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일리리아 일대에서 건국된 왕국들을 통칭한 용어다. 크게 엥켈레아이 - 타울란티 왕국과 아르디아이 - 라베타이 왕국으로 나뉘며, 그 외에도 여러 일리리아 왕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2. 역사
현재의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발칸반도 서부에 해당된 일리리아에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인도유럽계 민족인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했다.이들은 수많은 부족들의 집합체로, 각각의 부족들은 원로회의와 선택된 부족장이 지도하는 자치 공동체였다. 간혹 유능한 지도자가 이끄는 강력한 부족이 주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켜서 왕국을 세웠지만, 대부분의 지형이 높고 험준한 산악 지대여서 교통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로마 공화국의 진출 이전까지 일리리아 전역이 통일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원전 7세기~기원전 4세기의 일리리아 부족
2.1. 엥켈레아이 - 타울란티 왕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일리리아 왕국은 엥켈레아이족(Enchelei)이 세운 왕국이었다. '엥켈레아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장어족'이라는 뜻으로, 뱀장어를 뜻하는 일리리아어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트라본은 오흐리드 호숫가에 사는 엥켈레아이족을 '세사레티'(Sesarethii)라고 지칭했다. 이 명칭은 일리리아 부족인 다사레티족[1]의 변형으로 추정되며, 오흐리드 호수 주변에서 발견된 동전과 비문에서 이 명칭이 쓰인 것이 확인되었다.아피아노스가 전하는 신화에 따르면, 엥켈레아이족의 시조는 일리리아인의 조상인 일리리우스의 아들 엔켈레오스였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에 따르면, 보이오티아 지역에 위치한 테베의 창건자였던 카드모스가 자식들과 손자들의 연이은 불행에 지쳐 아내인 하르모니아와 함께 테베를 떠나 북쪽의 일리리아 지방에 가서 그곳의 부족들 중 하나인 엥켈레아이족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들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였던 스테파노스가 인용한 폴리비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드모스가 다스리던 테베를 공격한 암피아라오스가 사라진 후, 그의 기병 지휘관이었던 바톤이 엥켈레이 강 인근에 정착했고 그의 후손들이 엥켈레아이족을 형성했다고 한다.
엥켈레아이 왕국은 기원전 8세기경 일리리아 남부에서 형성되었으며, 종종 북부 그리스인들과 전쟁을 벌였다. 헤로도토스 등 여러 그리스 역사가들의 문헌 기록에 따르면, 엥켈레아이족은 델포이 신전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엥켈레아이 왕국을 이끈 지도자들은 전설상의 인물인 카드모스 외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기원전 6세기경부터 타울란티족(Taulantii)의 왕국으로 대체되었다.
'타울란티'는 알바니아어로 '제비'를 뜻하는 '달렌디셰'(dallendyshe)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족은 투키디데스, 폴리비오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대 플리니우스, 아피아노스 등 수많은 고대 작가들이 언급할 정도로 역사에 뚜렷한 종적을 남겼다. 타울란티족은 기원전 10세기 이후 에피담노스(디라키온)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전의 거주민인 브리게족을 대체했다. 기원전 9세기경 리부니족에 의해 밀려난 뒤 남쪽으로 이동하여 말라카스터르 평원에서 아우스 강 어귀까지 이르는 영역을 지배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폴리아이노스는 타울란티족의 통치자였던 갈라우로스가 기원전 678년부터 기원전 640년까지 마케도니아 왕국을 다스린 아르가이오스 1세와 전쟁을 벌였다고 기술했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 기록의 신빙성은 거의 없다고 간주하지만, 마케도니아인과 일리리아인 사이의 오랜 적대감과 갈등이 반영된 서술이라고 본다.
타울란티족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 왕국을 형성해 코린토스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리부니족을 상대로 숱한 전쟁을 벌였으며, 에피담노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에피담노스 시민들은 '폴리테스'(poletes, 판무관)을 세워서 타울란티족의 내정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애썼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기원전 435년, 에피담노스에서 민주파와 과두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민주파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추방당한 과두파 정치인들은 도시를 탈환하기 위해 타울란티 왕국과 손을 잡았다. 타울란티군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주변 지역을 황폐화시키자, 에피담노스의 모도시인 코린토스와 코르키라가 개입했다. 코린토스는 민주파 편에 섰고, 코르키라는 과두파와 타울란티 왕국 편에 섰다. 코르키라는 코린토스와의 해전에서 승리하여 에피담노스를 공략하고, 민주파를 몰아냈다.
