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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군복 실물사진들, 아래 사진의 동다리(어깨 부분)가 파란색/노란색이 장교, 초록색이 부사관이다.[1] |
1. 개요
| | 파일:동다리2.jpg |
조선 시대 후기 때에 무관이나 행정관청의 높은 관리들이 입던 제복이다. 일반적으로 붉고 노란 색을 떠올리나 사실은 시기/계급/지역에 따라 구조와 배색이 달라졌다.[2] 일반적으로 황색 또는 청색의 동다리에 소매만 적색으로 만든 옷이며 오늘날 부사관에 해당되는 포교급의 낮은 관리의 경우 동다리가 녹색이다.
동다리+전복의 형태이며 두 옷이 한 세트이다. 조선군 병사들이 포졸복으로 불리는 의복과 비교했을때, 병사들은 활동성을 위해 무가 없고 트임이 큰 창옷와 전복을 입었다면 반대로 간부 및 장교들은 품위를 위해 삼각형의 무가 있고 트임이 적은 동다리와 전복을 걸친 차림이라는 것이다.
舊(옛 구)가 아니라 具(갖출 구)를 쓴다. 즉 옛날 군복이라는 뜻이 아니며, 직역하면 군복을 갖추어 입는다는 뜻이다. 즉 특정한 의복을 일컫는 명사가 아니다. 예로 들면 '신립이 자기 부장으로 하여금 이일에게 갑옷을 벗어주고 부장 자신은 구군복으로 싸우게 했다'는 기록에 나오는 '구군복'은 일반적으로 구군복 하면 생각하는 쾌자+동다리 조합의 군복이 아닌 철릭이다.[3] 즉, 구군복이 아니라 군복이 우리가 흔히 사또옷으로 알고 있는 이 옷의 공식 명칭인 것이다. 하지만 그냥 군복이라고 하면 현대 한국인들은 다들 국방색에 디지털 무늬를 생각하기 때문에 명칭을 정정할 생각은 없는 듯.[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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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조선을 방문한 영국 해군이 그린[5] 조선 비인현감 이승렬과 부하들의 모습 | 1817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 야스다 요시카타가 그린 충청관찰사의 모습 |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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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용곡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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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 초상 | 최원립 장군묘 출토 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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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운 장군 초상 | 18~19세기의 구군복 양식 |
초기 형태는 장옷의 흰색 거들지를 붉은색으로 바꿔서(이것을 '홍수'라고 부른다.[6]) '동다리'라는 의복을 새로 만들어낸 다음 그 위에 쾌자를 걸친 것이었다. 구군복이 처음 등장한 18세기 후반의 무관이었던 이창운[7]의 초상(위 사진)을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군복과 달리 동다리 색이 토홍색이 아닌 녹색이고 홍수 부분도 매우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당시의 동다리가 장옷의 형태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조선 전기 장옷 유물의 거들지 길이와 위 초상화의 홍수 길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동다리라는 복식 자체가 장옷에서 거들지 부분만 팔레트 스왑을 한 의복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옷은 토홍색뿐만 아니라 담황색, 녹색 등등 여러 가지 색상이 있었는데[8] 위 사진의 녹색 동다리 또한 녹색 장옷의 후신격이자 흔적인 셈이다. 하지만 이미 조선 전기의 장옷 또한 토홍색이 가장 흔했고, 결국 동다리의 색상 또한 조선 말기로 갈수록 토홍색으로 일원화되어 버린다. 또한 조선 말기로 갈수록 홍수의 길이 또한 매우 길어지는데, 말기로 가면 아예 동다리의 토홍색 부분이 어깨끈으로 보일 정도로 좁아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로 변했다.
2.1. 다양한 구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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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구군복 어진 |
사실 어느 나라이든 군주라 함은 예나 지금이나 문관과 무관의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며[10] 이 때문에 동서고금 어느 왕국 또는 제국에서든 군주, 즉 왕, 황제 등의 최상위 신분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만을 위한 군복이 따로 존재했다. 임금 전용 구군복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존재하던 의복인 셈이다.[11] 위에서 등장한 지방 수령이나 무관들의 구군복과는 달리 병부 주머니가 없는 것도 눈여겨 볼 점. 병부라는 것은 군권을 나누어 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모든 군권 그 자체를 스스로 통수하는 왕이 누군가로부터 권한을 나누어 받았을리도, 이를 보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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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의 미디어에서
한복 중에서도 관복 하면 곤룡포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의복으로,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 만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의 조선시대 배경 창작물들에서는 민중들과 관계가 깊었던 마을을 다스리는 수령인 사또[13]나 포도청[14]의 우두머리인 포도대장의 옷으로 자주 등장하며 한국 사람들이 흔히 조선시대 때 전형적인 사또의 옷차림으로 생각하는 옷.[15]같은 군사복식인 포졸복에 비하면 고증이나 활용부분에서 훨 낫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보통 전쟁터에서 갑옷없이 구군복만 입고 싸운다던가, 구군복의 색이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다던가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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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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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다리 어께 부분이 일종의 계급장 비슷한 구실을 하는데 파란색>노란색>녹색 순으로 계급이 높다. 