히 표출해왔다. 또 교회조직을 동원하여 기도회란 명목으로 보수 우익 정권을 지지하는 시위도 자주 열기도 하였다. 기사 아울러 이들 중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친박세력과 연합하기도 했다. #
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비종교인과 타 종교인(대표적으로 불교도)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정치에서 세속주의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은 종교를 중요 가치로 하는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우파 정치세력의 일원으로써 활동한다.
하지만 우리공화당, 국민의힘 등 극우·보수정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계 정당에도 기독교 우파 성향 인물이 존재하는 데다, 그 여성인권(페미니즘)단체 + 성소수자 인권단체 + 이주민 단체 + 진보정당의 결집력을 초월하는 집단이 바로 기독교 우파 계열 집단이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세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들이 보기에는 기독교 우파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3.2. 종교언론 차원
한국의 개신교 관련 언론기관 중에서 기독교 우파적인 성향을 견지하는 방송국으로는 극동방송이 있다. 기독교방송이 중도적이나 간혹 개혁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에 대비된다.3.3. 주요 사례
- 차별금지법 입법 철회 사건,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 - 특히 3번째 사건은 노이즈마케팅이 되기도 했으며, 차별금지법 쪽은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여성계 + 성소수자 + 진보정당 + 이주민 vs 보수기독교 - 보수정당의 공방전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한다.
-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인권헌장 철회사건
- 사립학교법 개정 좌초.[4]
-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느냐?"는 질문을 하며 "동성애를 인정하게 되면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성애까지도 비화될 것"이라는 말을 했고,[5] 기독교 우파 단체를 대동해 '동성애 옹호하는 김이수 반대'라며 국민의당 의원들에게 문자 테러를 해 기독교 계통 국회의원이 많은[6] 국민의당 의원의 대부분을 찬성에서 반대로 돌리게 한 바 있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지은 집단의 수장이고 또 그 나라의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를 무위로 돌리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집단이라면 그런 집단을 그저 '일부'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 충남인권조례 폐기 사건 : 2018년 2월에는 자유한국당 충남도의원들이 기어이 성적 정체성, 지향이 담긴 충남인권조례를 끝내 없앴다. 이러한 충청남도의 인권조례에 대해 예전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 충청남도 내의 개신교 단체였다.[7] 이는 선진국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여러 법을 제정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며 인권을 후퇴시키는 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충남인권조례가 폐지되었을 때 기독교계에서는 인권 문제가 후퇴할 것이라는 반대나 우려의 입장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특별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지도 않았다. 물론 여성인권단체, 성소수자 단체, 진보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등은 이에 규탄한 건 덤이다. 물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사실상 참패를 당하고 교육감마저도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기에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 한국에서의 종교인 과세는 1970년대부터 발의되고 추진되었지만 대부분은 의논 단계에서 유야무야되거나 혹은 법안을 마련하고도 시행을 유예하는 등 진통을 겪으면서 2018년에야 종교인에게도 과세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여론은 종교인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납세의 의무가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불교나 가톨릭은 물론 심지어 개신교계 내에서도 종교인도 엄연히 노동자로써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며[8] 찬성한 목소리도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로 종교인 과세 법안이 실행되기까지는 40년이나 걸렸는데, 그나마도 당시 개신교 '주류'라 불렸던 한기총[9]의 눈치를 보느라 일부 조항이 수정되다 못해 '세무조사 전에는 통고해서 관련 세무조사가 얽힌 세무 문제를 수정할 여유'도 제공하는 등의 특혜가 줄줄이 따라붙어서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 보수 진영에서 개혁, 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전략으로 기독교 우파의 레토릭을 쓰는 일이 많다. 실제로 2017년 19대 대선 후보토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동성애 찬성하냐'고 질문했고 문재인은 홍준표의 질문에 대해 '반대한다'고 답했다가 성소수자 단체에 엄청난 항의와 공격을 받았다. 2012년 대선 공약으로 걸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에서 제외하며 없던 일로 돌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성소수자 단체들이 화나 있던 상황에서 결국 성소수자 기습시위#가 일어나고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에 반감을 드러내며 개혁-진보 범진보층에 큰 내분이 일어났다. 결국 문재인은 성소수자들에게 사과하면서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친노친문 사이트인 오늘의유머, 루리웹, 특히 강성 친문인 오늘의유머/시사게시판과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에서는 성소수자 단체를 무지개 군단이라 부르며 비하하기도 하며 성소수자들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정당보다 더 까이는 등 감정의 골이 패였다.
