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4 15:10:01

1997년 알바니아 의회 선거

1997년 알바니아 의회 선거
Zgjedhjet parlamentare në Shqipëri,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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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6일
1997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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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1차: 6월 29일
결선: 7월 6일
투표율 72.56% ▼16.52%p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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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선거 결과

1. 개요

1997년 6월 29일, 7월 6일에 실시된 알바니아 의회 선거.

2. 배경

2.1.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를 넘어 나라의 뿌리를 뒤흔들어 거의 준 내전상태로 몰고간 거대한 국가적 파국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체 국민의 절반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다단계 회사에 돈을 넣었다가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날렸고, 경제의 기반이었던 기업들까지 줄줄이 무너졌다. 며칠 사이에 은행은 닫히고 공장은 멈춰 섰으며, 군부대 무기고까지 털리면서 막대한 량의 총기와 폭약이 거리로 흘러들었다.

특히 알바니아 남부 지역 도시들은 원래 중앙정부의 차별로 반감이 심했던 곳인데 아예 공권력이 무너진 탓에 갱단과 무장 시위대가 장악해 사실상 독자적인 치안을 운영했고, 수도 티라나에서도 정부 부처가 점령, 방화되는 등 중앙정부는 사실상 힘을 잃었다. 이 시점에서 한때 알바니아 민주화의 영웅이었던 살리 베리샤 대통령이 정상적인 통치를 이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말이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다단계 회사들은 처음부터 베리샤 정부 및 내각 인사와 유착 관계를 맺고 있었고, 정부는 공영방송을 통해 몇 달 만에 투자금 3배 같은 허위 광고를 대놓고 내보냈다. 국가 경제정책을 자문했다는 인물은 알고 보니 폰지 사기꾼이었고, IMF가 이를 인지하고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도 외세의 음모라고 밀어붙였다. 게다가 직전 총선인 1996년 총선은 여당 민주당의 압승 속에 부정선거 논란으로 얼룩져 사회다을 포함한 야당이 국회를 아예 보이콧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정권 아래에서 나라 전체가 무너지니, 국민들의 분노가 곧바로 반정부 투쟁으로 번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결국 1997년 3월에 들어 야당 사회당 출신의 시장이던 베리샘피노가 이끄는 과도 내각이 들어섰는데, 이 내각의 역할은 명확했다. 폭동을 가라앉히고, 국제 감시 아래 조기총선을 준비하는 것. 남부를 장악한 반정부 세력 측도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까지 무장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버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국 이탈리아, 프랑스,그리스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을 파견해 최소한의 치안만큼은 확보하게 했다. 그와중에 여러 외국 정부와 국제금융기구도 베리샤 정부를 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아 실질적 지원은 정권이 교체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분위기였다. 조기총선은 결국 국내외 모두가 인정한 유일한 출구전략이 된 셈이다.

3. 선거 결과

전국 결과
(선출의석: 140석 / 과반의석: 71석)
주요 정당 의석
<rowcolor=#fff> 정당 득표 득표율 의석
PS 690,003표 52.75% 101석 ▲91
PD 336,167표 25.70% 27석 ▼95
PSD 32,537표 2.49% 10석
PLL 42,567표 3.25% 2석
무소속 0.00% -석

직전 총선 부정 의혹과 국가 붕괴 수준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겪은 국민들은 여당 민주당(PD)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로 나타냈고, 그 결과 사회당(PS)이 전체 155석 중 단독과반을 월등히 넘는 101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승리 이상으로, 무너진 국가체계를 재정비하기 위한 정치적 리셋의 성격을 띠었다고 평가된다.

선거 이후 알바니아 정치의 지형도는 빠르게 재편되었다. 7월 23일 살리 베리샤 대통령이 사임함으로써 기존 정권이 공식적으로 퇴장했고, 곧이어 레제프 메이다니가 의회에서 간선으로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된데 이어 7월 25일에는 파토스 나노 사회당 대표가 이끄는 이끄는 새 내각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가 완성되었다.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선거감시단은 이 선거를 수용 가능한 선거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절차적 정당성은 인정하되, 치안 불안과 일부 지역의 폭력 사태로 인해 국제 기준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선거는 6월 29일 1차 투표와 7월 6일 2차 투표(32개 지역 재투표 포함)라는 이례적으로 복잡한 일정 속에서 치러졌으며, 여러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나 관계자들에 대한 폭력·위협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