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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비판/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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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편향된 취사선택
2.1. 용산 참사 보도
3. 정치적 스탠스에 의한 사실관계 왜곡
3.1. 김대중(기자)
4. 발행부수 조작
4.1. 2002년4.2. 2006년
5. 오보
5.1. 아이폰 도청 오보5.2. UAE 관련 의혹제기5.3. 통일 '연방' 오보 논란5.4.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5.5. 세계금융위기 관련보도5.6. 천안함 음모론5.7. 2011년 선거방해 북한 개입설5.8. 민주당 언론장악 문건 논란5.9. 북한 관련 오보 논란5.10.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오보
6. 정정보도 거부7. 권력화된 언론8. 편향적인 보수/우익 성향
8.1. 2012년 선거 개입 의혹8.2. 채동욱 혼외 자식 보도
8.2.1. 국정원과의 결탁 의혹
8.3. 국정교과서 편들기8.4. 국정원 사건 수사 흠집내기8.5.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8.5.1. 대북 휴민트 붕괴 책임 전가
8.6. 비선 실세 의혹 제기 당시 정부 편들기8.7. 청와대 이메일 지침 침묵8.8.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계엄령 모의 사건 관련 보도8.9.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검찰 발표 이후 반응8.10. 친박8.11. 김희중 왜곡 기사8.12. 법원행정처 조선일보 광고비 10억 계획 문건
9. 무의미할 정도의 반노(+반문)10. 황색언론11. 친 기독교적 성향12. 이중잣대
12.1. 조선일보 기자 노조12.2. 노조 활동12.3. 임금 인상 요구12.4. 북한 김영철 방남 입장바꾸기12.5. 미국 비판 기사/사설12.6. 장자연 사건 태세 전환 논란
13. 전문성 부족
13.1. 게임에 대한 편파적인 매도
14. 친기업/재계 성향
14.1. 1997년 외환 위기 관련보도14.2. 이재용 구속 기사
15. 반노동자/노조 성향
15.1. 오보15.2.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부정적 시각15.3. 최저시급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16. 강경 민족주의17. 친일 성향과 추축국 옹호
17.1. 광복 이후
18. 전쟁초기 오보와 호외 사건19. 독재시절 당시의 옹호20. 세습/사유화된 언론사
20.1. 조선일보 손녀 갑질에 대한 침묵20.2. 장자연 자살 사건 논란
20.2.1. 스포츠조선 사장 장자연 성 접대 관련 보도 논란20.2.2. 조선일보 사주 일가 보호 논란
20.3. 장자연 음모론20.4. 방용훈 부인 자살 논란20.5. 방응모 미화
20.5.1. 검증 없는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20.5.2. 방응모 독립 운동가설
20.6. 소통없는 일방적인 사측/직원 관계
21. 기업과의 유착관계22. 경찰과의 유착
22.1. 청룡봉사상
23. 집단과의 유착관계
23.1. 원전 단체
24. 소년 신문 구독 요구 논란25. 정정없는 관련 기사 삭제26. 사설의 고기방패화

1. 개요

조선일보가 비판받는 까닭을 해설하는 문서다.

2. 편향된 취사선택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을 절취하여 다른 뉘앙스의 문장과 기사로 탄생시킨다. 덕분에 청소년들을 자신들의 적으로 만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외에도 월간조선 문서 참조.

2.1. 용산 참사 보도

조선일보의 사건의 중요한 부분 잘라내기와 편향된 취사선택이 드러난 것의 대표 사례가 용산참사 보도. 게다가 사건이 이슈화 된 시기에 따라서 논조와 지적하는 논점등이 달라지며 특정 사건이 이슈화된 시기에는 당시의 자신들의 입장과 옹호하고자 하는 의견을 뒷바침하는 논조의 기사를 자주 써내려린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과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축소하거나 아예 삭제한다.[1]

용산참사 보도인데 이번 용산 참사 10주년을 맞이하자 용산 참사에 대해 불이 난 원인은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이며 대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했으며, 경찰 진압도 적법이라고 명시했다고 하며 당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경찰의 친부의 인터뷰까지 적극 인용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 같아도 김석기 서울청장이나 경찰 지휘부처럼 판단하고 진압을 지시했을 것" "화염병과 벽돌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 아들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철거민 유가족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인화 물질을 동원한 불법 시위가 없어져 다시는 아들과 같은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대해 옳은 말이 아니냐? 불법 시위로 인한 대형 참사였는데 이게 뭐가 틀린 것이냐고 오해하기 쉽다.@@@

분명히 할 것은 용산참사는 농성자들이 화재를 유발했고, 경찰에서 시위를 진압한 것도 적법이 맞고 농성자들이 무분별하게 던져된 화염병들로 주변 도로나 주위의 건물들까지 화제가 났었기 때문에 진압은 불가능한 상황이였다. 문제는 용산 참사에서 인명 피해가 난 원인의 중요한 부분인 경찰측의 안전 미비에 대해 고작 한줄로 경찰 인권조사위에서 경찰의 안전 대책이 미비한데도 진압을 강행했다"고 경찰의 과실이 있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고 하고 끝냈다. 기가 찰 노릇인데 결국 조선일보는 용산 참사가 발생한 원인은 농성자들과 함께 바로 무리한 진압 작전을 강요한 경찰 지휘부였다는 것을 덮어두다싶이 하며 넘어간 것이다. 이런 짦은 말로 축소하고 넘어가기에는 용산 참사에서 경찰측(정확히는 상층부)의 잘못은 결코 작지 않다.제대로 따지면 진압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조차도 경찰 지휘부들의 부실한 진압 작전과 진행으로 안타깝게 희생된 희생자들이다.

용산 참사는 구체적인 작전 계획과 사전 준비등이 전무하거나 형편없었다.[2] 당시 경찰은 지휘부 회의 이후 헬기로 현장 답사를 하고 용산경찰서에 물차 4대, 고가 사다리차 2대, 바스켓차 2대, 크레인 2대를 지원 요청하였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도착한 것은 100톤 크레인 1대만 동원했고, 추락에 대비한 에어매트도 설치하지 않았으며[3], 고가사다리차 및 화학 소방차도 현장에 투입하지 않는 등 안전 대비책이 매우 미흡한 사건이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용산 참사에 대해 폭력과 불법이 있었음에도 여론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악화된 요인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고 진압에만 서둘렀다는 것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조선일보에서 이러한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아주 간단하게 경찰의 안전 대책 미비에 진압을 강행했다로 언급하며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버린 것이다.

용산 참사 당시 진압에 나섰던 경찰측의 현장담당자 조차도 이대로 작전을 계속하면 사고가 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 지휘부에 “작전이 불가능하다.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지휘부는 의견을 건의한 당사자에게 겁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것 아냐 거절했다. 결국 지휘부의 강압과 작전 중단 거부에 현장 경찰관들은 어쩔 수 없이 1차 진입 했고 결국 화염병 투척으로 불이 나고 경찰 컨테이너가 망루와 충돌해 망루 내부가 무너지자 견디질 못하고 철수하여 건물 내부의 휘발성 물질과 유류물로 경찰과 농성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재차 보고를 했지만 또다시 지휘부에 묵살당해서 마지못해 또다시 진입을 시도했다. 그리고 2차 진입에서 2차 화재가 발생했고 여기서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다.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했던 고인의 친부가 해당 경찰의 아버지이다.[4]

진압 예행연습은커녕 망루 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지위부는 현장 경찰들에게 일방적으로 진압을 명령했었다. 이것뿐이 아니다. 진압 작전중인 경찰들에 대한 보호도 형편없었는데 당시 건물에서 화염병과 진압 과정에서의 소규모 화재들로 인해 인화성 물질들에 불이 붙어 유독성 가스 발생등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불보듯 뻔했는데 결국 진압작전에 제대로 된 보호장구의 보호 없이 내몰리듯 투입되었던 경찰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상위에서도 이들은 이에 대해 2차 진입 때 유류물, 염산 같은 냄새가 났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났다“ "대원 상당수가 유증기로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였다“고 하며 진압 작전 당시의 고충들을 호소할 정도.

농성자들만 불을 지른게 아니다. 일부 철거업체 직원들도 진압 초기부터 농성자들을 협박하며 폭력을 행사했고[5] 이후 농성자들을 위협하고 쫓아내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이과정에서 불을 끄기 위해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을 방해하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소방관들이 경찰에게 소방관의 보호를 요청하여 불을 끄려고 했지만 경찰에서도 협조를 거절했다. 게다가 당시 정보공유조차도 대충해서 출동할 때 소방관에게 시너가 있어 화재가 예상되니 화학소방차 한대 요청만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소방관들은 용산 참사 당시 잠재적 위험에 대해 파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당시 출동했던 소방 현장담당자가 직접 “유증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스파크만 일어도 화재가 나기 때문에 20ℓ들이 시너통이 60개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경찰 병력을 투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이조차도 거짓 논란이 일었는데 소방서측에서 경찰측에서 화학소방차를 요청했다고 통보했지만 소방서측에서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불렀지 경찰측에서 요청이 없었다고 언급하여 사실관계에 대해 상당한 혼선을 빚어졌다. 이게 왜 그렇냐면 경찰측의 작전 계획서와 실제 진행이 차이가 있는 등 경찰측 자료들에서 문제가 많기 때문. 심지어 화학 소방차 2대 요청을 했다고 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라오기까지 했다. 때문에 경찰측에서 화학 소방차를 요청했고 사전에 신나로 인해 화재를 우려했으면서 왜 화학 소방차가 도착 안한 상황에서 작전을 왜 진행했냐는 지적까지도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당시 진압에 투입된 경찰들에게는 통보조차 안됬다. 당시 박삼복 서울시경 경찰특공대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작전 개시 전날인 지난 1월19일 밤 11시께에야 용산 ‘진압계획서’를 확인하고 망루 안에 20ℓ짜리 시너통 60여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잠든 대원들을 깨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이를 따로 알리지 못했다”는 변명을 늘여놓아서 사람들을 탄식하게 만들었다.

3. 정치적 스탠스에 의한 사실관계 왜곡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사실관계가 바뀐다. 대표적인 예로 2007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해 반대하는 사설을 썼는데 2008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의 반박은 조선일보는 2007년에도 미국소 수입을 반대하자는 게 아니라, 당시 광우병은 위험하지만, 잘 관리하면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전제한 것이며, 오히려 당시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므로 논조를 바꾼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링크) 하지만 조선일보가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는 기사를 썼던 2008년은 2007년 당시에 조선일보가 미국산 소고기를 우려하는 듯한 사설을 쓸 때보다 우리나라의 검역기준이 대폭 완화된 상태였다. 검역기준이 '중상'이었을 때 미국산 쇠고기를 우려하는 기사를 썼던 곳에서 검역기준이 '중하'로 완화되었을 때는 미국산 쇠고기를 안전하다고 하는 기사를 썼는데 논조가 바뀐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사건에 대한 상황이 바뀌었고 논조의 변화가 있는데 어떻게 논조가 바뀐게 아니냐는 것이다.

황우석 논문조작 파문 당시 여론이 황우석에 유리할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까고 황우석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말을 바꾸어 노무현 대통령을 깠다.링크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미군을 도와 파병하자던 조선일보는 원래 파병지 키르쿠크가서 사진 몇 장 찍어오고 안전한 곳이라고 기사를 썼는데, 전쟁 이후 이 지역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세력의 내전이 벌어졌다.

3.1. 김대중(기자)

주필이었던 김대중[6]은 2005년 12월 5일 칼럼에서 황우석 사건 때, PD 수첩이 불리하던 당시 PD 수첩 PD를 주사파로 오보했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관련 후속 보도를 통해 한학수 당시 PD를 민주노동당에 물들었다고 비난했고, 최승호 책임 PD를 코드에 맞춘 곡학아세 보도를 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황우석 사건이 거짓말로 판명된 다음, 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중 대표적인것이 바로 조선일보의 김대중(언론인)의 외국 문헌 왜곡. 당시 김대중은 미국의 저명한 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WSJ)의 기사를 잘못 해석하고, 이를 전제로 해서 공격하는 칼럼을 썼다가 제대로 망신살을 뒤집어 썼다. 이는 당시 그가 주필로 있던 1997년 12월 24일이었다.조선일보 김대중의 엉터리 영어실력, 의도된 왜곡들 @@@ @! 여기서 해당 논란에 대해 김대중이 몰랐을 리 없고 자신의 정치 스탠스에 끼워맞춰 해석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외에도 다른 조선일보 기자들에 의해 2015년 김대중 기자의 50년 특집을 맞아 김대중 기사를 빨아 잿기는 왜곡 기사를 대놓고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김대중 기자는 권위주의 권력의 몽둥이와 민주화 이후 권력들의 치사함에 굴하지 않았으며 정치인이나 관료를 곁눈질한 적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틀린 말이다.

김대중 기자는 과거 대한민국 80, 90년도의 경직된 진영논리와 민주화에 대한 보수우익의 반감과 적개심, 색깔론이 판을 치던 당시 소위 잘나가는 기자라는 것들이 어느정도까지 정부에 우호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는지,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 있는지 민주화에 대해 어느정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기자들이 권위주위에 함몰되어 있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임을 생각하면 기가막힐 따름. 더욱 기가막힌 것은김대중 기자 본인 조차도 별다른 자각이 없다. 자신은 눈치를 보지 않고 아부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기사를 썼다고 자회자찬할 정도. 당연히 틀린 말이다.

김대중 기자의 전설적인 보도가 바로 폭도가 점령한 무정부 도시로 광주에 대해 기사를 쓴 작자임을 생각하면 조선일보의 김대중 기자에 대한 찬성이 도가 지나처서 김대중 기자에 대해 비웃음과 비꼼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 이후 진상 규명이 되고나서 김대중 기자가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폭로되면서 당시 조선일보와 김대중은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자근자근 씹히며 처 까였고 여론의 악화와 언론계의 전방위적인 부역자, 정부에 협조한 기자라는 혹평에 철면피인 그조차도 견디질 못하고 상황의 산물이었다고 변명할 정도.

이후 이에 시달린 것이 철천지 한이 남아서 인지 결국 5.18 특파원 리포트’를 통해 “별것도 아닌 스케치 기사를 놓고 검열 당국은 ‘폭도’라는 단어를 쓸 것을 기사 통과의 조건으로 냈다. 승강이 끝에 나는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는 표현으로 고쳐줬다”라고 주장한다.[7] 김대중 기자의 5.18 회고록에 대한 글을 참조할 것.김대중주필 5·18회고 어떤 글인가

당시 김대중 기자는 계엄군과 함께 바리케이트 바깥에서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장면을 단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였다. 이에 반해 본인이 직접 몸을 던져 취재를 하여 기자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 조갑제이다. 때문에 현재의 논란과는 별개로 기자로서 업적과 본분을 생각하면 김대중 기자에게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갑제에게 지나친 모독이자 과거의 업적에 대해 깎아내리는 것이다.

김대중 본인이 이처럼 정치적 스탠스에 충실하여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사실관계가 왜곡된 기사를 썼던 것에 대해 적극적인 정정의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해당 논란이 커지게 되자 마지못해 사과하고 자신의 행동에 변명하는 수동적인 입장이였을 뿐이다.

조선일보를 주름잡아온 김대중 주필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의의미심장한 언급이 있다. 강준만은 김대중 주필의 ‘생산성’만큼은 높이 산다. 그러나 그 생산성은 “그가 ‘직필의 달인’이어서가 아니라 ‘처세의 달인’이어서 가능하다. 김 주필의 처세는 ‘언술적 처세’다. 인간관계에서의 처세가 아니라 글에서 나오는 처세라고 언급한다. @@@

4. 발행부수 조작

해당 사건은 두가지 문제가 있다. 언론사로서 발행부수를 거짓으로 조작한것과 발행부수 조작을 통해 광고료를 부당하게 추가로 매기는 사기를 저지른 것. @@@

ABC협회 전 직원은 이에 대해 "내부 규정상 조사 문서의 수치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조사 담당자뿐이라서 당시 조선일보 판매국 실무자의 부탁을 받은 협회 간부들이 조사팀에 직접 수치를 고치라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로 ABC협회 부국장으로 있던 사람도 "<조선일보>는 한국ABC협회 설립 초창기인 1990년부터 10년간 계속 실사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전관예우 분위기상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추가로 증언했다.

