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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 요르단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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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압둘라 2세 | |
지리 | 사해 · 요르단강 | |
민족 | 요르단인 |
요르단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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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하심 왕국 المملكة الأردنية الهاشمية Hashemite Kingdom of Jordan | ||
국기 | 국장 | |
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알라, 국가, 국왕 | ||
국가 | 요르단 왕실에 평화가 있기를 | |
면적 | 89,342km² | |
인구 | 11,325,858명 (2023년) | 세계 83위 | |
인구밀도 | 115명/km² (2021년) | |
출산율 | 세계은행 자료 2.60명(2020년)[1] CIA 자료 2.96명(2022년)[2] | |
수도 | 암만 | |
공용어 | 아랍어 | |
종교 | 이슬람교 90%, 그리스도교 8%, 드루즈교 및 바하이교 등 기타 2% | |
군대 | 요르단군 | |
시간대 | UTC+3 (EEST)[3] | |
명목 GDP | 418억 달러 | |
GDP(PPP) | 941억 달러 | |
1인당 명목 GDP | 4,428 달러 | |
1인당 GDP(PPP) | 9,406 달러 | |
국부 | $1,660억 / 세계 78위(2020년) | |
통화 | 요르단 디나르 | |
정치 체제 | 입헌군주제(사실상 전제군주제),[4] 단일국가, 양원제 | |
민주주의 지수 | 3.04점, 권위주의 (2023년) (167개국 중 122위) | |
건국 | 1921년 4월 11일 (요르단 토후국 건국) 1946년 5월 25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52년 1월 11일 (헌법 제정) | |
국왕 | 압둘라 빈 알후세인 2세 (Abdullah II bin Al-Hussein / عبدالله الثاني بن الحسين) | |
총리 | 자파르 하산 ( / ) | |
HDI | 0.735 | |
도메인 | .jo | |
국제 전화 | +962 | |
ISO 3166-1 | 400, JO, JOR | |
남북수교현황 | 대한민국 1962년 7월 26일 수교 북한 1974년 7월 5일 수교 2018년 2월 1일 단교 | |
여행경보 | ||
여행유의 | 여행자제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 |
여행자제 | 시리아 및 이라크 접경 10KM지역 |
위치 |
[clearfix]
1. 개요
Jordan Travel Video Guide |
서아시아에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수도는 암만(عمان)이다.
면적은 89,342km², 인구는 10,248,069명(2017년 통계).[5] 홍해로 이어지는 약 20km 정도의 해안선에 유일한 항구도시 아카바가 있다.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이다. 영어로는 'Jordan'이며 아랍어 표기로는 알-우르둔이다. 같은 이름의 요르단 강으로부터 국호를 따 왔으며 '요르단'이라는 번역은 대부분의 번역 성경의 저본인 라틴어판에서의 번역명인 Iordanis에서 영향을 받았다.
2. 역사
자세한 내용은 케라크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요르단/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3. 정치
서아시아의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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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i | 남오세티야 ii, iii | 레바논 | 바레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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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데카니사 제도만 서아시아에 속함. ii: 미승인국 iii: 기준에 따라 유럽으로 분류 될 때도 있다. iv: 시나이 반도만 서아시아에 속함. | }}}}}}}}} |
요르단의 정치 정보 | ||
부패인식지수 | 46점 | 2023년, 세계 63위 |
언론자유지수 | 42.79점 | 2023년, 세계 146위 |
민주주의지수 | 3.04점 | 2023년, 세계 122위 |
공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군주제지만 중동 자체가 현재 그렇듯 실질적으로는 현재도 국왕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사실상 전제군주제를 시행한다. 국왕은 총리와 군부 및 정보기관 수장 임명권을 가지며[6] 대법관과 의회 의원[7]까지 국왕이 임명한다. 의회 역시 국왕이 해산권을 가지고 있어 국왕 내키는 대로 소집하고 해산하여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입법도 공식적으론 상원과 하원의 인준을 거치지만 실제론 국왕이 있는 정부 주도의 입법이 대부분이다.[8] 언론에 대한 탄압도 심각해 언론과 출판, 인터넷은 무조건 검열하며 국왕, 왕실, 정부, 군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비판할 경우 가차없이 무거운 벌금을 물거나 징역에 처한다. 기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도 심하다. 그러다 보니 요르단은 언론자유지수가 146위며 심각한 언론탄압국으로 지정돼 있다.
