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30 09:25:33

심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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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감자골 제명 사태 이후 해당 방송국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므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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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 · 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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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3330,#373330><colcolor=#fff> 심형래
沈炯來|Shim Hyungrae
파일:심형래.jpg
출생 1958년 2월 21일[1] ([age(1958-02-21)]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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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청송 심씨 (靑松 沈氏)[2]
신체 172cm|75kg[3]B형[4]
가족 아버지 심승두(1912년 ~ 1978년), 어머니 이용녀
형, 누나 4명, 여동생
딸 심은지
학력 서울영등포국민학교 (졸업)
영도중학교 (졸업)
여의도고등학교 (졸업)[5]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셉)
데뷔 1982년 제1회 KBS 개그 콘테스트 동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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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생애4. 성격5. 논란 및 사건 사고6. 출연작 목록
6.1. 지상파6.2. 위성/케이블6.3. 영화
6.3.1. 보류/무산된 작품
7. 수상
7.1. CF
8. 같이 보기9. 참고/관련 자료10. 여담
10.1. 망언10.2. 영화 감독으로서의 문제점
11.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이자 배우, 그리고 영화감독이자 영화 제작자.

1980년대~19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특히 영구 캐릭터가 확실하게 입지전적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영화 제작자로 전향하여 SF 영화 제작에 투신했으나,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서는 수많은 논란들에 휩싸이고 몰락하며 영화에서는 대실패를 맛보고 그와 함께 본인의 이미지도 깎이는 수모를 당했다.

2018년부터 마당놀이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였으며, 2021년에 시작한 요식업 사업도 전국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둘 정도로 성공하여 어느 정도 폼과 평판을 회복한 상태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영구 캐릭터에 의존하기보단 코미디언이자 사업가인 심형래 본인의 역량으로써 새롭게 검증 받아야 할 입장에 있다.

2. 특징

개그계와 영화계의 전설의 바보. 전자바보 연기로 전설이 된 대희극인임을 뜻하고, 후자진짜로 레전드급 바보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바보 흉내내서 번 돈, 바보 짓으로 날렸다."라는 말이 있다.

심형래는 전성기가 지난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를 알고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역대 최고 코미디언이라는 말에 반박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다.[6] 영화배우로서 재능도 괜찮아서 많은 영화를 흥행시키기까지 했다. 어느 정도 한국이 기틀이 잡힌 1980년대 이후 개그맨들 가운데, 해외 인기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가장 인기의 고점이 높았던 사람은 심형래다. TV 프로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영구 등의 캐릭터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영화라는 장르적 한계나 비판은 있지만 영화로서도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뢰매 1편은 당대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라 제대로 된 추산이 불가능했지만, 제작사에서의 발표만으로도 387만, 어림잡아 셈한 것을 따질 때 1000만은 가볍게 넘고 최대 2000만까지로 추산되기도 한다. 우뢰매가 다 흥행한 건 아니지만 9편까지 나오고 영구와 땡칠이 등 수많은 흥행영화까지 포함하면, 1980년대 이후 개그맨 가운데 심형래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넘는 개그맨은 없다.[7] 이 당시에 세웠던 기록들은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20% 남직한 1990년대 침체기에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는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 낡은 애국 마케팅[8],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문화적 코드,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플레이, 영화와 영화 제작 기술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콘텐츠 분야에 대한 지식과 개념의 심한 결여, 말만 번지르하게 내뱉는 언행불일치를 통해 제작역량에 비해 돈을 마구 쓰는 영화 뿐만 아니라 온갖 연줄과 인맥을 동원한 부정한 수법과 고용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 월급 체불하여 사복을 채우는 등[9] 그야말로 한국 문화 산업에 안 좋은 선례가 된 흑역사를 남겼다. 개그맨과 영화 감독으로서 행보가 명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이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심형래/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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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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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심형래/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심형래/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성격

데뷔 시절부터 개그맨 동료들이 무시하던 바보 연기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인기를 얻은 직후 <심형래 코믹 캐롤>을 발매하여 대한민국 코미디 앨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는 등 레전드 개그맨으로서 활동한 것이 독이 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밀어붙이려는 고집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히 강한 인물이다.

자신감은 좋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깎아먹는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감이 너무 과한 인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믿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을 회의하는 능력도 중요한 법.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행보로 부족한 결과물에 굴욕을 받는다. 결과물만 부족했다면 그나마 옹호를 받았을 것. 이제껏 했던 패기 넘치는 발언들이 죄다 망언화되었는데, 어찌나 많은지 본 나무위키 내부에서조차 따로 문서로 편성될 정도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심형래/망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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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심형래/망언#s-|]]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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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심형래/망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못하니까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절차와 과정 부분이 자신에게 생략되어 있다. 일례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전작업이 필요하고 자신의 역량이 어떤 수준인지부터 간파한 다음 거기에 맞게 영화를 촬영해야 하지만, 심형래는 분수에 맞지 않는 너무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자기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 안 하고 자신의 주특기인 저예산 코미디 영화, 어린이 영화를 찍는 대신에 수백억대 제작비가 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무리하게 제작했다가 말아먹었다. 대표적으로 D-WAR. 영화를 촬영하려면 시나리오가 뼈대가 되고 CG는 그 시나리오라는 뼈대에 입히는 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알고리즘도 간과하면서 무조건적인 자신감으로 뛰어들었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가 지금 같은 쪽박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된다'만 있을 뿐 '어떻게 해야 한다'가 없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보면 유명한 작품을 자기 영화와 비교하며 평가 절하하거나 다른 영화들을 인정하지 않고 혹평하는 경우가 많다. 심형래의 영화철학에서 좋은 영화란 돈을 많이 번 영화다. 본인 기준을 갖다 들이댄다 손치더라도 보통 심형래가 평가절하한 영화들은 세간의 평가는 뒤로 하더라도 상업적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들이기에 손익분기점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는 심형래 영화보다 좋은 영화들이다. 예를 스파이더맨 3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다못해 그런 대작들을 들이받는 게 아니라 흥행이나 평가 둘 중 하나에서 완전히 실패했거나 아예 둘 다 잡지 못한 작품 등 실제로 망한 영화들만 가지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하고 그런 대작들은 그래도 인정해주면서 페이스 조절을 했으면 전문가 티를 내는 엉터리라는 비아냥은 좀 들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비참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심형래의 인터뷰를 보면
  • 용가리: 티라노의 발톱은 이런 게 힘들어서 뭣 때문에 안 됐다. 이번 용가리는 다르다.
  • 디워: 용가리 때는 이런 거 때문에 힘들었다. 미국에서 내가 영어를 몰라서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이번 디워는 다르다.
  • 디워2: 디워 때는 처음 미국에서 촬영해서 문화가 달라 힘들었다. 라스트 갓파더는 간섭하는 목소리가 많아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디워2는 다르다, 기대해도 좋다.

이런 변명이 반복된다.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하는 식이다.

인터뷰를 가만히 보면 자신의 영화에 무슨 문제가 있고, 왜 사람들이 비판하는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행적들을 줄줄이 보인다. 영화에는 문제가 없는데 단지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음해하고 비판하고 평가절하한다며 왜 내 영화에만 그러냐며 억울해 하고, 흥행실패나 결과물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하기 바쁘다. 진지하고 냉철한 자기반성이나 피드백을 기대하기 힘든 성격이다. 용가리나 디워나 라스트 갓파더나 플롯의 허술함은 그대로이고 발전이 없음을 보면, 사실 냉철한 자기반성과 노력을 해도 좋은 작품이 나올까 말까인데 말이다.

영화제작 이후의 성격은 상술된 내용과 같지만 개그맨 전성기 시절엔 전형적인 타고난 희극인 성격이었다. 전두환 정권이던 신인시절에는 희극인 축구모임에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갑자기 여러명 나타나서 상당수의 개그맨 선배들을 마약혐의로 마약검사[10]하겠다고 찾아다녔는데, 후보선수로 벤치에 있던 심형래는 검찰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만 듣고 검찰청 행사 섭외를 하러 온 줄 알고 수사관을 붙잡고 "그 사람 말고 제가 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정신나간 놈인줄 알고 피했다는데, 심형래는 "제가 다 아는데 제가 가면 안될까요."라면서 따라다니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행사출연료를 받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심형래의 발언 중 많은 부분은 아마도 그가 개그맨의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의 언행은 심한 허풍이거나 과장, 거짓말이 많지만 사실 개그맨들은 방송에 나와서 다 허풍을 치고 과장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웃기려고 한다. 심형래의 발언도 가만히 보면 사실 개그맨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발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 제작자, 감독으로서의 생활과 정체성이라면 당연히 영화 제작자와 감독으로서의 언행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 역시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맨 비트 다케시를 분리하고 있는데 심형래는 이런 부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고 잘못되었던 것이다.

개그를 하던 무렵에는 장인정신이 있어서 항상 코디나 스타일리스트를 쓰지 않고 본인이 얼굴 메이크업을 다 했다고 한다. 바보연기용 무대 의상도 까다롭게 본인이 다 고르다 못해 방송국 소품실에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면 자신이 동대문이나 종로 등지에서 사 와서 적당히 자르고 찢어서 리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같은 코너의 조단역 후배가 분장을 마음에 안 들게 하면 본인이 다 해주면서 가르치기도 했을 만큼 의외로 꼼꼼했다고 하며, 바보연기용 소품테스트도 까다로웠다고 한다. 다 직접 써보고 음향과 비주얼을 고려해서 골랐다고 한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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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연작 목록

6.1. 지상파

KBS 공채 코미디언 출신답게 지상파 출연작의 대부분이 K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MBC에서는 출연 기록이 없다.
  • 유머극장 (KBS2)
    • 하룡서당 (1984)
  • 즐거운 소극장 (KBS2)
  • 유머 1번지 (KBS2)
    • 수평선은 말이 없다 (1986) - 임하룡이 후크선장으로 출연하고 심형래는 임하룡 부하로 나온다.
    • 변방의 북소리 (1986~1987)
    • 서기 988년 (1988)
    • 영구야 영구야 (1988~1990)
    • 충무로 차차차 (1990)
    •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1990)
    • 내일은 챔피언 (1990~1991)
    •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 (1991)
    • 감초의전방 (1991)
    • 별당아씨 (1992)
    • 심가이버 (1992)
  • 명랑 소극장 (KBS2)
  • 쇼 비디오 자키 (KBS1/KBS2): 김광한에 이어 2대 메인 MC를 맡기도 했다.
    • 동물의 왕국 (1987~1989)
    • 내 사랑 펭귄 (1989)
    • 철 없는 가족 (1989) - 이 코너에서는 심형래가 임하룡의 아내 역할로 직접 여장을 하여 충격을 주었던 코너다.
    • 벌레들의 합창 (1989~1990)
    • 병사 심틀러 (1990)
  • 코미디 하이웨이 (KBS2)
  • 한바탕 웃음으로 (KBS2)
    • 꿈의 대화 (1991)
    • 로보트 망치 (1992~1993)
    • 왈순할매 (1993)
  • 코미디 전망대 (SBS)
  • 웃으며 삽시다 (SBS)
  • 웃음은 행복을 싣고 (KBS2)
    • 내 사랑 지지 (1994)
    • 이어도 분교[11] (1994~1995)
  • 코미디 일번지 (KBS2)
  • 쇼 행운열차 (KBS2)
  • 개그콘서트 (KBS2)
  • 설특집 심형래쇼 (KBS2, 2011) - 심형래의 코미디언 데뷔 3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단발성 코미디 프로그램. 다만 당시 개봉했던 라스트 갓파더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었다.[12]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KBS2, 2022)

6.2. 위성/케이블

6.3. 영화

심형래 감독 영화 작품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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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 중반
{{{#!wiki style="margin: -15px -10px" 영구와 공룡 쭈쭈 티라노의 발톱
핑크빛 깡통 }}}
1990년대 중 · 후반
파워 킹 드래곤 투카 용가리
2000년대 이후 · 현재
D-WAR 라스트 갓파더 }}}}}}}}}

※ 감독 겸 배우인 경우는 따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 각설이 품바타령 (1984)
  • 철부지 (1985)
  • 작년에 왔던 각설이 (1985)
  • 심형래의 탐정큐 (1985)
  • 우뢰매 시리즈 - 6편을 제외한 시리즈 주연배우로 출연
    • 외계에서 온 우뢰매 (1986)
    • 외계에서 온 우뢰매 2 (1986)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전격 3(쓰리) 작전 (1987)
    • 우뢰매 4탄 - 썬더 V 출동 (1987)
    • 뉴머신 우뢰매 5 (1988)
    • 심형래의 쫄병군단 (1990)
    • 돌아온 우뢰매 7 (1992)
    • 에스퍼맨과 우뢰매 8 (1993, 렌탈비디오용)
    • 무적의 파이터 우뢰매 (1993, 렌탈비디오용)
  • 여로 (1986)
  • 따귀일곱대 (1987) - 감독 남기남, 주연 심형래, 백일섭[13]
  • 슈퍼 홍길동 1 (1988)
  • 스파크맨 (1988)
  •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 전 시리즈 주연배우로 출연
  • 영구와 땡칠이 (1989)
  • 영구와 땡칠이 2: 소림사에 가다 (1989)
  • 영구와 땡칠이 3: 영구람보 (1990)
  • 별난 두 영웅 (1990) - 감독 남기남, 주연 심형래, 박미선[14]
  • 영구와 땡칠이 4: 홍콩할매귀신 (1991)
  • 포졸 형래와 벌레 삼총사 (1990)
  • 흑기사 형래와 광대들 (1990)
  • 영구와 황금박쥐 (1991)
  • 영구 홀로 집에 (1992)
  • 영구와 부시맨 (1992)
  •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 (1992) - 감독, 주연, 배드엔딩[15]
  • 사부님 사부님 (1990)
  • 심형래와 괴도루팡 (1990)
  • 황금탈 형래와 땡초도사 (1990)
  • 드래곤볼 (1990) - 심형래가 무천도사로 등장한다.[16]
  • 각시탈 형래와 깨비깨비도깨비 (1990)
  • 가보면 알꺼야 (1990)
  • 영구와 꼬마삼총사 (1991)
  • 돈키호테 형래와 산초특공대 (1991)
  • 007 폭소대작전 (1991) - 007 시리즈의 패러디물로, 심형래와 초등학생들이 우연히 보물찾기 지도를 발견하여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
  • 칙칙이의 내일은 참피온 (1991) - 감독 전유성, 주연 심형래
  • 별당 형래와 여의주 작전 (1992)
  • 골목대장 형래와 검은 망또 (1992)
  • 영구와 부시맨 (1992)
  • 영구와 공룡 쭈쭈 (1993) - 감독
  • 티라노의 발톱 (1994) - 감독
  • 핑크빛 깡통[17] (1994) - 감독
  • 심비홍 (1994) - 감독 장동일, 주연 심형래[18]
  • 할매캅 (1994)
  •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1994) - 감독
  • 파워 킹 (1995) - 감독
  • 드래곤 투카 (1996) - 감독
  • 용가리 (1999) - 감독
  • 디 워 (2007) - 감독
  • 라스트 갓파더 (2010) - 감독
  • 써니 (2011) - 특별출연

6.3.1. 보류/무산된 작품

7. 수상

<rowcolor=#fff> 수상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88년
12월 29일 KBS 코미디대상 대상 유머 1번지
1989년
12월 28일 KBS 코미디대상 작품상 코미디 하이웨이
1990년
12월 28일 KBS 코미디대상 남자 연기상 쇼 비디오 자키
1991년
9월 3일 한국방송대상 남자 코미디언상 쇼 비디오 자키
1995년
12월 29일 KBS 코미디 대축제 NG 대왕상 코미디 1번지
2007년
11월 23일 청룡영화상 최다관객상 D-WAR
12월 1일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각효과상

