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0 23:43:33

민주당(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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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b133e> 양대 정당 ■ 공화당 ,(집권여당),
■ 민주당
제3당 ■ 자유당, ■ 녹색당
군소 정당 ■ 개혁당, ■ 금주당, ■ 노동가족당, ■ 사회당, ■ 사회주의해방당, ■ 미국 연대당, ■ 전진당, ■ 정의당, ■ 생일이당, ■ 미국 해방당, ■ 헌법당, ■ 미국 공산당
정치 단체 ■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과거의
정당
■ 연방당, ■ 민주공화당, ■ 국민공화당, ■ 휘그당, ■ 반메이슨당, ■ 미국당, ■ 무효당, ■ 자유토지당, ■ 미국 사회당, ■ 국민민주당, ■ 진보당(12년), ■ 진보당(24년), ■ 진보당(48년), ■ 주권민주당
과거의 계파 ■ 급진파 공화당, ■ 민주당 주전파, ■ 버번 민주당, 비타협파, ■ 록펠러 공화당, ■ 뉴딜연합, 보수연합
( 중앙 정당 · 지역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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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tic Party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4c9,#00a6ef> 한국어 명칭 민주당
창당일 1828년 1월 8일 ([age(1828-01-08)]주년)[1]
전신 민주공화당
중앙당사
미국 워싱턴 D.C.
사우스 캐피털 스트리트
이념 현재:
현대자유주의[2]
내부 계파:[3]
과거:
전국위원장 켄 마틴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 5선 (106~119대)
하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 6선 (113~119대)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 / 5선 (105~119대)
하원 원내총무 캐서린 클라크 / 6선 (113~119대)
연방 상원의원
47석[12] / 100석 (47.0%)
연방 하원의원
215석 / 435석 (49.4%)
주지사
23석 / 50석 (46.0%)
주 상원의원
839석 / 1,973석 (42.5%)
주 하원의원
2,403석 / 5,413석 (44.4%)
당색
파란색 (#0044c9)
남색 (#004378)
[13]
하늘색 (#00a6ef)
[14]
국제 조직


역사적:
민주주의자 동맹[15]
청년 조직 청년 미국 민주당 (YDA)[16]
대학생 미국 민주당 (CDA)[17]
고등학생 미국 민주당 (HSDA)[18]
해외 조직 해외 민주당 (DA)[19]
여성 조직 전국 여성 민주 연맹 (NFDW)[20]
LGBT 조직 스톤월 민주당 (Stonewall Democrats)
당원 수 48,517,845명 (2021년 기준)
상징 파일:민주당(미국) 엠블럼.svg
당나귀
당가 Fanfare for the Common Man[21]
Happy Days Are Here Again[22]
Don't Stop[23][24]
공식 사이트 파일:민주당(미국) 로고.svg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external/3.bp.blogspot.com/democratic-party.png
왼쪽부터 빌 클린턴(4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버락 오바마(44대), 존 F. 케네디(35대), 앤드루 잭슨(7대)
파일:external/joedonatelli.com/presidents-playing-cards.jpg
파일:external/llwproductions.files.wordpress.com/painting-of-nine-democratic-presidents-by-andy-thomas.jpg
△ 포켓볼을 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그린 삽화[25]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린든 B. 존슨(36대), 버락 오바마(44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해리 S. 트루먼(33대), 빌 클린턴(42대), 지미 카터(39대), 우드로 윌슨(28대), 존 F. 케네디(35대), 앤드루 잭슨(7대)[26]
파일:andy-thomas-the-democratic-club-new-limited-edition-26.jpg
△ 맥주를 마시는 역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그린 삽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해리 S. 트루먼(33대), 앤드루 잭슨(7대), 제임스 K. 포크(11대), 린든 B. 존슨(36대), 지미 카터(39대), 제임스 뷰캐넌(15대), 버락 오바마(44대), 마틴 밴 뷰런(8대), 존 F. 케네디(35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22, 24대), 우드로 윌슨(28대), 빌 클린턴(42대)[27]

1. 개요2. 상징
2.1. 당나귀2.2. 당색2.3. 당가
3. 성향4. 지지층
4.1. 종합4.2. 지역4.3. 인종4.4. 성별
4.4.1. 성소수자
4.5. 종교4.6. 직업4.7. 산업4.8. 학력
5. 외교6. 역사
6.1. 19세기
6.1.1. 민주당의 탄생부터 남북전쟁 이전까지6.1.2. 남북전쟁과 암흑기, 부활6.1.3. 윌리엄 J. 브라이언과 당의 진보화 조짐
6.2. 20세기6.3. 21세기
7. 지도부8. 역대 선거 결과
8.1. 대통령 선거
9. 출신 정치인
9.1. 대통령9.2. 부통령9.3. 상원의원9.4. 기타
10. 여담11. 대중매체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

1. 개요

공화당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정당. 현재 미국의 제1야당이다.

현재 미국에서 공화당과 함께 사실상의 양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1828년 미국 제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의 지지자들이 민주공화당에서 탈당한 후 창당하였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정당 중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오래된 정당이며[28] 2020년대 기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정당이다.[29] 즉 거의 200년에 근접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여러 이념을 포괄하지만[30] 대체로 20세기 이후 현대 들어선 소위 리버럴 계통의 중도좌파 세력이 주류로 큰 정부, 복지 확대, 소수자 권리 보호, 정치적 올바름 등을 주장하고 있다.

2. 상징

2.1. 당나귀

일반적으로 민주당을 당나귀로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 이는 언론에서 민주당과 앤드루 잭슨을 당나귀에 빗대어(Jackass) 비판하면서 처음 사용되었으나 민주당이 '당나귀는 근면하고 강직한 동물'이라고 역으로 받아치며 1828년 대선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870년대 만화가 토머스 내스트가 민주당을 상징하는 동물로 당나귀를 사용하면서 현재 민주당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2. 당색

민주당의 당색은 파란색이며, 고정된 당색은 없지만 웹사이트에서는
짙은 파란색 (#0044c9)
을 사용하고 하부 조직들도 일반적으로 파란색 계통의 색을 사용한다. 물론 각 지역당은 물론 중앙당에서도 고정된 색을 쓰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하늘색, 남색 등 다양한 계통의 파란 색깔이 사용되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당이 우세한 주를 블루 스테이트로 부르곤 한다.

민주당의 당색이 파란색이 된 것은 오랜 일이 아니다. 컬러 TV가 사용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정당은 당나귀와 코끼리를 양당을 구분짓는 심볼로 사용했을 뿐, 당색은 빨간색과 파란색 모두 사용하였다. 1970년대 처음으로 컬러 TV가 도입되자, CBS는 민주당의 맥거번 후보를 빨강으로, 공화당의 닉슨 후보를 파랑으로 처음 표시했다. 이후 거의 모든 TV 방송국은 민주당을 빨간색으로, 공화당을 파란색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영국이 전통적으로 좌파 노동당이 빨간색을, 우파 보수당이 파란색을 당색으로 사용한 것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부터 몇몇 방송국이 공화당의 레이건(Reagan) 후보의 이름에 맞추어 빨간색(Red)을 공화당을 표시하는 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민주당을 빨간색으로, 공화당을 파란색으로 표현하는 방송국이 많았다.

현재와 같은 당색이 정착된 것은 2000년 대선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많은 언론들은 부시 후보를 빨강으로, 고어 후보를 파랑으로 표시했다. 그런데 2000년 대선이 워낙 접전이었던지라 한달이나 개표가 지속되었고, 방송국은 계속 고어와 부시 양 후보의 각 주별 우세를 표시하는 지도를 방송에 내보내면서 사람의 뇌리에 공화당=빨강, 민주당=파랑을 각인시켰다. 또 이때부터 블루 스테이트, 레드 스테이트라는 이름도 정착되기 시작했다.참고 자료(한글 자막 없음)

2.3. 당가


민주당의 공식적인 당가는 지정되어있지 않으나, 관례적으로 당가로 쓰이는 노래가 몇곡 있다. 1932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로고송이었던 Happy Days Are Here Again은 민주당에서 가장 폭 넓게 쓰이는 곡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민주당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고의 대통령 중 하나이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캠페인 역시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후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래로 정착된 것이다.


최근에는 앨범 Rumours에 수록된 플리트우드 맥의 히트곡 Don't Stop 역시 당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이 노래는 1992년 빌 클린턴의 로고송이었는데, 1992년 대선은 1968년 대선 이후 지속된 민주당의 암흑기를 종료하는 선거였고, 빌 클린턴 자체도 오늘날 민주당원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노래의 내용도 매우 낙천적이라 선거 분위기와 딱 맞았기에 2000년대 이후로도 계속 당가처럼 사용되었다.


연주곡으로는 Fanfare for the Common Man[31]이 DNC 주제곡으로 자주 사용된다.

3. 성향

민주당 당헌

21세기 기준 복지정책 확대, 소수자 인권보호 등을 추구하는 사회자유주의 진보 정당으로 평가된다.[32]

현재 미국 정치 구도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상대 비교해 볼 경우 공화당은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좀 더 개방적인 진보, 사회자유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실 공화당 급진파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33] 민주당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브라이언 당수 시절 인민당과도 연합하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이래로 서서히 진보적인 정책들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1930년대 FDR대 들어서 소위 뉴딜연합이 형성되고 트루먼 시대를 거쳐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당시 케네디, 존슨 정부가 적극 지지하면서 본격적인 성향 체인지가 이뤄진다. 그리고 이때 민주당내 보수파인 딕시크랫은 공화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아직도 민주당에 남아있는 세력이 일부는 있으며[34][35], 이 세력은 흔히 재정보수주의를 지지하는 청견연합(Blue Dog Coalition)이라고 일컫는다.[36]

미국의 경우 정치성향을 자유주의자(liberal)/보수주의자(conservative)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이나 유럽 기준으로 당의 정체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민주당이 유럽이나 남미 기준으로는 다소 보수적인거 아니냐는 평가도 일부에선 하는데, 유럽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애초에 진보/보수라는 건 각각의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분화될 수 있는 문제라 미국 상황을 고려해보면 미국 기준 진보 정당이라는 명칭이 설득력을 갖는다. 20세기 후반에는 다소 보수화된 측면도 있었지만 미국은 양당제 국가이기 때문에[37][38] 민주당은 여러 정치세력을 포함한 거대 정당이고, 따라서 같은 '진보'라도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경제 정책의 경우 유럽 좌파들보다는 보수적인 자유주의적 경제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공화당의 감세에 반대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식의 경제적 자유주의나 작은 정부에도 크게 호응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꽤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독일의 경우 2017년에야 동성결혼이 제도화되었지만[39] 미국은 그보다 2년 빠른 2015년에 민주당 정권 하에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이 제도화되었다.[40] 미국이 주(state)의 주권을 매우 중시하는 나라인 점까지 감안하면 민주당이 보수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낙태에 있어서는 유럽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12주에서 14주 제한이 일반적인 유럽에 비해[41] 민주당이 집권 중인 주들은 제한이 아예 없거나 24주 수준으로 이미 굉장히 느슨함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모자라다고 지지층의 상당수가 전면 철폐를 원한다. 이민 이슈에 대해서도 유럽의 진보정당들은 이민에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민주당은 친이민 일변도 노선을 지향할 정도. 즉 미국 민주당은 소수자 친화적이며 리버럴한 중도좌파 정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2010년대 후반 들어 버니 샌더스 돌풍 등으로 인해 경제관마저 꽤나 좌경화한 걸 보면 유럽의 중도로 분류되는 리버럴들과 미국의 리버럴들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2010년대 기준 안보 분야에 있어서는 공화당 못지 않은 강경 분위기로 가는 듯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는데, 인권 침해 논란이 인 NDAA의 경우 상원에서 93명의 지지를 받아 통과되기도 했고,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에서 프리즘 작전을 옹호하고 되레 내부 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내분 양상을 보였다. 2014년 민주당 출신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무인 정찰기를 이용한 테러용의자 폭격에 열성을 보였는데, 혐의만으로 살상을 하는 것은 미국의 법체계와 상반되는 것이며 민간인에 대한 오폭도 잦은 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지지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했다.

