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502829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초대 박종화 | 제7대 장발 | |||
제15대 이종우 | 제16대 서항석 | 제17대 김동리 | 제20·21대 류경채 | ||
제22·23대 정한숙 | 제24·25대 이대원 | 제26대 조병화 | 제27·28대 차범석 | 제29·30대 정회갑 | |
제33대 이인영 | 제34대 황병기 | 제35대 이신자 | 제36대 한명희 | ||
제37대 이근배 | 제38대 조흥동 | 제39대 신수정 | 제40대 김민 | 제41대 손진책 |
황병기 관련 틀 | ||||||||||||||||||||||||||||||||||||||||||||||||||||||||||||||||||||||||||||||||||||||||||||||||||||||||||||||||||||||||||||||||||||||||||||||||||||||||||||||||||||||||||||||||||||||||||||||||||||||||||||||||||||||||||||||||||||||||||||||||||||||||||||||
|
황병기 黃秉冀|Hwang Byeong-gi | |
<nopad>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관 | 우주 황씨[1] |
출생 | 1936년 5월 31일 |
경기도 경성부 가회정[2] | |
사망 | 2018년 1월 31일 (향년 81세) |
국적 |
|
가족 | 아버지 황태문, 어머니 이영애 아내 한말숙, 슬하 2남 2녀(아들 황준묵) |
학력 | 서울재동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단국대학교 (음악학 / 명예박사) |
종교 |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 |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야금 연주자, 국악인.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
2. 생애
1936년 5월 31일 경기도 경성부 가회정(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에서 아버지 황태문(黃泰汶, 1904. 5. 6 ~ 1972. 12. 5)[3]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영애(李永愛, 1900. 10. 4 ~ ?)[4]사이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1952년 부산 피난 시절 경기중학교 3학년생으로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7년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1959년부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출강했고, 1962년에 작곡을 시작, 다음 해인 1963년 첫 창작곡인 《숲》을 내놓아 '창작 국악'의 지평을 열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출신 국악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인데, 본래 가야금은 취미에 가까웠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제대로 된 국악과가 없을 정도로 국악계가 어려운 시절이라 처음부터 국악인으로 진로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악과 과장으로 그를 초빙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전통 악기를 다루지만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첼로 활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법이다.(미궁 연주 영상)을 보면 첼로 활을 쓰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원래 '튕기기'로 소리가 짧게 끝나는 기존의 가야금 음색이 아닌 바이올린처럼 길게 늘어나는 독특한 음색이 나올 수 있었다.
대표작으로는 전국의 수련회 교관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담력 테스트할 때 항상 애용하는 곡이자, 국내 게임인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의 메인 BGM으로 수록되면서부터 유명해진 《미궁》이 있다. 1975년에 발표한 곡인 《미궁》이 매우 파격적이어서 별별 루머가 나돌았고, 심지어는 작곡가인 황병기 본인이 《미궁》을 작곡한 직후 사망했다는 루머도 있었다.[5] 그래도 그의 음악은 음반을 통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전영혁의 음악세계[6]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예술원의 부회장 직책을 맡았으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재직하였다.
2017년 80세까지 연주 활동을 했다가(인터뷰), 2018년 1월 31일 오전 3시에 사망했다. 이때가 향년 81세이며 사인은 폐렴이다.(기사) 그가 사망한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그의 노래 '춘설'을 엔딩곡으로 띄우며 추모했다.#
3. 가족 관계
가족들의 이력도 화려하다. 부인은 5세 위의 한국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청주 한씨 한석명의 딸인 한말숙 선생인데,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동문이다. 그러나 나온 과는 달라서 황병기는 법학과를 나왔으며, 한말숙은 언어학과를 나왔다. 한편 장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력 있는 수학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좌교수다. 차남은 물리학자 황원묵(黃源默)이며, 역시 고등과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위 중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이 있다.우리 집사람하고 제가 결혼한 것이 1962년이었어요. 제가 27살 때죠. 그때 집사람도 데뷔해서 소설가로 이름을 날릴 때입니다. 저희가 서로 안 지는 오래됐어요. 집사람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다녔는데 국립국악원으로 가야금을 배우러 왔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둘이 같은 선생님께 가야금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서 사귀다가 "같이 살자" 그래서 결혼을 했어요. 집사람이 저보다 5살 연상이에요. 그래서 그 때는 좀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희 부모님들은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쉽게 결혼을 했죠. 제가 3대 독자인데 집사람은 이 집에 들어와서 아들 둘을 낳았어요. 큰아들은 수학자고 작은아들은 물리학자예요. 재작년에는 우리가 금혼식을 했죠. 둘이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오래 살다 보니까 지금은 같이 늙어가고 있는 거예요. 예전에 주례 서는 사람들이 신랑 신부를 보고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해로하라"는 말을 많이들 했는데 우리 부부야말로 이럭저럭 살다 보니까 해로가 됐지요. 그러다 보면 이제 죽을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죽으면 되겠지요.