4.1. 2002년

2002년 한국 ABC협회의 조사에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위한 목적으로 조사기관에 부수를 부풀려줄 것을 요구하여 5만 6,000여부를 부풀린 175만 6,193부로 보고했음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4.2. 2006년

전·현직 신문지국장의 모임인 전국신문판매연대가 2006년 조선·동아의 서울 시내 일부 지국을 조사한 결과도 주목된다. 당시 이 단체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유료 부수 비중이 본사에서 발송한 부수의 50~6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

5. 오보

최초의 태극기 공개사건. 최초의 태극기 기사의 관련 사진에서 '대청국속 고려국기'란 글자에서 '대청국속'이란 글자를 짤라버렸다. 한국어판 영어판,이둘을 비교한 일본의 어느 게시판,조선족 중심의 연변통보의 비교사진 왜곡보도다. 다만 대청국속이라고 표시된 태극기 사진은 '통상장정성안휘편(通商章程成案彙編)'이란 중국 청나라 이홍장이 1886년 청나라와 외국이 맺은 조약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기록한 책으로 청나라 측의 일방적으로 멋대로한 표기였을 뿐이다. 게다가 기사에서는 1883년 3월의 '고려국기'라고 연도를 잘못 표기했다. 또한 정작 중요한 1882년 7월 미국 해군성 항해국(Navy Department Bureau of Navigation)이 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에 수록된 최초의 태극기, 일명 이응준 태극기 사진은 싣지 않았다. 기사 자료의 오류와 왜곡, 정작 중요한 자료의 부재가 어우러진 난장판이다.

2004년 문희준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락 자격증이 있다면 따고 싶지 않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문희준은 루머가 부담스러워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기사 제목은 문희준 “록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로 나왔다. 자극적인 기사에 눈이 멀은 조선일보의 명백한 오보이다.

배우 최민식한쪽의 의견만을 듣고 기사를 쓴 조선일보에 분노하여 아예 공개적으로 간담회 열어서 해당 조선일보 기자를 까버렸다.[8] 아예 최민식이 일방적으로 비난을 해댄 기사를 쓴 기자를 찾으며 조선일보 XXX 기자 왔냐고 물어본다.

평창 올림픽과 관련된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왜곡해 인용하였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문제의 기사를 분석한 영상

조선일보의 악명높은 편파적 오보로 손꼽히는 것은 마이클 잭슨에 대한 페도필리아/가학적인 취향을 가진 관심종자로 매도한 것. 과거에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좋은 기사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9] 오히려 조선일보는 미국의 찌라시 기사들을 많이 긁어와서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이 크게 오해받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10] 현재 마이클 잭슨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들이 속속 기레기들의 거짓으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줄곧 마이클 잭슨을 까왔던 조선일보로서는 이만한 수치는 없을 것이다..... [Oh!llywood]故 마이클 잭슨, 충격 리포트..#음란물마니아 #아동·동물학대자 ###

예전에 구라라고 밝혀진 슈퍼 박테리아 감염소문도 조선일보에서 전한 것. 참고로 '슈퍼박테리아' 전문 학술용어가 아니라 국내 기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만든 '콩글리시'다. 보통 해외에선 슈퍼 버그로 표현한다고... 사실 이러한 슈퍼 버그는 시간이 흐르면 이를 죽일 수 있는 항생제가 개발되며 이럴 경우 슈퍼버그가 아니게 된다.

5.1. 아이폰 도청 오보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참석한 스마트폰 도청 시연회에서 아이폰에 도청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전화 통화 내용 등을 도청했다고 오보를 단독으로 보도한 사건. @@@

이후 지식경제부는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뒤 해명 자료를 내고 "시연회에서 아이폰은 시연되지 않았고, 타 스마트폰으로 시연한 바는 있다고 밝히며 조선일보의 보도를 부정했다.

애플코리아측에서 조선일보에게 모든 기사 수정과 정정 보도를 요청했다. 당시 애플 직원은 이에 대해 아이폰은 멀티태스킹이 안 되고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으면 다른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추가로 언급했다. 결국 조선일보측에서 오보를 정정, 아이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다른 의혹도 제기됬는데 당시 행사가 이날 행사는 비공개여서 <조선> 기자는 참석하지 않았으며 조선일보측에서 과연 와보기는 하고 기사를 작성했냐는 의혹제기가 있었다.

양현미 KT 전무가 잘못된 사실을 내보낸 정부부처, 확인 없이 아이폰을 지목하고 사진까지 아이폰으로 박아 보도한 언론, 이제 와서 정정 보도한다 해도 주요 일간지 1면 기사로 인한 피해는 매우 큽니다."고 트위터에 반응을 남겼었다.

5.2. UAE 관련 의혹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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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통일 '연방' 오보 논란

2018년 12월 26일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에 참석한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이 '통일 연방'이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으나 김 부상은 '통일 열망'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가 김 부상은 연방이 아닌 열망이라고 말했다고 다음날 밝혔지만 오히려 조선일보는 자기들이 오보를 내놔 논란이 커졌음에도 통일부가 늑장 수습을 했다고 비판해 '기자 귓구멍부터 청소하고 기사나 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

5.4.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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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세계금융위기 관련보도

2008년 조선일보는 리만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기 2주 전에 해당 기업을 인수하자는 칼럼을 실어 비판받았다.

5.6. 천안함 음모론

5.7. 2011년 선거방해 북한 개입설

2011년 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선관위가 디도스에 의한 공격을 받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명백한 선거방해행위인데 이에 대해서 언론사로서 그 어떠한 근거도 없이 북한 소행이라며 당사자인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사실인냥 전달하다가 결국 자신들이 옹호하는 한나라당측에서 저지른 조직적인 선거방해 범죄임이 명백하게 드러나자 그 어떠한 정정이나 사과조차도 없이 기사를 삭제하고 끝냈다.

이후 최구식 의원이 조선일보 출신 기자인 것으로 밝혀져 제식구 감싸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이번 선관위 공격에서 무려 200여대의 좀비 PC를 동원해 초당 263MB 용량의 대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디도스 공격을 자행된 것에 대해서 단지 술김에 결정된 한순간의 실수인것 마냥 물타기성 기사를 추가로 보도하였다.

5.8. 민주당 언론장악 문건 논란

9월 8일자 조선일보 단독 보도인 이 기사는 교묘하게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 기사 앞머리는 다음과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KBS·MBC 등 공영(公營)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사장과 이사진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 등 시민단체 중심의 범국민적 운동을 추진하자는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에는 야당 측 이사들의 개인 비리를 부각시켜 퇴출시키자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야권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의도를 담은 로드맵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문건은 당 전문위원실이 만든 것으로 지난달 25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공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가 7일 입수한 이 비공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김장겸 MBC 사장, 고대영 KBS 사장 퇴진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이 나설 경우 현 사장들과 결탁돼 있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과 극우 보수 세력들이 담합해 자칫 '언론 탄압'이라는 역공 우려가 있다"며 '방송사 구성원 중심 사장·이사장 퇴진 운동' 전개 필요성 등을 제기했다. 당이 전면에 나설 경우 정치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방송사 노조, 시민단체·학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의 우회적 방법을 활용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이 문건에서는 '시민사회·학계·전문가 전국적·동시다발적 궐기대회, 서명 등을 통한 퇴진 운동 필요', '언론적폐청산촛불시민연대회의(가칭) 구성 및 촛불 집회 개최 논의' 등도 제안했다.

위 문단의 내용을 읽어보면 마치 더불어민주당이 공영 방송을 자기 입맛에 맞게 장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이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고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보수층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렇지만 아래 단락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걸 가지고 방송 장악이라고 하는 건 물타기에 불과하다. 마치 위의 문단만 읽으면 MBC 노조 측과 KBS 노조 측이 민주당의 선동에 따라 파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방송국 노조 측의 파업은 고대영, 김장겸 사장이 취임할 때부터 이미 자발적으로 진행됐으며, 민주당 지도부는 KBS, MBC 구성원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요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을 뿐 두 사장의 발언에 ‘즉각 대응’한 적도 없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소개한 문건은 민주당 내에서도 제대로 다뤄진 적도 없는 말 그대로 "비공개 검토 보고서"에 불과할 뿐이다. # 그래도 이런 문건이 결국은 실재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건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일보의 경우에는 이미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문건이 실제로 영향을 미쳐서 KBS와 MBC를 장악했다 것이 사실인 마냥 기사화하고 사설까지 써냈다. #

이명박 정부 때 정부와 여당이 정연주 前 KBS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한 전례가 있다보니 최대한 정치권이 일선에 개입하지 않고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있자는 식으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마치 민주당이 방송 장악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가치 중립을 지켜야 할 언론사가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민주당은 문건에서 "MBC·KBS 사장의 발언·성명·기자회견 등에 대해 당이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에서 자행된 언론 장악·언론인 탄압, 권언유착 사례 등의 언론 적폐 실상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고발하는 홍보·선전전을 전개해야 한다"며 해고·정직 등 징계를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운영을 비판한 영화 '공범자들'의 단체 관람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5.9. 북한 관련 오보 논란

조선일보의 경우, 다른 언론에 비해서 북한 관련 보도에는 혈안이 되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지피지기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에 나온 예처럼 나온 경우가 있듯이, 언론사가 주적인 북한에 대한 보도를 하는 거야 무슨 문제겠냐 싶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전혀 이상한 것에 대해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보도 많다. 저 위에 만보산사건 오보 같은 큼지막한 오보가 넘쳐나는 수준.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오보가 탄생하는 데에는 순서가 있다.[11]

1. 단독보도
2. 정체불명의 대북 소식통을 운운하며 시작하는 카더라통신
3. 물타기
4. 떠넘기기

대략 이러한 순서로 시전되는 셈인데, 나중에는 남탓을 하기에 이르면서 이 게 과연 언론사가 할 짓인가 싶기도 하다.[12]

대표적인 사례가 현송월 총살설에 대한 보도.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 지면에 '[단독]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옛 애인은 현송월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중국 내 복수 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은의 옛 연인으로 알려졌던 현송월과 은하수관현악단장인 문경진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공개 처형 이유는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하고 성 녹화물을 시청했기 때문이라고. 공개 처형 이유, 사망 날짜, 증인까지 다 나온 지라, 정설로 여겨진 상황이였다.

문제는 그 다음. 9월 8일에는 고려호텔에서 밀회를 가진 몰카가 들통나는 바람에 기관총으로 처형됐다고 처형된 사유가 바뀌었다. 12월 10일에는 리설주와 결혼 전에 김정은의 옛 애인이였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찌라시를 보도해버렸다. 12월 12일에는 리설주 추문 때문에 은하수악단 전원을 기관총도 모자라 화염방사기까지 써서 처형했다고 한다. 공개 처형 무기가 하나 더 늘어난 셈.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연설을 하면서 오보임이 밝혀졌다. 이러자, 조선일보는 5월 17일에 일본 아사히 신문도 탈북한 북한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해, 북한 예술인 9명이 공개처형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떠넘기기로 오보 책임을 회피하는 셈인데, 그 소스를 제공한 게 조선일보다. 10월 17일에는 아예 탈북자를 훈계하면서 탈북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에 이른다. 본인들이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여러 건의 오보를 냄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탈북자에게 떠넘긴다.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통일 대계에도 도움이 되지않는다며 깠는데 누가 봐도 잘못된 정보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기사화 시킨 건 조선일보이다.

이 것도 모자라서 2013년 9월 6일에는 현송월의 섹시 댄스 영상을 보도하지를 않나, 2018년 1월 15일 평창동계올림픽 예술단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 때에 나타난 현송월을 보고 쓴다는 기사가... '북한판 걸그룹 이끄는 현송월, 엷은 미소에 강렬한 눈빛 눈웃음'이라는 이 게 3대 메이저 보수성향 언론사가 쓰는 헤드라인이 맞는 지 조차 의심이 가는 기사제목을 달았다. 내용은 더 가관인데, 현송월의 옷과 화장, 머리스타일을 자세히 묘사하기에 이른다. 연예기획사 임원의 말까지 인용해 단정과 카리스마 드립까지 쳐놓고, 리설주를 삼각관계에 버금가는 라이벌 관계로 만들면서 화룡점정까지 찍는다. 조선일보 원문 기사 댓글에는 '조선일보는 빨갱이 신문이냐'고 까인다.

이 외에도 김정은이 아침에 뭘 먹는 지 보도한 적도 있다 오보도 오보지만 조선일보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북한이 사라지면 조선일보의 기사량이 절반은 사라질 것이라는 조롱이 괜히 나오는것이 아니다.

이후 현송월이 2018년경 방한하자 어느 언론에서 이를 취재하다가 정부 관계자로 부터 제지를 받기도 했는데 언론사로서 분노하여 과잉의전이라고 크게 비난하였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조선일보에서 흑역사로 할만한 현송월 총살, 집단 섹스 보도가 다시금 떠올라 조선일보의 오보는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5.10.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오보

2018년 5월 24일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쇄한데 대해 [속보] "풍계리 갱도 폭파 안 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이라는 기사를 냈다가 10분 후에 내렸다. 잠시 후 북한이 한국 기자들을 포함한 전세계의 취재진을 불러놓고, 풍계리 실험장을 실제로 폭파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국내 언론과 외신을 통해 타진됐고, 조선의 보도는 당연히 빼도박도 못하는 오보가 됐다.

진짜 문제는 조선일보나 TV조선은 당시 풍계리에 취재하러 간 취재진에 포함된 언론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워낙 시끄러워진 오보 사건인지라 언론계 전반에 이 오보 사건의 후일담이 널리 알려졌는데, 나중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는, 불려간 조선 기자가 말하길, 정보를 듣긴 들었는데 소스를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고(...) 더 어이없던 점은 이름이 나간 해당 기자 본인이 쓴 기사도 아니었고, 그 기자의 상사인 데스크 간부가 쓴 걸 대신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낸 것이었다고(...)

주요 언론사 중 하나라면서 동네 뒷소문만도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북한에 기자를 파견하지도 못 했으며, 취재조차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폐쇄시간에 정확히 맞춰 이러한 기사를 실었다. 말 그대로 망상이라고 하기도 아까운 수준이다. 사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혹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일은 어떻게든 감추고 반대자를 공격하기 위해선 거짓 기사를 써서라도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사실상 조선일보 자체는 이미 본질적으로 일종의 정치세력으로 변질된지 오래인데 언론의 탈을 쓰고 마치 자신들의 주장을 사실인양 기사를 쓴다는 비난도 있다.

6. 정정보도 거부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대해 아주 치명적일 수 있는 허위 보도를 하고 정정보도를 하지 않는다. 보통 조선일보의 일방적인 보도 이후 상대방이 이에 대해 반박을 할 경우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후 사실관계가 드러나더라도 당사자의 정정 요청등이 없으면 그냥 그걸로 끝난다. 간혹 상대방의 거센 정정보도 요청에 의해 오보를 고치더라도 독자들이 꼼꼼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한 귀퉁이에다 한다. 때문에 정작 조선일보측에선 정정 보도를 했다고 발을 빼지만 조선일보 구독자들은 여전히 조선일보의 오보를 사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7. 권력화된 언론

과거 대한민국의 언론 보도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언론권력에 취해서 수도 없이 많은 오만방자함을 보여왔다. 조선일보의 정, 관, 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이 정점을 찍었을 때는 전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이 당시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였다.[13]

조선일보의 위세를 보여준 다른 사례는 바로 조선일보의 논조를 조장하고 이끌던 김대중(기자) 주필. 실제로 그는 한국 언론 역사상 역대급의 구독자와 지지자를 기록했으며 조선일보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던 국민신당 당원들에게 김 주필은 “너네들, 내일 모레면 끝이야. 너희는 싹 죽어. 까불지 마”라고 외쳤다. 당시 국민신당이 끝물이라고 해도 오늘날 그 어느 기자가 이런 발언을 내뱉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당시 조선일보와 김대중(기자)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14]

언론사로서 본연의 역활인 사회에 대한 자성과 비판에 그치지 않고 아예 스스로가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핵심 권력의 축이 된 경우이다.