3.1.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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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존슨
카멀라 해리스
팀 월즈
에이미 클로버샤
그레천 휘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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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빈 뉴섬
존 오소프
존 페터먼
조시 샤피로
앤디 배쉬어
메리 펠톨라
팀 라이언
애비게일 스팬버거
조시 스타인
의회진보 코커스 의회 자유사상 코커스 신민주연합
블루칼라 코커스 노동 코커스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 코커스 청견연합
사회보장 확충 코커스
S 별개의 사회주의 계파로 분류하기도 함.
미국 정당별 계파 (민주당 ·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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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지층

4.1. 종합

빌 클린턴 이후 민주당의 국제여론 및 미국 주류 언론 + 여론주도층에서의 입지 강화에 힘입어 단순 지지율과 인구수 측면에서는 공화당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특히 2000년대 넘어가며 여성과 흑인, 노동조합, 노동자, 저소득층, 무주택자[42], 성소수자 등의 확고한 지지계층을 더욱 강고하게 다져나가면서 고소득층, 복음주의 기독교인, 경제적 우파, 전원 주민들을 타겟으로 삼았던 공화당에 비해 일단 대선 득표율에 있어 다소 유리함을 깔고 시작한다.

따라서 공화당은 이러한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욕을 먹더라도 자신들이 차지한 주 차원에선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흑인과 저소득층들의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투표법들을 잇달아 제정하고 있고,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지지자가 많음에도 적극 투표층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결과적으로 공화당과 업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인지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 때마다 투표 열기를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선거 때마다 SNS를 통해 투표 독려 메세지를 내놓는 것도 실제 투표 자체의 의의 때문에 하는 것도 있지만,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2000년,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에 정권을 내줬지만 이때조차 득표수는 공화당 후보보다 더 많이 얻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앨 고어가 대결했을 때 앨 고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졌지만 전국 득표는 53만여표를 더 얻었고,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힐러리가 대결했을 때도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전국득표는 300만여표 가까이를 더 얻었다.[43] 그러나 이 추세는 2024년 대선에서 해리스가 트럼프에게 과반 득표를 허용한 채 패배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미국 자체가 대선에서 이기면 다음 총선에선 패하는 등 균형 감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꽤 많아 선거판 자체가 확실한 우위까진 아니다.

또 민주당 지지가 주로 인구가 많고 도시화된 주들에 몰려있다 보니 각 주별로 2명씩 배분되는 상원의원, 상원의원 수만큼 보정이 주어지는 대통령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전국 지지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경우가 나타나게 된다.

현대 민주당의 이념적 모습이나 지지층은 기본적으로는 20세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쯤부터 시작된 거라고 보면 된다.[44] 상당수 우호주들과 사회계층이 이때 확정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때 기존 공화당 텃밭이던 북부로 진출한 후 20세기 중후반 들어선 공화당의 남부 전략으로 남(동)부 텃밭을 내주고 20세기 후반부턴 지금의 북동서부 해안가 대도시vs중남부 교외, 소도시 지역이라는 구도가 완성된다.[45] 19세기랑 비교하면 텃밭 주들이 거의 뒤바뀐 셈이다.

4.2. 지역

파일:PP_2024.4.9_partisan-coalitions_7-01.png
민주당은 인종적 다양성이 많은 대도시에서 전체적으로 고르게 강세를 가지고 있다. 반면 교외 지역은 전체적으로 공화당이 강세이지만 이 역시 주에 따라서 성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고로 민주당은 대체로 대도시의 인구 비중이 높은 주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 뉴욕(뉴욕),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일리노이(시카고)와 뉴잉글랜드 지방 등이 대표적이다.[46]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뉴욕과 그 주변 주들, 미국 중부 일부 주들(대표적으로 일리노이, 미네소타)과 서부의 태평양 연안주(오리건캘리포니아, 하와이, 워싱턴 등), 그리고 뉴멕시코콜로라도 등이 주요 지지주이다. 수도인 워싱턴 D.C.와 그 인근에 위치한 메릴랜드, 델라웨어 역시 민주당의 확고한 텃밭이다. 반면 앨라배마 등 남부 주들은 한때 민주당 텃밭이었으나, 상기했듯 민주당의 성향이 진보 성향으로 바뀌고 동시에 공화당 측도 성향 변화와 함께 1960년대 이후 소위 '남부 전략'이라 하여 남부 주에서 정치적 입지를 크게 강화하는데 성공하면서, 현재 남부 주들은 공화당 우세 지역이 되어있다. 다만 2010년대에는 미국의 남부주, 선 벨트라 불리는 곳의 표심도 변화를 보이기도 했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조지아, 애리조나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경합주 더 나아가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변화할 조짐이 보이는 케이스가 나오기도 했었다. 다만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조지아와 애리조나를 다시 공화당에게 내어주었으며, 특히 애리조나의 경우 남부국경에서의 불법이민마약 유입 급증으로 바이든 정권의 이민정책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해지면서 러스트 벨트 주들보다도 더 큰 공화당으로의 스윙이 나타났다. #

위에 나열한 주들을 보면 알겠지만 민주당 지지지역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공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진 주들이다. 공화당 지지가 높은 남부나 다른 중서부 주들에서도 도시는 어김없이 민주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기존에 민주당을 지지해주던 러스트 벨트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해져 민주당 지지 주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Swing) 주로(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또는 스윙 주에서 공화당 지지 주로(오하이오, 아이오와) 변화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제조업과 화석연료 산업 중심으로 돌아가던 러스트 벨트 경제의 쇠퇴가 민주당의 자유 무역친환경 어젠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규모 공업단지에 의존하는 지역경제의 악화에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과 제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성향을 공략한 덕분이다.

플로리다의 경우 쿠바계에 더해 강경보수 성향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라계 히스패닉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스윙 주에서 공화당 지지 주로 이동하였다. 또한 텍사스의 경우, 역으로 이렇게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텍사스가 공화당 텃밭에서 스윙 스테이트로 변하는 걸 오히려 막아준다는 분석이 있다. 2018년 중간선거의 텍사스 연방 상원의원 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텍사스 토박이의 경우 투표가 51% 대 48%로 민주당의 베토 오로크가 근소하게 앞섰지만, 텍사스로 새로 이사온 사람들에선 공화당 후보가 57% 대 42%로 크게 앞섰다.# 함께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공화당의 그레그 애벗이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텍사스 토박이들에겐 13%p 격차로 앞섰지만, 텍사스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25%p 격차를 내 더 크게 우세했다.# 이에 대해서는 텍사스로 이사오는 사람들 자체가 원래 캘리포니아같은 민주당 우세 주에서 살다가 해당 주들의 세금 문제 등 주 정부 정책과 운영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텍사스로 오는 사람들이 상당한만큼 오히려 공화당 성향이 강할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또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 소속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에 대한 높은 지지와, 남부국경에서의 불법이민마약 유입 급증으로 생겨난 바이든 정권의 이민정책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인해 러스트 벨트 주들보다도 더 큰 공화당으로의 스윙이 나타났다. #

4.3. 인종

민주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인종집단은 흑인으로, 이들은 미국 유권자의 13%를 차지하며,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대해 무려 90%내외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서부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도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많이 지지하는 편이다.[47] 백인의 경우 공화당에게 현저하게 밀리는 편으로, 2004 대선 때에는 케리(민주당) 41% vs 부시(공화당) 58%, 2008 대선 때에는 오바마(민주당) 43% vs 매케인(공화당) 55%, 그리고 2012 대선 때에는 오바마(민주당) 39% vs 롬니(공화당) 59%라는 결과가 나왔다.[48]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백인에서 지지세를 조금 높이고, 소수인종에서는 득표율이 조금 낮아졌다. 그러나 소수인종이고 백인이고 투표율이 대거 높아졌기 때문에 직전 대선과 비교해 공화당과의 표 격차는 벌여졌다. 히스패닉 지지율의 경우, 70% 정도였던 2016년 대선에 비해 5%p 하락했다. 이처럼 히스패닉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계파가 201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세를 키우면서 권위주의 좌파 정권들에 탄압당했던 쿠바베네수엘라 출신의 히스패닉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49] 이 때문에 2020년 대선때는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보다 더 크게 이기기도 하였다. 또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히스패닉 사이에서 46%까지 상승하며, 민주당의 카말라 해리스가 51%로 하락한 것과 비교했을 때 민주당이 우세했던 이전과 달리 양당간의 경합 양상이 나타났다. #

4.4. 성별

2012~2020년 3번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대략 남녀 간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5~6%p 차이 정도로 여성 지지자에게서 더 표를 많이 받기도 했다.

4.4.1. 성소수자

196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성소수자 해방 운동이 아예 전국적으로 요동을 치는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아서,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고무된 사회 각지에 숨어 있었던 성소수자들이 더 커밍아웃하고, 또 이 세력에 가담하며 눈덩이처럼 몸이 커졌을 때 이들을 사로잡은 게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들로 이루어진 표밭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손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 종교계가 성소수자들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고집했기 때문. 물론 성소수자와 민주당 사이 관계가 처음부터 착착 맞아떨어진 건 아니고, 하비 밀크와 같은 민주당 소속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이후의 민주당 역시 성소수자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했는데, 2015년 대법원의 동성결혼 제도화 판결 역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을 제외하면 민주당쪽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이를 대거 찬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시민단체와 민주당이 지역 단위서부터 꾸준히 쌓아 올라간 결과물이 빛을 발한 것이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성소수자들의 민주당 지지세가 이전보다도 강해져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에게 무려 86%의 득표율을 몰아주었다. 이는 최근 30년의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성소수자에서 기록한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 ##

4.5. 종교

상기된 성소수자 문제 등이 엮여 몰몬교근본주의, 복음주의 개신교의 경우 거의 2대8로 공화당 지지세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성공회, 루터교회메인라인 개신교를 놓고 보자면 4대6으로 공화당이 우세하지만 격차가 줄어든다. # 단, 메인라인이라는 이름과 달리 신자 수는 복음주의 계열이 메인라인보다 훨씬 많다. 또 성공회의 경우,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성공회가 진보 성향의 교파라고 인식되지만, 이는 대한성공회의 신학적 특성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이와 달리 영미권 국가들에서의 성공회는 보수를 지지하는 경향이 크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조금 더 높은데, 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떠받들어온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란드계들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둘 뿐인 가톨릭 신자 대통령(존 F. 케네디, 조 바이든)이 모두 민주당 출신이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상원 내 가톨릭 신자인 의원들 사이에서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의 수가 더 많다.

유대교는 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인데,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조사 결과 유대계 유권자들은 66% 대 32%로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대인들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19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압도적이다. 공화당이 후보가 1위를 차지한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와 미국 사회당 후보를 합치면 범좌파가 57%로 넉넉하게 앞섰다. #

비종교인, 무신론자들의 지지율도 높은 편이며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로 대 웨이드를 뒤집은 것으로 인해 임신중절 문제가 부각되어 젊은 비종교인들을 민주당 지지로 끌어들였다. 2022년 중간선거 시점에서 비종교인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72%, 특히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는 87%에 달하여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의 공화당 지지율에 필적할 정도로 높았다. # 최초의 공개적 무신론자 국회의원인 피트 스타크 하원의원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

사회보수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편인 무슬림들은 한때 공화당 지지층이었지만, 2000년대 9.11 테러 이후 증가한 무슬림 상대 증오 범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삽질 덕에 민주당 지지층으로 돌아섰다. 최초 무슬림 하원의원은 키스 앨리슨으로, 2007년에서 2019년까지 재임했고,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첫 여성 무슬림 하원 의원인 라시다 탈리브일한 오마르가 입성했다. 2014년 조사 결과, 무슬림들의 62%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미국 내 메이저 종교는 가톨릭이며, 이 외의 유대교를 비롯한 이슬람, 불교, 힌두교, 정교회 등 미국 내 소수종교들이 민주당의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의 공통점을 따져보면 이민자들이 많이 믿는다는 특징이 있다.