7.1. CF

<rowcolor=#fff> 연도 기업명 브랜드명 비고
1984년 비락식품 비락 스프, 카레, 스튜 영상
팔도 팔도라면 영상
팔도 비빔면 영상
해물탕면 영상
1985년 모두모두 육개장 영상
가락면 영상
팔도강산 짬뽕 영상
노다지 영상
Q라면 영상
간짜장 영상
1986년 도시락 영상
뚜껑면 영상
도시락,뚜껑면 영상
팔도 스낵 영상
하마코 영상
남태평양 참치스낵 영상
1987년 참치깡 영상
롯데제과 샤르망 영상
붐비나 영상
블랙죠 영상
1988년 월드콘 영상
쌕쌕바 영상
부루진 땅콩캔디 영상
꼬깔바 영상
샤르망 영상
롯데햄/롯데냉동 팔도만두 영상
크림고로케 영상
1989년 롯데제과 롯데껌 영상
죠스바 영상
빼빼로 영상
월드콘 영상
샤르망 영상
여의도극장 영구와 땡칠이 영상
1990년 아티스 영구와 파리 영상
종근당 젤콤 영상
롯데제과 조우카 크랙카 영상
타임머신 영상
월드콘 영상
명문제약 키미테 영상
롯데제과 따봉바 영상
노스트레스 껌 영상
노타임 껌,블랙블랙 껌 영상
회오리바 영상
마이크로 안전연필샤프 영상
땡칠이 영상
대우전자 대우 붐붐 비디오 영상
1991년 아티스 드래곤볼 영상
챔피온 영상
롯데제과 월드콘 영상
소나타 초코바 영상
양갱바 영상
1992년 종근당 젤콤 영상
롯데제과 팥따봉 영상
1993년 컴앤씨 매직아트 영상
1994년 매직믹스 영상
매직아트 영상
매직스케치 영상
매직믹스 영상
종근당 젤콤 영상
1995년 맘모스 복싱맨 영상
1999년 공보실 신 지식인 영상
하림 용가리 치킨 영상
월드링 뜨시락 영상
종근당 자황 영상
손오공 용가리 영상
TA탑스무역 용가리 용나리 영상
2011년 맘스터치 치킨&버거 영상
2020년 용가리종합물류 용가리 퀵 영상
맘마먹자 영구포차 영상
2023년 논산가구단지 가구짱 영상

심형래의 주장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에 CF만 100편을 찍었다고 말한 바가 있는데, 이는 과장된 수치로 보여진다. 전성기 시절이었던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까지 심형래가 촬영한 CF 갯수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만 고작 53편에 그친다. 그래도 그 당시에 활동하던 코미디언들 중 CF는 가장 많이 찍었다.

8. 같이 보기

9. 참고/관련 자료

  • 저서
    • 심형래의 진짜 신나는 도전 - 21세기북스새날. 1999.

10. 여담

  • 디시인사이드 설립자인 김유식 대표와 얼굴이 닮았다.[23] 일본 배우인 후지이 미나가 김유식과 찍은 사진을 심형래와 찍었다고 트위터에 올려서 디시에서는 김유식 사진을 보면 심형래로, 심형래 사진을 올리면 김유식이라고 취급한다.[24] 김유식과 닮았다고 평가받는 류제국도 심형래 취급받기도 한다.
  • 이정현의 바꿔 활동 초기에 입은 특이한 의상은 심형래의 영구아트가 제작해줬다.
  • 2021년에는 대구 향토 프랜차이즈 요식업체 삼정코리아가 심형래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후, '홍콩할매불닭발', '영구통닭' 같은 심형래 이름을 이용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 중이다.
  • 환갑이 넘어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평을 듣는데 노화로 인한 안검하수 증상으로 쌍꺼풀 수술과 안면거상술, 눈썹 문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0.1. 망언

"투캅스3 같은 경우 이건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강원도의 힘? 어휴."
1998년, 씨네라인과의 인터뷰. 충무로에서 자신의 영화를 시시하게 본다면서 한다는 말.
물론 투캅스 3가 일단 시리즈들 중에서 가장 망했고 평도 극악이었지만[25] '강원도의 힘'의 감독은 다름 아닌 홍상수다. 홍상수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최고의 작품이며, 청룡영화상 각본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홍상수라는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린 유명한 S급 영화다. 개봉 시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 평론가들이 열광하고 호평했다.

그야말로 심형래는 자신을 너무나 고평가하였다. 게다가 D-WAR에 출연한 배우들은 사실상 영화의 참패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든 역의 제이슨 베어는 한 때에는 할리우드의 유망주였으나, 디 워가 처참하게 망한 이후로는 거의 작품이 없다. 위키백과IMDb에서 검색해보면, 이 배우는 디 워에 출연한 2008년 이후 정말로 망했다. 그 전에는 여러 TV 드라마영화의 배역을 맡으며 점점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희한하게 30대 중반으로 남배우로서 포텐을 터트릴 즈음에 출연한 2008년 이후 주요 작품은 거의 없다. 디 워에 출연하기 전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주역중의 하나인 캐서린 하이글과 사귈정도로 유망한 배우였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다. 오죽하면 IMDB의 게시판에 "제이슨 베어는 스포트라이트를 의도적으로 피하나요?"라고 묻는 팬까지 있을까? #[26] 이는 영화의 초반부에 발연기를 선보인 한국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디 워야말로 여러 배우들의 앞길을 망쳐버린 셈이다. 디 워가 국내에서 흥행할 당시에는 이 배우들의 인터뷰가 많았으나, 지금은 이 배우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도 따위는 하나도 없다.
"용가리는 국적 상관없이 전 세계 관객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가족용 어드벤처 영화입니다. 지난 10년간 SF영화 외길을 걸어온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무척 기뻐요."
"한국 시장은 넣지도 않았어. 한국에서 개봉하기 너무 안 좋아."
애국심 드립만 아니었으면 디 워의 흥행은 어땠을지를 감안하면 배은망덕한 발언이다. 영구 시리즈부터도 이미 애국 마케팅이었고, 디 워에 아리랑을 넣거나 라스트 갓파더에 원더걸스를 넣은 것 등은 이미 충분한 국뽕 마케팅이다. 실제로도 한국 내 수익을 제외하면 심형래표 영화의 수익은 4분의 1 미만으로 떨어진다. 또한 그렇게 맺은 결실은 심형래의 비참한 몰락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기가 찰 부분이다.
"난 내 영화에 절대 우리나라 영화라는 걸 티내지 않아. 사람들이 이게 한국 영화라는 걸 몰라."
정작 디 워 엔딩엔 대놓고 아리랑이 들어있다. 게다가 라스트 갓파더에는 한국의 걸그룹원더걸스도 등장한다. 그리고 애국 마케팅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유명했다. 무릎팍도사 인터뷰 중 눈물. OCN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송지헌과의 인터뷰 중 송지헌이 디워에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의도된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평론가 중에 유지나라고 있지? 난 그 여자 또라이라고 보는데."
유지나가 용가리를 혹평하자 인터뷰에서 한 발언.
유지나는 직업부터가 동국대학교 교수이며, 영화 평론으로 박사까지 받은 사람이다. 심형래는 유지나가 자신을 디스하니까 그냥 유지나의 이름을 걸고 넘어진 것일 뿐이며, 비판의 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즉, 심형래가 유지나를 까는 논지는 그냥 왜 까이는지 이유 따윈 모르고 괜히 까이니까 순간 기분 나쁘고 화나서 욕하는 의미밖엔 없다. 거기에 유지나의 네임밸류(?)를 믿고 까는 것이지 까는 논리 따윈 하나도 없다. 박사 지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혹평 하나 했다고 저런 막말을 했다는 것도 문제다.
"SEGA에서 게임을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국내업체 주고 싶었는데 찾아봐도 없더라구."
세가가 비웃을 소리다. 영화 원작 게임을 개발한단 건 애초에 영화가 제대로 된 명작 혹은 평작급은 된다는 소리인데, 어지간한 중소개발사에 맡기는 것도 아닌 당장 드림캐스트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팔기에 급급했을 게임계의 대기업 세가가 듣보잡 감독의 개봉도 안 한 작품을 무얼 믿고 개발에 투자를 할 것인가? 애당초 그 당시 세가는 굳이 영화 게임을 만들지 않아도 자사의 IP들만으로도 판매량을 견인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던 회사다.
"이번에 메이저 회사하고 직접 계약하지. 폭스, UIP 담당자가 직접 왔어."
알다시피 영화는 참패하고 미국에서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싸구려 DVD로 나왔다.

자서전에서 발췌.나름 멋진 말이긴 한데, 현재의 심형래에게 그닥 어울리는 격언은 아니다.[27] 적어도 용가리 시절에는 제대로 만들려고 어떻게든 기를 썼다. 하지만 라스트 갓파더는 그냥 영구와 땡칠이에 마피아의 옷을 입힌 것일 뿐이며, 동시에 아주 성의 없는 3류 영화다. 그나마 심형래의 어록 중에선 쓸 만한 말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어느 시점부터는 심형래의 아집과 독선을 상징하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일본기타노 다케시도 TV에 나와서는 나처럼 파리, 모기 복장하고 별짓을 다하다가 영화 만들면 그건 그대로 인정해주고 왜 또, 미스터 빈 같은 사람이나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은 작가 대접을 해주면서 왜 내가 뭘 한다고 하면 비웃기부터 하는지 참 이해하기 힘들어요."
2000년 필름 2.0 인터뷰.
그러나 심형래의 발언 취지와 달리 코미디언 출신인 기타노 다케시도 처음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온갖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발전을 거듭하며 금방 작품성과 실력으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본인을 증명하면서 심형래와는 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실 기타노 다케시 또한 그의 초창기 영화를 보면 마치 쿨레쇼프 효과를 보는 듯이 이리저리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숙했던 초기 연출작들의 특징을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으로 발전시키면서도 스스로 매진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대중성과 동시에 평단의 호의를 얻어가며 승승장구하였다. 심형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셈. 기타노 다케시 뿐만 아니라 함께 언급한 찰리 채플린이나 로완 앳킨슨도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이 실례인 것은 매한가지이다.[28]
"하도 새끼들이 드라마가 약하다고 씹어대서 말야. 용가리]]에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거, 나도 인정하고 다시 만들어서 내보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말들이 많냐고. 이렇게 부족한 부분 인정하고 다시 만드는 영화, 세계적으로 다 찾아봐도 없을걸?"
용가리 실패 후 2000년 3월 씨네라인 인터뷰.
기존에 이미 나와있던 작품을 재촬영/재편집을 거쳐 부족한 부분을 다시 만드는 영화를 흔히 감독판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다 찾아보면 수백, 수천편이 나온다. 문제는 용가리는 그렇게 고쳐놓고도 변한 게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명 감독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발전한다.
"용가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미국 비디오 렌탈 시장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며 케이블의 SF채널에도 팔렸다."
실상은 겉만 번지르르한 뻥이다.
"난 일본 영화 안 봐. 이건 내 생각인데, 일본 영화는 사실 별거 아냐."
씨네라인 2000년 3월 인터뷰.
실제로 21세기 이후로 일본 영화가 침체기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심형래의 작품 수준이 미국,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를 가진 일본 영화 시장을 폄하할 수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일본 영화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계 영화사(史)에 끼친 영향이 절대 무시 못할 정도로 크며, 특히 할리우드 영화사(史)를 바꿀 정도였다. 제작위원회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 외 작가주의 성향을 띠는 감독들은 3대 영화제(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매년 출품작으로 선정되고 있으며, 상도 많이 받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에서도 전체 통계를 내면 이를 입증한다. 일본 영화가 침체기 진행 중에도 2008년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굿' 바이: Good&Bye(일본명 : 오쿠리비토)가 외국어 영화상 수상함에 따라 다시 한번 일본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굳이 고전 명작들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고지라 시리즈가메라 시리즈로 대표되는 SF괴수영화의 본고장으로, 영화 제작 초기부터 괴수 관련 영화를 찍어 온 심형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비교하자면 힙합을 하는 가수가 미국 힙합은 별 것 아니라며 깎아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굳이 이 발언 때문에 일본 영화사를 알 필요는 없다. 어느 나라 영화 문화를 두고 말을 했다 해도 이런 발언은 우물 안 개구리의 소음일 뿐이다. 심형래 영화가 진심으로 좋아서 관심 가질 나라도, 시장도 없는 판국임이 현실이기 대문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나체에 지도를 그려 내려가다 엉덩이쪽에 다다른 순간 “이쯤에 가면 끝내주는 계곡이 있다”고 설명하는가 하면, 나체인 여성의 등을 안마하기도 하고, 가슴을 주물럭거리기도 해요. 언뜻 '야한' 에로물을 떠올리겠지만 사실은 내가 펼치는 연기의 일부분이예요. 성추행도 좋은 소재가 되고 있어요. 여조직원의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종기가 났으면 붕대를 감을 것이지 이걸로 둘러쌌냐'고 하면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요. 그리고 '종기가 심해 앞부분까지 고름이 꽉 찬 모양'이라며 여자의 겨가슴을 주물럭거리며 고름을 짜내는 시늉을 하기도 하죠. 세상에는 미친 척하고 성추행하는 남자들이 많잖아요. 그런 사회적 현상을 패러디한 섹스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어요.”
2001년 9월 여성동아에서 "조폭닷컴"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
조폭 닷컴은 심형래가 2002년에 만든 인터넷 영화인데, 보다시피 아무리 좋게 쳐줘도 B급 저질 코미디에 불과한 내용이었는데도 에로물이 아닌 사회 현상 패러디라며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섹스 코미디가 원래 도덕적 기준에서 줄타기를 하는 장르라지만 엄연히 범죄인 성추행을 영구의 바보짓마냥 익살스럽게 그리는 것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D 애니메이션도 있고, 픽사에서 진행하는 영환데 픽사에서 나온 영화하고 지금 테스트 해 놓은 퀄리티하고 비교해 보시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퀄리티가 좋죠."
2005년 3월 딴지일보에서 한 인터뷰
심형래는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이 픽사 애니메이션보다 퀄리티가 높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심형래의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은 고사하고 웬만한 저예산 졸작 영화랑 비교해도 못하다는게 중론이다.
"나는 "You can do it?"[29]이라고 물었을 때에 "No."라고 대답하면 해고했다."
디 워 개봉하기 이전, 2004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심형래 특유의 독선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더니 한국에서도 독선적이었던 심형래는 미국에 가서도 미국 스태프들에게도 독선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말이다. 이게 큰 문제인 것이 간단하게 말했을 때 긍정적으로 보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이렇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어렵고 부당한 요구라고 하더라도 감독인 내가 시키면) 까라면 깔 것이냐?" 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 라고 대답하면 잘랐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뭐든지 다 시켰을 때 자기 말에 이의를 달지 않고 그저 고분고분 들어주는 이들만 곁에 두겠다는 말이 된다.[30] 물론 본인 딴에는 회의적, 부정적, 비관적인 시각을 최대한 지양하고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뛰어드는 자세를 중요시했다는 입장이겠지만 벤처기업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저렇게 했다는 것도 아니고 접근 방법이 너무 잘못된데다가 결과적으로는 상술했듯이 정주영을 비롯한 대기업 창업주들 같은 사람들과는[31]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실패하는 바람에 더욱 확실해지고 말았다. 게다가 저 짧은 질문 자체가 영문법에도 어긋난다. 보통 제대로 된 리더라면 "할 수 있겠나?" 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이유를 묻고 분석해 정말 불가능해서 그런 것인지 저 사람이 너무 도전정신이 없는지를 판단하거나, "그래도 해 보자 결과에 대한 책임은 리더인 내가 질테니" 라며 이끌고 가려 하지 밑도끝도 없이 못합니다. 한마디에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
디워의 미국 배급사는 자기가 제작사로부터 판권을 사서 영화관에 거는 배급사가 아니라 제작사의 수수료를 받고 이를 대행해주는 "배급대행사"다. 출판으로 치면 심형래는 출판사를 못 구해서 자비출판을 한 셈이다. 메이저 배급사가 앞다투어 나설 정도라면 뭐하러 자비출판을 했겠나? 그리고 참고로 지금까지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많은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인 탑건: 매버릭도 5천개에 한참 못 미치는 4,735개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것도 2022년 5월이 되어서다.

