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29 17: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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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가
2.1. 미합중국2.2.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2.3. 이라크 공화국2.4.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2.5. 남아프리카 공화국2.6.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2.7. 연합왕국
3. 세력4. 정치5. 이념6. 슈퍼 이벤트7. 여담

1. 개요

새로운 세기의 여명이 밝아옵니다. 소련은 경기 침체와 내부 혼란에 시달렸지만, 공공지출을 감축함으로써 번거로운 대군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나약한 대통령과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미국은 1990년대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정부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두 초강대국이 각자의 문제에 몰두하는 가운데 야심 찬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취약점을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1991년 8월 쿠데타가 성공했다면?을 주제로 소련이 지속되고 있는 세계관의 2000년대으로 하는 대체역사 모드이다.

2. 국가

2.1. 미합중국

2000년대에 들어선 미국은 또다시 분열된 선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퀘일은 비교적 성공적인 대통령이었지만 분열된 의회로 인해 효과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불안의 90년대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경제와 미국 그 자체가 그 결과의 후유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대공황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냉전기 적자 재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도 상승했습니다. 퀘일의 정맥염도 강인하고 정력적인 대통령으로서의 인상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민주당과 개혁당은 이를 이용해 그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애초에 이미 떨어져 있었죠. 그 누구도 90년대의 여전히 사라지는 분위기에 직접 맞서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정부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으며, 나토는 미국의 관행에 점점 더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모든 시선이 "자유의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조니가 병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것이 양키스의 끝이 아닐 것이며, 분명 멋지게 홈런을 칠 것입니다. 그렇죠? 성조기가 하늘과 땅, 바다에서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요? 글쎄요... 아무도 모를 것이고, 적어도 미국인들은 더더욱 모르겠지요. 미국이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마침내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요...?
전미국이 지금보다 대통령이 되기에 나쁜 시기는 없을 것이라고, FDR이 처한 상황도 이보다는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임스 댄포스 퀘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7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자제로 태어난 퀘일은 대학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하고 언론인으로서 짧게 경력을 쌓은 후 정치에 뛰어들어 29세에 하원의원이, 33세에 최연소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의 찬사 덕에 1988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부통령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공화당의 인상을 개선하지 못해 1992년 브라운의 집권을 자아냈지만 브라운 행정부의 서툰 대외정책이 전국에 울려 퍼져 1996년 공화당에 댄 퀘일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승리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퀘일은 분열된 의회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양당체제는 페로 일파에 의해 망가졌고,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넘어 완전한 침체에 접어들고 있으며, 건재한 소련은 보호를 원하는 국가들에 절망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진정 FDR스러운 비슷한 상황입니다.}}}
  • {{{#!folding 정부 내각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모병자 한정
    • 무역법 : 자유무역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무관심
    • 국가 종교 : 세속주의}}}'''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공석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최후의 보루

"이 나라는 하느님 아래에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맞이해야 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전쟁 지지도 : +10%
이념 변화 방어 : +30%
* 삼당체제
미합중국에는 이전의 전통적인 양당체제 대신 삼당체제가 들어섰습니다. 이는 정치적 분열이 일반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듭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05
안정도 : +10%
* 글래스-스티갈 법의 유산 - 남루

긴급은행법이 통과된 지 3개월 후 미국 의회는 1933년 글래스-스티갈법으로 알려진 은행법을 통과시켰습니다. 50년 동안 미국 은행 체계의 또 다른 붕괴를 막은 것은 글래스-스티갈법에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이 법의 중요성은 은행이 파산할 경우 돈을 예금하는 가계의 이익을 보호하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설립한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금자 보호가 반세기 동안 은행의 체계적 위기를 막은 요인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은행 활동에 대한 법의 엄격하고 직접적인 통제 덕분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이 주식 시장을 포함한 투기적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이 법의 가장 큰 성과는 은행업을 다소 둔탁한 산업으로 만든 것입니다.

1980년에 통과된 예금기관 규제 완화 및 통화 통제법은 글래스-스티갈법을 뒤집는 첫 번째 주요 조치로 간주됩니다. 이 법안은 추가적인 규제를 부과하는 대신 연방준비제도의 예금 이자율 규제를 종식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완화로 인해 미국의 금융 체계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위기에 빠졌고, 특히 저축 및 대출 협회와 관련된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융 위기는 금융 자본가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저축 및 대출 위기는 경쟁을 줄이는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고, 몇몇 대형 은행들이 글래스-스티갈법이 유효할 때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장 지배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미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주기적인 금융위기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05
안정도 : +10%
* 2차 개헌
미합중국 수정헌법의 일부이자 미국의 자유에 가장 중요한 권리인 총기 소지 권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총기 관련 법률 중 하나로, 모든 미국 시민이 사적으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물론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풀잎 뒤에는 소총을 든 미국인이 서 있습니다...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 : +2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 +20.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저항도 증가 속도 : +10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순응도 증가 속도 : -50%
징병 가능 인구 : +10%
* 경제 침체
퀘일 대통령은 재정 적자와 "불안의 90년대" 경기 침체라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경제는 여전히 호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소득 불균형, 우유부단한 입법부, 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합의 불가로 미국은 침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요인 : 80.0%
건설 속도 : +20%
시장으로 가는 자원 : +15%
민간공장 건설 속도 : +15%
* 잘못된 대외정책
이렇게 하원과 상원이 분열된 상황에서는 외교 문제, 특히 대소련 국제 문제에 있어 전쟁을 계속할지, 끝낼지, 계속 싸울지, 승리의 트로피를 들어 올릴지 등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작은 일을 해내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기에 각 세력은 무엇이 무엇이고 누가 누구인지에 대해 서로 다투고 불평하면서 관계가 악화시키는 중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변동치 : +30%
전쟁 지지도 : +10.00%
* 과도한 군비
냉전은 정치적, 사회적 격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소련과 중국을 제압하기 위한 수십 년에 걸친 거대한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자금과 자원, 인력이 필요했고, 이제는 50년 동안 이어진 러시아와의 힘겨루기로부터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군 지휘관 비용 : +150.0%
징병법 비용 : +200%
경제법 비용 : +150%
군수공장 건설 속도 : +10.00%
* ADCON 1

- ADCON 0 (평시태세) : 임박한 국가 안보 위협이 없을 시의 훈련, 저수준 전개, 일상 수준의 전산상 및 우주상 자산 감시관찰, 노출성 낮은 훈련 및 일반적인 보안감시와 정례전개를 포함하는 정상적인 평시작전입니다.