4.6. 직업

미국의 연방선거위원회에서는 각 직업군별 공화당과 민주당의 선거 캠페인에 대한 후원금 지원 내역을 데이터화했는데,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각종 직업들의 공화당 대 민주당 지지율이 집계된 바 있다. #

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대표적인 강세 직업군으로는 노동자들이 꼽힌다. 특히 공장 노동자들은 과거부터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광부, 항만 노동자, 우체국 노동자, 급식 노동자, 잡역부, 캐셔, 간병인 모두 민주당 지지세가 월등하다.

이러한 양상과 매우 유사한 맥락에서,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원들 또한 59% 대 39%로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이다. # 그 외에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직업들로는 미용사, 베이비시터, 사회복지사, 소방관이 있다. 간호사, 교사, 예술가들 또한 민주당의 지지가 우세하다.

요식업 종사자들의 경우, 레스토랑 사장이나 매니저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바텐더, 바리스타, 웨이터, 웨이트리스, 요리사, 제빵사들은 모두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호텔리어 역시 매니저 급 이하면 민주당 지지가 강하다.

종교인들의 경우도 선교사가톨릭 신부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목사[50], 정교회 신부, 주교, 랍비들은 모두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의 경우 미국에서는 민주당 우세 직업군이다. 프랭크 카프리오와 같은 민주당 지지자도 있지만 클래런스 토머스와 같은 공화당 지지자도 있다. 물론 법조인의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이지만 공화당 지지세도 법조인 내에서 적지 않다.

학계의 경우에도 대체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데 지질학과와 같은 소수의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인문계와 자연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학자, 교수들에게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다.

기술자들의 경우 업종별로 갈리는 편으로, 박판공, 배관설치공, 목수, 전기제품 조립공, 주택수리공, 배전공, 수납장제작공, 기계설치공, 보석공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열쇠제작공, 기계조립공, 배관공, 용접공, 자동차정비공, 기계조작공, 전기공들 사이에서는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다.

운전 기사들도 차량의 종류에 따라 갈리는 편으로, 버스 기사, 철도기관사, 택시 기사들은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트럭 기사스쿨버스 기사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다. 항공종사자의 경우, 파일럿, 항공정비사, 운항관리사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승무원항공교통관제사들은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대기업 임원들의 경우 직무에 따라 정당 지지가 갈리는 편으로, CEO, 재무, 리스크, 회계, 법무, 영업에서는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홍보, 마케팅, 인사, 총무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기업체의 관리자들 또한 직무에 따라 갈리는 편으로, 생산관리자, 안전관리자, 구매담당자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보건관리자, 감사담당자, 채용담당자, 인허가전문가들은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내과의사의 경우, 개별 과들에 따라서 정당 지지가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뇨기과, 마취과, 안과, 피부과, 종양내과, 병리과, 순환기내과 의사들의 경우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소아과, 산부인과, 신장내과, 응급의학과, 신경과, 소화기내과 의사들의 경우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공학자들 또한 전공에 따라 갈리는 편으로, 석유공학, 광업공학, 토목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IT, 환경공학, 원자력공학, 전기전자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항공우주[51]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반반 갈린다.

부동산 관련 직업들 또한 각 직업별로 갈리는 편으로, 주택건설업자[52], 부동산개발업자[53], 공인중개사들은 공화당 지지가 우세하지만, 경비원들과 임대사업자[54]들은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다.

대표적인 민주당 약세 직업군으로는 미군과 경찰이 꼽힌다. 특히 미국 해병대미국 육군의 경우 민주당 대비 공화당 지지가 4배에 육박하며, 미국 해군미국 공군 또한 공화당이 현저하게 우세하고, 경찰 역시 대표적인 공화당 우세 직군이다.

외과의사들 사이에서도 공화당 지지세가 압도적인데, 세부적으로 따졌을 때도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의사들 모두 공화당 지지세가 확고한 편이다.

또 공화당이 지역적으로 봤을 때는 교외에서의 지지세가 강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농부, 축산업자, 낙농업자, 벌목업자[55] 모두 공화당 지지세가 강고한 편이다. 다만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많고 유기농업 등 전반적으로 생태주의적 성향이 강한 귀농인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이 앞서는 편이다.

그 외에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직업들로는 회계사, 치과의사, 수의사가 있다. 상업은행투자은행의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다만 은행창구에서 근무하는 텔러들은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중견기업중소기업의 사업주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IT 비율이 높은 스타트업 사업주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그리고 도매업자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수입업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4.7. 산업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계가 강력한 민주당 지지 세력으로 유명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56], 존 보이트, 딘 케인 등 공화당 지지자들도 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하면 드물다. 매회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거액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소식은 이미 흔한 뉴스로 자리잡았다.

스포츠 선수들 역시 민주당 지지세가 조금 더 강한 편이다. 종목별 차이는 있는데,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농구계에서는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이고 백인이 많은 종목은 남부 출신 백인 스포츠 선수들이 공화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스포츠 선수 출신 중 대표적인 민주당 지지자로는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미셸 콴이 있는데, 콴의 경우 단순히 지지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아예 조 바이든 후보의 선거캠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선거유세를 하기도 했다. 사실 콴은 이전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도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에도 합류한 적이 있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당시 백악관 스포츠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적이 있는만큼 예전부터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협업한 적이 많았다.

주류 언론사나 게임, IT 업계 등도 표현과 언론의 자유 문제 등이 엮여 이와 관련된 민주당 지지율이 높다는 인식이 있는 편이다. MAGA 항목도 참조.

4.8. 학력

편차가 큰 편이다. 주요 지지층인 저소득층, 흑인 등이 있기도 하지만 IT 산업, 연예계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 분야들로 가면 여러 상황이 있는데, 예를 들어 의학, 치의학, 수의학, 토목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등을 전공한 고학력자들 같은 경우에는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편이다. 석사, 박사 학위자의 경우 2016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공화당 지지율보다 20% 이상 높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는 안그래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사람들이 대거 민주당에 표를 던지며 바이든의 대선 승리에 역할을 했다. 특히 석사,박사 학위 소지자에게는 바이든이 62:37로 승리했다.#

다만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인 백인들 사이에서는 인종 변수가 끼어들었는지 바이든 지지 51%, 트럼프 지지 48%로 산출되어 그 격차가 많이 줄어드는 편이다. # 또 함께 치뤄진 2020년 미국 양원·주지사 선거에서는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인 백인들의 경우 공화당 지지 50%, 민주당 지지 49%로 산출되어 공화당이 근소하게 앞섰다.#

5. 외교

외교란 것 자체가 당의 성향을 떠나 대통령 등 정부 주요 관계자들의 개개인적 성향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긴 하지만, 일단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외교적 성향에 있어서 인권을 중시하고 절차 및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인권 중시 성향이라는 것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영부인인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가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을 작성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21세기에도 미국 민주당은 페미니즘에 우호적이고, 노동 환경 개선 등 보편적 인권 향상에 대한 국제 회의 등을 많이 주재하고 후원한다. 농담이 아니고 미국, 유럽, 대한민국, 일본 등에서 각종 인권 관련 국제 행사를 한다고 하면 꼭 미국 민주당 인사가 한 두 명씩은 나온다.

민주당이 인권을 중시하고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성향이라는 것 때문에 민주국가에 대한 지원을 노골적으로 한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민주당은 공화당이 유명인사들 위주로 지지하다가 당 입장을 정리한 것과 달리, 사태 초기부터 공식적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대를 지지하며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시진핑 중국 주석에 대한 제재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그리고 2020년 9월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발발하자, 민주당 지도부는 터키 에르도안아제르바이잔 일함 알리예프의 독재 및 인권 탄압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앞으로 터키/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사 이는 미국과의 동맹국인 터키가 아니라 우방국이긴 하지만 동맹관계는 없는 아르메니아를 대놓고 지원하는 행동이다.

이건 따지고 보면 굉장히 강경한 행동인데, 미국과 터키는 기본적으로 NATO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동맹 관계조차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국가라면 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미국 민주당이다. 아르메니아는 니콜 파쉬냔 현 총리(당시 야당 당수)가 이끄는 민주화 시위로 인해 18년 간 독재를 하던 독재자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57]을 2018년 축출하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아르메니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아르메니아 국내에서도 인권 개선에 나서는 등 민주주의 국가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에서는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기로 한 것.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 민주당은 집권시 지도부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일갈하는 경우가 많다. 북핵문제도 중요하긴 하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도 못지 않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정부 내내 북미관계는 파탄이었는데, 그 이유가 오바마 정부는 북핵보다 북한 인권문제가 중요하다며 협상 테이블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로 시작된 아랍의 봄이 불어닥치자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강조하며 북한과의 대화 통로 자체를 닫아버렸다.

미국 민주당이 북핵문제를 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민주화 조치가 달성되면 자연스럽게 북핵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이른바 '남아공식 비핵화 모델'이다.[58] 다만 현실에선, 당연히 이렇게 되면 가장 좋겠지만, 북한이 체제전복이랍시고 시큰둥하다못해 비난하는 반응이 다반사. 북한의 인권 개선, 민주화라는 것은 곧 김씨 왕조의 몰락과 기존 북한 엘리트 계층의 파멸이라는 혁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59] 다만 이건 이론적 목표가 그렇다는 거고, 현실 외교에선 민주당도 협상가로 돌변하는 경우가 꽤 있다.

외교 정책은 상기했듯 정부 주요 관계자들의 사적 성향도 많이 중요한지라, 민주당도 클린턴 재임시엔 북폭한다고 엄포놓다 다시 협상 모드로 전환해 6자회담의 전신인 4자회담이 1996년에 출범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나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부 장관을 특사 형식으로 북한에 보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기도 했다. 공화당도 부시 행정부 초기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욕하다 현실주의가 강해지면 체제 이런건 신경 안쓸테니 일단 핵부터 다 내놔라는 식으로 협상하다 심지어 트럼프 집권기엔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의미하는 '리비아식 모델'마저 일단 겉으론 포기했다.[60] 즉 이론적 목표와 현실 외교는 엄연히 다를 수 있으며 다만 민주당이 북핵 문제만큼 인권 문제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분석일 듯.

민주당은 오바마 정권 당시엔 이란, 쿠바 문제에 집중하느라 (당시 한국의 보수 정권 집권기와도 맞물려) 북한 문제에 있어선 전략적 인내라고 하며 거의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61] 다만 그렇다고 또 민주당이 아예 손놓고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바마 집권기에는 북한정치범수용소를 적극 거론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부시의 정책 중 인권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 수용하여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제재 논의를 UN 안보리에 제시하고(중국의 거부권으로 무산), 미국 국내에 북한 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등 북핵문제가 아닌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양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근데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게, 민주당은 씽크 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매년 세계 인권 상황을 정리하여 민주당 내부 제출 보고서로 내면 이를 가지고 우선 협상 대상 국가를 지정하곤 하는데, 북한은 "인권 상황 자체가 평가할 수 없을 정도"(...)라며 민주당 협상 우선순위에서 제일 낮은 등급에 위치해 있다.

하여튼 이런 성향은 한국의 민주주의 겸 인권 운동가인 김대중에 대한 구명 노력에도 빛을 발했다. 김대중이 군사독재 시절 각종 고초를 겪고 미국에 망명 생활을 할 때도 미국 민주당 인사들이 제법 도와줬으며, 그런 인연으로 김대중이 한국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당은 예전보다 한국에 더 우호적이게 되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인권 운동가 대통령에 대한 호감을 표했고[62], 미국 민주당과도 상성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런 민주당도 경제 논리에선 냉혹해지는지 1997년 당시 미국의 슈퍼 301조 적용과 몇 개월 후에 터진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 등이 긴급한 자금 지원을 하지 않고, IMF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개혁을 주문했다는 사실 때문에 빌 클린턴 정부가 반한적이었다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물론 IMF 당시 정부는 김영삼 정부긴 하지만, 하여튼 이 당시에는 북한 공습 문제 등으로 한미 양국정부간의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민주당이 딱히 반한감정을 정책으로 표출한 것은 아니다.

