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토머스 세인트 레거 Thomas St. Leger |
출생 | 1440년경 |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 |
사망 | 1483년 11월 8일 (향년 42~43세) |
잉글랜드 왕국 엑서터 | |
아버지 | 존 세인트 레거 |
어머니 | 마조리 도넷 |
형제 | 랄프, 제임스, 바르톨로뮤, 마거릿 |
배우자 | 요크의 앤 |
자녀 | 앤 |
직위 | 바스 기사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 기사, 군인. 장미 전쟁 시기 요크 왕조 편에서 랭커스터 왕조에 대적했지만, 리처드 3세가 에드워드 5세를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버킹엄 공작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엑서터에서 참수되었다.2. 생애
잉글랜드 남동쪽 끝자락인 켄트주에 영지를 소유한 기사 집안인 센인트 레거 가문의 일원이다. 그의 아버지 존 세인트 레거는 1430년 켄터의 보안관을 역임했고, 어머니 마조리 도넷은 켄트 주 레인햄 교구의 실햄 출신인 제임스 도넷의 딸이자 상속녀였다. 그는 이들 부부의 차남이었고, 형제로 랄프, 바르톨로뮤, 마거릿이 있었다. 144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 랄프가 가문의 영지를 물려받았고, 그는 요크 왕조를 섬기는 전사로 활동했다. 1465년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벌어진 소규모 싸움에 참여했다가 손을 자르는 형벌을 선고받자 탈출했고, 에드워드 4세의 사면을 받았다. 1471년 바넷 전투와 튜크스베리 전투에 참여해 에드워드 4세의 승리에 기여했고, 147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와 에드워드 4세 간의 평화 협상을 돕는 등 에드워드 4세 치세 내내 충실히 섬겼다. 에드워드 4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영지 8개를 하사하고 바스 기사로 선임했다.그는 어느 시점에서 에드워드 4세의 여동생이자 제3대 엑서터 공작 헨리 홀랜드의 아내인 요크의 앤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1472년 헨리 홀랜드와 요크의 앤이 이혼한 뒤, 1474년 요크의 앤과 결혼했다. 요크의 앤은 1476년 외동딸 앤을 낳았지만,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후 토머스는 재혼하지 않았고, 1481년 왕의 허락을 받고 아내를 기리기 위해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2명의 사제로 구성된 상설 예배당을 설립했다. 1483년, 그의 외동딸 앤은 엘리자베스 우드빌 왕비가 에드워드 4세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인 리처드 그레이에게 주어진 일부 영지를 제외한 엑서터 전체의 상속녀로 선포되었다.
1483년 4월 9일,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 후 에드워드 4세의 장남 에드워드 5세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지만, 그 해 6월 22일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에드워드 5세의 숙부인 리처드 3세가 왕위를 찬탈하고 에드워드 5세와 동생 슈루즈버리의 리처드 왕자를 런던 탑에 감금했다. 토머스는 리처드 3세의 대관식에 참석했고, 그로부터 귀중한 선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곧 관직을 잃었고, 그의 딸이 받을 예정이었던 엑서터 공작령의 권리는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태퍼드에게 넘어갔다.
그 후 에드워드 5세와 슈루즈버리의 리처드 왕자가 실종되자, 그는 1485년 10월에 발발한 버킹엄 공작의 반란에 가담해 리처드 3세를 타도하려 했다. 그러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엑서터에서 체포된 뒤 11월 8일에 참수되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많은 돈을 헌납했지만 처형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외동딸 앤 세인트 레거(1476 ~ 1526)은 제11대 로자 남작 조지 매너스와 결혼했다. 그녀의 후손들은 러틀랜드 백작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나중에는 러틀랜드 공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