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3 21:37:49

호르미즈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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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제국 3대 샤한샤
𐭠𐭥𐭧𐭥𐭬𐭦𐭣 | 호르미즈드 1세
파일:호르미즈드 1세.jpg
제호 한국어 호르미즈드 1세
중기 페르시아어 𐭠𐭥𐭧𐭥𐭬𐭦𐭣
영어 Hormizd I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271년
재위 기간 270년~271년

1. 개요2. 생애3. 창작물

[clearfix]

1. 개요

사산 왕조의 제3대 샤한샤.

2. 생애

호르미즈드(Hormizd. Ōhrmazd라고 쓰이기도 한다.)는 조로아스터교에서 가장 높은 신의 이름을 뜻하는 중세 페르시아어 명칭이며, 아베스탄에서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라고 부른다.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아우라마즈다(Auramazdā)이고, 그리스어로는 호르미스다스(Hormisdas)이다. 샤푸르 1세 치세 때 세워진 비문에 적힌 <영생의 불을 받은 수혜자의 목록>에 따르면, 그는 다른 왕자보다 앞서 적혀 있다. 그러나 <샤푸르의 고관 목록>에 따르면, 그는 2명의 형제보다 뒤에 적혀 있다. 일부 학자들은 전자의 목록은 샤푸르 1세의 로마 원정 기간 동안의 공로에 따라 나열되었고, 후자 목록에서는 나이와 관련하여 나열되었다고 가정한다. 이에 따른다면, 호르미즈드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샤푸르의 맏아들이 아니라 셋째 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계의 정설은 그가 샤푸르 1세의 장자라는 것이며, 일찍부터 샤푸르 1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건 분명하다.

비문은 호르미즈드를 "아르메니아인의 위대한 왕"으로 언급하며, 카이사르(필리푸스 아라부스)가 아르메니아를 사산 왕조에 넘기기로 약속했으나, 그는 또 거짓말을 했고 아르메니아에 해악을 끼쳤기에 로마를 정벌해야 했다고 기술했다. 이 '해악'은 샤푸르 1세에 의해 살해된 아르메니아 왕 호스로프 2세의 아들의 망명을 받아준 것과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학자들은 253년부터 256년 사이에 시리아, 킬리키아, 카파도키아에 대한 샤푸르의 두번째 로마 원정 때 카파도키아 원정과 도시 정복은 호르미즈드가 주도했다고 추정한다. 이는 비문에서 카파도키아 정복이 샤푸르 1세가 정복한 시리아 도시 목록의 '부록'으로서 독립적으로 기록된 데서 비롯된 추정이다. 또한 부친과 함께 안티오키아로 쳐들어가 마리아데스의 호응에 힘입어 함락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270년 5월 샤푸르가 사망한 뒤 샤한샤가 된 그의 치세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샤푸르 1세에서 나르세스 1세까지 조로아스터교의 신관으로서 활약한 카르티르(Kerdīr)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카르티르에게 상류층이 입던 옷과 모자, 허리띠를 주고 그를 수석사제로 임명했다고 한다. 마니교측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마니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그가 바빌로니아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한편 파르와르딘의 달에 있는 두 개의 새해 축제를 서로 연결하여 6일 동안 지속되는 대축제로 개편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리고 호르미즈드-아르다시르(Hormizd-Ardashir: 오늘날 이란 후지스탄주 아바즈)와 람호르미즈드-아르다시르(RamHormizd-Ardashir) 시를 건설했으며, 당시엔 폐허였던 아르테미타(Artemita)를 재건하고 다스카기르(Dastagird)로 개명했다.

271년 6월경 재위 1년만에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지역 전승에 따르면, 람호르미즈드에 묻혔다고 한다. 사후 동생인 바흐람 1세가 새 샤한샤로 등극했다.

3. 창작물

토탈 워: 로마 2의 DLC인 분열된 제국 캠페인에서 사산조의 황제로 등장한다. 본작 자체가 몇몇 주요 팩션의 리더들[1]을 히어로 격으로 대우하여 고유 스토리라인이 제공되기 때문에 사산조를 플레이할 시 오리지널처럼 그저 팩션리더 A 정도의 취급이 아닌 주인공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정사에선 1년만에 죽은 황제라서 괴리감이 엄청나다.

[1]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팔미라의 제노비아, 갈리아 제국의 테트리쿠스, 사산 왕조의 호르미즈드 1세, 고트족의 칸나바우데스 이렇게 5명이 히어로격으로 대우받으며 전투에서 죽어도 전사 처리되지 않고 부상 처리되어 몇턴 후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