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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자민련


1. 개요2. 사례
2.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새천년민주당2.2. 2006~2008 민주당계 정당의 암흑기
3. 유사 사례4. 기타
4.1. 전남 서부 자민련?4.2. 자민련보다 못하다?
5. 관련 문서

1. 개요

1995년에서 2006년까지 존재한 충청권 지역정당 자유민주연합에 빗대어, 특정 정당을 '호남에서만 지지를 얻는 지역정당'에 불과하다고 비유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주로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계 정당에 쓰이는 용어지만, 이것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주류 민주당계 정당을 뜻하는 경우도 있고[1], 민주당계 최대 정당보다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파생되었거나 호남계를 위주로 분열된 방계 민주당계 정당을 칭하는 경우도 있다.

2. 사례

2.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새천년민주당

파일:South_Korean_Legislative_Election_2004_districts.svg.png
17대 총선 지역별 결과. 지도에서 청록색새천년민주당이다.
새천년민주당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출한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이었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이 승리하며 다시 집권여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노무현과 친노 세력은 열린우리당으로 분당하였고, 대선 비용 등의 문제로 새천년민주당은 열린우리당에게 앙금을 품는다. 결국 타 야당과 함께 노무현 탄핵소추를 주도했지만, 탄핵에 실패하고 역풍을 맞아 17대 총선에서 대참패를 거뒀다. 그나마 경상도강남3구라도 지킨[2] 한나라당과 달리 말 그대로 호남 자민련이 되었고, 이것이 사실상 호남 자민련이란 멸칭의 시작이였다.

물론 광진구 을, 중구, 강북구 을, 영등포구 갑, 노원구 갑, 양천구 을, 안산시 상록구 갑, 남양주시 갑, 속초시·고성군·양양군,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등 일부 지역구에선 소지역주의와 인물론으로 인해 꽤 선전했긴 하지만, 결국 탄핵 역풍으로 전원 낙선을 이뤘으며, 그 호남에서도 5석만 건지면서 대참패를 하면서 조직력이 제대로 박살났다.

2.2. 2006~2008 민주당계 정당의 암흑기

파일: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060531.png 파일: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060531.png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지역별 결과. 지도에서 청록색민주당, 노란색열린우리당이다.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쪽과 새천년민주당쪽 둘 다에게 해당하는 표현이 되었다. 새천년민주당은 2005년에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었고[3],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이기긴 했으나, 양 당 모두 호남권 위주로 획득하고, 한나라당이 대부분을 쓸어갔다.[4] 민주당이 확보한 광역자치단체장광주광역시장전라남도지사 총 2석이고, 확보한 기초자치단체장 20석 중 15석이 광주광역시+전남 지역이었다.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조순형 의원이 성북구 을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2007년 6월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김한길계가 창당한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으로 개편하였으나, 2달도 안 되어 김한길계가 도로 집단 탈당하여 당명을 민주당으로 되돌린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명박이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싹슬이하였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정동영은 호남 외에 타 지역을 사수하지 못하였으며, 기초자치단체만 봐도 충청북도 보은군 1곳만 98표 차이 끝에 수성하였다.[5] 민주당은 충청계인 이인제가 대선후보가 되었으나, 0.7%라는 암담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8년,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나 참패하고 만다.[6]

그 이후로는 상황이 이보다 나아지긴 하나, 여전히 민주당계 정당은 민주당(2008년), 민주통합당-민주당(2013년),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치는 동안 암흑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는 민주당계 정당=호남 지역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깨기가 힘들었다.

3. 유사 사례

3.1. 국민의당, 그리고 민주평화당대안신당, 민생당

파일:국민의당(2016년) 로고.svg 파일:민주평화당 로고.svg 파일:대안신당 로고.svg 파일:민생당 로고.svg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부 갈등 끝에 안철수계호남계, 김한길계가 탈당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나뉘었고, 20대 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석권함과 동시에 호남 외 지역은 서울 2석(노원구 병 - 안철수, 관악구 갑 - 김성식)만 거둔 것에 대한 비유이다.[7] 거기에 당내 거물급 인사들이 대부분 동교동계-호남계 출신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8]

다만 2016년의 국민의당에게 "호남 자민련"이라는 타이틀은 꼭 부정적 의미는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호남 대부분의 의석을 석권했다는 것은 분명 아주 의미있는 성과였으며,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비례대표는 양당을 제치고 1위를 한 지역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돌풍은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까지는 호남에서 매우 강했다. 전북에서는 비교적 약했으나, 지역구 10석 중 7석에 비례대표 42%를 득표했다. 전남은 지역구 10석 중 8석에 비례대표 44%를 가져왔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지역구 전체를 석권했으며, 비례대표 53%를 득표하여 매우 강한 편이었다.

19대 대선에서 국민의당은 안철수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호남에서의 지지는 상당히 식었다. 광주에서는 30.08%, 전남에서는 득표율 30.7%를 기록해 문재인의 절반 정도로 밀렸으며, 전북에서는 트리플스코어에 가깝게 밀렸다.