- ADCON 1 (경계 강화) : 정보기관 및 지역사령부는 감시를 강화하고 신속대응부대를 부분적으로 활성화해 대피 또는 대테러와 같은 비전투적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태세를 강화합니다.

- ADCON 2 (보통 경고) : 최소한의 통보로도 전개되도록 병력을 대기시키고, 잠재적 분쟁지에 장비와 군비품을 사전 배치하며, 동맹과 정보 공유 규모를 확대해 새로이 출현하는 위협을 억제합니다.

- ADCON 3 (고수준 태세) : 활성화된 전시지휘통제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전투에 준비시키고, 항공기 및 해군 자산 요소가 동원돼 위기지역으로 전진 배치되며, 확전에 대비해 대국민 경보가 발령됩니다.

- ADCON 4 (최대 동원) : 필요한 경우 전국적 징집령을 승인하고, 공격 역량의 제한을 완전히 해금하며, 실존적 위협에 대비해 중요 기반시설의 방어 우선순위 지정하는 전면적 전시태세입니다.||
정치력 획득 : +5%
징병 가능 인구 변동치 : -10%
소비재 공장 변동치 : 5.0%
안정도 : +5.00%
전쟁 지지도 : -5.00%
군수공장에서 민간공장으로 전환하는 비용 : +5.00%
* 냉전
이 국민정신은 우리가 대리전에서 승리할 때마다 수정될 것입니다.
}}}

  • {{{#!folding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2000년대에 들어선 미국은 또다시 분열된 선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퀘일은 비교적 성공적인 대통령이었지만 분열된 의회로 인해 효과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불안의 90년대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경제와 미국 그 자체가 그 결과의 후유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대공황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냉전기 적자 재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도 상승했습니다. 퀘일의 정맥염도 강인하고 정력적인 대통령으로서의 인상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민주당과 개혁당은 이를 이용해 그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애초에 이미 떨어져 있었죠. 그 누구도 90년대의 여전히 사라지는 분위기에 직접 맞서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대응법을 아는 이 역시 거의 없었습니다. 삶은 계속되었고, 미국인들은 8년 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독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다가오는 경제 거품과 새해의 환희는 대중의 불안과 망설임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미지의 어둠 속으로 거칠게 던져지는 다음 횃불 같은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많습니다.

소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정부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으며, 나토는 미국의 관행에 점점 더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모든 시선이 "자유의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조니가 병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것이 양키스의 끝이 아닐 것이며, 분명 멋지게 홈런을 칠 것입니다. 그렇죠? 성조기가 하늘과 땅, 바다에서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요? 글쎄요... 아무도 모를 것이고, 적어도 미국인들은 더더욱 모르겠지요. 미국이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마침내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요...?
다음은 뭘까?}}}
냉전에서 판정승한 미국이다. 로스 페로가 기세를 잃지 않아 공화당/민주당/개혁당 삼당체제가 되었다. 냉전에서 판정승했다고나 하나 이쪽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안 좋은 건 마찬가지. 1992년 미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지 않고 제리 브라운이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브라운 대통령의 실정으로 댄 퀘일이 다시 브라운을 누르고 정권 탈환에 성공한 상황. 그러나 이마저도 닷컴 버블로 인해 경제가 더 나락을 가며 퀘일은 재선을 포기하게 되고, 이후의 선거에서 민주당, 공화당, 개혁당 중 후보를 선택해 선거를 실시하게 된다. 각 지역을 선택해 유세를 할 수 있으며, 선거가 끝나고 개표에서 270명의 선거인단을 얻은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은 자동 당선, 아니라면 세 당 중 한 당을 선택하여 정치력과 안정도를 깎고 당선시킬 수 있다. 행정부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 중간선거가 일어나고, 양원 의석 수가 얼마나 증감했는지를 정당별로 보여준다.

2.2.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현대 공산주의의 창시자이자 수백만 명에게 본보기가 되었던 소련은, 몇몇의 가장 거대한 도전들을 극복했습니다. 이 모든 도전들은 소련 인민들이 기꺼이 싸울 의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숙청, 산업화 중 어떤 것도 새천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1991년 8월의 쿠데타로 고르바초프가 전복된 이례, 소련은 끝이 안보이는 정체에 빠졌습니다. 군사 중심의 경제가 경제적 붕괴로 더욱 더 다가갈수록 정부가 파벌주의와 내분으로 인해 내홍을 겪으면서 소련의 존립 문제는 점점 더 불확실해 보입니다. 연방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흥망성쇄의 늪에 빠져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요? 오직 시간만이 이를 답할 것입니다....
– 건강상의 이유로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소련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기에, 소련 헌법 제127조 7항에 따라 소련 대통령의 권한을 소련 부통령 겐나디 이바노비치 야나예프에게로 이양한다. –

겐나디 이바노비치 야나예프는 소련통신국이 전한 이 차마 영웅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과 함께 병든 거인 소련 제8대 주석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범인이었기에 평범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잠시 니즈니노브고로드로 불렸던 고리키에서 몇 가지 직책을 맡았던 그는 90년대 후반 소련 정치의 무명인사로 남을 예정이었으나, 두 대정객이 그것을 거부함에 따라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됐습니다. 고르바초프가 그토록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그의 지명은 최고회의에서 지연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야나예프를 여느 당료와 바를 바 없으리라 생각해 그 지위를 중요치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야나예프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깊은 반감을 품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는 소련 공산당 보수파에 빠르게 합류하여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1991년 8월 쿠데타로 구체화했으니,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사실상 해체했을 법안에 서명하기 직전 가택연금되었습니다. 전차가 모스크바를 가로질러 굴러다니고 구성 공화국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야나예프는 비상위원회를 통해 제 통치를 공고히 했습니다.

