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4 00:17:34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200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8년 기원전 197년 기원전 19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푸블리우스 빌리우스 타풀루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195년 기원전 194년 기원전 193년 기원전 192년 기원전 191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기원전 190년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8년 기원전 187년 기원전 18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기원전 185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83년 기원전 182년 기원전 18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리키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라베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기원전 180년 기원전 180년 보결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8년 기원전 177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76년 기원전 176년 보결 기원전 175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7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파울룰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기원전 172년 기원전 171년 기원전 170년 기원전 169년 기원전 168년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리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167년 기원전 166년 기원전 165년 기원전 164년 기원전 163년
퀸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펜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퀸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니우스 유벤티우스 탈나
기원전 162년 기원전 162년 보결 기원전 161년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9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기원전 158년 기원전 157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4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퀸투스 오피미우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기원전 154년 보결 기원전 153년 기원전 152년 기원전 151년 기원전 150년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기원전 149년 기원전 148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6년 기원전 145년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니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기원전 144년 기원전 143년 기원전 142년 기원전 141년 기원전 140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기원전 139년 기원전 138년 기원전 137년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5년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기원전 134년 기원전 133년 기원전 132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3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이밀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푸블리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기원전 130년 보결 기원전 129년 기원전 128년 기원전 127년 기원전 126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4년 기원전 123년 기원전 122년 기원전 121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9년 기원전 118년 기원전 117년 기원전 116년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기원전 115년 기원전 114년 기원전 113년 기원전 112년 기원전 111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기원전 110년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8년 보결 기원전 107년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기원전 106년 기원전 105년 기원전 104년 기원전 103년 기원전 1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101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라틴어: Lucius Anicius Gallus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조부)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아버지)
직업 로마 공화국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160년
전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동기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후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1. 개요2. 생애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2. 생애

팔레스트리나에서 로마로 이주한 플레브스 가문인 아니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168년 외국인과의 법률 문제를 다루는 법무관에 선임되었다. 당시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마케도니아 왕국과 동맹을 맺은 일리리아 왕국의 국왕 겐티오스를 상대하기 위해 발칸 반도로 파견되었다. 그 해 봄, 그는 아폴로니아에서 일리리아 함대를 격파한 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육군과 합세한 뒤 스코드라로 진격해 일리리아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겐티오스는 도주를 시도했으나 끝내 추격병에게 사로잡혔다. 그 후 가족과 함께 로마로 끌려간 그는 기원전 167년 개선식에서 '전리품' 취급 받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탈리아 페루자 지역의 구비오에서 여생을 보냈다.

한편, 갈루스는 기원전 167년 전직 법무관 자격으로 마지막까지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 페르세우스 편에 섰던 에페이로스 연맹을 공격해 복종시킨 뒤 스코드라로 돌아와서 일리리아를 3개의 공화국으로 분할한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로마로 돌아온 뒤 기원전 167년 에 열린 개선식에 참석했다. 이때 그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를 초대하는 게임을 조직했다.

기원전 160년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지만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았다. 기원전 154년 소아시아에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등과 함께 파견되어 비티니아 왕국의 국왕 프루시아스 2세페르가몬 왕국의 국왕 아탈로스 2세가 전쟁을 끝내고 프루시아스 2세가 페르가몬 왕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하려 했지만, 프루시아스 2세가 끝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니키우스 씨족은 이 인물부터 본격적으로 원로원에 입성하여 노빌레스 가문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특이하게 그들은 군인 황제 시기후반부터 시작해, 서로마 제국 말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된다. 로마제국 쇠망사에 따르면 그들의 디오클레티아누스시기부터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하였으며 정치적 상황에 적응하여 최초의 기독교 원로원 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아나키우스 가문에 4세기부터 6세기까지 로마의 주요 고위 정무관명단에 지겹도록 등장하게 된다.

아니키우스 가문은 서로마 멸망 직전 올리브리우스로 황제에 등극하기도 하였다. 그 자체는 114일만에 살해되었으나 그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딸 플라키디아 사이에 낳은 딸 아니키아 율리아나가 유명하다. 그녀는 앞서 말한 두 황제 외에도 플라키디아의 어머니(즉 외할머니)인 리키니아 에우독시아가 테오도시우스 2세의 딸이었기에 동로마, 서로마 두 황제의 피가 섞였으면서 당시 대단히 존경받던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후손이라는 어마어마한 혈통을 자랑했다. 그녀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국가로부터도 황족, 공주의 대우를 받았고 대단히 부유했다고 한다. 그녀는 내심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한것 같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하기아 소피야이전 콘스탄티노플에서 성 폴리에욱토스 성당의 건설자금의 대부분을 후원했고 중세초기 식물학 서적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Vienna Dioscorides'의 집필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는듯 문화, 예술적인 분야에서 크게 이름을 남겼다.

서로마에 남은 아니키우스 가문은 제국이 멸망하고나서도 지식인층이자 구로마 상류층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동고트 왕국시기에도 존중받았다. 이 당시 유명인물로는 마지막 그리스-로마 철학자라는 보에티우스, 중세 신학과 유럽의 가톨릭 중심 정치 시스템을 최초로 제안했다는 그레고리오 1세가 있다. 이후 7세기 이후 랑고바르드 족의 침입과 전쟁으로 로마가 황폐화 되면서 다른 구 로마 출신 엘리트와 마찬가지로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동로마에서도 아니키우스 가문은 이름을 크게 떨쳤으며 노빌레스 출신은 커녕 5현제 시기 엘리트 가문들의 명맥도 끊어진지 오래인데, 공화정부터 이어진 아니키우스 가문은 대단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역사학자 사이에서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사촌이자 명장으로 이름 높은 게르마누스가 6세기의 역사서 '게티카'에 아니키우스 가문출신이라고 적힌 구절 탓에 [1] 그가 아나키우스 가문과 혈연관계가 있냐가 논쟁꺼리이긴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름 없는 가문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확실하기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는 게르마누스도 마찬가지이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의 원로원, 혹은 총독으로 아니키우스라는 이름이 붙은 인물은 종종 언급되나 역시, 7세기 부터 이어지는 이슬람 침공, 그리고 정치,경제적 대혼란 시대에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그 후 중세 중기인 11세기경부터 로마에서 많은 고위성직자를 배출하는 명문가 플랑지파니 가문은 자신들이 아니키우스 가문의 후손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콜론나 가문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후손을 칭하는듯 이탈리아의 귀족가문이 본인들을 로마의 유명가문과 엮는 것이 대유행이던 시대였기에 인정되지 않고 있다.
[1] Thus was united the stock of the Amali and Anicii by this marriage (영문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