요르단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압둘라 2세 국왕(왼쪽)과 오마르 라자즈 총리(오른쪽)
후세인 1세는 꽤나 개념있던 군주로 이름이 높으며 그의 치세 때 입헌군주제가 되었다.[9] 현 국왕인 압둘라 2세는 그의 장남이다. 그는 다른 아랍 왕족과 비교해 개방적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아버지보다는 약간 평가가 안 좋다. 또한 그의 아내인 라니아 왕비가 미인이다.
평가가 안 좋은 건 압둘라 2세가 이스라엘과 미국을 노골적으로 편들어 이슬람 민족주의라든지 자국에서 꽤 많은 수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요르단에 이슬람 과격파가 득세하거나 민주주의로 이행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되려 군사원조 등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발판이다.[10] 정치적으로는 큰 힘이 없지만 그래도 국왕이고 압둘라 2세 역시 반정부적이거나 자신에 대한 비난을 탄압해서 인권면에선 아버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반대파를 정중히 대우하면서 반대파에게도 인정받던 아버지와 달리 강압적으로 나서면서 과격파들에게 받는 원한도 크다.
이 때문에 요르단에서도 종종 과격파에 의한 테러가 있는데 2005년 암만에 있는 고급 호텔이 폭발하여 많은 사망자를 낸 적 있다. 이 폭발사고로 전설적인 슬래셔 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사막의 라이온 등을 감독한 무스타파 아카드가 죽었다. 이후 할로윈 시리즈 판권은 아들인 말렉 아카드가 이어받아 2010년대에 리부트된 할로윈 시리즈 제작에 참여했다.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벌어진 민중혁명으로 요르단 왕가도 좌불안석이다. 그동안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지원을 얻어 왕가와 군부를 유지해 인구 다수가 팔레스타인계지만 불만을 억눌렀는데 이런 일로 이집트에 무슬림 형제단 정권이 세워졌고 그 여파로 요르단도 민중혁명이 터질 것을 우려했다. 벌써부터 왕가는 각종 세금을 내리고 불만을 다독이고자 골머리를 앓는다. 한때 위기론도 있었으나 그래도 2012년 11월까지도 난장판이 된 시리아와는 달리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11]
2014년 아랍권을 휘어감은 암적인 존재 다에시(IS)가 나오면서 요르단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에시의 주요전략이 국내 치안이 불안정하고 국가가 파탄나기 일보직전인 국가에 기생하여 이슬람의 성전을 주장하며 하층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형태인데 요르단의 경우 치안유지도 잘 되고 있고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 아직 대대적인 침략이나 각종 시설의 공작파괴 등을 받지 않으나 요르단 내에서 가담자가 나오면서 테러라든지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시리아 내전에서 난민들이 수십만씩이나 들어와 임금은 하향세를 보이고[12] 집세가 급속히 올라 자국민들의 불만이 큰데 이 와중에 이라크에서도 난민들이 대거 몰려오게 생겼기 때문이다.[13]
그러다보니 요르단도 감당이 안 되어 2017년 1월에 더는 난민을 못 받아주겠다며 시리아 국경을 폐쇄했다. 공식수치상 요르단이 수용중인 난민은 200만가량으로 그 수는 300만 이상인 터키 다음이다. 터키 인구는 8,000만 명대이며 요르단은 1,000만 명대다. 요르단은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최악의 난민부담을 감내하는 셈이다. 유럽 난민 사태를 논하지만 실상 비교를 불허하는 이 인구대비 비중에 유럽은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래서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군의 참전으로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 정부군이 유리해져 중남부 지역 한정으로나마 안정된 2010년대 이후에 요르단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의 귀향을 독려한다. 사실 이는 조금 이율배반적인 처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요르단도 시리아 남부 다라 주에서 베두인 부족들을 지원하고 자유시리아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시리아-요르단 접경지대 알 탄프에서는 요르단의 지원을 받는 소규모 반군이 존재한다.[14]
2015년 2월 다에시측이 과거에 포로로 잡았던 요르단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를 요르단 측에서 잡은 다에쉬 테러리스트들과 맞교환하기로 한 협상이 결렬돼 이후 조종사를 산 채로 분살(화형)한다. 이 동영상을 본 요르단 측은 테러리스트들을 즉각 사형하고 국민들은 ISIL의 만행에 격분했다.[15] 압둘라 2세가 직접 공습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며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사[16]
