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4 02:39:01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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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바이 젠베코프 사디르 자파로프 }}}}}}}}}}}}

키르기스스탄 제4대 대통령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 | Almazbek Atambayev
파일:알베즈베크 아탐바예프.jpg
<colbgcolor=#E8112D><colcolor=#ffff00> 본명 알마즈벡 샤르셴 울루 아탐바예프
Алмазбек Шаршен уулу Атамбаев[1]
출생 1956년 9월 17일 ([age(1956-09-17)]세)
파일:소련 국기.svg 소비에트 연방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라산
직업 정치인
배우자 라이샤 아탐바예바 (Раиса Атамбаева)
정치경력 키르키스스탄 총리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재임기간 2011년 12월 1일 ~ 2017년 11월 24일
정당 [[사회민주당(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사회민주당
]][당원권정지]
종교 이슬람
신체 175cm, 68kg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2.2. 대통령 재임2.3. 퇴임 이후

1. 개요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는 키르기스스탄의 전 총리이자 제4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1956년 키르기스스탄 북부 추이주 보로실롭스키 군(현 으슥아타 군) 아라샨에서 태어났다. 1980년 모스크바 경영대학에서 엔지니어링 및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아 공산당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아탐바예프는 리서치 및 프로덕션 회사인 포럼을 경영하였다. 그는 2000년대에 키르기스스탄 상위 100대 부자에 포함되었다#.

아탐바예프는 1995년 총선에서 최고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2000년엔 낙선하였다. 2000년 대선에서 그는 사회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6.2%를 득표하였다. 2005년 아카예프 정부에 대항해 일어난 튤립 혁명 때 그는 반정부 운동의 지도자 중 하나였고, 이후 바키예프 정부에서 산업통상관광부 장관(2005-2006년)과 총리(2007년)를 역임하였다.

2009년 대선 당시 아탐바예프는 사회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하였으나 8.5% 득표율로 낙선했다. 아탐바예프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을 문제삼으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집회를 열었다#.

2010년 4월 바키예프가 2차 키르기스스탄 혁명으로 축출된 이후, 아탐바예프는 오툰바예바가 구성한 임시 정부에서 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그해 10월 아탐바예프는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최고회의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2월 연정이 구성됨에 따라 다시 총리직에 선출되었다.

2.2. 대통령 재임

2011년 치러진 대선에서 아탐바예프는 63.8%를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선거 결과 그는 북부 지방에서 유효표의 87.1%에 달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남부 지방에서 받은 득표율은 32.2%로 다소 낮았다.

아탐바예프는 2011년 대선에서 마나스 국제공항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공약했다#. 마나스 기지는 러시아의 압력 및 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부정부패 사건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당선 초에는 더 나은 협상 조건을 위한 카드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2014년 최종적으로 마나스 공군기지는 폐쇄되었다#.

한편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몸살을 앓았는데, 아탐바예프 정부는 보다 투명한 선거 진행을 위해 대한민국의 광학 판독 개표 장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자개표와 수개표를 병행하게 되었다#. #. 이후 치러진 2017년과 2020년 선거 당시 부정을 고발한 클룹(Kloop) 지는 시스템 도입으로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가 근절되진 못했지만 병행 개표 실시에 따라 선거 결과를 직접 조작하는 행위는 방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아탐바예프가 집권했을 당시 총리는 레스푸블리카 소속의 외뮈르벡 바바노프(Өмүрбек Бабанов)였는데, 2012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연정이 붕괴된 이후 카라셰프 대행을 거쳐 잔퇴뢰 사트발드예프(Жантөрө Сатыбалдиев)가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사트발드예프 총리도 쿰퇴르 금광 국유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3]으로 홍역을 치렀고, 2014년 연정이 다시 무너지면서 다시 오토르바예프 대행 체제가 수립되었다.