결국 도를 넘은 조선일보에 대해 불만들이 터져서 안티조선운동이 터지고 지식인들이 이에 동참 "언론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매스 미디어의 문제점들"이 소개되고 사회를 감시하는 언론이라는 이유하에 암암리에 묵인되어왔던 조선일보의 편향적 기사들과 오보들이 본격적으로 비판받고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지적되면서 과거 언론의 절대자로서의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종말을 고했다.

8. 편향적인 보수/우익 성향

조선일보는 보수와 보수정권의 수호자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보수 정권 집권시기에는 편향된 시각으로 해당 정권에 대한 우호적이고 옹호적인 시각을 고집한다. 심지어 이를 위해 스스로가 고립되는 상황까지도 기꺼이 자처할 정도이다.

그나마 중도적으로 성향이 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안티조선운동을 기점으로 구독층의 확장보다 조선일보의 기존 구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내려 가는 것을 고수했으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일보의 보수 편향성은 심해지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의 주장은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까고 본다. 대체로 특정한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진보 측에서 제기되는 의혹이나 논란에 대해 'OOO 괴담'이라는 언사를 통해서 낙인을 찍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즉 진보 측으로부터 제기된 의혹과 논란을 (설령 그 가운데 틀린 부분이나 과장된 부분, 와전된 부분, 기타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객관적 근거를 통한 공론장에서의 민주적 토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보 측에서 나오는 문제제기에 대해 뭔가 교양 수준이 낮고 무식한 사람들이나 믿는 황당무계한 미신쯤으로 치부하고, 그런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토대로 논리적 반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도덕주의적 낙인을 찍음으로서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오만할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자세인데, 더 골 때리는 것은 그러다 나중에 자기들이 깔 때 쓴 근거가 사라지거나 잘못된 걸로 밝혀지면 자기들이 언제 그걸 근거로 삼아서 썼냐는 듯 그 근거에 대한 입장이 180˚ 바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자신들 이념에 반대되는 진보세력에게 비판을 퍼부었으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서부터는 정부에 매우 따사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실상 보수와 보수정권의 궁극적인 파수꾼이자 수호자.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진보측의 비판이 나올 만 하다. 그러다 9년의 시간이 흘러 문재인 정부가 취임하자 역시 이번에는 이명박근혜정부에게 보여줬던 따사로운 수비수 역할에서 매서운 공격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래의 '방송 정상화 방안 왜곡 논란'에서 보듯 필요하면 과장이나 선동도 불사하지 않는다. 이명박근혜 정부 때는 있는 사실도 침묵했던 모습과는 180º 다른 모습.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신임 국방장관 임명장 수여식 때의 일. 기사제목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핏발 선 주먹'>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이한 대처가 화근이 된 구제역 파동으로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하게 된 상황에서도 정부에 대한 비판은커녕 '구제역 대책회의 마련한 MB, 매뉴얼대로 해도 안되고... "그럼 더이상 어떻게 하자는 거냐" 답답해진 대통령은 물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따위의 길고 긴 부제를 단 기사를 1면에 싣기도. . 자신들은 노무현 정권 때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노무현을 욕하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 강경한 태도였다. 때문에 프레시안, 시사인등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오보를 날렸다가 고소를 줄줄이 맞고 손해배상을 할 정도.

8.1. 2012년 선거 개입 의혹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얼마 앞둔 4월 7일 인천광역시 전역에서 조선일보 신문이 무료로 대량 배포된 것이 알려져 뉴스를 탔다.

무료로 배표된 신문 1면에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에 대한 비난성 기사가 실려 있었고, 안쪽 면에는 '김연광(새누리당·부평을) "홍, 친일파 손자''…홍영표(민주통합당·부평을) 막판 네거티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선거법에선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불유리한 내용이 담긴 물건의 허가받지 않은 인물이나 단체의 배포를 금하고 있는데, 이는 선거법 95조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에 해당될 수 있는 부분이다. 경찰은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관계자 중 일부를 불구속 입건한 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2년 10월 11일 인천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경찰의 기소의견을 되물렸다.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4월 7일, 무료로 배포된 조선일보 1면에는 배포지역인 인천을 홍보하는 내용의 기획기사가 실려있었기에 홍보용으로 배포된 것이라는 진술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8.2. 채동욱 혼외 자식 보도

채동욱 검찰총장 婚外아들 숨겼다

혼외 자식에 대해 단독 보도 특종을 터뜨렸는데 당시 과정과 의도가 매우 정치적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일보의 혼외 자식 보도시점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휘아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원전 비리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등과 같은 관련 의혹 사건’등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건들의 수사와 공소유지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이에 대해 채동욱 검찰총장은 조선일보가 “원고에게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보도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 자식 폭로의 사건 경과는 다음과 같은데 먼저 조선일보에서 검찰총장 채동욱이 혼외 자식이 있다고 보도하였고 조선일보의 특종 보도에 대해 당시 검찰총장 채동욱은 바로 다음날 반박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면서 유전자 검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조선일보 측에도 정정 보도 청구 소송까지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검찰 측은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된 명예훼손 사건과 청와대 측의 개인 정보 유출 개입 의혹을 대상으로 해서는 관련된 사람들을 불기소로 처분했고 당시 채동욱 혼외 자식 보도에 관여한 청와대 특별감찰반 관련된 사람들의 정보 조회 행위를 대정당한 직무 권한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판단했다.

당시엔 검찰 측의 이러한 판단은 채동욱을 상대로 망신이나 주려고 기획된 수사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며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면,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므로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이 불법행위를 한 채 법으로 심판하는 직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되기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어른들의 정치 문제로 발생한 문제를 12살 아이에게 전가해 온국민 시선 집중된 가운데 친부를 확인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갑론을박도 있었던 데다가 임모 씨나 12살의 채 군 처지에서는 친부가 누구인지는 사생활이라 공개해야 할 의무도 없기 때문에 유전자 감식은 강요할 수도 없는 데다가 12살 어린이는 법정대리인 임모 씨가 수락해야 가능한데 해당 아이의 친모는 결국 끝끝내 감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 논란은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였다...
8.2.1. 국정원과의 결탁 의혹
이후 2017년 조사결과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는 국정원 직원이 조선일보에게 혼외자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이와 별개로 해당 국정원 직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 바로 당시 서초구청 복지정책과장임이 확인되었다. 해당 서초구청 복지정책과장은 국정원직원으로부터 ‘채 총장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찾아 관련 정보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을 통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녀 정보를 알아냈다. 국정원에 ‘채동욱 혼외자’ 정보 건넨 공무원, 항소심서 집행유예

현재 조선일보에서 이렇게 국정원에서 불법적인 개인 정보 수집을 감수하면서까지 캐내던 채동욱 혼외 자식에 대해 어떻게 보도를 할 수 있었는지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에서 과거 검찰, 정부에서 언론을 다룰때 흔히 쓰던 슬쩍 언질을 주지 않았는가 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언론사 기자들이 고위 공직자들과 검찰의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술자리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기사거리를 얻으려는 것도 있기 때문.

현재 채동욱의 혼외 자식을 조사하던 국정원 직원은 자신이 왜 채동욱 혼외 자식에 대해 불법적으로 서초구청 과장에게 채동욱의 개인 정보까지 요청하면서까지 조사했는지에 대해 완강하게 입을 열길 거부하고 있다. 현재 징계가 확정되지 않아 현직 국정원 직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2심 항소심에서 해당 국정원의 범행이 비난 가능성이 크기는 하나, 이는 결국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인 외의 자 의혹을 검증하는 등으로 이를 구실로 검찰의 적극적 수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모종의 음모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졌을 것임이 능히 짐작된다"고 명시되었다. 법원에서도 국정원 고위층과 국정원의 상부이자 배후인 청와대도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명시한 것. 왜냐하면 당시 서초구청 과장에게 정보 요청을 한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애 하급 실무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단 정보관이 자의적으로 까마득하게 서열 위에 존재하는검찰총장의 뒤를 캐려는 짓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

하지만 현재 검찰 총장의 뒷배경을 캔 국정원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식당 화장실에서 우연히 "채동욱에게 혼외자가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진술하며 국정원에서 채동욱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사했다는 의혹과 윗선의 지시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채동욱 혼외자식 정보 조사는 다른 국정원 간부에 의해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심을 받던 '채군'의 이름과 소속 학교 등과 같은 신상정보가 포함된 보고서로 작성되었고 해당 보고서는 서천호 당시 2차장에게 보고되었다.

8.3. 국정교과서 편들기

국정교과서 사태와 관련, 1인 시위에 나선 김제동을 대상으로 언플을 시전하다가 가루가 되도록 네티즌들에게 까였다. 네티즌들 曰 "기사는 기자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김제동 1인시위, 국정교과서 반대?... 네티즌 '힐링캠프나 잘하지' 일침'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문제는 내용 어디에도 힐링캠프 관련 언급이 없는 상관없는 보도란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유일하게 채택된 문명고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는데 조선일보 측은 민노총의 주도로 시위가 진행됬다고 전했지만 이와 달리 언론사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주도로 시위가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동아일보, 중앙일보

8.4. 국정원 사건 수사 흠집내기

검찰의 국정원 사건 조사에 대해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 발표문에 최소 15군데의 왜곡이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에서 반발하여 조선일보의 검찰이 녹취록을 왜곡했다는 기사보도는 오히려 왜곡된 것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검찰의 사결과 발표문을 왜곡했으며, 조선일보에서 검찰이 없는 발언 내용을 꾸며냈다고 왜곡했지만 이후 동영상에서 해당 발언을 하였다는 것을 지적하고, 경찰이 발견한 닉네임은 컴퓨터에서 발견한 것인데, 검찰은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서 활동한 닉네임인 것처럼 오인할 소지가 있게 했다”고 하지만 “분석관들의 대화가 오간 분석실은 본래 인터넷 활동을 검색하는 곳이며, 검찰이 중요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이는 왜곡이라고 하지만 정작 조선일보야 말로 문맥상 중요 부분은 표시가 되어 있음에도 조선일보는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보도했으며 검찰이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접속 기록을 찾은 장면의 녹취 내용에 오인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녹취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오인의 소지가 없고 국정원에서도 별도의 트위터 조직을 활용했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반박한 것. @@@

8.5.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조선일보에서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의 북한 통신 8편으로 실은 칼럼에서 왜곡이 대표적. 당시 디지털 조선일보 칼럼에 의하면 “(유우성이)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의 일”, “유우성은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점을 이용해 2만여 명 탈북자들의 신상명세서도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간첩으로 판명돼 법적 판결이 이뤄진 사건까지도 조작된 것이라고 뒤집으며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고 허위 보도를 했다.

그외에도 당시 유우성의 여동생의 주장은 거짓이며 동생의 진술 번복은 거짓" 도강 지점 상황 구체적 진술… 유우성 간첩혐의 증언한 셈 @@이라는 기사(유우성 여동생의 '두만강 渡江 진술' 신빙성 뒷받침하는 내용 증언. 2014년 4월 2일자)를 실는등 조선일보의 입맛에 맞는 증언자의 증언 내용을 보도하는 왜곡도 저질렀다.

일부 사실관계에서 조선일보측에서 언급한 대로 의혹의 여지가 있고 사실 관계 진술도 어긋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조선일보에서 해당 기사를 통해 대놓고 유우성 간첩혐의 증언한 셈이라고 거론한 기사에서 등장하여 간첩혐의 증언을 운운했던 탈북자의 증언은 증언 자체가 맞던 틀리던 상관없이 유우성의 여동생의 진술 번복에 자체를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였다. 왜냐하면 유우성의 여동생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있는 증언으로 채택하기에는 문제점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 사실상 유우성의 동생의 진술 번복에 대해 트집잡기, 흠집내기이다.

항소심 법원에서 이를 조목조목 지적하는데 판결문과 재판부의 언급등을 통해 1)171일간 CCTV와 외부 잠금장치가 있는 독방에 유가려 씨를 수용했으며, 이는 국정원장에 부여된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상 임시보호조치 재량권 일탈,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며 유우성의 여동생의 증언은 심리적 압박과 국정원 수사관의 회유 속에 나온 것이라고 판단, 2) 유씨의 몸에 ‘화교’라는 표찰을 붙이고 불필요한 모욕감을 준 사실 3)장기 구금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지 못한 것을 거론 되었다. 왜 변호인이냐면 간첩죄는 민사가 아니고 형사죄이다. 형사죄에 국가에서 괜히 돈을 써가면서 국선 변호사를 붙여주는게 아니다. 당장 과거 수많은 간첩 사건들에서도 국선 변호사들이 달라 붙었었다.

여담으로 이후 간첩 조작으로 밝혀지고 디지털 조선일보는 당사자에게 허위보도로 고소를 처맞아서 위자료 700만원을 배상하고 사실 확인 결과, 유우성이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거나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의 신원정보를 전달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당시 유우성이 간첩으로 판명된 판결이 선고된 바 없으며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 잡는다.는 정정보도를 내었다. 더욱 기가막힌 것은 당시 조선일보에 해당 칼럼을 기재한 당사자는 자신도 사실관계를 알고 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 나온 거를 그대로 쓴 것이다 라고 해명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언론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하여 병찌게 만들었다. 사실상 마녀사냥이자 최소한의 해당 주장에 대해 판단 근거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펙트체크도 하지 않고 내보낸 것. @@

끼리끼리 한다고 TV조선에서도 똑같이 탈북자의 발언에 대해 그대로 내보냈다가 500만원의 의자료 지급과 정정보도를 하였다.
8.5.1. 대북 휴민트 붕괴 책임 전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조선일보의 편향적인 어조는 이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계속해서 간첩사건 유출' 캐는 中… 對北 휴민트 무너질판((2014년2월25일자, 12면@@)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중국 당국 명의의 문서는 위조가 아니라는 것을 꾸준하게 어필했으며 이번 간첩증거 조작 사건이 계속 거론되면 국정원이 구축해 놓은 중국 연변일대의 우리 대북 휴민트(인적정보망)가 망가진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문제는 국정원에서 무리한 간첩 조작을 하면서 초래한 대북 휴민트 붕괴에 대해 조선일보가 사실상 멋대로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대북 휴민트 붕괴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니다 바로 일을 멋대로 벌린 당사자인 국정원이다. 본인들이 간첩 조작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멋대로 벌려서 일을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게 하였지만 정작 조선일보는 일을 벌려서 논란을 커지게 한 당사자를 질타하는게 아니라 당사자가 벌려 놓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다른 사람들에게 죄다 떠맞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대북 휴민트 붕괴를 주장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대북 휴민트 붕괴는 예전부터 있었다는 폭로가 있었기 때문.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국정원장을 위임했던 원세훈 국정원장은 유능과는 거리가 멀다는 악평이 자자한 인물이였다. 이재오도 지적한 대로 원세훈은 서울시 공무원 하던 사람이라 국정원 정보 업무에 경험이 없는 인물이였다. 그리고 원세훈은 국정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조직을 제대로 뒤엎는다. 원세훈은 국가정보원장으로 부임한 직후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는데 문제는 해당 부서는 남북회담, 남북 비공개접촉, 교류협력을 하던 파트였는데 이를 대책도 없이 없애버린 것이다. 문제는 대북전략국에는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를 거치며 북한과 오래 접촉하면서 북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국정원 요원 200여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기는 커녕 실무자들은 대부분 국내 파트로 돌려 버리고 고위직들은 죄다 축출해 버린다.

