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9 23:28:25

쿠로키 토모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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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ccccc,#323232> '''<1군>
21 요시이 마사토 [[감독#s-1.1|
]] · 70 후쿠우라 카즈야 · 71 무라타 슈이치 · 73 카나자와 타케시
80 오츠카 아키라 · 82 오노 신고 · 84 쿠로키 토모히로 · 87 네모토 슌이치
88 카네코 마코토 · 90 미츠야마 히데카즈'''
'''<2군>
72 미키 료 · 75 호리 코이치 · 76 에무라 나오야 · 77 구리하라 켄타
78 오토나리 켄지 · 81 이시미네 쇼타 · 83 모로즈미 켄지 · 86 사부로 [[감독#s-1.1|
]]'''
<재활/잔류군>
79 마츠나가 타카히로 · 85 오타니 토모히사
<트레이닝>
1군 키쿠치 다이스케 · 네모토 준페이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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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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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50 1951 1952~1953 1954 1955~1956
에바라 요시미 호시노 타케오 노무라 타케시 시미즈 히로카즈 아라마키 아츠시
<rowcolor=#ffffff> 1957 1958~1959 1960~1961 1962 1963
우에무라 요시노부 아라마키 아츠시 오노 쇼이치 사카이 카츠지 오노 쇼이치
<rowcolor=#ffffff> 1964 1965 1966 1967 1968~1969
호리모토 리츠오 코야마 마사아키 츠마시마 요시로 코야마 마사아키 사카이 카츠지
<rowcolor=#ffffff> 1970~1971 1972 1973 1974 1975~1982
키타루 마사아키 나리타 후미오 키타루 마사아키 나리타 후미오 무라타 쵸지
<rowcolor=#ffffff> 1983~1984 1985 1986~1990 1991~1994 1995
미즈타니 노리히로 후카자와 요시오 무라타 쵸지 코미야마 사토루 이라부 히데키
<rowcolor=#ffffff> 1996 1997~1998 1999~2001 2002~2003 2004~2005
소노카와 카즈미 코미야마 사토루 쿠로키 토모히로 네이선 민치 시미즈 나오유키
<rowcolor=#ffffff> 2006 2007 2008 2009 2010~2014
쿠보 야스토모 시미즈 나오유키 코바야시 히로유키 시미즈 나오유키 나루세 요시히사
<rowcolor=#ffffff> 2015~2018 2019~2020 2021 2022 2023~2024
와쿠이 히데아키 이시카와 아유무 후타키 코타 이시카와 아유무 오지마 카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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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黒木知宏2024.png
<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No.84
쿠로키 토모히로
黒木知宏 | Tomohiro Kuroki
출생 1973년 12월 13일 ([age(1973-12-13)]세)
미야자키현 휴가시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노베오카가쿠엔 고등학교
신체 178cm / 84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대학생ㆍ사회인 드래프트 2순위(역지명)[1]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1995~2007)
지도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투수코치 (2013~2017)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투수코치 (2023~)
해설위원 닛폰 방송 야구 해설위원 (2008~2012)
NHK BS1, 닛폰 테레비, J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8~2022)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2.1. 1998 시즌2.2.2. 1999 시즌~2000 시즌2.2.3. 2001 시즌2.2.4. 공백의 3년과 2004시즌2.2.5. 2005 시즌~2007 시즌2.2.6. 은퇴
3. 코치 경력4. 기타

[clearfix]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현 치바 롯데 마린즈의 투수코치. 코미야마 사토루와 함께 90년대 치바 롯데 마린즈의 암흑기를 이끌었으며 투혼의 에이스[2], 죠니, 죠니 쿠로키라는 별명도 가졌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시절 소프트볼팀의 에이스로 활약을 하였다. 이후 중학교로 진학 후 야구보다 보디빌딩에 열중하였으며 파워 리프팅 현 대회에 나가서 우승한 경력도있었다.

고등학교로 진학 후 3학년때 처음으로 여름고시엔에 출전했지만, 첫 출전 경기인 2차전에서 아데모토 겐이치로[3]가 소속된 욧카이 공업고등학교에게 8대4로 패배하며 여름고시엔에서 탈락하였다.

노베오카 고등학교시절 후배인 쿠로키 준지[4]와 배터리를 짜고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후 2002년 쿠로키 준지가 치바롯데로 이적하면서 다시 동료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이 있는 신오지 제지 가스가이에 입사 하였다.

199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에 2순위 역지명[5]으로 지명 받아 입단하였다.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파일:이미지_2024-04-27_211141684.png
입단 1년차인 1995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으며. 데뷔 첫승을 완봉승으로 올리며 20경기 등판해 5승 7패를 기록하였다.

1996시즌에는 개막엔트리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일찌감치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지면서 1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발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불펜으로 전환되었다.