소련이 살아남을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그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현상유지가 우선입니다.}}}
  • {{{#!folding 정부 내각
    • 보리스 푸고 - 당내 강경파
    • 유리 마슬류코프 - 산업 부문 최고 책임자
    •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 - 외무부 장관}}}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제한적 징병
    • 무역법 : 제한적 수출
    • 경제법 : 부분 동원령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무관심
    • 국가 종교 : 국가 무신론}}}'''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드미트리 야조프 - 육군 공격 (특기병)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페레스트로이카의 결과
      고르바초프의 실패한 경제 개혁,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기억과 그 결과는 여전히 강렬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연방의 경제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소비재 공장 변동치 : 50.0%
      건설 속도 : -5.00%
      생산 효율 성장 : -10.00%
      공장 생산량 : -10.00%
      조선소 생산량 : -10.00%
      군수공장 건설 속도 : -10.00%
      민간공장 건설 속도 : -10.00%
    • 8월 쿠데타의 기억
      우리의 친애하는 연방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던 8월 쿠데타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쿠데타 이후 연방 지도부는 부패하고 불안정해졌으며, 연방의 영토는 찢겨 나갔고,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치력 획득 : -10%
      안정도 : -10.00%
    • 경제 침체
      대조국전쟁 이래 연방의 가장 큰 문제는 항상 경제였습니다. 50년간의 경제 전쟁, 봉쇄, 개혁 실패, 부정부패가 연방의 경제를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경침체되어 왔으며,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아예 붕괴될지도 모릅니다.

      소비재 공장 변동치 : 60.0%
      건설 속도 : -30.00%
      생산 효율 한도 : -10.00%
      생산 효율 성장 : -15.00%
      정치고문 비용 : -15%
    • 군사화된 산업
      사회주의의 검이자 방패인 소련군은 거대하고 강력한 힘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침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서방과의 끊임없는 군비 경쟁은 우리 산업을 군대에 집중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야조프가 군비를 더 증강시키면서 우리는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0.0%
      안정도 : -5.00%
      공장 생산량 : +10.00%
      조선소 생산량 : +10.00%
      군수공장 건설 속도 : +20.00%
      민간공장 건설 속도 : -10.00%
      부대 훈련, 해산 및 편제 수정 불가
    • 당내 분열
      세계 최초로 성공을 거둔 노동자 정당인 소련 공산당은 창당 이후 많은 역경을 겪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소련 국민과 함께 모든 것을 견뎌냈지만 이렇게까지 나빴던 적은 없었습니다. 1991년 이후 부패와 내분이 당을 괴롭혀 왔고, 차기 서기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05
      안정도 : -10.00%
    • 분리주의의 부상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종말과 8월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체첸을 중심으로 연방의 많은 국가들이 분리주의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무력이나 협상을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안정도 : -25.00%
      전쟁 지지도 : -5.00%
      주둔군 피해 : +5.00%
    • 냉전
      이 국민정신은 우리가 대리전에서 승리할 때마다 수정될 것입니다.

      }}}

  • {{{#!folding 【국가 도입부 - "빛나는 붉은 태양"】
"1991년 8월 19일, 그 운명적인 날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전차가 모스크바로 진입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역사를 바꾸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고, 당면한 상황의 심각성과 러시아의 진로 자체를 바꿀 이 사건의 전개를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바로 그 때가 우리와, 우리의 영광스러운 연방과, 가까운 미래의 우리 상황을 정의하게 되었으니, 바로 8월 쿠데타였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조국이 신연방 조약과 옐친의 반역자 손에 죽어가는 것을, 모든 게 산산조각 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같은 처지의 합리적 인간이라면 응당 그리할 것처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반역자들을 무너뜨렸다."

8월 쿠데타가 소련 공산당의 구원의 은총이자 일종의 최후의 한 수였으며, 적어도 현재까지 연방과 페레스트로이카의 "성취"를 유지시켰다는 야나예프의 가정은 여러모로 옳았습니다. 야나예프와 개혁파는 소련의 개혁이라는 위대한 실험에 침을 뱉는 꼴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쿠데타는 성공했고,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적 행동이 나라의 진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개혁은 분명 중단되었지만 야나예프는 폭풍의 진로를 안내하고 연방의 대붕괴를 막기 위해 온건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겉보기에 그것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본래 생각하기에는 말입니다.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을 때 우린 구성국의 탈퇴와 경제적, 정치적인 격변과 같은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씩, 필요하다면 단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한 발로 무덤을 파고 있는 이 국가는, 한때의 승리한 혁명가처럼 활기차지 못한 우중충한 붉은색으로 여기 서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일출은 어디 있었을까요? 우리의 영광스러운 붉은 별은요?
붉은 황혼으로 대체되었다.}}}
8월 쿠데타가 성공하여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소련. 이 모드의 주인공이다. 경제도 나락을 간 상태에 국제적으로는 구 소련권 국가들은 공산당이 겨우 시위를 진압해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파시스트화된 헝가리를 제외하면 모두 민주화된 상황에, 소련의 내부 정치도 보수파, 개혁파, 선군파, KGB 이렇게 4개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2.3. 이라크 공화국

미치광이, 살인자, 폭군. 그는 아직 건재합니다. 사담 후세인 알티크리티 이야기는 참렬하되 매혹적입니다.

1937년 티크리트 인근 알아우자 마을에서 태어난 사담 후세인은 제 이념에 매료돼 20세에 대학을 중퇴하고 당시 인기 있던 이라크 바트당에 입당했습니다. 1958년, 7.14 혁명이 발생하자 압둘카림 카심은 파이살 2세 국왕을 대신하여 이라크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카심은 당이 지지하는 범아랍주의 사상을 배신하고 아랍 세계에서 이라크의 우위를 추구함으로써 빠른 몰락을 자초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을 포함한 많은 바트당원이 그에 분노했고, 후세인은 1959년 카심 암살 음모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해 후세인과 공모자들은 이집트로 도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63년 발발한 라마단 혁명은 젊은 후세인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귀국이 허용된 것입니다. 하지만 압둘 살람 아리프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내 "공산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자, 1966년 그 반대파 군사조직에 합류하기 위해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1966년, 사망한 아리프의 뒤를 이은 그의 동생은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아흐마드 알바크르 장군이 무혈정변을 통해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후세인을 부통령으로 지명했기 때문입니다. 후세인은 이를 기점으로 점점 더 강력해졌고, 1979년 병으로 쇠약해진 알바크르를 대신해 이라크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바그다드의 도살자'가 평생을 염원이던 통치가 시작되었고, 이라크의 몰락이 뒤따랐습니다.