-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일명 여폭법)에서의 김도읍,주광덕 의원의 여성의 범위 축소 (사회적 여성 → 생물학적 여성)
4. 왜 유럽, 미국과 달리 세력화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의 개신교 인구 비율은 20% 정도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나 된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는 장로회 비율이 60%가 넘고[10] 그 나머지는 감리회가 절반이고, 그 나머지를 오순절(순복음교회), 침례회 등이 차지하고 있다. 즉 사실상 장로회 + α나 다름없기에 통일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노동자, 페미니스트, 성소수자같은 다른 정체성 집단과 달리 독자적인 정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이는 개신교를 주축으로 정체성 정치를 할 만큼, 대한민국 헌정 사상 보수우파 부족 현상이 심하지 않았던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기독교 정당을 표방한 기독자유당의 공약을 나무위키 문서를 통해서 보자면, '기독교 정신'을 내세운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약들이 이미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은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소망교회의 장로임을 공공연하게 표명하던 개신교인이었으며, '기독교 장로'임을 어필하여 개신교계의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11] 이를 보면 대한민국 기독교 우파의 보수주의 정서가 이미 세속적인 보수 정당에도 반영되었을뿐더러, 민주당계 정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력한 중앙집권의 역사가 반영된 것도 크다. 한반도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중앙집권이 정착했고 가장 최근의 권력인 대한민국 역시 2공화국시기 잠깐을 제외하면 늘 대통령중심제 국가였고 국민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힘을 위임한 정치적 리더 1인을 중심으로 단결,의지해왔기에, 목사님이 아무리 자기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들 현실의 신도들이 투표를 안하면 안했지, 목사님이 나랏님이 될 수는 없다는 경계 아래, 대통령 외의 다른 리더를 정치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2] 즉 우파 분열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군소정당을 굳이 지지해줘야 할 이유가 개신교 신도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13]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낙태, 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 기독교와 관련된 의제에서 보수정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계 정당 의원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김진표(종교인 과세), 박영선(차별금지법) 등이 있고, 2019년 6월 경남학생인권조례 부결 때도 민주당 의원 2명이 반대표를 부친 적 있다.
참고로 기독자유당이 20대 총선 직전에 국회의원의 당적 변경으로 인하여 잠시 동안 원내정당이었던 적이 있는데, 이때 기독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람이 바로 이윤석이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기독교 우파의 정의를 '기독당과 같은 종교정당을 내세우는 세력'이 아니라, '기독교인이고, 우파적 기독교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박영선이나 김진표같은 정치인들도 기독교 우파에 해당하며, 기독교 우파라는 세력은 결코 극소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류 정당들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강고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에 대해 말하자면 민주당계 정당이 다른 진보정당보다도 여성주의자, 성소수자, 이주민 인권단체의 포화를 많이 받는 이유이자[14] 그렇다고 이들의 요구를 완벽히 들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이 미국의 민주당이나 서유럽의 진보·개혁 정당처럼 아예 세속적으로 정치를 시도해서 차별금지법, 낙태죄 폐지 등 기독교랑 대치되는 의제에서 정의당처럼 열띠게 활동을 한다면 앞의 세 집단에선 표를 더욱 많이 흡수할 수 있겠지만, 개신교 표를 상당수 잃을 각오를 해야 되며, 이들의 대부분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30/40/50대에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선 개신교인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는 정의당 지지층 중에 성소수자나 페미니스트들이 상당수 있는 이유와 동일하다.[15]