기원전 4세기 초, 바르딜리스 1세가 일리리아 남부를 통합한 후 아이아키다이 왕조 에페이로스 왕국과 아르게아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며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에페이로스 왕 알케타스 1세는 바르딜리스 1세 덕분에 복위할 수 있었으며,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3세는 바르딜리스 1세의 침략으로 폐위되었다가 스파르타와 테살리아 등의 지원으로 겨우 복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2세는 바르딜리스 1세에게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상부 마케도니아를 헌납하며, 막내 동생인 필리포스를 일리리아에 인질로 보내야 했고, 페르디카스 3세는 기원전 360년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 했다가 바르딜리스 1세에게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토록 강대한 위세를 떨치던 바르딜리스 1세는 기원전 358년 지난날 일리리아에 인질로 갔다가 복귀한 뒤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2세에게 에비론 계곡 전투에서 참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라보스 2세가 이끄는 그라바이족의 왕국이 새로 성립되어 아테네 및 서부 오드뤼사이 왕국의 케트리포리스 등과 연합하여 필리포스 2세에 맞섰으나 기원전 356년 필리포스 2세의 부하인 파르메니온에게 패배한 뒤 마케도니아 왕국의 봉신이 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여세를 몰아 기원전 344년 타울란티 왕 플루라토스 1세를 격파하고 다사레티아 등 일리리아 동부 일대를 가져갔다. 이제 일리리아인들은 아드리아해 연안에서만 자유롭게 살 수 있었고, 강국이 된 미케도니아 왕국에 공물을 바쳐야 했다.
기원전 335년, 바르딜리스 1세의 아들 클레이토스, 플루라토스 1세의 아들 글라우키아스, 아우타리아테의 왕 플레우리아스가 필리포스 2세의 암살 이후 즉위한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 3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플레우리아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와 연합한 아그리아니아의 왕 랑가로스를 상대로 고전하는 사이, 클레이토스와 글라우키아스는 펠리움 공방전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패배한 후 글라우키아스가 다스리던 타울란티족의 영역으로 피신했고, 클레이토스가 다스리던 일리리아인들은 마케도니아 왕국에 복속되었다. 하지만 글라우키아스는 마케도니아의 간섭을 배제하고 타울란티의 독립을 유지했는데, 이후 마케도니아의 지도자가 된 디아도코이 카산드로스와 숱하게 충돌했다. 기원전 314년 카산드로스가 에피담노스를 공략했지만, 그가 세운 수비대는 글라우키아스에게 축출되었다. 기원전 312년 카산드로스가 재침공했으나 격파당했고, 에피담노스는 타울란티 왕 글라우키아스의 보호를 받았다.
기원전 319년, 카산드로스가 올림피아스를 처단한 뒤 그녀를 돕던 아이아키데스를 몰아내고 네오프톨레모스 2세를 에페이로스 왕국의 새로운 군주로 세웠다. 이때 아이아키데스의 추종자들이 주군의 어린 아들인 피로스 1세를 데리고 에페이로스를 탈출한 뒤 타울란티의 글라우키아스에게 보호를 간청했다. 글라우키아스는 피로스 1세를 거둬들여 10여년 동안 양육했다. 기원전 306년, 글라우키아스는 에페이로스 왕위에 피로스 1세를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302년 피로스 1세가 글라우키아스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리리아로 간 사이에 에페이로스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네오프톨레모스 2세를 복위시켰다. 피로스 1세는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의 진영으로 피신했다가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통치하고 있었던 이집트로 이동한 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지원에 힘입어 네오프톨레모스 2세를 죽이고 에페이로스의 왕위를 되찾았다. 이후 피로스 1세는 타울란티 왕 글라우키아스 및 그의 후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글라우키아스의 후계자였던 모노니오스와 그의 후계자였던 미틸로스는 기원전 280년부터 디라키움(에피담노스)의 조폐국에서 각각 왕과 도시의 상징이 새겨진 은화와 청동화를 주조했다. 미틸로스 휘하의 일리리아인들은 피로스 1세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드로스 2세 휘하의 에페이로스군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타울란티 왕국의 힘은 약해져 나중에는 일개 부족으로 전락했다가 로마 공화국에 복속되었다.
2.2. 아르디아이 - 라베타이 왕국
한편, 기원전 4세기에 일리리아 내륙의 아르디아이 강 어귀에 살고 있었던 아르디아이족이 해안으로 진출하여 그 지역의 여러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기원전 3세기, 그들은 나로 강 하구의 도르시 강 일대부터 스코드라 호수 주변의 라베타이에 이르기까지 아드리아해 연안 전체를 정복했다. 아르디아이족은 해적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그들이 약탈한 자금 일부를 보호비로 받아냈는데, 이 때문에 이탈리아와 그리스 일대가 해적들의 노략질에 시달려야 했다.기원전 250년부터 아르디아이 왕국을 이끈 아그론은 주변 지역을 거침없이 정복하며 세력을 급격히 늘렸고, 기원전 231년에는 아이톨리아 동맹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거둔 직후 갑작스럽게 승하했고, 아내인 테우타가 의붓 아들이었던 피네스의 섭정을 맡았다. 테우타는 에페이로스 동맹을 침략하여 막심한 피해를 입히고, 해적들을 지원하여 로마 공화국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기원전 227년 로마군의 보복 원정에 굴복하여 남쪽 영토를 로마에 헌납하고, 리수스(오늘날 레저) 북쪽 일대의 영토만 유지할 수 있었다.
