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28 13:34:44

마성(후한)

운대 28장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고밀후

등우
광평후

오한
교동후

가복
호치후

경엄
옹노후

구순
무양후

잠팽
양가후

풍이
격후

주우
영양후

채준
약양후

경단
안평후

갑연
안성후

요기
동광후

경순
낭릉후

장궁
양허후

마무
신후

유륭
전초후

마성
부성후

왕량
축아후

진준
참거향후

두무
곤양후

부준
합비후

견담
회양후

왕패
아릉후

임광
중수후

이충
괴리후

만수
영수후

비동
창성후

유식
산상후

왕상
고시후

이통
안풍후

두융
선덕후

탁무
}}}}}}}}}}}}}}}

후한서(後漢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2권 「명제기(明帝紀)」 3권 「장제기(章帝紀)」
유수 유장 유달
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 사마표의 속한서는 志에 해당. 후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3><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50%>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3><width=50%>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
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15권 「이왕등내열전(李王鄧來列傳)」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이통 · 왕상 · 등신 · 내흡 등우 · 구순 풍이 · 잠팽 · 가복
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오한 · 갑연 · 진준 · 장궁 경엄 요기 · 왕패 · 채준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임광 · 이충 · 만수 · 비동 · 유식 · 경순 주우 · 경단 · 왕량 · 두무 · 마성 · 유륭 · 부준 · 견담 · 마무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 24권 「마원열전(馬援列傳)」 25권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傳)」
두융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복담 · 후패 · 송홍,송유, · 채무 · 풍근 · 조희 · 모융 · 위표 선병 · 장담 · 왕담 · 왕량 · 두림 · 곽단 · 오량 · 승궁 · 정균 · 조전,조계,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申屠剛鮑永郅惲列傳)」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蘇竟楊厚郞顗襄楷列傳)」
환담 · 풍연 신도강 · 포영,포욱, · 질운 소경 · 양후 · 낭의 · 양해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郭杜孔張廉王蘇羊賈陸列傳)」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陰識列傳)」
곽급 · 두시 · 공분 · 장감 · 염범 · 왕당 · 소장 · 양속 · 가종 · 육강 범굉 · 음식
33권 「주풍우정주열전(朱馮虞鄭周列傳)」 34권 「양통열전(梁統列傳)」 35권 「장조정열전(張曹鄭列傳)」
주부 · 풍방,풍석, ,유희, · 우연 · 정홍 · 주장 양통 장순 · 조포 · 정현
36권 「정범진가장열전(鄭范陳賈張列傳)」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丁鴻列傳)」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張法滕馮度楊列傳)」
정흥 · 범승 · 진원 · 가규 · 장패 환영,환언, ,주총, · 정홍 장종 · 법웅 · 등무 · 풍곤 · 도상 · 양선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劉趙淳于江劉周趙列傳)」 40권 「반표열전(班彪列傳)」
유평 · 조효 · 순우공 · 강혁 · 유반,유개, · 주반 · 조자 반표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第五鍾離宋寒列傳)」 42권 「광무십왕열전(光武十王列傳)」
제오륜 · 종리의 · 송균 · 한랑 유강 · 유보 · 유강 · 유연 · 유언 · 유영 · 유창 · 유형 · 유형 · 유경
43권 「주악하열전(朱樂何列傳)」 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徐張胡列傳)」 45권 「원장한주열전(袁張韓周列傳)」
주휘 · 악회 · 하창 등표 · 장우 · 서방 · 장민 · 호광 원안 · 장포 · 한릉 · 주영