2015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전체 의석 120석 중 38석을 차지해 1당이 되었고, 키르기스스탄당과 외뉘귀-진보당, 아타메켄과 함께 테미르 사리예프(Темир Сариев)를 총리로 하는 연정이 구성되었다#. 선거 결과는 OSCE에 의해 비교적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6년 사리예프 총리가 사임한 이후, 같은 사회민주당의 소론바이 젠베코프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2016년 12월 키르기스스탄 총리 권한 강화 개헌안 투표가 80%의 득표율로 가결되었다. 야권에서는 2017년 12월 1일에 임기가 끝나는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서 헌법을 고치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으나 여권에서는 이러한 헌법개정안이 의회의 권한과 정부 부처 간 견제균형 기능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임기 동안 그는 언론과 이런저런 충돌을 빚었으며, 2017년 사민당 및 검찰이 아탐바예프를 비판한 24.kg 통신사와 라디오 아자특(Radio Azattyk)·프로미디어 등의 언론사를 고소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고려인 출신 알렉산드르 김이 운영하던 키르기스스탄 주요 신문 베체르니 비슈케크(Вечерний Бишкек)도 2015년 정부의 소송 대상이 되었으며 소유주가 바뀌기도 하였다#.

2017년 12월 1일에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퇴임 뒤에는 의회 의장이나 국무총리도 맡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2017년 11월 24일 예정되었던 취임일 한주 앞 당겨 6년동안 재임하였던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퇴임하였다.

2.3. 퇴임 이후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고, 젠베코프가 54.7%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내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는 정부 구성 문제를 두고 불화가 이어졌고, 2018년부터 젠베코프는 보안 부처 및 검찰 등에서 아탐바예프 측 인사들을 몰아내는 등 점차 전임자와 관계를 끊기 시작했다.

2019년 8월 8일 아탐바예프는 부패 혐의로 보안 당국에 체포되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전날 특수부대원들을 투입해서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체포를 시도했다 지지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밀려 퇴각했으나 이날 다시 체포작전을 펼쳐서 그를 연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약 20km 떨어진 코이-타시 마을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머물다 체포됐다. 보도에 따르면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진영 관계자는 이날 오후(현지시간) 타스 통신에 "전 대통령이 보안당국 요원들에 항복했으며 그가 자택에서 끌려나갔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특수부대원들간에 약간의 몸싸움마찰이 있었으며 추가로 몰려든 양측의 충돌로 인애 양측에서 많은 인원이 부상당했다.

보안 당국과 경찰은 아탐바예프를 강제 연행한 것은 그가 범죄조직 두목 아지즈 바투카예프 불법 석방 사건과 관련한 수사당국의 증인 출석 요구를 세 차례나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는 범죄조직 두목을 불법적으로 석방한 사건의 개입 이외에 수도인 비슈케크 열병합발전소를 보수하는 사업과 관련된 부정, 발전소에 대한 불법적인 석탄 공급, 불법적인 택지 수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현지 수사당국과 키르기스스탄 경찰청은 밝혔다고 한다. 이에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는 바투카예프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상황이었으며,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측 변호인도 "검찰이 아탐바예프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와 대법원은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면책특권과 전직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020년 6월 아탐바예프는 재판에서 징역 1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다.부패 조사 중 체포 기사 징역형 선고 기사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이후 다시 부정 선거 시비로 대규모 집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사임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하였는데, 아탐바예프 역시 시위대들에 의해 석방되었으나 며칠 뒤 국가보안국에 의해 다시 체포되었다# 2023년 대법원은 아탐바예프에 대한 선고를 취소하고 그의 사건을 재심에 붙였으며, 아탐바예프는 치료를 위해 일시 석방되었다#. 2025년 법원은 다시 바투카예프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형을 선고하지는 않았다#.
[1] 러시아식 이름은 알마즈베크 샤르셰노비치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Шаршенович Атамбаев).[당원권정지] [3] 후에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이 되는 사디르 자파로프가 캐나다 소유 금광의 국유화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