정두언 의원이 2011년 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을 우리나라 국정원만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이 정부 출범전 소위 대북 휴민트체제가 와해되었죠.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어요. 이들이 이명박 음해세력이었다는 거죠. 일국의 소중한 자산이 이런 모략 한마디에 날라가는 한심한 일들이 다반사였죠. 다 국정농단세력이 벌인 일들." 이라고 폭로한 것. 그렇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측근 실세들이 새로운 집권을 맞아 국정원 장악을 위해 존재하고 있던 대북 휴민트를 구성하는 과거 정부들의 국정원 인사들을 '음해세력'이란 누명을 씌워 압박하여 내쫓았는데 이러한 축출 과정에서 북한 고위층과의 인맥이나 북한, 만주등에 구축되었던 대북 정보망이 훼손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원세훈의 조직 숙청도 이중 하나였다.

해당 간첩 조작 사건의 내막은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비참한데 국가의 방첩기관이라는 곳이 제대로 되고 신뢰할 만한 정보 획득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제대로 까발려진 사건이였다. 결국 정보원이 정보처라는 중국 동포에게서 돈을 주고 획득한 정보는 죄다 거짓 정보들이였다.

하여간에 조선일보는 대북 휴민트를 무력화 시킨것도 모자라 민간인인 탈북자를 간첩으로 몰아서 피해를 입힌 정부를 비판하기는 커녕 옹호한 것이다.

8.6. 비선 실세 의혹 제기 당시 정부 편들기

비선 실세 의혹에서 당시에는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순실과 정윤회, 박근혜 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와 비선실세 활동을 담은 '감찰 문건'을 세계일보에 흘렸는데,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최 경위가 유출 혐의를 받아 “자신은 유출과는 무관하며, 단지 세계일보 등의 기사와 관련한 언론동향 보고만 올렸는데, 검찰에서 자신을 문건 유출 혐의자로 몰아붙였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표시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서는 최경락을 문건 유추의 주범으로 취급하는 기사들을 꾸준히 써왔었다. 결국 최경락 경위는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하였으며 이후 남긴 유서에서 "조선일보 ㅇㅇㅇ은 제가 좋아했던 기자인데 조선에서 저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됐습니다." 라고 언급하였다. 결국 조선일보에서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보다 내부 폭로에 대해서 책임 추궁을 해온 결과 관련자가 압박을 시달리다 못해 자살하게 된것. 조선일보만 압박한 것이 아닌 정부, 검찰측에서도 최경락 경위를 압박했지만 조선일보 또한 당연히 고인을 문건 유출의 책임자로 몰아세우는 기사들을 꾸준히 써온만큼 지속적으로 압박해온 해당 책임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피해자도 유서에 분명하게 조선일보 기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힘들게 했다고 서술하였다. 유서 전문과 자세한 경위는 최경락 항목 참조. 비선 실세가 사실로 들어나자 친정부 성향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정부 입장을 보여줘서 중장년층 보수 독자들에게 큰 배신감과 질타를 받았다. 오죽하면 박사모에서는 '빨갱이가 침투당했다'라든지 '북조선일보'의 피켓를 들었을 정도로, 하지만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긍정적으로 보도[15]하거나, 특히 이 댓글들 반응을 보면 친박 지지자들이 많다는 걸 알 수가 있다.

8.7. 청와대 이메일 지침 침묵

한국기자협회에 의해 조중동이 청와대 이메일 지침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 기자협회는 청와대가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막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경찰에 보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은 14일 4면 하단에 ‘이메일 경찰청 보낸 청와대 행정관 경고’ 중앙은 6면에 ‘청와대 ‘강호순 사건 홍보지침’ 행정관에 경고’라는 단신 기사를 싣는 데 그쳤다. 동아는 8면 왼쪽 상단 박스기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뤘지만 공방기사로 처리했다. 이후 이들 3사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특히 조선 중앙 동아는 청와대 행정관이 이메일에서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고 밝힌 내용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글을 통해 중앙, 동아와 함께 조선일보의 침묵에 대해 비판하였다. 조중동, 청와대 홍보지침 ‘침묵’ 출처: 한국기자협회[16]

8.8.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계엄령 모의 사건 관련 보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문서의 s-10.4번째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8.9.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검찰 발표 이후 반응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가 무려 10시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모든 언론들, 특히 동아일보중앙일보에서도 질타하는 기사를 내보냈으나 조선일보만은 유일하게 文정부 검찰 "성형 시술·굿판… 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박근혜를 옹호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한 것은 성형 시술, 굿판을 해서 화가 난게 아니라[17][18] 그 시간에 아무 대처도 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맞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데, 조선일보음모론 프레임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미디어 오늘 기사한겨레 기사

8.10. 친박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와 크게 대립각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왜 친박적 성향이라는 소리를 듣느냐면 다음과 같다.

세월호 7시간 계엄령 모의 사건 청와대 이메일 지침 침묵 비선 실세 의혹 제기 당시 정부 편들기를 거쳐서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를 계기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크게 대립했었지만 정작 박근혜 퇴진 운동에 대해서는 조선일보는 부정적이다. 2017년 1월 16일 신문 1면에 촛불집회 측이 레이저로 '사드 반대' 문구를 미국 대사관에 쐈다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정작 미국 대사관측의 심정은 물어보지는 않은 채로[19]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참고. 이에 편승하여 현재 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들은 대부분 극우 성향의 네티즌들밖에 없다.

시간이 지난 현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주장이 걸핏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김대중(기자)의 칼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아예 이명박 - 박근혜 전 대통령들 사면을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러한 비판이 나오냐 하면 김대중(주필)가 조선일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조선일보 경영진의 의도와 의사를 사실상 김대중(주필)의 개인의 의견이라는 가면을 씌워 내보낸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끊이질 않았으며 이번 사면 주장도 다른 사례들과 같은 연장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8.11. 김희중 왜곡 기사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1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검찰에 진술한 이후 조선일보에서 2018년 01월 25 10면(사회) 기사를 통해 김희중이 이를 확인하는 대질신문을 위해 70대 할머니랑 마주 앉았고 해당 인물 장씨가 김희중에게 "네가 나 인간 취급 언제 했더나" "뭐 10만 달러?"라고 삿대질 하며 따졌고 이에 김희중이 여러번 "그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사건.

당시 조선일보는 장씨에 대해 1970년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부터 일을 거들었으며, 청와대에 들어가 관저 직원들을 챙기는 '관저 여성팀장'이였으며 장씨를 이명박 전 대통령 보좌관들이 가희동 장할매로 불러왔으며, 검찰에서 그를 소환해서 조사하던 과정에서 장씨가 김희중에게 "넌 나를 일하는 할머니" 정도로만 취급하며 말도 잘 섞으려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으며 검찰에게 김희중에게 물건을 몇번 받아 김윤욕 여사에게 전달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맡길 사이는 되지 못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서 장씨의 진술에 기대를 걸었지만 조금 답답한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해당 보도는 교차 검증이 전혀 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김희중에게 아예 사실여부를 확인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김희중 본인도 보도된 기사를 보았고 이에 대해 직접 JTBC를 통해 조선일보의 기사 중 사실인 건 대질심문이 있었다는 것 하나뿐이며 나에게 삿대질 했다고 묘사한 장씨 본인은 검찰조사에 김희중 본인과 대질 신문에서 정작 숨도 제대로 못쉬었다고 하며 해당 기사를 보고 분노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조선일보에서 당사자인 김희중의 직접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명을 하지 하지 않고 그냥 침묵했다. 이후 2018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이 직접 사용 출처와 김윤옥 여사와의 관련성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김희중 전 실장을 통해 1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8.12. 법원행정처 조선일보 광고비 10억 계획 문건

광고비 10억’ 문건 뒤…조선일보, 상고법원 찬성보도 쏟아내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06098"<조선>, 언론으로서 치명적인 잘못을 했다"
조선일보 ‘홍보 파트너’로 설문조사 대금 검토… 공보 예산 10억 편성
조선일보 ‘홍보 파트너’로 설문조사 대금 검토… 공보 예산 10억 편성

양승태가 현직 대법원장일때 법원행정처가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홍보를 위한 기사 게재등을 요청하고 이를 위해 10억원 상당의 법원 예산을 광고비로 지급하려 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폭로된 사건. 이에 조선일보는 법원행정처에서 일방적으로 세운 계획이며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당시 법원행정처의 문건에는 설문조사의 경우 “(서울지방변호사회보다) 조선일보를 주체로 실시하는 방안이 설문조사의 성공 가능성을 확보하고 조사결과의 효과적인 홍보에 보다 유리하다” 조선일보를 조사주체로 할 경우, 전문 설문조사기관에 지급할 용역대금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관련 광고 등을 게재하면서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대금을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사회를 맡아 법조계와 사회 원로를 상대로 지상 좌담회를 여는 방안을 계획해 이를 조선일보에 제안하며,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상고제도 개선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담겨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처는 한겨레 등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을 언급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의 영향으로 한겨레에서 우호적 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 조 교수 명의 기고문을 한겨레에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럴 경우 진보 진영의 단일한 공식 입장이 상고법원 반대가 아님을 확인시켜 민변 등의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고 문건 작성을 하는 등으로 사실상 보수는 조선, 진보는 한겨레로 각각 나눠서 각 언론사에 대해 공략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웠다. 결국 한겨레의 진보 성향과 더불어 조선의 보수 성향을 추가로 확인해준 사건...

또 다른 의혹도 있는데 상고 법원에 대해 반대의 기사를 내기도 했던 조선일보에서 공고롭게도 문건 작성후에는 문건이 작성된 직후 <조선일보>에는 상고법원 관련 보도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와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실제로 광고비가 지급된 것도 아니여서 크게 추궁당하진 않았지만 시기가 워낙 절묘해서 논란이 되었다.

9. 무의미할 정도의 반노(+반문)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한나라당조선일보가 막 합작해서, 입을 맞추어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 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노무현, 경선 연설에서.
조선일보는 노무현과 관련된 상황에는 거의 무조건 노무현을 깐다고 생각하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극렬하게 노무현을 깠고, 또 까고 있으며, 앞으로도 깔 듯한 느낌.
노무현 정부때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황우석 사태에서 초기에는 노무현 정부가 적극적인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기사를 쓰다 사태의 전말이 어느 정도 바뀌자 입장을 바꿔서 노무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 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보도# #를 한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경무 씨의 만평을 보면 노무현 퇴임이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연재분량 절반 이상이 노무현의 얼굴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노무현 대통령 취급에서 180도만 돌리면 된다. 그러나 2009년 5월 25일... 노무현대통령의 사망으로 다시 한번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에 자숙의 의미인지 며칠 후 신경무 화백이 쉰다는 이후로 만평을 지면에 게재하지 않다가 2011년 1월 10일 연재를 재개하였으나, 신경무 화백이 2월 12일 지병인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만평 작가가 바뀌었다.

노무현 막말 논란을 주도하였으며 임기 기간 전반에 걸쳐 노무현의 어록을 부분 인용하여 비판하였다. 비정상적인 확장해석으로 발언의 의도와 맞지 않는 비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정도가 심해져 앞뒤 맥락에 전혀 반대되는 내용으로 발언을 왜곡시키는 사례도 상당수 존재한다. 몇 가지 예시와 자세한 설명은 유시민 작가의 고칠레오 7화 youtube 참조.
이후 노무현의 정신적 계승자라 평가 받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 노무현때의 행동을 재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사, 기사 진보성향의 대통령이 아님에도 진보성향이라고 낙인을 씌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20] 그래서인지 거의 매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내보낸다.

오해와 달리 조선일보는 왠만해선 김대중[21]에 대해 비판은 크지 않다. 시간이 워낙 흐른데다 미국쪽의 인맥이 워낙 풍부해서 밀월급으로 불릴 정도로 탄탄한 한미관계를 자랑한 정부[다만]인데다 노벨상 수상자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주류의 입장에 함몰되는 성향을 내보이는 조선일보이기 때문.[23]

10. 황색언론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판매부수 경쟁에만 열을 올려서 과도하게 공격적, 선정적, 자극적인 소재들을 마구잡이로 싣고, 심지어 기사가 아닌 흔히들 말하는 '소설'을 쓰는 등 아주 막장이 된 상태. 예컨데 어떤 주제에 대해 자기들이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뒷받침 해줄것 같은 익명의 취재원('문재인 정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권 인사', '청와대의 한 관계자', '평양을 자주 출입하는 대북소식통', '미국 정부의 한 관리', '충청도의 한 대학 교수', '원전 분야의 권위자')을 내세워 기사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나, 취재원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기사의 신뢰도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취재원 입장에서도 커리어로 들어갈수 있으므로 익명으로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익명으로 하는 기사가 많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 중에서 굳이 취재원을 익명으로 할 이유가 없는 사안에 대해, 혹은 취재원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기사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상황에서 익명 취재원을 베이스로 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소설인가? 사실인가?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조선일보는 나름 대한민국의 제1 언론사라는 점.... 이런 언론사에서 선정적이고 공격적으로 판매부수 경쟁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정확한 사실보도없이 구독자들의 입맛과 성향에 매우 충실한 기사를 써내려가는 것도 문제. 이를 위해서 앞에서도 언급한 편향된 취사선택, 정치적 스탠스에 의한 사실관계도 달리 하는 경우는 아낌없이 저지른다.

1980년대 중반,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와 이른바 '민족 신문지 논쟁'으로 서로를 헐뜯어 오히려 서로 명예를 실추시켰다.

스티브 잡스 사망 후 조선비즈에서 국내 스마트폰 경쟁력에는 도움이라는 기사를 쓰는 초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아무리 이게 자국 업계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찌라시 황색 언론이 아닌 정도의 일간지를 표방한다는 거대 언론사에서 이런 비열하게 짝이 없는 기사를 처갈긴 것이다. 사탄인가. 사탄 1패 추가했답니다. 사탄: 아 이건 좀...

올림픽 국가대표 복싱선수인 신종훈 선수에 대해 과거 일진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신종훈 선수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고 분노. 같은 선수를 인터뷰한 한국일보, 경향신문에는 일진이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에대해 기사를 쓴 홍준기 기자는 할말은 없지만 정정기사는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

겨울왕국 안나 성우 박지윤과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도 왜곡은 여전해서 '동료들이 너무 수면 아래에만 활동한다'며 걱정하는 박지윤을 순식간에 '혼자만 주목받고 싶다'는 건방진 성우로 바꿔버렸다. #

메르스 질병에 대한 보도행태도 보였다. 2014년 9월 조선일보는 '공기 통해 전염되는 '메르스 바이러스', 사스보다 6배 강력'이라는 제목에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 내용에 따르면 분명히 '공기를 통해 전염' 된다고 되어 있다. 또한 '공기 샘플을 채취한 결과, 공기중 '메르스 바이러스' 유전자 단편을 발견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로써 조선일보는 메르스가 공기감염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그러나, 2015년 5월말부터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전염이 확산되어가자,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31일자 기사에서는 '공기전염 증거는 없다' 며 제목에 기사를 보도한다. # 도대체 어떤게 사실이고, 어떤게 거짓인가?! 이는 조선일보가 '때마다 다른 기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후쿠시마산 수입 금지 처분에 대해 패소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며 한일관계의 경색이 우려된다. 일본이 승소 이후 국제 여론전에 나설 경우 WTO 협정 준수 모범국인 우리나라가 신인도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1심 패소 후 1년 넘게 우리 정부가 뭘 준비했는지 의문...WTO판정이 한일관계 악화에 새 불씨가 될 수 있다등의 보도를 하였다. 문제는 한일관계 경색은 이미 후쿠시마산 수입 금지 처분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과거사 문제로 경직되어 왔으며, 조선일보의 한일관계의 경색을 우려한다는 주장을 다시 되짚어 살펴보면 후쿠시마산 수입 금지 철회를 한다고 해서 과연 한일관계 경색이 해소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자칫하면 한일관계 경색은 계속 이어지면서도 일본에게 외교전 승리, 수입 규제 개선의 성과 제공으로 일본 아베 정부의 여론 지지율 상승등의 일방적으로 기여만 해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 논란은 또 있는데 조선일보에서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은 일본 자국내에서도 불신이 상당하다는 것을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았다."[24]

11. 친 기독교적 성향

조선일보의 친 기독교적 성향은 조선일보의 선정적인 기사 선정과 배타적 성향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예로 기독교내에서도 기득권들만이 믿는 일부만의 조선일보의 권위편승적인 성격에 기독교 매몰성향이 만나면 사회적인 소모를 일으키는 갈등유발 기사가 탄생한다. 특별히 주관을 개입하지는 않아도 일부 기독교의 의사관철과 관련된 기사가 자주 올라온다. 다만 조선일보는 기독교 매몰성향 때문에 정당한 권리관계보다는 통념을 중시하는 성향이 짙다.

