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前 축구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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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Владимир Југовић Vladimir Jugović | |
출생 | 1969년 8월 30일 ([age(1969-08-30)]세) | |
유고슬라비아SFR 세르비아SR 라시나구 트르스테니크 밀루토바츠 | ||
국적 |
(1969~1992)
(1992~2006)
(2006~)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 |
신체 | 179cm | |
소속 | <colbgcolor=#eeeeee> 클럽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9~1992) → FK 라드 (1990 / 임대) UC 삼프도리아 (1992~1995) 유벤투스 FC (1995~1997) SS 라치오 (1997~199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8~1999) 인테르나치오날레 (1999~2001) AS 모나코 FC (2001~2003) FC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 (2003~2004) 로트 바이스 알렌 (2004~2005) |
국가대표 | 41경기 3골 (유고슬라비아 / 1991~2002) |
1. 개요
구 유고슬라비아[1]의 축구선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절대적인 핵심 선수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보는 만능 미드필더였으며 공수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뛰어난 태클 실력과 정확한 패싱, 무서운 중거리 슛, 넓은 시야와 많은 활동량 등 말 그대로 어딜 두어도 못하는 것 없이 언제나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던 유고비치는 세르비아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2. 클럽 경력
유고비치는 15세의 나이에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전 선수였던 토미슬라브 밀리체비치(Tomislav Milićević)의 스카우팅을 통해 클럽에 합류했다. 그렇게 유고비치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유스 동기들인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데얀 사비체비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와 함께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평가를 받았다. 프로데뷔는 같은 연고지를 둔 FK 라드로 임대를 가서 이루어졌고 1989-90 시즌 후반기에 16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는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류프코 페트로비치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감독으로 부임한 후, 유고비치는 다시 팀으로 돌아와 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후 1990-91 유러피언컵에서 활약을 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고, 결승전에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꺾고 우승을 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같은 해 열린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콜로-콜로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는데, 유고비치가 팀의 첫 두 골을 모두 넣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 활약으로 그는 인터컨티넨탈컵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의 커리어가 끝날 무렵, 그는 '레드 스타의 스타' 칭호를 받으며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축구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하나 그 다음시즌에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하였고, 디펜딩 챔피언이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유러피언컵에서 UC 삼프도리아에게[2]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고, 그것이 유고슬라비아 클럽이 참가한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결국 다른 동료들처럼 유고비치도 부야딘 보슈코브 감독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로 건너왔고, 그의 실력은 최고의 무대이던 세리에 A에서도 통하였다. 유고비치의 우승 행진은 그대로 이어져 삼프도리아 생활 2년차인 1993-94시즌에 팀을 코파 이탈리아에 우승시켰으며 주목할 만한 활약으로는 1994-95 UEFA 컵위너스컵 준결승 1차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두 골을 넣은 것이 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연장 후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유고비치는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시작한 유벤투스 FC로 이적했다.
당시 유벤투스의 감독은 마르첼로 리피였는데, 유고비치는 첫 시즌에 세리에 A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5-96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경기를 뛰며 FC 낭트와의 준결승전에서 1골을 넣어 팀의 결승 진출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안토니오 콘테의 교체 선수로 출전해 AFC 아약스와의 1-1 무승부를 이끌어낸 후 승부차기에서 유고비치가 마지막키커로 나섰고, 에드윈 반 데 사르를 상대로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유벤투스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는 아약스의 골키퍼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차기 전에 매우 침착했다고 회상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에도 그는 1년 더 유벤투스에서 활약했고, 도요타컵, UEFA 슈퍼컵, 1996-97시즌 스쿠데토까지 차지하며 선수 인생 최대의 전성기를 보낸다. 유벤투스에서 그는 총 77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 하에서의 훈련 강도에 대해 유고비치는 특별한 언급을 남겼다.[3] 그후 SS 라치오로 이적하여 한시즌 정도 활약한다.
유고비치는 라치오에서 두 번째 코파 이탈리아를 획득했다. 결승에서 밀란을 2차전 합계로 이겼고, 클럽은 또한 1998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모든 이탈리아 팀 간의 결승에서 인테르에게 패배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던 이탈리아를 떠나 1998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스페인의 라리가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했지만, 부상 등을 이유로 적응에 실패했고 소속팀 또한 2부로 추락하고 말았다. 유고비치는 유벤투스 시절에 자신을 중용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1999년에 인터 밀란의 감독직에 앉게 되자 그의 부름을 받고 두번째로 이탈리아땅을 밟게되지만, 또다시 부상이 겹치는 불행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인터 밀란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엑토르 쿠페르[4]는 그 즉시 유고비치를 전력감에서 제외했으며 이에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의 명문 AS 모나코로 이적해 유벤투스 시절의 절친한 동료 디디에 데샹과 재회했다. 물론 데샹은 이제 감독이 되어있었지만... 결국 기량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유고비치는 오스트리아, 독일의 하부리그를 전전하다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
유고 내전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아 미하일로비치와 비운의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1998년과 2000년엔 각각 월드컵과 유로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내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4. 기록
4.1. 대회 기록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9~1992)
- 유고슬라브 프라바 리가[5] : 1990-91 , 1991-92
- UEFA 챔피언스리그 : 1990-91
- 인터컨티넨탈컵 : 1991
- UC 삼프도리아 (1992~1995)
- 코파 이탈리아 : 1993-94
- 유벤투스 FC (1995~1997)
- 세리에 A : 1996-97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995-96
- UEFA 챔피언스리그 : 1995-96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1996-97
- UEFA 슈퍼컵 : 1996
- 인터컨티넨탈컵 : 1996
- SS 라치오 (1997~1998)
- UEFA 컵 준우승 : 1997-98
- 코파 이탈리아 : 1997-98
- AS 모나코 FC (2002~2003)
- 쿠프 드 라 리그 : 2002-03
5. 기타
아들이 전남 드래곤즈에서 주전으로 뛰고있는 베드란 유고비치라는 얘기가 돌았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 베드란 유고비치의 아버지 이름이 본 선수와 동명이인인데에서 비롯된 오해. 애초에 블라디미르 유고비치는 세르비아, 베드란 유고비치는 크로아티아로 국적부터가 다르다.[1] 현재는 세르비아[2] 이때 삼프도리아의 에이스가 로베르토 만치니였다.[3] "우리의 훈련 방식은 지켜보고 분석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쉴 시간이 없었고, 아침 첫 훈련은 체육관에서 40분간의 작업으로 시작해 달리기 세션으로 이어졌는데, 이건 단지 워밍업에 불과했다. 오후에는 전술 훈련과 축구 플레이가 결합된 트레이닝을 했고, 세 번째 훈련은 저녁 8시경에 주로 스트레칭을 포함했다. 그래서 우리의 성공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많은 부상을 겪은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어떤 클럽도 우리가 당시에 했던 것처럼 열심히 훈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4] 아르헨티나 국적의 감독으로 2년동안 발렌시아 CF를 지휘하면서 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시켰었다. 2000년과 2001년, 2년에 걸쳐 빅 이어에 도전했지만 우승에 실패하였다.[5] 지금의 세르비아 1부리그
분류
- 1969년 출생
- 1989년 데뷔
- 2005년 은퇴
- 라시나구 출신 인물
-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
-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은퇴, 이적
- FK 라드/은퇴, 이적
- UC 삼프도리아/은퇴, 이적
- 유벤투스 FC/은퇴, 이적
- SS 라치오/은퇴, 이적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AS 모나코/은퇴, 이적
- FC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은퇴, 이적
- 로트 바이스 알렌/은퇴, 이적
- 유고슬라비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