탑건 2가 개봉하기 전, 가장 많은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란 타이틀을 기록한 바 있던 라이온 킹 실사판도 5,000개에 한참 못 미치는 4,725개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것도 2019년 7월이 되어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디즈니의 유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상영관 수를 가질 수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5,000개가 되지 않는다. 멀리 안 가도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기생충 역시 미국 내 상영관 수가 2,001개다. 그마저도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은 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러니까 디 워 같이 인지도 없는 오리지널 영화가 5,000개의 극장에서 개봉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정신 나간 얘기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잡을 때에는 충분히 현실적이어야 하며, 그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아바타는 둘 다 전 세계 수익이 28억 달러를 살짝 넘거나 약간 못 미친다. 202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최대 흥행 순위 1, 2위를 다투던 이 두 작품을 합쳐도 80억 달러에 못 미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전 세계 수익은 20억 4538만 8284달러이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 8편의 총 수익은 80억 달러(약 8조 6656억 원)에 가깝다.

전 세계 영화 프랜차이즈 중 가장 거대한 프랜차이즈에서 최대의 흥행을 거둔 영화도 30억 달러를 벌지 못했고 워너브라더스도 시리즈 8편을 제작하고서야 다 합쳐서 누적으로 80억을 벌었으며 어벤져스는 동일 감독이 2편 합쳐 80억 넘길까 말까인데 과연 제작비 대부분을 도박에 처박고 밑에 직원들에게 온갖 횡포를 부려 나가게까지 하는 심형래가 영화 한 편으로 80억을 벌 수 있을까?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하는 마당에?
게다가 정당히 지급해야 할 임금조차 주지 않으려는 사람이 성공했다 한들,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저렇게 선심쓰듯 금전을 베풀지도 미지수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데다 CGI(컴퓨터 가공 영상)가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어서 그렇게 했더니 아홉 달 걸릴 작업을 열흘 만에 끝냈다."

심형래/영화의 문제점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영화를 빨리 만들었다는 건 절대 자랑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건성으로 만들었다는 소리 밖에 안 된다. 대한민국이건 외국이건, 얼마나 재능있고 유명하건 상관 없이 감독과 각본가, 제작자, 스태프, 배우 여럿이 사전 조율부터 촬영 기간 내내 상의를 해가면서 만드는 게 영화다. 특히 영화 한 편 촬영하는데 한 달도 안 걸렸다는 건 제대로 된 각본이나 심도있는 연출과 콘셉트도 없이 배우들 몇명 모아다가 즉석에서 대충 찍은 영화라는 소리나 다름없다.[32]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터미네이터 2를 찍을 때 제작 기간이 고작 1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그 대작을 1년만에 심혈을 기울여 찍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반면 심형래는 그런 수고도 없이 마치 즉석에서 전자레인지팝콘을 튀기듯이 영화를 대충 찍어서 졸작을 만들어놓은 주제에 세계적인 흥행을 바란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 가공 영상이 머릿 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는 발언도 문제가 있는게 진짜 그렇다면 심형래의 정체는 사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나 다름없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2012를 만들 때 심형래처럼 컴퓨터 가공 영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능력이 없어서 프리-비주얼리제이션(Pre-Visualization) 과정을 거치고 영화를 만들었던 게 아니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전문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를 꺼내면 그런 작가 있으면 데려와 보라고 한다. 감독 욕심 내지 말고 제작자로 남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런 감독 있으면 데려와 보라고 한다."

2005년,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알프레드 히치콕은 생전에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마르고 닳도록 강조했다. 쉽게 말해서 관객이 흥미를 느낄,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심형래는 영화계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를 무시한 셈이다. 대중가요에서 작곡이 뭐가 중요하냐는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그리고 감독이면서도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사람들은 할리우드에 널리고 널렸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 J.J. 에이브람스,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표적이다. 충무로의 경우에도 강제규, 강우석, 박찬욱, 류승완 등 영화 감독이면서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33] 반면교사이긴 한데, 심형래의 저 발언대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다세포 소녀이다. 다세포 소녀는 CG라든가 영상미는 끝내주게 좋은 반면 시나리오는 막장이다. 그 영화가 흥행에서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만 봐도 심형래의 이 발언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여담으로 마틴 스코세이지도 최고의 시나리오가 최고의 영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연출이 시나리오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지,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절하하는 발언이 아니다[34].
"반지의 제왕? 그건 애들 장난이지. 반지의 제왕은 들판에서 찍었지만 우리는 LA 한복판에서 찍었어."

배경이나 장소가 어떻든 스토리를 어떻게 진행시키냐가 중요하지 LA 한복판에서 찍었다고 해서 잘 만든 영화가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른 나라로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파리나 일본의 도쿄나 우리나라의 강남에서 찍은 영화의 퀄리티가 총체적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찍으면 무조건 잘 만들어진 영화가 나올 거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당장 저수지의 개들은 스토리가 회상을 제외하면 칙칙한 느낌의 회색빛 창고에서 진행되고, 127시간은 초반과 영화 끝나기 직전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황무지 협곡 아래에서 주인공의 오른팔이 바위에 끼인 상태에서 영화가 흘러가고, 영화 베리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 속 배경만 나오는데 수작 소리 듣는다는 걸 생각해보자. 그리고 저 발언은 사극 계열 영화를 모독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반지의 제왕? 내가 봐도 재미없어. CG(컴퓨터 그래픽) 냄새 팍팍 나. 반지의 제왕은 이거(디 워)랑 게임이 안 돼."

디 워가 반지의 제왕보다 낫다는 말인데, 진지하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게다가 반지의 제왕에서 멋진 화면을 만들어낸 것은 CG 뿐만이 아니라 대규모의 미니어처, 정교한 특수분장, 그리고 뉴질랜드의 자연 풍경이다. 여담이지만, 실미도를 촬영할 때도 여름씬은 국내에서, 겨울씬은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이 정도의 노력도 통찰도 없는 주제에 그저 영상미가 좋은 작품은 무조건 CG라고 박박 우기고 있다. 이후 영화 아바타가 CG를 이용해 멋진 영상미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디 워의 영상미는 그에 발끝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애초에 반지의 제왕 CG를 제작한 업체는 그 유명한 웨타 디지털이며 디 워의 CG가 비빌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니다.

당장 반지의 제왕보다 심형래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을 법한 쥬라기 공원을 생각해 보자. CG를 전면에 사용한 명작 블록버스터로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회자되지만 그만큼 모형 제작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대표적으로 트리케라톱스는 아예 통째로 로봇을 만들었으며, 제작에 사용된 로봇으로 순회전시회도 연 적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지의 제왕은 디 워 따위와는 달리 재미있고 호평이 많은 영화다. 반지의 제왕의 CG는 시간이 지나고 CG 기술력이 발전함에 따라 개봉 당시 같은 임팩트를 주지 못할 수 있겠지만, 반지의 제왕이 가진 이야기의 힘은 죽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35]
"미국빌 게이츠처럼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분명 나 같은 영웅이 필요하지 않나."

아예 본인을 '영웅'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원시의회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봐도 답은 나온다. 빌 게이츠와 비슷한 이들을 한국에서 꼽자면 정주영, 유일한, 박태준 등이 심형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어울린다. 이들은 경영을 잘 했고, 자신의 회사를 업계 1류 브랜드로 키웠으며, 사람들에게 외면받을 제품을 내놓지는 않았다.
"돈 안 되는 은 안 갈 거야.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세계적으로 영화 배급하는 게 더 좋지 않나."

'돈 안 되는'이라는 대목에서부터 심형래가 영화를 상업적으로만 여긴다는 걸 대강 알 수 있다. 칸 영화제는 사실 블록버스터 장르는 많이 안 올라가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블록버스터 영화나 상업 영화여도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 받으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첫 1000만 관객 영화인 한국의 대표적인 상업 영화 괴물은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되었고, 740억 규모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옥자는 무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뿐만 아니라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최고의 상업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또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다.

다시 말해 칸 영화제는 돈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닌 감독의 역량과 실력의 문제이며, 칸 영화제는 간다고 해서 가는 곳이 아닐 뿐더러 가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폄하하거나 영화계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 안 된다고 칸을 깔보기 이전에 심형래가 칸 문턱이라도 밟을 실력은 되냐는 반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참고로 어지간히 명성이 엄청난 배우들조차 칸 영화제에 심사위원이 되는 것은 어려우며, 1970년대와 1980년대 그 20년 동안 전 유럽 최고의 여성 영화배우 인증을 한 바 있는 이자벨 아자니 정도나 되어야 심사위원을 할 수 있는 게 칸 영화제다. 게다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손수 축전을 보낼 정도로 영예로운 곳인데, 심형래의 영화는 그 레벨에 이름 한 글자 내밀기 힘든 수준이다.
"누가 뭐래도 "영화는 짬밥"이야. 많이 오래 해본 사람이 잘 하는 게 당연하지."

심형래가 디 워 2편을 현재까지 계속 찍고 있다고 가정하면 감독 데뷔작 영구와 공룡 쮸쮸가 개봉한 때가 1993년이니 수십 년 이상을 찍고 있는 셈이다. 허나 여전히 실력이 형편없다. 얼마나 오래 찍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동안 얼마나 실력을 키웠는지가 중요하다. 당장 27살에 시민 케인을 찍은 오손 웰스와 영화 활동을 24년째 했던 우베 볼을 비교해봐도 답이 나온다. 실력이야말로 법이자 진리이자 권력이다. 짬밥을 꾸준히 쌓으면 실력이 어느 정도 따라올 순 있을지 몰라도 '모든' 짬밥이 실력이 되는 건 아니다. 국제 사회에서 봐도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를 기준점으로 잡으면 역사가 몇백년에 불과한 미국이 역사가 수천년도 훨씬 넘는 이집트보다 강국이다. 굳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저 발언은 확실히 개소리다. 심지어는 가장 고리타분하고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군대에서조차도 짬밥이 최고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경력 20년 이상에 50살 다된 원사도 이제 군대에 갓 입대한(생도 시절까지 포함해도 길어봤자 4년에 불과한) 20대 중반에 진입하는 소위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며, 얼마나 군에 있었는지 기간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무슨 보직을 수행했느냐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군대에서 부사관주임원사를 해도 기본적인 예우 뿐이지만 장교대대장만 해도 관련 약장을 패용할 수 있다. 그 보수성이 극에 달하는 군대조차 원사가 아무리 유능하고 경력이 화려할지라도 사단장은 커녕 사단 당직사령도 시키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짬밥이 다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내 목표는 앞으로 5년 안에 스필버그 잡는 것 뿐이야. 물론 '상업영화' 쪽에서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필버그는 커녕 그 우베 볼조차도 잡지 못했다. 하다못해 우베 볼의 작품들은 컬트적인 인기와 인지도라도 있지 심형래의 작품들은 그마저도 없다.

스필버그를 5년 안에 잡는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얘기냐면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각종 프랜차이즈 상업 영화와 작가주의적 예술 영화를 제작하면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능가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이후에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란, 쿠엔틴 타란티노, 등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아 큰 성공을 이룬 감독은 많지만 존 포드, 알프레드 히치콕에 비견될 만한 커리어를 쌓은 스필버그가 현대 영화사에 미친 영향과 입지력에 비하면 아직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스필버그의 작품은 당대의 큰 충격과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후대에 제작된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만드는 영화마다 좋은 평가는 고사하고 흥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만 만들면서 상업영화 쪽에서 스필버그를 잡는다는 것은 헛소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과대망상적인 발언이다. 아무리 흥행에 성공한 감독이라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형편없는 영화 감독이라고 불리는 우베 볼을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각종 비리와 논란을 일으켰다.

적어도 우베 볼은 캐나다 영화판을 키웠고, 심형래처럼 스캔들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2003년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영화를 만들었다. 심형래처럼 아무런 경력도 준비도 없이 자본만 끌어들여서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를 만들었던 게 결코 아니다. 물론 우베 볼도 독일 정부의 세금 감면 제도를 악용해서 제작비를 끌어모았기에 해당 제도는 폐지되고 말았다. 그래도 탈법 행위는 없었기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결국 심형래는 우베 볼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베 볼이 저지른 막장짓이라고 해봐야 복싱 대회를 개최해서 평론가들을 후드려 팬 정도 뿐이다. 게다가 복싱 대회는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을 듣긴 했어도 우베 볼과 참여한 평론가들 양 측이 서로 합의한 상태에서 열린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반면 심형래는 총기 장난 관련 부분에서도 보이듯 일방적으로 직원들을 노리갯감으로 삼았다. 미국/유럽인 직원에게 그러면 바로 10년 단위인 징역형이 떨어진다. 우베 볼은 사생활이 매우 깨끗했고, 직원들 봉급을 가로채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자기 앞가림은 확실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심형래는 불법 무기나 만들고 카지노에 틀어박혀서 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안 챙겨주니 그야말로 답이 없다. 그리고 우베 볼은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다. 우베 볼은 투자자들이 계속 돈을 퍼주니까 거기에 젖어서 경제관념을 잊어버리고 잠시 방황을 했고 탕진을 했지만 적어도 그 돈으로 영화를 찍었지 노름판을 벌이진 않았다. 또한 심형래는 그야말로 한탕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우베 볼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레스토랑을 차려 코로나 19로 휴점할 때까지 잘 먹고 살 때 심형래는 또다시 자신의 작품에 투자해 줄 투자자들이 걸리길 바라는 심정으로 디워 속편같은 언플이나 하고 있다.
"'D-WAR'의 주인공 목소리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이나 동급의 여배우가 맡을 것."

D-WAR의 여주인공이었던 아만다 브룩은 당시 기준으로는 완전히 신인이었고 그나마 디워 덕분에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지 실상은 2020년대 시점에서도 완벽하게 무명 배우다.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급의 배우라면 이런 영화는 100% 거절한다. 실제로 디워보다 그나마 나은 얏타맨 실사영화에서조차 도론죠 역에 그 안젤리나 졸리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정작 안젤리나 졸리 본인이 캐스팅을 거절하는 바람에 시모츠마 이야기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바 있는 후카다 쿄코로 대신 캐스팅해야 했다. 성공했던 얏타맨도 이런데 얏타맨이랑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 영화인 디 워에서 나탈리 포트만을 섭외한려 했다는 말 또한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실상 심형래의 크고 작은 거짓말 혹은 망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
"황금섬(Golden Island)이라고 3D 애니메이션 만들어. 토이 스토리(Toy Story)랑 맞장 뜰 거야."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흥행한 덕택에 픽사스티브 잡스를 살리고 평가도 굉장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또한 허풍이다. 토이 스토리는 역사상 최고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후보에 들어오는 명작이다. 미국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나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같은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조차 토이 스토리급의 흥행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은 웰메이드 명작은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든다. 게다가 이 시리즈는 같은 픽사 작품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흥행을 기록하며 네 편이나 시리즈가 나와있다. 영화남기남 감독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손 치더라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는 심형래의 지휘로 애니메이션 만들어 봤자 끽해봐야 '김치 전사나 발더빙에 가까운 연예인 더빙에 기댄 괴작 영화와 맞짱 뜰 수준'의 작품이 나올게 불 보듯 뻔하다.