2017년 8월 1일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강간범이 결혼하면 죄를 묻지 않는 악법을 폐지했다.12
2018년 6월 4일에 요르단에서는 정부의 긴축 정책과 증세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총리가 물러났다.#
요르단에서는 2018년에 좌파정당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들이 창당한 '시민동맹'은 결국 크게 활약하진 못했는데 요르단의 무시무시한 기성정당(아랍사회주의 바트당 요르단 지부, 요르단 공산당, 심지어는 극좌파 혁명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민중전선 계열 정당이 두 개나 있다.)이 걸었던 운명을 그대로 따라갔다. 본래 아랍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사회당이 1956년 선거에서 승리하고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좌파 내각을 구성하자 후세인 1세가 당을 해산시켜버리고 1989년까지 정당활동 전면금지를 해 버렸던 국가라 특이한 것도 아니다. 아랍권 국가들이 대부분 민족주의+약간의 좌파인 독재국가거나 친미 왕정 국가이거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이거나 내전 상태나 그에 준한 막장국가라는 걸 생각하면 요르단은 친미 왕정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코로나19 유행으로 경제가 흔들리면서 정치에도 불만이 이어진다. 그 와중 2021년 4월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왕자가 쿠데타 음모에 연루되었다가 가택연금되었다.기사 함자 왕자는 초반에 쿠데타 음모를 주도한 적이 없다며 항변을 하며 저항하다가 결국 국왕의 작은아버지인 하산 왕자의 중재하에 국왕에게 충성 맹세 서한을 보냈고,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봉합된 모양새를 보였다.기사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2024년 4월 요르단을 대상으로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대를 대대적으로 무장시킬 계획이 있다고 선언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시위대는 요르단을 경유하는 이스라엘 화물 운송을 막으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4. 외교
자세한 내용은 요르단/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5. 군사
자세한 내용은 요르단군 문서 참고하십시오.6. 경제
자세한 내용은 요르단/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7. 행정구역
주 | 면적 | 인구 수 | 주도 |
북부지방 | |||
이르비드주 | 1,572km² | 1,137,100 | 이르비드 |
아질룬주 | 420km² | 146,900 | 아질룬 |
제라시주 | 410km² | 491,700 | 제라시 |
마프라크주 | 26,551km² | 300,300 | 마프라크 |
중부지방 | |||
발카주 | 1,120km² | 428,000 | 살트 |
암만주 | 7,579km² | 2,473,400 | 암만 |
자르카주 | 4,761km² | 951,800 | 자르카 |
마다바주 | 940km² | 159,700 | 마다바 |
남부지방 | |||
카라크주 | 3,495km² | 249,100 | 카라크 |
타필라주 | 2,209km² | 89,400 | 타필라 |
마안주 | 32,832km² | 121,400 | 마안 |
아카바주 | 6,905km² | 139,200 | 아카바 |
8. 자연
와디 룸(Wadi Rum)이라는 붉은색 사막 지역. |
국토의 80%가 사막지대로 건조하고 척박하다. 사막성 기후에 더운 곳도 꽤 많지만 바람이 불고 기후도 선선한 곳이 많아 다른 아랍 국가 왕족들이 이 곳에 피서를 오기도 하고 해변이 있는 아카바의 경우 아예 여러 곳에 개인 별장을 사둔 게 많다고 한다.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여름철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연 강수량은 90mm밖에 안 된다. 특히 요르단강의 수자원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과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요르단은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 전체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고 인구 증가로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가뜩이나 부족한 수자원의 고갈이 더 심하다. 그래서 요르단은 많은 양의 물을 수입하고 있지만 그래도 감당이 안 돼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물을 주 1회만 공급하는 배급제를 실시한다. 이럼에도 요르단의 물 부족은 갈수록 심각하다.
