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7:51:02

하남 평야

1. 개요2. 고대 도시

[clearfix]

1. 개요

'하남(河南), 즉 황하의 남부'에 위치한 평야를 의미한다.

장강 평야와 인접해 있으며 황하, 진령 산맥, 대파 산맥, 운귀 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2. 고대 도시

  • 낙(洛) : 북쪽으로는 황하가 흐르며, 남쪽으로는 황하의 지류인 낙수(洛水)가 흐르고 있는 곳이며, 낙수와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낙(洛)'이라고 불렸다. 이 곳의 서쪽에 있는 관중 분지와는 함곡관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에 사수관이 있고, 남쪽에 이궐관이 있다. 영제가 184년에 낙양 주변의 함곡관·광성관·이궐관·대곡관·환원관·선문관·소평진·맹진 8곳에 도위를 두었는데, 이를 통칭해 '낙양 8관'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구주지복지(九州之腹地, 중화 9주 중에서도 배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불렸다. 이후 주나라(서주) 때 수도인 호경(鎬京)의 별칭인 '종주(宗周)'에 버금가는 도시가 되어 '성주(成周)'로 불렸다. 그러다가, 주나라가 건융의 침략으로 관중 분지에서 밀려난 이후 동주 때 수도로 천도하면서 낙읍(洛邑)으로 개명되었다. 반면에 초한전쟁부터 유방의 세력은 함곡관을 두고 관중 분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배후를 걱정할 것 없이 요충지로 활용하였다. 이 곳은 나중에 낙양(洛陽:뤄양)으로 개명되었다. 한수마초의 내분으로 조조가 관중 분지를 평정하고나서 나중에 조비가 칭제를 하고 본거지를 업성에서 이 곳 낙양으로 천도하였다. 현대에는 행정상 뤄양시로 편성되었다.
  • 계봉(啓封) : 나라가 진(秦)나라를 침략하고나서, 진나라의 반격으로 위나라는 기존의 수도였던 안읍을 잃어버린 이후, 기원전 364년부터 이 곳이 위나라의 수도로 지정되고난 당시에는 대량(大梁)으로 불렸다. 그 후에 북송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나중에 개봉(開封:카이펑)으로 개명되었으며, 현대에는 행정상 카이펑시로 편성되었다.
  • 허(許) : 주나라 시대에 '허(許)나라'가 있던 곳이다.[1] 때문에 원래는 그냥 '허(許)'라고만 불렸는데, 군현제에서 연천군 소속의 '허현'으로 편성되었다. 조조가 기주하북 평야를 점령하기 전까지 주요 지점이었으며, 조조는 헌제를 이곳으로 모셔와 새로운 도읍으로 삼은 때에 도(都)를 추가로 붙여서 허도(許都)로 개명되하다. 그 이후에 조조는 '나라가 수도를 진양에서 한단으로 천도'한 것처럼, 하남인 이 곳 허창에서 하북인 업성으로 본거지를 이전하였다. 조위조비가 허창(許昌:쉬창)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왕조를 창업하여 낙양으로 천도해서 옮겨갔다. 이 곳은 현대에는 행정상 쉬창시로 편성되었다.
  • 팽성 : 계중이 일대에 비나라를 건국한 것에서 지명이 유래했고, 팽나라를 거처서 팽성이 건설되었다. 이후 팽나라는 서나라 령이 되었다. 서나라는 전성기에 인근 다이좡진에 수도를 두었다. 이후 나라가 침공해서 점령하였는데, 이후에 오나라는 월나라구천에게 정복당했고, 이후에 오나라는 초나라에게 정복당했다. 주나라와 초나라의 공격으로 약해진 서나라는 기원전 506년 오나라에게 멸망했다. 나중에 서나라 영토는 고대 9주에 해당하는 서주(徐州:쉬저우[2])로 편성되었다. 서초의 항우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행정상 피저우시로 편성되었다.
  • 하비 : 팽성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지역이다. 합비와는 다른 곳이다. 군웅할거기 초반에 서주 일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에 격전지였던 곳이다. 한때 손견이 이곳의 승(承)으로 있었으며[3], 이후 서주 자사로 임명된 도겸의 영토가 되었다가 도겸으로부터 서주를 물려받은 유비의 세력하에 귀속되었다. 그 뒤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를 강탈한 여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여포가 조조에게 쫓기다 영토를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이곳에 머무르며 전투를 벌인 끝에 처형된 뒤에는 조조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이후 원술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조조의 밑에서 빠져나온 유비가 일시적으로 서주를 수복해 다시 유비의 영토가 되었고, 조조가 유비를 공격할 당시에는 관우가 이곳을 지키며 계속 항전하다 결국 조조에게 투항했다. 그 뒤에는 계속 조조와 그를 이은 화북 정권(위-진)의 영토로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국 장쑤성쉬저우시 산하 현급시피저우시에 해당하는 곳[4]이다. 피저우가 한국 한자음으로는 비주이고 비는 당연히 같은 邳자를 쓴다.
  • 신정(新鄭) : 정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며, 나중에 한나라가 빼았아서 자국의 수도로 삼았다. 관도 대전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행정상 정저우시로 편성되었다.
  • 수춘(壽春) : 초(楚)나라의 4번째이자, 전국시대 초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곳이다. 또한 항우가 팽성을 수도로 삼기 전까지 이 곳을 사실상 서초배도로써 활용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대의 서우현이 있는 곳으로, 수춘삼반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 임치(临淄) :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 즉묵(卽墨) : 나라 시절부터 항구 도시로 유명했다. 나중에 청도(靑島:칭다오)로 개명되었으며, 현대에는 행정상 칭다오시로 편성되었다.
  • 상구(商丘:상추) :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현대에는 행정상 상추시로 편성되었다.
  • 낭야(臨沂:린이) : 월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현대에는 행정상 린이시로 편성되었다.


[1] 비슷한 경우로는 연나라에게 멸망을 당한 계(薊)나라가 있다.[2] 현대에는 행정상 쉬저우시로 명명되었다.[3] 이곳에서 손권이 태어났다.[4] 당시 수춘낭야의 사이, 소패회음의 사이에 위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