이 당시의 심형래는 각종 언플들을 통해 확보한 수많은 투자자들과 언론사 등 강력한 빽을 등에 업고 있었기에 한국인들에게 기대치와 호감을 얻는 소위 말하는 정치질을 했던 기간의 발언들이다. 이후 심형래의 도박 중독 및 총기 개조 사건 등이 불거지게 되는 2010년 이후부터는 자신의 업보가 극에 치달음과 동시에 안 그래도 이상했던 그의 발언이 점점 해괴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스토리는 뭐 우리나라 소재기 때문에 스토리라는 것은 이무기가 용이 되는 과정이 스토리예요. 가장 잘 된 스토리 영화가 어떻게 보면 제가 반문하고 싶어요. 과연 메이져가 만든 영화들은 참 훌륭한 스토리냐."
2007년 7월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해당 발언을 하기 직전 해인 2006년에 개봉해서 크게 성공한 메이저 영화 중 007 카지노 로얄이 있는데, 이 영화는 사양길이던 007 시리즈를 살려낸 명작으로, 디워 따위하곤 감히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훌륭한 스토리와 퀄리티를 자랑한다. 또한 이 인터뷰에서 심형래가 시놉시스, 콘셉트스토리텔링을 매우 크게 혼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배급대행사 프리스타일이 마케팅비 2000만 달러를 지불했고, 수익의 단 2%를 가져간다."
디워가 미국에 개봉하기 전 인터뷰.
상식적으로 2000만 달러의 마케팅비를 수익의 단 2%만으로 회수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만 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극장과 반반씩 나누면 남는 돈 10억 달러, 그것의 2%가 2000만 달러. 현 시점에서 미국 내 최고의 극장 매출을 올린 영화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인데, 매출액이 10억 달러 조금 못 미친 9억 달러에 불과하다. 프리스타일이 자선사업을 하는게 아닌 한 그런 계약을 했을 리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황상 전술된 바와 같이 심형래 측에서 부담한게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디워 개봉 당시 프리스타일에서 배급한 영화들 중 가장 많은 극장 매출을 올린 영화가 16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런 배급사에서 2000만 달러 씩이나 되는 마케팅비를 디 워 같은 검증되지 않은 영화에 투입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전문 시나리오 작가들의 손을 거쳤어. 많이 다듬었어. 드라마가 취약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거야, 이제."
디 워가 개봉하기 약 한달 전 인터뷰.
그러나 실제로 나온 결과물을 보면 정말로 전문 시나리오 작가들의 손을 거쳤는지 의구심이 드는 수준의 개연성이다. 애초에 영화 개봉 후 평론가들이 디워에 대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지적했던 부분이 시나리오다. 등장인물들이 스토리 진행 도중 뜬금없이 증발해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설정구멍에다가 억지스러운 상황이 부지기수다.
"심 감독은 '디워'의 시나리오도 자신이 직접 썼다. 기획, 제작, 시나리오, 감독. 거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수준이다. 심 감독은 “시나리오만 140개 정도 된다”며 “작가들에게 맡겼더니 도무지 성에 차질 않았다”고 했다."

디 워가 개봉하기 약 한 달 전 인터뷰. 바로 위의 인터뷰에서 전문작가들의 손을 거쳤다는 것과 완전히 상반되는 발언인 동시에 디 워의 완성도가 왜 이리 처참한지에 대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심형래가 영화적 재능이 뛰어났고, 그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런 방식이 비판받을 일이 없겠지만, 이미 전술된 바와 같이 심형래는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무능함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구혜선보다도 더욱 영화를 못 찍는 사람이 심형래다. 심형래는 드래곤 투카 - 파워킹 - 디 워 - 용가리 - 라스트 갓 파더를 거치는 동안 익힌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고작 이거인 데 비해 구혜선은 단편 영화 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장편 영화 데뷔작에 비해서 최근작은 눈에 띌 만한 발전을 이뤘다.
"3억 4천만 달러를 들인 스파이더맨 3를 미국에서 봤다. 스파이더맨이 쫙 날아가고, 건물 부서지고, 미국 국기 앞에서 시커먼 스파이더맨이 쫙 하고, 재미가 너무 없더라. 갑자기 춤을 추다가, 갑자기 돌았다가, 애가 왔다 갔다 하더라. 또 갑자기 여자한테 갔다가, 또 음식 만들 때 집에 갔다가, 스토리 연결이 도저히 되지 않더라."

디 워가 개봉하기 약 1주 전 인터뷰. 물론 스파이더맨 3가 전작들보다 스토리 면에서 비판받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심형래의 영화들보단 훨씬 평가도 좋았고 흥행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비록 베놈에 대한 소니의 집착이 강해서 3까지만 제작되고 배우들이 하차했지만 뭣보다 제작사인 소니와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5편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영화가 망해서 투자자도 얻기 힘든 심형래의 작품이 비빌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작품이다.

또한 이전의 심형래의 영화 평가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심형래는 심오한 예술영화도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보러가는 헐리우드 메이저 상업영화인 스파이더맨3의 스토리의 연결성 측면을 지적했는데, 정작 본인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한다면 지적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킹콩 영화를 보면서 한 시간동안 킹콩이 안 나와서 킹콩 영화가 아닌 줄 알고 다른 데에 갔었어요. 반지의 제왕 같은 거 보면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요. 쥬라기 공원모기가 피를 빨아서 공룡을 만들었다는 것만 던져주고 일제히 공룡만 쫓아다니고 도망만 다니다가 끝나잖아요. 인디펜던스 데이외계인이 와, 부셔, 물리쳐, 그리고 끝이야. 그런데 왜 내 것만 가지고 그래요?"

2007년, 디 워 개봉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 심형래의 편견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발언이다. 물론 기본적인 스토리가 단순하다는 것만 놓고 보자면 쥬라기 공원이나 인디펜던스 데이디 워나 다 단순하다. 어떤 놈이 공원을 해킹해서 풀려난 공룡이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랑 지구인이 싸운다. 착한 이무기랑 나쁜 이무기가 싸운다. 배경 스토리가 다 단순하기는 단순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1시간 혹은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납득할 수 있으며 흥미롭게 줄거리를 이어나가고 스릴과 재미를 안겨준다는 점이다. 쥬라기 공원의 호박을 통한 공룡의 복원과 티라노사우르스, 밸로시랩터가 보여주는 서스펜스, 인디펜던스 데이 속 외계인들과 군대의 교전은 모두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면이 많으나, 최소한의 그럴듯한 상황과 설명을 영화 안에서 깔아두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며, 편집과 연출, 수많은 노력을 통해 긴장감과 생동감을 부여한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에서 스토리의 부재라는 게 무슨 "스토리가 없으면 다 거기서 거기인 블록버스터로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마틴 스콜셰지 식 예술주의 영화 사조의 시각같은 어겨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1시간 30분,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실을 잊고 영화에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 워는 매우 함량 미달이며, 위에 전술된 시나리오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본인의 망언과 더불어 심형래가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대해 진지한 고찰 또한 없다는 면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굳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더라도 쥬라기 공원과 인디펜던스 데이에는 없는 문제점이 디 워에는 있다. 뭐냐 하면 장면과 그 바로 다음 장면의 연결상태인데, 인디펜던스 데이나 쥬라기 공원은 최소한 장면과 장면의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일례로 인디펜던스 데이의 경우 다혈질 파일럿인 윌 스미스가 외계 생명체를 때려잡은 후 자신의 전투기에서 내려서 외계 생명체를 패대기친다. 그 이후 최후의 전투에서도 윌 스미스는 자기가 패대기쳤던 외계 생명체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팍팍 품고 미친듯이 대활약한다. 그런데 디 워의 공룡병단을 보자. 첫 등장 때는 갖은 폼을 잡으며 등장한 반면, 영화 중반부 이후에 느닷없이 증발했다. 이들이 등장해서 한 게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설정상으로는 나쁜 이무기와 같은 편이라면서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둘은 극중에서 연관성조차 없다. 그냥 공룡병단이 등장해서 초반에 아주 잠깐 갖은 폼을 잡다가 그 장면조차 중간에 짤리고 이후엔 생뚱맞게 두 이무기가 등장해서 싸우고 뜬금없이 영화 종료. 영화촬영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가 해당 장면과 바로 다음 장면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느냐인데 디워는 이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디 워는 연관성 없는 여러 장면들을 짜집기하듯 아무렇게나 갖다 붙혀서 마구 찍은 영화에 불과하단 소리까지 나온다. 최소한 장면과 장면 사이만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데에 성공하기만 해도 평작소리는 듣는 영화가 된다. 그만큼 그게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거고 이걸 못해서 망한 영화가 디 워다.

2007년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실제 탱크를 LA 한복판에 끌고 와서 촬영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했던 말. 이 탓에 영화산업을 문화산업이 아닌 그저 돈벌이로만 생각하는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당연히, 어마어마한 블록버스터의 성공이 아닌 이상, 아니 그런 블록버스터라도 45,000개의 중소 기업을 살릴 수는 없다. 애초에 영화 제작 중 45,000개의 중소 기업에 외주를 맡길 일이 없으며, 단순히 금액만 생각하고 한 말이라고 해도 회사 운영에 연당 1억만 쓰는 매우 조그마한 회사라고 해도 45,000개의 기업을 굴리려면 4조 5천억 원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 역사상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조차도 재개봉 수치를 합해 2021년 기준 3조 8천억 가량의 수익을 올린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정작 디 워는 잘 되기는 커녕 오히려 적자를 본 영화다. 그런 영화를 찍은 감독이 한 말이 저거다. 당연히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 오히려 자신의 영화 때문에 중소기업 수백 개를 살릴만한 자금을 날려먹었다.
"3일 동안 540만 달러를 관객으로 계산하면 100만 명 정도로 웬만한 중소기업 연간 수출액과 맞먹는다. 마케팅 비용을 몇 배나 들인 브레이브 원이 1400만 달러 정도인데 심형래가 만든 인디 영화가 메이저들과 경쟁하고 300개 미국 영화 가운데서 이 정도 선방하고 있다면 한국 영화도 가능성 있는 것 아닌가. 소니와 DVD 배급계약을 맺었는데 유니버설에서는 왜 디 워를 놓쳤느냐고 관계자가 문책받고 있다고 들었다. 유료TV에서 150%, DVD에서 250%를 본다. 와이드 릴리즈는 일종의 홍보수단일 뿐이다."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하고 참패한 후 흥행 성적을 본인 스스로 평가한 내용. 전술된 바와 같이 디 워는 미국 개봉을 위해 심형래 본인의 발언에 의하면 2,000만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미국 내 총 극장 매출은 1097만 달러이며, 그마저도 극장과 반반씩 나누고 나면 실제 심형래 측에 떨어지는 돈은 548.5만 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즉 마케팅 비용조차 반에 반 토막밖에 못 건진 것이다. 그러나 심형래는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외면한 채 겉으로 드러난 매출만 가지고 언플을 한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예시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제작비는 3000만 달러로 할리우드 영화임에도 디 워보다 500만 달러 적은 제작비로 제작되었지만 월드 박스오피스 8500만 달러를 달성하며 제작비의 3배 가까운 대성공을 거두었다. 애초에 투자와 배급이 일원화된 메이저 영화 기준으로 총 제작비의 최소 2배 정도 수익은 내야 겨우 본전치기가 된다. 흔히 영화 손익분기점 달성은 총제작비의 2배라고 알려져 있으나, 극장 몫 50%를 제외하고도 각종 세금, 수수료가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제외한다면 최소 그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심형래 영화의 매출액은 2배를 벌기는커녕 하나같이 제작비만도 못 된다. 또한 2차 시장에서의 성공도 극장 박스오피스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이거나 극장에서의 성적이 신통치 않더라도 영화의 평가만큼은 좋은 경우에나 해당되지 디 워의 경우 극장에서부터 대실패를 했음은 물론 관객들의 평가까지 최악이었다. 이런 영화가 2차 판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2차 판권 시장을 노리다가 추가 손실이 날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디 워가 2차 시장에서 대박칠 것이라는 것은 희망고문일 뿐이며, 실제 결과도 그러했다.

아닌게 아니라, 디 워의 블루레이 발매판본은 대한민국 최초로 발매된 한국 영화 블루레이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36] 발매된지 14년이 지난 2022년 시점에서도 악성재고로 남아있다. 재미있는점은 아직도 남아있는 재고가 초도생산물량, 즉 08년에 찍은 그 물건들. 거기다 그 블루레이를 찍은 회사는 이미 진즉 망해서 SM엔터테인먼트쪽에 인수된지 오래다. 이것도 그나마 한국이라 블루레이라도 나왔지, 해외쪽에서는 블루레이는 발매되지도 않았으며 DVD도 출시되지 않은곳이 허다하다. 2차시장에서의 대박은 커녕 길이 남을 쪽박이다.
"사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비판이 쏟아질까 두려웠다. 그러나 그 많은 부정적인 리뷰 중에서도 뉴욕타임스는 "플롯이 없다고, 드래곤이 있잖아"라며 "재미없이 볼 수 없는 영화"(It`s impossible not to be entertained)라고 평가해주었다. 할리우드에 와서 보니까 유태인들이 무서울 정도로 뭉치더라. 미국 시장에 나와서까지 공격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말만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항상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안타깝다."

디 워가 미국에 개봉한 직후의 인터뷰. 사실 뉴욕타임즈의 디 워에 관한 보도는 호평이 아니라 반어법을 사용한 혹평이다. 디 워의 어설픈 플롯을 마찬가지로 어설픈 특수효과로 덮으려고 한 것을 비꼬며 영화의 허접함에 웃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까운 기사였다. 그런데 심형래는 이것을 호평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유태인들이 뭉친다는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첫 번째는 유태인들이 뭉쳐서 디워의 흥행을 방해한다는 음모론이고, 두 번째는 한국 사람들에게 유태인들처럼 똘똘 뭉쳐서 디워를 응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의미로 해석해도 문제있는 발언이다.
"눈물 흘려서 할 수 있다면 다음에는 대성통곡 마케팅이라도 하겠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 봐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200만~300만 관객을 놓쳤다. 그러지 않았으면 1000만 명 돌파했을 것이다."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한 후 인터뷰. 디 워 관객들 중 한국인을 제외하면 몇 명이나 나오는지 계산해보자.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디 워의 흥행성적을 계산하자면…
"관객이 소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 산업이다. 반지의 제왕은 20억 달러를 벌었다. 흥행이 제일 잘된 영화가 예술이다. 흥행도 안되는 영화가 무슨 예술이냐. 반지의 제왕, 쥬라기 공원 등 최고의 히트 영화는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한 SF나 판타지 영화다. 포켓몬스터가 한국에서 나왔다면 세계 시장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잔인하고, 학살의 현장이나 남의 아픔을 이용한 영화래야 예술인가. 영화는 꿈이 있어야 한다. 3대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라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한 후 인터뷰. 3대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여야 한다는 말을 했으면서 정작 후속으로 내놓은 라스트 갓 파더에서는 갖은 섹드립을 쳤다. 게다가 영구람보에서는 영화 촬영용으로 개조된 총이 아닌 실총을 쐈다. "흥행이 잘 된 영화가 예술"[37]이라면서 정작 디 워용가리, 라스트 갓파더흥행 실패를 했다. 아니, 이 시점 후로 심형래 감독의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단 한 작품도 없다. 애초에 포켓몬스터를 운운한 것 역시 어불성설인 게, 포켓몬스터는 극장판보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지닌 TVA쪽에 더 가까운 작품이며, 포켓몬스터의 첫 극장판 뮤츠의 역습은 철학적이면서도 동심에 잘 먹혀들어가는 스토리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평을 들었다. 특히 말 자체도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해석해 보자면 '한국인들은 자극적인 영화를 더 선호해서 꿈이 있는 영화들은 흥행을 못 하고 관심도 못 받는다'에 가까운데, 전술했듯 애초에 정작 심형래 본인의 영화부터가 의미없이 과하게 자극적이기만 한데다가 꿈과 창작이 심하게 부족하고, 애초에 그런 사상대로라면 한국의 관객이 그런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기에 그런 영화를 만드는 해석이 '예술'인 셈이다. 스스로의 논리마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디 워의 와이드 릴리즈를 통해 이미 충분히 홍보가 된 만큼 디 워2는 훨씬 더 용이하다. 2편은 한국의 한 할머니가 이무기를 키우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원천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제작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에 비해 제작 비용이 낮은 데다 신속하게 업데이트할 수도 있다. 상상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반지의 제왕의 현장인 뉴질랜드의 경우 미국 기술이고 미국 자본이었다."