또한 TV조선에 등장하는 여성 진행자의 상당수가 이화여대 출신이다. 다소 파시즘적인 여성부의 주춧돌이 된 그 세력 출신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복지로 돌리는 이유는 조선일보의 정치적 스탠스가 무상복지 반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조선일보가 신경을 써야하는 독자층과 한국의 개신교 기득권층이 겹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으로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대한 친기독교 성향인것은 아니다.

12. 이중잣대

12.1. 조선일보 기자 노조

12.2. 노조 활동

노조에 비판적인 기사만 쓰던 기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저녁 있는 삶 등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물론 자신들이 그 '노조'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는 노조를 매우 싫어하지만 정작 조선일보 내에도 노조가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기자들로 구성된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 수는 2018는 말 기준 200명을 돌파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조선일보가 노조 활동과 노조에 대해 어떤 논조를 취해왔는지 아는 사람들은 단 일말의 관심조차도 주지 않는 상황. 조선일보 기자들에 대해서 남이 노조를 하면 색깔론과 배가 불렀다. 이래선 기업의 앞날이 어둡고 조선일보 기자들이 노조를 하는 것은 삶의 질 개선이냐고 조롱한다. 물론 보수측에서 조선일보 노조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기레기 노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조선일보 노조측에서 자신들의 임금 상승과 노동시간 축소를 주장하고 싶으면 먼저 조선일보 기사등으로 지금까지 다른 직장인들의 노조에 대해서 평가절하하며 비판해왔으면서 왜 정작 조선일보 기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는지 해명부터 해야 할 상황. 그렇지 않으면 현재 조선일보내 기자들의 노조들의 활동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란 이미 틀린 상황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 조선일보 노조들도 의견이 있는데 현재 조선일보의 편집권은 철저하게 경영진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보도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주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장기 집권하며 세습까지 하는데 기자들의 언론자유가 살아있길 바란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

12.3. 임금 인상 요구

조선일보 기자들은 과거부터 줄곧해서 현재의 임금으로는 여유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는 노조를 매우 싫어하지만 정작 조선일보 내에도 노조가 있고 그동안 귀족노조의 종특이라며 깠던 임금인상 요구 스킬을 노조를 통해 시전하는 중이다. # 그리고 올해도 시전했다. 조선일보 기자들 "월급날마다 우울, 임금 7.8%는 올라야" 명백한 내로남불. 임금피크제?? 당연히 해야지!! 나랏님이 하라고 하시는건데! ...잠깐만, 우리도 해당되는거였어?

노조 활동과 같이 조선일보내 기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사실상 지지 여론이 전무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임금 인상, 최저시급 인상등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처갈겼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차가운 반응일색이며, 원래부터 임금 인상에 긍정적이지 않아왔던 보수측에서는 조선일보 직원들 평균 연봉이 6천만원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지금 배가 부를때로 불렀다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이에 대해 반론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에 의하면 평균 연봉은 경영진들의 매우 높은 임금이 포함된 것이며, 현재 조선일보의 편집권은 자율 보장은 커녕 전적으로 경영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한다.

12.4. 북한 김영철 방남 입장바꾸기

Before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北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

이날 회담에 나온 북측 수석대표는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장이다. 김은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의 주역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런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 회담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

2014년 10월 16일자 사설

After
천안함 주범이 한국과 유가족 능멸하게 만들 텐가

북이 김영철을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내려보내겠다고 알려온 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과 천안함 유족들을 우습게 보고 능멸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도를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

2018년 2월 23일자 사설

2014년 당시는 김영철이 남북군사당국회담의 북측 대표로 남측을 방문했을 때이다. 사설은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의 책임이 있는 전범으로 명시하면서도 남북간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김영철)와의 대화가 필요하고 또 그러한 정부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2018년 2월 23일 사설을 통해 김영철이 고위급 대표단장의 자격으로 방남한다고 하자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인물이고 이는 천안함 유족들을 능멸하는 짓이라면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분명 4년 전에는 김영철이 전범이지만 그런 사람과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다가 4년이 지난 시점에는 김영철을 받아들이면 "천안함 유가족들을 우습게 보고 능멸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현 정부의 무책임함을 일갈하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4년 전 그 때에는 유가족의 슬픔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황병서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그가 김정은의 최측근이며 이 회담을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상회담에 기대감만을 전달하였다. 정작 그가 연평도 포격의 배후로 의심받는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기사

12.5. 미국 비판 기사/사설

[태평로] 미국, 때론 우리를 배신했다

2018년 6월 4일, 조선일보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애치슨 라인 등을 운운하며 미국도 때로는 우리를 배신하므로 미국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설을 게시했다.[25] 북미정상회담과 이로 인해 북미관계가 해빙 무드에 접어들면서 지속적으로 보수 진영에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자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당일 홍준표가 트럼프 대통령을 외교를 장사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한 것과 함께 찾아보기 힘든 보수 진영에서 미국을 비판한 사례가 실제로 나타난 것.

당연히 엄청난 조롱거리가 되었고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실은 자신들이 반미임을 커밍아웃했다고 조롱하며 이제 곧 이들도 태극기 집회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 비웃고 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보수 성향 네티즌들이 어떻게든 본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을 뇌피셜로 해석해가며 감싸려는 안습한 모습을 보였는데, 대체로 조선일보는 미국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계속해서 잘못된 외교를 행하면 미국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창 코리아 패싱과 한미동맹 균열 우려가 있었던 박근혜 정부 시기나 작년도 아니고 오히려 한창 평화 무드가 진행 중이고 한미관계 또한 코리아 패싱 논란이 순식간에 불식될 정도로 좋은 현 상황에서 이런 식의 해석은 그야말로 아전인수격 해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다음 날에는 아예 은근히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듯한 칼럼도 냈다. 주 내용은 지방선거에서 고전 중인 보수야당이 이참에 대폭 물갈이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지만, 21대 총선에 대해 “미국 역시 트럼프 이후의 새 리더십을 기대할 것”이라는 내용을 통해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은근히 드러냈다. 이런 사설을 하루도 아니고 이틀 연속으로 내는 것으로 보아 보수 진영,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우파 '정치'세력이 얼마나 북미정상회담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빨던 분들이 왜그러실까?

이것 뿐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미국에 의해 전격적으로 결정된 북미정상회담 자체에도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내보였다. @@@ 트럼프 “폼페이오 김정은 만날 계획 없었다” -한반도기 게양된 자유로···“긴장 속 분주” “‘北 비핵화’ 기적 안 일어나” -외신기자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 기대 안 한다”와 같은 부정적인 기사들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이를 위해 조선일보에서 이란, 중국의 기사들까지 인용해가면서 보도하였다.[26]

그리고 2019 북미정상회담의 개최가 확정되자 미국이 북한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에 반기를 들면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붙이던 분들이 왜이러실까?

12.6. 장자연 사건 태세 전환 논란

수억 원의 개런티(출연료)를 받는 연예인, 수십억 원의 재력가 스타가 존재하는 우리 연예계의 한쪽에서는 꿈을 담보로 잡힌 채 고통을 겪고 있는 무명 여배우란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유린하는 건 그들보다 힘이 센 사람들이다.” - 2009년 3월10일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 @@@

사건이 처음 폭로될 당시 조선일보측에서는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건 우울증 아닌 연예계 현실이며 살아선 침묵할 수 밖에 없으며, 여배우들은 침묵하는 것에 대해 연예 관계자를 인터뷰해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누가 피해를 입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피해를 입힌 상대가 그들보다 힘 있는 이들이어서 피해자가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고, 황색 언론은 피해자의 인권보다 선정성에 더 초점을 맞출 텐데 나라도 그런 일은 할 수가 없다"는 것등을 지적하며 권력층이 연관된 성추행/성폭행에서 피해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분석하는 보도까지 냈었다.

하지만 정작 KBS가 장씨의 자필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후 조선일보 관련 인물들이 연관되었다는 것이 보도되자 태도가 돌변한다. @@@

때문에 조선일보와 관련이 없을 때는 비판과 폭로로 조선일보과 연관되면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진정성 의혹 제기로 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3. 전문성 부족

자신들이 예전부터 다뤄왔던 분야에는 대한민국내 언론사중에서 수준급의 논리와 탄탄한 정보를 바탕으로 둔 질이 좋은 기사를 내놓지만 새로운 사회현상들에 대해 이해도가 매우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에 대해 젊은 세대보다 기성세대가 주축을 이룬 구조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론도 존재한다.

2018년 3월 12일 이적이 일본 진출을 했다는 기사에는 한국 음악시장이 아이돌이 점령 당해서 일본으로 갔다라고 보도를 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의 내용과 달리 한국 아이돌의 세계 시장 진출은 먼저 일본부터 찍으며 활동하는 편이 대다수이다.

13.1. 게임에 대한 편파적인 매도

이러한 경직성은 조선일보에서 게임에 대해 유해성 논란 기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선일보는 게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긴다. 게임 셧다운제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게임마약, 쓰레기더미'등의 기사를 계속 보내고 있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이후로는 게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만악의 근원으로 몰고 있다.
  •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에서 왕따 가해자들이 사과문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게임에 비유 -> 게임이 왕따의 원인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빵셔틀의 "셔틀" 어원이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래했다 -> 빵셔틀의 탄생은 스타크래프트이라는 보도를 냈다. 국어국문학과 #
  • 맨헌트 2라는 폭력적인 게임[27]을 소개하면서 게임은 폭력적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 .
  • 게임은 마약이다라는 기사를 내며 "정상적인 아이가 게임을 하면 이상한 아이로 변해버린다"라는 보도를 냈다.
    "그럼 아리랑치기는 민요가 원인이냐"라는 비꼬기도 나왔다. 전국의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임요환은 빵셔틀왕이냐?" 라는 말도 올라왔는데 삭제했다. 이쯤되면 적반하장이다.
  • 게임의 폭력성 실험을 하기도 했다. 폭력게임을 25분 한 다음... 이런 식의 실험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MBC의 실험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조선일보를 줘봤을 때랑 한겨레를 25분 읽게 한 다음 조선일보를 줘봤을 때랑 뇌반응이 다르니 한겨레는 위험하다는 결론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논리는 조선일보랑 한겨레를 뒤바꿔도 성립되므로, 조선일보도 위험한 셈. 실제로 베플이 "조선일보 25분 읽게 하고 뇌사진 찍어보니 경악"이었다.
조선일보의 기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댓글 반응이다. "맞다. 내 조카도 초등학생인데 서든어택인지 뭔지 돈은 되는 대로 갖다바치면서 즐긴다. 얘가 나중에 사람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댓글을 달면 추천 40개를 받는데 게임에 대한 사회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슬플 뿐이다. 애당초 조선일보 사이트가 우파 중년층 이상이 많이 찾는 곳임을 감안해야 할 듯. 중년층 이상의 게임, 만화에 대한 인식이야 뭐...

그런데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디지틀조선일보는 별도로 온라인게임 뉴스 사이트 '게임조선'#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에선 대한민국 게임대상, 스타리그를 공동주최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조선의 커뮤니티 회원들이 조선일보를 까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14. 친기업/재계 성향

조선일보는 친 기업적 성향이 강하며 재계에 매우 우호적이다. 반면 노동자들과 노조에 대해선 매우 적대적이다.

14.1. 1997년 외환 위기 관련보도

조선일보의 친재벌, 친정권적 성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잘 드러난다. 1997년 11월 21일 김영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전까지, 조선일보는 "경제위기가 아니다"란 요지의 기사를 계속 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4.2. 이재용 구속 기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조사 과정에서 구금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해 한끼 1400원짜리 식사… 면회는 10분이라는 고난기를 작성하거나 이재용의 구속은 국가 경제에 직격탄이라는 편향적인 기사를 써내려갔다.

다만 이는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니였다. 한겨레도 6.56㎡짜리 독방에 수감이라는 제목을 뽑아가며 비슷한 보도를 내보냈기 때문.[28]

정작 외신의 반응은 이와는 상당히 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 전체 사업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봤고 LA타임스는 “삼성은 다른 기업과 달리 CEO 리스크가 크게 적용되지 않을 것”, “소비재 시장 집중에 따라 제품 리스크가 더 크게 반영”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재벌과 싸우겠다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추켜세웠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사건으로 재벌들의 부패 문제가 투명해지면서 한국 기업의 매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삼성 이재용을 위한 언론의 침소봉대, 그리고 후안무치.

15. 반노동자/노조 성향

15.1. 오보

2018년 10월19일자 3면에서 “본지 취재결과 아들이 교통공사에 특혜 취업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노조 간부는 5대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지낸 김모씨”라면서 김연환 전 서울지하철노조(서울교통공사노조 전신) 위원장을 지목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아들은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적 없다고 밝혔다. 결국 기사를 낸 다음날 조선일보는 2면에서 보도를 정정했다. @@@

15.2.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부정적 시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 부정적인 뉘앙스인데, 일례로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관련 기사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전력화가 늦어질 우려가 있다고 적고 있다.

15.3. 최저시급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조선일보 기자들에 의하면 최저임금 인상의 대표적인 피해자중 하나라고 한다. 왜냐면 조선일보는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하청이 상당히 크게 늘었지만 문제는 본사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상당수가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본사가 보전해줄 수밖에 없는 구조[29]인 상태라서 조선일보로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할 만한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

16. 강경 민족주의

만보산 사건 당시 심각한 오보를 냈을뿐 아니라 집중적으로 호외를 배포하였다. 문제는 이게 일개 신문사의 오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이걸 도화선으로 1931년 화교배척폭동이 폭발했다. 거기다 폭동에 관련된 기자중 대부분이 조선일보 기자다. 만보산사건 오보사건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

17. 친일 성향과 추축국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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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에는 히로히토 일왕이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있으며, 사진 위엔 용그림과 '황기 2600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옆의 여자는 히로히토의 아내 나가코 왕후. 기사의 신년사에는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란 내용이 들어있으며 좌측에는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축사도 곁들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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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4월 29일자 기사. 인터넷에서 한 때 유행했던 "히총통의 대사자후!"가 바로 이것이다.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조선인들에게 자유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에 헌신하라면서,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내용을 대서특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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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자매지 '조광'[30]에 실린 1940년 11월호 사설. 일장기나치 독일하켄크로이츠 깃발, 이탈리아 왕국의 국기를 걸고 군국주의 삼국동맹"인류 역사상 획기적 대사건"이라 극찬하였다.