46권 「곽진열전(郭陳列傳)」 47권 「반양열전(班梁列傳)」
곽궁 · 진총 반초 · 양근
48권 「양이적응곽원서열전(楊李翟應霍爰徐列傳)」 49권 「왕충왕부중장통열전(王充王符仲長統列傳)」
양종 · 이법 · 적포 · 응봉 · 곽서 · 원연 · 서구 왕충 · 왕부 · 중장통
50권 「명제팔왕열전(明帝八王列傳)」 51권 「이진방진교열전(李陳龐陳橋列傳)」
유건 · 유선 · 유공 · 유당 · 유연 · 유창 · 유병 · 유장 이순 · 진선 · 방참,시연, · 진귀 · 교현
52권 「최인전(崔駰傳)」 53권 「주황서강신도열전(周黃徐姜申屠列傳)」 54권 「양진열전(楊震列傳)」
최인 주섭 · 황헌 · 서섭 · 강굉 · 신도반 양진,사마포, ,마영,
55권 「장제팔왕열전(章帝八王列傳)」
유항 · 유전 · 유경 · 유수 · 유개(劉開) · 유숙 · 유만세 · 유승
56권 「장왕충진열전(張王种陳列傳)」 57권 「두난유이유사열전(杜欒劉李劉謝列傳)」 58권 「우부갑장열전(虞傅蓋臧列傳)」
장호 · 왕공 · 충고 · 진구 두근 · 난파 · 유도 · 이운 · 유유 · 사필 우후 · 부섭 · 갑훈 · 장홍
59권 「장형열전(張衡列傳)」 60권 「마융채옹열전(馬融蔡邕列傳)」 61권 「좌주황열전(左周黃傳)」
장형 마융 · 채옹 좌웅 · 주거 · 황경
62권 「순한종진열전(荀韓鍾陳列傳)」 63권 「이두열전(李杜列傳)」 64권 「오연사노조열전(吳延史盧趙列傳)」
순숙 · 한소 · 종호 · 진식 이고,이섭, ,조준, · 두교 오우 · 연독 · 사필 · 노식 · 조기
65권 「황보장단열전(皇甫張段列)」 66권 「진왕열전(陳王列傳)」
황보규 · 장환 · 단경 진번 · 왕윤
67권 「당고열전(黨錮列傳)」
유숙 · 이응,이수, · 두밀 · 유우 · 위영 · 하복 · 종자 · 파숙 · 범방 · 윤훈,윤목, · 채연 · 양척 · 장검 · 진상 · 공욱 · 원강 · 유유 · 가표 · 하옹
68권 「곽부허열전(郭符許列傳)」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 70권 「정공순열전(鄭孔荀列傳)」
곽태 · 부융 · 허소 두무 · 하진 정태 · 공융 · 순욱
71권 「황보숭주준열전(皇甫嵩朱儁列傳)」 72권 「동탁열전(董卓列傳)」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황보숭 · 주준 동탁 유우 · 공손찬 · 도겸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
원소 ,원담 · 원상, · 유표 유언 · 원술 · 여포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
위립 · 임연 · 왕경 · 진원 · 왕환 · 허형 · 맹상 · 제오방 · 유구,유광, · 유총 · 구람 · 동회
77권 「혹리열전(酷吏列傳)」
동선 · 번엽 · 이장 · 주우 · 황창 · 양구 · 왕길
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정중 · 채륜 · 손정 · 조등 · 선초 · 서황 · 구원 · 좌관 · 당형 · 후람 · 조절 · 여강 · 장양 · 조충
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유곤 · 규단 · 임안 · 양정 · 장흥 · 대빙 · 손기 · 구양흡 · 모장 · 송등 · 장순 · 윤민 · 주방 · 공희 · 양륜 · 고후 · 포함 · 위응 · 복공 · 임말 · 경란 · 설한 · 두무 · 소순 · 양인 · 조엽 · 위굉 · 동균 · 정공 · 주택 · 손감 · 종흥 · 견우 · 누망 · 정증 · 장현 · 이육 · 하휴 · 복건 · 영용 · 사해 · 허신 · 채현
80권 「문원열전(文苑列傳)」
두독 · 왕륭 · 하공 · 부의 · 황향 · 유의 · 이우 · 소순 · 유진 · 갈공 · 왕일 · 최기 · 변소 · 장승 · 조일 · 유량 · 변양 · 역염 · 후근 · 고표 · 장초 · 예형
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초현 · 이업 · 유무 · 온서 · 팽수 · 삭로방 · 주가 · 범식 · 이선 · 왕돈 · 장무 · 육속 · 대봉 · 이충 · 무융 · 진중 · 뇌의 · 범염 · 대취 · 조포 · 상허 · 양보 · 유익 · 왕열
82권 「방술열전(方術列傳)」
임문공 · 곽헌 · 허양 · 고획 · 왕교 · 사이오 · 양유 · 이남 · 이합 · 단예 · 요부 · 절상 · 번영 · 당단 · 공사목 · 허만 · 조언 · 번지장 · 선양 · 한열 · 동부 · 곽옥 · 화타 · 서등 · 비장방 · 소자훈 · 유근 · 좌자 · 허자훈 · 해노고 · 장초 · 왕진 · 학맹절 · 유화평
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환소군 · 조아(趙阿) · 반소 · 이목강 · 조아(曹娥) · 여영 · 마륜 · 조아(趙娥) · 순채 · 조원강 · 숙선웅 · 채염
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 남만 · 서남이 서강
88권 「서역전(西域傳)」
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 ||
}}}}}} ||