2007년에는 미 의회 역사상 두 번째로 한일문제의 중요한 해결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해결 결의안을 민주당의 주도로 채택하고, 최종적으로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는데 공헌하는 등 굉장히 친한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은 다름아닌 2020년 기준 현임 하원의장, 당시 하원의원인 낸시 펠로시다. 펠로시 의원의 주도 아래에 만장 일치로 통과된 이 결의안은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다.
"일본 정부는 1930년부터 2차 세계대전 동안 점령했던 아시아와 태평양 섬 식민지에서 위안부라고 알려진, 젊은 여성들에게 행해진 제국군의 강제 성노예에 대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역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
The Government of Japan should formally acknowledge, apologize, and accept historical responsibility in a clear and unequivocal manner for its Imperial Armed Forces' coercion of young women into sexual slavery, known to the world as "comfort women", during its colonial and wartime occupation of Asia and the Pacific Islands from the 1930s through the duration of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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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펠로시는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일본 외무성로부터 이와 같은 결의안 통과는 미일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63]

하여튼 이런 노력과 함께, 2008년 집권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선하고 탈권위적인 인상 및 한국을 여러차례 모범국으로 드는 친한적인 모습으로 한국에서도 미국 민주당이 굉장히 호감을 사게 되었다.[64]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도 사이를 원만히 유지했기에, 2010 G20 서울 정상회의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오바마 행정부가 지지하는 등 스무스한 한미관계를 보여줬다.

일부 한국인의 미국 민주당에 대한 인식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 이후이다. 박근혜 집권기 한국 정부가 친중/반일 성향을 보이면서 오바마 정부가 한미일 3국 관계에서 한국보다 일본쪽으로 균형추를 두기 시작했고, 연장선상에서 오바마 집권기 후반 그들 기준으로 볼땐 한미관계의 와해와 미일관계의 강화가 진행되었기 때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오바마 집권기 말기에 행해졌는데, 관여 정도에 왈가왈부는 있지만 이 합의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 및 결국 위안부 피해자들을 미국 오바마 정부가 외면했다는[65] 주장은 당시 일부 한국인들이 오바마와 미국 민주당에게 실망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드[66] TPP[67], 에드워드 스노든 사태로 실망하는 진보층도 있었다.[68] 다만 이건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외교란 완전한 우방도 원수도 없다고 당근과 채찍을 잘 써야 되는데 박근혜 정부는 초중반 극단적인 친중 노선을 달리다 이게 안 먹히자 다시 사드 배치 등 노선을 급변경하는 무리수를 두어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는 것.

민주당이 친일 정당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예/아니오 식으로 따지면 Yes가 맞지만[69]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파이브 아이즈 등 서방 동맹블록의 일부로서의 미일동맹을 중시한다는 것이지, 제2차 세계 대전 시절 일본의 전쟁범죄한반도, 대만 등의 식민지 통치까지 옹호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70], 당연히 미일동맹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한미동맹을 배척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한국에서는 친일에 두 가지 의미가[71] 있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민주당의 친일은 일본에게 친화적이라고 해서 한국을 배척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친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을 박살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해리 트루먼도 민주당 대통령이었다.[72] 사실 알고보면 미일수교가 이루어진 것은 공화당의 전신인 휘그당 정권 시절이었고, 일본 제국이 서구열강의 지위에 오르자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일제를 우대하기 시작한 것도 공화당 시어도어 루스벨트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때였다. 한마디로 이 때는 당 가릴 것 없이 수교국 일본과 외교하던 시절이었고, 20세기 중후반 냉전 시기엔 아시아 다수 지역이 공산 세력에 먹혔다보니 특히 동북아에선 일본 말곤 딱히 친화적인 외교를 펼칠 대상도 없긴 했다. 한국이야 알다시피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라 관계는 유지했지만 거리감이 있었다.[73]

민주당이 한국과 일본을 차별대우한다는 비판은 어떤 면에선 부당한데, 지미 카터 이후의 클린턴이나 오바마 누구도 주한미군의 철수나 한미동맹의 해체를 추진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미 카터도 한국이 싫다는 게 아니라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말을 한 거였다. 또 제3국 입장에선 친한/친일이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태국 등 동남아 지역 사람들도 친한과 친일을 겸하면 겸했지, 친일이라고 해서 혐한하지는 않는다. 이분법적 사고관에 갇히면 오해하기 쉬운 개념 중 하나. 외교에서 여지를 차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책이다.

요약하면 미국 민주당은 미일관계, 한미관계를 모두 중시하기 때문에 외교적 함의에 있어 동북아시아 내 친일, 친한 성향을 둘 다 강하게 지닐 뿐이다. 미국 민주당은 애초 미일 무역-관세 분쟁, 주한미군 철수, 주일미군 감축 같은 어젠다를 던지지 않는다. 멀리 가지 않아도 한국계 미국인[74], 일본계 미국인 모두 미국 본토에서 강력한 미국 민주당 지지층이다.

6.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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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를 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그린 삽화 (Andy Thomas. 2008)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미 카터(39대), 존 F. 케네디(35대), 빌 클린턴(42대), 우드로 윌슨(28대), 린든 B. 존슨(36대), 해리 S. 트루먼(33대), 앤드루 잭슨(7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파일:external/llwproductions.files.wordpress.com/painting-of-nine-democratic-presidents-by-andy-thomas.jpg
△ 포켓볼을 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그린 삽화 (Andy Thomas. 2011)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린든 B. 존슨(36대), 버락 오바마(44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해리 S. 트루먼(33대), 빌 클린턴(42대), 지미 카터(39대), 우드로 윌슨(28대), 존 F. 케네디(35대), 앤드루 잭슨(7대)[75]
파일:andy-thomas-the-democratic-club-new-limited-edition-26.jpg
△ 맥주를 마시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그린 삽화 (Andy Thomas. 2018)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해리 S. 트루먼(33대), 앤드루 잭슨(7대), 제임스 K. 포크(11대), 린든 B. 존슨(36대), 지미 카터(39대), 제임스 뷰캐넌(15대), 버락 오바마(44대), 마틴 밴 뷰런(8대), 존 F. 케네디(35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22, 24대), 우드로 윌슨(28대), 빌 클린턴(4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76]
파일:The-Democratic-Party.jpg
△ 파티를 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영부인들을 그린 삽화 (Andy Thomas. 2021)

6.1. 19세기

6.1.1. 민주당의 탄생부터 남북전쟁 이전까지

민주당의 실질적인 뿌리는 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메디슨이 세운 민주공화당에 있다. 민주공화당은 1800 ~ 1828년 동안 집권하면서 미국 초창기를 이끈 주류 정당으로, 라이벌이었던 연방당이 친영 기류의 반전주의를 주장하다 미영전쟁 전후해 비호감으로 찍혀 몰락하면서[77] 장기 집권하지만, 1824년 대선에서부터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민주공화당에선 대통령 후보가 무려 4명이나 나왔는데, 이들은 각각 존 퀸시 애덤스, 앤드루 잭슨, 헨리 클레이, 윌리엄 크로포드였다. 당시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은 후보는 이후 민주당을 창당하는 앤드류 잭슨이었지만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기에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미국 하원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당시 하원의장이였던 클레이는 하원 의원들을 설득해 잭슨 대신 애덤스를 뽑도록 만들었고 대통령이 된 애덤스는 클레이를 미국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이에 빡친 잭슨과 그의 지지자들은 애덤스와 클레이가 부정한 거래(Corrupt Bargain)를 했다며 1828년 지금의 민주당을 창당했고, 애덤스의 지지자들은 국민공화당[78]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민주공화당의 독주 체제는 붕괴하며 미국 정치는 남북전쟁까지 '민주당-휘그당' 양당 체제로 가게 되는데 이 시기를 제2정당제(Second Party System)라고 부른다.

다만 이때도 정확히 따지면 민주당이 집권을 더 자주하긴 했다. 초창기 민주당은 대중주의, 반앨리트주의 성향과 함께 농본주의를 표방하며 지지층을 끌어모았는데, 때문에 서부에 광할한 대평원을 농경 지대로 개척해 백인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자연스럽게 영토 확장을 지지했다. 여론을 꽤 등에 업은 휘그당이 비도덕적 전쟁이라 아무리 욕을 해도 명백한 운명 드립을 치며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전쟁을 일으킨 것도 이런 연유가 있는 것.[79] 지금 와서 보면 좀 아이러니하지만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이런 영토 확장 속에, 자유 무역처럼 자유방임주의 정책과 반연방주의(주의 권리)를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또 당시 노예제에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휘그당[80]에 비해 민주당은 대체적으로 노예제를 용인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부와 북부 민주당원 간에 노예제에 대한 의견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북부 민주당[81]은 자영농, 노동자나 가톨릭을 믿는 이민자들[82]의 정당이였다. 이들은 노예제에 대해서 소극적 지지 혹은 유보적인 입장에 가까웠고[83], 주요 과제를 대륙횡단 열차 건설 등 경제 쪽에 삼았다.[84] 하지만 이미 목숨을 걸고 노예제를 사수하려는 남부 민주당에게는 이것조차 부족했다. 남부 민주당, 실질적으로 강경 노예제 찬성론자들이자 남부주 분리독립론자들('Fire-Eaters')은 북부 민주당의 소극적 지지가 아니라 완전하고 적극적인 노예제 지지를 원했다.

그런데 남부 노예주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서, 아무리 보수주의라고 하더라도 '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던 북부에서는 적극적인 노예주 지지는 인기가 없었다. 결국 북부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이나 제임스 뷰캐넌이 남부 민주당원들의 요구에 끌려다니자, 북부 민주당원들은 불만을 품으며 민주당 역시 휘그당처럼 분열되고 만다.[85] 결국 1860년 대선에 민주당은 북부 민주당 후보인 스티븐 A. 더글러스와 남부 민주당 후보인 존 C. 브레킨리지로로 나뉘게 되며 어부지리로 공화당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이에 강력히 반발한 남부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연합국을 세우며 남북 전쟁이 일어난다.

6.1.2. 남북전쟁과 암흑기, 부활

아메리카 연합국의 건국을 주도한 남부 민주당원들은 신생국의 정치적 분열을 두려워해 정당에 기초한 정치적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남부 민주당은 남북 전쟁 기간 사실상 해체되었다. 한편 북부 민주당은 전쟁 초창기에는 링컨 행정부와 협조해 남북 전쟁 당시 연방군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 '그래도 연방을 지켜야 한다'라는 대의명분도 있었지만 반역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생긴 당 자체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전황이 점점 북부에 안좋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때마침 스티븐 A. 더글러스의 죽음으로 구심점이 사라지며, 당 내에선 아메리카 연합국을 무력으로 다시 연방에 귀속시켜야 된다는 민주당 주전파(War Democrat)[86]와 아메리카 연합국와 화친을 주장하며 전쟁에 반대하던 민주당 주화파(Peace Democrat)[87] 파벌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대선에서 전직 북부군 사령관인 조지 매클렐런(George B. McClellan)[88]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나 당내 강경파들이 대부분 공화당에 붙으며 결국 패하고 만다.