디 워가 미국에 개봉한 직후 디 워 속편에 관한 언급. 밑에 나와 있지만 심형래는 아바타가 나온 이후 디 워 2편이 외계행성에 갔다 오는 내용이라고 언급했다. 이 점을 보았을 때 디 워 2편에 관한 내용은 정황상 심형래가 그때그때 상황 봐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막 내뱉은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헐리우드 제작사의 자본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실제로 영화 제작에 있어 워너 브라더스피터 잭슨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구현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애초에 로케이션이 뉴질랜드일 뿐 반지의 제왕은 엄연히 미국 영화다. 게다가 수차례 전술되었지만 심형래 영화들의 실패는 기술적인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떤 논리도 갖추지 못한 번지르르한 말일 뿐.
"나로서는 추억의 붕어빵 등 24편이 준비돼 있다. 뜸북새 같은 좋은 곡들도 많다. 미국 시장을 보니 3D 애니메이션에 휴머니즘이 없다. 어릴 적 붕어빵을 사와 아빠가 오지 않아 밥통에서 데웠다가 꺼내놓은 그런 휴먼 요소를 가미해 전세계를 울려보고 싶다. 이민사회니 미국에서 그런 영화들이 적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한 직후의 인터뷰. 하나만 보자. 이 영화는 맨 처음 5분 동안만으로도 휴머니즘이 극에 달한다. 애초에 픽사를 비롯한 3D 애니메이션 대다수가 다름아닌 아이들의 동심에 기댄다는 것을 생각하면 휴머니즘이 없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뿐만 아니라 토이 스토리 3 같은 영화는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수준이기도 했다. 심형래가 주장하는 '미국 영화계는 휴머니즘이 없다'는 건 그냥 우월주의 내지는 국수주의에 불과하다. 아니면 다른 영화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아서 업은 물론 휴머니즘 영화가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거나. 이 발언은 구시대적 편견 그 자체이며 헐리우드 영화의 겉모습, 화려한 수익만 보였지 영화 산업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이해는 부재했다는 점을 대변해 준다. 애초에 블록버스터 스토리조차 파악을 못 하는 양반이 매체 비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상황.

다만 그가 언급한 휴머니즘을 신파로 해석해서 '미국에는 한국식 신파가 없다'라고 이해하면 휴머니즘이 없다는 게 그럭저럭 말이 되긴 한다. 실제로 부산행 같은 영화 종반부의 뜬금없는 신파성 감동도 신파가 사양길인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뜸북새'라거나 '추억의 붕어빵' 같은 키워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심형래의 취향도 이 쪽. 즉 영화 내내 한맺힌 통곡을 하며 관객을 울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7~80년대 신파극에 훨씬 가까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추억의 붕어빵 같은 경우 영구아트 파산 이후 전 스탭이 유출한 추억의 붕어빵 관련으로 제작했던 미니어처 사진들을 보면 옛날 70~80년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미니어처/CG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구아트의 3D 기술력은 '아바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신 있다. 기대해달라."

아바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기술력이 좋다를 넘어 현 시점까지도 영상 혁명 소리를 듣는 명작이다. 또한 기술력을 언급하기 이전에 심형래의 영화들은 기술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영구아트 직원들 실력이 정말로 아바타급이라 해도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마당에 아바타급 기술력이 나올 리가 없다.
"괴물이 날아오는데 괴물… 뭔가 처단해야지. 아니, 총으로 쏴야지. 괴물 나오면 귀싸대기를 때립니까? 맨손으로? 귀싸대기를 때려요, 괴물을?"
불법 총기 개조에 대한 변명으로 탐사코드 J와 인터뷰를 가졌을 때에 했던 말.
물론 영화상의 괴물을 귀싸대기가 아닌 총으로 쏴야한다는 말 자체는 맞는데, 문제는 전술했듯이 이 발언이 불법 총기 개조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이라는 점에서 질문과는 전혀 동떨어진 해명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나마 말이 되게끔 돌려봐도 저 말을 해석하자면 본인이 만들 괴수 영화에 불법 개조총기를 쓰는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는데, 총기에 대해 관대한 미국조차 이런 한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없다.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가 촬영용 소품 총기 사고로 숨진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소품 총기 관리가 상당히 엄해졌으며, 알렉 볼드윈이 공포탄인 줄 알고 연기 연습하다가 본의 아니게 실탄을 쏴 촬영 감독이 사망한 사고도 있으니 아무리 촬영용이라고 해서 대충 넘어가 줄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심형래는 개조 총기를 호신 핑계를 대면서 소지하고 다녔으며, 영화를 찍는데 대놓고 실탄을 사용하고, 직원들한테 비비탄을 쏘기도 한 인물이니 아무래도 안전 불감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미국처럼 가다가 웬 총 들고 날뛰는 미치광이를 볼 수도 있는 곳이라면야 괴물을 총든 미치광이에 대입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나라는 총기 소지 자체가 제한을 받는 국가다.[38] 심지어 미국조차도 총기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며, 지역과 치안에 따라 총기 소지 규제는 천차만별이다. 물론 당연히도 총으로 쏴 죽여야 할 괴물은 더더욱 없다.[39]

굳이 실드를 쳐보자면 그냥 농담삼아 저런 얘기를 한 거겠지만, 웬만해서 심형래는 돌려서 말하는 화법을 구사한 적이 거의 없다. 단지 느끼면 느끼는 대로 마구마구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성향이다. 그래도 굳이 돌려서 말한 거라고 친다면 굳이 저 타이밍에 에스퍼맨 얘기를 꺼냈다는 건 '에스퍼맨이 흥행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있지 않았냐?'란 뜻으로 한 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는데, 심형래는 여기서 단지 배우였고 배역을 연기했을 뿐이지 감독도 뭣도 아니었다. 결국 이 말은 그저 무리수 혹은 망언 정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타이타닉3D로 변환해서 전세계에 엄청난 흥행했지 않았습니까?"
탐사코드J와 가진 인터뷰에서 디워를 3D로 변환하여 재개봉하면 엄청나게 흥행할 거라면서 한 말.

참고로 타이타닉은 3D 재개봉하기 전에도 개봉 중 필름이 다 닳아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흥행해 오랫동안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통산 1위를 지켰던 작품이다. 20세기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하는 영화로, 디 워 따위와는 비교할 수준이 안 된다.

타이타닉 문서에도 적혀 있긴 하지만, 타이타닉은 3D로 재개봉하기 전에 전세계적으로 18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2000년대 들어 10억 달러 이상의 월드와이드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다수 등장했지만, 이 중 타이타닉이 최초이자 유일하게 20세기에 나온 영화이다.[40] 즉, 다른 10억 달러를 넘긴 영화들보다 티켓 값이 훨씬 쌌지만 타이타닉 다음으로 많이 번 어벤저스보다 3억 달러 이상 벌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어벤져스의 경우에는 처음 개봉할 때부터 3D는 물론이고 아이맥스 등을 통해 티켓 값이 타이타닉 개봉 당시보다 훨씬 높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타이타닉은 3D 재개봉으로 번 돈을 제외해도 무시무시하게 흥행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IMF 사태 당시 타이타닉 보면 외화 나간다고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을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히려 3D 재개봉으로 번 돈이 전세계적으로 3억 달러 조금 넘는 수준으로 재개봉 전 성적에 비하면 초라하다. 물론 심형래의 영화들보단 훨씬 잘 번 것이긴 하지만 결국 타이타닉의 경우는 본 바탕이 좋은 영화를 3D로 만들어 성공한 것이지 3D로 변해서 흥행한 게 아닌 만큼 심형래의 발언은 본말전도나 다름없다. 즉, 타이타닉은 3D로 재개봉해서 인기가 좋은 게 아니라 인기가 좋아서 3D로 재개봉하였다는 건데, 이런 기본적인 선후관계마저 파악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파악하지 못했는지 '타이타닉 3D 재개봉=타이타닉 인기의 비결'이란 단순화한 등식을 만든 것이다. 보리차를 얼음 양동이에 담아 크리스탈 잔과 고급 시가와 함께 서빙한다고 그게 위스키가 되는 게 아니다. 애당초 인기도 없고 존재도 모를 정도로 인지도도 낮고 평판도 나쁜 영화라면 재개봉할 리도 없다.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다 완성이 됐고 외계 행성을 갔다 오는 거에요. 사실 (이 아이디어는) <아바타>보다도 제가 먼저 생각했죠."
탐사코드 J에서의 인터뷰.
그런 아이디어는 미디어에서 꽤나 흔한 거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와 플롯을 지닌, 본격적으로 영화라는 예술장르를 처음으로 개척한 조르주 멜리에스의 초창기 대표작 달 세계 여행이라는 우주 SF 영화가 무려 1902년에 나온 작품이다. 또한 이야기로는 1865년에 쓰인 달 세계 여행의 원작,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가 있으며 그때에도 이 이야기에 대해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가 비평을 할 정도로 아이디어 자체는 몹시도 유구한 전통이 있다. 단순 언플 혹은 자뻑을 넘어서 영화계 종사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영화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위에서도 상술했지만, 분명 그 이전엔 한 할머니가 이무기를 키우는 내용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미스터 빈도 상태 안 좋았잖아요. 저도 상태 안 좋지만,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과 저 둘이서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황야의 무법자로 나오는 영화는 미국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
탐사코드 J에 나온 인터뷰 내용.
로완 앳킨슨은 실제로는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다.[41] 미국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말한 것은 그와 대화한 적도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42] 누가 봐도 그저 언플에 불과한 발언임을 알 수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로만 폴란스키가 "북한 출신의(아니면 중국 출신이나 일본 출신) 심형래가 나와 같이 영화 찍기를 원한다." 또는 "<영구와 땡칠이(심형래)>가 나와 둘이 삼국지 영화(혹은 전국시대 사무라이 영화)를 촬영하자는 제안이 중국(혹은 일본)에서 먼저 왔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미스터 빈은 심형래의 표현으로 '상태 안 좋은'(바보스럽고 덜 떨어진)[43] 캐릭터로 전설의 배우가 되었지만, 실제로 로완 앳킨슨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의 인텔리이자 고학력자로서 매우 지적이고 또 달변가로 유명한 사람으로, 심형래와는 여러모로 격이 다른 인물이다. 현재도 여전히 영국의 국민 배우이자 닥터후의 차기 닥터로 나오기를 바라는 배우로 뽑히기도 했다.
심형래가 본인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한 채 내뱉은 말이다. 본인과 영구아트 무비가 왜 이런 꼴이 났는지 전혀 그 이유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으로 뽑아도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판국에 계약직으로 뽑겠다는 건 시류에도 전혀 맞지 않는 발언이다. 회사 운영에 맞지 않는 건 정규직 채용이 아니라 심형래 본인의 강원랜드 행이다.
"술은 안 좋아하는데 여자는 좋아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럼 남자를 좋아해야 되나?"
탐사코드 J와의 인터뷰에서 MBC PD수첩에서 영구아트 전 직원들 중 한 명이 "심형래 감독님이 은 안 좋아하는데 여자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며 성 로비에 관한 말을 한 것에 관해 해명을 하면서 했던 말.
질문의 요지와 핵심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한 동문서답형 답변인데, 영화 제작에서 외도한 것에 대해 추궁하는 기자의 말을 말장난식으로 회피하고 있다. 기자는 심형래의 성적 지향을 묻는 게 아니라 '하라는 제작은 안하고 여자 끼고 놀았다는데?'라고 질문한 것인데, 심형래는 질문의 핵심 주제들인 앞 부분과 가운데 부분은 무시하고 뒷 부분만 제멋대로 캐치하고 해석한 채 거기에 대한 얼토당토한 대답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어벤져스 2' 서울 촬영 현장을 직접 보니 예전 LA 시내에서 탱크를 가지고 '디 워'를 찍던 생각이 나서 감개무량하다. '어벤져스' 못지않게 '디 워2'도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산 이후 2014년 4월 어벤져스의 속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촬영현장에 나타나 JTBC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이를 접한 네티즌의 절대다수는 "제발 그만 해라"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어필을 하는데 실패했고 그의 잘못된 행동거지로 인해 대중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에 필수적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못지 않은 영화를 제작하려면 최소한 디워 제작비였던 300억원 이상을 모아야 하겠지만, 그의 신뢰도로써는 그의 영화에 투자를 할 투자자들을 모을 방법도 없거니와 설령 모으는데 성공하여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다 치더라도 여태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본인의 행동으로써는 흥행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때문에 한때 그의 팬이었던 소수의 네티즌들은 하루빨리 그가 영화 제작에 대한 허황된 꿈을 접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영화 감독으로서 촬영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44] 이경규 역시 아직도 언젠가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말조차 심형래에게는 대입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어벤져스 2를 촬영하기 이전에 어벤져스 1이 흥행에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영화가 다 후속작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처참하게 실패한 영화는 절대 후속작을 내지 않는다.[45] 디 워는 한마디로 CG빨 엄청 받은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에 희대의 대실패작으로 낙인 찍인 영화인데, 그런 걸 또 후속작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게다가 영화 한 편을 촬영하는데 드는 비용과 드는 인력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전례를 따르자면 그거 하나 때문에 심형래는 또다시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의 돈을 잘라먹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영화 산업 관련직 종사자들을 기만한시킬 것인지 생각해 보면 더욱더 네티즌들의 그만 하라는 반응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디 워를 만들고 나서도 영구아트 직원들에 대한 임금 체불과 폭행에 강원랜드에서 재산을 탕진한 사람이 언제 사회에 공헌을 했다고 10배 이상의 공헌을 하겠다는 건지 진실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외국 자본도 많이 들어온다는 말은 2012년 탐사코드 J와의 인터뷰에서도 한 번 뱉은 말이었다. 결과적으론 저런 식의 말로 애먼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심산으로 보이겠지만, 이미 밑천이란 밑천은 다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게 투자를 할 투자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안 된다면 듣도 보도 못한 인지도도 없는 나라에 가서 투자를 종용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빈국이거나 너무 소국이라 제대로 투자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의문이다.

하지만 심형래의 발언과 마인드는 전술했듯이 진실성도 떨어지고 현실성은 더더욱 없다. 우베 볼이야 독일의 문화 산업 관련법의 헛점 때문에 돈을 물쓰듯 펑펑 쓸 수가 있게 된 탓에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타성에 젖어 성의없이 찍은 거라 구제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심형래는 업적을 달성해서 얻는 보상에만 눈이 멀었지 가장 중요한 그 업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부재한 게 문제다. 게다가 우베 볼은 형편없이 만든다는 점이 문제지 램페이지: 더 테러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각 잡고 제대로만 만들면 그래도 평작 수준은 나온다. 따라서 영화 감독으로서의 심형래의 미래는 앞으로도 매우 회의적이다.

