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 윌리엄 브랜던 William Brandon |
| 출생 | 1456년경 |
| 잉글랜드 왕국 케임브리지셔 소햄 | |
| 사망 | 1485년 8월 22일 |
| 잉글랜드 왕국 보스워스 | |
| 아버지 | 윌리엄 브랜던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윙필드 |
| 형제 | 토머스 브랜던 등 |
| 배우자 | 엘리자베스 브루인 |
| 자녀 | 윌리엄, 찰스, 앤 |
| 직위 | 기수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기수.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 7세의 기수를 맡았다가 리처드 3세에게 살해되었다. 초대 서퍽 공작 찰스 브랜던의 아버지다.2. 생애
동앵글리아 출신의 부유한 지주이며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요크군에 가담해 에드워드 4세에게 기사로 선임된 윌리엄 브랜던과 로버트 윙필드 경의 딸 엘리자베스 윙필드의 장남이다. 그에게는 두 남동생과 일곱 명의 누이가 있었는데, 그중 토머스 브랜던은 헨리 7세의 외교관으로서 프랑스 왕국, 신성 로마 제국과의 협상에서 활약했다.연대기 작가 존 패스턴은 윌리엄이 1478년경 "학교에서 늙은 여자를 강간하려다가 실패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이미 두 아들을 두 미망인 엘리자베스 브루인과 결혼한 바 있었는데, 존 패스턴은 그가 교수형에 처해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몇 년 후인 1483년 버킹엄 공작의 반란의 배후에 있는 런던의 인사들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기에, 기소를 모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버킹엄 공작의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484년 3월 사면을 받았지만, 11월 메르세아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 왕국으로 망명했다.
그 후 헨리 튜더와 손잡기로 한 그는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에 상륙했을 때 동행했고, 1485년 8월 22일 보스워스 전투에 참여했다. 전투 막판에 리처드 3세가 헨리 튜더를 향해 마지막 돌격을 감행했을 때, 그는 군기를 지키다가 리처드 3세에게 살해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윌리엄과 그의 동생 토머스는 1485년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에 상륙한 직후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토머스는 실제로는 1497년 블랙히스 전투에서 콘월 반란군이 진압된 뒤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윌리엄은 전사 후 예의상 '윌리엄 경'으로 불렀을 뿐이거나 그보다 6년 뒤인 1491년에 사망한 아버지 윌리엄 브랜던과 헷갈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윌리엄은 생전에 헨리 브루인 경의 딸인 엘리자베스 브루인과 결혼해 윌리엄[1], 찰스, 앤[2]을 낳았다. 엘리자베스 브루인은 윌리엄 브랜던 사후 윌리엄 맬러리 경과 재혼했다. 그의 누이 메리 브랜던은 헨리 7세의 재무장관인 존 레딩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