기원전 222년 피네스의 모친인 티리테우타와 결혼하고 피네스로부터 왕위를 양도받은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가 해적 행위를 재개했으나, 기원전 219년 로마 집정관들이었던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의 침공에 굴복하여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에게 망명했다.
로마 공화국의 연이은 침략으로 아르디아이 왕국은 급속도로 쇠락했고, 스코드라 호수 주변에 거주하는 라베타이족이 주축이 된 왕국이 이들을 대체했다. 라베타이 왕 스케르딜라이다스와 아들 플루라토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국과 로마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전쟁을 벌일 때 로마 공화국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이에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라베타이 왕국이 일리리아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는 걸 허용했다.
그러나 플루라토스 3세의 아들이었던 겐티오스는 기원전 169년에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와 연합했다. 반로마 정책을 표명한 겐티오스는 로마 사절단 2명을 체포하고, 로마와 동맹을 맺은 아폴로니아와 디라키움을 파괴하는 등 적대 행위를 벌이다가 기원전 168년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스코드라 전투에서 패배하고 생포된 뒤 기원전 167년 개선식에서 전리품으로 취급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후 로마 공화국은 일리리아 전체를 복속시키고 일리리쿰 속주를 창설했다.
2.3. 일리리아 대반란
로마 공화국에 정복된 일리리아의 여러 부족들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때를 노렸고, 틈만 나면 반란을 일으켰다. 급기야 서기 6년~9년에 일리리아 대반란이 터지면서 한때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로마 제국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10~15개 군단을 투입해가며 전력을 쏟아부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끝내 진압당했다.서기 1~2세기의 일리리아 부족
2.4. 일리리쿰 속주
일리리아 대반란 이후 일리리쿰 속주는 타 지역에 비해 다소 가난한 지역이었지만 우수한 군인들을 양성하고,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우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1세, 아나스타시우스 1세, 대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등의 명군들을 배출했다.[2][3]3.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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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엥켈레아이 - 타울란티 왕국
- 카드모스(전설)
- 갈라우로스(기원전 7세기)
- 그라보스 1세(기원전 5세기)
- 시라스(기원전 5세기)
- 바르딜리스 1세(기원전 4세기 초 ~ 기원전 358년)
- 그라보스 2세(기원전 358년 ~ 356년)
- 플루라토스 1세(기원전 356년 ~ 미상)
- 플레우리아스(기원전 4세기)
- 클레이토스(기원전 335년)
- 글라우키아스(기원전 335년 ~ 미상)
- 바르딜리스 2세(기원전 295년 ~ 기원전 290년)
- 모노니오스(기원전 290년 ~ 미상)
- 미틸로스(기원전 270년 ~ 미상)
3.2. 아르디아이 - 라베타이 왕국
- 플루라토스 2세(기원전 3세기 중반 ~ 기원전 250년)
- 아그론(기원전 250년 ~ 기원전 231년)
- 테우타(섭정)(기원전 231년 ~ 기원전 227년)
- 피네스(기원전 231년 ~ 기원전 217년)
-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기원전 222년 ~ 기원전 219년)
- 스케르딜라이다스(기원전 217년 ~ 기원전 206년)
- 플루라토스 3세(기원전 206년 ~ 기원전 181년)
- 겐티오스(기원전 181년 ~ 기원전 168년)
- 발라이오스(미상 ~ 미상): 고대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고 주화로만 확인됨.
3.3. 기타
- 오피스(미상 ~ 기원전 460년): 메사피아족의 왕.
- 에풀론(기원전 181년 ~ 기원전 177년): 히스트리족의 왕.
- 베르조(미상 ~ 기원전 34): 달마티아의 왕. 기원전 34년 12,000명의 리부르니족을 이끌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맞서 싸웠으나 끝내 전사했다.
- 테스티무스(미상 ~ 미상): 달마티아의 왕. 베르조와 함께 옥타비아누스에게 대항했으나 끝내 패배하고 기원전 33년 항복했다.
- 피네스: 브레우키족의 왕. 서기 6~9년 데시타이트인 바토와 브레우키인 바토가 일으킨 일리리아 대반란에 참여했다가 데시타이트인 바토를 로마군에 넘기고 항복했다.
[1] 로마 시대부터 기록되었다.[2] 막상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알짜배기였던 그리스 지역에서는 (흔히 말하는 비잔티움 문명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전까지) 이러한 명군을 배출한 적이 없었다.[3] 영어 위키백과 Illyrian emperors(일리리아 출신 or 혈통의 로마 황제 목록)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