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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b70415> 출생 | <colcolor=#000000,#b70415>1921년 10월 4일 |
| 페루 리마 | |
| 사망 | 2022년 7월 14일 (향년 100세) |
| 페루 리마 미라플로레스 | |
| 국적 | |
| 재임기간 | 제51대 페루 대통령 |
| 1975년 8월 29일 ~ 1980년 7월 28일 | |
| 정당 | |
| 약력 | 재정경제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페루군 총사령관 국방부 장관 페루 총리 페루 제51대 대통령 |
1. 개요
페루의 제51대 대통령이자, 군인. 대통령 임기 당시엔 군정 소속이었다.2. 생애
1921년 10월 4일 리마에서 태어났다. 페루의 제28대 대통령인 레미히오 모랄레스 베르무데스의 손자이다. 그의 가문은 원래 페루 남부 타라파카에 거주했으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여 가족이 북쪽으로 이주했다. 1939년 초리요스 사관학교(Escuela Militar de Chorrillos)에 입학했다. 준장으로 승진 후 1968년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 정부의 경제재정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2달 후 정부의 내분으로 사임했으나 강경 좌파민족주의 성향의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가 집권 후 그를 다시 경제재정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1974년 장관 사임 후 페루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75년 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직했다. 1975년 8월 29일 벨라스코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집권했다.집권 후 전임 벨라스코의 강경 좌파민족주의 성향에서 탈각해 보다 온건한 노선을 추진했다. 헨리 키신저가 추진한 콘도르 작전에 참여, 아르헨티나 군사정권과 국제공조하여 1980년 아르헨티나의 국가 테러 조직인 601정보대대가 페루에 있던 아르헨티나인 망명객들을 납치할 수 있게 협조했다. 경제위기를 해결하지 못하여 국내외의 전방위적인 압력이 가중되자 1980년 페르난도 벨라운데의 민정에 이양했다.
2007년, 콘도르 작전과 관련해 이탈리아 국적자 20여 명이 실종된 사건이 다시 국제적 이슈가 되면서 남미의 다른 군사정권 인사들과 함께 이탈리아 사법당국으로부터 송환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실제 송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법적 문제는 계속됐는데 2012년에는 아르헨티나 법원이 과거 정치적 반대파 13명을 납치한 혐의로 송환을 요청했고, 2015년에는 페루 국내에서도 관련 법적 절차가 개시되며 수사가 다시 진행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역시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궐석한 상태로 2017년 안데스 여러 국가의 전직 군인들과 함께 이탈리아 법정에 회부되어 2019년 콘도르 작전 연루 혐의가 인정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페루 정부가 끝까지 송환에 응하지 않아, 판결은 상징적 의미에 머물렀다.
2021년에는 정국 위기 와중에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의 축출을 군에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한 63명의 전직 군인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페루 국방부는 해당 서한은 군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며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