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8 12:45:52

제갈량(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1. 개요2. 능력3. 작중 행적4.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제갈량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능력

촉빠, 그 중에서도 특히 제갈량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답게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유비가 관우의 빈 자리를 제갈량이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 도독호군에 임명했으며 실제로 빈틈없는 일처리로 관우가 있을 때와는 다른 식으로 무명을 떨친다.

3. 작중 행적

유비군의 대전략인 융중대를 수립한 책사. 유비의 입촉을 뒤에서 계획한 인물이지만 빙의자의 기억을 얻은 유비는 이 융중대의 허점을 파악하고 고심 끝에 입촉을 미루고 한중 공략을 통해 서량의 마초를 아군으로 편입해 명분작에 더 신경을 쓴 다음에야 입촉을 시작한다.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익주 원정군에 소환하면서 제갈량을 형남의 책임자로 임명해 30대 초반 나이에 형남 전체를 책임지게 된다. 방통은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이 동오의 형주 관련 책임자라는 사실 탓에 제갈근이 형제의 정을 내세워 접근하면 제갈량이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나, 제갈량의 성품을 역사로 아는 유비는 일축하고 제갈량의 형남의 전권을 맡긴다. 경력도 입지도 그리 굳건하지 않은 상황에서 냅다 중책을 떠맡은 것 때문에 특유의 편집증적으로 꼼꼼한 성격까지 합쳐져서 아랫사람들을 미친 듯이 쪼아대며 일하고 있는데 이게 의도치 않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손권이 저지를 익양대치를 대비해서 유비가 임상현과 익양 사이 개울에 보루를 세우라는 지시를 내리자 이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여 보루를 2개를 나란히 세우고 최신 원융노를 비롯한 군수 물자를 풍족하게 보급했으며 인력도 수시로 교대케 하는 등 유비의 지시를 120% 이행했고, 그 결과 임상대치 작전의 일환으로 보루를 급습해 온 동오의 장군 감녕을 사살하는 성과를 올린다.

비록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지만 나름 고위 지휘관을 죽여버린 것이기에 제갈량은 자신 때문에 동오와의 협상이 어그러지는 게 아닌가 당황했지만 배신자 동오군을 상대로 이긴 영릉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오르고, 당한 것도 인성이 나쁜 것으로 유명한 데다 아직 제대로 중용받지 않던 감녕이라 유비는 크게 치하했다.[1]

유비의 명을 받아 대별산맥 인근의 반조조 군세를 지원하는 한편 서량으로 파견되는 관우에게 마초와 염행의 일화를 거론해 마초를 (관우가 싫어하는)호족 나부랭이가 아니라 조조에게 가족을 잃고 자기도 죽을 까봐 두려워하는 불쌍한 사내로 여기게 만들어 반목하는 일이 없도록 단도리한다. 미래의 기상이변을 예상할 수는 없으니 형남을 지키는 데는 문제 없다 자신하지만 219년의 집중 호우 때 북상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잘 아는 유비에게 별도의 대비책으로 유사시 강에 내걸 수 있는 쇠사슬과 쇠막대를 제조해 둘 것을 당부받는다.

217년 서량 전투 와중에 조조 치하에서 도망치는 유민들을 받아들여 병력을 8천이나 늘리고, 조운을 파견해 양양성 인근을 찔러보는 등 북벌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양양을 치려면 육로와 수로를 다 동원해야 하는데 당장 양양을 지키는 게 그 조인인데다 양양으로 가는 한수 수로는 역시 명장인 문빙이 지키고 있어 정공법으론 뚫을 방도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2]

서량 전쟁 결과 상용군이 유비에게 신종하면서 양양-번성 공방전에 상용군을 이용해 문빙의 한수 방어를 우회해 공세를 넣을 여지가 생겼다. 허도에서 궐기를 준비하던 경기, 위황의 입에서도 언급되는데, 만인지적으로 이름 높은 관우를 형남에서 빼고 제갈량이라는 젊은이를 넣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등 아직은 무명에 가까운 인물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후 여몽의 군사회의에서 한 번 언급되는데 아무리 동오군이 찔러봐도 일절 반격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정황을 상세히 적은 서신을 건업에 보내는 방식으로 항의해 동오측은 명분도 못 얻고 자국내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다고 언급된다.