이후 남북 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고 링컨이 암살당한 19세기 중반부터는 반대로 신생 공화당의 장기집권시대가 열린다. 당시 미국 정계를 주도하는 공화당 급진파는 남부의 군정을 주도하며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흑인들의 생활을 개선하려했는데, 민주당은 이에 강력히 저항하며 공화당이 주도한 앤드루 존슨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후 북부군 사령관 출신 그랜트 대통령이 남부 일부 주에 군정을 해제하며 정치 참여가 가능해진[89] 일부 남부 민주당원들은 북부 민주당원들과 다시 합당했지만, 노예제를 두고 빚었던 민주당 당내 내분이 187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폭발해 버린다. 결국 1872년 대선에서는 남부+북부의 해묵은 갈등으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민주당은 공화당을 탈당해 자유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한 호러스 그릴리를 지지하는 웃픈 상황도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의 행보로 과거 연방당마냥 미국인들에게 '반역당' 수준으로까지 내몰리자 민주당은 새로운 출발(New Departure)이라는 전략을 도입해 남부 군정에 어느 정도 협조하며 경제적 문제와 사회 부패 문제로 공화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1873년 공황으로 그랜트 행정부가 어느 정도 인기를 잃자 대안으로 떠올라 1874년 중간 선거에선 기어코 의회 과반을 차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이런 영향과 이후 그랜트의 후임자로 대통령이 된 공화당 온건파 성향인 러더퍼드 B. 헤이스자신의 당선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분쟁에 대한 타협으로 결국 그의 집권기에 남부 군정을 종식시키게 된다. 허나 이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던 남부 백인들이[90]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주장한 민주당 의원들을 선출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준노예 상태로 만들며 남부는 20세기 중후반까지 인종차별하면 떠오르는 슬픈 지역이 되어버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기간 이들은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기반(Solid South) 중 하나가 된다. 이런 남부 민주당 계파는 리디머(redeemer)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재건 시대(Reconstruction Era)의 재건을 부정하고 남부 주의 자치 및 전쟁 이전의 기득권 복원을 목표로 했으며, 실제 남부에선 주정부 및 의회를 대거 장악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단, 이들 역시 하나의 단일 계파라기보다는 느슨한 연합체에 가까워 내부를 살펴보면 도시와 교외, 구 민주당과 구 휘그당 출신의 갈등 등 알력싸움 또한 상당하긴 했다.

남북전쟁 이후엔 민주당원들이 심지어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인 KKK를 창설한다. 흑인에 대한 린치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인권법안들은 모조리 반대하는 등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인종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된다.

하여튼 남북전쟁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민주당은 초창기 서민을 대변한다던 모습과 다르게 조금씩 기업인들과 금융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버번 민주당원(Bourbon Democrat)들이 등장했는데, 이 파벌의 대표적 인물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있다.[91] 사실 이 당시까지도 민주당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지지하며 금본위제를 미는 등 노동자, 농민이나 빈민의 처우 개선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뉴욕의 태머니 홀로 대표되는 부패정치에 맞서고 제국주의 팽창을 반대하는 면 또한 있어 일부 공화당 소장파(머그웜프)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남부의 보수적인 민주당원들의 경우 버번 민주당이자 동시에 리디머에 속하기도 했다.

6.1.3. 윌리엄 J. 브라이언과 당의 진보화 조짐

남북전쟁 이후 1873년 미국은 은본위제도를 버리고 금본위제를 도입한다. 이 때문에 생긴 디플레이션으로 피해를 본 남서부 주들의 농부들은 여당인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에 끌리기 시작했는데, 이를 감지한 민주당의 정치인 윌리엄 J. 브라이언은 금본위제 철폐를 외치며 기존 민주당의 주요 파벌이었던 부르봉 민주당원들을 제치고 1896년, 1900년, 19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대선 본선에서는 3번 모두 패배했고, 브라이언에 우호적인 미국 인민당의 세력도 점점 쇠퇴했으며, 혁신주의를 외치면서도 당대의 트렌드인 제국주의를 밀어붙인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집권기간 민주당의 변화는 나름의 의미는 있었지만 정권 창출까지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6.2. 20세기

19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의 분열에 힘입어 오랜만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윌슨은 남부 버지니아 출신이지만 북부 뉴저지 주지사를 지냈고 주지사 시절의 자유주의, 혁신주의 정책으로 민주당의 기존 지역적 기반인 남부 및 중서부 교외 지역보다 광범위한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92]

윌슨은 윌리엄 J. 브라이언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계파를 포용하며 의회에서 다수당 지위를 되찾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기 집권 중 반신불수가 되어버리는 불행이 찾아오고, 1920년 대선에서는 1차 대전 종전 후의 윌슨의 대외 정책을 공격하고 나선 공화당에게 다시 정권을 내주게 된다. 1920년대 내내 민주당은 대통령직과 상 ·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로 민주당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오고, 1932년 대선에서 대승을 거둔 프랭클린 D. 루스벨트뉴딜 정책을 통해 기존의 남부 민주당 텃밭을 유지하면서도 도시 노동자들과 유색 인종 및 소수 인종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루스벨트와 그 후계자 해리 S. 트루먼은 20년 연속으로 집권하였고 양원의 다수당 지위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93]

하지만 민주당의 진보화에 불만을 가진 남부 민주당원들은 공화당 보수파와 보수연합을 결성하고 상당수의 뉴딜 관련 법안들을 저지하는 등 서서히 이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다만, 남부 민주당원들은 더스트 볼과 농업 과잉 생산 문제로 남부가 죽어가는데도 손을 놓고 있던 대공황기 공화당 정부에 이를 갈고 있었고 루스벨트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고 복지도 확대했기 때문에 뉴딜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1960년대에는 케네디, 존슨 정부가 흑인민권운동을 적극 지지하자 남부의 이탈이 본격화되었다. 1960년 대선 때 케네디는 남부 표를 사수하기 위해 남부의 최대 거물 정치인인 린든 B. 존슨을 러닝메이트로 삼았고 이는 남부의 지지를 끌어모으며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케네디 정부가 적극적으로 흑인민권운동을 지지하자 점차 남부표가 이탈했다. 이때 공화당의 골드워터닉슨의 남부 전략에 남부인들이 호응하며 남부는 점차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변화는 급작스럽기 보다는 점진적이었다. 1964년 대선에서 케네디의 뒤를 이어 오랜만에 남부 출신 린든 B. 존슨 민주당 후보로 나왔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남부의 다수가 존슨을 지지하긴 했지만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가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이후에 치러진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남부 전역이 지미 카터를 지지했다.

국회 의원 선거와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은 1980년대까지 계속 우세를 점했다. 당시 대통령들은 공화당이었음에도 의원들을 보면 상원, 하원 빠짐없이 여소야대였을 정도. 남부인들은 민주당이 흑인민권운동을 지지하는 것을 증오했지만, 남부의 오랜 민주당 지지 정서, 남부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절대적 지지, 남부의 토착 진보 세력과 이주민들의 지지, 상 · 하원과 주 정부를 장악한 민주당을 지지해 혜택을 받으려는 전략적 지지 등의 요인들이 작용해 민주당이 계속 의회와 주 정부에서 다수를 점하게 해주었다. 즉 'Solid South'는 수십 년을 굳건하게 버틴 것이다.

남부의 본격적인 이탈이 벌어진 것은 로널드 레이건조지 H. W. 부시가 집권한 1980년대~1990년대부터이며, 이 과정도 급진적이기보다는 서서히 이루어진 편이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인 닉슨이나 레이건이 남부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분명 변화는 있었으나, 두 대통령은 특정 지역의 강한 지지세에 의존하기보다는 모든 주에 걸쳐 두루 지지를 받으려 노력한 대통령이라[94] 이것만으로 남부의 정치 성향 변화를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북부에서는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변모하고,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북부에서 신승을 거두면서 그들과 경쟁하던 공화당의 주류 세력이 타격을 입고 공화당의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정치 생명을 잃거나 어려움을 겪은 반면, 공화당 보수파는 선거에서 살아남아 세를 불리면서 공화당의 보수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이후, 냉전이 끝나고 적극적인 세계화 움직임 속에 이민자들과 여러 인종들의 요구가 다변화되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의 이념, 지형적 민주당 vs 공화당 구도가 거의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6.3.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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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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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단위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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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주당(미국) 흰색 로고.svg 민주당 전국 위원회(DNC)
<colbgcolor=#0044C9>
위원장
제이미 해리슨
사무부장 샘 코날레 <colbgcolor=#0044C9> 사무차장 로저 라우
정치부장 알라나 마운스 수석보좌관 아나톨 젠킨스
부위원장 케이샤 랜스 바텀스(시민관여/투표참여) · 그레첸 위트머 · 태미 더크워스 · 켄 마틴
파일먼 벨라 주니어
회계담당 버지니아 맥그리거 총무 제이슨 레이
재무담당 크리스 코르가
파일:미국 상원 문장.svg 민주당 상원 협의회 지도부
상원 원내대표 및 협회장 척 슈머 상원 원내부대표 딕 더빈
원내대표 보조 패티 머리 정책·소통위원장 데비 스태버나우
정책·소통부위원장 조 맨신, 코리 부커
운영위원장 에이미 클로버샤 운영부위원장 진 샤힌
원조위원장 버니 샌더스 원조부위원장 캐서린 코테즈 매스토
협의회 부회장 엘리자베스 워런, 마크 워너
협의회 총무 태미 볼드윈
파일:미국 하원 문장.svg 민주당 하원 협의회 지도부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 스테니 호이어
하원 원내부대표 짐 클라이번 정책·소통위원장 데비 스태버나우
하원의장 보조 캐서린 클라크 협의회 회장 하킴 제프리스
파일:민주당 주지사 협회 로고 하얀색.png 민주당 주지사 협회
회장 미셸 루한 그리셤 부회장 로이 쿠퍼
파일:민주당 상원 선대위 로고 하얀색.png 민주당 상원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개리 피터스
파일:민주당 하원 선대위.png 민주당 하원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션 패트릭 멀로니
파일:DLCC 로고 하얀색.png 민주당 주의원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제시카 포스트 사무처장 헤더 윌리엄스
이사장 안드레아 스테워트-커즌스 부이사장 제이슨 프리어슨
회계담당 론 코우치 재무위원장 발 롱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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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대 선거 결과