馬成
(? ~ 56)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군천(君遷). 형주 남양군(南陽郡) 극양현(棘陽縣) 사람이다. 운대 28장 중 한명으로 서열 17위에 속한다.

2. 생애

젊었을 적 현리(縣吏)로 일하던 중 현한의 대사마 유수가 영천군을 공략할 때 그에게 합류하여 안집연(安集掾)이 되었다. 이후 겹(郟)의 현령으로 부임해 지역을 다스리다가 유수가 하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나자 현한의 관직을 버리고 그의 군대를 쫓아 포양(蒲陽)까지 갔다. 유수는 따라온 마성을 기특하게 여겨 그를 기문(期門)으로 삼아 정벌군에 입대시켰다.

건무 원년(25년), 유수가 칭제를 하자 마성은 호군도위(護軍都尉)로 승진하였다.

건무 4년(28년) 8월 10일, 광무제는 마성을 양무장군으로 삼고 주로장군 유륭(劉隆), 진위장군 송등(宋登), 사상교위 왕상 등을 감독해, 회계(會稽), 단양(丹陽), 구강(九江), 육안(六安) 4개의 군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여강군 서현(舒縣)의 군벌인 이헌(李憲)을 정벌하도록 했다. 마성은 곧장 군사를 모아 서현을 포위한 뒤, 각 부대에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올려 이헌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이헌은 수 차례 마성의 포위망을 뚫어보려 노력했지만 마성군의 방어가 단단해 모두 실패하였다. 1년 후, 이헌군의 군량이 바닥나자 마성은 진격해 서현을 함락하고 이헌을 참수하였다. 그리고 도망친 이헌의 잔당들까지 추격해 소탕하니 강회(江淮) 땅이 완전히 평정되었다.

건무 7년(31년) 여름, 이헌을 토벌한 공으로 평서후(平舒侯)에 봉해졌다.

건무 8년(32년), 광무제가 외효를 친히 정벌하러 갈 때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외효가 충분히 궁지에 몰렸다 판단한 광무제는 다시 수도 낙양으로 돌아가면서 마성을 천수태수로 삼아 남겨두고 장군직은 이전과 같이 하였다. 그 해 겨울, 광무제는 마성을 수도로 불러들이고 풍이를 천수태수로 임명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였다.

건무 9년(33년), 외효가 중랑장 내흡에게 몰려 기성(冀城)에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 다시 외효 정벌군에 합류하여 여러 장수들과 함께 기성 낙문(落門)을 공격했다. 이윽고 외효가 분사하고 그 뒤를 이은 외효의 아들 외순이 세력을 들어 항복했다.

건무 11년(35년) 6월, 내흡의 지휘 아래 하변(下辨)에서 공손술의 장수 왕원(王元), 환안(環安)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흡이 공손술의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고, 광무제는 조서를 내려 마성을 중랑장으로 삼아 내흡을 대신하게 하였다.[1] 마성은 대장 암살로 혼란에 빠진 군을 수습한 뒤, 무위장군 유상(劉尙)과 함께 하지(河池)를 점령해 무도군(武都郡)을 평정하였다.