단, 이건 2020년 21대 총선 이전의 이야기로, 2020년, 2021년에 와서는 권인숙, 정춘숙 등 여성계 출신 국회의원의 당선 등으로 인하여 시민사회의 입김이 강력해지고, 20대 여성의 투표율도 높아진 반면, 기독교계인 경우는 황교안을 필두로 한 미래통합당의 대참패와, 주류 교단에서는 이단 사이비로 배척받으나 일반인 입장에선 개신교도로 인식되는 전광훈과 관련된 논란이나, 경제적 신체적 자유를 방역보다 우선시하는 분위기 등으로 사실상 자폭을 하고 있기에, 앞에 나온 단체들의 영향력이 기독교 우파의 영향력을 역전하고 있다. 비록 14주 정도이지만 낙태가 비범죄화될 가능성이 높은 게 그 예다. 단, 국회 내부의 유난히 높은 개신교도의 비율[16] 때문에 이런 것이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의 영향이 강했는데, 유교가 철저하게 이신론 내지는 불가지론적 관점을 취한다는 점에서, 애당초 기독교건 무교(巫敎)건간에 지식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척당하고 논리적으로 비판당한 역사가 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즉 불교의 영향이 매우 강했던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 초기에도 당대 유학자들 중 하나였던 정도전[17]이 직접 불씨잡변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불교의 교리 자체를 조목조목 공격했으며[18],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안정복은 가톨릭의 교리에 대한 해석서인 천주실의를 읽고 그 내용을 비판하는 천학문답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따라서 이렇게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당대 지식인들의 태도가 민중들에게도 꾸준히 영향을 주어왔고, 이것이 대한민국 사회가 상당히 세속적인 분위기를 띄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한국의 정치 풍토가 기독교 신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고는 하나, 정작 역대 대통령 중에서 특정 종교의 신자라고 대놓고 자처한 사람이 손에 꼽는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듯이[19], 정치인들이 종교색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한국의 유권자들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20] 그래서 대통령 선거 시마다 대선 후보들이 일부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교세가 큰 종교들인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의 종교시설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예배나 예불을 드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특정 종교에 기대고 있지 않음을 어필하며[21], 이를 두고 '정치인들의 종교는 기불릭[22]'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정도다.[23] 따라서, 대놓고 종교 근본주의를 자처하는 세력과 정치인이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안정적으로 지지율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24]
4.1. 기독교 신자들의 정치적 성향
의외겠지만 신자들 개개인만 보면 기독교 딱지 달고 다니는 정치집단과 성향이 매우 다르다.실제로 한국의 기독교(개신교)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자료를 보면 87년 대선에서도 불교도는 55%가 보수성향 노태우 후보와 김종필 후보[25]를 지지했고,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은 70% 이상이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26]를 지지했다.(무종교는 보수후보 56% 김영삼+김대중 43%) 한국 통계학회 논문집 제 3권 3호 1996.12 (다운 가능)
2002년 대선에서도 이런 성향은 마찬가지였다. 개신교인들의 33%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반면 46%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불교인의 경우 44%가 이회창 후보를, 34%가 노무현 후보를 선택해 개신교인과 다른 투표 행태를 나타냈다. 천주교 신자는 이 후보 42%, 노 후보 40%로 거의 대등한 분포를 보였다. 양자대결 구도로[27] 볼 경우 개신교인은 불교인에 비하여 23% 정도, 천주교인들보다 15% 정도 노무현 후보를 더 찍었다.
2012년 5월 당시 대선주자 선호도 역시 오히려 개신교도들이 상대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우 불교 신자의 지지율은 54.5%였고, 천주교 및 개신교 신자들로부터는 각각 39.5%와 37.8%의 지지를 얻었다.
-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우는 거꾸로 불교 신자의 지지율은 18.5%로 평균 지지율에 밑돌았지만, 천주교 신자의 지지율은 27.9%로 평균을 웃돌았다. 개신교 신자의 경우 안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24.3%로 평균지지율에 근접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불교 신자의 지지율이 7.0%에 그쳤지만, 개신교(11.2%)와 천주교(10.0%) 신자의 지지율은 불교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실제 12월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도 종교는 주된 변수가 아니었다.