무엇보다 사막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가뜩이나 적은 강수량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어 충분한 물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이는 요르단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이란 등에서도 겪고 있는 문제이다.
북아메리카의 케찰코아틀루스와 더불어 백악기 말기 최대 크기의 익룡인 아람보우르기아니아의 화석이 요르단에서 발견됐다. 압둘라 1세 요르단 전 왕과 하심 왕가의 인사들이 직접 화석 발굴 현장에 방문해 이 익룡의 화석을 보고 갈 정도로 당시 요르단에서는 엄청난 화제였다.
9. 종교
요르단 국민의 92%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교도지만 팔레스타인이 인접해 국민의 약 7%가 그리스도인이다.[17] 최대 종파는 정교회며[18] 가톨릭[19],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믿는 이도 있다. 요르단에서는 또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드루즈파 신자도 있다.오랜 세월 요르단은 이슬람권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푼 것으로 유명한 국가였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차별을 금지하고 종교적 신앙과 예배를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현재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는 다른 중동의 이슬람 국가 지도자 가운데 비교적 진보적인 인사다. 그는 2005년 9월 13일 영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포용과 타협을 바탕으로 한 대화를 강조했다. 요르단 의회도 2006년 9월 24일 요르단 내 이슬람 사원을 통해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사원 및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종교 행사에 대해 주제 및 강사 등 세부 내용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했다. 2012년 정당조차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것을 금지해 요르단의 정당들은 모두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종교정당은 하나도 없다.
또한 요르단 정부는 국민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도 금지한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요르단인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난민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허용하는 등 이슬람교가 국교인 국가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종교의 개방성이 높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자유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이슬람교 신자에게는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이중 법률체계를 시행한다. 그래도 막장 이슬람 율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보다 낫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처벌해 인권단체가 비판한다. 특히 반이슬람 만평을 실은 요르단 작가의 만평이 삭제되고 싣는 게 금지당했으며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작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기사
10. 문화, 사회
종교적으로 무슬림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에 이슬람 법계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채택하지만 아랍, 이슬람 국가 중 문화적, 종교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국가다. 여성의 지위도 중동에서 상당히 높아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기에 여성들도 히잡을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일부다처제는 여전히 허용하지만 드물다.여성들의 의상, 교육, 사회 활동 등도 자유로운 편이다. #. 그러나 요르단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면 그 자녀는 요르단 국적을 받지 못하는 국적법상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외국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간다.
요르단의 국적법은 1998년 6월 14일 이전의 대한민국처럼 부계혈통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외국인 아버지와 요르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요르단 국적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요르단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요르단 국적을 준다. 이 때문에 요르단의 여성 방송인이 '엄마의 국적은 나의 권리'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부계혈통주의로 인해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아이들은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부계혈통주의로 인해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파란색으로 표기하는 등.
인구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2010년대 중순만 해도 인구가 700만 명도 되지 않던 국가였음에도 몇년 새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200만 명 이상이 넘는 난민들이 와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이로 인해 난민 남성과 요르단인 여성이 결혼했지만, 자녀가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요르단의 국산 맥주 카라케일(Carakale).
더불어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면서도 바레인과 튀니지처럼 이슬람 율법에서 하람(부정한 것)으로 금기시하는 술과 돼지고기의[20] 판매도 허용하는데 이 때문에 아예 페트라, 필라델피아, 카라케일[21]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들이 존재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중동 사람들이 자국에서 금지된 술을 사고 마시기 위해 여행을 오고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미국, 캐나다 등 비이슬람 국가에서 온 외국인 체류자와 관광객이 돼지고기를 살 때도 있으며, 바레인과 함께 일반적인 성소수자(동성애) 활동이 불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22] 또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동국가다.[23]
하지만 완전히 개방적인 것은 아니라 2019년 넷플릭스의 첫 아랍어 드라마인 '진'이 외설논란에 휩싸였다.#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한 아랍 요리는 쌀 요리인 만사프, 마클루바이다.