애당초 심형래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영화로 제대로 돈을 번 적이 없다. 게다가 본인 재산 뿐만 아니라 본인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의 재산까지 모조리 날리고도 뻔뻔하게 다시 투자 받으러 돌아다닌다. 또한 영화는 보통 얼마나 재밌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하는 반면에 심형래는 얼마를 투자해서 몇 배 혹은 얼마가 더 들어온다는 수익적인 측면을 너무 과하게 강조한다. 영화 감독도 직업이고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모든 직업이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맞지만, 제대로 된 영화 감독이라면 수익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하면 더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서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끌어모을 것인가 생각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심형래의 입에서 "어떻게 하면 더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서..." 따위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원래 영화란 것은 감독 스스로가 하는 게 아닌 스탭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만들어지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보수는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무릇 영화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별거 아니라고 비하하던 수많은 국내외 흥행작들도 많든 적든, 그것이 하는 일에 비해 합당하든 아니든 전부 각 스탭들에게 최소한 정해진 보수는 꼬박꼬박 지급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스탭들을 자신이 부려먹어도 될 노예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고 있다. 심지어 희대의 괴작 7광구를 만든 장본인[46]이자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 볼드모트 취급을 받기로 유명한 윤제균마저도 적어도 스탭들에 대한 복지 정책은 이상적인데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인정할 만하다. 또한 윤제균 감독은 영화계 최초로 근로계약서를 도입했다는 업적이 있었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우베 볼조차도 스탭들에게 봉급을 꾸준히 주는데다 스탭들에게 줄 돈으로 심형래처럼 돈지랄을 한 적도 없었다. 또한 심형래는 자신의 직원들을 노리개 삼아 폭행하거나 막말하는 것을 즐겼다고 나왔지만, 우베 볼은 그의 직원들을 함부로 학대한 적도 없고 우베 볼 최대 막장짓인 평론가들이랑 복싱 대결을 걸어 후드려 팬 것도 사전에 평론가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한 것이지 다짜고짜 멋대로 끌어낸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스탭들에게 돈을 주지도 않을 방법도 없다. 그러면 고용노동부에서 가만 있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누구나 돈을 바라고 일을 한다. 심형래 자신조차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수익적인 측면을 언급하면서 영화를 찍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스탭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는게 부담된다는 식의 발언은 애초에 인과관계조차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한국 영화이지만 세계 시장으로 가려고 하다보니까 SF 장르밖에 없는 거예요. 세계적인 배우도 없고, 세계적인 시나리오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몬스터만이 세계 시장에 통할 수 있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엔 ET다, 쥬라기 공원이다, 고질라다, 트랜스포머다, 킹콩이다. 괴수 영화는 남녀 누구나 통하잖아요."
2014년에 MBN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작 본인의 영화들은 그 동안 그렇게 비난을 받고 말아 먹어왔으면서도 다른 영화들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발언이다. 세계적인 배우가 없고 세계적인 시나리오도 없어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밀양》, 《버닝》,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황해》, 《곡성》,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미국을 위시한 외국에서 잘 만든 한국 영화라고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심형래는 이 말을 하기 한참 전에 정작 본인도 《디 워》에 아리랑을 넣었으며 《라스트 갓파더》에는 원더걸스의 노래를 넣음으로서 본말전도 혹은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계 시장에 통하는 블록버스터들을 보면 괴수, SF 소재가 아닌 것도 충분히 많다. 비록 미국 쪽 영화지만 당장 《다크 나이트》의 경우를 보자. 《다크 나이트》는 몬스터나 SF 소재여서 흥행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잘 만든 영화였기에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또한 《타이타닉》 촬영 당시만 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막 명성이 좀 오르던 떠오르는 배우 정도였으며, 《타이타닉》이 세계 1위를 하기 전에 디카프리오는 그다지 세계적인 배우도 아니었다.

OBS경인TV의 모 방송에서 "일찌감치 5D영화까지 섭렵했다"라는 식으로 요약 가능하게 나온 말이지만, 실제로는 5D는 아직도 개발 중인 기술로, 영화관 의자가 360도 돌아가는 등 관객이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즉, 5D가 제대로 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발언했다는 것.

추측컨데, 용가리가 일어나는 부분까지 촬영한 영상을 스크린에 비춰주고 영상의 용가리가 오른쪽으로 걸어가면서 사라지면 스크린이 꺼지고 인형 용가리가 오른쪽에서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마치 스크린의 용가리가 눈 앞에 있는 듯한 연출이지만 예전 90년대 초중반 놀이공원에서 어트랙션에서나 자주 써먹었던 올드한 연출이고 요즘에도 가끔 뮤지컬이나 연극 등지에서도 종종 쓰인다. 고로 이건 5D라고 칭할 수 없으며, 그 전에 이게 영화에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기법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기법을 쓰기 위해 극장들더러 이 영화 하나를 위해 개조하란 소리밖에 안 된다.

다만 발언 자체는 허황된 발언이라 해도 2025년 현재 극장 영화가 OTT에 밀리며 고전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OTT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극장만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영화계에서 나오고 있다. 심형래의 위 발언은 이처럼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재평가의 여지가 있다. 다만 다른 발언들의 비판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심형래가 그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성공한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아래 발언에서 언급된 아바타이다.
“정말 전 세계에서 (영화로) 최고가 되는 게 내 포부다. 그래서 박스오피스 1위 해가지고. 그 동안 제일 많이 들었던 영화 '아바타'를 이기는 게 꿈이다”
역시 OBS에서 나온 말.
디 워가 개봉하기 전에도 전세계 80억 달러를 벌어들이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지만, 정작 디 워의 흥행 수입은 아니, 그 전에 세계 최고는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영화로 성공이나 했던가? 당장 우베 볼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이 기사를 보듯이 자기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건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애초에 제임스 카메론마이클 베이는 심형래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 동안 방송에 안 나오다 보니까 사람들은 심형래가 침체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침체기가 아니라 다른 걸 준비하는 시기였어요. 코미디도 코미디지만 심형래만의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상의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어요."
YTN과의 인터뷰.
지극히 당연하지만 영화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 테마파크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며, 설령 만든다고 하더라도 유행이 지난 것으로 채우면 흥행할 수 없다는 인식조차 없는 발언이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정말 중요해요.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니까, 우리의 기준에 맞추면 안되겠더라고요. '디 워'를 비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영화는 시장이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디 워2'에서는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어요. 영화는 아이디어 싸움이잖아요. '디 워2'가 '어벤져스'보다 재밌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영화가 될 거예요."

OSEN과의 인터뷰. 시나리오 발전에 대한 언급에 대한 건 얼핏 보면 많이 변한 걸로 보이나 굳이 실패작이었던 디 워의 후속작을 여전히 밀고 있다는 점에서 진실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애초에 인기를 끈 적도 없는 것이 실패작이 된 디 워가 당대 최고의 인기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대표작을 이길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매우 허황된 이야기다. 또 링크된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편집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출 것이며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없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먹힐 만한 무언가를 찾아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여부야 영업 비밀 같은 것이니만큼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쳐도 "대충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느낌이라도 졸 수 있도록 흘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정말로 이런 것이 있었다면 기자가 편집하기는커녕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도록 강조했을 것이다.
"웃음이 많으면 경기도 좋아지는 것 같다. 옛날에 우리가 코미디를 할 때는 웃음이 많고 경기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 등이 나오면서 개그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개그나 유머를 하려고 해도 서로 경계하고, 무서워하게 됐다. 말을 하나 잘못하면 고소를 하고 사회가 무서워졌다. 살벌해졌다. 그래서 서로 대화가 끊기고 화합이 끊겨서 안타깝다." - '19금 버라이어티 심형래 쇼' 기자간담회

미투 때문에 웃기기 힘들다는 심형래, 그의 코미디를 거부한다

심형래는 '19금 버라이어티 심형래 쇼'라는 타이틀의 공연을 만들었는데, 공연 기자 간담회에서 '미투 운동'으로 인해 개그가 어려워졌다는 발언을 했다. 심형래의 개그 스타일을 생각해 본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다. 심지어 '성추행도 좋은 소재가 되고 있어요.'라는 2001년 9월 여성동아 인터뷰를 보면 옛날부터 성추행을 개그의 소재로 꾸준히 써왔음을 알 수 있다.
"(펭수와 비교하며)제가 원조 펭귄이죠."

OBS와의 인터뷰에서 펭수의 인기에 편승하여 과거 그가 연기한 펭귄 캐릭터를 펭수의 원조라고 주장하였다. 펭수는 2019년에 EBS에서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마스코트 캐릭터이지, 심형래가 과거에 연기한 펭귄 캐릭터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과거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당시에 디 워를 홍보하면서 반지의 제왕을 언급한 것이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인기가 있는 매체나 캐릭터를 은근슬쩍 언급하며 자기가 원조라거나 자기가 만든 컨텐츠가 그 컨텐츠보다 더 뛰어나다고 비교를 하며 홍보해서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디 워가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말들도 많이 나왔고 그랬잖아요? 근데 미국에서 굉장히 인정해주는 영화에요. 그래서 요번에 배급도 굉장히 큰 데서 배급을 해요, 전세계에. 그렇게 얘기가 나와서 준비 중에 있고 그리고 디 워가 만약에 디 워 2로다가 나왔을 때, 이런 SF 장르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부가 가치가 크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어벤져스라던가, 요즘에 개봉하는 겨울왕국이라던가 이런 것들 보면 미국에서 하루에 1억 불씩 돌파하고, 사람들이 그런 장르를 좋아하잖아요."

2020년 4월, OBS와의 인터뷰에서 디 워에 대해서 언급한 말. 디 워가 비록 국내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말들도 많이 나왔으나 미국에서는 인정해주는 영화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현실 인식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디 워는 미국에서도 인정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2007년 미국 개봉 당시에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미국인들도 최악의 영화라고 악평했던 영화가 디 워였다. IMDB나 로튼토마토 등의 평론 사이트에서 평론가 평은 물론 관객 평도 바닥이고, 심지어 디 워는 인터넷무비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한국 영화들 중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한국 영화이며, IMDb Bottom 100에서 유일하게 등재된 한국 영화이다. 실제로 미국의 흥행 성적도 1097만 달러 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며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참패했다. 이런 영화가 언제 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말인가?

또한 SF 장르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부가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에서 심형래가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대처하는 상황 인식 또한 부재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벤져스는 SF 영화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며[47] 겨울왕국은 장르부터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SF 장르 자체에 대한, 더 나아가서 영화 매체와 영화 시장에 대한 심형래의 편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SF 장르라고 무조건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부가가치가 큰 것이 아니다. 당장에 심형래가 이 발언을 하기 2개월 전인 2020년 2월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 영화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지금까지 해외에 수출한 한국 영화들 중에서 가장 큰 흥행 수익을 올린 바 있다. 기생충은 심형래가 부가가치가 제일 크다고 주장한 SF 장르가 아니라 블랙 코미디 장르와 스릴러 장르를 영리하게 접목한 영화로, 그 작품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아서 초대박이 났다. SF 장르라고 무조건적으로 부가가치가 큰 것이 절대로 아니다.

10.2. 영화 감독으로서의 문제점

영화를 짧은 기간 내에 촬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과거 언론이나 토크쇼 등에서 '남들은 몇 년 걸릴 걸 난 몇 개월 만에 완성했다.'라며 발언했던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디 워라스트 갓파더 같은 경우, CG나 편집 같은 사후 작업 등에선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실제 촬영 시간은 대단히 짧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날림공사를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48] 보통 정상적인 영화감독이라면 좋은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똑같은 장면을 계속 재촬영하거나, 아예 특정 시간대와 장소를 찾아서 그 순간에만 찍을 수 있는 장면을 계획하기도 한다.[49] 대부분의 영화 촬영 기간이 짧아도 반년 정도, 길면 1 ~ 2년 이상 가는 것 또한 여기에서 기인하는 건데, 심형래의 경우는 그냥 대충 슥 훑어보고 화면만 괜찮다 싶으면 바로 OK 사인을 내 버리는 지라 장면의 완성도를 보강하기 힘들다.

물론 높은 퀄리티의 장면을 빠른 시간에 찍을 수 있다면 그건 자랑거리가 맞다. 일단 같은 성과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빨리 완성할수록 더 좋다.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감독들이 같은 장면에 한도 끝도 없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 결과적으로 제작 비용의 상승과 상영 계획의 차질 등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은 데다 장고 끝에 악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50] 또한 시간 자체도 금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귀한 자산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완성도가 괜찮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 "빨리 만든다" 라는 것 하나가 장점이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심형래식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상미 자체가 영 좋지가 않았다. 디 워 이전 영화들의 경우 애들에게 볼거리를 준다고 무술 액션을 넣기도 하였지만, 박진감을 준다기 보다는 그저 휙휙 움직이거나 빠르게 영상을 돌리는 식의 부실하고 허접한 눈속임이 전부이며, 클라이맥스나 결말도 감흥이 안 느껴진다. 그저 끝나면 '끝났구나!' 하는 식.

물론 영상미가 나빠도 충분히 걸작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심형래의 영화를 보면 단순히 영상미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영상의 흐름 자체가 뭔가 부자연스럽다. 일례로 디 워를 예로 들면 그 많던 공룡 병단들이 나와서 군부대와 시가전을 벌이는 와중에 갑자기 이무기 2마리의 싸움이 나온다. 그리고 그 싸움이 종결되자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시놉시스 자체는 그 공룡병단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잘 설명했으나, 막상 영화상에서의 공룡병단의 활약은 갑자기 증발해버린다. 그 공룡병단은 도대체 왜 등장한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설명은 걸작인데 제품은 졸작인 셈. 그리고 스크롤이 올라가면서 난데없이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SF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스탠리 큐브릭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달을 고민한 것,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명장면 중의 하나인 복도 격투 씬 4분을 위해 촬영만 며칠 걸린 것도 그렇다. 반대의 예로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계산으로 영상을 최단시간 내로 얻어내는 기법으로 3시간만에 영화 전체 분량을 찍어내기도 했던 김기덕 감독을 상기해보면[51] 별다른 계산도 없이 스태프만 갈아넣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심형래의 빨리 찍기에 대한 자랑은 오히려 자신이 영화에 대한 안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한 것이다.

보통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만들려면 3~4년의 기간은 거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52] 그것 때문에 계속 아역 배우로만 남아야만 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역 배우들인 다니엘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등이 영화를 촬영하느라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해리 포터 시리즈 촬영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심형래가 찍은 영화의 대부분은 중간에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실 심형래는 스승을 잘못 만난 게 컸다. 저 날림식 영화촬영은 다름 아닌 남기남의 전매특허였던 것을 심형래가 이식받아서 생긴 문제였다. 다만 남기남은 어떻게 하면 영화를 빨리 찍을까 라는 고민을 반복해 동선이 겹치는 씬은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찍어버리는 스타일이지만 심형래는 그냥 빨리 찍는 것만 배운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남기남의 주 필드는 스크린쿼터용 저예산 어린이 영화였기에 투자자나 제작사 모두 질은 대충이어도 양만 맞춰주면 된다고 요구하였기에 그런 작품들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용가리 부터 심형래가 추구해온 필드는 한국 기준 거액의 제작비인 수십~수백억이 들어가는 고퀄리티 SF 영화다. 동네 농구를 그것도 대충 배워서 NBA에 도전하겠다는 꼴.

심형래디빠들은 항상 완성도를 문제 삼는 비평에 "어린이 영화니까 괜찮다"고 말한다.[53] 그러나 어린이 영화라고 주장하는 그의 영화에서는 미성년자가 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과 같이 반사회적인 개그를 디 워에, 12세 이용가 영화인 라스트 갓파더카섹스를 의심케 하는 장면을 넣었고, 1999년 작품인 용가리에서도 초반에 등장인물이 여자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등 섹드립이 어지간히 많은 편이다.[54] 뭐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둘 다 12세 이용가 판정을 받은 디 워라스트 갓파더어린이 영화라고 포장하는 게 문제다.

초기의 영구와 공룡 쭈쭈티라노의 발톱 두 작품도 등급 자체는 어린이 영화에 속하지만 정작 피가 철철 흘러나오거나, 썰려 죽거나, 불타 죽는 장면 같은 것들은 애들이 보기엔 거북하고 무서웠다.[55] 또 그가 찍은 영화들엔 폭력적인 장면도 은근히 많은데, 대표적인 게 영구람보에서 영구가 M60 기관총으로 베트콩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장면. 이는 우뢰매에서 에스퍼맨이 외계인을 무찌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린이 영화미국에서도 폭력은 금기로 되어 있으며, 같은 월남전이 배경인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의 무공이 적을 사살하는 게 아니라 부상 당한 아군을 구출하는 것임을 상기해보면 영구람보에 나오는 사살 장면 등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부적절해 보인다.[56]

심형래전두환 정부 중후반기부터 노태우 정부 시기까지가 코미디언으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는데, 한창 방송 검열이 심했던 시절 내지 영향이 남았던 시기인지라 당연히 검열에 관련해서 여러 불편한 경험을 해 봤고[57], 유머 1번지가 당대 10대들에게 인기를 많이 얻었던 프로그램이기는 해도 당대의 학부모들로부터 항의도 꽤 들어왔던 경험도 해보았기 때문에 "이게 어디가 애들이나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는 거야?"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고, 이는 그 반동에서 생긴 경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반공 영화반공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 당하는 장면이 나와도 '반공'이라는 내용 때문에 어린이 권장 영상이 되었을 정도였기에 영구람보는 어린이 영화가 되었고,[58] 90년대까진 당시의 기준에서는 그렇게까지 문제를 삼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21세기 작품인 디 워와 라스트 갓파더의 장면은 문제가 된다.

