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0:45:42

이영익/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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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코치3.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4. 동북고등학교 코치, 감독5. 상주 상무 수석 코치6. 경남 FC 수석 코치7. 대전 시티즌 감독
7.1. 시즌 전7.2. 전반기7.3. 후반기
8. 경남 FC 수석 코치 2기9. 성남 FC 유소년 강화실장, 전력강화실장10. 천안 시티 FC 테크니컬 디렉터11. 지도자로서의 평가

1. 개요

이영익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코치

은퇴 후 1998년 실업팀이던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조동현 감독을 보좌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 당시 훗날 대전 시티즌의 레전드로 성장하게 될 주승진을 발굴해내기도 하였다.

3.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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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팬들에게 잘 알려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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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익의 대전 코치 생활은 2개의 짤방으로 요약 가능하다.

200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여 최윤겸 감독을 보좌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포 코치 시절 애제자였던 주승진을 대전으로 데려왔는데 주승진은 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렇게 대전에서 코치 임무를 잘 수행해내며 대전 시티즌의 선전에 기여했지만, 2007시즌 중반 최윤겸 감독에게 폭행을 당한 뒤 구단의 명예 실추를 이유로 코치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원래 최윤겸과 이영익 두 사람은 평소 형, 동생으로 지낼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나 2006년부터 최윤겸 감독과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감독과 수석코치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세력들에의해 둘 사이는 멀어지고 각종 악성 루머까지 돌면서 둘의 갈등은 점차 고조되어 결국 폭발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영익 코치의 집에서 술자리를 가지면서 격하게 논쟁을 벌이다가 최윤겸 감독이 흥분한 나머지 주석잔으로 이영익 코치에게 폭행을 가하여 이영익 코치는 결국 중상을 입고 만다. 이 사건으로 최윤겸 감독은 대전의 감독직에서 사임하였으며 9일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영익 코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화해하였고 최 감독에게는 6개월 감봉, 이 코치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둘의 화해는 진정성이 없는 사실상 쇼윈도식이였고, 사건 이후 휴가 중이던 폭행 사건을 목격한 자신의 아내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최윤겸 감독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단단히 화가 나 있던 이영익은 결국 최윤겸을 형사고발 조치에 이른다. 이영익의 고발로 대전 구단 측에서는 둘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으며 구단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자 이에 사장은 무단으로 결근하던 이영익 코치에게 고소를 취하하고 구단에 복귀할 것을 명하였으나 이에 불복하였으며, 최윤겸 감독도 이영익 코치와 합의하라는 구단 측의 명령을 어기자 결국 구단 측에서는 이사회를 열어 구단 명예 실추와 정당한 사정명령에 대한 불복행위에 따른 징계로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를 모두 해임시키면서 씁쓸히 대전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4. 동북고등학교 코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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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친정팀인 FC 서울의 유소년 산하학교인 동북고등학교 축구부[1]의 코치로 부임하여 최진한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10년 최진한 감독이 FC 서울의 2군 감독으로 보직을 바꾸면서 동북고의 감독으로 승진하였다.

2010년 챌린지리그에서는 A조 2위에 오르며 강호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2011년에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불안한 조직력으로 시즌 초반의 부진하며 A조 6위에 그쳤다.

2012년에는 팀의 포메이션을 4-3-3으로 바꿈으로써 2011년 문제를 드러낸 조직력을 보완하였으며, 동계훈련 기간 동안 대학 팀들을 상대로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2월 김해에서 열린 제 36회 대한축구협회장배 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에서 결승에 오르며 기량을 입증했다.

5. 상주 상무 수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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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상주 상무의 수석 코치로 취임해 박항서 감독을 보좌하였고, 2013년과 2015년 상주의 두번의 K리그 챌린지 우승 및 승격을 이끌었다.

특히 워낙 불같은 박항서 감독의 성격 탓에 이영익이 꽤나 고생을 했다. 2013년 광주와의 리그 15라운드 경기서 심판에게 욕설을 내뱉고 퇴장당하면서 7경기 출장 징계를 당하는 동안 박항서 감독을 대신해서 팀을 지휘했으며, 2014년에도 박항서가 FC 서울과의 리그 7라운드 경기에서 강한 항의로 퇴장당하면서 3개월 가까이 총 7경기를 감독을 대신해서 팀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박항서의 퇴장으로 상주 코치 시절 동안만 무려 14경기를 감독을 대신해서 팀을 지휘한 것이다.