  • 조선일보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1월 1일 천황 부처의 사진과 친일 성향의 신년사를 1면 머릿기사로 게재하였다. 1937년 12월 7일부터 12월 14일까지 중일전쟁의 초기에는 일본군에 대한 기사를 '아군의 승승장구'란 제목으로 4차례 1면 머릿기사로 실었다. 조선일보는 7월 19일자부터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기하기 시작하였고, 8월 12일자 사설에서는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전선이 확대돼 전쟁자금이 부족해지자 조선인들에게 국방헌금을 내도록 독려하였다. 같은 날 신문사와 사원들의 헌금 솔선을 밝히며, "북지사변 발발 이래 민간 국방헌금과 군대위문금은 날로 답지하는 형편인데 본사에서는 일반 유지의 편의를 위해 이를 접수 전달하려 하오니 강호 유지는 많이 분발하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 광고는 이후 고정란으로 실렸다.[31]
    총후의 임무 - 조선 군사 후원 연맹의 목적

    "북지사변이 커지기 시작하자 조선 역시 제국시민으로서의 응분의 의무와 성의를 다하고자 시국대책을 강구 실시하고 있는 중 조선군사후원연맹은 가장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다. 군사후원연맹의 목적은 이미 그 규약 중의 목적에 관한 문구를 보고 알 바와 같이 총후의 임무를 다하자는 데 있다. 황국의 위무선양과 동양평화를 쌍견에 질머지고 제일선에 선 출정장병으로 하여금 안심과 용기를 가지고 신명을 도하여 제일선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데는 총후에 선 일반국민의 정신 물질 양방면에 긍하여서의 후원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 1937년 8월 12일 조선일보 사설
  • 1938년 1월 1일 중일전쟁 기사의 참고 그림에서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 이것은 '조선적인 지명'을 탄압하던 일제의 강제에 의한 것으로 밝혀짐.
    파일:external/s32.postimg.org/156877554224057806_D00_A.gif
  • 1939년 4월 29일 사설에선 히로히토의 생일을 축하했다.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을 맞이함은 억조신서가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육체가 유강하옵시다고 배승하옵는 바, 실로 성황성공, 동경동하할 바이다. 일년일도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한 은과 광대한 인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적성봉공, 충과 의(를 다하야 일념보국의 확과한 결심을 금할 수가 없으며…" - 1939년 4월 29일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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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32]를 보면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에 대해 '소련과 공산주의자가 사주한 폭탄 테러'로 왜곡보도했고, 윤봉길 의사를 공산당원로 몰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선일보는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이봉길로 표기하는 황당한 오보를 냈다.
  • 조선일보는 그러나 1940년에 폐간당하고 만다. 전시체제에 들어간 일제의 민족 언론 탄압과 총력전 체제에 들어간 일제의 종이부족, 그리고 한글 언론매체의 탄압으로 강제 폐간당했다. 그런데 결코 '탄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애초 이 폐간의 실질적인 목적은 앞서 말한 일본 내외 언론사 통폐합등의 긴축정책에 따른것이며, 그 댓가로 조선일보는 폐간 당시 80만 원이나 받았다. 그때 돈으로...(동아는 50만원) 그때 1원이면 약 쌀 세가마 정도 되니 엄청난 액수인 것이다. 민족이 헐벗던 시절에, 민족 언론이라는 조선일보는 일제로부터 거금을 받고 고분고분 폐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금년에 신문, 잡지용지 배급량이 줄어들게 되는 것은 만주와 지나 방면에서 선무공작에 쓰이는 용지가 격증한 까닭이다. 이것은 국내사정보다 더 긴급한 것이므로 만난을 배제하고 해야 될 일인즉 부득이한 사정이라." - 1940년 6월 22일자 조선일보
  • 특히 두 번째 기사 때문에 조선일보는 정간까지 당한다. 방우영 사장의 혁혁한 항일의 표징이라고 주장하는 '압수'와 '정간'은 결국 사회주의 성향의 기자들이 쓴 기사들 때문이며, 그나마 이들이 조선일보에서 활약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기간에 무려 90건의 기사가 총독부에 압수당했으며 경영진은 1925년 9월 박헌영 등 화요계 중심의 사회주의 기자 17명은 강제 해고하였다.
    "조선일보는 신문통제의 국책과 총독부 당국의 통제방침에 순응하여 금일로서 폐간한다. 지나사변 발발 이래 본보는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더욱이 동아 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폐간사

    "(조선은 현상타개를 필요로 하는데) 요체는 정치적인 제국주의와 경제적인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제도로 바꾸는 데 있는데 이에는 반드시 적로의 세세혁신운동과 그 보조는 일치하는 것이다." - 1925년 9월 8일자 조선일보
  • 그런데 8.15 광복 이후 반민특위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활동에 들어가자, 친일행위에 앞장섰던 조선일보는 1949년의 사설을 통해 "새로운 국가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선 일제강점기 때 앞잡이 노릇을 한 인간들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7.1. 광복 이후

사실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이 이 정도로 끝났으면 일제강점기 시절의 흑역사일 뿐이라고 변명할 여지나마 있었겠지만, 조선일보의 친일성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일본 민족지'라는 별명이 생겼다.
  • 2011년에 친일파 최남선을 재평가하자는 듯한 기사를 내서는, 사회적 인사로의 행적을 은근슬쩍 묻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냈다.
  • 2018년 3월 5일자 신문 A1면에 창간 98주년 기념하는 글을 남겼는데 그 중 일부에 '일제강점기, 탄압과 굴종에 맞서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조선일보'라는 글이 있다. 조선일보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폐간된 적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인정받을 만큼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일삼았던 신문이며, 폐간된 이유는 중복된 신문이 많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현재 조선일보는 이전에 친일 신문 경력이 있는 자신의 신문사를 일제강점기에 대항한 신문이라고 미화시켰다.
  • 심지어 아예 기사에서 조선을 이씨 조선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33]

18. 전쟁초기 오보와 호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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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8일 아침에 발간된 조선일보같은 날 오후에 발간된 조선일보.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적혀 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조선일보는 국방부의 허위 보도자료를 그대로 쓰면서 '인민군 격퇴. 국군 총반격!' 따위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34] 이어 북한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자, 조선일보는 호외로 '인민군 서울입성'이란 보도와 함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기사를 내보냈다.[35]

이 호외는 오늘날 조선일보 공식기록에 없다. 조선일보는 1950년 6월 26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을 보도한 뒤 6월 27일 저녁 6월 28일자 신문을 만들고 서울 본사의 신문 제작을 중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월 23일에서야 서울 본사에서 1차 전시판을 냈다. 따라서 이 호외는 역사에 없던, 전쟁기간 중 발행된 조선일보 지면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호외 기사는 조선일보 사내 기자 직원들 가운데 북한에 지지 및 동조했던 직원들이 주도해서 호외로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에서도 조선일보 윤전기를 장악한 북한 기자들이나, 조선일보 내 북한 동조자가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외로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의 행적인데, 방응모는 서울이 함락된 뒤에라도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내가 문화사업을 했고 육영사업을 했는데 공산당이라고 나를 해칠 리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그냥 있었다.[36] 이는 전쟁 이전 좌파 지식인에게도 은밀하게 일정한 장학금을 대어 주던 사업가였기 때문에 북한정권이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곧 북한 내무서원들에게 납북되어 북한으로 이송되던 중에 결국 개성에서 미군 폭격기에 의해 공습당해 죽었다고 한다.

전쟁 초반 조선일보의 오보에 대해서는 잘못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비록 국방부 보도과의 '허위 보도자료'를 다른 신문들과 함께 그대로 발표한 것이라지만 언론의 본분인 취재 및 사실관계 확인을 도외시 한 것. 결국 이러한 행적은 한국 언론사에 큰 오점으로 자리잡혔다.

19. 독재시절 당시의 옹호

제2단계로 돌입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하여
"(군사혁명)은 보다 나은 입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감행된 것으로서 이것이 거군적인 단결과 함께 국내외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게 된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 1961년 5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는 민족일보가 폐간되고 민족일보의 사장 조용수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구속되던 날 "'제2단계로 돌입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하여"란 제목의 사설로 5.16 군사정변을 찬양하였다.
  • 1961년 6월 27일과 28일에는 박정희의 특별기고문인 '지도자도'가 실렸다. 여기서 박정희는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강력한 타율에 지배받던 습성이 제2의 천성으로 변하여 자각, 자율, 책임감은 극도로 위축되어 버렸다"며 자신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함을 정당화했다.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 비상 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1972년 10월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 10월 유신이 선포된 다음날에는 영구집권을 위한 초석을 "비상 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옹호하였다.
"무엇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6·7대나 대통령을 역임한 그를 또다시 환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의 영도력 때문이다. 그의 높은 사명감과 뛰어난 능력과 역사의식의 정당성 때문이다. … 우리는 더욱 전망적인 민족통일의 사명감과 구국중흥의 신념에 불타는 탁월한 영도자를 가졌다." - 1972년 12월 28일자 조선일보 기사
  • 박정희 대통령은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되자,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체육관 선거이란 부정한 방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박정희 대통령을 민족의 영도자 라고 하면서 미화에 앞장섰다. 단, 주필인 선우휘는 이와는 별개로 "자신의 소신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습관은 지양되어야 한다."[37] 대목을 실으며 부정선거에 대해 돌려서 비판하는 일말의 양심을 보였다.
  •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신군부에 대해서는 12월 20일자 사설을 통해 "군의 이러한 입장과 결의가 새삼 천명되었다는 것은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면서 찬양하였다.
  • 신군부가 자행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학살에 대해서는 광주 시민들을 '난동자'로 묘사하고, 학살의 주체인 계엄군을 미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사건을 왜곡하였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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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 「무정부 상태 광주」1주 - 김대중 그 김대중은 아니다 기자
"광주시를 외곽에서 들어가는 폭 40미터의 도로에 화정동이라는 고개가 있다. 그 고개에 내리막길에 바리게이드가 처져 있고 그 동쪽 넘어 무정부상태의 광주가 있다. … 쓰러진 전주와 각목 벽돌 등으로 처진 바리게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 198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 기사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 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감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군 곧 국군은 광주시민을 포함한 온 국민의 아들이고 동생들이며, 그래서 국민의 국군이며,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의 국군이다. 그러한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 198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 피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별력이 없는 법이다." - 198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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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8월 22일 전두환이 전역하고 육·해·공 3군 주요 지휘관들이 전두환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할 것을 결의하자 조선일보는 다음날 3면을 털어 <인간 전두환>이란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사에 앞서 공…나보다 국가 앞세워>,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해>라는 부제가 붙었다. 조선일보는 자신도 낯 뜨거웠던지 아카이브에서 이 3면을 삭제했다.
  • 8월 28일 전두환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자 조선일보는 "우리는 우선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온국민과 더불어 축하하며 그 전도에 영광이 있기를 회원해 마지 않는다. 전 대통령의 취임으로 바야흐로 새 시대 새 역사는 개막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은 전 대통령 정부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걸고 나라의 장래와 자신들의 생활을 전망하고 있다."고 칭송하였다.
  • 조선일보는 독재정권을 칭송했던 만큼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해 극렬히 혐오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일컫는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기사글을 썼다. ## 이들 조선일보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는 인민혁명당 사건 문서를 보기 바란다.
  •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인권유린 사례 중 하나인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선 경찰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1986년 7월 7일에는 "부천서 사건-공안당국의 분석"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급진세력의 투쟁전략 전술 일환-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고 규정하여 사실을 왜곡하였으며, 17일에는 "성적 모욕 없었고 폭언 폭행만 했다", "운동권, 공권력 무력화 책동"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다음날에는 "부천사건에서 얻는 것"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시점에서 수사권 밖의 사람은 진실이 어떠했는가를 가릴 능력도 없고 그럴 입장도 못된다”고 주장하였다.
  • 그러나 4.19 혁명과 같이 국민적 저항으로 독재정권이 붕괴할 조짐이 보이면 태도를 급선회하여 정권을 비판하는 모순을 보인다. # 그러면서, 자신들은 "4.19 혁명을 국민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1961년 5.16 당시 군부의 공식 용어인 '혁명' 대신 '쿠데타'라는 용어를 쓴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쿠데타'가 군부의 불법행동이라는 숨은 뜻을 읽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1980년 5월 21일 기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비극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따위의 주장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 허구의 주장이다.
  • 조선일보의 그러한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은 6월 항쟁 당시의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때도 조선일보의 친권력적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조선일보는 ‘고문’이란 단어를 빼고 <조사받던 서울대생 사망>이라고 전했다. 동아일보가 고문당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것과 달랐다.
  • ‘직선제 개헌이 불가하다’는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이후 6월 9일에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사설 <랑에 섰다/ 다음에 올 것을 오지 않게 하려면>에서 “야권과 학생들은 최대의 슬기와 절제 그리고 온유함의 자세로 되돌아갈 것을 당부한다”면서 독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분쇄하려고 했다. 다만 이때는 언론이 검열당하던 시대를 잊지 말자. 다만 언론 검열이 끝나고 자유롭게 기사를 써도 되는 시대가 찾아온 이후에도 과거 입장을 부정하지 않거나, 과거 사건에 대한 현대의 언급이 있을 때 (비록 그것이 검열 상황에서 억지로 가진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과거 당시에 조선일보가 가졌던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입장을 표하고 있다면 단지 언론이 검열당하던 시절이라고 넘어갈 수는 없다. 실제로 위 인혁당 관련 기사만 하더라도 2010년에 나온 기사이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길들이려 했다는 점을 고려 하더라도, 2010년에도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는 자체가 꼭 언론검열이어서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기본 인식이 그랬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평화적 정부 이양을 약속한 6.29 선언을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2면에 <위대한 나라로의 전진을 위해/대전환의 계기가 된 노 대표의 극적 선언>이라는 통단 사설을 냈다. 노대표수령님으로 바꾸면 어느 나라어느신문이라고 해도 믿어질 기사 제목이다
  •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때 조선일보는 김지하 시인의 기고 - 박홍 루카 신부(서강대 총장) - 공안부 검찰 라인과 같은 한 배를 타며 '분신정국의 배후엔 죽음을 부추기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 구체적인 행동이 유서 대필이라는 시나리오로 이어지도록 프레임을 주도해나갔다. 이어 조선일보는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학생들, 노동자들에게 "나가 죽어라"고 했다'고 연일 대서특필로 써버려 '강기훈을 비열한 인간'으로 인식시켜버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39][40] 조선일보는 오늘날 강기훈씨에 대한 사과에 대해 어떠한 단 한 마디도 하지도 않고 있다. 반성은 커녕 오히려 '진실은 결국 강기훈씨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41]
  • 2017년때도 예전과 달라진 모습은 보여지지 않았다. 박정희 우표 철회 때, 개인 우표는 2천만원만 주면 만들어 주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우표는 왜 안 만들어주나고 반박했다. 근데 개인 우표는 개인 부담으로 제작하는 것이고, 박정희 우표는 우표 본사에서 직접 제작할 기획을 했던 것이다.

20. 세습/사유화된 언론사

조선일보의 소유/경영을 담당하는 방씨 일가의 세습, 사유화는 조선일보에 대해 언론사가 아닌 방씨 일가의 이득을 위한 사기업일 뿐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문제는 조선일보는 언론 보도를 표명하는 언론사이다.

과거부터 조선일보의 소유/경영을 해온 방씨 일가에 대해 수많은 논란들이 터져나왔지만 조선일보는 이러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을 고수하며 기사화를 하질 않는다. 그나마 기사를 올리더라도 이후엔 제깍 삭제해버린다. 대표적인 사건들이 조선일보 손녀 갑질 사건. 방용훈 부인 자살 논란, 장자연 자살 사건등. 때문에 조선일보 기자들도 공개적으로 조선일보 안에 성역은 있고 언론자유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할 정도이다.

