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2 21:15:33

안티오코스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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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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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21대 군주
Antiochus IX Cyzicenus
안티오코스 9세
파일:안티오코스 9세.jpg
<colbgcolor=#000> 출생 미상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사망 기원전 96년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116년 ~ 기원전 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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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안티오코스 9세 키지케노스
Antiochus IX Cyzicenus
가족 안티오코스 7세(아버지)
클레오파트라 테아(어머니)
안티오코스 6세 디오니소스(이부형)[1]
셀레우코스 5세 필로메토르(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 그리포스(이부형)
라오디케(이부누나)[2]
클레오파트라 4세(첫째 부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둘째 부인)
안티오코스 10세 에우세베스(장남)
참전 셀레우코스 내전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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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21대 군주. 별칭 '키지케노스'는 어린 시절 망명생활을 하며 성장한 보스포루스 해협의 키지쿠스 출신임을 뜻한다. 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를 상대로 20년간 내전을 치르다 조카인 셀레우코스 6세와의 전투 도중 전사했다.

2. 생애

제국을 중흥시킬 뻔 했던 안티오코스 7세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장남이자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사남으로 태어났다. 안티오코스 9세만이 둘의 사이의 유일한 자식인지는 불확실한데, 둘 사이에는 각각 안티오코스와 셀레우코스라는 이름의 두 아들과 라오디케라는 이름의 하나 혹은 두 딸이 더 있었다는 설이 있다.

서기 129년 2월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이던 부친이 엑바타나 계곡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한 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수년간 파르티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데메트리오스 2세와 재결합했다. 하지만 그녀는 데메트리오스 2세가 어린 안티오코스 9세를 해칠 걸 우려해 키지쿠스로 보냈다. 이에 사람들은 그에게 '키지쿠스인'이라는 의미로 '키지케노스'(Cyzicenus)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원전 121년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공동왕이었던 삼남 안티오코스 8세를 독살하려고 했다가, 이를 눈치 챈 아들에게 줄 독주를 강제로 먹고 독살당했다. 안티오코스 8세는 어머니가 자신을 먼저 독살하려고, 사냥 갔다가 돌아온 자신에게 독이 든 포도주를 먹이려 했기에, 그 포도주를 대신 먹도록 한 것인데 이 사건을 안티오코스 9세는 귀국 후 자신의 왕위 계승 정당성의 명분으로 삼았다. 기원전 114년, 클레오파트라 4세와 결혼하여 그녀의 재산과 군대를 지원받은 뒤 시리아에 상륙한 후, 멀쩡하게 제국을 다스리면서 정국을 안정화시킨 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기원전 113년 안티오키아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지만, 안티오코스 8세의 반격으로 기원전 112년에 도로 빼앗겼다. 이때 클레오파트라 4세는 안티오키아 외곽의 다프네 신전으로 피신했다. 안티오코스 8세의 부인 트뤼파이나는 클레오파트라 4세의 자매였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며, 동생인 클레오파트라 4세를 붙잡아 처형했다. 기원전 111년, 격노한 안티오코스 9세는 전투 후 붙잡힌 트뤼파이나를 처형했다.

이후 이부형제간의 내전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안티오코스 8세는 안티오키아다마스쿠스를 통치했고, 코엘레-시리아를 점거했다. 그러던 기원전 96년, 안티오코스 8세가 최고 관료였던 헤라클리온의 손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에 안티오코스 9세는 안티오키아와 다마스쿠스를 공략했고, 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의 둘째 부인으로 있었던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와 재혼했다. 그러나 안티오코스 8세의 아들인 셀레우코스 6세가 곧 반격을 가했고, 기원전 96년말 전투 도중 전사했다.


[1]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소생.[2] 이상 3명은 데메트리오스 2세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