218년 도독호군 겸 대홍려로 임명된다. 도독호군은 형주의 군권 전부를, 대홍려는 외교 총책임자의 관직으로 제갈량이 군사와 외교 어느 분야든 전력을 써서 오나라를 막으라는 의미다. 육손은 제갈량이 유비의 본군에 호응해 북진하겠지만, 분명 조조군의 방어를 뚫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그렇게 고전하고 있을 때 원군이란 명목으로 강릉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북진 시점에서 후음의 난에 고무되어 당장 올라가서 호응하자는 휘하 무장 및 참모들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면서 유비가 만들라 지시한 쇠사슬의 의미를 고찰한다.[3] 형 제갈근을 통해 엿본 동오 내부의 결속은 쉽게 깨지지 않음을 고찰하고 전면공세 대신 정병 2만으로 양양을 견제하는 선에 머무른다.[4]

이후 동오의 태도를 보며 그들이 배신할 것임을 직감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형주를 비워야하는 상황이 다가오는 탓에 출전할 채비를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형북의 유비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빨리 움직이자는 휘하의 의견을 계속 억눌렀고, 가을 장마의 시작으로 한수 본류로 통하는 새로운 수로가 만들어지자[5] 주군이 말했던 때가 왔음을 깨닫고 직접 강릉의 모든 수군을 이끌고 북상한다.[6]

익주에서 보낸 수송선과 민간상선까지 더해서 무려 900척에 달하는 대함대를 이끌고 북상해 양번을 습격, 북쪽 등현을 경계하던 만총을 밀어붙인다. 만총이 지세의 유리함에 기대서 버티려 했으나, 조운과 진도에게 맡겨 우회시킨 별동대와의 협공으로 승리. 한수 물길을 장악하고 양번을 고립시킨다. 조인이 아슬아슬하게 돌아와 번성을 함락하진 못하나, 수적 우세와 한수 물길을 손에 쥔 이상 압도적으로 유리해져서 우금의 7만 대군이 남하해 조인과 만총에게 가세해도 버텨낼 동력을 확보한다. 이후에도 번성을 계속 몰아붙이며 무너트리기 직전까지 가지만 이번엔 우금이 타이밍 좋게 도착하며 또다시 분루를 삼키고 물러나야 했지만 홍수로 인해 한수가 넘치고 거기에 우금의 군대가 휩쓸리며 다시금 기회를 얻게 된다.

수공에 휩쓸린 우금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냈으나 투항병들을 먹이느라 군량이 가파르게 줄어들자 이들의 처우를 놓고 고심한다. 제장들의 분위기가 포로 몰살로 가는 듯 보이자 과거 서주 대학살의 PTSD가 다시 떠올라 차마 그 분위기를 따를 생각을 못하고 주군인 유비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자며 분위기를 1차로 정리한다.

유비의 명령으로 포로들을 강릉으로 보낸 뒤 양번 공략에 대해 군의를 진행한 결과 고립된 번성은 방치하고 대신 원군으로 온 조조군을 격파해 번성의 조조군의 희망을 꺾기로 방향이 정해지고 유비가 조조군이 땅굴작전으로 번성에 연락을 해 올 것임을 예측하자 곧장 물 담은 항아리를 탐지기처럼 사용해 조조군의 땅굴을 모조리 발견해내는 활약을 한다.[7]

4. 기타

독자들에게 익숙한 간절히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 보여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승상 제갈량이 아니라 까마득한 고참인 관우, 장비의 눈치를 보고 방통, 법정 등 비슷한 연배의 쟁쟁한 참모들과 성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젊은 시절의 제갈량이라 신선하다는 평을 듣는다.[8] 전작에 나오는 악덕상사 제갈량과 달리 이제 막 신참을 벗어난 상황에서 냅다 큰 프로젝트를 떠맡아 고생하는 모습 때문에 '천하의 승상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라며 직장인 독자들이 감개무량을 느끼기도 했다. 그와 별개로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서 부하를 착취하는 모습을 이때부터 보여서 악질 상사는 그냥 천성이구나(...)라는 평을 듣는다.