심지어 조선일보 기자들조차도 현재 조선일보의 편집권은 경영진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보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데다 조선일보 사주(방씨 일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장기 집권하며 세습까지 하는데 언론자유가 살아있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직장에서 도태될 자유를 각오하지 않는 한 사주 심기를 거스르는 기자는 나오기 힘들다. 현재 조선일보 기자들이 만든 노조라는 공적 조직마저 ‘패싱’ 당하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세습과 사유화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대를 이어 방씨 일가가 승계를 이어가는 것이 반복됬으며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배구조가 폐쇄적이고 방씨 일가의 독점에 가까운 구조라서 다른 사람이 파고들 여지가 전혀 없다. 때문에 조선일보내에서 방씨 일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수준이다. 문제는 절대 권력은 언론 자유를 압살하며 기자들까지도 눈치를 보게 하여 편향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아무리 기자 개개인들이 자유롭게 기사를 쓰고자 해도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감히 방씨 일가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으며 방씨 일가가 관련된 논란있는 사건에 기사를 써내려 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는 다른 문제점을 낳는데 기자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인물들 조차도 일단 방씨 일가의 눈에 들게 된다면 출세를 하며 승승장구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눈에 든 김대중(기자).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왜곡 기사를 수도 없이 써왔지만 밀려나기는 커녕 조선일보내 요직들을 거처가며 성장했다. 현재 조선일보내 주식까지 배분받은 상태이며 김대중(기자)의 칼럼은 댓글 자체를 달 수 없도록 된 상태이다.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는 기자가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은 원천 차단하고 아예 받질 않겠다는 오만무례함을 내비춘 것이다.[42]

20.1. 조선일보 손녀 갑질에 대한 침묵

조선일보 사장의 손녀이자 TV조선 대표 이사 전무인 방정오 대표의 딸이 운전기사에 대해 “오늘은 엄마한테 진짜 얘기를 해야겠어, 얘기해서 아저씨 잘릴 수도 있게 만들 거야”, “아저씨는 해고야. 진짜 미쳤나 봐”, “진짜 엄마한테 얘기해야 되겠다. 아저씨 진짜 해고될래요?”, “아저씨는 장애인이야. 팔, 다리, 얼굴, 귀, 입, 특히 입하고 귀가 없는 장애인이라고. 미친 사람이야.”, “아저씨 부모님이 아저씨를 잘못 가르쳤다. 어? 네 부모님이 네 모든 식구들이 널 잘못 가르쳤네.”, “나 아저씨 보기 싫어 진짜로. 아저씨 죽으면 좋겠어. 그게 내 소원이야.” 라고 한 노골적이고 추악한 인격 모독과 갑질 행위들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하여 논란이 되었다.

때문에 아무리 조선일보가 방씨 일가의 소유라고는 해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눈치를 보며 현재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의 제 1언론사임에도 여전히 지나치게 소유/경영 일가에 속박되어 있으며 때문에 방씨일가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결국 조선일보에 있어서 방씨 일가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언터처블의 성역이며 결코 비난할 수 없는 최고존엄이다.

‘조선일보 손녀 갑질’ 보도한 MBC기자 “공개된 건 새발의 피”

20.2. 장자연 자살 사건 논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장자연 자살 사건 문서의 s-3.2번째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20.2.1. 스포츠조선 사장 장자연 성 접대 관련 보도 논란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공식 기사 보도를 통해 조선일보의 사주인 방씨 일가 인물들은 이와 전혀 무관하며 이는 명백한 오해이며 스포츠조선 사장이 장자연 성접대 논란에 관련된 인물이라고 기사로 보도 했다. @@@

해당 보도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인데 결국 조선일보계열의 임원이 연예기획사 대표를 통해 연예인 성접대에 관련되었다는 폭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조선일보측에서 자사의 소속 스포츠조선 사장을 자사의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지적한 만큼 빼도박지도 못한다.

조선일보의 공식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장씨가 쓴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의 전 사장으로 확인됬으며 장씨가 조선일보 사장으로 묘사한 사람은 바로 스포츠조선 사장이며 이는 평상시 연예기획사 대표 김종승이 스포츠조선 사장을 평상시 조선일보 사장으로 불렀기 때문이며 결국 실제로 장자연을 연예기획사 대표 김종승으로 부터 직접 소개받은 것은 바로 스포츠조선 사장이며, 장자연 사건은 성상납 관련자인 김종승을 제대로 조사하기만 하면 모든 논란이 종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2.2. 조선일보 사주 일가 보호 논란
조선일보로 부터 장자연 사건에서 지목된 조선일보 사장은 방씨가 아니라 스포츠조선 사장이라는 보도등에 대해 당사자인 스포츠조선 사장 본인은 강하게 반발하며 자신은 주변 기자들로 부터 조선일보 사주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여 촉발된 논란.@@@

해당 스포츠조선 사장은 자신이 이렇게 '조선일보 방사장'인 것처럼 지목된 데에는 당시 조선일보 측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2007년 10월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함께 장자연 씨를 만난 적이 있지만 당시엔 누구인지 몰랐다" 장자연 씨를 함께 만난 "방용훈 사장에 대해, 당시 경찰과 검찰 모두 전혀 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여러 차례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았다"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은 배경에 조선일보가 있다는 건데, 하 씨는 당시 주변 취재기자들로부터 "조선일보가 사주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들었다" "하 씨는 집에서도 하 사장이지 방 사장일 리 없다"며, 연예계 관계자가 자신을 방 사장으로 착각할 리 없다 "스포츠조선 사장은 방씨 일가가 아닌 직원이 앉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이며 자신은 그만큼 조선일보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사주일가를 위해 희생된 셈이라고 하며 조선일보의 보도등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20.3. 장자연 음모론

자필로 작성된 장자연의 문건에 대해 “과연 장 씨 의지에 의해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쓴 것인지,” 그렇다면 “그 배후는 누군지”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해당 논란을 제기한 것은 또 등장하는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

장자연 문건에 대해서 하나는 장자연 씨 자신의 자유의지로 썼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후세력의 음모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썼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며 조선일보는 장자연 문건에 대해 흠집을 낸다.

문제는 조선일보측의 음모론성 주장을 뒷바침 하는 증거자료가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즉 장자연 문건이 자필로 쓴 것이 명확하게 확인되었고 해당 문건이 타의나 강압에 의해 쓰였다는 증거 자료등이 전무한 상황에서 김대중 주필은 장자연 씨의 죽음을 본인 주관으로 재구성하면서 그의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한다. 아예 대놓고 “누구의 사주를 받고 썼다가 그것이 유포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두려운 나머지 자살로 도피한 것”이라고 까지 한다. 기가 찰 노릇.....

심지어 장자연 문건에 실제로 등장한 것에 대해 폭로를 한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비난을 감추질 않는다.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경찰도, 어느 의미에서는 정권도 이 '장자연 사건'의 진행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당국의 무능과 무력, 또는 관음증(?)이 사태의 '주연' 같고, 일부 '안티 조선'의 조바심이 '조연'처럼 보였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김대중 주필 본인도 이에 대해 조선일보의 누구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조선일보 차원에서도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고 그 상황에서는 조선일보 측의 결백을 믿어온 임직원부터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진짜 논란은 따로 있는데 김대중 주필은 해당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추가로 "그러나 이것이 터무니없는 모함과 모략, 그리고 그에 편승한 권력적 게임의 소산으로 밝혀지면 그것을 주도하거나 옮기거나 음해한 측 역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조선일보의 말이 맞다고 쳐주더라도 지나친 주장인게 비판자들의 대다수가 장자연 사건에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은 장자연 문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장자연 문건은 장자연 본인의 자필임이 확인된 문건이다. 비판자들이 근거도 없이 조선일보를 깠다면 김대중 주필이 전적으로 맞지만 문제는 비판자들은 근거를 두고 조선일보를 비판한 것이기에 음해, 주도, 권력적 게임의 소산으로 이들을 싸잡을 수는 없다.

20.4. 방용훈 부인 자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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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방응모 미화

계초(방응모)는 일절 편집에 관여하지 않았다. 광복 후 계초가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독당 재정부장을 맡고 있을 때 정치부 이규홍 기자가 한독당에 불리한 기사를 가져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계초는 "자네 그걸 몰라서 묻나. 한독당은 내 개인 일이고, 조선일보와는 상관없어"라고 잘라 말했다.(2001/03/19 창간 81주년 기념 기사)
계초는 광복 후 임시정부를 이끌고 돌아온 백범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한때 백범이 이끌던 한국독립당의 재정부장을 맡기도 했으며, 복간한 조선일보는 한독당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2002/03/19)
한마디로 조선일보가 방응모가 한국독립당 재정부장을 맡고 지지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실제로 방응모는 한국독립당에 들어간 것과 김구에게 자금 지원을 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서의 왜곡들이다.
20.5.1. 검증 없는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
조선일보에서 밀었던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은 논란이 두가지이다. 첫째 사실관계 왜곡, 둘째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방씨일가의 조선일보를 시작한 방응모에 대한 신격화와 왜곡된 미화이다.

조선일보는 유독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에 집착하였는데 교차 검증의 부족, 방응모의 한독당 재정부장설을 반박하는 진술과 증거 자료들에도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 역임 주장을 끝내 꺾지 않았다. 때문에 보수 언론에서도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을 밀어주는 것은 조선일보 관련 계열사들과 조선일보 지지자들 뿐이였다.

계초 방응모전 증보판을 쓴 저자에게 오마이뉴스 기자가 전화로 왜 이런 책이 나왔는지 물었고 답변에 의하면 월간조선 기사(당시에 측에 대해서도 문의를 한 결과 출처는 1980년에 나온 『계초 방응모전』, 조선일보라는 유수의 대언론사에서 만든 간행물이므로 사실관계 자체가 잘못돼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김구는 환국 뒤 방응모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정황상 방응모가 한독당 재정부장을 맡았을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였다. 또다른 문제는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 적잖아 있고 여기엔 심지어 한독당 관계자중 생존자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진짜' 한독당 재정부장 출신인 신창균 범민련 의장은 947년 이후 내가 줄곧 재정부장과 재정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인데 무슨 방응모가 한독당 재정부장이냐며 방응모가 잠시 한독당에 입당한 적은 있지만 그가 맡은 것은 명예직 성격이 강한 중앙상무위원이고 방응모 본인은 서너달 있다가 당을 나가버렸으며 당시 방은모와 김구가 친했던 것은 맞지만 방응모와 조선일보가 김구에게 먼저 접근해 도움을 줬기 때문이며 미군정과 손을 잡은 한민당이 세력을 넓혀나가며 대세를 형성하자 한독당을 버렸다."고 하며 김구를 자신들의 왜곡과 날조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

다른 논란들도 존재하는데 조선일보에서 교차검증을 통해 자신들의 자료가 실제로 사실인지 확인을 하는데 소홀히 한 것과 이런 신뢰성에 의문의 제기된 주장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사실마냥 보도 했다는 점이다.

결국 조선일보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믿고 검증없이 전부 받아들여 김구와 한독당을 지원하고 실재로 들어간 방응모와 지지한 조선일보가 어떻게 친일이냐는 기가막힌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점입가경의 주장도 나왔는데 한국 기자 협회의 지적에 대해 조선일보 사장실측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회사 내 자료에는 그렇게(한독당 재정부장을 맡았다고) 기록돼 있다. 우리는 우리 기록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다”며 “(말지가)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자기 자료만 최고이고 자신이 본 자료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자기와 다른 경험, 다른 자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주장을 늘여 놓는다.@@@ 이미 조선일보측의 주장에 대해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진위가 의심되며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 난무한 상황에서 궤변을 늘여 놓는 것이다.

조선일보측에서 이러한 것에 대해 비판자들은 친일 논란에 대해 매우 치명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는 조선일보에서 친일 비판에 대해 논점을 흐리고자 방응모 한독당 부장 역임과 같은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5.2. 방응모 독립 운동가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방응모는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한 인물이며 보수내에서도 방응모 친일은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에 조선일보에서는 폐간을 운운하지만 이는 폐간을 고기방패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을때 이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재판부는 "1944년 조선항공업 창립발기인으로 활동한 부분에 대해 친일행위로 판단한 부분을 취소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활동에 대해서는 친일 행위로 인정된다."라며 판결했는데 '방응모는 1933년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해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친일활동을 벌였으며, 1937년 경성방송국 시국강연에서 "일본제국은 극동 평화를 확립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1938년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춘추회의 발기인 겸 간사로 적극적으로 활동 했다.'고 인정하며 친일로 쐐기를 박아버렸다.

20.6. 소통없는 일방적인 사측/직원 관계

조선일보 노조 “언론사 세습, 언론자유의 적”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조선일보내 직원들에 대해 임금 피크제가 진행됬으며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상당수의 직원들을 해고, 사내하청업체로 전환하여 과거엔 조선일보 소속이였던 직원들이 현재는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로 대처했으며 과거부터 지급했던 기자협회 축구대회 지원금까지도 기자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을 하자 바로 끊어버리는 치졸한 모습까지도 보였다.

한마디로 직원들의 그 어떠한 이의제기나 불만에 대해 조선일보 사측은 전혀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내유보금만 현재 1조원이 넘어가는 조선일보가 이렇게 까지 직원들 봉급과 비용 지급에 대해 기자/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진상황.

게다가 현재 조선일보측은 모든 경제위기의 원인을 최저임금으로 돌리는 방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내 기사들로 구성된 노조에선 조선일보 본사는 낙수효과가 거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으면서 신문에선 기업에 혜택을 몰아줘야 낙수효과가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21. 기업과의 유착관계

조선일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업들에게서 술자리, 교통비, 관광비용을 접대받고 우호적인 기사들을 자주 써왔었다.

이러한 관행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16년에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술자리, 초호화 요트 관광, 유럽 왕복 항공권 1등석등 총 2억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사건. 당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게 폭로되었다.

이것의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이 방만 경영으로 당장이라도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인데 언론인으로 이를 비판하고 고칠 사항을 지적하진 못할망정 기업측에서 제공하는 호화 향응에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브로커인 박수환 뉴스컴 대표가 양자를 연결했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측의 노골적인 편애로 당사자의 부인까지도 대우조선해양 대형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참여한 것이 추가로 폭로되었다. 선박 명명식에는 보통 선주의 아내나 딸 등 관련있는 사람들을 주로 초대하는게 관례인데 선박과는 관련성이 전무한 조선일보 논설실장의 배우자가 대우조선 대형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참여한 것. 물론 기업의 대형 언론에 대한 아부였다.

조선일보측에선 근거없는 선동이자 몰아가기라고 변명하며 송희영 주필을 일방적으로 옹호했지만 이미 확실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던 김진태 의원은 조선일보가 변명하는 족족 이를 지적하며 2011년 9월5일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요트를 제공받아 탔는데 그 비용이 3340만원이며, 인천에서 파리, 파리에서 베니스, 런던에서 인천 등으로 돌아오는 과정[43]에서 항공권 1등석을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제공받았는데 그 비용이 1250만원임을 공개하는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액수와 향응을 접대받은 날짜까지도 밝혔다.

한가지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김진태 의원이 폭로한 것들이 명백한 사실이지 결코 조선일보에 대한 무리한 비난이 결코 아니였다. 실제로 김진태 의원의 폭로에서 문제가 된 것은 조선일보 인물측의 이동경로, 접대받은 날짜와 액수등을 상세하게 알고 있어서 다른곳에서 정보/자료를 받아온 것이 아닌지 의혹이 발생하였기 때문.

22. 경찰과의 유착

22.1. 청룡봉사상

이를 잘 드러나는 것이 현재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있는 청룡봉사상이다. 청룡봉사상은 1967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 말기 2007년 ~ 2008년에는 잠시 중단되다가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쭉 주고 있다. 수상 부분은 충(忠)·신(信)·용(勇)·인(仁)·의(義) 5개인데 국토방위과 국가보안 임무에 공헌한 경찰관에게 주는 ‘충상(忠賞)’을 누가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청룡봉사상 주최 측에 따르면 경찰 보안업무 특성상 미공개 해왔다는 것이다.