심형래는 '어린이 영화'에 과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냐면 아이들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 관점과 사상이란 것이 1980년대 영구와 땡칠이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설정만 넘쳐나는 용가리를 축소화한 것이라든지, 디 워 제작 시에 "아이들은 90분을 넘기면 지루해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좀 축소했다든지...

심형래어린이 영화가 옛날만큼 흥행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1980년대 독재 치하 반공 국가에 개발도상국이고 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대한민국은 21세기에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정보화가 진행된 상황이라 세월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형래의 전성기와 현재는 정서의 차이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각본 수준도 너무 저질이다. 그가 각본에 참여한 디 워나 라스트 갓파더는 스토리가 너무 뻔하고 빈약한 부분을 '볼거리' 등으로 채운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채우는 수준조차도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

심형래 본인이 퀄리티에 문제가 있다는 비평에 대해 어린이 영화니까 괜찮다고 말하는데, 이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어린이 영화냐 아니냐가 퀄리티를 비롯한 완성도의 척도인 기준이 될 수도 없거니와 이 자체가 어린이들을 무시하는 구시대적인 어른의 시각에 불과하다. 당장 아동 대상으로 제작하는 미국 제작사들인 디즈니, 픽사[59], 드림웍스, 일본스튜디오 지브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아동물들인 터닝메카드, 플라워링 하트, 생일왕국의 프린세스 프링,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등도 비평은 어느 정도 들었을지언정 완성도 면에서는 큰 이견 없이 높은 평을 받았다. 애초에 그 회사들이 성인들도 즐길 만 하거나, 수십 년 후 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명작으로 기억할 만한 그런 대작 어린이 영화를 주력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기업들이기도 하다. 주 대상층이 어떻건 간에 그 대상이 단순히 애들이라고 해서 완성도가 낮아도 된다는 것은 창작자라면 해선 안 될 말이다[60].

사실 대상이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정상적인 제작자라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나 교훈을 정하고, 완성도를 신경 쓰며 만들기에 창작자로서 특출난 자질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함부로 저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당장 터닝메카드, 생일왕국의 프린세스 프링 등이 아이들이 관심을 끌 만한 콘셉트를 가져온 것도 그렇고, 그 제작자들 역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제작했는지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진지한 고민을 하고 무척 공을 들이며 만들었다는 얘기.

오히려 타깃이 아이들이라면 다른 장르나 주제들보다도 상당한 난이도를 요구한다. 일단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이 순수한 아이들 입장에서 그려낸다는 것도 상당히 고된 일이고, 성인이 되고 나서 느끼는 흥미점은 아이들의 흥미점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낄지 예측하고 만드는 건 따로 아동학이라도 공부해야 할 만큼 녹록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성인층이 주 타깃인 영화들은 성인 아마추어 팬덤조차도 어떤 점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짚어주지만, 아이들은 구체적인 비평을 안 하거나 못 하거나 아예 비평을 하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전문적인 비평가의 평가만으로도 작품의 어디가 문제인지 조목조목 알기는 쉽지 않다.

심형래의 역량과는 대조적으로 영구아트무비에 인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용가리의 스태프들 다수가 후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다른 성공한 한국 영화에 참여한 바 있으니 스태프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SF의 꿈을 키운 여러 인재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입상 경력자도 있다. 특히 개중에는 이후 알리타: 배틀 엔젤의 CG를 감독한 김기범 감독도 있다. 이들은 심형래의 비전에 감명 받아 영구아트무비에 입사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국내, 해외에서 인정받는 현직 CG 업체의 사장, 이사들 중 영구아트 출신도 다수이다. 이런 괜찮은 스태프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도 참패하고 영화도 악평을 들은 것은 결국 감독으로서 또는 경영자로서의 심형래의 자질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용가리를 촬영할 때는 OST 역시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유승준[61]조성모까지 동원되었다. 그러고도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심형래용가리를 촬영할 때 수원시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촬영했는데, 이 영화가 대망해버리자 한때 수원시와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이러한 일례가 아니더라도 심형래는 여러 곳에서 후원 받아 거의 항상 풍족한 예산으로 영화를 촬영했고, 특히 디 워3500만 달러[62] 가량의 예산이 들어갔다. 여태까지도 한국 영화 중 저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간 작품은 약 4000만 달러를 들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제외하면 없다. 그리고 설국열차는 개봉 전부터 해외 판권 선판매로 제작비의 절반부터 먼저 회수하고 시작했다. #[63]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는 이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동업자였던 남기남김청기는 먹히는 작품을 찍어서 짭짤하게 수익을 올리기도 했고, 좀 더 괜찮은 수준의 작품을 찍을 능력도 있기는 했었지만, 심형래는 아예 영화 자체로 순익을 내본 적이 없고, 작품 자체의 질도 CG와 그래픽 정도를 제외하면 매번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만 잔뜩 끼친 셈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예산을 엉뚱한 곳에 썼다는 점이다. 분명 남기남 감독식 빨리 찍기는 예산이 많이 들어갈 수가 없고, 영화 촬영 시간 또한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아트무비가 후원을 받는 것에 비해 재정이 상당히 부실한 데다가 작품 편수도 적다. 이러한 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누군가 예산을 영화 촬영이 아닌 엉뚱한 곳에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후술하는 바에 의하면 그 원인은 바로 심형래 본인이다.

남기남 감독식 빨리 찍기와 어우러져 영화의 총체적인 실패를 만들어낸 부분. 심형래CG 부문에서만 집착적인 투자를 했지만 CG를 아무리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내실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64] 기본적인 스토리라인과 연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특히나 각본이라는 부분에서는 누구나 실소를 자아낼 만한 수준이었다. 같은 소재를 쓴다 하더라도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서 관객들을 이입시켜야 하고 연출에서 그 이입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데, 심형래의 각본은 우뢰매나 영구 시리즈 수준에 고정되어 있었다. 디 워의 예를 들자면 시놉시스와 실제 영화 시나리오가 일치하기만 했어도 뛰어난 수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디 워는 시놉시스와 실제 영화 시나리오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 무협 작가가 담당한 시놉시스에서는 튼튼한 판타지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상에선 그 반의 반도 담지 못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디 워 마지막에서 용이 여의주를 가지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봐선 영...

심지어 본인이 출연한 우뢰매도 데일리와 에스퍼맨의 연애 스토리와 반전 스토리가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탄탄하게 짜여 있고 영구 시리즈도 아이디어는 좋은 부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심형래 본인이 감독을 맡으면서 스토리의 질이 더욱 퇴화한 것이다.

'왜 저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말이 돼? 쟤들은 바보인가?' 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서 영화에 이입하기 힘들다. 거기에 연출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장면도 몰입 →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뜬금없는 CG 자랑질에 그쳐버리니 이게 영화를 보는 건지, 홍보 무비를 보는 건지 모를 수준이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감독 수행, 영화 공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아무리 많은 투자와 작업으로도 좋은 물건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만 것.

물론 SF나 판타지 장르 영화라는 게 상상력이나 현실이 아닌 가상적인 모습은 어느 정도 있어야겠고 꼭 모든 장면을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할 의무는 없긴 하다. 만화나 영화라는 건 그저 장면을 보여주고 관객들이 그 장면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게 기본이니까. 단, 이런 각본으로 전개되는 작품의 거의 대다수가 저예산 B급 괴수물 혹은 히어로물이 나오는 캐릭터들의 패턴인데, 심형래의 영화는 한국 영화 기준으론 저예산이 아닌 무려 엄청난 돈이 든 블록버스터 영화로 홍보한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디 워 때 돌던 루머 중에서는 미국인 시나리오 작가가 IMDb에 올린 내용이라고 알려진 루머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를 미국 헐리우드에서 뽑아서 각본을 짰는데 심형래가 맘에 안 든다고 다 뜯어 고쳤고, 되려 엉망이 되어가는 각본에 항의하던 미국인 작가를 해고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건 루머일 가능성이 높은 게 소모품 취급 받는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와는 달리 미국에서 이딴 짓하면 큰일난다(...) 크레딧에 작가 이름 올라가는 상황에서 그 시나리오 내용을 협의도 없이 막 뜯어 고치면 얄짤 없이 소송 걸린다. 게다가 미국은 작가도 중간에 개인 매니저나 매니지먼트 회사[65]를 끼고 일하는 시스템이라서 작가가 직접 항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굳이 이 가설에 신뢰성을 찾는다면 '미국인 작가가 초고를 던져줬는데 심형래가 반려시켰다' 정도지 원고료를 떼인 것도 아니고 경력에 해가 될, 자기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가지도 않는데 작가가 항의까지 할 이유가 없다. 여러 작가들한테 선금 주고 시나리오를 쓰게 했는데 제작자 마음에 안 드는 결정 원고가 안 나오는 건 헐리우드에서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라서 원고료만 제대로 지급됐다면 작가가 자신의 원고가 채택 되지 않았다고 딱히 화 낼 이유도 없다. 결국 그냥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들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해서 상상해서 만든 루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

영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다룬 예술 작품이다. 따라서 훌륭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만큼 예술과 철학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심형래가 만드는 영화들에서는 그러한 예술과 철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심형래가 사람과 사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을 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형래가 만드는 영화들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들인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 같이 사회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 고차원적인 예술 작품들이 나올 수가 없다.

심형래 본인의 입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해 '잔인하고, 학살의 현장이나 남의 아픔을 이용한 영화래야 예술인가.'라고 평가절하하거나 미투 운동에 대해 '그런데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 등이 나오면서 개그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개그나 유머를 하려고 해도 서로 경계하고, 무서워하게 됐다.'라는 부정적인 발언을 했던 일들을 보면, 그는 애초에 '사회적인 문제들을 공론화시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은 나쁘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시선으로 사회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온갖 구설수와 충돌에 지쳐서 정치적인 소재를 피하는 제작자와 관객도 많고, 정치적 메세지에 충실하다고 해서 영화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형래가 만들었던 영화가 당시 아이들이나 좋아할 지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소재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1980~90년대까지는 누군가의 추억이었고, 나름대로 상업적 성과도 이루었다. 만약 심형래의 영화 활동이 1990년대에 끝났다면 시대적 한계가 많았단 평을 들었을지언정 진지하게 문제 삼는 의견은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형래는 2000년대가 지난 뒤에도 영화에 대한 고찰과 고민을 거부하는 태도를 이어나가는 바람에 기존의 장점이 시대착오로 변해버렸다.[66][67]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의 대중 문화 시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커지고 유튜브 같은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이 보편화되어 볼거리가 넘쳐나는 데다가,[68] 시청자들의 눈도 10년, 2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어린이들한테도 외면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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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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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주병진
배연정
(1990년)
심형래
김미화
(1991년)
이경규
박미선
(1992년)