1997시즌에는 처음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팀 최다승인 12승을 올렸고 평균 자책점 2점대를 기록하였다.그러나 패전 수는 리그 최다인 15패를 기록... 총 240이닝(?)을 던지며 리그 최다인 13완투를 기록하며 팀 에이스인 코미야마 사토루와 함께 더블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2.2.1. 1998 시즌

팀은 개막부터 호조를 이르며 4월을 마친 시점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쿠로키 자신도 4월은 패없이 3승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마무리였던 가와모토 이쿠유키[6]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팀은 침체되게된다. 코치진은 지금까지 팀 최다승인 6승을 올리고있던 쿠로키를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며 반격을 도모할려고 했지만, 쿠로키는 연속으로 세이브에 실패했고[7], 그리고 팀은 16연패...를 당하고말았다.

7월 7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에서는, 2군에서 선발로 복귀하기 위해 재조정을 하고 돌아온 쿠로키가 연패 스토퍼로 선발 등판하였다. 경기는 3회에 롯데가 후쿠우라 카즈야희생 플라이, 훌리오 프랑코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따냈고, 4회 말에 쿠로키가 폭투를 저지르는 바람에 오릭스에게 1점을 내주긴 했으나 6회 초에 마크 캐리온의 솔로 홈런으로 실점을 만회했다. 쿠로키 역시 팀의 연패를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마음으로 4회 말 폭투 실점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강력한 구위를 유지하면서 오릭스 타선에게 점수를 내주지 않는 호투를 펼치며 2점 리드를 지켜냈고, 9회 말 선투타자였던 스즈키 이치로까지 삼진으로 잡아낸 데 이어 후속 타자였던 트로이 닐에게 안타로 출루를 허용하긴 했지만 뒤이어 타니 요시토모를 파울플라이로 아웃시키면서 드디어 팬들이 바라던 연패 탈출까지 아웃카운트 단 1개만 남겨놨으나...

타니의 후속 타자였던 하비 풀리엄이 쿠로키의 시속 146km짜리 인코스 패스트볼을 강타하여 좌측 외야 스탠드로 뻗어나가는 동점 2점 홈런을 만들었고, 롯데의 연패 탈출까지 단 1아웃만 남긴 상태에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때까지 139개의 공을 던지며 힘이 다하도록 완투하던 쿠로키는 동점 홈런을 얻어맞은 직후 지쳐버려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아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되었다. 게다가 탈수 증상에 더해 피로로 인해 경련까지 이르키고 있었으며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교체되었다.
파일:쿠로키의 눈물.jpg
동점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주저앉은 쿠로키 토모히로[8]

이후 경기는 연장 12회로 흘러가 오릭스가 쿠로키의 후속 투수였던 후지타 소이치, 콘도 요시히사를 상대로 무사 만루를 만든 뒤 헤이세이 퍼시픽리그 제 1호 홈런을 쳐내는 등 기념 홈런을 여럿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히로나가 야스타카를 대타로 내보냈고, 히로나가는 콘도의 투구를 우측 담장 너머로 넘기는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경기를 끝장내 버리면서 그렇게 치바 롯데 마린즈일본프로야구 연패(連敗) 기록을 경신하는 17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패전은 칠석의 비극이라고 불리게되었으며, 후일담으로 쿠로키는 코미야마로부터 "왜 마운드에 주저앉았냐 아직 경기는 안끝났다. 마운드에서 주저앉으면 안된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면 안돼 쿠로짱" 이라고 설득하였다고 한다.후에 쿠로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날부터 사람은 나를 비극의 에이스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일본 전역에서 단 한명 코미야마만이 자신의 달콤함을 간파해 주었다'고 적고 대단히 감사하다고 썼다.

연패를 탈출한 후에는 회복되어, 올스타전에 첫 출전하였으며 리그 최다승과 최고승률를 기록하였다.

2.2.2. 1999 시즌~2000 시즌

1999시즌도 올스타에 선출되었으며 리그에서도 개인 최다인 14승을 올리는 등 오랫동안 코미야마 사토루와 함께 팀의 암흑기를 지탱하였다.

2000년에 코미야마 사토루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하면서 진정한 에이스로 기대를 하였지만. 이후 스프링캠프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고말았다. 쿠로키는 개막전 등판을 위해 무리해서 재활을했지만, 개막전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에서 아키야마 코지에게 1회 선두타자 홈런을 맞으며 개막전부터 질질 끌려가버렸다. 전반기에 평균자책점 10점대를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 빠지게된다. 이후 전년도에 선발된 시드니 올림픽야구 대표팀 출전을 위해 2군으로 내려가게되었다. 올림픽에서 활약이후. 복귀한 후반기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을 가진 채로 등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9월 13일에는 통산 1000이닝을 달성하였다.

2.2.3. 2001 시즌

2001년 3월 24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등판하여 당시 헤이세이의 괴물이라고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승부하여 이기며 21세기일본프로야구 공식전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절정의 폼으로 올스타전 전까지 11승을 올리며 리그1위에 올랐지만. 작년부터 계속되던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을 치료없이 질질 끌고온 상태였으며 올스타전과 그다음으로 출전한 오릭스전에 강행으로 출전한 후, 후반기부터는 부상으로 1군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부상 때문에 도시락의 저주를 받은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2.2.4. 공백의 3년과 2004시즌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에 관해서, 당초에는 가시상근 염증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부상으로 진단 받았지만. 어깨 안쪽 인대가 몇개나 완전 손상시키는 중상이었던 것이 나중에 판명되었다, 수술을 선택하지 않고 자연 치유를 선택해 단조로운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달리기를 반복하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또한 투구 폼도 어깨에 부담이 되지않는 사이드암 스로에 가까운 폼으로 바꾸는 등 2004년 1군으로 승격할때까지 3년이라는 긴 세월을 재활에 매진하게되었다.