가장 계급이 높은 사또가 썬글라스를 착용한 것이나, 왼쪽 뒷편에 남자들이 정장을 착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시대는 조선 말기로 여겨진다.[2] 일러스트레이터 최민준(필명 금수) 작가가 일러스트로 보는 조선의 무비-군사복식편이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 군복들을 총정리하였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조해도 좋다.[3] 우리가 아는 쾌자+동다리 조합은 18세기 이후에 나타난 것이고, 그 이전까지의 조선 군복은 철릭이었다.[4] 굳이 현대의 군복과 구별해서 부르자면 '조선군복' 정도.[5] 이 그림을 당시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보여준다. 링크[6] 붉은색을 쓴 이유는 군마가 피를 보고도 놀라지 않게 붉은색에 익숙하게 하려 함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사실 말은 색맹이라 전혀 실용적인 효과는 없고 장식이 되어 버린, 스페인 투우사의 붉은 천과 마찬가지 결과가 되었다.[7] 1713 ~ 1791. 본관은 함평이고 자는 성유이다. 1738년 무관으로 천거되어 선전관에 제수되었고 다음해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 겸 사복시내승에 임명되었다. 1747년에 상원군수에 임명, 뒤이어 1752년에는 안동영장에 임명되었고 1754년 종2품 하계 가선대부에 가자됨과 동시에 함춘군으로 봉해졌다. 이어 선천방어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제주목사·파주목사 등을 거쳤다. 1774년 영조가 정3품 상계 이상 종1품 이하의 당상 문·무관을 대상으로 한 등준시에서 을과 4등으로 합격하였다. 1776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그 후 우포도대장·어영대장·총융사·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지냈다. 이창운의 초상은 총 4점이 남았다. 위 사진을 비롯해서 위 초상과 같은 화가가 그린 단령본 초상, 등준시에서 을과 4등으로 합격한 후 영조의 명령으로 등준시에 합격한 18명의 무관의 반신상을 그려서 수록하게 한 등준시무과도상첩,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훼손이 심한 단령본 초상이 존재한다.[8] 이 점은 현재의 (여성들의 쓰개 용도인) 장옷에서 그 잔영을 찾아볼 수 있다.[9] 이 자수를 흉배라고 부르는데 조선이 상국으로 섬기던 중국의 명나라에게서 받아들인 것이며 임금은 용을, 문관은 학을, 무관을 호랑이를 수놓은 흉배를 용포와 관복에 부착했다. 임금의 흉배는 군주의 흉배답게 신하들의 흉배와 차별화를 두기위해 흉배라 부르지 않고 보(補)라고 불렀다. 임금의 보는 동그라미 형태고 신하들의 흉배는 네모 형태인데 임금의 보가 둥그란 것은 하늘을, 신하들의 흉배가 네모난 것은 땅을 뜻하는 것으로 신분의 차이를 들어낸다.[10] 이러한 점은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문관으로서는 정치인들과 마찬가지의 정책 현안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무관으로서는 군통수권자이다.[11] 현재 유럽 여러 나라의 국왕들도 공식 석상에서는 군 예복을 입고 참석하며, 대한민국 대통령도 군복을 입을 때는 계급장 부분에 대통령 상징인 봉황휘장을 계급장 대신 부착한 군복을 입는다.[12]
박신용 장군의 무덤에서 나온 전복을 보면 흔치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예시이다.[13] 단 아래에 나오듯이 이것은 오류이다.[14] 조선시대 때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및 도적·화재 예방을 위해 순찰 등의 일을 맡았던 곳.[15] 실제로는 무관들이 군복 차림을 갖추는 일을 뜻한다. 전립을 쓰고, 동달이를 입은 장표 위에 광다회와 전대 띠를 매고, 목화를 신고, 동개와 활집을 메고, 환도를 차고, 등채를 손에 드는 것.[16] 참고로 청군이 갑옷을 입지 않고 청 후기식 음양두를 하는 등 반영 오류가 좀 있다.[17]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덕후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포르투갈 출신의 선교사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을 검은 갑옷을 입은 군대로 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을 보고 과거 창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아무리 계급이 낮은 병사라도 갑옷을 걸치지 않고 전투에 나갔을 리는 없을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많고,
19세기말~20세기초 일본의 유명화가였던 오오타 텐요오(太田天洋: 1884~1946)가 칠천량 해전을 묘사하여 그린 조선전역해전도의 일부를 보면 조선군에서 포졸모자를 쓰고 있는 낮은 병졸도 흉갑(전체적으로 보호하진 못해도 윗몸에 둘러서 상체를 대체적으로 보호할수 있게 만든 갑옷)을 입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조선군 전원이 갑옷을 입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또 포졸복항목에서 볼 수 있듯 프로이스는 조선원정에 직접 참여한 이도 아니다. 이 때까지도 조선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인용 병장기와 갑옷은 개인이 구매하는 물품이었다. 예로 들었던 스페인 군대도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페인 군대는 장창값조차 병사의 급여에서 거둬갔다. 병사들은 어쨌든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서 최소한 흉갑과 투구만큼은 어떻게든 마련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대규모 갑옷 공방이 발달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갑옷을 구비할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병사들은 맨몸으로 나섰으리라는 정도의 추측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국가 예산과는 별 관계가 없다. 심지어 조선군이 갑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민족 기록화를 근거라고 들었는데 민족 기록화는 현대에 와서 상상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이걸 어떻게 근거로 든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같은 포졸이어도 좀 유복하면 나름대로 갑옷을 맞춰다 입었을 수도 있었지만 진짜 찢어지게 가난하면 갑옷 맞출 돈이 없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포졸복마냥 전복만 겨우 구해다 입는 수준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