다른 조사 결과에서도 신자들의 정치성향을 보면 개신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에 가깝게 나왔다. # # 즉 위의 자료를 요약하자면 대체로 개신교, 가톨릭 신자들은 평화, 통일-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같이 민주당계과 성향이 가까운 경우가 많다.
기독교 우파의 깽판[28]만을 본 사람이 본다면 기절초풍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시끄러운 소수 이론에 기반한 것이고, 조용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보수에 노골적으로 경도되어있지는 않다. 이렇게 된 데에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호남에 개신교 신자 비율이 높은 측면도 있고[29], 영남은 개신교 신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대신 불교 신자 비중이 높고, 영남 노년층 특유의 강경한 보수 지지 성향이 많은 불교와 달리 지역주의 투표 구도가 약한 20~50대 내외의 비교적 젊은 연령층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21세기 들어 현재는 청년 중에 개신교 교회 출석 비율이 낮아지고 있고[30] 가톨릭, 불교 쪽 신자가 완만히 늘어나곤 있지만, 아직도 유효한 사실이다.
물론 강남3구 등지의 경우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이쪽도 재산이 고소득이어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기독교라서 보수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불교 신도들이 보수 정당을 뽑는 경우가 많지만, 이쪽도 영남에 사찰이 몰린 것과 대체로 노년층이 투표율이 높은 것이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한국은 미국과 달리 종교가 투표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대나 지역이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 정치적 노선과 종교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나 성소수자 인권 분야에서 주로 보이는데 개신교도들은 차선책으로 민주당계 정당[31]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진보당도 진보적이지만, 이쪽은 차별금지법 및 LGBTQ를 내세우며 성소수자에 매우 우호적이라 개신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고, 특히 정의당과 녹색당은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 당원도 많기에, 거기에서 종교적 가치관(성소수자, 여성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했다가는 100% 차별주의자, 혐오주의자 심지어 한남충[32]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절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동성애자를 사랑하되, 동성결혼은 반대한다는 견해를 편 적이 있고,[33]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낙태와 동성결혼, 피임은 금지라는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비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며 관용적 태도를 보였고,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성애자를 정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볼 수도 없다"고 하면서도 "한국교회가 여성 교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도 떳떳하게 목회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으면서, 동성애자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만일 내 아들이 동성애를 한다고 해도 그는 내 아들이고, 내 교인이 동성애를 한다고 해도 그는 내 교인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개신교 목사로서 동성애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34] #[35]
5. 관련 문서
[1] 제주도에서 개신교 신자 비율이 낮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2] 이미 손현보 목사는 2024년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를 주도하여 기독교 우파 세력을 결집시켰다.[3] 대표적으로 엄신형 목사의 경우 동시기 2007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도 역임했다.[4] 다만 이쪽은 한국 가톨릭계에서도 교단 차원에서 적극 관여했다.[5]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애당초 동성애(homosexuallity)와 소아성애(pedophila), 시체성애(necrophila)의 접사가 다르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동성 성폭력이 아닌 이상 상호 간의 합의 하에 대등하게 이루어지는 관계인 반면, 소아성애나 시체성애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6] 2019년 기준으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에 개신교계 국회의원이 많다.[7] 개신교계 내에서도 진보교단을 중심으로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충남기총에 의해 제명되었다. #[8] 종교인 과세에 관련한 법에 오히려 종교인들에게 납세 관련 혜택이 많아서 근로자들에 비해 불평등하다는 헌법소원까지 냈다.[9] 2019년 현재는 한기총의 영향력이 많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한교연 등 보수성향 교단의 연합체의 영향력이 증가하였기에 결과적으로는 도긴개긴이다.[10] 주위의 교회를 둘러보자. 대부분이 예장통합, 예장합동이고, 가끔 기독교장로회, 고신, 백석이 보일 것이다.[11] 대한민국에서 기독교 우파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개치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2] 중세 서양역사나 한반도 왕조역사에서 기독교,불교같은 거대종교는 늘 세속과 분리되어 왕권을 견제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교권의 우선은 중앙집권을 위협할 수 밖에 없었다.[13] 반대로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기존 양당과 반목하면서 독자적 정치세력화해 끝까지 버티는 이유 중 하나가, 노동계가 가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뿌리깊은 반목과 불신 때문이다.[14] 예를 들면 "너네는 실제론 보수인데 왜 진보인 척 하냐"라면서[15] 녹색당에도 지지층이 상당수 있지만, 녹색당은 당세가 적다. 