쿠르디스탄, 이란, 쿠웨이트, 이 모든 곳이 후세인의 팽창주의를 조롱했습니다. 그는 이라크를 초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도할 때마다, 실패할 때마다 그의 대내 통제력은 깎여나갔습니다. 대중의 지지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고 수니파와 시아파 분열이 다시 떠오르기, 이라크는 매일같이 불안정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후세인 마침내 성공을 이룰 수도, 도살자로서의 마지막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 {{{#!folding 정부 내각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광범위한 징병
    • 무역법 : 제한적 수출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불관용
    • 국가 종교 : 수니파}}}'''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알리 하산 알마지드 - 케미컬 알리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서방의 금수조치
      쿠웨이트 침공과 뒤따른 패배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은 이라크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 이미 파괴된 이라크 경제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정치력 획득 : -10%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0.0%
      안정도 : -15.00%
      공장 생산량 : -15.00%
      조선소 생산량 : -15.00%
      무역 거래 의견 변동치 : -10.00%
    • 쿠르드 반군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는 쿠르드 반군이 20년 넘게 저항 활동을 벌이며 이 땅을 괴롭혀 왔습니다. 이라크가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전에서 모두 패배한 후, 반군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 바그다드 중앙정부를 점점 더 약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 +0.70
      저항군 목표 : +30%
      저항도 증가 속도 : +30%
      주둔군 피해 : +20.00%
      저항도가 80%에 도달하면 쿠르드족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 파괴된 육군
      걸프전 당시 대부분의 군사 자산은 다국적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지상군은 그 이후로도 제재 때문에 신형 장비 부족과 사기 저하 및 훈련 부족에 시달리는 등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습니다.

      사단 조직력 : -10.0%
      부대 유지비 : +10%
      사단 회복률 : -10.0%
      사단 공격 : -25.0%
      사단 방어 : -5.0%
    • 파괴된 공군
      1990년대 초의 걸프전으로 지난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온 공군이 파괴되었고, 살아남은 조종사들은 하늘에서의 개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란으로 피신했습니다. 그 절망적인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우리 공군은 여전히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몇 대 남지 않은 항공기는 정비 부족으로 인해 종종 가동마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비행단 전사 경험치 손실 : +50%
      공군 임무 효율 : -30.0%
      비행단 훈련 경험치 획득 : -50%
      항공기 사고 확률 : +25.0%
      공군 본토 방위 변동치 : -50%
    • 비행 금지 구역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그 동맹들은 우리 영토 내 광범위한 지역에 설정한 비행 금지 구역을 계속 유지하여 사실상 우리 공군의 활동 범위를 바그다드 인근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부의 쿠르드 반군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군 임무 효율 : -50.0%
      적 공중 지원 : +40.00%
    • 손상된 기반시설
      걸프전 당시의 폭격으로 파괴된 기반시설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정전이 잦아졌고 장비가 정기적인 고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공권력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곽 지역에서는 약탈과 파괴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습니다.

      건설 속도 : -20.00%
      생산 효율 한도 : -25.00%
      공장 생산량 : -5.00%
      조선소 생산량 : -5.00%
    • 산유국
      이 끈적끈적한 물질은 20세기와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석유는 고무를 생산하거나, 전쟁병기와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거나, 지구를 수십 바퀴 돌 수 있는 무한한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다기능성 자원입니다.

      정치력 획득 : -5%
      석유당 연료 획득량 : +10.00%
      연료 비용 : +15
      정제소 건설 속도 : +10.00%
      연료 저장고 건설 속도 : +10.00%
      }}}

  • {{{#!folding 【국가 도입부 - "뱀의 민족"】
사담 후세인은 1979년부터 이라크의 대통령을 지냈는데, 대통령이 된 후 정부와 국가에 친군사주의 정책과 경제 개혁을 시행하는 동시에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를 시리아에 통합하려던 군 장교와 간부들을 숙청했습니다. 본래도 이슬람 세계의 확실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과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1979년 1월 7일 테헤란에서 이란 혁명이 일어났고, 후세인은 이 사건을 자신의 정부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1980년 후세인은 (나토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이란에 전쟁을 선포했고, 이 전쟁은 '카디시야'로 알려져 있으며, 8년 동안 계속되어 약 35,000명의 이라크 남성과 약 20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을 죽음으로 이끄는 등 이라크에 불행만 가져다준 이 전쟁의 최종 결과는 국제연합에 의한 휴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라크는 경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걸프전의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미국과 나토의 금수조치를 받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공장과 도시에 피해를 입히며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쿠르드족 문제는 이제는 해결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준까지 진화했습니다.

폐허가 된 경제, 준비되지 않은 군대, 작동하지 않는 공장, 나약한 정부. 이렇듯 이라크의 상황은 절망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이라크와 그 국민의 미래는 사담 후세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후세인은 위대한 이라크의 국가를 세울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꿈과 함께 사라질까요?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입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애송이....}}}
실제 역사와 동일하게 걸프전에서 패배하고 박살이 난 이라크이다. 중점을 통해 대이라크/아랍 연합 공화국을 목표 삼고 나라 상황을 수습한 후 주변을 침공한다. 모든 침공에 성공하면 목표로 한 바를 이룰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그대로 끝장난다.

2.4.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붕괴와 함께 유고슬라비아는 매우 나쁜 상황에 처했습니다. 티토 시절 쌓였던 IMF 부채 상환의 필요성과 함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를 덩샤오핑의 모델과 같이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방의 거짓된 약속, 증가하는 부채와 민족주의의 부상으로 유고슬라비아는 폭발 직전에 놓였습니다.

1991년 6월 27일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독립을 선언하면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잇따른 10일 전쟁에서 슬로베니아는 승리했습니다. 크로아티아도 1991년 10월 8일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의 전쟁은 1997년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크로아티아가 1997년 4월 10일 승리했습니다. 뒤이어 인종 청소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로 세르브인의 크로아티아 탈출이 이어졌습니다.

