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4 18:00:16

아바스 힐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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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압바스 힐미 파샤
عباس حلمي الأول
Abbas Helmy I
파일:아바스 힐미.jpg
출생 1812년 7월 1일
오스만 제국 제다
재위기간 이집트 케디브
1848년 11월 10일 ~ 1854년 7월 13일
사망 1854년 7월 13일 (향년 42세)
이집트 속주 반하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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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3대 케디브. 무함마드 알리의 차남 투순 파샤의 아들로, 부친 및 조부와 달리 근대화를 멈추고 아랍 종마 육성에만 신경 쓴 암군으로 평가된다. 그는 영국의 수에즈 운하 건설 제안 등 외부 자본의 투자를 거부했고,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크림 전쟁에 돌입하자 5만에 달하는 병력과 전함 및 무기를 지원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다만 1854년에 별장에서 하인들에게 암살되었다.

2. 생애

1812년, 무함마드 알리의 차남인 부친 투순 파샤가 디리야 토후국을 정벌하던 중에 히자즈의 항구 도시 제다에서 태어났다. 다만 투순 파샤는 1816년에 병사했고, 이후 백부 이브라힘 파샤의 손에 길러졌다. 막 성년이 된 1830년대에 아바스는 이브라힘 파샤를 따라 시리아 원정에 참여했다. 1848년 7월, 조부 무함마드 알리가 정신병으로 권좌를 이브라힘 파샤에 넘겼으나 후자 역시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불과 4달 후 이브라힘 파샤가 사망하자 아바스는 36세의 나이로 이집트와 수단의 왈리 (본래 총독이지만 당시 이집트에서는 사실상 군주)에 즉위했다. 매우 활동적이고 유능했던 조부와 부친 세대와 달리 아바스는 비교적 정적이고 향락을 즐겼던 아바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궁중에서 보냈다. 그는 선대가 이룩한 독점 무역 체제를 포기했고, 학교와 공장들을 여럿 폐쇄했으며 군대의 수를 9천까지 줄였다.

또한 그는 나일 델타의 댐 건설을 중단했고, 유럽 국가들의 투자를 거부하며 수에즈 운하 건설을 반대했다. 이로써 유럽에 대한 옥수수 수출이 감소했고, 이집트의 유럽인 체류자 수도 1850년에는 3천 수준으로 줄었다.[1] 운하 건설 등도 중단하며 아무 사업도 벌이려 하지 않던 그였지만 영국의 압박 및 오스만 제국에 대한 외교적 지원 약속으로 알렉산드리아카이로 간의 철도 건설만은 허가했다. 그리고 크림 전쟁 시에 아바스는 오스만 측에 전함 12척, 병사 1만 9천명, 대포 72문을 지원해주었다. 그는 군대 징집을 위해 시나이 반도로 향해 엘토르에서 아카바까지 방문하며 현지 베두인 부족장들을 만났고, 주로 기병들을 모았다. 전쟁 말엽인 1853년에 이집트 지원군의 수는 5만으로 늘어났다. 아바스의 유일한 취미는 조부가 시작한 아랍 종마 육성이었는데, 23세부터 그 담당자로 지정되었다.

그는 네지드의 명마를 얻기 위해 네지드 토후국의 2대 군주 파이살 빈 투르키를 카이로의 감옥에서 풀어주었다는 혐의를 받을 정도이다. 즉위 후에도 아바스는 아랍 종마들을 모아 혈통을 기록했고, 이는 지금까지 남아 세계 각지의 경주마들의 혈통 파악에 도움을 준다. 아바스는 세 곳에 거대한 마구간을 세웠다. 여기에 백만 프랑을 들여 건설한 종마 농장에는 베두인들을 고용해 말을 돌보게 했고, 혈통 정보를 제공받았다. 한 종마 농장에서는 망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 3백 마리의 암낙타를 기르기도 했다. 다만 말보다 사람을 함부로 다루었던 아바스는 말굽 관리를 잘못한 마부의 발에 달군 말굽을 박게 하는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던 1854년 7월, 아바스는 반하 (벤하)의 별궁에서 두 명의 하인들에게 암살되었다. 사후 그보다 어린 숙부 사이드 파샤가 계승했고, 말들은 어린 아들 이브라힘이 물려받았다.[2]


[1] 그의 사후 다시 늘어 1850년에는 9만, 1900년에는 20만에 이른다[2] 이브라힘 일하미 파샤는 말에 별 관심이 없어 모두 기증하거나 경매에 부쳐 처분했다. 그러다 1861년에 먼 친척인 알리 파샤 셰리프가 40여 마리를 구매해 다시 종마 사업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