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00:42:40

안티오코스 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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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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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29대 군주
Antiochus XIII Asiaticus
안티오코스 13세
파일:안티오코스 13세.jpg
<colbgcolor=#000> 출생 미상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사망 기원전 64년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82년 ~ 기원전 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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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안티오코스 13세 아시아티코스
Antiochus XIII Asiaticus
가족 안티오코스 10세(아버지)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어머니)
프톨레마이오스 11세(이부형)?[1]
셀레우코스 7세(형제)?[2]
참전 아르메니아 전쟁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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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29대 군주.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에 의해 공동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은 시리아 족장에게 살해되었다.

2. 생애

키케로는 기원전 75년 로마에 방문하여 원로원에 출두한 그를 안티오코스 10세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화폐학자 브라이언 크리드는 2002년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와 공동 통치자의 초상화가 새겨진 주화 동전을 찾아낸 뒤, 이 새로 발견된 왕에게 '셀레우코스 7세'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하지만 동전의 상태가 심하게 손상되어 일부 글자를 읽을 수 없기에, '셀레우코스'라는 명칭을 거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는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를 죽인 뒤
"셀레우코스의 후계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사로잡았다."
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른다면, 안티오코스 10세는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와 결혼한 뒤 여러 아들과 딸을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키케로의 언급으로 전해지는 안티오코스 13세 외에 다른 아들들은 문헌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기원전 92년 또는 기원전 88년, 안티오코스 10세는 길르앗의 여왕 라오디케를 도와 파르티아와 대적하던 중 전사했다. 그 후 안티오코스 8세의 또다른 아들 데메트리오스 3세가 안티오키아를 공략하자,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는 자식들과 함께 시리아에서 숨어지냈다. 그녀가 어디에 숨어지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파악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코엘레-시리아의 프톨레마이스 또는 킬리키아로 도주했을 것이다. 그러던 기원전 82년, 안티오코스 8세의 막내 아들 안티오코스 12세나바테아인과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이제 왕좌가 공석이 된 상황에서, 그녀는 아들 안티오코스 13세를 왕으로 선포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통치자로서 동전에 새겨졌는데, 이에 따르면 그녀는 공동 왕이었다.[3]

하지만 당시 셀레우코스 왕조의 옛 영토들은 외세에게 거의 잠식되었다. 안티오키아 일대는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에게 공략되었고, 다마스쿠스 일대는 나바테아의 왕 아레타스 3세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1세기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클레오파트라 셀레네가 시리아를 다스렸다고 기록했다. 아마도 시리아의 몇몇 해안 도시가 그녀와 안티오코스 13세의 통치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75년, 안티오코스 13세는 로마를 방문하여 자신을 셀레우코스의 왕으로 인정하고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기원전 69년,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는 프톨레마이스를 포위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도시는 함락되었지만 루쿨루스의 로마군이 아르메니아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한다. 스트라보에 따르면, 티그라네스 2세는 프톨레마이스에서 사로잡은 여왕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를 셀레우키아에 감금한 뒤 나중에 죽여버렸다고 한다. 티그라네스 2세가 그녀를 죽인 건 그녀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다른 야심가들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루쿨루스가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연전연승하면서 아르메니아의 시리아에서의 영향력이 박탈된 뒤, 안티오키아 시민들은 안티오코스 7세 계열의 안티오코스 13세를 왕으로 추대했고, 루쿨루스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원전 65년 데메트리오스 2세 계열의 필리포스 2세 필로로마이오스가 아랍 부족들의 도움을 받아 왕을 칭하면서 또다시 내전이 벌어졌다.

기원전 64년, 폼페이우스가 시리아에 당도했다. 그와 필리포스 2세 모두 폼페이우스에게 접근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영역을 로마 공화국의 속주로 삼기로 결정했고, 안티오코스 13세를 폐위했다. 이후 시리아 족장 삼프시세라무스 1세가 그를 죽였는데,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소생. 어머니가 분명하지 않은데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2]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3] 그녀는 그러면서 아들 안티오코스 13세의 공동 왕 지위마저도 기원전 75년까지 섭정하여 사실상 단독 통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