8.1. 대통령 선거

파일:민주당(미국) 로고.svg
민주당의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rowcolor=#fff> 연도 후보자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결과
<rowcolor=#fff> 대통령 부통령
1828년 앤드루 잭슨 존 C. 칼훈 638,348 55.5% 178/261 당선
1832년 마틴 밴 뷰런 701,780 54.2% 219/286 당선
1836년 마틴 밴 뷰런 리처드 멘터 존슨 764,176 50.8% 170/294 당선
1840년 마틴 밴 뷰런 - 1,128,854 46.8% 60/294 낙선
1844년 제임스 K. 포크 조지 M. 댈러스 1,339,494 49.5% 170/275 당선
1848년 루이스 카스 윌리엄 O. 버틀러 1,223,460 42.5% 127/290 낙선
1852년 프랭클린 피어스 윌리엄 R. 킹 1,607,521 50.8% 254/296 당선
1856년 제임스 뷰캐넌 존 C. 브레킨리지 1,836,072 45.3% 174/296 당선
1860년 스티븐 A. 더글러스 허셜 V. 존슨 1,380,202 29.5% 12/303 낙선
1864년 조지 B. 매클레런 조지 H. 펜들턴 1,812,807 45.0% 21/233 낙선
1868년 호레이쇼 시모어 프렌시스 P. 블레어 2,706,829 47.3% 80/294 낙선
1876년 새뮤얼 J. 틸던 토머스 A. 헨드릭스 4,286,808 50.9% 184/369 낙선
1880년 윈필드 스콧 핸콕 윌리엄 잉글리쉬 4,444,260 48.2% 155/369 낙선
1884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토머스 A. 헨드릭스 4,914,482 48.8% 219/401 당선
1888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앨런 G. 셔먼 5,534,488 48.6% 168/401 낙선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5,556,918 46.0% 277/422 당선
1896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아서 슈월 6,510,807 46.7% 176/447 낙선
1900년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6,370,932 45.5% 155/447 낙선
1904년 앨턴 B. 파커 헨리 G. 데이비스 5,083,880 37.6% 140/476 낙선
1908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존 W. 컨 6,408,984 43.1% 162/483 낙선
1912년 우드로 윌슨 토머스 R. 마셜 6,296,284 41.8% 435/531 당선
1916년 9,126,868 49.2% 277/531 당선
1920년 제임스 M. 콕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9,139,661 34.1% 127/531 낙선
1924년 존 W. 데이비스 찰스 W. 브라이언 8,386,242 28.8% 136/531 낙선
1928년 앨 스미스 조지프 T. 로빈슨 15,015,464 40.8% 87/531 낙선
193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존 낸스 가너 22,821,277 57.4% 472/531 당선
1936년 27,752,648 60.8% 523/531 당선
1940년 헨리 A. 월리스 27,313,945 54.7% 449/531 당선
1944년 해리 S. 트루먼 25,612,916 53.4% 432/531 당선
1948년 해리 S. 트루먼 앨번 W. 바클리 24,179,347 49.6% 303/531 당선
1952년 애들레이 E. 스티븐슨 존 스파크먼 27,375,090 44.3% 89/531 낙선
1956년 에스테스 키포버 26,028,028 42.0% 73/531 낙선
1960년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34,220,984 49.7% 303/537 당선
1964년 린든 B. 존슨 휴버트 험프리 43,129,040 61.1% 486/537 당선
1968년 휴버트 험프리 에드먼드 머스키 31,271,839 42.7% 191/537 낙선
1972년 조지 맥거번 사전트 슈라이버 29,173,222 37.5% 17/537 낙선
1976년 지미 카터 월터 먼데일 40,831,881 50.1% 297/537 당선
1980년 지미 카터 월터 먼데일 35,481,115 41.0% 49/538 낙선
1984년 월터 먼데일 제럴딘 페라로 37,577,352 40.6% 13/538 낙선
1988년 마이클 두카키스 로이드 벤슨 41,809,074 45.7% 111/538 낙선
1992년 빌 클린턴 앨 고어 44,909,889 43.0% 370/538 당선
1996년 47,402,357 49.2% 379/538 당선
2000년 앨 고어 조셉 리버만 50,999,897 48.4% 266/538 낙선
2004년 존 케리 존 에드워즈 59,028,444 48.3% 251/538 낙선
2008년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69,456,897 52.9% 365/538 당선
2012년 65,915,795 51.1% 332/538 당선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팀 케인 65,844,610 48.2% 227/538 낙선
2020년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 81,283,495 51.3% 306/538 당선
2024년 카멀라 해리스 팀 월즈 75,017,613 48.3% 226/538 낙선

9. 출신 정치인

9.1. 대통령

미합중국 대통령
파일:미국 대통령 문장.svg
이름 임기 선출 방식
취임일 퇴임일
7 파일:Andrew_Jackson_Daguerrotype-crop.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앤드루 잭슨
(1767 ~ 1845)
11 1829년 3월 4일 1833년 3월 4일 1828 대선
간선 178명
12 1833년 3월 4일 1837년 3월 4일 1832 대선
간선 219명
8 파일:1280px-Martin_Van_Bure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마틴 밴 뷰런
(1782 ~ 1862)
13 1837년 3월 4일 1841년 3월 4일 1836년 대선
간선 170명
11 파일:JKP.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제임스 K. 포크
(1795 ~ 1849)
15 1845년 3월 4일 1849년 3월 4일 1844년 대선
간선 170명
14 파일:Franklin_Pierce.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프랭클린 피어스
(1804 ~ 1869)
17 1853년 3월 4일 1857년 3월 4일 1852년 대선
간선 254명
15 파일:James_Buchana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제임스 뷰캐넌
(1791 ~ 1868)
18 1857년 9월 19일 1861년 3월 4일 1856년 대선
간선 174명
17 파일:Andrew_Johnson_photo_portrait_head_and_shoulders,_c1870-1880-Edit1.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앤드루 존슨
(1808 ~ 1875)
20 1865년 4월 15일 1869 3월 4일 승계
22 파일:Stephen Grover Cleveland.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그로버 클리블랜드
(1837 ~ 1908)
25 1885년 3월 4일 1889년 3월 4일 1884년 대선
간선 219명
24 27 1893년 9월 14일 1897년 3월 4일 1892년 대선
간선 277명
28 파일:President_Wilson_1919-bw.tif.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우드로 윌슨
(1856 ~ 1924)
32 1913년 3월 4일 1917년 3월 4일 1912년 대선
간선 435명
33 1917년 3월 4일 1921년 3월 4일 1916년 대선
간선 277명
32 파일:FDR_1944_Color_Portrait.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882 ~ 1945)
37 1933년 3월 4일 1937년 3월 4일 1932년 대선
간선 472명
38 1937년 1월 20일 1941년 1월 20일 1936년 대선
간선 523명
39 1941년 1월 20일 1945년 1월 20일 1940년 대선
간선 449명
40 1945년 1월 20일 1945년 4월 12일[95] 1944년 대선
간선 432명
33 파일:truman pic.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해리 S. 트루먼
(1884 ~ 1972)
1945년 4월 12일 1949년 1월 20일 승계
41 1949년 1월 20일 1953년 1월 20일 1948년 대선
간선 303명
35 파일:John_F._Kennedy_color_photo_portrait.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존 F. 케네디
(1917 ~ 1963)
44 1961년 1월 20일 1963년 11월 22일[96] 1960년 대선
303명
36 파일:린든 B. 존슨.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린든 B. 존슨
(1908 ~ 1973)
1963년 11월 22일 1965년 1월 20일 승계
45 1965년 1월 20일 1969년 1월 20일 1964년 대선
간선 486명
39 파일:JimmyCarterPortrait2.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지미 카터
(1924 ~ 2024)
48 1977년 1월 20일 1981년 1월 20일 1976년 대선
간선 297명
42 파일:Bill_Clinto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빌 클린턴
(1946 ~ )
52 1993년 1월 20일 1997년 1월 20일 1992년 대선
간선 370명
53 1997년 1월 20일 2001년 1월 20일 1996년 대선
간선 379명
44 파일:버락 오바마.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버락 오바마
(1961 ~ )
56 2009년 1월 20일 2013년 1월 20일 2008년 대선
간선 365명
57 2013년 1월 20일 2017년 1월 20일 2012년 대선
간선 332명
46 파일:President Joe Bide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조 바이든
(1942 ~ )
59 2021년 1월 20일 2025년 1월 20일
2020년 대선
간선 306명

9.2. 부통령

미합중국 부통령
파일:미국 부통령 문장.svg
이름 임기 선출 방식
취임일 퇴임일
8 파일:1280px-Martin_Van_Bure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마틴 밴 뷰런
(1782 ~ 1862)
12 1833년 3월 4일 1837년 3월 4일 1832년 부선
간선 189명
9 파일:Vice President R. M. Johnson.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리처드 멘터 존슨
(1780 ~ 1850)
13 1837년 3월 4일 1841년 3월 4일 1936년 부선
간선 147명[97]
1837년 상원 부선
간선 33명
11 파일:George_Mifflin_Dallas.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조지 M. 댈러스
(1792 ~ 1864)
15 1845년 3월 4일 1849년 3월 4일 1844년 부선
간선 170명
13 파일:W. R. KIng.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윌리엄 R. 킹
(1786 ~ 1853)
17 1853년 3월 4일 1853년 4월 18일[98] 1852년 부선
간선 254명
14 파일:John_C_Breckinridge-04775-restored.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존 C. 브레킨리지
(1821 ~ 1875)
18 1857년 3월 4일 1861년 3월 4일 1856년 부선
간선 174명
16 파일:Andrew_Johnson_photo_portrait_head_and_shoulders,_c1870-1880-Edit1.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앤드루 존슨
(1808 ~ 1875)
20 1865년 3월 4일 1865년 4월 15일[99] 1864년 부선
간선 212명
21 파일:Thomas_Andrews_Hendricks.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토마스 A. 헨드릭스
(1819 ~ 1885)
25 1885년 3월 4일 1885년 11월 25일[100] 1884년 부선
간선 219명
23 파일:A. E. Stevenson I.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835 ~ 1914)
27 1893년 3월 4일 1897년 3월 4일 1892년 부선
간선 277명
28 파일:Thomas_Riley_Marshall.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토머스 R. 마셜
(1854 ~ 1925)
32 1913년 3월 4일 1917년 3월 4일 1912년 부선
간선 523명
33 1917년 3월 4일 1921년 3월 4일 1916년 부선
간선 277명
32 파일:John_Nance_Garner_(cropped).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존 낸스 가너
(1868 ~ 1967)
37 1933년 3월 4일 1937년 3월 4일 1932년 부선
간선 472명
38 1937년 1월 20일 1941년 1월 20일 1936년 부선
간선 523명
33 파일:Henry_A._Wallace.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헨리 A. 월리스
(1888 ~ 1965)
39 1941년 1월 20일 1945년 1월 20일 1940년 부선
간선 449명
34 파일:truman pic.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해리 S. 트루먼
(1884 ~ 1972)
40 1945년 1월 20일 1945년 4월 12일[101] 1944년 부선
간선 432명
35 파일:앨번 바클리.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앨번 W. 바클리
(1877 ~ 1956)
41 1949년 1월 20일 1953년 1월 20일 1948년 부선
간선 303명
37 파일:린든 B. 존슨.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린든 B. 존슨
(1908 ~ 1973)
44 1961년 1월 20일 1963년 11월 22일[102] 1960년 부선
303명
38 파일:Hubert_Humphrey_Portrait_Colorized.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휴버트 험프리
(1911 ~ 1978)
45 1965년 1월 20일 1969년 11월 22일 1964년 부선
486명
42 파일:Walter_Mondale_1977_vice_presidential_portrait.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월터 먼데일
(1928 ~ 2021)
48 1977년 1월 20일 1981년 1월 20일 1976년 부선
간선 297명
45 파일:Al_Gore,_Vice_President_of_the_United_States,_official_portrait_1994_(1).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앨 고어
(1948 ~ )
52 1993년 1월 20일 1997년 1월 20일 1992년 부선
간선 370명
53 1997년 1월 20일 2001년 1월 20일 1996년 부선
간선 379명
47 파일:joseph biden.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조 바이든
(1942 ~ )
56 2009년 1월 20일 2013년 1월 20일 2008년 부선
간선 365명
57 2013년 1월 20일 2017년 1월 20일 2012년 부선
간선 332명
49 파일:Vice President Kamala Harris.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카멀라 해리스
(1964 ~ )
59 2021년 1월 20일 2025년 1월 20일
2020년 부선
간선 306명

9.3.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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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임시의장
워싱턴
패티 머리
상원 원내대표
뉴욕
척 슈머
상원 원내총무
일리노이
딕 더빈
일반 상원의원
네바다
캐서린 코테즈 매스토
네바다
재키 로젠
뉴멕시코
벤 레이 루한
뉴멕시코
마틴 하인릭
뉴욕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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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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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진 샤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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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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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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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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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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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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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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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개리 피터스
버몬트
피터 웰치
버지니아주
마크 워너
버지니아주
팀 케인
애리조나
마크 켈리
오리건
론 와이든
오리건
제프 머클리
오하이오
셰러드 브라운
워싱턴
마리아 캔트웰
위스콘신
태미 볼드윈
일리노이
태미 더크워스
조지아
라파엘 워녹
조지아
존 오소프
캘리포니아
애덤 시프2
캘리포니아
알렉스 파디야
코네티컷
리처드 블루먼솔
코네티컷
크리스 머피
콜로라도
마이클 베넷
콜로라도
존 히켄루퍼
펜실베이니아
밥 케이시
펜실베이니아
존 페터먼
하와이
브라이언 샤츠
하와이
메이지 히로노
1. 밥 메넨데즈의 사임으로 인해 지명된 조지 헬미로부터 승계
2. 다이앤 파인스타인의 사망으로 인해 지명된 라폰자 버틀러로부터 승계
공화당 ·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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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기타

10. 여담


범죄율 징크스도 있는데,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당선되면 범죄율이 점점 오르다가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당선 되었을 때 피크를 찍고 다시 감소한다는 식. 다만 그래프를 보면 지나친 단순화에서 징크스가 비롯된 측면도 있다. 실제 미국의 범죄율 추세는 1990~1992년까지 증가하다가 그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큰 흐름을 보이고 있다.[113]

11. 대중매체

  • Hearts of Iron 4
    • Kaiserreich : 해당 세계관에서는 루스벨트가 이끌지 못하여 보수 성향의 정당이 되었고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서 1936년 미대선에서 당선되어 미노조연맹, 미연합국의 극단주의 반군들을 진압하거나 맥아더가 장악한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미태평합중국을 결성해 내전을 벌일 수도 있다.
    •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 : 해당 세계관에서는 추축국에게 패배하고 극단주의 정당들이 판을 치자 공화당과 연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 THE FIRE RISES : 2020년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조 바이든이 당선될 수도 있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 후에 2차 미국 내전이 벌어지면 공화당과 여러 군소 군벌들과 내전을 벌이게 되고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서 다시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거나 바이든의 흑화로 인해서 암울한 전체주의 미국을 만들수도 있다.