6. 경남 FC 수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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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경남 FC 수석코치로 취임해 김종부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심판 매수로 인한 승점 삭감 등으로 어수선했던 구단의 분위기를 잘추스르는데 기여했으며, 특히 김종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맡아 감독과 선수 사이를 조율하면서 매끄러운 윤활유 역할을 해냈으며, 탁월한 리더십과 선수 장악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경남 선수들에게 ‘어머니’라 불렸다고 한다.

7. 대전 시티즌 감독

7.1. 시즌 전

2016년 11월,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최문식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략 10년만에 대전으로 복귀하였으며, 50이 넘은 다소 늦은 나이에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2]

대전 시티즌 구단은 이영익이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선수단과 소통하는데 능할 뿐더러 과거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서 최윤겸 감독을 잘 보좌하며 선수들을 잘 지도하며 대전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그러기에 대전 지역의 정서를 잘 안다는 점이 선임 이유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취임 초기에는 전직 감독이었던 최문식 감독과 더불어 대전 시티즌이 지속적으로 신인 감독을 선임했다가 실패하는 악순환이 반복중이었는데, 이영익 역시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전혀 없음과 더불어 과거 코치 시절 최윤겸과 같이 안 좋은 사건에 연루되어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채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었다는 이유로 많은 팬들이 선임을 반대했다.

취임식에서 이영익은 전임 감독이였던 최문식과 다르게 경기력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며 필요하다면 수비 위주의 실리 축구를 펼칠 것이며, 신인 선수보다는 경험 있는 선수들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과거 최윤겸 감독과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대전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과거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팬의 질문에는 나중에 따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간담회 형식으로 제대로 설명 및 해명하겠다고 밝혔다.[3]

7.2. 전반기


3월 4일 안산 그리너스 FC전을 통해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1:2로 패했고, 3월 12일 성남 FC전을 통해 감독으로서 대략 10년만에 대전월드컵경기장 벤치에 앉았고,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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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서울 이랜드전을 통해 감독 데뷔승을 거두었고, 경기 종료 후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구단 통산 199승이였다. 200승을 거두기까지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대전 팬들은 설마 아무리 못해도 최문식 때만 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월 22일 부산 아이파크전을 시작으로 작년보다 더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내리 7연패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5월 7일 경남전에서 0:1 패배를 거두며 과거 챌린지 우승팀 대전이 챌린지 꼴찌로 떨어지는 굴욕을 맞보았고, 좀처럼 2017시즌 내내 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시작했다. 6월 12일 수원FC전 4:3 승리를 통해 시즌 두번째 승과 구단 통산 200승을 거두었다. [4]

이영익의 대전이 추락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대전의 에이스인 황인범 역시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문식 감독 재임 당시 황인범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면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켰었지만 이영익은 황인범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보다는 주로 중앙 미드필더에 배치하였고, 그 자리에는 이호석을 배치해 황인범이 2016시즌 했던 역할을 부여했었던 것이였으며, 황인범은 자기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마냥 주춤해댔고, 대전의 에이스 황인범의 부진은 자연스럽게 대전의 부진으로 이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5][6]

7.3. 후반기

결국 시즌 중반 공격수에 2014 챌린지 우승 주역인 김찬희와 브라질 용병 브루노, 이영익이 과거 경남 코치 시절 제자였던 수비수 박주성과 전상훈을 영입하며 반전을 꾀했고, 이들이 처음 출전한 7월 3일 안양전에서 큰 활약하며 2:0 승리를 이끌며 분위기가 반전되나 싶었지만 거기까지 였다.

특히 7월 9일 부천전은 이영익이 아직 감독으로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많이 드러나는 경기였다. 폭우가 내려서 그라운드에 물웅덩이가 고여서 정상적인 패스와 드리블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굳이 드리블과 숏패스를 고집하였고, 그러다가 골키퍼의 실수 한방에 골을 먹히며 1:0으로 패했다.

또한 7월 15일 아산과의 경기에서는 골을 허용해서 동점이 된 마당에 미드필더인 신학영을 빼고 수비수인 장원석을 투입하는 등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용병술을 선보였었다.[7]

특히 시즌 중후반기들어 경기에서 패배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어이없는 발언을 하면서 보는 대전팬들을 분노케 하였다.
경남이 이길 만한 승부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경남이 잘했다.

그럼 대전 시티즌이 꼴등인데 대전보다 잘하지 못하는 팀도 있나요? 상대가 강팀이고, 상대가 잘한다면 지는 게 당연한 건가요?