언론사의 상을 주면 1계급 특진하는 상의 취지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어느 경찰에게 청룡봉사상을 수여할지는 당연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의 입맛에 맞거나 취지에 충실히 부합하는 인물이 상을 받는 것이니 편파성 논란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청룡봉사상은 고문 기술자인 이근안이 수상한 상이기도 했었다. 애초부터 논란이 존재해왔던 문제가 많은 상이다.

다만 특정 성향의 언론이 수상하는 상에 굳이 1계급 특진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으로 예전부터 경찰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청룡봉사상 추천 대상인 경찰관에 대한 세평이나 감찰 자료도 예전부터 심사위원들에게 계속 제공되어 왔는데 2019년이 되서 논란이 크게 번지자 이번 2019년부터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공안경찰로서 앞장섰던 사람들을 수상하거나, 장자연 사건에서의 경찰에게 협박하는 조선일보 간부가 심사를 맡는 등 상당히 문제가 많은 상이라고 볼 수 있다.https://www.nocutnews.co.kr/news/5135534,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871

23. 집단과의 유착관계

23.1. 원전 단체

뉴스타파에 의해 원자력 관련단체에 의해 돈을 받고 원전이 안전하다는 류의 홍보성 기사를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

혹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도 있는데 신문 지면의 상업광고도 아닌 기사를 돈을 받고 써줬다는 것은 언론으로써의 윤리와 양심을 돈과 바꾸었다는 뜻이 된다.

24. 소년 신문 구독 요구 논란

2000년대 초등학교등에서 소년 조선 구독을 신문활용교육이나 가정통신문등을 통해 구독을 요구받은 것. 실제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학생들은 소년조선을 마지못해 봤는데[44] 일부 초등학교 교장들은 자신의 명의로 구독을 요청하는 신문구독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하거나 어린이신문을 아침자습교재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강제되어 버렸다.[45] 조선 일보외에도 동아일보, 한국일보에서도 소년 동아일보, 소년 한국일보로 비슷한 행각을 벌였다.[46]

그밖에도 소년조선을 구독을 조건으로 학교에 재정적 기부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소년 조선의 구독을 독려하는 것은 사실상 학교와 언론사의 담합이랑 하등 다를 것이 없었기에 논란이 되었다[47]

구독 뿐 아니라 소년 조선에서 여는 대회에 대해 암묵적으로 참여하기를 압박한 것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일선 교사들이 동원[48]되었다는 논란에도 휩쌓였다. 일선 교사들이 <소년조선> 사생대회 '수금사원'?

25. 정정없는 관련 기사 삭제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의 제 1 신문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펙트확인이나 검증이 없는 찌라시성 기사를 자주 쓰는 것으로 악명이 매우 높다.

당장 본 항목에 있던 2011년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통한 선거방해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다가 이후 사실이 아님이 명백하게 드러나자 그 어떠한 정정조차도 없이 관련 기사를 전부 삭제해버린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해당 기록이 남아있기에 이후 박제되어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위키를 작성할 때 상당히 불편한데 링크를 걸어놨는데 링크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때문에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할 때는 박제도 겸해서 가능하면 아카이브도 같이 링크에다 같이 걸어둬야 한다.

26. 사설의 고기방패화

조선일보의 흔한 변명드립중 하나가 바로 사설이 논란이 될 경우 사설을 기고한 개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조선일보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틀에 박힌 변명을늘여놓음으로써 논란에 대한 비판에서 회피하는 것이다. 물론 "해당 사설을 실을지 안 실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조선일보"임을 생각하면 헛소리일 뿐이다. 즉 조선일보에서 자신들이 올리고 싶지만 기사로 올리기는 사실관계가 전부 확인되지 않은 의혹 수준이거나 자신들이 봐도 이거를 대놓고 공식 기사로 보도했다가는 논란이 크게 터질게 뻔하다 싶으면 이렇게 우회하는 것이다. 이러다 문제가 터지면 바로 논란이 된 것은 기고받은 사설이며 주필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한다.

즉 발언의 수위와 다루는 것에서 차이가 나지만 월간 조선과 비슷한 역활을 수행하며, 중국 공산당에서 환구시보를 통해 발언해놓고 정작 문제가 터지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발을 빼는 것과 유사한 케이스.

다만 이는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언론 전체의 문제이다. 조선일보외에도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흔히 써먹는 수단이다. 언론사들에서 본지에 게재된 제휴기사, 오피니언, 외부 칼럼 등은 본지의 공식 견해와 무관합니다.라고 괜히 적어놓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선일보의 경우 제휴기사나 외부인이 기고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소속 언론인인 논설위원이 직접 기고한다는 점에서 외부기사나 외부인 기고와는 그 급이 다르다.

[1] 때문에 조선일보의 용산 참사에 대한 접근이 상반되는 기사들이 존재한다. 그러다 용산참사 10주년에 다시 철거 당시 농성자들의 문제점들에 크게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냈다. 이러한 취사 선택 덕분에 결국 사람들은 어찌 됬건 사건에 대해 단편적인 면으로만 보게 될 수 밖에 없다.[2] 심지어 시너가 있다는 것을 파악해 두고 시너로 인한 화재에 대한 대응책이 처참했다. 이에 대해 경찰측에선 농성자들이 시너를 많이 뿌릴 줄은 몰랐다는 기가 막힌 변명을 하였다. 문제는 경찰에서도 20ℓ짜리 시너통 60여개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시너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었으며 게다가 당시 농성측의 일부는 전철연이였으며 이들은 화염병등을 통한 극렬한 농성방식으로 인해 예전부터 진보일간지 한겨레로부터 비판을 당하기까지 한 곳이다. 경찰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으며 때문에 당시 투입된 대원들에게 현재 농성에는 주민도 있지만 악성분자들이 끼어 있다고 사전에 공지를 했다. 진짜 악성분자라는 경찰측의 언급이 들어맞을 정도로 실제로 이들이 시위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여럿 사고들로 사망하였다. 참고로 용산 참사 당시 저 특유의 망루조차도 전철연의 주요 농성방식이다. 이런 악조건들 속에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조기 진압만을 외치며 무작정 달려든 꼴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사람들의 목숨으로 치룬 것이다.[3] 실제로 농성자중 한명이 추락사로 사망했다.[4] 고인의 친부는 당연히 화제 발생의 책임을 경찰로 떠넘기려는 농성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대법원에서도 화재의 책임은 농성자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판결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왜 사망한 고인이 이렇게 위태로운 진압작전에 나서야만 했는지는 해당 기사에서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5] 용산 참사에 참여했던 철거업체 직원까지도 폭력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이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모자이크 가명으로 인터뷰해서 철거 용역들에 의한 폭력 발생은 사실이라고 진술하였다.[6] 여기서 나오는 김대중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명이인이다.[7] 사실 김대중(기자)의 광주 취재 당시의 내막과 의혹도 만만치 않은데 당시 일간지 사회부장들을 정부가 광주로 인솔하면서 사회부장들에게 100만원 촌지를 안겼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부장 월급이 45만원 정도였다(윤덕한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이를 김대중이 받았느냐 안받았느냐도 논란이 있었다.[8] 당시 영화감독이 특정 배우 몸값이 너무 비싸다며 돈만 밝힌다고 몰아 붙여버린 사건. 여기에 조선일보는 감독의 의견을 듬뿍 실은 기사를 올려서 영화배우들을 돈만 밝히는 속물로 취급해버린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구독자들 상당수들도 시작부터 조선일보가 패배하고 들어간 논쟁이라고 생각했는데 구독자들 사이에서도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당사자인 감독이 배우 몸값이 비싸다고 징징거릴거면 그냥 다른 배우를 쓰지 굳이 왜 최민식 같은 거물급 배우를 썼어야 했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최민식은 남성 배우들 중에서도 말 그대로 손에 꼽히는 순위권에 드는 인물이다.)[9] 당시 조선일보의 태도가 하도 반복되니 일부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했기 때문으로 분석하였다.[10]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제 1위의 언론사의 위상이 있기에 이들이 일방적으로 긁어온 뉴스들은 그 출처가 미국의 찌라시성 기사이던 말던 상관없이 조선일보를 거쳐서 보도된 것이기에 한국에 크게 권위를 가지고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11] 대북관련 뉴스 외의 뉴스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다만 2번에서 '대북 소식통'을 '미국 백악관의 한 관계자', '미국 정부에 정통한 소식통', 'UAE 현지 교민에 따르면', '현지 교민회 관계자에 의하면' 등으로 바꾸면 된다.[12]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언론사이며 이때문에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런 영향력을 가진 언론이 오보를 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뢰한다. 문제는 정정보도를 한다 하더라도 기사는 한번 나가면 정정보도를 해서 이를 고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성폭력 무고로 엮인 사람들이 이미지 회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라)[13] 다만 이는 개인 사생활에 대한 비꼼의 의미가 강한 있는 것도 크다.[14] 때문에 해당 발언에 대해 아무리 김대중 주필이라도 이런 발언은 할 리가 없으며 김대중 주필에 대해 비판하는 측에서 과장한 것이라는 논란까지 있을 정도.[15] 실제로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거나 심지어 조선일보와는 성향이 완전히 정반대인 한겨레신문과 좌우합작을 하는 듯한 기조의 보도를 할때 조차도 조선일보 뒤에서 두번째 면(사설이 실리는 페이지) 하단의 광고는 거의 탄핵반대집회 광고였다.[16] 대한민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그리고 뉴스통신사에 종사하는 현직 기자들의 단체이다.[17] 게다가 이는 애초부터 정부에서 당시 행적에 대한 정보나 언급을 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생긴 논란이였다. 결국 정부에서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에서는 당시 정부에서 이를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한 사실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18] 참고로 미국은 9.11 테러 당시 7분 동안 대처나 조치가 없었다고 부시 전 대통령이 크게 곤혹을 치뤘다.[19] 반대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는 광고문을 수시로 실어내기도 했다.(주로 맨 뒷면에 올렸다.) 더구나 박사모조선일보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20] 하나의 예를 들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의 평등(공정성)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들의 용어이지 진보의 용어가 아니다. 좌파라면 개량주의(사회민주주의)든 혁명 지향적 사회주의든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 토지공개념, 탈노동 사회 등등을 주장하는 신좌파라면 조건의 평등 대신 결과의 평등을 주장할 것이다. 참고로 극좌로 분류되는 사회주의는 조건의 평등을 혁명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기여도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며, 거기서 생산력이 더 발전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가서야 비로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 사회주의의 기본 입장이다.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은 신좌파에서 말하는 기본소득, 토지공개념, '노동의 종말' 이론 등등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개념들을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룸펜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그 외에도 문재인 정부가, 개혁이나 적폐 청산이라는 (비교적) 진보적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문제 그리고 민주화 30년 이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해소하기 위해서이지 문재인이 진보적이어서는 아니다. 직전 대통령의 문제로 탄핵된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임을 생각해 보자. 심지어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당시 대선후보 5인중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 받았던 홍준표 후보 조차도 적폐청산의 기본 골자에는 동의하였을 정도였다.[21] 우선 김대중은 경제적으로도 조선일보가 호감을 갖는 신자유주의를 적극 차용(도입)한 대통령이었고 IMF라는 특수상황이었던 점을 빼면 특별히 기업에 반대하는 정서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싫어할 건덕지는 없었다.[다만] 김대중 - 클린턴의 한미관계는 역대급으로 좋았지만 김대중 - 부시의 한미관계는 전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도중 사이가 크게 악화되고 남오세티야 전쟁등의 악재로 인해 행정부 자체의 위신도 크게 추락하면서....[23] 때문에 정작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구독자들의 김대중에 대한 비판 수위와 언급 정도는 차이가 꽤 난다.[24] 일부 일본인들 조차도 정작 자신들도 자국 수산물이지만 후쿠시마산이라면 먹지 않겠다고 의견을 올릴정도이다. @@@[25]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있는데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바로 저 두 사건들은 미국의 잘못이 아니라며 당시 야권의 반미성향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약 10년이 지나서 같은 사건들을 전혀 다르게 사용한 것.[26] 왜냐하면 이란은 트럼프의 이란 핵 합의 협정 파기로, 중국은 중국이 소외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문제는 이란과 중국은 미국에 그리 옹호적이 아닌 국가들이다. 독일등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이야 문제가없지만 문제는 미국에 우호적인 입장이 결코 아닌 국가들의 기사들의 기사들 까지도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내보낸것이다.[27]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통과된 국가에서도 판매에 제약을 받았다.[28] 오해와 달리 한겨레는 무작정 기업비판 성향을 가진 신문사가 아니다. 한겨레도 광고 비중이 커서 기업의 의사를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29] 왜냐하면 일부 직원들은 조선일보측에서 과거 일부 조선일보 소속이였던 직원들을영 합리화를 위해 하청, 계약직으로 돌렸기 때문. 때문에 10년 경력에도 월급이 200만원이 채 안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30] 지금의 월간조선 직계조상뻘[31] 한국대중매체사, 강준만 저[32] 이 시기 조선일보 사장 안재홍이 구속된 상태였고, 사장직 공석이었던 상태다.[33] 이 표현은 역사 왜곡을 위해 일본에서, 그리고 자기네들이 진짜 조선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서나 사용하는 용어이다.[34] 이는 당시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서울신문, 자유신문 등 모든 언론들이 그랬다.[35] 아침신문의 제목은 '제공권 완전장악. 국군 의정부를 탈환' 이고 호외의 제목은 '인민군 서울입성. 미국 대사관 등을 완전해방' 이다.[36] 출처 - 이동욱, '계초 방응모', 방일영문화재단, 1996. p464. 방응모는 점령 당시 북한 당국에 불려가서도 "육영사업으로 없는 이들 돈 대어 가르쳤고, 또 조림사업 간척사업밖에 한 것이 없소"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37]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38] 그리고 조선일보는 이제까지 이러한 보도행태에 대한 사과는 일절 하지 않았다.[39] 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index.jsp?Y=1991&M=5&D=10&x=75&y=8 [40] 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index.jsp?Y=1991&M=5&D=15&x=82&y=13 #1991년 5월 15일 사회면 '애인에 준 메모확보'],[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index.jsp?Y=1991&M=5&D=20&x=95&y=6 [41] #[42] 조선일보가 비판자들이 하도 많다고 하여 차단했지만 문제는 본인도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쯤 되면 기레기라고 같이 욕을 먹으며 사람들을 무시하더라도 비판 자체를 원천 차단하지 않는 한겨레같은 좌파 언론들은 그나마 양심적인 것이다. 이는 기자들이 남을 잘 까대면서 정작 자신들이 비판받는건 견디질 못한다는것을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43] 조선일보에선 당사자가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를 취재하러 간 것이라고 변명했는데 김진태의원은 (조선일보에서 주장하는 그리스 취재와 전혀 상관없는) 이탈리아 나폴리, 로마와 영국이 왜 포함되어 있냐며 이들은 모두 국제적인 관광지라고 반박하였다.[44] 물론 초등학생 개인이 원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서 만화나 좀 보고 그냥 버리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폐지 수거 하시는 분들이야 좋아했지만...[45] 이에 당시 현직교사였던 사람이 이후 기자가 되서 해당 논란을 비판 하였다. ##[46] 아예 공동 운영하는 법인이 있다.[47] 서울시내 공립 초등학교의 98%인 531개 학교가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 등 3개 어린이신문을 집단 구독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이들 어린이신문사가 공동 운영하는 법인으로부터 월평균 3억여원 가량(방학기간 제외)의 기부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8] 대회를 여는 측에서 대회를 소개하는게 아니라 아예 일선 교사가 대회를 소개해 준 것. 문제는 공립 초등학교일 경우 교사들은 신분이 명백하게 공무원인데 조선일보가 언론사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기업인데 공무원들이 이러한 기업의 행사에 대해 대신 설명하고 참가비까지 거둬들이는 수금원 역할도 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