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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과 경험비판론 Материализм и эмпириокритициз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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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작가 |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언어 | 러시아어 |
발매일 | 1909년 |
장르 | 철학서 |
부제 | 한 반동적 철학에 대한 비판적 논술(Критические заметки об одной реакционной философии) |
언어별 명칭 | |
러시아어 | Материализм и эмпириокритицизм |
독일어 | Materialismus und Empiriokritizismus |
영어 |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
1. 개요
블라디미르 레닌이 에른스트 마흐와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를 비판하기 위해 저술한 철학서.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러시아에서는 마흐의 실증주의와 아베나리우스의 경험비판론이 유행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레닌의 정적인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는 1904~1906년 『경험일원론Empiriomonizm』을 출간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레닌이 보그다노프 출당을 위해 쓴 책이 바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레닌이 주장한 반영론적 인식론은 이후 스탈린주의 철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소련 철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반영론은 다른 한편으로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 일종의 기계적 반영론으로서 수용되어 관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 주요 내용
여기서 레닌은 마흐, 아베나리우스, 보그다노프, 헬름홀츠[1], 유쉬케비치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비판하기에 이를 세세히 설명하기는 힘들고, 일단 레닌의 주 표적인 마흐적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의 골자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겠다.마흐는 『감각의 분석』을 포함한 여러 저서들에서 일종의 도구주의적 과학철학을 전개했다. 마흐에 따르면,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감각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감각 너머의, 현상 너머의 것에 대한 언표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칸트의 물자체는 폐기되며, 세계는 우리의 감각복합이다. 다시 말하자면 물리학의 대상들 중 전자와 같이 (최소한 마흐가 생각하기에는) 감각되지 않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해소되어야 할 형이상학적 물음이다. 전자 등의 이론적 대상은 설명의 경제성을 위해 가정된 존재자다. 따라서 그러한 대상들에 대한 진술의 진리여부는 그 진술의 '유용성'에 따라 결정된다.
레닌이 보기에 이는 조지 버클리의 관념론의 재탕이었다. 버클리는 "에세는 페르키피다"(esse est percipi), 즉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확실히 마흐의 실증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물론 마흐는 '우리의 감각'을 말한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유아론자가 아니지만[2], 레닌은 '나'를 제외한 '우리', 즉 타자의 존재 역시 마흐의 논리에 따르면 감각복합이거나 이론적 유용성, 즉 "사유경제성"을 위해 가정된 것에 불과하게 된다고 보았다.
마흐주의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주로, 위와 같이 실증주의가 일종의 주관적 관념론임을 보인 후, 그것이 관념론이며 자연과학과 반대되기에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구조를 띈다.
예를 들어 아베나리우스는, 주관에 매개되지 않은 객관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이가 이미 주관이고, 따라서 그 객관은 이미 매개된 것이기에 모순적이라고, 즉 주-객은 서로 상관적이라고 — 아베나리우스는 이를 "원리적 동격"이라 한다 — 주장했는데, 레닌은 지질학이 인간 이전에도 지구가 존재했음을, 즉 주관의 발생 이전에도 객관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고 아베나리우스를 비판했다[3].
마흐(와 헬름홀츠)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이론을 자연과학에 기초하여 정립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이는 특히 치명적인데, 마흐는 감각이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된다고 말하지만, 그 감각기관역시 감각복합이고, 따라서 감각기관을 감각할 감각기관이 요구되며, 결론적으로 무한퇴행이 발생한다.
또한 이렇게 마흐-아베나리우스를 주관적 관념론으로 규정한 이후, 레닌은 보그다노프 등의 러시아 마흐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주관적 관념론을 뒤섞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레닌은 칸트의 물자체 개념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끌어와 반영론을 세운다. 엥겔스의 비판이란 산업의 발달을 통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연사물을 파악,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물자체(Ding an sich)가 "우리를 위한 물"(Ding für Uns)로[4] 전환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여기서 산업은 일종의 실천의 집합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실천을 통해 진리가 검증되고 밝혀진다는 것이 레닌 반영론의 골자이다.
추가로, 레닌은 여기서 "물질'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를 내세우는데, 이는 당대 과학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당대 과학발전에 따라 물질이 아닌 에너지가 존재하며, 따라서 유물론은 과학과 상충한다는 견해가 발생하였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레닌은 물질을 아예 인간 의식과 독립하여 의식에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로 정의해버리는 전략을 택한다. 에너지든 물질이든 객관적 실재이며, 이런 객관적 실재가 바로 철학적 물질이라는 것이다.
3. 평가
마흐의 사상에 반대하여, 레닌은 물질・에테르・자연법칙 등, 자연과학과 인간의 상식에서 받아들여지는 것들로 이루어진 물질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유물론적 관점으로서 내세운다. 여기서 자연과학과 인간 상식은 존경받을 만한 권위들이지만, 이 경우에 그것들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레닌은 동료 과학자들 사이에서 동의를 거의 받지 못했다는 마흐 자신의 고백을 조롱하려고 인용한다. 그러나 원래 새로운 생각을 들고 나온 비판자는, 그 비판자가 비판한, 기존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낡은 생각의 진술로써는 반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식 i.e.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들의 총체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상식이란 대개, 이전 시대의 과학적 금언들(dicta)이 교육과 대중서를 통해 대중에게 서서히 스며든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 세계가 파괴불가능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물질이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세계가 영원하고 무한하다는 것――이 모든 것은 먼저 교육받은 계급의 정신에, 그 다음에 대중의 정신에 저저히 침투해왔다. 과학이 새롭고 더 좋은 관점으로 이행할 때, 이 모든 낡은 지식들, 즉 “상식”은 그 새로운 관점에 대한 반대로서 제기된다.
안톤 판네쿡, 『철학자로서의 레닌』 中.
안톤 판네쿡, 『철학자로서의 레닌』 中.
개요에서 말했듯이 서구 맑스주의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대부분[5] 혹평했지만, 이들보다 먼저 레닌의 이 저작에 대한 비판을 개진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었다. 안톤 판네쿡과 카를 코르쉬가 그들 중 일부인데, 이들 비판은 서구 맑스주의의 비판을 선취한 것으로, 그 골자는 레닌이 일종의 형이상학적 유물론, "중간계급 유물론"을 들여왔다는 것이다.
레닌은 이곳에서 인식론적 문제제기들을 전부 불가지론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기각하는데, 문제는 레닌이 불가지론에 대해서 전혀 반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의 발달로 물자체가 반박된다는 주장은 물자체가 원리적으로 인식불가능한 개념임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베나리우스가 말하는 원리적 동격에 대한 반론 역시 그렇다. 레닌은 마흐와 아베나리우스가 주관적 관념론자라는 주장에서는 옳았지만, 그래서 주관적 관념론이 왜 틀렸는 가에 대해서는 그저 자연과학을 내세울 뿐이다. 그러나 주관적 관념론자가 자연과학을 규준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어떠한가? 결국 레닌은 상식이 옳기에 상식적 유물론이 옳다는 순환논증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위 "상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발전된 체제이다.
레닌이 이렇게 인식론적 문제 자체를 기각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인식론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어설프게 받아들여서 일 것인데, 사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이 비판-이전적 형이상학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 공을 엄청나게 들였다. 『정신현상학』 자체가 그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레닌은 여기서 소박실재론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