요르단에 동물원은 있으나 판다는 없기 때문에 요르단인들이 판다를 보려면 대한민국, 일본, 카타르 등 판다가 있는 국가로 해외여행을 떠나야 한다. 대체로 요르단인들은 판다를 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카타르로 많이 가는 듯.
일요일은 평일이고 금요일은 휴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처럼 대체휴일제가 없어 공휴일이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휴일 하루를 손해보게 된다.
성인 인구의 65.9%가 과체중이고 33.5%가 비만이다. 미국에 맞먹을 만큼 비만율이 높은 이유는 야외 활동에 지장이 많은 사막 기후인 데다 고열량 식품의 보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라마단 금식기간, 특히 저녁에 과격한 운전을 하는 차량들을 많이 볼 수 있으므로 도로주행 및 보행에 평소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10.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다. 아랍어 방언이 타 중동국가보다 약해 아랍어 어학연수지로 손꼽히며, 영어가 주요외국어로 지정돼 널리 사용된다.10.2. 관광
10.2.1. 유명 관광지
수도 암만 시타델의 헤라클레스 신전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지어진 별궁 카스르 므샤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십자군 시대의 케라크 성채
관광업은 영토가 척박하고 석유나 가스 같은 자원도 그리 없는 요르단의 가장 큰 돈줄 중 하나다. 이슬람 국가긴 해도 개방적이다 보니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거나 없애버리지 않고 보존한다.
이라크, 시리아 등 이웃 아랍 국가들 보다 치안도 안정적이어서 여행금지국가도 아니기에 유적지를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요르단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 - 알 카즈네 신전. 유독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데 깊은 산과 계곡 속 천연 암반을 깎아 만들어진 유적의 위치 덕에 자연 풍화를 면했으며, 나바테아인이 사라진 뒤 이곳을 차지한 아랍인들이 우상화될 만한 석상의 얼굴만 부수고 나머지는 손대지 않은 채 방치하며 잊혀진 덕이다. 알 카즈네에 보물이 있다고 해 안에 들어가 파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유적들은 1812년에서야 유럽인들에 의하여 알려졌다. 산으로 가려진 좁디 좁은 길에 이런 귀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시 유럽에서도 엄청나게 놀랐다. 현재 페트라에서 말이나 낙타로 관광객을 태워 주거나 관광 가이드를 하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대대로 이곳에서 살던 유목민의 후손이다. 요르단 정부가 이곳 관리권을 국영화하려고 하자 대대로 이 유적지 부근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반발하였고 이에 정부가 이를 달래고자 유적 관광업에 종사할 권리를 줬다.
현지인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대략 1,500원)에 페트라에 입장하나 외국인 관광객은 10만 원에 가까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다. 그러나 요르단 국민이 아니더라도 학업 때문에 요르단에 살고 있으면 현지인만큼 저렴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다. 페트라를 널리 알린 주역인 인디아나 존스 3편은 요르단에선 1년에도 몇번씩 방영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거기에 트랜스포머 2도 여기서 촬영해 정기적으로 방영해주고 있으며 사해도 유명하다. 대개 이스라엘 쪽으로 많이 구경하러 왔으나 엄청 비싼 물가 덕에 훨씬 물가가 싼 요르단 쪽 바닷가로 관광객이 많이 온다. 이스라엘도 관광업에 타격이 갈게 뻔하니 사해 관광을 더 싸게한다든지 발버둥친다. 그리고 가보면 사실 정말 별거 없다. 이집트 홍해가 있는 누웨이바에 가는 경로로도 유명하다. 2004년 테러 사건 이전에는 이스라엘-이집트 성지순례 코스로 텔아비브-암만-아카바-누웨이바 코스가 주력 상품이었다. 지금도 이 코스는 살아 있지만 2004년 10월 7일에 벌어진 동시다발 폭탄 테러로 관광객만 31명이 죽은 사건 이후로 누웨이바를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페트라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다른 관광지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페트라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나 아카바 만의 항구도시 아카바[24], 요르단 남부의 사막지대 와디 룸 역시 요르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다. 역사를 좋아한다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수도 암만부터가 3천 년 역사를 지닌 도시로 그 시타델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헬레니즘, 로마, 우마이야 시대를 망라하는 각종 유적이 즐비하다. 중세 이슬람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암만, 마다바 일대에 흩어진 10여 개의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별궁들을 답사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슬람 시대의 비키니 벽화로 유명한 왈리드 2세 시기의 쿠세이라 암라이다. 참고 12세기에 약 70년간 십자군 하에 있던 요르단은 예루살렘 왕국의 동부 방어를 맡았기에 당시의 성채들도 제법 잘 남아있다. 사막 기후와 개발이 더뎠던 탓에 본국인 서유럽의 중세 성채들보다 더 잘 보존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그 유명한 살라흐 앗 딘도 세 차례의 시도 끝에야 점령한 알 카라크 (케라크) 성채[25]와 샤우바크 (몽레알) 성채, 살라딘이 세운 아질룬 성채 등이다.