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민주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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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자유주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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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관련 문서 (사회주의 · 현대자유주의(←1934년 이전) · 자유지상주의 · 보수주의(대안 우파))
* 중도좌파적 경제관(경제적 진보주의) 한정. 중도우파인 사회적 의제(온건 사회보수주의)는 현대자유주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주의와도 구별된다.
파일:노란색 깃발.svg 자유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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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창당되었다.[2] 현대자유주의라는 용어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분 짓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이며 미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부를 때는 "현대-" 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자유주의"라고 한다.[3] 자세한 것은 민주당(미국)/계파 참조. 그 외에도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4] 로이 쿠퍼, 에이미 클로버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버락 오바마는 온건파와 리버럴파의 중간 정도에 있었으며, 조 바이든 역시 대통령 취임 전에 온건주의과 현대자유주의의 중간에 가까웠다. 청견연합신민주연합으로 대표된다.[5] 역사적으로는 지미 카터, 앨 고어, 빌 클린턴, 게리 하트 등으로 대표되었고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민주당 내 주류였다.[6] 엘리자베스 워런, 에드 마키, 존 페터먼 등이 있다. 의회진보 코커스로 대표된다.[7] 역사적으로는 테드 케네디, 조지 맥거번, 유진 매카시, 게일로드 넬슨, 웨인 모스 등의 인물들에 의해 대표되었다.[8]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의 사회주의자들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9] 노예제 이슈가 부상하기 이전 초창기 민주당은, 청교도 전통과 중앙집권을 선호하는 귀족적/엘리트중심적 보수주의 세력에 맞서는, 전신 민주공화당의 바통을 어느 정도 이어받은 대중 중심 고전적 자유주의 정당이었다.[10] 과거 남부민주당이나 자본가를 대변하던 의원들은 보수주의적 색체를 띄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 새뮤얼 틸던 뉴욕주지사 등의 "버번 민주당원", 해리 F. 버드 상원의원,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 등의 "남부 민주당원"이 있었으며,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휴버트 험프리, 조지 맥거번 등 당의 진보화를 주도한 주요 정치인과는 대립했다.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196~80년대에 걸친 대대적인 민주당-공화당 당적 교체 시기에도 여전히 보수 성향에 가까운 존 C. 스테니스, 제임스 이스트랜드, 로버트 버드, 조지 월리스 등이 민주당적을 고수하며 보수 파벌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 남부민주당원의 보수성은 유지하면서도 교육, 인종 평등, 환경 문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신남부(New South) 파벌이 등장하면서 보수주의 민주당원들의 성향은 상당히 온건화되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온건주의 혹은 중도주의 정도로 성향이 이동하게 된다.[11] 다만 과거에는 민주당=보수, 공화당=진보였다는 통념은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민주당의 일부는 보수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드로 윌슨 등 인종주의를 지지한 많은 정치인들도 인종 문제 외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식견을 내비치곤 했기 때문이다. 즉 보수주의 민주당에 남부민주당원이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모든 남부 민주당원이 보수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소리.[12] 민주당이 보유한 의석은 45석이나, 민주당과 같은 원내교섭단체 소속으로 활동하는 무소속 상원의원이 2명(버몬트 주버니 샌더스, 메인 주앵거스 킹)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47석을 보유한 것으로 계산한다.[13] 공식 SNS 계정에서 사용하는 색상.[14] 2022년까지 사용하였던 색상.[15] 자유주의 성향 빅텐트 국제 정당 연합체로 유럽의 중도우파~중도좌파 자유주의 정당들과 미국의 민주당이 여기 소속되어 있었다. 2012년 조직이 해체되었고 자유주의 인터내셔널에 사실상 흡수되었으나 민주당은 자유주의 인터내셔널에 가맹하지 않았다.[16] Young Democratic of America[17] College Democrats of America[18] High School Democrats of America[19] Democrats Abroad[20] National Federation of Democratic Women[21] 민주당 전국대회(DNC)의 공식 오프닝 송이다.[22] 193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선거 캠페인 공식 로고송.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는 히트곡으로 당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23] 1992년 빌 클린턴 선거 캠페인 공식 로고송. 21세기 이후 사실상의 당가처럼 쓰고 있다.[24] 영문 위키백과 참조.[25] 공교롭게도 이 그림의 모든 인물들이 아일랜드계 혈통의 영향을 받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이후 당선된 조 바이든조차도![26] 역대 대통령이 우러러보는 선대 대통령은 주로 그 정당의 첫 번째 대통령으로 그린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화당 삽화에서는 공화당 출신 첫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려졌다. 참고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다 그린 건 아니다. 또한 신임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공화당의 사례로 보았을 때 당선되고 보통 2년 차가 될 때 그리는 듯하다.[27] 앤드루 존슨(17대)을 제외한 모든 민주당 대통령이 다 그려졌다. 존슨은 국민연합당(공화당+민주당 세력이 합쳐진 정당) 후보로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기 때문에(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이후 대통령직 승계)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포크, 뷰캐넌, 뷰런, 피어스, 클리블랜드는 그림 뒤쪽에 작고 흐릿하게 그려져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상술했듯이 조 바이든(46대)은 아마 임기가 끝날 쯤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앞 열에 선명하게 그려진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을 제외하면 20세기 이후 재임한 대통령이다.[28] 당 자체로만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정당이 맞으나, 1834년 만들어진 영국 보수당의 직접적인 연원을 올라가면 1783년 소(小) 윌리엄 피트토리당이 나오기에 이쪽이 첫 번째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공화당은 1792년 창당.) 다만 그렇게 따지면 휘그당까지 끌어올 수도 있는 문제라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는 사안으로, 전문가 수준으로 깊게 파고들 거 아니면 그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도만 알면 된다. 참고로 공화당은 1854년 창당되었다.링크[29] 인도 인민당, 중국공산당 다음. 참고로 민주당 다음은 미국 공화당.[30] 사실 19세기만 해도 민주당은 보수 성향의 정당이었던 적도 있으며 남부민주당 계열은 남부 노예제를 지지한 흑역사도 있으니.. 20세기 들어 성향이 현재 이미지로 굳어지기 시작했다.[31] 후일 프록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가 리메이크한 곡이기도 하다.[32] 다음백과 '미국 민주당' 문서.[33] 다만 만들어 졌을 때는 진보 성향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양당이었던 휘그당이 보수 성향이었기 때문이다.[34] 이들은 1990년대 초까지도 남부 주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중앙 정치권의 딕시크랫들은 1994년 중간선거 당시 공화당에 밀려 대부분이 갈려나갔지만, 지방 정치권에서는 2000년대, 몇몇 주에서는 무려 2010년대까지도 이들이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딕시크랫들이 은퇴하거나 사망하면서, 현재는 남부 지역의 민주당원들도 대부분 주류 민주당원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35] 물론 이 당시에는 진보적인 주류 민주당원들과 보수적인 남부 민주당원들의 알력싸움이 심했으며, 2000년대까지 미국 정치물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소재가 주류 민주당원들과 남부 민주당원들의 갈등이었다.[36] 참고로 큰 틀에서 보자면, 초창기 민주당은 '서민'을 보호하는 것을 주요 정체성 중 하나로 삼긴 했다. 물론 이 서민을 보호한다는 게 당시 기준으로는 주로 자유방임주의 경제관에서 "백인" 서민들의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소수인종을 차별한다는 식으로 표출된게 문제였지만. 이게 자본을 대변하는 부르봉 민주당원 시기를 거쳐 20세기 이후 민주당이 진보화되면서 포용대상이 유색인종으로까지 확대된 것. 실제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정당 성향이 변화하는 일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37] 사실 20세기 초중반에 사회당이나 노동농민당(현재도 조직 자체는 남아있다), 노동당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사회당은 거대정당으로 커지지 못하고, 내부 분열로 결국 1920년대 말에 의석을 잃고 완전히 전멸했고, 노동농민당은 미네소타 이외지역에선 세가 커지지 못했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하에서 뉴딜 정책이 적극적으로 펼쳐지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잃고 결국 민주당으로 흡수되었다. 노동당은 뉴욕주에서 하원 1석 정도만 얻는 군소정당이었고 매카시즘의 광기가 펼쳐진 1950년 중간선거에서도 낙선, 매카시즘이 잠잠해진 이후에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다가 결국 1956년에 자진해산했다.[38] 일각에선 보수양당제 국가로 분류하기도 하나, 표현 자체가 현대 들어선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보니 널리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39] 다만 프랑스나 독일이나, 이른바 '시민결합'이라고 불리는 결혼 유사 제도를 통해 동성커플에게도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었다.[40] 물론 그전에도 주 단위에선 동성결혼이 제도화된 주가 있었다.[41] 심지어 영국헝가리의 경우 지금도 법적으로는 낙태가 금지되어 있다. 다만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라면 처벌하지 않는 식으로 낙태금지법을 우회하고 있을 뿐.[42] 파일:PP_2024.4.9_partisan-coalitions_6-04.png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유주택자들은 51% 대 45%로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반면, 무주택자들 사이에서는 64% 대 32%로 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이다.[43] 사실 전체 득표율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에서 밀려 대선을 내주는 것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고질병(?)이기는 하다. 2000년 이전에도 2차례 있었다. 1824년 앤드루 잭슨 건까지 포함하면 3차례.[44] 사실 진보, 현대자유주의 컨셉을 내세운 민주당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이 먼저이기는 하다. 다만 이때에는 뉴딜 동맹처럼 어떤 진보적 벨트를 만들진 못했고, 남부 출신이라 사실 여부를 떠나 진보주의자면서도 백인우월주의자라는 희한한 선입견도 있다보니 보통 FDR부터 민주당 진보 주류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 다만 FDR 때는 국난 극복기기도 하고 (물론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등은 인종적 민권운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노동자 중심의 민권 운동이 주류로 떠올라 남부 보수파들이 뉴딜 동맹에 묻어간 반면, 트루먼 이후부터는 인종적 민권운동에도 민주당이 적극 동참하면서 남부 보수파들이 본격적으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한다.[45] 물론 북부도 교외 지역은 공화당, 남부도 대도시는 민주당 유리처럼 예외적인 부분은 있다.[46] 특히 압도적인 인구수 덕분에 다수의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욕을 텃밭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대선에서 기본 100표 이상을 확실하게 가져가게 된다. 물론 이들 지역도 과거엔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는 지역이었지만 뉴딜 동맹과 남부전략, 인구/인종 변화, 이념 분화 등이 심화되면서 1990년대를 기점으로 북부는 민주당, 남부는 공화당 텃밭 현상이 확고하게 자리잡는다.[47] 2012년 대선의 몬태나#뉴멕시코# 등지의 출구 조사에서는 60-70%가 민주당을 지지했다. 정확히 말하면 원주민은 "기타" 분류에 포함된다. 다만 2010년 기준 두 지역 인구에서 백인+흑인+히스패닉+아시아인의 인구를 합하면 뉴멕시코에서는 90.3%, 몬태나는 91.7%인데 두 지역의 원주민 비율이 각각 9.4%, 6.3%이니 기타 분류에 포함되는 인구의 대부분은 원주민이라 볼 수 있다.[48] 즉 한국과 비교했을 때, 흑인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라도와, 백인의 민주당 지지율은 부울경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49] 물론 일반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북유럽식 사민주의라 정확히 따지면 권위주의 좌파랑은 결이 다르긴 하다.