제갈량은 서주 낭야에서 굴러들어와 황씨와의 혼맥을 통해 형주의 호족, 명사들과 줄을 만들었고, 방통은 남군 출신 토박이라 방통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입촉 이전 유비의 인재풀의 다수를 차지한 남양, 양양 출신들 사이에서 제갈량이 우뚝 서기는 쉽지 않았다. 본작에서는 방통이 유비의 곁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만큼 제갈량 본인도 그만큼 고민이 많을 듯하다.[9] 물론 작중에선 주인공인 유비가 제갈량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알아서 잘 챙겨주겠지만. 엄청나게 직책을 챙겨줘서 과로사하게 생긴 게 문제

어릴 적(10대 초반) 서주 대학살로 버려진 시체로 인해 사수가 막히는 기가 막힌 참사를 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나온다. 제갈 가문의 형주 이사는 서주 대학살보다 조금 앞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는 이사가 약간 늦었거나, 아니면 모종의 일로 고향에 잠깐 왔든가 해서[10] 참사를 직접 본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일종의 PTSD가 된 것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3만 명의 포로를 파묻어 죽이자는 말을 듣고 PTSD가 도져서 질색하기도 했다.


[1] 감녕이 항장 출신이란 딱지를 떼어내고 오에서 확고한 위상을 점유하는 건 합비에서 손권을 구하고, 유수구 전투에서의 특공으로 손권의 체면을 크게 올려준 다음부터고, 이때까지의 감녕은 쓸만한 돌격대장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2] 기존 형남 수비군이 3만 가량이었는데 8천 정도 추가해도 4만이 채 안 된다. 이미 동오의 뒤통수에 당할 뻔한 이상 수비 병력을 제법 남겨야 하고 다시 육로와 수로로 가르면 조인과 문빙이란 당대의 명장들이 지키는 방어선에 정면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 적은 병력만 남는다. 유비군은 증원 한 번 오려면 장강삼협을 건너야 하지만 조조군은 남양 쪽에서 신속한 원군 파견이 가능하니 더더욱.[3] 특히 경험이 부족한 마속이 하는, 동오는 절대 배신할 상황이 아니라며 막 지르는 말에 가장 골머리를 썩는다.[4] 동오가 엿본 바에 의하면 여전히 형주에 3만에 가까운 군마가 남았다고 한다. 215년 임상대치를 마친 유비가 형주를 떠날 때 남겨둔 군마가 3만 가량이었으니 반조조 투항병들을 기반으로 3년새 2만 가량이 늘었다.[5] 강릉성의 북부 40리에 있는 한수까지의 육로가 한수와 그 지류들의 범람으로 몇개월 동안 유지되는 새로운 수로로 바뀌었다. 문빙이 지키는 하수강의 물길을 쓰지 않고 바로 한수로 진입해 양양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6] 손권이 텅 빈 형주를 칠 결심을 했다해도 홍수로 새로 생겨난 물길이 사리지기 전에는 힘들다.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유비군이 그 물길을 타고 신속하게 귀환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유비가 패하면 형주를 대신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진입할 예정인데 그전에 움직이면 깃털만한 명분조차 없어진다. 제갈량으로선 새로운 물길이 유지되는 몇달 안에 양번을 떨어 뜨리기 위해 전력을 쏟아부은 것이다.[7] 이를 위해 가히 수백 개의 항아리에 물을 담아 진열하고 장병들이 조를 짜 순찰을 도는 광기스런 행보를 보였다.[8] 작중 관우와의 위상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항장 처우. 관우는 서황에게 투항을 권고하며 유비군에 중용되도록 해주고 휘하 부곡의 안전까지 보장할 것을 유비에게 언질 한 번 없이 그 자리에서 확정지었지만 제갈량은 우금과 투항군을 죽이자는 쪽으로 흐르는 여론을 어떻게 할 수 없이 주군 유비에게 결정을 미뤘다.[9] 작가의 전작인 내마속에서 제갈량이 한 유언에 따르면 다른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유비의 밑에 들어가면 더 출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였다고 한다.[10] 실제로 역시 서주 출신인 노숙도 강동으로 이사하고 난 뒤 할머니의 제사 일로 잠시 서주로 돌아왔던 적이 있기에 제갈량도 이런 가족 관련 일로 잠시 서주에 왔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