이후 2004년 6월에 3년만에 1군으로 승격하여 3년만에 승을 올렸다,

시즌종료 후 연봉협상에서 스스로 구단 제시액보다 1000만만 엔[9]을 감소하며 계약을 갱신했다.

2.2.5. 2005 시즌~2007 시즌

2005년에는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으며 전반기에는 재활을 하였다.

8월 28일에 치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3만명의 마린즈 팬 앞에서 복귀 후 1545일 만에 홈구장 승을 올렸다.

2005년에는 롯데의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과, 1995년 이후 10년 만의 A클래스를 확정하였고. 이후 팀은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쿠로키는 일본시리즈에서 등판할 기회는 없었지만 2005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아시아 시리즈 3차전 3회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초대 아시아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6년 7월 28일 2군으로 말소 후 1개월 반 만에 1군에 등록되어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프로 12년만에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전성기때 1억 8000만 엔이었던 연봉이 2007년에는 10분의 1이하로 떨어졌다.

2007년에는 2001년 이후 개막엔트리에 포함되었다.

4월 2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 7회말 2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G.G.사토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후 4월 30일 2군으로 말소되고 나서 다시는 1군에 등록되는 것을 볼수없었다...

2.2.6. 은퇴

2007년 10월 2일에 구단으로 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지만 쿠로키는 현역연장 의지가 있었기에 다른 구단의 오퍼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퍼는 오지않았고. 결국 12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쿠로키는 자신이 등판했던 칠석의 비극을 통해 18연패를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야구의 훌륭함과 무서움을 전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일:이미지_2024-04-27_211317538.png
2008년 3월 1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은퇴식이 열렸다.시범경기으로써는 이례적인 표 25,000장이 매진되었고, 당일권도 발매 10분 만에 매진되는 등, 28926명의 만원 관중 앞에서 암흑기를 지탱해준 투혼의 에이스는 은퇴하게 되었다.

3. 코치 경력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1군 투수코치를 맡았으며, 2023년 시즌부터 선수시절 소속팀인 치바 롯데 마린즈의 1군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4. 기타

  • 별명인 죠니 는 사회인 시절 미팅에서 졸았다는 벌로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야마모토 죠지[10]를 닮았다고 죠지 라고 불렸지만 후배가 '죠지가 아니라, 조니로 합시다' 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에 유래라고한다. 그 후 프로 첫승 인터뷰에서 쿠로키가 '54번은 죠니이니 잘부탁드림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죠니의 애칭이 정착되었다.
  • 낚시가 취미이다.
  • 학창시절에는 야구보다 보디 빌딩에 빠졌으며 파워리프팅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 와타모테의 주인공인 쿠로키 토모코를 비롯한 쿠로키 가족의 성씨는 이 야구선수에서 따왔다.[11]
  • 딸이 둘 있는데 큰딸은 현재 치바 롯데 마린즈의 치어리더 팀인 M☆Splash!!의 멤버인 MEI라고 한다. #


[1] 1993년부터 2006년까지 대학/사회인 선수 한정으로 한 구단 당 2명까지 선수 스스로 특정 구단 입단을 확정하고 지명권을 더 소모하는 식의 제도[2] 롯데가 NPB 최다경기 연패 기록을 경신한 칠석의 비극 경기에서 혼신의 역투를 펼치고도 하비 풀리엄에게 동점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주저앉은 모습은 롯데 올드팬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은 이미지다.[3] 1992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2000년에 은퇴하였다.[4] 원래는 포수였으나 투수로 전향후 1996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해 2002년에 치바롯데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2003년에 은퇴하였다. 여담으로 입단발표 당시 이치로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이치로의 팬을 자신의 팬으로 만들고 싶다 라는 대담한 발언을 했었다.[5] 1993년부터 2006년까지 대학/사회인 선수 한정으로 한 구단 당 2명까지 선수 스스로 특정 구단 입단을 확정하고 지명권을 더 소모하는 식의 제도[6] 1992년에 입단해 1999년까지 치바롯데에서 활약했으며 1997년에 2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팀의 마무리자리를 지켰으나 1998년 어깨부상을 당하며 폼이 떨어져 결국 2000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닛폰햄 라쿠텐을 거쳐 2007년에 은퇴하였다.[7] 3경기등판해서 0승 2패 평균자책점 21.6...[8] 뒤쪽에 있는 선수가 1루수를 보던 후쿠우라 카즈야, 옆에서 쿠로키를 바라보는 두 사람은 각각 스즈키 노리오 배터리코치와 선발 포수로 출장했던 후쿠자와 유이치.[9] 약 1억[10] 일본의 가수[11] 쿠로키 토모코외에도 와타모테에 등장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치바 롯데 마린즈 출신 선수들에게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