보스니아에서의 분쟁이 1992년 터질 뻔 했지만 국가안보총국과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의 빠른 행동으로 전쟁은 멈추었고 보스니아는 군정 아래에 놓인 채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가 제재와 보스니아에서 커져가는 분리주의로 인해 고통받으면서 이 지역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경재 위기에 처해 있으며, 총체적인 붕괴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티토 시대는, 원수가 끈질기게 추구했던 "우애와 단결"은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사회주의 정책과 세르비아에 대한 편애로 유고슬라비아(혹은 그 찌꺼기)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1941년 나치 점령하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밀로셰비치는 젊은 나이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에 가입해 그 능력으로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1987년 코소보의 민족갈등을 다루며 전국구 정계에 발을 들인 밀로셰비치는 균형과 평등을 추구하다가 코소보에서 소수집단으로 인식되던 세르브인들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의 민족갈등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1988년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미 피해는 발생한 상태였습니다.

슬로베니아가 가장 먼저 반란을 일으켰고, 크로아티아가 곧바로 뒤따랐습니다. 보스니아의 이탈은 제지됐지만, 정부는 더 이상 손실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는 무차별적인 대보스니아인 테러로 이어졌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밀로셰비치는 이제 제 복합적인 이상과 국가의 유지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그의 눈앞에서 해체돼 가니, 미래는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습니다.}}}
  • {{{#!folding 정부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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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석}}}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제한적 징병
    • 무역법 : 수출 중점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편견
    • 국가 종교 : 세속주의}}}'''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네보이샤 파브코비치 - 육군 편성 (전문가)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티토 이후

비록 티토는 더 이상 곁에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유산을 수호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력 획득 : +10%
안정도 : +5.00%
* 사기가 저하된 군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창설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군사력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웠던 그 시절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지휘부는 부패했고, 장비는 낡았으며, 대부분의 병력이 소규모 준전문부대로 축소되었습니다. 1990년대 동안 입은 장비와 병력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단 조직력 : -10.0%
전쟁 지지도 : -20.00%
사단 공격 : -20.0%
사단 방어 : -15.0%
훈련 시간 : -20.00%
*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가능한 한 빨리 경제를 고쳐내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0.0%
건설 속도 : -5.00%
기본 생산 효율 : -2.0 0%
* 깨어진 우애

우리는 나라가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입니다....||
정치력 획득 : -3%
안정도 : -10.00%
* 우리는 무엇인가?

정치가 세브르인을 우대하기 시작했고, 밀로셰비치의 민족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연방에 과거의 영광이 남아있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매주 안정도 : -1.00%
매일 공산주의 인기도 : -0.01
매일 개혁공산주의 인기도 : -0.01
매일 사회주의 인기도 : -0.01
매일 파시즘 인기도 : +0.01%
}}}

  • {{{#!folding 【국가 도입부 - "산산이 부서진 꿈"】
1941년 산산조각 나기 위하여 대전쟁 말에 태어났고, 또 한번 산산이 부서지기 위하여 1945년에 재탄생했다.

이것이 유고슬라비아의 운명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배신당하고, 잊혀지고, 버림받고, 고통 속에 죽어가야 했습니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죽음으로 그가 만들어낸 "우애와 단결"이라는 개념은 그 자신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온갖 문제들이 싹을 틔웠습니다. IMF 부채, 민족주의의 부상, 시위, 밀로셰비치의 정권 장악, 그리고, 전쟁.

1990년대 초는 유고슬라비아에겐 끔찍했던 시기였습니다. 체제가 무너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보스니아 역시 붕괴하고 있었으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의 신속한 대응이 가까스로 이를 막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서 정부가 분리주의 성향의 스릅스카 크라이나 공화국을 지원하면서 크로아티아 공화국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수년간의 교착 상태 끝에 간신히 오시예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밀로셰비치가 정치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전쟁을 핑계 삼던 억압이 대부분 사라진 후 1997년 스탐볼리치의 신좌파 아래 야권이 통합되면서 다시 한 번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밀로셰비치는 셰셸의 민족주의자들과 더 밀접해지게 됩니다. 정치권 밖에서는 코소보와 보스니아에서 여러 분리주의 조직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사회 기반시설과 정부 관료들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며 그들 민족의 공화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한 유고슬라비아는 정치체제와 국가 구조 모두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폭풍에 대처해야 합니다.
티토는 어디에 있는가?}}}

2.5. 남아프리카 공화국

콘스탄트 필윤을 필두로 한 군사정권이 이끄는 현 남아프리카에는 현재 문제가 다소 산재해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지지 세력들과 국민회의 반군으로 완전히 분열된 나라는 전국이 혼란에 빠져 있으며, 변화의 바람이 함께 불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넬슨 만델라의 체포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았을 때 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지지 세력들은 폐지를 원치 않습니다. 한편, 국민회의와 급진파 외에도 빌럼 데 클레르크가 이끄는 민주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황을 안정시키고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데 클레르크는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필윤의 지원을 기대 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온 나라가 분열된 작금의 상황에서, 모든 것은 필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지도자 : 콘스탄트 필윤 - 군사정부(우익민족주의 - 민족주의적 군사정부)

    • {{{#!folding 인물 설명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군인 통치자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콘스탄트 라우브셰르 필윤은 그들과 다릅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괴롭혀 온 오래된 분리정책의 망령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1933년 스탄더르턴 마을에서 태어난 필윤은 1951년 군인이 돼 동기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나미비아에서 반군과 앙골라군을 상대로 작전을 성공시킨 그는 이후 1977년에 육군참모총장, 1980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위군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호사다마인 법입니다.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와의 싸움은 그를 극우로 이끌었습니다.