○ 황병기 교수 인터뷰 중(출처)
○ 황병기 교수 인터뷰 중(출처)
4. 앨범
- 황병기 제2 가야금 작품집
- 황병기 가야금 창작곡집 (1987)
- 침향무 (1978.03.27)
- 미궁 (1984.03.10)
- 춘설 (1993.04)
- 우리 한마당 2집(국악(國樂) 제14집) (1994)[7]
- 비단길 (2001.07.01)
- 가야금(황병기 초기 연주집) (2001.07.04)
- 마고 OST (2002.01.01)[8]
-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 주년 헌정음반 (2004.12.01)[9]
- 황병기 가야금 작품집 Vol.5 - 달하 노피곰 (2007.06.11)
- 가야금 산조 (2014.12.09)
5. 저서
- 침향무 (1974.12.01)
- 밤의 소리 (1990.08.01)
- 영목·아이보개 (1993.08.01)
- 깊은밤 그 가야금소리 (1994.10.01)
- 춘설·달하노피곰 (1997.05.15)
- 나는 나답게 산다 (1998.12.05)
- 한국의 악기 다이어리 2002 (2001.10.25)
- 비단길 (2002.05.30)
- 가야금 선율에 흐르는 자유와 창조 (2008.10.10)
- 오동 천년, 탄금 60년 (2009.02.20)
- 전설 산운 (2009.08.19)
- 시계탑 하마단 (2009.08.19)
- 가야금 산조 (2010.05.20)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 가락 (2013.10.25)
- 살아보니 행복은 이렇습니다 (2019.04.10)
6. 수상
-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음악상(수절)
- 1995년
-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음악(영원한 제국)
- 제1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영원한 제국)
- 2001년
- 예술평론가협회상
- 제15회 예총 예술문화상 음악부문 대상
- 2003년
- 은관문화훈장
- 제10회 방일영국악상
- 2004년 호암상 예술상
- 2006년
- 제51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음악부문
- 제4회 타워상 전통예술부문
- 2018년
7. 여담
- 가야금 제작 장인들 사이에서는 잘 만든 가야금을 시험해 본 다음에 '팔기에는 아깝다'라고 생각되면 곧바로 황병기 씨한테 기증했다고 한다.
- 2015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2015)에 사용되는 《미궁》을 새롭게 녹음하였다. 원곡은 홍신자가 녹음하였지만, 재녹음판은 소프라노 윤인숙으로 바뀌었다.
- 본인이 작곡한 창작음악 위주로 활동했지만 전통 국악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으며, 본인이 직접 만든 '황병기류 가야금산조'가 있다[10]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현재 회원 | |||
[분과별 예술 분야] 문학분과: 소설, 시, 아동문학, 평론 미술분과: 건축, 공예, 동양화, 서양화, 서예, 조각, 태피스트리 음악분과: 국악, 바이올린, 성악, 작곡, 지휘, 첼로, 피아노 연극분과: 극작, 무대미술, 연기, 연출 영화분과: 감독, 시나리오, 연기 무용분과: 무용 | ||||
문학분과 | 미술분과 | 음악분과 | 연극·영화· 무용분과 | |
유종호 | 전뢰진 | 안형일 | 김정옥 | |
김우창 | 이신자 | 황영금 | 임권택 | |
황동규 | 최종태 | 이경숙 | 조흥동 | |
이근배 | 윤명로 | 이재숙 | 최청자 | |
김원일 | 이종상 | 서계숙 | 박정자 | |
한말숙 | 유희영 | 한명희 | 김숙자 | |
김후란 | 박광진 | 나인용 | 김지미 | |
김화영 | 엄태정 | 나덕성 | 손숙 | |
김주연 | 김숙진 | 신수정 | 정승희 | |
오세영 | 강창균 | 이경숙 | 김민희 | |
정현종 | 최의순 | 김민 | 박명숙 | |
유안진 | 정상화 | 이영자 | 손진책 | |
정연희 | 윤승중 | 백병동 | 정지영 | |
김주영 | 홍석창 | 장혜원 | 이호재 | |
오정희 | 조정현 | 김성길 | 신영균 | |
