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1 19:56:22

정희진(여성학자)


1. 개요2. 저서3. 사이비언어학
3.1. Fuck 용어의 여성강간 의미설3.2. 갠지스강 신비로운 광물질설3.3. 트랜스젠더혐오로 귀결되는 논리 사용

1. 개요

정희진은 1967년생 여성학자 및 평화학자이다. 서강대학교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를 받고 여성학자로 활동하다가 2019년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화학자로 여성운동과 전쟁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본인의 평화학에 근거한 주장을 유포했다. 2025 APEC [국제경주역사문화포럼 https://www.garts.kr/index.do?menuId=00000820] 강연자.

2. 저서

3. 사이비언어학

3.1. Fuck 용어의 여성강간 의미설

정희진은 평화학을 주장하며, 용어를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활동을 벌이는데 그중 제일 정점은 페미니즘 교과서에 나온 fuck용어의 여성강간 의미설이다. 2005년판, 2013년판, 2020년판 ‘페미니즘 교과서’로 인정받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이라는 책에서 정희진을 영단어 Fuck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지촌 여성으로 윤금이가 살았던 삶의 모순과 억압(성매 매, 성차별)은 전혀 문제화되지 않고, 미군에게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생전에는 인간/민족의 범주에 들지 못하다가 미군에게 죽음을 당한 후에야 민족의 성원이 되는 기지촌 여 성의 현실은, 남성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여성의 삶이 죽음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살 서는 '진보' 남성들도 침을 뱉는 '가장 더러운' '양보'였다가, 죽어서야 '순결한 민족의 누이', '우리의 딸'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남성 중심적 사회운동의 논리가 자기 모순과 위선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이들의 감수성과 일상 문화가 일반 남성 대중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51)
주한 미군에 의해 희생된 두 중학생을 위한 추모 촛불 시위에서 열창된 <Fucking USA>라는 노래도 같은 경우이다. 이 담론의 전제는 여성은 'fuck' 할 수 없다는 것이다. 'fuck'의 주체는 남성이다. 한국 남성이 이 노래를 열창하는 것은, 그간 한미 관계에서 약자였기에 여성으로 간주되었던 자신의 성별화 된 타자성을 극복하고 남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강간이든 섹스든 미국을 ‘fuck’ 하게 되면, 한국은 남성이 되고 미국은 여성이 된다. 이런 논리에서 성폭력은 여성 인권 침해가 아니라 국가 간 갈등의 지표가 된다. 한국 여성이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미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는 것은 민족 모순의 결과로 정치적 사건이 된다. 때문에 윤금이 혹은 한국 여성은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해야만 성폭력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으 며 '정치적' 희생자로 간주된다. 그런데 [[유사언어학|<Fucking USA> 담론은 그 '보호'가 한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직접 보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국 남성 이 미국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논리다. 결국 남성은 한국 남성이나 미국 남성이나 모두 강간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만, 한국 여성이나 미국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 간 싸움의 대리 전쟁터로 제공된다. <Fucking USA>의 논리는 바로 르완다, 구(舊) 유고, 동티모르 등 모든 무력 갈등에서 자행 되는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의 면죄부였다. 이러한 남성 이데올로기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남성 국가가 소유한 기호(icon), 상징, 한반도, 가족, 민족 그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강간하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을 강간 한 것이 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독려 포스 터들은 국가 자체를 여성의 몸으로 간주하여, 독일이 "벨기에를 강간했다."며 연합군 동원 논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국가가 여성의 몸이라는 남성 논리는 1992년 윤금이 투쟁 당시에도 그대로 재연되었다. 당시 수많은 유인물들은, “미국이 한반도(윤금이)를 강간했다.", "윤금이 몸에 뿌려진 하이타이(세 제)는 한반도에 뿌려진 미군의 정액이다."라고 주장 했다.
<Fucking USA>는 한국 남성도 미국 남성처럼 여성을 강간하고 싶다는 미국 남성에 대한 동일시 욕망, 남성 연대이지, 반미가 아니다. <Fucking USA>가 주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논리는, 한국인 으로서의 정체성과 남성 주체성이 매우 성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되는 것, 남성이 되는 것은 모두 미국 여성이든 한국 여성이든 여성과의 섹스(강간)를 통해 성립된다는 것이다. 〈Fucking USA〉는 10대 남성들이 남성성을 획득 하는 집단적 통과 의례로 윤간을 행하는 것, 군대입대 전 '진정한 남자 되기'('총각 딱지떼기) 과정으로 성 구매 행위 독려와 같은 남성 일상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총각 딱지 '떼기'라는 탈피의 은유는, 마치 애벌레의 경우처럼 남성에게 섹스가 성인되기의 완성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3. 2. 20
다음 토론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
정희진(이하 정): 거리 시위에서 '퍼킹'하면 진보다. 그걸 방송이나 토론에서 쓰면 성 문제 비슷하게 불건전한 용어사용이 된다. 어쨌건 사회, 국가, 집단 갈등에서 양 집단이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인 예를 살펴봐도 나치 독일의 벨기에 침략을 강간으로 묘사한 경우가 있다. 가까이 한국에선 지난 92년 미군으로부터 살해당한 윤금이씨 사건 때 운동진영이 만든 포스터에서도 차용됐다. 윤금이씨를 한반도로 형상하고 미국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강간의 가해자는 당연히 남성, 피해자는 여성으로 구분지어진 것이다. 퍼킹 유에스에이는 한미간 성역할이 뒤바뀌어 있다. 퍼킹 유에스에이에서는 저항적 의미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남성우월의 의식이 숨어있다. 퍼킹의 주체는 남자다. 한미 관계에서 약자였기에 여성으로 간주되던 자신을 극복하고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여성을 끊임없이 타자로 만드는 이러한 남성중심적 민족주의로는 실상 제대로 미국에 저항할 수 없다.
FUCKing USA 불러도 좋은가
다시 묻는 토론 1 '허약한 반미' 욕설일 뿐
우리안의 서구지배시각 인정, 더불어 '탈식민' 고민
시민행동․ 본지 공동기획 "다시 묻는 토론" 2005/5/24 2025년 7월 17일 아카이브
여기서 Fucking을 강간이라고 주장하면서 드는 예시가 벨기에의 강간인데 ‘벨기에의 강간’은 영어권이던 독일어권이던 “Rape of Belgium”으로 표기된다. 영어 위키백과 2025년 7월 1일 21:30, 독일어 위키백과 2024년 12월 27일 04:25 “Rape of Belgium”를 어떻게 조사해도 뜬금없이 ‘Fuck’가 강간으로 해석될만한 근거가 되는 구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2003년 10월 3일에도 다음과 같이 궤변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미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강간하니까, 한국 남성은 미국 여성을 강간하고 싶어 촛불 집회에서「fucking USA」를 열창한다.
월간 언니네 제42호(2003년 10월 3일) 천고마비 특집 2025년 7월 17일