이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을 추진하자, 호남계 의원들 다수가 반발하여 탈당하고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당의 후신인 바른미래당에서 호남 정당의 색채는 매우 옅어졌다. 한편 민주평화당은 호남 지역정당 색채가 더욱 강했는데, 출범 이후 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평화당 당선자들은 호남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민주평화당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모두 호남 지역구였다. 민주평화당은 국민의당 이상으로 호남 자민련이라는 별칭이 더 적합했다.

민주평화당은 당내 계파 갈등 끝에 박지원, 천정배 등 광주·전남 의원들이 대안신당으로 떨어져나갔고, 정동영, 조배숙 등 전북 의원들이 잔류했다. 이로 인해 민주평화당은 전북 자민련, 대안신당은 전남 자민련에 가까워졌다.[9]

한편 바른미래당에서는 당대표 손학규에 대한 반발로 친유친안계가 떨어져나갔으며, 손학규계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세 당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서 민생당으로 합당하였다. 이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던 옛 국민의당 시절의 호남계 세력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생당은 비례대표와 지역구 둘 다 한 명도 당선시키지도 못하며 원외정당으로 전락, 자민련에 비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10] 역시 TK 자민련이란 멸칭을 받은 미래통합당조차도 대경권은 철저히 지켜냈고, 부울경강원도 그리고 강남3구에서도 7회 지선보다 선전해 지지층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게다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해 0석의 결과를 얻었다. 이후 핵심 인사들인 정동영, 천정배, 유성엽, 주승용 등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했고, 윤영일, 조배숙은 국민의힘으로 전향했으며, 김한길, 손학규 등은 탈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동교동계 원로들은 고령이 되어 대부분이 정치에서 은퇴한 상황이고, 그나마 있는 유력 인사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양당으로 옮겨간 상황인지라, 호남계 정당은 앞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2023~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분당이 일어났는데, 이 때 DJ키즈 출신이자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했던 이낙연새로운미래를 창당하였으며, 민생당 인사 일부를 흡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쯤 같이 탄생한 소나무당, 대중민주당 등도 호남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호남 지역구는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하였고, 새로운미래[11], 소나무당, 대중민주당은 모두 민생당처럼 원외정당이 되었다.

4. 기타

4.1. 전남 서부 자민련?

미국에서는 북부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북부에서는 동부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동부에서는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뉴잉글랜드에서는 버몬트주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양키 문서에 언급된 미국 농담
새천년민주당-민주당국민의당-민주평화당은 호남 중에서도 전남 지역, 특히 전남 서부 지역에서 지지를 얻었다.[12] 이런 이유는 전북과 전남, 전남 서부와 전남 동부 민심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엔 호남 민심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전북특별자치도광주광역시·전라남도 간에 엄밀한 차이가 존재한다. 영남의 대경권부울경 간의 차이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지만, 이 차이는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동교동계친노를 지지하는 지역 간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김대중의 출생지가 전남인 만큼, 전남·광주는 김대중에 대한 지지가 가장 강한 지역이고, 동교동계의 지지가 높다. 새누리당이정현이 전남에서 당선된 것이 매우 극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전북에서는 구 동교동계보다 친노, 친문 계열의 지지가 높은 편이고, 전남 지역보다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더 잦다.

그리고 전남 안에서도 지지 성향의 차이가 존재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기반인 목포를 중심으로 하는 전남 서부, 전남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광주권, 전남 동부로 분류되는 여수, 순천, 광양 일대 지역인 일명 여순광의 민심은 미묘하게 다르다. 전남 동부는 경상남도와 가까우며, 지역차별이 횡행하던 시절에도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영남과 교류를 많이 해온 지역이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전남 서부~서남부와 달리, 전남 동부는 오히려 경남의 지리산권 지역과 한려수도섬진강 수계로 묶여있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전남 동부는 상대적으로 전남 서부에 비해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어서 동교동계에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동교동계 인사의 대부분이 목포, 무안 등 전남 서부 출신인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소외된 것에 비해 경제력이나 인구 면에서는 전남 동부의 우위가 확연하다 보니 이 부분도 전남 서부와 동부의 대립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로, 전남 동부는 서부보다 친노 - 친문 정치성향이 강하다. 전남 동부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을 심판하고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몰아준 역사가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순천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국민의당이 모두 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전남 서부에서 국민의당이 받았던 지지에 비해 당시 문재인 -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과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순천시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재선했는데, 당시 1위와 2위 대결은 새누리당 이정현 vs 더불어민주당 노관규의 양강 대결이며, 국민의당은 3위로 밀려난 모습을 보였다.

그 후 전남 동부에서 반 국민의당 정서가 강하게 불면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2배 차이로 압도했다. 실제로 순천시의 문재인 후보 득표율은 당시 전국 1위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고흥군 선거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민주당 출신 무소속이 승리했고, 민주평화당이 참패를 했다. 특히 전남 동부 정치의 중심 지역인 순천시에서는 민주평화당으로 출마한 모든 후보 중에서 2인, 3인 동시당선이 되는 시의원마저도 1명을 제외하고 다 쓸려나가버렸다.