1989년, 피터르 빌럼 보타가 사임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와 아프리카 국민회의가 협상을 시작하자, 분리정책을 지지하는 군인들은 필윤을 수장으로 하는 비밀군사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에 대비하여 공화국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1994년, 만델라가 선거에서 승리하자 이들은 행동을 지시받고 정부를 장악해 나라가 90년대 동안 이룩한 성과를 모두 파괴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앉아 있는 필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군사정권은 전세계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인식이 최악이었던 때에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끊임없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과도하게 확장된 군대는 이미 약화된 군사정권에 대한 지지를 더욱 떨구었습니다. 필윤은 집권 6년 동안 위험한 반군을 공격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상황이 조금만 달랐다면 가혹한 탄압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 {{{#!folding 정부 내각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광범위한 징병
    • 무역법 : 수출 중점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편견
    • 국가 종교 : 세속주의}}}'''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공석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아파르트헤이트

이는 남아프리카를 굳건히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작금에는 수많은 반란과 국제적 문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평화가 얼마나 오래 갈까요?||
징병 가능 인구 변동치 : -70%
안정도 : -20.00%
생산 효율 성장 : -15.00%
* 군부의 통제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의회는 군사정권에 대체돼 장군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50
소비재 공장 변동치 : 10.0%
전쟁 지지도 : +10.00%
훈련 시간 : -7.50%
진급 비용 : +25.0%
군수공장 건설 속도 : +10.00%
민간공장 건설 속도 : -10.00%
* 국민회의의 반란

하지만, 그 수단은 훨씬 더 급진적이고 위험해졌습니다. 처리해야 합니다.||
안정도 : -10.00%
저항도 증가 속도 : +10%
* 비대한 군대
매일 정치력 비용 : +0.25%
사단 조직력 : -5.0%
매주 안정도 : -0.20
전쟁 지지도 : -10.00%
사단 공격 : -5.0%
사단 방어 : -5.0%
부대 훈련, 해산 및 편제 수정 불가
}}}

  • {{{#!folding 【국가 도입부 - "검은 대륙의 한 줄기 빛"】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48년 이래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짓눌린 국가였습니다. 냉전 시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상황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경제는 침체 상태에 빠졌고 다양한 다른 부문들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에 맞선 군부 쿠데타는 그가 권력을 잡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만델라는 "반역 우려"의 명목으로 구금된 것을 군사정권이 언론에 밝혔습니다.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의 금지와 전국적으로 선포된 계엄령 때문에, 군사정권의 통치에 대항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수천명의 국민회의 시위대가 체포되거나 많은 수가 총에 맞았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한 끔찍한 분위기 때문에, 국민회의는 그들의 자유를 얻기 위해 반란군이 되어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고 군에 테러공격을 가했습니다. 군사정권이 국민회의와 지역 주민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지 않음에 따라, 커다란 내전의 긴장감이 발생했습니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 국제연합은 계속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다시금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친백인 의회 때문에 불안정해진 위기사태에 대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난했습니다. 공화국에서는 의회와 군부와 국민회의 사이의 권력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긴장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암울한 미래만이 남아프리카를 기다릴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여, 전진하라!}}}

2.6.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있어 지난 수십 년은 최고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반미제 항전에서 승리했음에도 통일과 함께 도래한 평화는 캄푸치아의 폴 포트 정권과의 전쟁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직접적인 전투는 2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베트남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며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주 잔당을 상대할 병력을 수십 년간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에 베트남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1980년대에 추진되던 산업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실패와 더불어, 중국 등 타 공산 국가들에서 일어난 개혁의 움직임은 베트남이 시장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베트남 경제에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부패가 증대되는 부작용도 가져왔습니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입지를 굳히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지만, 캄보디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긴장이 다시금 베트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 지도자 : 레카피에우 - 공산당(공산주의 - 마르크스레닌주의)
  • {{{#!folding 정부 내각
    • 쯔엉떤상 - 중앙경제위원회 주석
    • 레민흐엉 - 공안부 부장
    • 쩐득르엉 - 국가주석}}}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광범위한 징병
    • 무역법 : 제한적 수출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무관심
    • 국가 종교 : 국가 무신론}}}'''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팜반짜 -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네 기둥 - 현황 : 총비서 군림

- 총비서는 베트남 공산당의 최고 지도부 직책으로,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수장이자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의 업무를 주재합니다. 자연스레 베트남 정치체의 최고지도자이기도 합니다.

- 국가주석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원수입니다. 주석은 국회, 정부, 인민위원회, 인민법원의 활동을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제적 협약의 서명자로서 외교 부문에서 베트남을 대표합니다.

- 국회의장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회 및 국회 상임위원회의 수장입니다. 국회의장은 국회 및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 활동을 감독하며 외교 부문에서 국회를 대표할 책임이 있습니다.

- 정부수상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부수반입니다. 수상은 정부 활동을 지휘하고 국가개발정책 및 계획을 관리하며 국가의 중요한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룰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정부 활동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정치력 획득 : -5%
안정도 : +5%
* 저항의 50년
-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

1941년 베트민 창설부터 1991년 월중 분쟁 종식까지, 베트남은 마침내 평화를 찾았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변동치 : -10%
전쟁 지지도 : -15.00%
* 전투하는 결의와 승리하는 결의
- 호찌민

소국이 어떻게 저보다 훨씬 더 강한 적에게 맞설 수 있었을까요? 낙후된 군대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발전된 군대를 무찌를 수 있었을까요? 베트남 인민의 답은, 다름 아닌 강철 같은 의지와 뜨거운 애국심입니다. 그 정신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나라가 침략당할 때마다 거세게 타올라 거대하고 강력한 파도를 형성해 위험과 난관을 휩쓸고 침략자들과 반역자들을 모두 집어삼켰습니다. 각 개인과 각 민족의 애국심은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애국전통의 일부입니다. 애국심은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힘이자 원동력이 된 가장 두드러지는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전투 중 보급품 고갈 불이익 : -20.0%
항복 한계치 : +10.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 +12.0%
공격전쟁 불이익의 안정도 변동치 : +20.00%
방어전쟁 불이익의 안정도 변동치 : +20.0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저항도 목표 : +2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저항도 증가 속도 : +2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순응도 증가 속도 : -20%
* 도이머이
쇄신을 의미하는 베트남어 도이머이는 베트남에서 "사회주의 지향적 시장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1986년부터 시작된 경제 개혁을 일컫는 말입니다. 특히, 도이머이 정책은 베트남을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지향적 시장경제로 전환하고자 했던 개혁을 의미합니다.
도이머이는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개혁은 기업과 정부기관 간 경제 활동 조정을 위해 시장 원리의 역할을 확대하고, 소규모 기업의 사적 소유와 국영 및 비국영기업을 위한 증권거래소 설립을 허용했습니다.
건설 속도 : +10.00%
생산 효율 한도 : +5.00%
공장 생산량 : +5.00%
조선소 생산량 : +5.00%
이념 변화 방어 : -10,0%
* 만연한 부패
- 호찌민