단지 구성원들 중에 젊은 여성이 많아서 행동력이 강력해서 언론에 자주 보일 뿐이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던 신지예가 정의당 김종민 후보를 꺾은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16]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보수 교단의 교회는 고위급의 회동 장소로 통하기 때문이다.[17] 유학자로서 입지가 높았으며, 조선을 건국한 창업군주 이성계를 도와준 개국공신 중 한명이었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조선 왕조가 행하는 개혁 정책의 일부가 정도전의 손을 거쳤을 정도다.[18] 다만 논리적인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19] 대놓고 특정 종교의 신자임을 자처한 대통령은 개신교인으로는 이승만과 김영삼, 이명박이 있고, 가톨릭 신자로는 김대중과 문재인이 있다. 이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20] 당장 집권 초기부터, 아니 서울특별시장 시절부터 독실한 개신교 신자임을 어필했던 이명박은 바로 그것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그 절정이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으로, 이 일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만행에 분노하는 여론으로 들끓었고, 덩달아 이명박의 지지율도 크게 하락했다. 이미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이던 2004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라는 발언으로 비개신교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었는데, 그런 그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던 것은 참여정부의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있지만, 기독교 우파 세력이 이명박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낸 영향도 있다. 이런 사실이 집권 후에는 되려 그의 발목을 잡는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아무리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해도 가톨릭의 성당으로 가서 세례를 받거나, 불교의 절로 가서 법명을 받는 등으로 종교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21] 실제로 사이비 종교의 일종인 영세교를 믿는다는 의혹이 생긴 박근혜조차 추악한 실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특정 종교에 기대지 않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건진법사 및 천공스승 등의 사이비 무당들과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폭로되기 전의 윤석열 역시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무종교인이라고 주장했다.[22] 기독교(개신교)+불교+가톨릭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23] 특히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기간에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은 여야 각 당의 개신교인 정치인들도 앞다투어 절과 사찰 등에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한다. 19대 대선도 5월에 치러지는 바람에 비슷한 일이 생겼다.[24]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던 황교안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종교 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키더니 2020년대 들어 한때 황교안과 막역한 사이였던 전광훈이 대한민국 사이비 종교 역사상 최악의 대사건을 2개나 저지르면서 황교안의 정치 인생은 완벽하게 끝장났다.[25] 노태우와 김종필은 나란히 전두환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실세들이였다.[26] 김영삼은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을 민자당에서 했지만 여당 입당 전엔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27]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 득표로 무시.[28]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2025년의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등.[29] 특히 전남 서부나 순천, 여수 등의 개신교 신자 비율이 높다.[30] 단, 2024년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나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자 부모나 조부모에게 이끌리어 교회에 다니면서 보수적 가치관을 습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종교 혹은 타 종교였다가 신규 유입되는 케이스는 많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31]
기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32] 실제로 여성혐오와 호모포비아와 연관되는 경우도 많기에 생긴 말인 것으로 보인다. 괜히 호모포비아의 이유를 자신이 여성을 보는 시각으로 성소수자가 자신을 보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라 정의하는 경우가 있는 게 아니다.[33] 문재인 대통령이 가톨릭이다 보니 자신의 속내야 어떠하든 가톨릭의 공식 입장과 비슷하게 원론적인 입장을 피력한 듯하다. 가톨릭 정치인이 노골적으로 친LGBT 성향을 드러낼 경우 조당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34] 참고로 이건 가톨릭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선이기도 한다.[35] 참고로 김동호 목사의 이 글은 동성애를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김동호 목사는 "동성애 축제를 보면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문제보다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 성적문란함인데,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과 합법을 주장하다가 동성애자들의 성적문란까지 인권과 합법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동성애를 옹호했다고 까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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