일전에 내흡이 강족을 한번 토벌한 적이 있었으나, 내흡이 사망한 틈을 타 선령(先零) 등 강족들이 호미(浩亹)에서 다시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성은 농서태수 마원과 협동하여 난을 진압하고, 항복한 강족들은 쪼개서 천수, 농서, 사예, 삼보 각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조정의 대신들은 오랑캐가 난을 자주 일으키니 양주(凉州) 서쪽 땅을 전부 포기하자 건의했지만, 광무제는 마원의 주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요청을 기각하였다. 마원은 유랑민 3천여 명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고, 저족강족 우두머리들을 불러 귀부케 하면서 양주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더이상 토벌군을 주둔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라 판단한 광무제는 마성을 낙양으로 불러 군대를 거두어들였다.

건무 12년(36년) 12월, 대사공 이통(李通)이 파면당하고 마성이 대사공의 업무를 대행하였는데 그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건무 13년(37년) 3월, 다시 양무장군으로 돌아왔다.

건무 14년(38년) 2월, 표기대장군 두무와 안문태수 곽량(郭涼)의 활약으로 한 차례 격퇴당했던 노방(盧芳)이 흉노의 지원을 받아 다시 북쪽 변방을 어지럽혔다. 광무제는 오한(吳漢), 마성, 마무(馬武)를 추가로 보내 안문군과 상산군의 관리와 백성 6만여 명을 거용관(居庸關)과 상산관(常山關) 동쪽 방면으로 이주시키도록 명했다. 최전방이 텅 비어버리자 흉노의 좌부(左部)가 변방 안쪽까지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광무제는 변방군을 더욱 늘려 각 군마다 수천 명 단위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건무 15년(39년), 두무가 부정을 저질러 파면되고 마성이 그 자리를 대신해 북쪽 변방을 지켰다. 마성은 흉노에 의해 무너진 요새를 고쳐 10리마다 파수꾼 1명을 두었으며, 두무가 고쳐놓고 떠난 봉화대 역시 잘 활용해 고류(高柳)에서 노방(盧芳)을 격파했다. 그가 세워둔 요새는 서하(西河)에서 시작해 위교(渭橋)까지 이르렀고, 어양태수 장감(張堪) 등 변방의 지방관들도 힘을 모아 흉노를 쫓아내니 수 년간 흉노가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 마성이 변방을 지킨지 5~6년이 되던 해에 광무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다시 낙양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변방의 백성들이 마성을 부임시켜 달라는 요청을 계속 제기하자 광무제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마성을 다시 변방에 보냈다. 얼마 후, 광무제는 마성을 중산태수에 임명하고 장군의 인수를 회수했지만 군대는 그대로 거느릴 수 있게 해주었다.[2]

건무 24년(48년) 정월, 흉노가 분열하여 혜락시축제 선우를 칭한 일축왕 비가 오원의 요새에 사람을 파견해 한나라에 번속이 되기를 요청하면서, 울타리 역할을 해 북쪽의 무리들을 막겠다 선언하니, 한나라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흉노의 내분 덕에 북방이 어느정도 안정되었으나 이번에는 무릉만족이 일어나 무릉군 임원(臨沅)을 공격하였다. 광무제는 알자(謁者) 이숭(李嵩)과 중산태수 마성을 보내 토벌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마성은 태수의 인수를 반납하고 은퇴하였다.

건무 27년(51년), 전초후(全椒侯)로 개봉되어 자신의 영지로 이사갔다.

건무 32년(56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작위는 아들 마위(馬衛)가 이었으며, 후손인 마추(馬醜) 대에 이르러 죄를 짓는 바람에 한환제가 그의 식읍을 몰수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1]후한서》 「마성전」에는 내흡 암살 사건이 "건무 9년(33년)"에 발생한 사건이라 나오지만, 「내흡전」 등 다른 열전들에서는 "건무 11년(35년)"에 일어났다 기록되어 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비롯한 다른 후대의 역사서들도 「마성전」의 기록은 오류라 판단해 후자를 택했으므로, 본 문서 또한 35년에 발생한 일로 기록하였다.[2] 당시 이미 많은 개국공신들이 대장군 혹은 장군의 인수를 반납하면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고 광무제 역시 문치를 문치를 강조했기에 행한 형식적인 조치이다.