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노 몬도니코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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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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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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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에밀리아노 몬도니코 Emiliano Mondonico | |
출생 | 1947년 5월 9일 |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크레모나 | ||
사망 | 2018년 5월 29일 (향년 71세) |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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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축구 감독 | |
경력 | <colbgcolor=#eee> 선수 | US 크레모네세 (1966~1968) 토리노 FC (1968~1970) AC 몬차 (1970~1971) 아탈란타 BC (1971~1972) US 크레모네세 (1972~1979) |
감독 | US 크레모네세 유스 (1979~1982) US 크레모네세 (1982~1986) 칼초 코모 (1986~1987) 아탈란타 BC (1987~1990) 토리노 FC (1990~1994) 아탈란타 BC (1994~1998) 토리노 FC (1998~2000) SSC 나폴리 (2000~2001) 코센차 칼초 (2001~2002) 코센차 칼초 (2002~2003) ACF 피오렌티나 (2004) UC 알비노레페 (2006~2007) US 크레모네세 (2007~2008) US 크레모네세 (2008~2009) UC 알비노레페 (2009~2011) UC 알비노레페 (2011) 노바라 칼초 (2012)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감독으로서 다섯 차례 (크레모네세 1983-84, 아탈란타 1987-88, 1994-95, 토리노 1998-99, 피오렌티나 2003-04)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어 역대 공동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크레모네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했고, 토리노와 아탈란타 등 1부 리그에서는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며 후보에 머물렀다.3. 감독 경력
은퇴 직후 크레모네세 유스 감독으로 커리어 2막을 개시하여 1982년 1군 감독으로 영전한다. 83-84 시즌 54년 만의 세리에 A 승격에 성공하지만 잔류에는 실패한다. 86-87 시즌 세리에 A 코모에 취임하여 리그 10위를 기록했고 87-88 시즌 세리에 B 아탈란타 감독으로 부임해 첫 시즌 승격을 이룩한다. 승격팀 아탈란타를 곧장 중상위권 구단으로 안착시켜 컵위너스컵과 UEFA컵 진출로 영도하였고, 특히 컵위너스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메헬렌을 꺾고 결승까지 오르지만 아약스에 가로막혀 패퇴한다.90-91 시즌 갓 승격한 명가 토리노로 적을 옮겨 첫해에 5위를 차지하고 UEFA컵 진출권을 따낸다. 두 번째 시즌 리그에서는 3위, UEFA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무너뜨리며 결승에 올랐으나 이번에도 아약스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문다. 이어진 92-93 시즌에는 리그 9위로 주춤했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22년 만의 우승에 성공한다.[1] 이로써 재차 컵위너스컵 출전권을 획득하였으며 93-94 시즌 대회 8강에서 아스날에 탈락하고 리그 8위를 기록한 뒤 토리노를 떠난다.
1994년 아탈란타로 복귀해 다시금 세리에 A 승격을 달성하고 95-96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차지한다. 98-99 시즌 토리노로 돌아와 이번에도 세리에 A로 승격하지만 이번에는 곧장 강등되며 장기 집권에 실패한다.
나폴리와 코센차를 거쳐 2004년 피오렌티나에 중도 부임하여 다섯 번째 승격의 위업을 이루었으나 구단과의 마찰로 이내 경질된다. 이후 세리에 B 알비노레페와 크레모네세를 오가다 2012년 1월 노바라에 소방수로 투입되며 7년 만에 최상위 무대를 밟는다. 노바라에서 1승 2무 3패를 기록하고 해임된 뒤로는 현장을 떠나 해설가와 방송 패널 등으로 활동했고, 2018년 3월 29일 암 투병 중 사망하였다.
[1] 이는 현재까지도 토리노의 마지막 트로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