2005년에도 Fucking이 성폭력적 표현이라는 헛소리로 토론이 발생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과 RTV 시민방송(스카이라이프 154·케이블, 이사장 백낙청)이 함께 제작한 이 5월20일(금) 오후 2시에 첫 방송을 내보냅니다(구성시간 90분. 재방송 : 5월21일(토) 오후 11시).

시민사회조차 문제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들, 제기했더라도 쉽게 묻혀버렸던 문제들을 ‘다시 묻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이 제기하는 첫 번째 물음은 “Fucking USA를 불러도 좋은가?”입니다. 다소 도발적인 물음이지만, 단순히 노래 하나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왜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성폭력적 표현들이 정당화되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꺼낸 질문입니다.
다시 묻는 토론 -“Fucking USA, 불러도 좋은가?”

진행 : 고정갑희(한신대 영문학과 교수)
출연 : 정희진(서강대 강사)
전효관(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대표)
최정민(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본방 : 5월 20일(금) 오후 2시
재방 : 5월 21일(토) 오후 11시
함께하는시민행동-RTV 공동기획 <다시 묻는 토론> 출발 2005-05-20 2025년 7월 17일 아카이브

평화나눔 아카데미에서도 fucking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선동했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은 피해자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복수로서 'fucking USA'를 부르짖습니다. 미국을 여성화하는 것입니다. 힘이 약하면, 힘을 기르든가 하지, 왜 상대국 여성을 성폭행합니까? 이런 성적 메타포는 비일비재합니다. 한국 남성들은 미국 여성들과 자고 싶어 합니다. 강대국 여성과 자는 것으로 강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여성과 잠으로써 미국을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위입니다. 공적인 지배관계를 성애화(erotic化)하는 것입니다. 결국 탈정치화시키는 것입니다. 미국 남자가 한국 여자를 강간했으면 보호하든가 하지, 왜 미국여자를 강간하려고 하는가? 자신도 제국의 남성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연대이지 반미가 아닙니다.”
폭력의 성별화와 지배의 성애화
Fucking의 의미가 성폭행이라고 선동하는 강의를 지속적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계는 진심으로 Fuck의 어원을 강간이라고 생각하고, 영어권 국가의 사용의미도 강간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서울국제회의에서 여성학자 김엘리가 발표한 논문은 아래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여성성을 폄하하고 남성성을 권위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부여하는 남성성의 우월의식은 전쟁의 과정과 승패를 묘사하는 은유법에서도 표출된다. 지난 걸프전쟁 당시, 공격은 강간으로 표현되고 (The rape of Kuwait), 이슬람교 식의 절을 하고 있는 사담 후쎄인의 들려진 엉덩이 뒤로 미사일이 꽂힐 듯한 그림은 침략의 굴욕성을 강간(Fuck you)의 이미지로 대신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약자의 속성은 여성성과 동일시되면서 가치 절하되는 것이다
김엘리,『2002년 SAFE 서울국제회의 자료집』, 미간행).# #
걸프전 당시의 영어권 국가의 사용 용례가 강간이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김엘리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정책위원장 시절에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셋째, 전투에서의 ‘적’의 정복은 극단적 남성성의 표출을 필요로 함으로, 강한 남성다움이 사회의 우위적 가치로 자리잡는다. 전쟁과 관련된 어떤 것을 말할 때, ‘정복, 강인함’과 같은 이야기들은 남성적인 것으로 고려되면서 칭송되는 반면, ‘동정, 약함, 패배’와 같은 이미지들은 여성적인 것으로 비유되면서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다. Cohn C. "Wars, Wimps, and Women: Taking Gender and Thinking War", in M. Cooke and A. Woollacott, eds, Gendering War Talk,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여성성을 폄하하고 남성성을 권위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부여하는 남성성의 우월의식은 전쟁의 과정과 승패를 묘사하는 은유법에서도 표출된다. 지난 걸프전쟁 당시, 공격은 강간으로 표현되고 (the rape of Kuwait), 이슬람교 식의 절을 하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들려진 엉덩이 뒤로 미사일이 꽂힐 듯한 그림은 침략의 굴욕성을 강간(fuck you)의 이미지로 대신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약자의 속성은 여성성과 동일시되면서 가치절하되는 것이다.