신달자 | 김형대 | 윤미용 | 신구 | |
윤흥길 | 이철주 | 이만방 | 이강백 | |
천양희 | - | 김우진 | 안성기 | |
전상국 | - | - | 김긍수 | |
최동호 | - | - | - | |
권영민 | - | - | - | |
김광규 | - | - | - | |
작고 회원 | ||||
문학분과 | 미술분과 | 음악분과 | 연극·영화· 무용분과 | |
박종화 | 고희동 | 박태준 | 안종화 | |
염상섭 | 이상범 | 현제명 | 이규환 | |
조연현 | 장발 | 이주환 | 유치진 | |
유치환 | 손재형 | 김성태 | 이해랑 | |
서정주 | 배렴 | 김동진 | 오영진 | |
윤백남 | 김환기 | 성경린 | 변기종 | |
오상순 | 윤효중 | 김영의 | 서항석 | |
이헌구 | 노수현 | 김원복 | 이광래 | |
김동리 | 도상봉 | 정훈모 | 김동원 | |
황순원 | 김인승 | 이흥렬 | 박진 | |
김말봉 | 배길기 | 임원식 | 김정환 | |
곽종원 | 허백련 | 김생려 | 이진순 | |
모윤숙 | 이종우 | 김세형 | 조택원 | |
신석초 | 김은호 | 이혜구 | 유한철 | |
박영준 | 이병규 | 이상춘 | 이병일 | |
김광섭 | 장우성 | 장사훈 | 이원경 | |
이은상 | 김경승 | 김자경 | 김천흥 | |
박화성 | 이순석 | 김기수 | 김소동 | |
박목월 | 오지호 | 박민종 | 김충실 | |
백철 | 김종영 | 전봉초 | 차범석 | |
최정희 | 박영선 | 김성진 | 유현목 | |
안수길 | 박득순 | 정희석 | 송범 | |
윤석중 | 천경자 | 홍원기 | 장민호 | |
오영수 | 이유태 | 황병덕 | 김수용 | |
김기진 | 유영국 | 정회갑 | 최금동 | |
임옥인 | 류경채 | 김순열 | 임성남 | |
구상 | 김원 | 김순애 | 이근삼 | |
손소희 | 김기창 | 이성천 | 신봉승 | |
이범선 | 이종무 | 황병기 | 김기영 | |
조병화 | 김충현 | 이인영 | 박현숙 | |
김춘수 | 이준 | 백낙호 | 김문숙 | |
정한모 | 허건 | 권오성 | 강성희 | |
김윤성 | 박노수 | 강석희 | 김지헌 | |
박연희 | 권옥연 | 김남윤 | 임영웅 | |
선우휘 | 백문기 | 이규도 | 이병복 | |
정한숙 | 문학진 | 박노경 | 김기덕 | |
신동집 | 남관 | 정진우 | 백성희 | |
강신재 | 이대원 | 박조열 | ||
박양균 | 권순형 | 황정순 | ||
한무숙 | 오승우 | 송수남 | ||
김성한 | 이광노 | 김학자 | ||
전숙희 | 윤영자 | 변장호 | ||
홍윤숙 | 권영우 | 남궁원 | ||
김남조 | 손동진 | 오현경 | ||
이호철 | 민경갑 | 윤대성 | ||
김종길 | 조수호 | |||
김요섭 | 이수덕 | |||
홍성유 | 서세옥 | |||
문덕수 | 김흥수 | |||
이어령 | 김병기 | |||
박두진 | 한도용 | |||
서기원 | 송영방 | |||
조경희 | 권창륜 | |||
성찬경 | ||||
김윤식 | ||||
최일남 | ||||
박완서 | ||||
이청준 | ||||
박희진 | ||||
오탁번 | ||||
신경림 | ||||
서정인 | }}}}}}}}} |
[1] 임피파(臨陂派) 31세손.(족보)[2] #[3] 족보명(族譜名)은 황원택(黃元澤). 초대 전국황씨중앙종친회 회장을 역임했다.[4] 이병순(李炳純)의 딸이다.[5] 실제로 너무 괴기스러워 공연장에서 그 음악을 듣던 여성들이 겁에 질려 우는 수준을 넘어 실신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6] 1986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한 KBS 2FM의 장수 프로그램.[7] 1번 '가야금 산조' 참여.[8] 10번 '마고성 고석정' 참여.[9] 12번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Duet. 전인삼)' 참여.[10]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했을때 1시간 20분정도 걸리는 자비심 없는 산조이다. 보통 산조 전바탕의 경우 각 유파에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가량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