[50] 통상적으로 기독교 우파 성향이 강하다고 인식되는 직업이고, 상단에서 언급했듯이 미국 개신교인들 대부분이 공화당 지지자라는 것에 비추어보면 의외일 수 있는데, 보수주의 교단이 아닌 자유주의 교단에 소속된 목사들이나, 보수주의 교단 소속이더라도 흑인 목사들의 경우에는 민주당이 우세한 것을 감안하면 가능한 일이다.[51] 공화당 우세 주 텍사스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NASA록히드 마틴군용기 위주의 업체들에 소속된 엔지니어들은 공화당, 민주당 우세 주 워싱턴 시애틀에 위치하고 상업기 위주로 제작하는 보잉 등에 소속된 엔지니어들은 민주당으로 또 갈릴 것으로 추정된다.[52]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의 부친 프레드 트럼프뉴욕을 대표하는 주택건설업자였다.[53] 트럼프 기업의 오너인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 대표적인 예시다.[54] 비록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이 우세한 것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직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임대사업자가 공화당 우세가 아니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굳이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교외나 전원 지역에 비해 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고, 따라서 임대사업자들 또한 미국 평균에 비해 도시 거주자들의 비율이 높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55] 특히 민주당에서는 벌목을 규제하는 법규들을 많이 만드는반면, 공화당은 정책적으로 벌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만큼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이 이들의 경제적 이득에 매우 부합하는 부분이다.[56] 다만 2020년 대선에선 트럼프의 행보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민주당 온건파 마이클 블룸버그를 지지하긴 했다.[57] 대통령으로 10년, 총리로 1년, 국방장관으로 7년 동안 실권을 잡아서 18년 독재이다.[58] 남아공의 비핵화 조치는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지고, 넬슨 만델라 정부가 수립되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넬슨 만델라 정부가 들어서자, 만델라 대통령은 미국, 영국, 프랑스와 협상하여 가지고 있던 핵시설과 핵무기들을 단 2년만에 전부 파기했다.[59]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의 유일한 길은 북한 김씨 지도층이 스스로 절대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건데, 이 경우 역사적으론 여러 케이스가 있지만 극단적으로 보자면 2가지 케이스 정도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공산주의 일당독재에서 민주 체제로 전환한 몽골 사례처럼, 민주주의 체제 도입 이후에도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겨 보수적인 사회의 성향상 기존 기득권 세력이 선거에서 꽤 우세한 형국을 유지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유고슬라비아처럼 공산당이 민주체제 도입했더니 각 지역에서 분리주의 정당이 득세하여 나라가 절단난 경우(...). 물론 북한은 분리주의 세력이랄게 딱히 없기 때문에 후자처럼 최악의 경우로 갈 확률은 낮긴 하다.[60] 트럼프가 결코 유화파라고 보긴 어렵지만, 어쩌다보니 북한 문제에선 초강경파는 아니라 리비아식 모델을 끝까지 고집한 트럼프의 측근 존 볼턴이 견해차로 날라갔다. 이는 리비아식 모델의 주인공 카다피의 최후가 비참했기 때문에 북한이 절대 수용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61] 다만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쓴건 아니었다. 실제 당시 오바마 행정부 핵심인사도 2020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고 밝힌 바 있다.#[62] 당시 DJ와 인연을 맺은 인물 중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조 바이든 의원도 있었다.[63]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엔 문희상 의장이 방미했을 당시 면담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될까봐 우려스럽다는 말을 해 일부 여권 지지층으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해당 발언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어보이나, 시기가 문 의장의 일왕 사죄 관련 발언 등으로 민감했던지라 마치 문 의장이 쓸데없는 발언을 했다는 식으로 오인될 여지도 있었기 때문.[64] 사실 당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단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이 컸다고 보는 게 맞다. 일반적인 한국인 입장에서야 미국 대통령 아닌 딴에는 미국 정치인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니.. 당시 여론조사에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70%대에 이르기도 할 정도였다. 참고로 트럼프는 절반도 안된다[65] 다만 오바마는 2010년대 초중반 아베 정권의 위안부 부정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같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견제하는 발언도 수차례 했었기 때문에 좀 애매한 부분은 있다.[66] 대중국 포위 전략의 적절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로 인한 경제 보복을 상기해보면 한국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 측면도 분명 있었다. 박근혜, 시진핑이 주범이라면 오바마는 이 사태의 주조연 쯤 되는 것.[67] 당시 TPP 발효 기준에 TPP 가입국 GDP의 85%가 동의해야 발효가 가능하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TPP12 체제에서 GDP 17.6%를 차지하는 일본에게 사실상의 거부권을 부여했다는 논리.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 중국의 TPP 진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68] 훗날 일이긴 하지만, 2021년 태평양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관련된 후쿠시마 원전 폐수를 방류하는 데 바이든 정부가 일본의 결정에 동조 혹은 묵인했다고 까는 사람도 있다.[69] 실제로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정상회담도 미일정상회담이었다. 참고로 두 번째는 한국과의 한미정상회담이었다. 파이브 아이즈보다도 한일이 먼저라는 것 자체가 21세기 기준 서로간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말도 된다. 외교적으로 일본을 상당히 중시하는 것은 확실한데, 라이벌인 중국의 견제를 해야 되는데 위치도 가깝고 제3의 경제대국으로 방파제 역할도 하는 일본은 당연히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일본이 방파제라면 한국은 최전선 요새이기 때문에 한국도 미국에겐 외교적으로 중요하다.[70]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건 공화당도 마찬가지다.[71] 1. 문자 그대로 일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지일) 친화적인 것. 2. (역사적으로) 반민족행위자에서 기인해, 현대적으로 보자면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한국을 배척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것.[72] 첨엔 FDR도 전쟁은 원치 않으니 일본과 협상을 우선하려 했지만, 중일전쟁 와중에 중국을 뒤에서 지원하고 석유금수조치 등으로 일본의 철수를 대놓고 압박하는 FDR에 일본이 맛이 가서 진주만 공습을 일으키자 그냥 밀어버렸다.(...) 다만 이와중에 잠재적 스파이로 의심받은 미국 거주 일본인일본계 미국인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하는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질러, 이후 80년대 공화당 정권 시절 레이건 정부가 은근한 민주당 디스도 곁들여 이를 사과하기도 했다.[73] 특히 지미 카터10월 유신으로 출범한 박정희 독재정권과 인권 문제로 반목하면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그전에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 끝났지만 부차적으로 이 일 역시 미국이 동북아 외교에서 일본에 무게를 두는 계기가 되었다.[74] 정확히는 80년대부터 태어난 청•장년층에 많이 분포한다.[75] 역대 대통령이 우러러보는 선대 대통령은 주로 그 정당의 첫 번째 대통령으로 그린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화당 삽화에서는 공화당 출신 첫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려졌다. 참고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다 그린건 아니다.[76] 앤드루 존슨(17대)을 제외한 모든 민주당 대통령이 다 그려졌다. 존슨은 국민연합당(공화당+민주당 세력이 합쳐진 정당) 후보로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기 때문에(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이후 대통령직 승계)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포크, 뷰캐넌, 뷰런, 피어스, 클리블랜드는 그림 뒤쪽에 작고 흐릿하게 그려져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77] 이 시기를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 1817-1825)라고 한다. 참고로 이 시기 대통령은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 제임스 먼로였다.[78] 후에 다른 정당들과 합쳐져 휘그당이 된다.[79] 여담으로 1850년대 들어서는 민주당도 농본주의만 내세우는 게 아닌 시대적 상황에 맞게 철도 부설이나 공공시설 정비 등을 갖춰나가기 시작했고, 남북전쟁 이후엔 금융 자본 이익을 대변하는 부르봉 민주당원(Bourbon Democrat)도 나타난다.[80] 다만 이런 경향은 주로 북부에 휘그당원들에 한정된 것이었고, 휘그당 지도부는 노예제에 대부분 현상유지를 원했다. 때문에 당내 갈등을 벌이다 노예제에 비판적인 링컨 등 북부 휘그당원들이 공화당을 세우게 된다.[81] 대표적인 정치인들로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스티븐 A. 더글러스 등이 있다.[82] 주로 대도시에 사는 아일랜드인과 독일인 이민자들. 개신교도들은 주로 휘그당(후에 공화당)을 지지했다.[83] 대표적으로 더글러스는 노예제는 각 주의 주민들에게 맡겨야 된다고 주장했다.[84] 다만 노예제를 선거에 아예 써먹지 않은 건 아니라서 공화당을 '흑인 공화당'이라고 비난하고 집요하게 북부 백인들의 백인 우월주의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85] 다만 노예제 문제로 아예 사라져버린 휘그당과 다르게 민주당은 당체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게 된다.[86] 후에 링컨이 암살된후 대통령이 되는 앤드루 존슨이 이쪽 계열이었다. 다만 존슨의 정치적 기반은 남부(테네시)였기에 남부에서 배신자로 여겨졌다.[87] Copperhead라는 멸칭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 아메리카 살무사를 뜻하는 단어였는데 당시 공화당이 이들을 과 같이 사악하다며 붙인 별명이었다.[88] 앤티텀 전투 이후 남부에 공세를 내리라는 링컨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행동해 결국 교체되었다.[89]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 백인들은 이 기간 충성 서약을 하지 않으면 참정권조차 얻지 못했다.[90] 그 당시 남부 백인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91]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이 낸 첫 대통령이다.[92] 다만 항목에도 있듯 그의 성향은 오늘날에도 갑론을박은 있다.[93] 양원 다수당은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진다. 진보화를 통해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면서도 기존 텃밭이던 남부를 사수했기에 가능했던 것.[94] 닉슨과 레이건은 대선 당시 득표율은 그리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는 않으나 대부분의 주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를 얻어 선거인단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95] 재임 중 병사.[96] 재임 중 암살.[97] 부통령 선거에서 불충실한 선거인단으로 인해 1표 차이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1937년 2월 8일에 상원에서 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고 존슨이 33표를 얻어 당선되었다.[98] 재임 중 사망.[99]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재임 중 암살로 인한 대통령직 승계.[100] 재임 중 사망.[101]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중 병사로 인한 대통령직 승계.[102]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중 암살로 인한 대통령직 승계.[103] 제임스 K. 포크 재임기[104] 우드로 윌슨 재임기[105] 프랭클린 D. 루스벨트[114], 해리 S. 트루먼 재임기[106] 해리 S. 트루먼 재임기[107] 린든 B. 존슨 재임기[108] 조 바이든 재임기[109] 부시 부자걸프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이 대표적. 이는 그전까진 한동안 비교적 고립주의를 내세우던 공화당이 네오콘 세력이 크면서 1980년대 이후 강경한 개입주의로 변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 그전에도 미국-스페인 전쟁 등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면 끝이 없긴 하다.[110] 2010년대 오디세이 새벽 작전도 최소 개입주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의 여파가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왔기에 민주당도 강경한 개입주의는 꺼리는 분위기.[111] 당시 공화당의 전신인 휘그당은 민주당 제임스 K. 포크 대통령의 멕시코 침략이 부도덕한 전쟁이라며 반대했다. 다만 휘그당 시절 공화당은 지금의 민주당과 오히려 비슷한 성향이긴 했다.[112] 다만 민주당도 피그만 침공이나 통킹만 사건과 같이 침공을 하거나/전쟁 명분을 쌓기 위해 뻘짓을 하기도 했다.[113] https://www.factcheck.org/2016/07/dueling-claims-on-crime-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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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근데 이건 이 양반이 대통령을 엄청 오래한 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