요르단 동부의 쿠세이르 암라 궁전의 프레스코 벽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
사막에서 유목하는 베두인이 소수 있는데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처럼 낙타를 타고 상업에 종사하진 않고 사막화로 인해 유목생활이 힘들어져 이촌향도해 대부분 도시에 몰려살거고 요르단 국왕이 무료로 제공하는 물을 받으러 도시를 오가는 반유목 생활을 하지만 유목민답게 접대의 관습이 남아있어 온 손님은 관광객이라도 3일동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고 재워주는 전통이 있지만 흉흉한 세상에 너무 믿지는 않는 편이 좋다.
또한 영화 마션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극중 화성으로 나오는곳은 요르단의 와디럼이라는 곳이다. https://bitna.net/1607
10.2.2. 가는 방법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도착비자를 2만 원 후반대에 발급받을 수 있다. 또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가진 몇 안 되는 아랍 국가라 이스라엘을 방문해도 입국에 별 지장이 없으며 이스라엘에서 육로로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 요르단에서 찍은 입국 도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이후 타 아랍 국가들을 여행하려 할 경우 유의해야 한다.대부분 중동국가들이 그렇듯이 항공편으로는 한국에서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두바이나 도하, 이스탄불 등 다른 중동 도시들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보통 두바이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간다. 위에서 언급한 주의점을 숙지한다. 그나마 직접 이스라엘에 취항하는 터키항공, 최근 대 이스라엘 관계 개선에 나선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레이트 항공, 에티하드 항공은 사정이 나으나 카타르 항공은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사이가 매우 나빠 카타르 항공으로 경유할 시 문제가 생긴다.
10.3. 스포츠
아랍 국가들 중에서는 농구 인기가 많은 국가이다. 2000년대에 여러 아시아 대회에서 자주 한국의 발목을 잡으며 한국 킬러였던 국가지만, 농구가 강해진 것이 미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26] 농구선수나 아프리카 농구선수를 귀화시켜 단기간에 강해져 진정한 강국으로 보기 어렵다.[27]카타르와 같이 허울좋은 농구 강호라는 평을 들었지만,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귀화선수의 국대 참가를 엄격히 제한해 카타르가 스스로 실격패를 자초하여 탈락한 것과 달리 요르단은 의외로 강세를 보이며 자국선수 위주로 강호급으로 발전한 이란을 8강전에서 88-84로 이겼다. 필리핀도 준결승에서 이기고 아시아 최강급인 중국과의 결승에서 통한의 아쉬운 69-70 패배로 준우승을 거두었다. 어찌됐든 3위를 거둔 한국과 같이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정된 조예선에선 그리스와 푸에르토리코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경기는 2012년 7월 2일부터 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렸는데 요르단은 그리스에게 63:107, 푸에르토리코에겐 52:93. 2경기 모두 40점차 대패를 당하면서 참가국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당하면서 12위 꼴찌로 마무리했다.