그나마 이영익이 전임 감독인 최문식보다 나은 점을 굳이 꼽으라면 밉상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였는데 후반기들어서는 밉상 인터뷰를 선보이면서 전임 최문식과 다를게 없는 똑같은 놈, 아니 더 최악의 감독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근데 실패한 감독들 중 더 나아봤자지 뭐 [8]

8월 23일 경남 원정 경기에서는 전반에는 2:0으로 앞서가다가 후반에 4골을 먹히면서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말도 안되게 패해버렸고, 이날 경기 패배로 대전팬들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고, 바로 이어진 8월 27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는 팬들이 "이영익 나가라!", "이영익 감독님, 우리 이제 그만 만납시다"라고 외치고, 대전 시티즌 팬들이 성남 선수가 골을 성공시키면 환호를 하는 등 여론과 분위기 등이 만일 이날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대전 감독직에서 반드시 물러나아만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까지 몰리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였으나 경남전과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4:1 패하였고, 분노한 팬들이 구단 버스 앞에서 이영익 나오라고 외쳤다.

그런데 이영익 감독이 선수단보다 먼저 나와서 도망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대전팬들을 분노케 했다. [9] 하다못해 최문식 감독도 도망은 안쳤다. 한마디로 이영익은 팬 무섭다고 선수보다 먼저 몰래 나와 도망치고 잠수탄 것이며, 이로 인해 팬들과의 관계에서 있어서는 사실상 돌아올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버렸으며, 이걸 샤다라빠가 만화에 올리기도 하였다.

결국 이날 이영익 감독을 대신해 대전 시티즌의 사무국장과 팀장이 조만간 이영익 감독과 팬들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간담회 형식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등의 대책 등을 팬들에게 말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는데, 팬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할 것도 없이 얼마 뒤인 8월 31일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사임도망하며 대전 구단과의 두 번째 작별 역시 씁쓸하게 하고 말았다.

애초에 성남전 종료 후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다시는 대전팬들 얼굴 안 볼 생각하고 팬들보다 먼저 나와 도망치지 않았나 싶다.

8. 경남 FC 수석 코치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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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반 년 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이영익은 2018 시즌을 앞두고 김종부 감독의 부름을 받아 다시 경남 FC의 수석 코치직에 재부임하였다.[10]

하지만 상주 상무와의 개막전에서 김종부 감독이 과격한 항의로 3경기 출장 징계를 당하면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면서 3경기를 김종부 감독을 대신해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경남 어쩌냐

3월 1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말컹김종부 감독이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 승리를 거두었으며, 3월 17일 전남 드래곤즈전, 4월 1일 강원 FC전에서도 3:1 승리를 기록, 리그 4연승을 이끌며 경남의 K리그1 선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감독으로서는 함량 미달이지만 코치로서의 능력은 준수한 듯하며, 이후 경남은 리그 2위를 거두면서 사상 처음으로 ACL에 진출에 성공했다.

9월 말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그가 직접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FC 서울최용수를 다시 불러들였다.

본인의 입장에서도 감독으로서 큰 실패를 겪은 게 얼마 전 일인데, 김종부 감독과의 좋은 케미를 유지하고 있는 현 체제를 깨면서까지 감독 재도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9년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2라운드에서 김종부 감독이 과격한 항의로 또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면서 김종부 감독은 3월 17일 포항 스틸러스전부터 4월 2일 전북 현대까지 김종부 감독을 대신해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3월 17일 포항 스틸러스전은 4:1로 참패했지만 3월 30일 대구 FC전은 2:1 역전승했으며, 4월 2일 전북 현대전은 자유한국당 경남 FC 경기 난입사태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후반 막판 3골을 넣는 화력을 앞세워 3:3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었다.

하지만 시즌 중반 김종부 감독에게 거친 욕설까지 퍼부으며 항명을 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결국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자 선수단 관리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2019시즌을 끝으로 경남이 강등되면서 김종부 감독이 물러나 설기현 감독이 새로 선임되면서 대대적인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 개편에 나서면서 경남을 떠났다.

9. 성남 FC 유소년 강화실장, 전력강화실장

2020년 성남 FC의 유소년 강화실장으로 부임하였으며, 2021년에는 전력 강화실장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2 시즌 중반 김남일 감독과 정경호 수석 코치가 물러나면서 성남 감독 대행을 맡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으나, 정경호 코치가 물러나지 않고 감독 대행을 맡게 되면서 감독 대행직 부임은 없던 일이 되었다.#

22시즌까지 성남에 소속되었다.

