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000><colcolor=#ffffff,#e0e0e0> 해리 콜린슨 Harry Collins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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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4~1945년 |
사망 | 1991년 6월 20일 (향년 46세) |
잉글랜드 더럼주 버츠필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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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형 로이 콜린슨 |
배우자 (이혼) 자녀 2명 | |
직업 | 공무원 |
소속 | 더웬트사이드 지방 의회 |
1. 개요
영국의 공무원이자 해리 콜린슨 살인사건의 피해자.2. 생애
더웬트사이드 지방 의회[1]의 최고 계획 책임자였고 사건 당시 건물 철거 당시에도 작전의 총책임자였다.# 또한 이혼하였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이기도 했다.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콜린슨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시골을 정말 좋아하여 지역 보호에 헌신을 다하는 사람, 또 의견의 방향성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였다고.
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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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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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콜린슨 자연 보호 구역 |
지역 사회 구성원의 요구로 수행해야 했던 일을 해낸 그에게 비극적인 대가가 따르다. |
1991년 6월 20일 |
이후 더웬트사이드 지방 의회에서는 콜린슨을 기리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거리를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고 명패를 설치했다.#
2011년, 콜린슨의 사망 20주기를 맞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헌정기념관 옆으로 명패가 옮겨졌다.#
2017년, 콜린슨을 살해한 앨버트 드라이든이 뇌졸중으로 출소한 뒤에도 그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콜린슨의 형 로이는 "개인적으로, 저는 앨버트 드라이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가 천천히 죽어간다면 다행이죠. 정말 기쁠 겁니다."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