아시안 게임 농구에선 메달이 없었다. 1986년,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4강에 올라갔으나 메달은 받지 못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에서는 한국에 조예선에서 69-98로 참패했으며 약체인 몽골에 74-83으로 패해 11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자주 부진하던 요르단이긴 했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남자농구 결승에 처음으로 올라가 첫 금메달을 노렸지만 조별리그에서 87-62로 이긴 필리핀에게 결승에서 60-70으로 져서 첫 농구 메달인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중동답게 축구도 꽤 인기가 많은 편. 다만 사우디나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전력이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래도 2010년대 후반 즈음부터 전력이 올라오기 시작해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조별리그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호주를 이기고 조 1위로 올라가는 저력을 보였다.[28] 특히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꺾고 결승전에 이르렀으며, 대한민국에 충격과 공포의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요르단 축구에 대해 자세한 건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조. FC 서울의 야잔 알아랍이 요르단 국적 최초의 K리그 선수이다.
태권도도 좀 한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요르단은 은 3, 동 1을 획득했는데 모두 태권도에서 땄다.[29] 특히 은 3개는 모두 결승에서 한국선수에게 패했으며 동 1개는 8강에서 한국선수를 이긴 결과다. 하지만 그래놓고 4강에서 졌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와 가라테에서 각각 금, 은, 동메달을 똑같이 2개씩을 받았던 걸 비롯하여 개인 종목은 꽤 하는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태권도에서 메달이 없었다.[30]
2016 리우 올림픽 태권도 68kg급에서 요르단의 아부다디 아부가우시가 한국의 이대훈을 비롯하여 여러 우승 후보들을 꺾고 요르단이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최초의 메달을 금메달로 획득하였다.
11. 국가
후렴구만 부르는 버전.
요르단 왕실가(앗 살람 알 말리키 알 우르두니, السلام الملكي الأردني)는 1946년 요르단 왕국이 출범하면서 제정되었고, 압둘모넴 리파이가 작사하고 압둘 카데르 알타니르가 작곡했다. 본래 곡의 후렴구 부분만 처음 작사되었으며, 왕의 생일 잔치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지금도 대부분 제창할 때는 후렴구만 부른다.
12. 여담
마이클 조던과 그 철자 및 발음이 같다. 이를 이용해 영국 코미디언 사샤 바론 코헨은 유엔 본부를 방문한 스케치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한 사람을 위해 의석을 마련해주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농담했다. 구글에 영문 국명인 Jordan이라고 치면 스포츠 용품이나 농구 선수 관련 결과만 가득 나온다. Jordan country라고 쳐야 요르단 관련 결과가 나온다.요르단이 이슬람권이라 여권 표지 색상이 녹색이라는 오해를 받기 쉬운데, 요르단 여권의 표지 색상은 청색 계통이다.
[1] 출처[2] 출처[3] 2022.10.05일 자로 서머타임 고정[4] 모로코처럼 국왕이 총리를 탄핵할 수 있다.[5] 해외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외국인을 합했다. 요르단은 특이하게도 자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과 해외에 거주하는 요르단인을 모두 요르단 인구에 포함한다. 그래서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타국에 비해 인구집계 시 인구 뻥튀기가 있다. 최근 10년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난민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많이 증가했다.[6] 실제로는 의회의 동의를 받아서 임명하지만 의회에서 부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7] 상원만 해당[8] 다만, 현재 입법 과정에서는 선거로 구성이 되는 하원에 우선권을 부여한다.[9] 물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진압한 검은 9월 진압 같은 사건도 있긴 했다.[10] 미국 공화당 의원이자 빌 클린턴 정권에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가 오래전 아랍 국가들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할 때 미국 민주당에서 비웃었다. 그렇게 되면 요르단은 친팔레스타인 국가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테고 미국을 싫어하는 민주국가가 된다. 2013년 민주화된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이 예상은 그대로 실현됐다.[11] 요르단 왕정이 공식적으로 전제군주제가 아닌 입헌군주제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르단엔 종파 문제로 중동 국가 막장테크의 정석이자 가장 큰 요소인 이슬람 극단주의 등 종교적 광신이 덜하다. 