10. 천안 시티 FC 테크니컬 디렉터

23년부터는 중국 운남성 U18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2024년 9월 곽 상주 상무 시절 코치로 같이 재임했던 김태완이 감독으로 있는 천안 시티 FC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부임하였다.

11. 지도자로서의 평가

"불행하지만 난 모든 선수들을 위해 슬퍼하고 있다. 근데 우리가 뭐 할 수 있어? 코칭스태프들이 다 무능했다."
페드로

이영익은 스포츠에서 코치와 감독은 엄연히 다른 직책이기에 유능한 코치가 유능한 감독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11]로서 지도자로서의 성과나 결과 등을 놓고 봤을 때 이영익은 코치 위치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만 감독으로서는 그렇지 못하는 유형인 것으로 보인다.

대전 시티즌 감독을 맡으면서 이영익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공격 축구를 구사했었다.

이영익 감독 역임 당시 대전이 전반기 동안 패한 경기를 보면 여러 선수들이 여러차례 올라와서 되지도 않는 공격을 하다 수비와 2선 간격 벌어지며 상대에게 역습 허용해서 실점을 허용하거나 위기를 자초하고, 이를 계기로 수비 조직력과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골을 또 헌납하는 악순환이 매번 반복되었었다.

과거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본프레레 감독이 수비라인에서 3골 먹히면 공격라인이 4골 넣으면 된다고 말했듯이 이런 식으로 실점을 해가면서까지 공격축구를 구사할 것라면 공격진이 실점한만큼이라도 득점을 성공시켜줘야 하지만 당시의 대전은 그정도로 골결정력이 높은 팀이 아니었기에 이영익의 이런 전술은 실속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영익 감독이 시즌 전 말했던 것처럼 차라리 초반에 좀 공격적으로 나가서 한골을 성공시킨 후 좀 경기가 재미없어지는 한이 있어서도 공격자원들까지 내려서 수비 위주의 축구를 구사해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기를 대전팬들은 내심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말과는 크게 달랐던 것이였다.

결국 후반기들어서는 전반과는 다르게 한골 성공 후 걸어 잠그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대전의 수비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 한골 성공시켰다고 무작정 공격도 안하고 걸어잠궜다가 수비 불안의 한계를 드러내며 후반들어 집중력과 체력 저하로 인해 골을 내주면서 이길 경기를 비기거나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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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고 축구부는 2012년까지 FC 서울의 유소년 산하학교였으나, 2012년부로 서울과의 유스 협약이 만료되었다.[2] 요즘 K리그팀 감독들을 보면 대부분이 40대의 젊은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3] 애초에 대전 구단도 그런 간담회를 개최하려고 선수단 일정을 조율하고 알아봤지만 전지훈련 등의 스케줄 등으로 인해 도저히 간담회를 개최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4] FA컵은 제외한다.[5] 여담으로 훗날 황인범이 국가대표팀에 중용된 이후의 파울루 벤투도 2019년 한때 기성용을 대체한답시고 비슷한 실수를 범하였는데, 동아시안컵에서 공격적인 롤로 다시 바꾸고 나서야 경기력이 개선되었다.[6] 하지만 이영익과 벤투의 이러한 기용이 결국 재평가를 받긴 했다. 어찌됐든 3선 중미에서도 익숙해져서 현재 소속팀인 루빈 카잔에서도 3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7] 이에 이날 경기 종료후 서포터즈석의 적지 않은 관중들이 왜 그 상황에서 수비수를 투입하냐고 야유를 날렸다.[8] 최문식과 이영익 중 누가 더 최악의 감독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평가가 갈린다.[9] 직원들이 전화하니까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고 한다.[10] 미 프로야구 MLB에선 감독 출신 코치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감독에서 해고된 뒤 바로 다른팀 벤치코치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초보 감독을 임명할 때 거의 반드시 빅리그 감독 출신 벤치코치를 임명해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MLB에서 감독과 코치는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아닌 ‘파트너’다. 감독과 코치가 각자 전문영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코치로 잘한다고 다 감독 후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감독으로 실패했다고 코치 역량이 평가절하되지도 않는다고 여긴다.[11] 대표적으로 스티브 맥클라렌이 있다. 맥클라렌은 맨유의 수석코치로서 트레블 달성에 공헌했고, 퍼거슨 경으로부터 최고의 수석코치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미들즈브러에서의 짧은 성공 외에는 잉글랜드를 유로 본선에서 탈락시키고 훗날 뉴캐슬도 나락에 떨어뜨리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