민주당계 정당이 DJ계와 비DJ계로 갈라진 시기에서, DJ계 위주인 새천년민주당-민주당국민의당은 광주·전남에서는 항상 타 지역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높은 득표율을 항상 차지했었고, 해당 지역에서 1위를 못하더라도 타 지역에 비해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다만, 대선(17대, 19대)에서는 보수정당 대선 후보를 막고 당선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을 밀어주자는 심정 때문인지, 좀 더 지지세가 높은 민주당계 후보에 표를 줬다.[13][14]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시 국민의당의 안철수가 토론회에서 스스로 네거티브를 하는 실책을 벌이기도 했었고, 당시의 문재인 대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고 지속되어, 개표 결과 문재인이 호남에서 1위를 기록했다. 호남 지역은 부울경과 함께 문재인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평화당은 오직 호남에서만 5군데에서 승리하면서 호남 자민련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마저도 민주당의 공천 실패로 겨우 확보했을 정도며, 실제로 압승한 지역은 함평, 해남 이렇게 2곳 뿐이었다[15]. 물론 호남의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크게 패배했으며, 심지어 광주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4.2. 자민련보다 못하다?

호남 자민련은 특정 정당을 호남 지역정당으로 칭하는 멸칭에 가까운 의미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연합대한민국의 제3지대 정당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꼽히며, DJP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시기에 연립여당을 하기도 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정당 중에서는 성과가 자민련보다 못했던 정당도 많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국민의당조차 자민련의 전성기보다 의석수가 적었으며, 자민련이 10년 넘게 지속된 것과 달리 2년 정도밖에 활동하지 못했다. 민주평화당 등 다른 군소 호남정당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자민련이 비하적 표현이 된 이유는, 지역정당을 넘어 제대로 된 전국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현재는 충청권 보수정당의 맥이 끊겨 버린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자민련은 한국 지역 정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당 쪽에서는 자민련은 일시적으로 연합한 관계일 뿐 결국 다른 진영이었기에 크게 고평가하지는 않는다. 보수 진영에서도 자민련은 주류 보수정당과 다른 노선을 걸었기에 그렇게 고평가하지 않고, 자조적으로 TK 자민련이라는 말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5. 관련 문서


[1] 특히 호남 지역에 고립된 2006년에서 2008년까지의 암흑기를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2] 다만 경상도, 강남3구조차도 상당수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이 30%대 후반~40% 중반대를 득표하며 한나라당이 꽤 고전했다.[3] 이 민주당은 꼬마민주당이라 불리기도 했다.[4] 이 당시 참여정부가 임기 후반에 접어들며 레임덕 현상이 강해졌던 데다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내부 분쟁 등으로 인해 정권 심판론이 불며 일찌감치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던 선거였으며, 실제로 광역자치단체장 16곳 중 무려 12곳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은 전북지사 딱 1석만 건져내었다.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악의 대참패를 기록한 선거였다.[5] 단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선전하였고, 중부권 일부 시군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승리하기도 했다.[6] 다만 나은 점이라면 제주도 전 지역을 석권했고, 충청북도에서 8석 중 6석을 얻었다. 심지어 얻은 곳도 청주권과 충주, 중부4군 등 인구 밀집 지역이고, 나머지 2곳 중 1곳(남부3군)도 통합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한 의원의 지역구였으니 7석을 확보한 셈.[7] 심지어 이들 지역도 호남 출신 이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결국 호남 자민련이라는 그늘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8] 다만 비례대표에선 더불어민주당을 꺾고 전국 2위를 기록했는데, 이런 점을 보면 호남 외 지역에서도 지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국민의당에 대한 비례대표 득표율은 높았으나, 호남 출신을 제외하면 지역구 후보들의 경쟁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즉 정당 지지도에 비해 인물이 부족했던 것.[9] 다만 황주홍은 전남에 지역구를 두었으나 민주평화당, 김종회유성엽은 전북에 지역구를 두었으나 대안신당 소속이었다.[10] 자유민주연합은 이 정도로 몰락한 적이 없었다. 망해가는 상황에서도 충청도에서만큼은 의석을 획득했었기 때문이다.[11] 정확히는 김종민이 유일하게 당선되었으나 이것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등록무효 되어서 어부지리로 된 것이고, 이후 탈당하면서 원외정당이 되었다.[12] 자민련을 포함한 충청권 지역정당들 또한 이와 비슷한데, 대전, 충남에서는 기반이 나름 튼실했으나, 충북에서는 비교적 부진한 편이었다.[13] 17대 대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광주, 전남에서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그래도 민주당 후보 이인제의 득표율이 두 번째로 높았던 곳이 전남(2.39%)이었다. 1위는 이인제의 연고지인 충남(2.46%).[14] 단 17대 대선 당시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과 정동영 후보 선출로 당내 친노가 크게 위축되어 있었고, 비례대표를 제외한 민주당의 모든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며 대통합신당에 합류해 있었다.[15] 나머지 지역에선 3~5% 차이로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