파일:KBS 로고.svg 코미디대상 대상
김형곤
(1987년)
심형래
(1988년)
임하룡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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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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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시리즈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1994년 조사는 갤럽리포트에서 해당 조사의 시원 조사로 발표된 바가 있다.
1994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이휘재 이경규 이경실 임하룡 이홍렬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공동 7위 9~11위(순위 미발표, 가나다순)
심형래 김미화 이용식 구봉서 김병조 주병진 }}}
2004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주일 신동엽 유재석 김미화 정준하
6위 7위 8위 공동 9위
김용만 이경규 배삼룡 강호동 김제동
2009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유재석 강호동 이수근 신봉선 이주일
6위 7위 8위 9위 10위
최양락 안영미 심형래 박지선 유세윤
2014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유재석 김준호 강호동 김준현 이국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7위 8위 9위 공동 10위
이경규 신동엽 박명수 김지민 김기리 신보라 }}}
2019년
1위 2위 3위 공동 4위
유재석 강호동 박나래 신동엽 이영자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경규 이수근 양세형 송해 전현무
11위 12위 공동 13위
김준현 김병만 박명수 김구라
2024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박나래 이경규
6위 7위 공동 8위 10위
장도연 이수근 탁재훈 전현무 김준호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서장훈 박명수 이용식 이영자 하하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좋아하는 한국영화, 애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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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음력 생일인 1월 3일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생일도 음력 생일에 맞춰서 쇤다.[2] 안효공(安孝公)-문정공(文貞公) 희수(喜壽)파 23세. 심온의 18대손, 심희수의 12대손으로 항렬이 엄청나게 높은 편에 속한다. 무려 심혜진(23세손)과 같은 항렬이며 48살이나 연상인 북한 배우 심영(25세손)이 심형래의 손자 항렬이다. (족보)[3] 네이버 프로필 기준.[4] #[5] 오래 전부터 고려대를 나왔다고 알려졌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6] KBS에서는 명절 특선 때마다 추억의 개그맨들을 섭외해서 개그콘서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이봉원이나 최양락 등 여러 개그맨이 섭외됐지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추억의 개그맨은 심형래였다.[7] 유재석이 해외 인기를 고려했을 때 넘을 수도 있지만 유재석도 국내 인기만 고려했을때 최전성기의 심형래의 인기에는 못 미친다는게 주 평가이다.[8] 영구람보에서 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구는 저능아라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었지만 군의관에게 떡을 뇌물로 줘서 기어이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만다.[9] 단, 폭력, 도박, 공금 횡령 등은 모두 무혐의가 나왔고 임금체불에서는 1심에서 집유 2년, 그 뒤 23명 중 19명과 합의를 완료하여 항소심에서 15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즉, 심형래는 그렇게까지 악인은 아니고 그냥 사업가로서 능력이 좀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10] 당시는 아무런 증거 없이 막연한 소문만으로 연예인들을 검사나 형사들이 수사한 적이 많다. 현재는 위헌이라 안 되지만 1970~80년대에는 매일같이 일어나던 일이었다. 가수왕 조용필이 무고하게 대마초 혐의로 체포당해서 사흘간 고문까지 당하고도 몸에서 대마초 성분이 전혀 안 나와 무혐의가 되자 아무 보상 없이 풀려난 것도 모자라 방송출연 정지를 당해 극심한 중증 우울증에 걸렸었다. 자살충동까지 자주 들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검사와 형사가이 잘못해놓고 의혹을 받은 것만으로 연예인 책임이라고 거꾸로 방송국 간부들을 협박했다고 한다.[11] 놀랍게도 이창훈과 함께 바보 학생을 연기한 작품이다. 심지어 선생님 역은 서세원이다.[12] 과거에 본인이 주인공을 맡았던 변방의 북소리, 내일은 챔피언,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폭소소동, 영구야 영구야 등의 콩트 코너를 재현했다. 심형래 본인과 KBS 공채 개그맨 후배들이 출연했으며 각 코너 사이에 토크쇼 형태의 콩트가 있었는데 이 토크쇼에는 당시 KBS 아나운서였던 전현무가 MC 역할을 하고 심형래의 선배인 엄용수, 후배 이봉원 등이 출연했다.[13] 심형래가 영구가 아닌 천재 기믹으로 나온다. 백일섭이 퀘스트를 주고 심형래가 이 퀘스트를 성공하면 백일섭에게 따귀 1대를 때리며 심형래가 백일섭의 따귀 7대를 때리는 데 성공하면 백일섭의 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14] 실제로는 심형래가 한참 선배지만 작중에서는 친구로 나온다. 둘이 덩치도 거의 비슷하다.[15] 영구가 꿈에서 빼어난 미모의 여자가 드라큐라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되는데, 다음날 꿈속의 여자가 미라라는 이름으로 전학오고 영구네 마을에서 사람들이 실종된다. 영구는 미라가 드라큐라라고 확신하고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미라가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을 막게되는데 미라는 자신이 드라큐라에게 물려서 그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고 울자 영구가 미라를 용서하고 친구들과 함께 우역곡절끝에 드라큐라를 물리친다. 마지막에 미라가 웃으면서 이제 자신에게 걸린 저주가 풀렸다고 영구를 껴안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친구들이 얼레리꼴레리 하면서 둘이 같이 있게 해주자고 떠나고 영구는 예쁜 여자애가 자기를 껴안고 좋아한다는 말에 좋아하는데 갑자기 영구를 안고있던 미라의 눈빛이 변하면서 입안에서 감춰진 송곳니가 나오면서 영구의 목을 물려고 하며 영화가 끝난다. 즉, 미라는 드라큐라와는 별개의 흡혈귀였으며 영구는 미라에게 물려 자신도 흡혈귀가 되는 배드엔딩인 것이다.[16] 근데 보면 원작 초반 내용 대충 간추린 느낌이 든다.[17] 놀랍게도 심형래 유일의 멜로영화이다.[18] 해당 작품에서는 본인 이름인 심형래로 출연했다. 444년전 한 고인이 마왕을 물리치고 봉인하는데 마왕이 부활하고 마을을 지나가던 도사가 형래를 제자로 받아들여 도술을 전수해준다. 그 도술은 유명인들의 능력을 시전자가 쓸수있는 도술인데 번번히 실패하자 도사가 네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강하고 멋진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자 영구가 황비홍 영화를 떠올려서 황비홍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고 자신이 성에 황비홍을 더하여 심비홍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맞서 싸워 결국 마왕에게 이겨 다시 봉인한다. 마지막에 도사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444년전 마왕을 봉인한 사람으로 이미 죽었지만 마왕이 다시 부활할 것을 염려하여 성불하지 않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남아 있었던 것. 마지막에는 형래를 대견해하며 성불한다.[19] 예고 영상만 나왔다.[20] 다만 제작 자체는 좀 되다 말았던지, 당시 이 영화에 쓰일 미니어처를 작업했었다는 관계자가 작업했었던 미니어처들 사진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관련 자료가 여럿 있다. 이름도 그렇고 세트장의 분위기로 봤을때 추억팔이 컨셉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2011년 개봉예정이었다는데 영구아트가 파산하지 않고 2010년대 초반 좀 지나서 개봉했다면 당시 뉴트로 붐에 편승했을 작품 정도로 남았을지는 모른다. 전 관계자의 사진들로 추정해볼수 있는 사실은 미니어처를 배경으로 인형들이 스톱모션으로 움직이는 형태의 애니메이션이 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당시 심형래의 CG 집착으로 볼때 미니어처 배경을 기반으로 CG 애니메이션의 조합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남겨진 작업 사진을 보면 미니어처 인형도 가끔 보이는데, 미니어처 배경에 인형 움직임에는 CG를 혼합한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21] 2025년 개봉을 목표로'만' 하고 있다.[22] 극장 애니메이션 판의 CG를 영구아트무비가 외주받았다.[23] 둘 다 횡령 건으로 곤욕을 치른 경력이 있다.[24] 후지이 미나 말고도 차유람도 똑같은 실수를 했는데, 팬들이 정정해주었다.[25] 그래도 출연진 중 한 명인 권민중은 나중에 스타덤에 앉기라도 했다.[26] 영어 위키백과를 보면, 2006년에 케이디 스티클랜드와 결혼했다고 언급돼 있다.[27]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도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자주 했었지만 심형래와는 달리 성공했다. 그래서 오히려 본보기로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다.[28] 사실 아무리 인기 캐릭터로써 영향이 크다지만 배우의 이름이 있는데도 작품 캐릭터인 '미스터 빈'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인터뷰나 공식 석상 등에서는 아주 교양 없고 몰상식한 표현이다. 분명히 멀쩡한 이름과 명성이 있는데다가 아이언맨 역할 말고도 여러 경력이 있는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인터뷰 현장에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고 토니 스타크라고 언급하면 안 된다. 당장 본인을 언급할때 심형래가 아닌 영구 있잖아요 하면 뭐라고 반응할지.[29] 문법상 Can you do it이 맞다.[30] 분야는 다르지만 패턴은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주제 무리뉴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떠나게 된 이유가 이런 자세 때문이다.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감독이자 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인 무리뉴조차도 호불호가 갈리는 '마이웨이'식 운영으로 갈등이 생겨 첼시 FC로 돌아갔다. 유럽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지나친 권위의식이나 상하관계에서 나오는 똥군기를 비롯한 악습을 혐오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존중을 중요시한다. 무리뉴가 이렇게나 유능한데도 독선적이라서 팀을 나가게 됐다. 더 나아가 오카노 테츠, 닐 드럭만도 재능이나 실력이 있음에도 이러한 태도로 인해 반면교사로 전락했는데 하물며 무능하기까지 한 심형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실력이나 재능이 있더라도 남을 무시하거나 독선적이거나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한테 외면만 당하기 십상이다.[31] 사실 현대그룹을 세우고 일구는 과정에서 정주영은 더욱 무모한 시도를 많이 하고,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을 질책했을만도 하지만 정주영은 애초에 진행과 결과 둘 다 천지차이였다.[32] 물론 여러 가지 제약으로 촬영 기간이 한 달 이하였음에도 양질의 작품들은 많이 나와있긴 하다. 하지만 심형래는 거기에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 문제.[33]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저 사람들은 심형래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재능 넘치고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와 커리어가 갖춰진 명감독들이다.[34] 이 발언 뿐 아니라 시나리오나 스토리에 대한 심형래의 발언들을 보면 이 인물은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 또는 더 나아가 시나리오의 좋고 나쁨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시나리오, 즉 연출 등 다른 요소를 감안하지 않고 시나리오만 똑 떼놓고 보더라도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시나리오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 경우 그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가 반드시 영화의 완성도 및 흥행과 직결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무엇을 원동력 삼아 줏대있게 나아가느냐이고, 대부분 그것이 시나리오일 뿐이다. 일례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이나 조지 밀러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시나리오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구원을 위해 달려가는' 단순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양 쪽 영화의 매력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동시에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모두 극찬을 받은 영화였다. 즉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라도 연출이 죽 쑤면 망하고, 시나리오는 평범해도 연출 등으로 성공하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심형래의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은 "좋은 시나리오 이전에 평범한 수준으로라도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니다" 에 가깝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중에는 시나리오 자체는 평범하고 통속적인 클리셰에 의존하는 경우도 물론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들은 최소한 완성된 시나리오로서 관객이 납득할 수준은 된다. 달리 말하자면 갑돌이와 갑순이 정도의 시나리오라도 감독의 기량에 따라서는 좋은 멜로영화 한 편을 만들수 있다. 하지만 심형래처럼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 어떤 마음인지는 알 수 없는데 갑순이는 집에서 밥을 먹고 갑돌이는 용가리를 잡으러 나갔다> 수준의 시나리오로는 관객이 납득할만한 작품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35] 애초에 반지의 제왕 자체가 현 시대 판타지 세계관 설립의 원조이자 교과서적인 작품으로서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있어 읽지 않을래야 읽지 않을 수 없는 수작 중의 수작이다. 감히 디워 따위가 비빌만한 클래스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현재 수많은 판타지에서 사용되고있는 절반 이상의 단어, 예를 들면 드워프, 미스릴, 호빗 같은 단어는 특유의 고유명사로써 원래는 톨킨재단의 지적 재산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재단이 찾아내 마음먹고 소송을 걸면 크게는 저작권 침해까지 갈 사항이 지대하다. 웹 연재 당시 호빗으로 나왔다가 빠르게 파룸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한 던만추의 사례만 찾아봐도 알 수 있듯 현대 시대의 절대 다수의 판타지 작품들은 반지의 제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36] 2008년 KD미디어 발매 블루레이 4종으로 괴물,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디 워가 발매되었다. 당연히 디워를 뺀 3개 작품은 진작에 품절되어 컬렉터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으며, 개중 태극기 휘날리며는 판권이 정리되어 리마스터된 판본이 나오기 전까지 싯가 10만원대를 호가할 정도의 레어 아이템이었다.[37]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도 헛소리이다. 현기증(미국 영화), 소서러, 블레이드 러너, 시민 케인, 가타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칠드런 오브 맨과 같이 흥행에는 실패하였지만 명작의 반열에 오른 소위 '저주받은 걸작'의 수를 따지자면 셀 수 없을 정도이며 이 말대로라면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라 골든 라즈베리에 가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예술이라면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DC 확장 유니버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의 영화들이 왜 그렇게 혹평을 받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자.[38] 간혹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들을 보면 죄다 사제 총기들이거나 개인 소유 사냥용 엽총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에서는 빡빡한 규제를 받는다.[39] 현재까지도 괴물들의 소식이 들려오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별로 없고 대다수는 거짓으로 밝혀졌다.[40] 달리 말하면 20세기까지 영화계 기준으로는 최고의 흥행 작품이었다는 말도 된다. 가장 많이 벌어들인 만큼 가장 많이 봤을 테니까...[41] 참고로 앳킨슨은 자신이 미국인 취급당하는 걸 엄청나게 혐오한다. 영국, 아니 유럽을 넘어 세계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긋고 그 공을 인정받아 CBE 훈장까지 받고 2012 런던 올림픽 오프닝에 당당히 등장할 정도로 영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엄청난 인물이다.[42] 참고로 로완 앳킨슨은 90년대 인터뷰에서 자신을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조국 영국을 아주 사랑하는 애국자이다.[43] 과거 심형래와 임하룡이 개그 코너에서 콤비를 이룰 때 흔하게 쓰던 드립이다. "상태 안 좋은 애라서", "우리 관장님도 요새 상태가 안 좋으시네요." 등등, 있는 그대로 직역해서 진짜로 건강상태가 나쁘다느니 하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44] 당연지사인 게 영화 감독 자신이 왜 영화 감독이라 불리겠는가? 그리고 그 영화 감독이 뭘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며 본인의 커리어를 어떻게 쌓는지 감안해본다면 영화 감독이 촬영을 한다는 것은 돈벌이+명예+본인 만족+커리어 추가+평판 상승 등등 본인이 얻고 싶은 걸 상당수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받는 거다.[45] 이는 비단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만화니 다른 것들도 다 마찬가지다.[46] 물론 진짜 총감독은 김지훈이지만, 기획과 스토리 담당은 윤제균이 맡았다.[47] 다만 SF적 요소도 어느 정도는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48] 날림공사도 당연히 비용이 적게 들어 당장은 경제적으로 보인다. 당연히 기간이 짧으니까. 하지만 크게 보면 결국 손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장본인인 이준은 손해를 본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 아예 몰락한뒤 자멸했다.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인명피해 까지 발생할 수 있는 날림 공사와 그냥 돈만 날아가고 평판만 깎이는 날림영화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49] 예시로 성룡은 사소한 장면도 NG을 엄청 많이 냈으며, 마더의 엔딩 장면은 태양빛이 비치는 버스를 촬영하기 위해 모든 어려운 악조건을 찾아내서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원테이크로 촬영하였다.[50] 이렇게 비용이 늘어나면 당연히 손익분기점도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손익분기점만큼 올라가는 것도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같은 이익을 낸다면 최대한 쓰는 비용이 적게 드는 쪽을 택하는 것이 어쨌든 비용 대비 이익은 크다.[51] 특히 김기덕 감독은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기본적으로 영화가 정적이고 영화의 종류에 따라서는 뫼비우스처럼 아예 인물 대사가 없는 영화도 있다. 무엇보다 김기덕 감독이 맡는 영화 대부분이 상업영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 풍경을 그려넣고 인물간의 갈등에만 집중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있는대로 끌어올린 드라마 스타일이다 보니 이런 빨리 찍기가 통하기도 하는 것. 때문에 때때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안정되지 않은 카메라 샷이 더욱 현실성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감히 심형래의 빨리 찍기와 비교할 수 없다.[52] 물론 실제 촬영 기간이 아닌 각본 구상, 캐스팅 등 부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합쳐서.[53] 사실 이 말도 문제가 있는 게 자칫하면 어린이 영화 전체와 어린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주토피아겨울왕국, 처럼 어린이를 주요 타겟으로 한 영화들 중 성공한 영화들이 완성도가 낮았는가? 어린이 영화건 아니건 영화가 호평을 들으려면 기본적으로 완성도부터가 상당히 높아야 한다.[54] 참고로 영화 관람 등급은 심의 위원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결정하는 것이다. 즉, 카섹스를 의심케 하는 장면을 보고도 영화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보는 사람들의 정서에 크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라스트 갓파더의 선정성은 보통이다.) 12세 이용가 등급을 매긴 것이다.[55] 일부 장면은 어른이 봐도 섬뜩할 정도.[56] 한국에선 전체관람가인 겨울왕국이 미국에선 PG(전체관람가이나 보호자의 지도 필요) 등급을 받은 것도 살인 장면이 있는 몇몇 액션 장면과 결말 때문이다.[57] 예를 들면 코미디에서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다뤄서는 안 된다거나, 여자 배역 이름에 순자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된다거나, 대머리를 개그 소재로 쓸 수 없는 식으로 자체 검열이 이루어졌고, 자연히 대본 검열도 왕왕 이루어졌다. 그나마 노태우 정부 때는 검열이 풀어지기는 했지만, 3당 합당 이후로는 눈치 보기 경향이 다시 심해졌다.[58] 참고로 베트콩에 대한 9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빨갱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에야 라이따이한 문제 등으로 좀 나아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반공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봐도 당시와 지금의 기준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59] 특히 이 회사가 만든 인크레더블 2는 상영 시간이 118분인 것과 동시에 미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으로, '아이들은 90분을 넘기면 지루해한다'는 주장을 가장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60] 영화가 아니라 요리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신선한 재료를 안 써도 된다. 어차피 아이들은 신선한 재료와 몇 달 된 재료를 구분하기 힘드니까."라는 소리와 똑같다.[61] 알다시피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큰 인기를 누렸고 위상도 높았고 평판도 좋았다. 유승준은 병역 문제를 떠나서 실력, 춤을 추면서 라이브까지 소화하는 가창력과 댄스 퍼포먼스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났다.[62]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의 제작비가 1100만 달러 가량 들었다.[63] 2017~2018년에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도 1~2편 합쳐 총 제작비가 400억 정도로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1편만으로도 해외 판권 판매까지 더해 제작비를 회수했으며, 2편은 모두 수익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신과 함께가 상당한 수준의 CG를 구현해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디 워가 300억을 어떻게 갖다 썼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물론 신과 함께도 대박난 흥행과는 별개로 스토리 면에서는 비판을 받았으나, 디 워처럼 처참히 망가진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CG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다.[64] 마이클 베이롤랜드 에머리히도 CG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최후의 기사와 문폴은 각본에서 혹평을 받았지만 영화 자체의 수준은 적어도 심형래의 영화보다는 훨씬 높다.[65] 이 양반들이 일거리를 찾아다가 작가한테 던져주고 수수료를 먹는다. 그래서 미국은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서 억지로 인맥을 틀 필요가 없다. 미국 영화에서 작가 캐릭터가 등장할 때 비서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매니저들.[66] 이는 과거 대본소 만화 시절에 인기를 얻었던 한국 만화가들이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인터넷에서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는 웹툰 시대가 열리자 달라진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서서히 사라져 간 사례와도 같다.[67] 애시당초 1987년 6월 항쟁으로 사람들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표현의 자유를 되찾았으며 이로 인해 영화 산업에서 어마어마한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사회비판적 내용이 포함되는 영화는 계속해서 제작되었다. 당장 1990년대 초에도 코미디 영화인 '투캅스 시리즈'가 부패 경찰에 대한 내용을 코믹하게 그려서 대흥행하기도 했다.[68] 당장 유튜브에 검색만 해도 무료로 볼 수 있는 동영상들이 수십억 개나 나오는 세상이니, 1980~2000년대처럼 무조건 TV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코미디 프로그램들을 억지로 볼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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