"도이머이" 정책은 경제 부흥과 함께 개인주의의 부상을 가져왔습니다. 경제 개혁 이후 부패는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해 민생과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군 고문 비용 : +10000%
해군 고문 비용 : +10000%
정치력 획득 : -12%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0.0%
안정도 : -15%
건설 속도 : -5%
생산 효율 한도 : -8.00%
생산 효율 성장 : -10.00%
연구 속도 : -10.0%
이념 변화 방어 : -5.0%
육군 고문 비용 : +10000%
정치고문 비용 : +10000%
* 1980년대의 실패
통일 직후, 베트남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급속 산업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 모형을 경직되게 채택하고, 과학 및 기술적 전문성이 부족했으며, 국가는 전쟁의 여파로 막대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산업화는 무질서하게 실행돼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가 중공업을 우선하고 경공업 발전을 소홀히 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농업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소련으로부터 쌀을 수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985년의 화폐개혁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켜 무려 393%의 인플레이션율을 초래했습니다. 다양한 노력과 조치에도 불구, 1980년대의 실책이 자아낸 여파는 경제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0.0%
안정도 : -5.00%
주 최대 공장 : -65%
건설 속도 : -10.00%
}}}

  • {{{#!folding 【국가 도입부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베트남은 인류의 요람으로 여겨지는 지역으로, 벼의 논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농업 중심지 중 하나이며 석기 및 야금 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초,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프랑스는 선교사와 무역을 통해 점차 베트남을 잠식했습니다. 베트남은 그들 역사상 처음으로 서구 산업 국가의 침략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베트남 지식인들은 국가를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립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많은 개혁 계획이 제안되었지만 응우옌 왕조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그 후 낙후하고 정체된 베트남은 1858년부터 1945년까지 거의 100년 동안 반봉건적인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930년 2월 3일 베트남 공산당의 창당은 베트남 역사 속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1945년 8월, 호찌민이 이끄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베트남인들은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신생 베트남은 민족해방과 통일을 위해 30년에 걸친 또 다른 투쟁을 펼쳐야만 했습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의 승리와 제네바 협정은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저항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일시적으로 분리되었고, 예정대로라면 2년 후 총선거를 통해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이었습니다. 친불정권에 이에 남베트남을 통치하던 사이공 친미 정권은 통일을 막으려 했지만 평화와 민족통일 운동을 제압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1964년 12월 20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창설되었습니다.

195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은 민족해방과 통일을 위해 궐기해야 했습니다.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베트남에 군사원조와 50만 명 이상의 군인을 파견하고 1964년부터 북베트남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호찌민 국가주석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베트남은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희생을 치러야 했고, 1973년 마침내 베트남의 평화 회복과 미군 철수를 위한 파리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1975년 봄, 애국심으로 무장한 군대가 사이공 정권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여 남베트남을 해방하고 통일을 이루면서 전쟁은 종식되었습니다. 이후 통일 베트남은 평화와 통일, 국가 건설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1976년 4월 25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공화국 만세!}}}

2.7. 연합왕국

장장 18년에 이르는 보수당 집권기는 영국을 그 뿌리부터 뒤바꿨습니다. 예산 삭감부터 군사개입까지, 한때 강대한 식민제국을 이루었던 이 섬나라는 오늘날 과팽창의 후과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은데, 북아일랜드에서의 갈등은 끝이 났음에도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사이에 위치한 깊은 골은 여전하며, 아일랜드 공화국군과 공화국군 임시파에 의한 폭탄 테러와 암살 또한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합왕국 내 다른 지역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스코틀랜드는 분리독립을 만지작거리며 더 많은 인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현 수상, 앤서니 블레어 경은 경제, 교육,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으며, 1970년대 이후 볼 수 없었던 호황을 이끌었습니다. 노동당을 완전히 혁신한 블레어는 진정한 사회민주주의가 브리튼 제도를 번영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 중입니다. 다만 내각 문제에 있어 서민원 내 야권 세력, 특히 다수당 탈환을 노리며 거세게 반발하는 보수당 주도의 야권연합의 도전 직면해 있습니다.

상황은 예측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허나 90년 전 영국인들이 참호 속에서 노래했듯, "티퍼레리까지는 길이 멉니다."
  • 지도자 : 토니 블레어 - 노동당(사회민주주의 - 신노동당)

    • {{{#!folding 인물 설명
1900년, 영국의 노동조합원과 지식인이 모여 노동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노동자와의 연대와 영국에 사회주의 도입이었습니다. 94년 후, 앤서니 찰스 린턴 블레어 경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당을 혁신했습니다. 노동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었습니다. 보수당이 온건반동주의를 고수하는 동안, 노동당은 급진주의, 중도주의, 평화주의, 핵무장주의, 친유럽주의, 유럽회의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어는 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유권자들과 공통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목표임을 이해했고, 그래서 당의 이념을 노골적인 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바꾸었습니다. "더 안전한 거리"와 "더 나은 의료"와 같은 단순한 표어는 대처와 메이저의 예산 삭감에서 회복 중이던 대중을 설득하여 1997년에 붉은 당에 투표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노동당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막대한 의석수는 노동당이 원하는 거의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블레어는 애버딘에서 도버까지 제 이름이 칭송받는 것에 미소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물결이 계속될까요?}}}
  • {{{#!folding 정부 내각
    • 고든 브라운 - 재무경 , 신노동당
    • 잭 스트로 - 내무상 , 신노동당
    • 존 프레스콧 - 부총리 , 구노동당}}}
  • '''{{{#!folding 정부 정책
    • 징병법 : 모병자 한정
    • 무역법 : 수출 중점
    • 경제법 : 민간경제
    • 소수자법 : 대소수자 관점 - 무관심
    • 국가 종교 : 개신교}}}'''
  • {{{#!folding 군사 참모
    • 육군참모총장 : 공석
    • 해군참모총장 : 공석
    • 공군참모총정 : 공석
    • 최고사령부
      • 공석
      • 공석
      • 공석}}}
  • {{{#!folding국민정신
    • 유럽연합

인류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대륙. 수천 번의 전쟁이 인, 수많은 조약과 휴전이 찢겨나간, 뒤 세대를 위해 수억이 죽어간, 피비린내 나는 결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수단의 활용하고, 역사 그 자체보다도 거대한 동맹의 형성하고, 광신적인 독재자들의 자아를 키우기 위해, 대륙을 다시 그려낼 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왕좌 하나와 그것을 상징하는 왕관 하나를 두고 수십 년간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특정 인물이나 종교의 총애를 받기 위해, 또는 그들에 대항하는 방벽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로 넘쳐 나는 대륙. 유럽은 말 그대로 지옥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에 걸친 갈등, 분쟁, 파괴를 겪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지나보낸 유럽은 비로소 수천 년 만에 처음 우애와 단결의 힘을 깨닫고 무의미한 이상에 재정을 낭비하는 것보다 협력을 통한 실익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통합된 유럽이라는 이상은 유럽연합으로 실현됐습니다. 유럽연합은 대륙을 위한 독특한 형태의 연합과 연방이 결합된 유별난(sui generis) 체제로 발전돼 온, 유럽 대부분을 하나로 묶는 초국가적 경제공동체입니다.

