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1:42:43

2024년 이란 대통령 선거

2024년 이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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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8일
2024 대선
2028년
2028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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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6월 28일
투표율 0.00%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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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과정3. 후보자 명단
3.1. 보수파3.2. 개혁파
4.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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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4년 6월 28일에 시행되는 이란대통령 선거.

원래대로라면 2021년 이란 대선 4년 후인 2025년 6월 18일에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2021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란 대통령에브라힘 라이시2024년 5월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일찍 치러지게 되었다. 즉, 일종의 보궐선거인 것.

대통령 궐위를 다룬 이란 헌법 131조에 따라 현재 모하마드 모흐베르 부통령이 최고지도자의 승인 하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 그 후 제1부통령,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으로 이뤄진 대통령 평의회가 선거를 주관하여 50일 내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다음 이란 대통령 선거는 2024년 6월 28일에 열리며 이 때 당선된 대통령은 잔여임기를 이어받는 일반적인 대통령제 국가와 달리 4년의 임기를 새롭게 부여받게 된다.

2. 과정

이란은 누구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는 있지만, 선거를 하기 전에 알리 하메네이가 임명한 6명의 위원과 알리 하메네이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6명의 위원으로 운영하는 헌법수호위원회라는 심의체에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명확한 기준없이 하메네이가 자기 기분에 따라[1] 후보를 걸러버린다. 이러한 제도 탓에 선거 자체가 하메네이의 허수아비 몇 중 하나를 뽑는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도 분명 사실이나 이란 내부 정치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이란의 선거제도는 서방 민주주의자와 같은 세력에게는 참여를 결코 허용하지 않지만 최소한 이란이 가지고 있는 '제도권 내'에서 이슬람 강경파, 온건파, 개혁파를 결정하는 정도의 역할은 수행하고 있으며 선출되는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이란의 정책 방향성도 상당 부분 변화가 있다.

다만 2021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선 유력 개혁파 후보를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모두 떨어트려서 개혁파인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이 최소한의 경쟁을 위해 개혁파 후보도 허가해야한다고 편지를 보낸 적도 있고 개혁파 지지자들의 선거 보이콧도 있었을 정도였던지라[2] 경쟁다운 경쟁이 이뤄질지, 또다시 원칙파 일변도의 대선으로 치러질지는 심의 결과를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월 3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받았고, 약 80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해 헌법수호위원회 심의를 받게 되었다. 나머지 30명이 넘는 사람들은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예비후보 등록부터 거절되었다고 한다. 한편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6월 11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이틀 앞선 6월 9일 발표되었다. 심의에 통과한 후보 6명은 6월 12일부터 27일까지 2주의 선거운동 기간을 갖고 28일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3. 후보자 명단

현지시간 9일,국영통신사 IRNA는 후보자가 최종 6명으로 확정됐다고 보도했으며 해당 6명을 이와 같이 분류했다#

3.1. 보수파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의장
사이드 잘릴리 전 외무차관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
무스타파 푸르모하마디 전 내무장관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 하셰미 전 의원

3.2.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의원

4. 결과


[1] 말은 원칙이 있다 운운하는데 대선 때마다 누굴 올리고 떨어뜨리는 지는 하메네이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복불복에 가깝다. 원칙파보다 개혁파 후보가 많이 걸러지기야 하지만 실제로 누가 봐도 하메네이가 통과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후보에 대해 하메네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기분 나빠서) 떨어뜨린 후보가 꽤 있으며 이는 보수파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2] 결과적으로 사실상 개혁파 단일후보가 된 압돌나세르 헤마티는 무색무취한 관료 출신으로 8.38%로 떡실신했다. 이란 내에서 로하니 정부와 개혁파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상황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문제는 로하니의 말마따나 사실상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