무슬림 형제단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와는 달리 왕국 내에서 활동을 허락해주고 시리아 내전에서도 무슬림 형제단 계통 반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12]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로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저임금직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요르단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받는 임금보다 더 싸게 일하는 데다가 수십만씩 몰려들어와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집세가 급증해 물가도 동시에 급속히 오르는 바람에 집 가진 부유층들만 대박이 터져서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악화돼 시리아 난민들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이 문제 때문에 요르단 정부에선 시리아 난민들에게 정해진 구역 외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덕택에 시리아 난민들의 대다수가 시궁창인 상황이다. 참고로 터키나 레바논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13] 한국으로 치면 북한에서 난리가 나서 300-500만 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몰려왔는데 거기에 더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백만의 난민이 추가로 몰려오는 상황이다.[14] 시리아 정부와 헤즈볼라 등의 동맹 세력은 꾸준히 요르단 지원 반군들을 공격해 내전 이전 국토를 탈환해가고 있다.[15] 어이가 없는 사실은 이 조종사는 요르단에서도 제법 유력한 가문이었고 특히 그 아버지는 IS에 딱히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았고 아들이 잡히자 단독으로라도 교섭을 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이슬람 교리에도 어긋나는 분살당하자 저놈들은 이슬람이라는 탈만 쓴 테러리스트라고 분개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폭한 셈이다.[16] 압둘라 2세의 항목을 참조하면 좀 더 이해가 된다. 다만 위치도 위치고 군생활을 마친 지 좀 돼 직접 몰기는 힘들다. 압둘라 2세는 공격헬기 조종 면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투기도 격추당하는데 국왕이 직접 헬기를 끌고 나가는 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칫 격추라도 당하면 큰일난다.[17] 다만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꽤 많이 사는 아랍 지역 국가가 그렇듯이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이거나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이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레반트 지역은 근대 이전부터 아랍계 기독교인이 다수 분포하던 지역이다.[18] 약 12만 명이고 통계에 따라 30만까지도 간다.[19] 약 11만 명이다. 로마 예법 신자가 약 8만 명으로 가장 많고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소속 신자가 약 3만 명 정도다. 이외에 시리아 가톨릭,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가 소수 있다.[20] 수도 암만에 돼지고기 정육점이 두 군데 가 있는데 이용 고객은 주로 비무슬림(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불교, 원불교 등)과 비 무슬림(한국,일본.중국,홍콩,대만 ,미국,프랑스 등) 외국인이다.[21] 현지 양조장 사장이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10년간 맥주 양조업을 배우면서 만들었다. 실제로도 모국인 요르단뿐만 아니라 해외의 맥주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중동 최고의 명품 맥주라는 평가를 받는다.[22] 하지만 요르단 내에서 성소수자 활동이 합법인데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가 무슬림인 세속적 이슬람 국가이다보니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게 매우 압도적이다. 물론 수도 암만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이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멀어보인다.[23] 중동에서 안전한 편이라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접근하는 호객꾼, 사기 및 강도, 소매치기 등은 주의해야한다.[24] 20세기 영국의 사주로 일어난 대오스만 반란인 아랍 대봉기 당시 처음으로 점령된 도시였기에 역사적 의의도 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잘 알려졌다.[25] 1868년 독일인 의사가 여기서 고대어로 된 돌비석을 발견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연구를 방해했고 독일 측이 이걸 알게되자 독일로 가져가려 했기에 현지인들이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당시 요르단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총독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독일로 가져가게끔 허락했는데 주민들은 억지로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부순다고 부숴버린다. 실망한 독일이 포기한 거랑 달리 프랑스에서 깨어진 돌비석 잔해나마 주민들과 협상 끝에 사가지고 가서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돌비석의 2/3만 남았다. 그나마 탁본을 뜬 게 남아있어 연구할 수 있다. 무려 기원전 840년에 만든 가장 오래전에 남은 고대 히브리어 비석이다.[26] 하지만 NBA 선수로도 잠깐 뛴다든지 하부 미국 농구리그에서 뛰던 이들이라 이들도 절대 무시 못 한다.[27] 2010 튀르키예 세계 농구대회에서도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 농구대회에서 자주 대패하던 앙골라의 16강 진출 제물이 된 적도 있다. 참고로 앙골라는 8강전에서 우승팀 미국에게 121-66, 55점 대패로 이 대회 최다 점수차 패배+최다 실점을 당했다.[28] 다만 16강에서 베트남에게 승부차기 끝에 탈락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29] 당시 남자만 8체급 실시했다.[30] 가라테에서 은메달 1개를 받았으며 다른 종목에서 동메달 4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