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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젤로 다리에서 바라본 모습. | 공중 촬영 사진.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글 | [1] |
영어 | [2] | |
프랑스어 | [3] | |
국가·위치 |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0년 | |
등재기준 | (i)[4], (ii)[5], (iii)[6], (iv)[7], (vi) [8] | |
지정번호 |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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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el Sant'Angelo
1. 개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박물관이자 관광지. 이름은 '천사의 성'이라는 뜻이다.2. 역사
산탄젤로 성은 원래 134년에서 139년 사이 즈음에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쓰일 용도로 처음 세워졌다. 당시에는 하드리아누스 영묘로 불렸는데, 로마 제국 시기에는 꼭대기에 정원과 황금 사두마차상이 올라가 있는 구조였다. 13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그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했고, 이후 사비나 황후와 하드리아누스의 양자인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역시 이 곳에 묻혔다. 하드리아누스 영묘는 이 이래로 로마의 역대 황제들이 묻히는 황실 무덤으로 자리잡았고, 이 같은 관행은 217년에 카라칼라 황제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영묘를 지으면서 무덤 앞을 흐르는 테베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함께 건설했는데 이 다리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산탄젤로 다리이다.[9]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붙어있던 로마 시절의 장식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야만족들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영묘는 거대한 요새로 용도가 바뀌었고, 이 요새가 로마 시내를 감싸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통합되면서 거의 궁전과도 비슷했던 옛 영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렸다. 410년에 서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한 후 대대적으로 약탈한 사코 디 로마의 혼란통에 황제들의 유해들을 담은 관들이 깨지고 엎어져 결국 사라져버렸고, 537년에 또다시 고트족들이 침입해 들어올 때에 영묘를 장식하던 청동 조각상들을 침략군들에게 돌덩어리 대용으로 던지면서 하드리아누스 영묘의 모습은 갈수록 황량해졌다.[10]
산탄젤로 성이 현재의 '산탄젤로'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590년 경이었다. 590년경에 로마 시내에 흑사병이 휩쓸고 있을 때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1세가 신에게 참회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면서 요새 바로 앞의 다리를 지나는 도중, 그레고리오 1세는 요새 상공에서 대천사 미카엘이 재앙이 끝났다는 의미로 자신의 검의 피를 닦은 후 검을 검집에 넣는 모습의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레고리오 1세는 이 것이 신이 내린 역병의 재앙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충분히 참회를 마쳤으며, 신이 이에 만족하신 증표라고 선언했다. 그레고리오 1세는 자신이 미카엘의 환시를 본 이 요새를 '천사의 성', 즉 산탄젤로 성이라고 불렀고, 그 이래로 완전히 산탄젤로 성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다.[11]
그레고리오 1세 이후 즉위한 교황들은 14세기부터 산탄젤로 성을 거대한 성이자 궁전으로 개조했다. 교황 니콜라오 3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산탄젤로 성을 잇는 비밀 통로인 '파세토 디 보르고'를 지었다. 클레멘스 7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1527년에 로마를 함락하자 대성당에서 도망쳐 이 산탄젤로 성으로 도피했으며, 후대 교황들도 정부를 만나거나 비밀 모임을 가질 때에 이 산탄젤로 성을 즐겨찾고는 했다. 이렇게 산탄젤로 성은 교황의 대피처이자 요새, 성, 감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1901년에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그 이래 현재까지 쭉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는 2016년 기준으로 1,234,443명의 방문객을 맞을 정도로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3. 내부
내부 단면도[12] | 나선형 통로의 내부 |
옥상 한가운데에는 그레고리오 1세가 보았다는 대천사 미카엘의 청동상이 있다. 청동상은 교황이 본 모습 그대로 역병의 재앙이 끝났다는 의미로 검을 검집에 넣고 있는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다. 원래 이탈리아의 조각가 라파엘로 다 몬테루포가 흑사병이 수그러든 것을 기념하여 처음 대리석으로 미카엘의 상을 깎아 만들어 세웠으나, 모두 외국의 침략을 받아 끌어내려지거나 약탈당하고 말았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6번째로 세워진 조각상으로, 플랑드르의 조각가인 안톤 폰 베르샤펠트가 18세기에 만들었다. 1789년에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서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붉은색, 흰색, 푸른색으로 칠해지는 수모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조각상 옆에는 한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를 '자비의 종'이라고 하며 성의 수감자들이 처형당할 때마다 울리던 종이라고.
성의 옥상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해서 로마 시내의 경치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으며, 상당수의 관광객들은 옥상에서 로마를 한 번 내려다본 다음 그대로 내려가 돌아간다. 로마의 시내 풍경 외에 옥상에서 둘러볼 만한 것은 딱히 없는데, 굳이 꼽자면 옥상에 전시되어 있는 대포들과 무더기로 쌓아놓은 포탄들 정도가 있다. 내부를 지나가면 옛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무기들 역시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천사의 성'이라는 이름답게 천사상들이 몇 개 서있는데, 독특하게도 대리석으로 깎은 석상에 청동 날개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눈에 띈다.
4. 산탄젤로 다리
다리의 전경 | 다리 위에서 본 모습 |
클레멘스 7세는 1535년에 책을 들고 있는 베드로, 바울로의 석상을 세웠으며 얼마 후 모세, 노아, 아담, 아브라함의 석상들이 연이어 세워졌다. 16세기 이래 몇 백년 동안 처형당한 사람들의 머리들을 이 다리 위에 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산탄젤로 다리에서 가장 유명한 여러 천사상들은 클레멘스 9세가 당대 최고의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에게 명해 만들도록 한 것이다. 다만 10개의 천사상들 중 베르니니가 직접 조각한 것은 오직 2개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클레멘스 9세가 개인적인 감상을 위해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방에 따로 가져가버렸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10개의 천사상들은 모두 후대의 조각가들이 베르니니의 디자인 그대로 조각해 놓은 것들이다.
현재 천사상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가시면류관을 들고 있는 천사' 조각상이다. 베르니니가 손수 조각했던 2개의 조각상들 중 하나로, 특유의 역동적인 디자인과 묘한 표정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이 교황 클레멘스 9세가 조각상을 개인 소장용으로 가져가버렸기에 지금 세워져 있는 건 파울로 날디니가 만든 복제품이다. '가시면류관을 들고 있는 천사' 조각상 외에도 '주사위와 의복을 들고 있는 천사', '면사포를 들고 있는 천사',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천사'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리석 천사상들이 9개 더 세워져 있다. 물론 직접 깎은 것들은 아니지만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것들인만큼 모두 역사성과 예술성이 있는 것들이니 다리를 지나가면서 한 번씩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서브컬처에서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황금의 바람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나오며, 디아볼로가 G.E.R.에게 얻어맞고 이 다리에서 떨어지며 최후를 맞이한다.
[1]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2]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3] Centre historique de Rome, les biens du Saint-Siège situés dans cette ville bénéficiant des droits d'extra-territorialité et Saint-Paul-hors-les-Murs[4]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5]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6]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7]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9] 당시의 다리와 현재의 산탄젤로 다리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다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상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외에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장식들도 안 붙어있었다.[10] 이탈리아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에 의하면 이 난리 속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관 뚜껑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오토 1세의 관을 장식하는 데에 쓰였다고 한다.[11] 이 것이 산탄젤로라는 이름의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기원이지만 15세기 한 여행자가 성 위에 세워진 천사상을 보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12] 위쪽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통로의 모습이 보인다.[13] 신곡에는 '성 베드로 다리'에 떼거지로 몰려드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