또한 가장 많은 유럽 본토 국가들이 가입을 희망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많은 동구권 국가들이 옛 소련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합을 지향하고 있으며, 체코와 같이 이미 가입한 국가도 있는 반면, 여러 이유로 저항하는 국가들도 존재합니다. 연합의 최종 목표는 유럽의 완전한 연방화와 통일이니, 그 뜻은 피로 물든 철의 장막을 완전히 매장하는 데에 있습니다.

다만, 유럽연합 또한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른바 양속 유럽 구상과 유럽회의주의, 점점 벌어지는 핵심 6개국과 부수 7개국 및 신입 회원국들 사이의 격차, 내부 긴장의 고조 등의 여러 과제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연합은 시행착오의 시기를 지나, 어떤 종류든지 결국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05
소비재 공장 변동치 : 1.5%
안정도 : +5.00%
무역 거래 의견 변동치 : +25.00%
기반시설 건설 속도 : +5.00%
* 영연방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옛 식민지들로 구성된 국제기구입니다. 문화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회원국 간 단합 및 협력의 촉진을 목표로 합니다.
정치력 획득 : -3%
안정도 : +3.00%
관계 개선 : +5.00%
연구 속도 : +1.00%
철도 건설 속도 : +3.00%
* 성 금요일 협정
1999년 12월 발효된 성 금요일 협정은 수 십년을 이어져 온 영국과 아일랜드의 분쟁을 해결하고 분쟁 동안 자주 발생했던 폭력 사태를 대부분 종식시킨 협정입니다. 이 협정은 아일랜드에서 여러 차례의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됐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02
안정도 : +10.00%
* 북해 석유

연합왕국과 노르웨이 왕국은 수십 년 동안 이 풍부한 자원을 공유해 왔으며, 북해의 불안정한 기상조건으로 위험성과 비용이 높음에도 석유 보유량 측면에서 최소한의 자립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 -0.20%
석유 : +12
* 비무장화
바르샤바 조약이 붕괴되자, 서유럽에서는 비무장화가 인기를 얻었고, 막대한 군비가 점차 민간에 집중되면서 그 추세는 점차 확산됐습니다. 냉전 시절의 광적이었던 군비 경쟁을 되풀이하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곰이 제 굴에서 나와야만 대중에게 재무장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원 속도 : -30.00%
징병 가능 인구 : -1.20%
소비재 공장 변동치 : 35.0%
안정도 : +10.00%
전쟁 지지도 : +10.00%
연구 속도 : +5.00%
공장 생산량 : -10.00%
훈련 시간 : +75.00%
징병법 비용 : +10000%
경제법 비용 : +10000%
군수공장 건설 속도 : -20.00%
민간공장 건설 속도 : +10.00%
* 특별한 관계
연합왕국과 미합중국의 관계는 준수합니다.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는 영국과 미국, 또는 양국 정치 지도층 간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문화적, 경제적, 법률적, 환경적, 종교적, 군사적, 역사적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양국 정부는 각기 다른 많은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무역 및 상업, 군사계획, 군사작전 수행, 핵병기 기술, 정보 공유 등에 있어 영국과 미국의 협력 수준은 주요 세계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표현돼왔습니다.||
정치력 획득 : +5%
건설 속도 : +5.00%
생산 효율 성장 : +5.00%
공장 생산량 : +5.00%
* 미합중국/유럽연합 갈등
연합왕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불편합니다.
서류상으로 유럽 전체, 특히 유럽연합은 미국의 확고한 동맹으로, 경제 발전과 대전체주의 투쟁에 있어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1997년 프랑스 제6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는 사실이었습니다. 샤를 드골의 아들 필리프 드골이 집권한 프랑스는 자주적 유럽연합을 강력히 지지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약화시켰는데, 놀랍게도 이 기조는 유럽 국가 대부분의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유럽 관계상에 긴장을 초래했고, 영국을 아주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했습니다.

우리는 유럽연합과 오랜 동맹 미합중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림길에 위에 서 있습니다. 모든 외교적 결정을 어느 한쪽을 너무 소원하게 만들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게 내려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때가 올 것입니다.||
정치력 획득 : +5%
건설 속도 : +5.00%
생산 효율 성장 : +5.00%
공장 생산량 : +5.00%
}}}

  • {{{#!folding 【국가 도입부 - "브리타니아는 파도를 지배한다!"】
"영국은 분리돼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강합니다. 진정한 영국다움은 변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가치에 있습니다. 헌법을 바꾸고 유럽과 협력하는 것은 영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는 영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입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국은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많은 개혁을 수행한 블레어 총리는 앞으로 더 많은 개혁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경제는 수십억 파운드씩 빠르게 성장 중이고, 실업률은 서서히 낮아지고 있으며, 블레어는 세액공제부터 대유럽 관계 강화, 영국판 뉴딜에 이르는 새로운 경제 개혁으로 경제 상승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이전 보수당 정권이 초래한 피해를 복구할 준비를 하는 등,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은 마침내 식민지 시대의 경험적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북아일랜드의 치안병력을 괴롭히고 공공장소와 관공서를 공격하고 있어 사망자가 나날이 늘어가는 등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민은 오래도록 이어진 이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중앙정부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현 총리가 2001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영국은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태양은 절대 지지 않는다!}}}

3. 세력

4. 정치

5. 이념

6. 슈퍼 이벤트

7. 여담


[본게임] 본 게임인 Hearts of Iron IV의 플랫폼/ESD/심의 등급이다.[본게임] [본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