김엘리(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정책위원장) (2002.11.7)
보다시피 한국에서의 용례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Fuck의 의미가 ‘강간’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창비는 2003년에 ‘Fuck의 어원이 강간이다’라는 허위정보를 퍼트린 적이 있다.
‘Fucking USA’, 어원을 따지자면’미국을 강간하자’가 되는 이 후렴구
창비 웹매거진/2003/5 https://archive.vn/wPYON
이 구절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의도가 아니라 Fuck 어원 자체를 강간이라고 궤변하고 있다.

보다시피 ‘한국에서 Fuck의 의미가 강간으로 왜곡됐다’는 주장조차 아니며 영어 Fuck의 의미를 ‘강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9년에는 대한민국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고 KCI에도 등재[1]윤김지영의 논문에선 “Fuck you”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언어권 국가에서의 Fuck you 사용의미가 여성혐오라고 왜곡하는 주장이 들어있다.
남성 페미니스트와 논쟁을 벌인 여성 페미니스트의 논박글에 동의를 표하는 것-페이스북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터프로 몰려 터프 블랙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의 글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의 글을 논박한 여성 페미니스트 글에 좋아요를 누른 선배 여성학자들을 터프 블랙 리스트에 올리고 이들을 ‘학회에서 만나면 fuck you를 날려주겠다’는 여성혐오적 언사를 하는 남성도 페미니즘 판에서 용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터프라는 용어는 오직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특화해서 겨냥하는 낙인과 혐오표현이기 때문이다
윤지영. (2019). 페미니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문화와 사회, 27(1), 44쪽 KCI 등재정보
여성학계에선 정말로 Fuck라는 용어자체가 여성에 대한 강간, 성폭력, 여성혐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2. 갠지스강 신비로운 광물질설

반다나 시바의 저서를 리뷰하면서 해괴한 주장을 해서 논란이된적이 있다.
갠지스는 다른 강처럼 정화 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균을 죽여 부패를 방지하는 광물질로 가득 차 있다. 갠지스에서는 콜레라균이 3~5시간 안에 죽는다. 때문에 콜레라 희생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주민의 시체가 버려지고 수천명이 목욕하는 강물을 힌두교도인들은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223쪽). 사실이냐고? 사실이다. 이것은 현대 미생물학이 증명해야 할 과제지,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그들을 신기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3.3. 트랜스젠더혐오로 귀결되는 논리 사용

정희진은 본인이 페미니스트이고 트랜스혐오는 나쁜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표면상의 주장과 책에서 주장하는 이념적인 내용은 딴판이다. 예를 들어서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저서는 경향신문 같은 래디컬 페미니즘 옹호 언론사에 의해 트랜스젠더 혐오를 반대하는 저서라고 언급되지만# 이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남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포지션이다. 모든 남성은 직접적인 성차별의 수혜자이자, 잠재적인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그것은 남성 개인의 품성이나 가치관이나 성찰과 무관하다. 백인이면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가 있지만, 그가 백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오는 남성의 범주란 무엇일까? 트랜스여성이 타고난 남성적인 신체적 특징도 자연스럽게 악이되는가? 트랜스남성이 추구하는 남성다움은 그의 기준에서 악이되는가? 그는 한국 페미니즘 특유의 남여 이분법/선악 이분법을 주장하지만, 그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존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는다. 그와 그 주변 페미니스트들은 단지 혐오주의자 낙인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피상적인 주장을 하고있을 뿐이다.

[1] “이 논문은 건국대 KU연구전임프로그램,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5B8057457).” 윤지영. (2019). 페미니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문화와 사회, 27(1),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